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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터치업 (9/16)
  • Chapter 8. 터치업

    사월은 붉은 자욱이 남은 이마를 매만졌다. 오돌토돌한 피부가 손가락 끝에서 만져진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원재를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그리움을 못 견딘 어느 날 전화를 걸 용기가 생겼을까? 대답은 ‘아니’였다.

    멍청하리만치 답답하고 도망갈 줄밖에 모르는 겁쟁이인데도, 원재는 진득하게 곁에 있어 주었다. 감정을 내보일 줄 모를 때도, 기억이 나지 않는 척 모든 걸 회피할 때도 그랬다. 언제나 그랬다. 원재의 온기가 잔잔하게 스며들었고, 사월은 그제야 비로소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월은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주변은 어둑해지고, 가게의 간판들이 빛을 내는 시간. 원재의 차가 서 있던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 끝에서 익숙한 검은 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사월이 고개를 돌려 운전석 쪽을 확인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반가운 기색으로 몸을 일으킨다.

    “지금 나 마중 나온 거야?”

    “……일찍 왔네.”

    원재는 급하게 시동을 끄고 내렸다. 그러곤 훤히 드러난 공간이라는 것도 잊고 사월을 가득 안았다. 간판 빛을 받고 앉아 있는 마른 뒷모습을 봤을 때부터 그러고 싶었다.

    “보고 싶다고 하니까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

    “……괜한 말했네.”

    “아니야, 아니야.”

    등 위를 쓰는 손길이 따뜻하고 절박했다. 허겁지겁 사월의 향기와 온기를 끌어당긴다. 사월은 내내 밖에서 기다리느라 얼어붙었던 몸이 녹고 있음을 느꼈다. 단 한 번의 포옹으로.

    원재가 몸을 떨어트리고 사월의 뺨을 쥔다. 히터 바람에 익숙해졌던 손이 금세 차가워진다.

    “오래 기다렸어? 몸이 차.”

    사월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긴. 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차가워졌는데. 원재는 가슴팍 아래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졌다. 아무리 손으로 벅벅 긁어도 가시지 않을 것처럼.

    “타. 우리 드라이브하자.”

    원재는 차가워진 사월의 겉옷 위를 슥슥 문질렀다. 차 문을 열고 사월을 조수석에 태운 뒤, 뒷좌석에서 담요를 꺼냈다. 훈훈한 온기가 묻은 담요를 마른 몸에 칭칭 감았다. 벨트까지 단단히 채워 주고 나서야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가고 싶은 데 없어? 어디 갈까.”

    “그냥 아무 데나.”

    사실 어딜 가든 상관없었다. 원재가 같이 있다면 정말 아무 상관없었다. 사월이 고민하는 사이 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우리 집에 가자.”

    “서울?”

    “응.”

    사월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언제까지 횟집에 얹혀살 수는 없었다. 원재도 만났고 몸도 거의 다 나았고. 언젠가는 돌아가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아, 순서가 이게 아닌가…….”

    “…….”

    “같이 살 거지? 올라가면.”

    대답을 기다리는 원재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핸들을 쥔 손가락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핸들 위를 톡톡, 일정하게 두드리며 사월의 대답을 재촉한다.

    사월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전적으로 의지해도 되는 상대를 만난 것도. 그래서 같이 살고 싶다고 얘기해도 되는지, 자신이 그런 말을 꺼내도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지, 전부 헷갈렸다. 보통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그러겠다고 대답을 할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사월은 원재에게 답을 구한다. 어쩌면 당연한 답변이 돌아올 테지만.

    “나랑 살았으면 좋겠어. 매일 같이 잠들고 눈 뜨고 싶어. 안아 주고 싶을 때 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 그렇게 가까운 사이면 좋겠어.”

    “…….”

    “살다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내가 다 바꿀게. 다 맞출 수 있어. 어렵지 않아, 그런 거.”

    사월은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머릿속을 다 들킨 기분이었다. 다 맞추고, 다 바꾸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어쩜 사월이 남몰래 품었던 것들과 똑같을 수 있지. 급격히 더워진 몸에, 감싸고 있는 담요를 슬쩍 내려 허벅지 위에 올렸다.

    원재의 차는 빠르게 도로 위를 내달렸다. 사월은 담요 끝을 잡고 연신 괴롭혔다. 나도 그래, 그 한마디가 어려워서. 말없이 한참을 달린 뒤에야 어렵게 입술이 열린다.

    “내가 맞출게, 너한테.”

    사월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부끄러운 건지, 목덜미와 귓불이 다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원재가 핸들을 꽉 쥐었다. 손바닥 아래에로 가죽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래?”

    “……어.”

    “그럼 밖에도 못 나가고, 다른 사람이랑은 말도 하면 안 되는데.”

    웃음 섞인 말이었지만, 그건 원재의 진심이었다. 입맛대로 사월을 휘두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집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종종 집을 찾던 최 비서의 출입도 막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철저히 사월을 고립시킬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틈도, 위험해질 일도 없게. 오로지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미친 소리는 좀 그만해.”

    사월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문장을 내뱉는다. 그러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사월이 마른세수를 하는 모습을 힐끔 확인한 원재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욕심을 부리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둘이 함께 있다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는 걸 사월이 스스로 자각할 때까진. 그리하여 완전히 손아귀에 들어올 때까지는 숨 쉴 틈이 필요할 테니까.

    뜨끈한 욕망을 삼키고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서울로 가는 길이 이렇게 더딘 적이 있었나. 늦은 시간이라 텅 빈 도로 위를 달리면서도, 원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걱정 말고 자. 문단속 잘하고.”

    차는 서울로 막 진입했고, 시간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횟집 아저씨는 통화 내내 사월이 영영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몇 번이고 돌아가겠다 안심을 시켜 준 뒤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걱정이 많으시네. 내가 도둑놈처럼 보이셨나.”

    원재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긴 몰라도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키도 덩치도 큰 데다 인상도 서글한 편은 아니니, 어른들이 봤을 땐 충분히 위압감을 느꼈겠지 싶다.

    그래도, 그래도 알고 보면 엄청 다정한 사람인데……. 사월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원재를 두둔하고 있었다.

    “횟집 사장님 아들 홍콩에 있어, 지금.”

    “……어떻게 찾았어? 거기 왜……. 아니, 살아 있는 거 맞지?”

    되묻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사월은 알고 있었다. 횟집 부부가 은연중에 아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는 걸. 지난 반년간은 연락도 하지 않은 아들을, 사월에게 투영한다는 걸.

    그랬기에 원재의 말은 더없이 반가운 소리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옆에서 살고 싶다고 푸념처럼 말하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빚이 좀 있어서 잡혀 있는 거 같은데. 거기 정리해 주면 돌아올 순 있을 거야. 물론 본인 의사가 중요하겠지만.”

    “빚?”

    “도박. 더 깊이 알면 골치 아프니까, 그건 넘어가고. 하루빨리 데려오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때? 사월 사장 없으면 두 분도 적적하실 거 아냐.”

    사월은 운전석 방향으로 틀었던 상체를 다시 바로 했다. 아까와 달리 차가 빽빽하게 들어찬 도로를 바라봤다.

    “잘 모르겠어. 좋아하실 거 같긴 한데…….”

    도박에서 손을 떼는 게 쉽지 않다는 것쯤은 사월도 잘 알고 있다. 제자리로 돌아온 아들이 만에 하나라도 다시 도박에 손을 대면? 그래서 또다시 빚을 남기고 사라진다면? 그럼 횟집 부부의 상실감은 어떡하지.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건 만나게 해 주는 거. 딱 거기까지야. 후는 그 사람들 몫이니까 사월 사장이 미리 걱정하고 감당할 필요 없어.”

    타인. 그 짧은 단어로 사월은 모든 것에서 배제된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일에 사월이 개입하는 것도 우습긴 했다. 원재의 말처럼 그건 가족끼리 감당해야 할 문제니까.

    그간 느껴 보지 못한 어른의 보살핌 속에 너무 익숙해진 건가. 반년을 부대끼며 살아서 그런지, 타인이라고 이름 붙어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조금, 그랬다.

    “왜, 내 말이 서운해?”

    게다가 냉정하고 서늘한 단어를 원재가 붙여 주었다는 사실이 사월의 말문을 막았다. 원재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사월의 얼굴을 살피곤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 타이밍에 오후에 납골당에 들렀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 잠깐 갈등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아니. 안 서운해.”

    사월은 서운할 자격 따위는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씻고 나온 사월은 품이 큰 티셔츠를 끌어 올리며 중얼댔다. 원재의 집은 반년 전과 똑같았다. 가구의 위치도,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도, 사월의 흔적도.

    원재는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월은 마른 머리를 탈탈 털고 소파에 앉았다. 낮은 테이블 한쪽엔 익숙한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왜 안 버린 거야, 이건.”

    손때가 묻은 크로키 북이다. 원재를 기다리면서 하루 종일 끄적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반쯤 짧아진 연필도 변함 없었다.

    사월은 크로키 북을 끌어와 넘겼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머뭇대는 손가락은 그냥 만지작대기만 할 뿐 차마 종이를 더 넘기지 못했다.

    원재는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 얼굴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도망간 자신의 흔적을 치우지도 않고, 시선이 닿는 곳에 둔 채로…….

    “사월 사장이 다시 오면 찾을까 봐 그냥 둔 건데.”

    로브 끈을 엉성하게 얽으며 나오던 원재가 낮은 목소리를 울렸다. 거실을 가로지르며 사월이 앉은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그냥 버리지.”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말끝을 흐리는 사월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에게선 같은 향기가 났다.

    “어떻게 버려. 사월 사장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기 다 남아 있는데.”

    원재가 팔을 뻗어, 크로키 북을 매만지는 사월의 손목을 끌었다. 손목 위에 자리 잡은 글자를 내려다본다. 천천히 상체를 기울여 그 위로 입을 맞춘다. 경견하고 성스러운 의식을 치루는 듯한 모습에, 사월 또한 시선을 빼앗긴다. 입술이 닿은 피부가 저릿해진다.

    “이걸로 알 수 있어?”

    “…….”

    “내가 얼마나,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끝맺지 못한 사월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재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공기가 뒤바뀐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원재의 손바닥이 사월의 뺨을 그러쥐었다.

    “왜 몰라.”

    원재가 고개를 틀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월의 입술 위로 눈이 진득하게 머물렀다. 뺨을 쥔 손에 제법 힘이 들어가, 사월은 고개를 무를 수도 없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작은 숨이 흘러나온다. 원재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그림자가 졌다. 입맞춤을 하듯 작게 입술이 부딪힌다.

    세 번째 입술이 닿았을 때, 벌어진 입 안으로 혀가 급하게 밀려들어 온다. 턱이 벌어지며 혀가 얽혀 끌려간다. 원재의 엄지가 턱 아래를 지그시 누른다. 닫히지 않는 입 안에 타액과 혀가 정신없이 뒤엉킨다.

    “으읍.”

    사월의 손이 허공을 배회하다, 어색하게 원재의 어깨 위로 안착했다. 정신없이 상체를 밀어붙이는 힘에 사월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소파에 완전히 누운 사월의 위로 원재가 올라탔다. 허벅지 사이에 사월의 마른 다리를 두고 결박했다. 뺨을 쥐었던 손을 더듬거리며 뻗어 사월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맥박이 뛰고 있는 얇은 피부를 꾹 눌렀다. 빠르게 온몸으로 퍼지는 혈액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낀다.

    “하아, 하아…….”

    입술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거친 호흡이 엇박자로 뒤섞였다. 원재가 혀를 내어 축축한 사월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벌어진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입천장을 간질였다. 손을 펴서 사월의 손가락을 옭아맸다. 깍지 낀 손에 힘을 주곤 단단히 맞잡는다.

    “사랑하면 다 알 수 있어.”

    사월의 입가가 구겨졌다. 눈 주변은 삽시간에 붉어진다.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입 밖으로 내어 본 적 없는 감정이 마구 덮쳐 온다.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넘실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사월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원재는 사월의 눈가에 입술을 조심스레 대었다. 한 방울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듯, 혀로 꼼꼼하게 눈물을 마셨다.

    “……고마워.”

    사랑한다는 걸 알아줘서. 나를 사랑해 줘서. 답답하게 구는 나를 버리지 않고 안아 줘서. 사월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목소리 끝도 울음에 잔뜩 절여져 잘게 흔들렸다.

    “이럴 땐 ‘나도’라고 하면 돼.”

    틈 없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 위로 감기는 마른 손가락을 느끼며 원재는 고개를 숙였다. 자꾸만 울음이 새어 나오는 입술 사이로, 온기를 불어 넣었다.

    두 사람이 몸을 겹치고 있지만, 성인 남자 둘이 눕기엔 소파는 더없이 비좁았다. 사월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가죽이 밀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엉성하게 묶은 로브는 다 풀려 앞섶이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사월의 바지 속으로 손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유일하게 살집이 모여 있는 엉덩이 위를 꾹 잡자, 사월이 짧게 앓는 신음을 흘렸다.

    추읍. 타액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길게 늘어졌다. 사월이 무릎을 구부려 세웠다. 원재가 허리를 낮게 내렸다. 두 사람은 익숙하게 맞닿은 자세를 취했다. 속옷도 입지 않아 발기한 성기가 고스란히 사월의 바지 위로 닿았다. 툭툭. 원재는 허리를 살짝 위로 부비며 불룩한 사월의 아래를 자극시킨다.

    “하아, 하아…….”

    사월의 숨이 거칠어졌다. 원재는 삽입하듯 허리를 쳐올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사월이 눈 한쪽을 구기며 입술을 물었다.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원재가 혀로 사월의 입술을 핥았다.

    “으윽.”

    다급한 손길이 옷을 모두 끌어 내렸다. 엉덩이 사이로 마디 굵은 손가락이 미끄러져 파고들었다. 사월의 허리가 뒤틀리며 아래가 진득하게 맞물렸다.

    손가락 하나가 안을 헤집는다. 그간 아무 손길도 타지 않은 곳이라 손가락을 받는 것조차 버거운 듯 보였다. 원재가 고개를 숙이자 이마가 맞닿았다.

    “하나도 꽉 조이네.”

    입꼬리를 올리며 짓궂게 던지는 말에 사월의 낯이 달아올랐다. 원재가 사월의 타액이 묻은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어 빨았다. 사월의 흔적을 모조리 삼키며 손가락을 입구에 걸어 벌리기 시작했다. 아랫배에 힘을 잔뜩 준 나머지 사월의 눈이 잘게 구겨진다.

    “넣으려면 밤새겠다, 그치.”

    “아…….”

    근육이 오므라든 구멍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더 파고들었다. 사월의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졌다. 벌어진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화답하듯 사월의 혀가 얽혀 왔다. 입술 끝만 뭉개진 채로 혀가 연신 뒤엉켰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가에 그대로 흘렀다.

    손가락이 구멍을 쑤시며 안을 지그시 눌렀다. 엉덩이가 들썩댔다. 원재의 성기 끝에 맺혀 뚝뚝 흐른 액이 사월의 아랫배 위에 고였다. 선정적인 그 모습을 보며 원재가 점막에 닿아 있는 손가락을 벌렸다. 내벽을 꼼꼼하게 넓히는 손길에 사월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혼자 뒤 풀진 않았을 거고, 자위도 안 했어? 왜 이렇게 몸이 굳었어.”

    “……으, 안 했어.”

    몸이 달았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래가 단단해질 만큼 성욕에 휩싸인 적도 있었지만, 사월은 좆에도 구멍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관계 내내 아껴 주며 조심스럽게 굴던 원재가 떠오를까 봐. 그렇게 되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생각 자체를 끊고 살았는데, 원재의 은근한 손길에 성기가 욱신대며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잘 세우네.”

    사월의 아랫배를 꾸욱 눌렀다. 방울방울 떨어져 있던 액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그 손으로 사월의 성기를 거머쥐었다. 기둥을 천천히 쓸고 엄지로 귀두 끝을 비볐다. 얇은 살이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로 밀렸다.

    사월이 팔을 뻗어 어깨를 붙들었다. 그 상태로 몸을 비틀자 로브가 반쯤은 벗겨져 원재의 너른 어깨 끝에 간신히 매달린 꼴이 되었다.

    “처, 천천히…….”

    “응.”

    원재는 젖은 구멍 안으로 손가락 하나를 더 넣었다. 느릿하게 안을 쑤셨다. 푹푹, 축축한 아래를 드나드는 손가락에선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월이 요구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온밤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사월의 온몸을 핥고 만지고. 제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할 작정이다.

    발기한 사월의 성기는 다른 곳보다도 체온이 높았다. 뜨거운 것을 쥔 원재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의 좆도 검붉어져 핏줄이 도드라졌다.

    “하…….”

    “읏, 으읏.”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다. 사월이 발바닥으로 소파를 밀어 대며 발버둥 쳤다. 허나 가죽이 마구 밀리는 소리만 절박할 뿐, 결박된 원재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 나 갈, 갈 것 같, 그만……. 읏.”

    원재의 손길로 사월은 금세 사정감을 느꼈다. 원재는 좆을 흔드는 손길에 속도를 붙였다. 안을 쑤시는 손가락도 마찬가지였다. 앞뒤 전부 원재에게 점령당한 사월은 곧 짧은 신음을 뱉었다.

    “하아……!”

    원재의 탄탄한 배 위로 정액이 흩뿌려졌다. 원재는 사월의 좆을 탈탈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게 만들었다. 기력이 다 빨린 것처럼 마른 몸이 늘어진다.

    사월이 사정한 것을 보니, 원재의 아래도 금방 뻐근해졌다. 후우. 숨을 길게 내뱉고는 사월의 옷을 잡아 벗겼다. 젖은 양손에 묻은 질척한 액이 옷에 묻어 끈적해졌다.

    왼쪽 어깨 위로 사월의 다리를 걸쳤다. 팔을 뻗어 사월의 얼굴 옆을 짚었다. 완전히 사월을 아래에 가둔 자세가 되었다.

    이윽고 발기한 좆을 잡아 사월의 구멍 주변을 꾹 압박했다. 사월은 사정 한 번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숨만 고르고 있었다. 원재는 성기를 잡아 주물렀다. 쓰읍. 잇새를 악물고 숨을 들이켰다. 축축한 입구에 귀두를 가져다 대자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아, 아……, 사월아…….”

    쇳소리가 섞인 낮은 목소리에 사월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삽입을 하지 않고 입구에 귀두를 비비며 자위하는 원재였다. 그 다급한 얼굴을 목도했다. 다시 아래가 저릿해져 왔다.

    “후, 사월…….”

    원재의 눈썹이 구겨진다. 이로 물자 아랫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성기를 흔들고 주무르는 손길은 더욱 거칠어졌다. 원재의 목덜미 위로 힘줄이 서고, 곧이어 아래에 뜨거운 것이 울컥 쏟아진다.

    사정은 길었다. 입구도 모자라 엉덩이를 적신 액은 등허리까지 타고 내려갔다. 원재는 끄트머리를 잡고 엉덩이 사이에 좆을 마구 비볐다. 사정을 했음에도 성기는 금세 단단해진다. 뿌연 액체로 범벅이 된 좆을 잡아 입구에 꾹 누른다.

    마음 같아선 거칠게 안을 쑤시고 싶지만, 반년이나 손을 타지 않은 곳이라 걱정이 앞섰다. 온 인내심을 발휘해 물었다.

    “조금 더 풀까?”

    사월의 고개가 마구 흔들렸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었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소파 위로 머리카락이 흩어진다.

    “넣어 줘…….”

    보채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그러곤 전등을 가린 채 위를 점령하고 있는 원재에게 손을 뻗곤 뺨을 조심스럽게 쥔다. 아래를 향해 있던 원재의 고개가 들리고 눈이 마주친다.

    “괜찮아.”

    원재의 눈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홀린 사람처럼 이끌리듯 입을 맞췄다. 사월의 얼굴 옆에 짚은 손으로 소파를 세게 붙들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진다.

    귀두를 입구에 맞추고 허리를 내렸다. 빠듯하게 안을 파고드는 감각.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반도 들어가지 않은 좆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입술이 떨어졌다. 사월은 달뜬 얼굴로 원재를 올려다봤다.

    “왜, 왜…….”

    상실감 때문인지 구멍이 뻐끔거렸다. 원재는 엉덩이 아래에 고인 액을 훔쳐 움찔대는 구멍 안으로 욱여넣었다. 푹푹. 정액과 손가락이 안을 쑤셔 댔다.

    “하읏, 으응…….”

    몸이 달아올라 손길 하나에도 쉽게 신음을 흘렸다. 안을 충분히 적신 손가락이 빠져나오더니 기둥을 잡았다. 다시 발기한 성기 끄트머리를 입구에 맞추고 그대로 아래를 찔러 넣었다.

    “아아…….”

    단단한 좆이 길을 찾아 안으로 들어간다. 원재가 손을 떼 사월의 엉덩이를 감싸 쥐었다. 엄지로 구멍 주변의 살을 밀듯 잡아 벌렸다.

    작고 마른 엉덩이에 성기가 질척대며 꾸역꾸역 들어가는 꼴이 꼭 포르노의 한 장면 같았다. 사월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원재는 정신없이 박아 대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았다.

    “아, 다, 들어갔어……?”

    아래가 빠듯한 느낌에 사월이 물었다. 원재는 대답 없이 허리를 느릿하게 놀렸다. 겨우 반을 삼킨 입구 주변엔 뿌연 액체가 덕지덕지 묻었다.

    뜨거운 좆에 내벽이 마구 짓눌리자 사월이 자꾸만 아래에 힘을 주었다. 성기를 조이는 힘이 느껴질 때마다 원재는 상체를 숙여 사월의 얼굴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아파?”

    사월이 달뜬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원재는 숨을 들이켜고 좆을 완전히 넣었다. 명치까지 들어찬 느낌에, 사월이 숨을 멈췄다. 원재가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사월의 귀를 입 안에서 굴렸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야릇하게 울렸다.

    “사월아, 숨 쉬어.”

    “……하아.”

    한 박자 늦게 숨이 터졌다.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조이던 느낌이 줄어들자 원재가 허리를 뒤로 작게 무른다. 반쯤 빠진 좆을 다시 버겁게 밀어 넣기를 반복한다. 얇은 피부가 마찰되며 뜨거워진다.

    “으응, 읏!”

    사월은 귀두 끝이 내벽을 찌를 때마다 신음을 뱉었다. 내벽이 딸려 나갔다가 쑤시듯 안으로 밀려오는 감각을 여실히 느꼈다. 사월이 쥐고 있는 원재의 뺨을 가깝게 끌었다. 원재는 팔을 구부려 상체를 낮춰 주었다. 서로의 입술이 맞물린다. 허겁지겁 혀가 얽혔다. 질퍽대며 드나드는 좆은 속도를 붙인다.

    “읍, 으읏! 아…….”

    사월의 몸이 밀려 올라갈 만큼 쾅쾅 안을 찍어 댔다. 원재의 어깨 위에 걸쳐 둔 다리가 땀에 젖어 미끄러졌다. 들렸던 엉덩이가 소파에 가깝게 떨어지자, 원재가 상체를 세우고 사월의 허벅지를 잡아 올렸다. 퍽퍽, 핏줄이 선 게 다 보이는 원재의 아랫배가 사월의 엉덩이에 부딪힌다.

    소파 위로 널브러졌던 사월의 손이 원재의 옆구리에 가닿았다. 라인만 겨우 그려진 네임 위를 매만지자, 원재가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내벽을 빠짐없이 짓누르는 감각에 발가락이 안으로 굽어들었다. 네임이 새겨진 오른손이 원재의 옆구리와 맞닿으니 따끔하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거, 네 이름이야.”

    “으응, 읏…….”

    “너도 느껴지지.”

    “그 소리 좀, ……그만해…….”

    눈 한쪽을 찡그리며 사월이 겨우 대답했다. 버거운 신음을 흘리면서도 제 옆구리를 움켜쥐는 마른 손을 느끼며 원재는 사정했다. 울컥. 안을 채우는 사정은 길었다. 안이 잔뜩 부풀어 차는 기분이었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명치 아래까지 정액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원재는 좆을 뺄 생각도 하지 않고 숨을 몰아쉬는 사월을 끌어 올렸다. 등을 받치고 늘어진 고개를 어깨 위로 기대게 했다.

    “읏, 아래, 가득 찼어…….”

    체중이 밑으로 실리며 정액과 좆으로 가득한 아래가 틀어막힌다. 사월이 허겁지겁 상체를 떨어트리려고 했지만, 뒤통수와 허리를 잡아 끄는 원재의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이면 빠져.”

    “배가, 배 안에……, 아…….”

    삽입한 채로 사월을 번쩍 안아 든 원재가 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반동으로 귀두가 내벽을 들쑤셨다. 사월은 동아줄이라도 된 듯, 원재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엉덩이를 받친 손에 힘을 주어 여린 살을 짓누르며 원재는 침대로 향했다. 온밤을 다 바치겠다고 마음먹은 이에게, 한 번은 너무 짧았다.

    사월은 몇 번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면 아래를 빠듯하게 채운 좆이 드나드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계속되는 사정에 사월의 좆 끄트머리는 붉었다. 허리 아래에 닿은 시트는 이미 축축했고, 어디든 움직일 때마다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으음…….”

    뻑뻑한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탈진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베개 위에 뺨을 부빈 사월은 칼칼한 목구멍 때문에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렸다.

    타월로 허리 아래만 가린 원재가 물병 하나를 손에 쥐고 들어왔다. 넓은 가슴팍과 목덜미 주변에는 작은 울혈이 남아 있었다. 원재와 마주 보면서 할 때, 흥분을 이기지 못해 사월이 빨아 올린 흔적이었다.

    괜히 민망해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얇은 이불을 사이에 둔 채 원재가 허리를 천천히 주물렀다.

    “일어날 수 있어?”

    모로 누워 있던 사월이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올리자, 원재가 팔로 몸을 받쳐 일으켰다. 어깨 위에 덮여 있던 시트가 떨어지고 맨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월은 멍한 시선으로 몸을 내려다봤다. 울긋불긋한 울혈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난잡한 흔적에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미쳤나 봐…….”

    “아, 해.”

    뚜껑을 딴 생수가 입술에 닿았다. 사월이 입술을 벌리자, 원재는 생수병을 기울였다. 입 안으로 넘어오는 시원한 물을 받아 삼켰다. 축축해진 입술 위에 원재의 입술이 닿고, 남은 물기를 빨아들였다. 입술이 떨어지며 쪼옵, 하는 민망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몇 시야, 지금?”

    “1시.”

    사월이 마른세수를 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붙인 건 아마 몇 시간 되지 않은 듯했다.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니까.

    원재가 얼굴을 푹 파묻고 있는 사월의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그러곤 손목 위에 남은 울혈에 입을 맞춘다. 어제 관계 내내 원재는 유독 손목에 집착을 했다. 손등부터 팔목으로 이어지는 곳에 울혈과 잇자국이 가득했다. 그 위에 또 뜨거운 입술이 닿자 찌릿한 느낌이 차올랐다.

    원재는 사월의 손을 끌어다 제 옆구리 위에 놓는다. 손등을 겹치고 옆구리를 문지르게 만든다. 사월은 손바닥 아래에 있는 네임을 고스란히 느낀다.

    “이제 진짜 나한테 발목 잡혀서 어떡해.”

    “무슨…….”

    사월의 손을 다시 끌어 뺨에 가져다 댄다. 보드라운 손바닥 위로 뺨을 작게 부빈다.

    “성원재 완전히 네 거라는 소리야.”

    내 목줄 완전히 네 손에 있다는 뜻이야. 의아한 표정의 사월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원재가 입꼬리를 올렸다.

    ***

    횟집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이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할 때였으니.

    원재는 어차피 같이 살 거면 지금부터 쭉 지내는 편이 어떻겠냐고 말했지만, 사월은 횟집 부부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굳이 하루의 기한만 더 두고 원재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저씨였다. 일을 끝내고 늦은 점심 장사를 돕고 있는 듯했다. 전화 너머로는 꽤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오갔다.

    “내일 늦지 않게 갈게.”

    ―……그렇게 해. 집사람한테도 그리 말해 놓을 테니까.

    “응.”

    내심 서운한 모양인지 한 템포 늦은 대답이 돌아왔다. 횟집 부부와 사월. 세 사람은 남과 가족, 그 사이 어중간한 곳에 위치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더 끈끈한 결속력이 있었다. 기대 없이, 바라는 거 없이. 서로의 아픈 곳을 말없이 지켜 주고, 빈자리를 채워 주며 쌓은 의지와 신뢰가 결속력의 자양분이었다.

    그래서 사월은 단번에 횟집 부부를 끊어 낼 수가 없었다. 원재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아들과의 생이별이 가시처럼 박혀 있는 걸 알면서, 냉정하게 서울에 눌러앉기엔 두 사람이 마음 한구석에 너무 크게 자리 잡은 뒤였다.

    ―밥은 잘 챙겨 먹어? 남자 둘이라고 또 대충 때우지 말고…….

    “잘 먹고 있어. 걱정 마.”

    가만히 보면 아주머니보다 끼니를 더 챙기는 쪽은 아저씨였다. 대답하는 사월의 음성에는 옅은 웃음이 섞여 있었다.

    ―으응.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내려와, 그럼.

    “알겠어.”

    전화를 끊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횟집 부부의 걱정과 애정을 온전히 받았을 친아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부모를 그리워할까, 아니면 볼 낯이 없어 재회를 회피하고 싶을까. 아직도 깊은 밤에 파묻혀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친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사월은 끊긴 전화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어제 말한 거 말이야.”

    원재는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렸다.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사월이 시야에 잡힌다.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원재는 팔을 뻗었다. 습관처럼 사월의 팔목을 약하게 움켜쥐고 네임 위를 살살 문지른다.

    혹시라도 사월이 잊을까 봐. 곁에 자신이 있다는 걸 잊고 혼자라고 생각할까 봐서, 원재는 필사적으로 사월과 눈을 마주했다.

    “아들 데려오는 거. 정말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사월에겐 중요하지 않다. 생판 남의 기분보다는 반년이나 부대껴 산 횟집 부부의 간절함이 더 중요했다.

    “위치 잡힌 이상 데려오는 데 어려운 건 없어.”

    “……분명 좋아할 거야. 포기했다고 말은 했어도 엄청 기다리는 게 눈에 보였거든. 그 아들도……, 가족 만나게 해 준다는데 왜 싫어하겠어.”

    그렇지 않아? 몸을 틀고 앉아 있던 사월이 등받이 위로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머리카락이 부스스 흐트러진다. 사월이 완성시킨 문장에서는 얼핏 쓸쓸함이 읽혔다. 원재는 팔목을 매만지던 손으로 사월의 손등을 덮었다. 한 손에 잡히는 체온을 가볍게 쥔다.

    “넌 어때?”

    사월이 눈으로 되물었다. 뭐가 어떻냐는 말이야?

    “가족 만나게 해 준다고 하면.”

    갑작스럽고, 또 이상한 질문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에 버림받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부모를 만나게 해 준다는 가정을 세우는 일 자체가 쓸데없는 짓 아닌가.

    부모처럼 느낀 것까지는 아니었어도, 가족 그 비슷하게 여겼던 사람은 김 사장이 전부였다. 사월은 원재의 질문을 듣고 바닥 한구석에 시선을 고정했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보며, 원재는 남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네 이름이야. 너도 느껴지지.”

    “성원재 완전히 네 거라는 소리야.”

    그러고 보면 어제부터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지 않았나. 그냥 막연히 꺼내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 확신에 가득 찬 음성. 사월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과 마주한다.

    생사도, 어디 붙어사는지도 모르는 횟집 부부의 아들도 찾아낸 원재다. 아들에 대한 힌트는 무엇 하나도 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부모를 알아내는 일쯤은 별것도 아니지 않을까, 사월은 가늠했다.

    “글쎄.”

    만약 정말 원재가 부모님을 찾은 거라면……. 그럼 어떻게 말을 하면 되는 거지.

    내 부모님 찾았어? 어떻게 지낸대. 핏덩이 같은 애를 버려두고 그동안 잘살았대? 무슨 생각으로 버렸대? 왜 버렸대? 서른 해가 가까워지도록,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버리고 간 그 자리에 그대로 살고 있었는데. 찾으러 올 생각 같은 건, 그냥 하지도 않았대?

    “……별생각 없는데.”

    “그렇구나.”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뒤따르는 질문들은 모두 가슴 깊은 곳으로 묻어 버린다.

    원재는 사월의 눈에 스치는 깊은 음울함을 목격했다. 그 어둠에 잠식되기 전에 얼른 사월을 끄집어낸다. 구구절절하고 비극적이기만 한 얘기는 당분간 꺼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일주일?”

    “…….”

    “아들 노릇할 시간, 그 정도면 충분하지.”

    횟집 부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말미였다. 일주일이 지나면 사월이 누웠던 방은 제 주인을 찾을 테고, 횟집 부부의 관심과 걱정 또한 원래 뻗쳐야 할 방향으로 갈 것이다.

    “제자리 찾는 거라고 생각해. 아들은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너는…….”

    원재가 팔을 뻗어, 사월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분홍빛으로 새살이 돋은 이마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에.”

    사월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에 원재 곁이 아니면 마음 붙일 곳은 없으리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월이 너, 많이 컸다? 다른 사람한테 기댈 줄도 알고.”

    김 사장이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

    “지금? 주차장? 아…….”

    원재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최 비서에게 사월과 같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주차장까지 온 사람을 내쫓을 수도 없고. 그것도 놀러온 게 아니라 일 문제로 왔을 텐데.

    원재의 시선이 잠깐 사월에게 닿았다. 한겨울에도 얼음을 잔뜩 넣은 커피를 홀짝대는 옆모습을 바라본다. 최 비서가 뭐 딴마음 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사월은 너무…….

    “…….”

    턱을 괴고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한다. 흑발과 대비되는 하얀 피부. 서늘한 눈매와 달리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포근한 느낌이었다. 식탁 조명 빛이 통과한 긴 속눈썹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린 채다.

    “형, 중요한 얘기야?”

    누가 봐도 충분히 눈길이 가는 사람 아닌가. 숨겨 두고 혼자만 보고 싶을 정도로.

    “아? ……안녕하세요.”

    사월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이라 인사는 받아 준 사월은 커피 잔을 들고 일어섰다. 최 비서 손에 가득 들린 서류들을 보니 일 얘기가 오고갈 것 같았다. 또 어색하기도 하고, 적당히 자리를 비켜 주는 게 나을 테니까.

    최 비서는 코앞으로 지나가는 사월을 빤히 쳐다봤다. 고개가 사월을 따라 느릿하게 움직였다. 원재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더니, 최 비서 얼굴 바로 앞에서 손가락을 부딪친다. 딱. 꽤 큰 소리에 최 비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뭘 그렇게 봐.’

    사월이 들을까 입만 벙긋댄다. 입모양을 읽은 최 비서는 경악과 경멸이 뒤섞인 마뜩찮은 눈길로 원재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사이 방문이 닫혔다.

    눈싸움하듯 얽혔던 시선이 풀렸다. 휙 몸을 돌려 서재 쪽으로 향하는 최 비서를 뒤따랐다. 뭐지. 방금 눈빛, 되게 기분 나빴는데.

    “뭔데. 그 도둑놈 보듯 하는 시선.”

    “도둑놈인 걸 모른다는 사실이 놀랍다, 놀라워.”

    다 들리는 혼잣말에 원재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월이랑 나랑 나이도 같은데, 뭐가.”

    “엄밀히 따지면 저쪽이 형이지.”

    최 비서가 종이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슥 올려 뒀다. 흰 종이 위에는 몇 줄 적히지 않은 글자와, 엄지 길이와 엇비슷해 보이는 작은 발바닥이 파랗게 찍혀 있었다.

    ― 92년 1월 29일 : 채우주 **산부인과 09시 11분 3.05kg AB형

    ― 92년 4월 12일 : 모(母) 양수진 사망

    “병원 기록은 그게 전부야. 아버지 기록은 없어. 신분이 정확하지 않은 건지, 뭔지…….”

    원재는 그 짧은 활자를 읽고 또 읽었다.

    “건질 만한 건, 이 한 줄이 전부네.”

    원재의 손가락이 글자 위를 훑는다. 채우주. 이게 진짜 이름이구나. 사월과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원재의 옆구리가 다시금 따끔거린다.

    “말했어?”

    “아직. 타이밍 보고 있는 중.”

    원재의 손가락이 일정하게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툭툭. 작은 소리가 방을 울린다.

    말을 하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를 담백하게 전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애 아빠가 죽고 홀로 너를 키울 수 없어서 버렸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났어. 그래서 넌 그간 쭉 외로움과 결핍으로 점철된 채 자란 거야.

    애초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원망 따위가 잘 읽히지 않았지만, 그렇다 한들 사월 사장이 감당할 수는 있을까. 상처받지 않고 흘러가듯 지날 수 있을까. 자신의 얘기인데. 풀리지 않을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아버지 상태는 어때.”

    1심 공판에 결국 나타나지 않은 성 회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라운딩 몇 날 며칠 뛰어도 아무렇지 않고, 인정 신문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양반이 뭔 심장 문제래. 성 회장의 성화에 이리저리 끌려 다닐 점잖은 주치의가 안쓰럽기만 했다.

    “딱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고, 담배가 더 느셨다던데.”

    거기서마저도 특권을 누려야 만족하는 꼴이 참, 대단하지 싶었다.

    “장기전으로 가는 게 그쪽에선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털다 보면 성탁이 검경 쪽이랑 얽힌 거 줄줄이 딸려 나올 거고. 같이 죽자는 심보로 물고 늘어지면 그쪽도 답 없을 테니까. 어영부영 끌다가 관심 사라지면 덮으려는 계획이겠지.”

    복잡한 머릿속은 더 복잡한 이야기로 덮어 버린다. 원재는 그렇게나마 잠시 미뤄 둔다. 사월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무거운 얘기들을.

    ***

    사월은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 눈이 와서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겨울이 시작되고 내내 바닷가 주변에서 지냈던지라, 이렇게 쌓인 눈은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녀 회색빛으로 변하기 전에, 눈을 밟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들고 있던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다. 얼음 하나를 입에 넣고 씹으며, 사월은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겨울옷은 아직 없었다. 처음부터 가져다 두지도 않았고, 횟집에서 올 때도 빈손으로 왔으니까. 대충 장을 뒤져 편해 보이는 옷을 주워 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자 문이 열렸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건지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비스듬히 기대선 원재가 보였다.

    “몇 개월로 형 취급받고 싶어 하진 않겠지.”

    최 비서 말대로 따지고 보면 사월이 몇 달 먼저 태어났으니까. 깡패 새끼들 중에서는 그런 걸로 진짜 큰 싸움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라도 사월이 그런 스타일이라면, ‘사월이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 근데 어쩜 이렇게 입에 안 붙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도 원재는 제 생각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혼자 도리질을 하다 피식 웃기까지 하는 원재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월이다.

    “어디 가려고 그 차림이야.”

    드디어 생각이 끝났는지, 원재가 드레스 룸으로 성큼 걸음을 옮긴다. 사월은 어정쩡하게 일어나며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인다.

    “밖에 나가자. 잠깐.”

    드레스 룸 너머에서 ‘같이?’ 하는 물음이 들렸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 사월은 무작정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디 가고 싶은데?”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나온 원재는 두터운 겉옷과 목도리를 하나 들고 돌아왔다. 그냥 밖에 나가 눈을 보고 싶은 거지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음…….”

    “스토크 가자.”

    실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한때 집이자 고향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던. 사월의 입술이 멍청히 벌어지고 연약한 숨만 흐른다. 재킷을 입은 사월의 목에 목도리를 두르는 손길은 꼼꼼했다.

    “장비 같은 건 내가 잘 몰라서. 사월 사장이 보고 대충 추려 줘. 새로 다 사도 괜찮은 거면 버려도 되고.”

    “…….”

    “안 그래도 마지막일지 몰라서, 같이 한번 갈까 했는데. 내 마음 읽었나 봐?”

    “……무슨 소리야?”

    버려도 된다니, 마지막이라니? 태연한 원재의 말 사이사이에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끼어 있었다.

    “난 사월 사장이 깡패 새끼들 득실대는 뒷골목 말고, 햇빛 잘 드는 데로 갔으면 좋겠어. 네임 작업처럼 위험 부담 있는 건 안 해도 되고, 힘들지 않게 직원도 두고.”

    목도리를 얌전히 두르고 차분하게 매무새를 정리한다. 이미 단정한데도 손길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목도리 밑단을 만지작댄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 조심스럽게 닿는다.

    “어때?”

    “……그랬으면 좋겠어?”

    “응.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할게. 사월 사장은 그냥 가져 주기만 하면 돼.”

    물론 사월 사장이 싫다고 하면 굳이 억지로 옮길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사월이 제 울타리 안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꼴을 봐야 마음이 좀 놓일 듯싶었다. 열을 해 줬어도 백을 못 해 줘서 안달 난 상태니까.

    “그럼 그렇게 하자.”

    의외로 대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평소처럼 감흥 없는 하얀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귓불이 살짝 연한 분홍빛을 띠는 게 보였다.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

    참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원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사월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자신을 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랫배가 저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거 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네.”

    원재는 사월의 입가에 입을 작게 맞추고 몸을 물렸다.

    물론 사월이라고 스토크에 미련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넘친다고 봐야 하지. 삶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고, 가족 같던 김 사장의 흔적도 아직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또 스토크 안에 놓인 것들은 전부 손에 익은 것들이니까.

    그럼에도 옮기겠다고 기꺼이 대답을 한 까닭은 하나였다. 원재에게 모든 걸 맞추겠다는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남은 모든 삶을 원재 하나만 믿고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

    반나절 늦게 시작한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바로 어제 비운 것처럼 깨끗한 스토크를 찬찬히 둘러보고, 사용할 수 있는 머신과 니들 같은 것들을 따로 챙겼다. 김 사장의 손때가 묻은 물건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다.

    김 사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고 하니, 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원재와 함께 새 출발을 시작한다는 게 사월은 나쁘지 않았다.

    반은 들뜨고 또 절반은 헛헛한 하루가 지나갔다. 여느 연인의 하루 끝처럼 둘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서로의 체온을 안고 있었다. 조명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창 너머로 부드러운 빛줄기가 새어 들어온다.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하나의 그림자를 이루고 있었다. 작은 체격은 아니지만, 사월은 원재의 품에 꼭 맞았다.

    “가게에 직원도 하나 붙여 줄게.”

    “됐어. 계속 혼자 했는데, 뭘.”

    “싫어. 손님 많아서 사월 사장이 나 거들떠볼 시간도 없으면 어떡해. 가게 못 비운다고 나 안 만나 줄지도 모르잖아.”

    웃음기 없는 목소리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월은 힘없이 풀리는 입꼬리를 어둠 속에 감추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덧붙이는 일은 그만두었다. 그래도 뭐, 괜한 걱정치고는 나쁘지는 않네.

    “……마음대로 해.”

    “사월 사장 일은 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러든지.”

    대답에는 웃음이 섞였다.

    “사월 사장도 내 일에 막 참견해. 출근하지 말라고 매달리고, 집에서 일하지 말라고 떼쓰고. 최 비서랑 얘기하지 말라고 화내고. 그렇게 해.”

    마음대로 하는 거랑 그렇게 떼쓰는 건 결이 다르지 않나. 사월은 곰곰이 생각하다 어딘가 원재에게 휘말리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출근하고 일 많이 해도 돼.”

    “왜.”

    “그런 건 신경 안 써……. 대신 확신을 줘. 장난처럼 하는 말 말고.”

    “…….”

    “이게 진짜 내 네임인지.”

    원재의 허리에 편하게 늘어져 있던 사월의 손이 옆구리를 가볍게 틀어쥔다. 닿는 순간 찌릿한 감각을 느낀다.

    하루 종일 애써 잊으려고 해도 계속 신경 쓰였다. 정말 원재가 자신의 부모를 찾은 거라면……. 한 번도 염두에 둔 적 없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정확히는 주워 온 달을 따다 붙인 이름 말고, 진짜 이름에 대해서. 그리하여 원재의 네임이 정말 자신이 맞는지. 그 확신이 듣고 싶단 소리였다.

    “네가 우주였대.”

    “……우주.”

    “지금 나처럼. 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어.”

    ‘있다’가 아닌 ‘있었다’. 사월은 그 미묘한 차이를 읽었다. 부모라는 존재가 이미 세상에 없어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 허면 왜 그랬을까? 우주로 여겼던 아이를 왜 차디찬 뒷골목에…….

    “확신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네 이름 맞아.”

    “…….”

    사월은 외면을 택한다. 누군가의 우주였다는 것. 그 사실만 명확하면 됐다. 뒤따라 붙는 들추고 싶지 않은 서글픈 사실들은 뒤로 미룬다. 사월의 손은 의식적으로 네임 부근을 느릿하게 지분댔다.

    원재는 팔을 길게 뻗어 사월을 완전히 끌어안았다. 이불에 덮인 마른 몸을 일정하게 두드린다. 생각에 잠긴 건지, 사월은 다정한 손길을 가만히 받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러고 있자니 처음으로 밤을 보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사월은 발톱을 세우고 원재 마음에 상처를 내기 급급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경계를 뚜렷이 그으면서.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

    “……영영 안 오는 것도 아닌데, 뭐.”

    이제는 원재에게 믿음을 주는 법도 알게 됐다. 어차피 돌아올 건데. 사월의 말은 그 하나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원재는 체온이 높아 뜨끈한 몸 곳곳을 느릿하게 쓸었다. 길이 든 고양이처럼 가만히 예쁨을 받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명치 아래가 울렁이기 시작한다.

    “그치. 곧 또 올 테니까.”

    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말없이 체온을 나눈다. 엇갈린 호흡이 차츰 박자를 맞추어 가는 사이. 수마는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

    원재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겠다는 사월을 끝끝내 말렸다. 기어이 횟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공판이 또 있다고 언뜻 최 비서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원재는 느긋했다.

    “내일 올게.”

    그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다. 사월은 벌써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재가 돌아간 그 순간부터. 보지도 않던 핸드폰을 틈틈이 확인하고, 초조한 사람처럼 괜히 횟집 주변을 돌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괜히 짐을 정리했다. 곧 주인이 돌아올지도 모르니, 미리 해 두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합리화를 하면서.

    반나절을 의미 없이 보냈다. 아니, 온통 원재를 떠올리고 기다렸으니. 원재에겐 더없이 유의미한 시간이겠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가게에 앉았을 때였다. 틀어 놓은 뉴스에서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공무원 청탁 의혹, 공금 횡령, 약물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던 성탁 건설 성 회장은 2심에서도 징역 8년 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성 회장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급성 심장 질환 소견서를 제출하고 불출석한 가운데, 변호인은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있지만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 대상으로 판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탁 건설 성 회장. 가게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 얼굴이 떠오른다. 묘하게 원재와 닮은 외모에 지긋한 나이에도 건장한 풍채를 가진 남자. 차갑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착각이 일었다.

    [세 번째 공판은 오는 20일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꼭 저런 것들은 가만히 있다가 재판 때만 되면 아프다지.”

    “약아서 그렇지, 약아서. 가진 것들이 더해.”

    아주머니가 혀를 쯧쯧 찬다. 저만치 텔레비전을 정면으로 두고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꽤 큰 소리를 냈다.

    “사월이 어디 가?”

    “바람 좀 쐬러.”

    “감기 걸려. 목도리 하구 가.”

    “그러니까. 날이 갑자기 추워졌어, 또.”

    사월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카운터 의자에 걸어 둔 목도리를 집어 들었다. 원재의 체향이 남아 있는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이것만으로 어떤 추위도 이길 수 있을 듯했다. 멀리 있어도, 원재의 품에 안긴 듯 포근해졌다.

    “걱정되네…….”

    공판이 막 끝났으니, 정신이 없겠지? 바쁘지 않았다면 먼저 연락을 했을 텐데. 사월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원재가 차를 세우던 곳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날이 추워 그런지 오고가는 차도 적었다. 큰길에서 이어지는 골목으로 차머리만 보이면 사월은 고개를 빼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일 온다고는 했는데……. 원재는 했던 말을 어긴 적이 없다. 분명 약속했으니 내일 오리란 걸 알지만, 그래도 혹시 찾아오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코끝이 차가워질 만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월은 얼어붙은 손을 비벼 녹였다. 핸드폰은 여전히 잠잠했고, 먼저 연락을 하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날. 원재도 누군가의 체온이 필요하지 않을까? 늘 보듬고 위로하기만 하던 원재에게, 자신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지 않을까.

    사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도 오래 앉아 있던 나머지 일어서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이마를 짚고 겨우 중심을 잡고서 길을 가로질렀다. 터벅터벅 걷던 걸음에 조금씩 속도가 붙어 거의 뛰다시피 했다.

    보고 싶다. 위로해 주고 싶다. 같이 있어 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 피어오르자 당장 원재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게를 크게 빙 돌아 뒷문까지 가기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벌컥. 가게 문을 거칠게 열었다. 슬슬 저녁 장사 준비를 하려던 참인지, 테이블 위를 다시 닦아 내던 아주머니 둘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놀래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런 낯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반 박자 늦게 입에서 나왔다.

    “아냐, 아무것도.”

    순식간에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월을 보며, 두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월은 대충 싸 놓았던 짐을 힐끔 내려다보곤 그냥 지갑만 챙겨 들었다. 옷은 거기에도 충분했고, 지금 따로 챙길 만큼 급한 것도 없으니. 손에 지갑과 핸드폰만 달랑 들고 다시 신발을 구겨 신었다. 그 다급한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가 물었다.

    “사월이 어디 가? 오늘 아저씨 늦는대서 저녁 우리끼리 먹어야 하는데.”

    “사월 총각 내가 맛난 거 사 줄게.”

    “두 분이서 맛있게 먹어. 난 서울 좀 갔다 올게.”

    “서울? 지금?”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행주를 내려놓고 손을 털었다. 본격적으로 사월의 행적지를 캐내려는 모습 같았다. 사월은 머릿속으로 서울 가는 버스 시간표를 떠올렸다.

    지금 가면 탈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 애초에 여기에 도망쳐 올 때는 여러 곳을 거쳐 왔기 때문에 버스 시간표 따위를 알 리가 만무했다.

    “이모, 여기서 서울 가는 버스…….”

    일하는 이모는 종종 서울 동생네 집을 오고갔다. 늘 고속버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사월이 질문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속보입니다. 오늘 낮 건강상의 문제로 공판에 불출석했던 성 회장이 극단적 시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 회장은 최근 약물 중독 증상을 보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현재 병원에 이송됐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꽤 긴박한 음성으로 전하는 말이었다. 남자 앵커는 감정이 절제된 음성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월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성 회장이 걱정돼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이고, 약을 얼마나 해 댔으면 저렇게 쉽게…….”

    “아까 그 양반이잖어. 가진 거 잃을 생각에 그랬나. 쯧.”

    “그래도 죽는 건 아니지.”

    아니. 같은 뉴스를 듣고 있을 원재 때문에.

    발밑으로 떨어진 심장이 빠르게 팔딱댄다. 아, 어떡하지. 하루만 더 있다 가라는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아니, 원재를 찾아가겠단 생각을 조금 더 빨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매몰차게 돌아왔던 십 수 시간 전의 스스로를 원망했다.

    사월은 손끝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파르르. 잘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켰다. 통화 목록 가장 위에 있는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내내 사월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손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듣고 싶은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가 않는다.

    이럴 때 보통의 사람처럼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이 원망스러워진다. 버스 시간표 하나 모르고, 면허 하나 따지 않고, 살갑게 곁에 있어 주지 않은 것까지. 전부 후회된다.

    “서울 가는 차, 몇 시간 간격이야?”

    안절부절못하던 사월은 아까 채 끝맺지 못한 말을 이었다. 불쑥 건네지는 질문에 아주머니가 멀뚱히 눈을 깜빡인다.

    “으응, 그게……. 오후엔 4시랑, 그…… 7시? 6시 40분인가?”

    4시는 애저녁에 지났고, 그 뒤는 기다리기엔 너무 늦는다. 사월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사고를 억지로 굴렸다. 그러다 문득, 횟집 부부가 만취된 손님을 태워 보낼 때 콜택시를 불러 주었던 게 떠올랐다.

    “서, 서울 가는 택시 좀. 불러 줄 수 있어?”

    “뭔 소리야? 택시 타고 서울을 간다고?”

    “버스 놔두고 왜? 사월 총각, 그럼 돈 이십은 족히 나와!”

    사월은 허둥지둥 카운터를 헤집었다. 여기 어디에 콜택시 명함을 넣어 두었던 거 같은데……. 좀처럼 당황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월이 더 익숙했던 아주머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아, 아는데…….”

    지금 혼자 둘 수가 없어서 그래. 사월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얗게 질린 입술이 잇새에서 빠져나오자 새빨갛게 피가 차올랐다.

    “잠깐, 여기 어디에 있는데.”

    무슨 일이길래 하얗게 질려서 택시를 찾는 거지. 이럴 때 애 아빠라도 있으면 태워 보내는 건데. 하필이면 오후 작업 중이니……. 의아함 반 놀람 반으로 얼떨떨한 아주머니는 사월이 찾는 명함을 대신 찾아 꺼내 줬다.

    “장거리 뛰는 곳이긴 한데, 서울까진 잘 모르겠고. 물어볼게.”

    “총각, 저기 안 되면 내가 아는 곳도 있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서두르지 말구 좀 앉어 봐.”

    그냥 이상한 치기로 넘기기엔 사월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두 아주머니는 사월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노력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이었지만 말이다.

    어떤 정신으로 택시를 탄 건지도 모르겠다.

    부재중 전화가 찍혔을 텐데도, 회신은 오지 않는다. 핸드폰을 틀어쥐고 온 신경을 쏟았다. 사월은 막 고속도로로 진입한 택시 밖을 바라본다. 초조한 시선이 자꾸만 시계를 확인했다.

    “18878…….”

    엄지는 잇새에 짓눌려 온통 붉어진 뒤였다.

    “18878, 18878.”

    정신이 없어 원재의 집 비밀번호를 잊을까 봐, 사월은 연신 번호를 읊조려야 했다.

    ***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늘 온기가 느껴지던 공간에선 낯선 서늘함마저 전해졌다. 여전히 원재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사월은 초조한 기색으로 현관문을 힐끔댔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자정이 훌쩍 넘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성 회장은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금단 증상이 있음에도 적절한 치료를 거부한 것이 큰 원일 거라고 했다.

    뉴스에선 권력을 사이에 둔 부자의 법적 공방과 강압적 수사에 대한 비난이나, 피기소자 관리에 대한 허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도 원재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다.

    “어디 있는 거야.”

    사월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걱정이 한계치를 넘어서자 화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찾으러 나설 수도 없었다.

    원재가 어디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고, 집을 제외하고 다른 곳을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주 가는 곳도 일을 하는 곳도. 아는 장소라곤 겨우 원재가 사장으로 있던 나이트. 거기에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사월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은 손에 꽉 쥔 채였다. 거실을 가로지르고 현관에 다다랐을 때,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에서 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삑, 삐삑, 삐―.

    번호를 계속 틀리는지, 긴 음이 연신 울린다. 주저하던 사월은 문을 열어젖혔다.

    “……어?”

    “…….”

    술에 취해 잔뜩 헝클어진 원재였다. 셔츠 단추도 반쯤은 풀려 있고, 정갈하게 넘기던 머리도 흐트러진 상태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현관문 부근에 헛손질을 하며 기댔다.

    사월이다. 원재가 실없이 웃음을 흘리며 허공에 손을 허우적댔다. 손끝에 체온이 닿지 않자, 미간을 작게 찌푸린다.

    “아. 또 아닌가.”

    “…….”

    “아닌데, 어디 안 갔는데…….”

    사월은 가슴 한가운데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숨이 목구멍에 턱 걸려 멈춘 느낌. 비틀대면서도 사월에게 닿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더없이 약해 보였다. 가까이 오자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뭘 이렇게 많이 마셨어.”

    허공을 가르는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끌었다. 원재가 그제야 두 팔을 뻗어 체온을 허겁지겁 당겨 안는다. 알싸한 술 냄새가 풍기는 목덜미에 얼굴을 기댔다.

    “진짜 사월이네.”

    “하아…….”

    “왜 여기 있어? 데리러 갈 건데, 내가. 내일…….”

    원재의 손이 사월을 옭아맨다. 현관의 불이 꺼졌다가, 원재가 비틀거리자 다시 빛을 밝힌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찬바람이 들어오는 현관에 서 있었다.

    “뉴스 봤어? 그래서 왔어?”

    원재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일 때마다 옷이 작게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원재가 바람 빠지는 듯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빈틈없이 맞닿은 몸을 떨어트리고 양 팔뚝을 약하게 쥔다.

    “좋네……. 사월이가 나 걱정도 해 주고.”

    술에 절어 비틀대는 손이 사월의 뺨에 감긴다. 원재가 상체를 기울인다. 가볍게 쥐고 있는 사월의 얼굴과 가깝게 마주한다. 코가 맞닿으며 끝이 슬쩍 뭉그러진다.

    낯간지러운 스킨십에도 사월은 가만히 원재의 셔츠 자락만 쥐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원재가 주저앉을 것같이 불안했다.

    “……들어가자.”

    건강한 몸이 술에 지배되어 휘청대니 사월이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간신히 원재의 몸을 지탱해 거실을 가로질렀다.

    “씻고 올게. 나한테 술 냄새가 너무 나.”

    말끝에는 실없는 웃음이 걸린다.

    “술주정하는 거 싫댔잖아……. 술 냄새 풍기는 것도.”

    원재가 술을 먹고 작업실을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마 당시에 했던 이야기를 말하는 듯싶다. 무작정 밀고 들어오니까 싫다고 했지. 사월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원재가 비틀대며 욕실 문을 여는 것까지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와줘?”

    원재는 고개를 젓는다.

    “자면 안 돼. 나 씻고 올게.”

    문이 닫히고도 사월은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매섭게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문 너머에서 원재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월 역시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물소리는 이제야 잦아들었다. 한참 뒤에, 물기 남은 얼굴을 한 원재가 나왔다. 사월이 몸을 일으켰다.

    “정말 안 자고 있네.”

    “……기다리라며.”

    “내가 기다리라면 기다리는 거야?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는 거야?”

    둘 사이에는 한참의 거리가 존재했다. 두 사람은 못이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응.”

    “……좋네.”

    괜찮은 거냐 물어야 할까. 당연히 괜찮지 않을 텐데. 그럼, 장례식장엔 안 가 봐도 되냐고 물어야 할까. 그런 말을 주제넘게 건네도 되는 건가.

    사월은 주저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라는 걸 맺어 본 적이 없으니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옳을지. 어떤 문장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럼 나 재워 줘.”

    “……알겠어.”

    둘은 그제야 움직였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침대에 몸을 바짝 맞대고 누웠다. 빈틈없이 맞닿아 서로의 심장이 뛰는 감각마저 온전히 전해지는 거리. 사월은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어 그냥 원재를 끌어안는 것으로 대신했다.

    “죽고 싶게 만들어 놓곤, 잘못이 없대. 아무 책임이 없대.”

    원재가 말을 할 때마다 가슴팍에 옅은 진동이 느껴진다.

    “끝까지 인정 못 한다는 뜻이야, 그건.”

    낮은 목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가른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새벽이지만, 유독 두 사람에게는 가혹했다.

    “형이랑 어머니…… 억울해서 어떡하지.”

    사월은 허망하게 원재의 분노를 지켜봤다. 원재를 잠 못 들게 했던 형의 환영. 거기엔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음이 분명했다. 성 회장은 분명 원재에게 그러했듯, 형의 숨통을 조이고 옭아매고 고립시켰을 거라 감히 추측했다. 오로지 성공, 그 하나를 위해.

    “꼭 사과받게 해 주고 싶었는데…….”

    “…….”

    원망도 소유한 것에 대해 생기는 감정이다. 그게 사월과 원재의 차이였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던 원재는, 믿음과 신뢰를 배반한 대상에게 치를 떨며 분노한다. 그게 전무했던 사월은 당연히 부모의 행방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고.

    “그렇게 죽냐,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때론 이기적인 선택이다. 성 회장은 마지막까지 원재에게 상처와 분노를 남기고 이기적으로 떠나 버렸다.

    “이제 다 떠났어.”

    “…….”

    성 회장의 죽음으로 원재는 외로움과 절망까지 넘겨받았다.

    “다 떠나고 나한테 남은 건 너밖에 없어.”

    “…….”

    “사월아, 너밖에…….”

    술 냄새에 절은 말들은 점점 잦아든다. 품에 안긴 사월은 팔만 겨우 뻗어 원재의 등을 쓸었다. 토닥토닥. 일정한 손길에 원재의 뒤척임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원재가 그러했듯, 사월 또한 그의 밤을 지켜 줄 생각이었다.

    ***

    눈을 뜨자마자 원재가 한 일은 핸드폰을 끄는 것이었다. 비로소 연신 진동을 울리던 핸드폰이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텔레비전의 전원도 뽑아 버렸다. 바깥소식과 철저히 단절된 요새를 만드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을 켜면 어쩌나 내심 긴장했던 사월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대신 원재는 온 정신과 신경을 사월에게 쏟았다. 너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절한 고백처럼, 세상에 사월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굴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임에도 사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손이든 입술이든 체온을 맞붙여야 했다. 원재의 불안을 알고 있는 사월은 스스로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며칠째 그렇게 생활했다.

    ―연락이 안 돼서 뭔 일 난 줄 알았어. 그렇게 급하게 나가곤 오지도 않구…….

    “정신이 좀 없어서 그랬어. 미안.”

    그래서 틈이 나지 않았던 것뿐이다. 원재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침대를 벗어나 겨우 횟집에 연락을 했다. 그렇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뛰쳐나왔으니 걱정할 만도 했다. 내내 원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핸드폰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부재중 전화가 이렇게나 쌓인 것도 방금 알았다.

    ―그래서 일은 잘 해결됐고?

    “……대충은.”

    사월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왔던 총각……, 그 총각이 일이야?

    횟집 부부는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탁 건설의 아들이 원재라는 걸 아직 몰랐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 따위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응.”

    곧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재의 곁에 완전히 머무는 시기는 지금이어야 한다고. 횟집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모두 가져와야 했다. ‘같이 있을걸’이라는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하다.

    어디든 이제 자신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을 원재가 알아야 했다. 그쪽에 더 이상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아야, 원재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 낼 수 있을 듯싶었다.

    “곧 갈게.”

    “누구 마음대로?”

    사월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굳은 표정의 원재가 열린 문틈에 서 있었다. 발코니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원재가 팔을 뻗어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아직도 초가 흐르고 있는 전화를 무작정 끊어 버린다.

    “어딜 간다는 거야.”

    원재의 눈에 불안함이 스친다. 이제 부채감을 느낄 곳도, 분노를 쏟을 곳도 없어졌다. 원재의 모든 감정은 사월에게 쏟아진다. 핸드폰을 움켜쥐는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진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도 없이 사월은 원재의 품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날뛰고 있는 게 가슴팍으로 전해졌다. 엄마를 잃을까 겁에 질려 매달리는 아이처럼 사월의 온몸을 절박하게 옭아맨다.

    “내가 걱정된다며. 가지 말라고 하면 옆에 있겠다고 했잖아.”

    “잠, 잠깐.”

    몸을 포박하듯 끌어안는 손길.

    “왜 또 나 두고 갈 생각부터 해, 왜…….”

    “…….”

    사월은 원재에게서 도망쳤던 일을 후회했다. 한 번 어긋났던 신뢰는 아무리 회복하려 해도, 고스란히 흉터로 남아 있었다. 괜찮은 척을 해 왔어도 불안한 거였다, 사실은.

    “이제 가면 완전히 올 거야. 그러려고 가는 거야.”

    “…….”

    “여기로 돌아올 거야. 네가 가라고 할 때까지, 계속 여기…….”

    원재가 숨을 들이켰다. 답답한 가슴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차자 조금씩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까는 품에 마땅히 느껴져야 할 온기가 사라진 바람에 잠에서 깼다. 덜컥 두려움이 엄습했고, 사월을 찾아 뛰어나왔다. 발코니 한구석에서 통화하던 사월을 보고는 발끝까지 심장이 쿵 떨어졌다. ‘곧 갈게’. 그 말에는 피가 차갑게 굳는 기분마저 느꼈었다.

    “어디 안 가고 옆에 있을게.”

    자신을 안정시키려 애쓰는 목소리. 콱 틀어막혔던 숨이 트였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뱉고는 온몸에 들어갔던 힘을 풀었다.

    등허리 쪽을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길에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독하게 버텨 왔던 자신이 우습게도 사월 때문에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지 마. 아무 데도.”

    사월과 떨어지면 곧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원재는 절박하게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원망할 대상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만큼 허탈한 일이 있을까. 길을 잃은 분노와 원망은 작은 요새에 웅크린 채로 삭여졌다. 때때로 비틀어진 감정이 사월에게 닿았다. 집착, 구속 그딴 음울한 것들로.

    그럴 때면 사월은 말없이 체온을 나눠 주었다. 원재는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잃고 이젠 정말 사월밖에 없다고.

    “뭔 전화를 이렇게…….”

    원재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며칠 만에 켠 전화는 쉴 새 없이 진동을 울리며 지난 기록을 상기시켜 줬다.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은 세 자리 수를 넘어갔다. 그중 반은 최 비서인 듯했다. 전화를 켠 목적도 최 비서였으니,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에 주저함은 없었다.

    ―야, 성원재 미친놈아. 오늘까지 연락 안 되면 집에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용케도 전화하네, 이게.

    “형, 미안해. 미안.”

    전화 너머로 씩씩대는 호흡이 들린다. 그냥 기분이 영 이상했다. 사월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곁에는 최 비서도 함께였다.

    모두가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해도 늘 옆에서 같이 발을 맞춰 나갔던. 그 둘이면 됐지, 다 가진 거지, 뭐. 성원재 헛산 건 아니네. 원재는 얼굴을 쓸어 올렸다.

    ―미친놈…….

    “별일 없었지?”

    ―……장례식은 다 끝났어. 기자들 막 떼로 몰려와서 그런지 웬일로 다른 쪽 애들도 조용하더라. 기회보고 쑤시러 와도 모자랐을 텐데.

    “그러게.”

    원재는 발코니 문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를 돌려 불을 붙였다. 후우. 숨을 내쉬며 연기를 함께 뱉어 냈다.

    ―성탁에 붙었던 애들이 마지막까지 알아서 잘 모셨어. 장지는…….

    “형.”

    깊게 필터를 빠는 사이 정적이 흐른다. 최 비서는 참을성 있게 원재를 기다렸다.

    “상속 포기 준비하려고.”

    어머니와 형을 죽게 만든 아버지의 잔여물. 성탁은 원재에게 딱 그 정도였다. 아버지를 정당하게 내쫓았다면 고스란히 원재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을 것들.

    원재는 맨 아래 괸 돌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갈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수도 없게 성탁을 바꾸고 싶었다. 형과 어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지만 그것도 성 회장이 살아 있을 때 얘기일 뿐. 더는 필요가 없다. 원재의 입술 사이로 쓰디쓴 연기가 흐트러진다.

    ―……그래. 어차피 곧 주주 총회 소집했어야 했으니까.

    최 비서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니, 함께한 시간이 많았기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걸지 몰랐다.

    “회사 좀 잘 맡아 줘. 애들이 나보다 형을 더 잘 따르잖아. 그래도 얼추 굴러가는 거 일머리는 잡았을 테니까, 다들 잘 해낼 거고…….”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원재는 모든 일을 손에서 놓고 싶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건 모두 잘라 내고 싶었다. 상속을 포기하고 모든 일에서 물러나 그냥 사월의 곁에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나.

    권력, 지위, 명예 그딴 게 다 뭐라고 골치 아프게 진을 빼고 그래야 하나. 사월이 끼고 살면서 물고 빨기도 부족한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 며칠 내내 사월과 붙어살면서는 점점 더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던 참이었다.

    ―야, 아니……. 그래. 내가 회사일 맡으면 첫 번째 할 일은 그거야. 성원재 대가리로 앉혀서 굴리기. 어딜 덤터기를 씌워, 월급쟁이가 체질인 사람한테.

    원재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최 비서는 늘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았다. 딱 적당한 무게로 원재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짐덩이 좀 가져가 주면 덧나?”

    ―가게 계약하느라 바빠 죽겠구만, 뭔 소리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목이 좋고, 너무 어둡지 않고, 적당히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원재는 사월이 새 출발할 곳을 몇 군데 추려 뒀었다. 언제쯤 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말해 줬던 것 같은데. 성 회장의 일로 정신이 없긴 없었는지, 그게 벌써 코앞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월 사장이랑 한번 같이 나와. 필요한 게 뭔지 알아야 준비를 해 주지.

    “알겠어, 형.”

    ―그럼 사장님 무사하신 거 확인했으니, 월급쟁이는 일이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말꼬리를 늘이던 최 비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종료된 액정를 보고 원재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고맙다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지잉. 곧장 진동이 울린다. 가장 위에 있는 메시지를 열었다.

    고마우면 휴가 주세요, 사장님.

    연기를 뱉는 입술 끝이 작게 올라가 있다. 가진 것의 절반은 사월에게 주고, 남은 반은 최 비서 몫으로 둬야겠네. 이번엔 복수 대신 또 다른 목표를 잡았다. 다시 일어서야 할 이유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문자 하나를 써서 보낸 원재가 담배를 지져 껐다. 절망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길어져서는 안 됐다.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포근한 향기를 풍기는 셔츠를 꺼내 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사월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직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내내 맞춰 주느라 피곤했던 듯싶다.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원재가 침대로 향했다. 이불에 푹 쌓여 눈을 감고 있는 사월의 얼굴이 보였다. 뜨겁지 않은 겨울 햇빛을 받은 얼굴은 투명하게 빛났다. 잠시간 홀린 듯 그 모습을 바라본다.

    언제 넘어올까 전전긍긍하며 공을 들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제 품에 쉽게 안기고 손길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끼리 만났으니, 이제 서로가 전부일 테다. 원재는 지금 이 기분을 영영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더 잘 거야?”

    엎드려서 자는 사월의 머리칼을 살살 넘겨 주는 손길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사월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수마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순간인 듯했다.

    “갈 곳 있는데. 나 혼자 갔다 올까?”

    그 말에 사월의 눈꺼풀이 밀려 올라갔다. 옅은 쌍꺼풀 자국이 짙게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어디……. 어디 가.”

    사월은 잠결에도 손을 뻗는다. 이불 위를 더듬대다 결국 원재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마저도 자다 깬 상태라 힘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사월이 데려오게.”

    영영 오겠다고 했으니, 남은 흔적을 모조리 가져올 차례였다.

    “……뭐라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월은 부스스한 채로 몸을 일으켰다. 잠에 취한 듯 상체가 팔랑팔랑 흔들린다.

    “진짜 아들한테 방 빼 줘야지.”

    “진짜 아들?”

    침대에서 발을 내리던 사월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이제야 말을 이해한 것처럼. 휙, 바람 소리가 들릴 듯이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어느새 잠기운이 날아간 얼굴이었다.

    “데려왔어? 언제?”

    원재가 손목을 털어 시계를 돌렸다. 시침을 보며 대충 시간을 가늠했다.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은데. 사월이가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서 달라.”

    그 말에 곧장 침대에서 일어섰다. 횟집 부부의 진짜 아들이 오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혹시라도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괜히 제 부모한테, ‘왜 내 방을 남에게 주었느냐’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

    서둘러 욕실로 걸어가는 사월과 달리 원재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

    횟집 앞에 차를 세우는 동안, 가게 안에서 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먼저 달려 나왔다.

    “연락도 없이. 오는 거 알았음 식사라도 준비했을 텐데.”

    “아…….”

    이제 앞으로는 아주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먹을 일이 없을 텐데.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연락을 하고 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괜찮아, 안 먹어도.”

    “그래도……. 암튼 들어가자, 들어와요.”

    반년이나 드나들던 가게에 발을 내디뎠다. 사월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시간의 흔적이 남은 가게를 찬찬히 둘러봤다. 가게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사월이 이상한지,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댔다.

    “얼른 갔다 와.”

    뒤에 바짝 붙은 원재가 고개를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엉덩이를 툭 치는 걸로도 모자라 슬쩍 움켜쥐는 손길. 사월이 뒤를 돌곤 원재를 흘겼다. 내가 뭘. 입을 벙긋댄 원재는 느긋한 움직임으로 테이블에 가 앉았다.

    사월은 익숙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슥 둘러봐도 별로 챙길 것은 없었다. 애초에 올 때 양손은 가벼웠으니.

    그간 지내면서 샀던 생필품들과 옷가지를 대충 챙겼다. 그리고 끄트머리가 살짝 헝클어진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자신의 흔적을 쏙 빼니, 처음 왔을 때와 똑같아 보였다.

    “이렇게 쉽네…….”

    어느 세월에 원재를 잊고, 횟집을 떠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별은 짐작보다 빨랐다. 미련이 남기 전에 등을 돌려 방을 나왔다.

    이제 횟집을 떠나면 사월은 횟집 부부를 평생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마주하면 아들을 기다리던 초조했던 그 시간을, 애타던 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될까 봐. 횟집 부부가 다시 힘든 건 싫었으니까.

    “사월이 어디 가니? 그게 다…….”

    아주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사월의 손을 확인했다. 큼직한 가방을 들고 있는 사월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가게 문이 열린다. 사월이 먼저 시선을 돌려 문을 확인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제 또래 남자였다. 그 역시 손에 짐 가방 하나를 든 채였다. 사월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반년 동안 머물었던 방의 진짜 주인이라는 걸.

    “엄마.”

    “…….”

    멈칫했던 아주머니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정적이 흐른다.

    “엄마.”

    “……상……현이? 상현이니?”

    남자가 캡 모자를 벗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넘기고, 고개를 들었다. 거뭇하게 수염이 나고 눈 아래가 퀭했다. 얼굴 곳곳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도 보였다.

    “사, 상현아!”

    아주머니가 곧장 달려갔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사월은 완벽한 타인이 되어 모자의 상봉을 지켜본다.

    어느새 곁에 선 원재가 손에 든 짐을 가져갔다. 사월이 시선을 위로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원재가 짐을 들지 않은 손으로 사월의 눈가를 느릿하게 쓸었다. 손이 떨어져 나가자 축축하게 젖은 손끝이 보였다. 그제야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월은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모자를 지나쳐 곧장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얼굴 위로 훅 끼쳤다. 눈물이 지나간 길은 유독 시렸다. 등 뒤로 기척이 와닿았다.

    “가자, 이제.”

    “인사 안 해도 되겠어?”

    사월은 눈을 감고 등 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거면 됐다. 이거면 따로 잘 지내란 인사를 하지 않아도 잘 지낼 거였다.

    “우리…… 집에 가자, 그냥.”

    뒤를 돌아 원재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는 기꺼이 팔을 뻗어 사월을 감싸 안았다.

    사월은 온기에 더 깊게 파고들었다. 자신에게도 돌아갈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눈물겨운 일일 줄은 몰랐다.

    ***

    사월의 새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최대한 깔끔한 분위기를 풍기게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그사이 준비할 건 작업할 도구들과 새로운 직원이었다. 최 비서는 사월 앞에 포트폴리오 몇 부를 내려놓았다.

    “이력서 받아서 1차로 대충 추렸어요. 별문제 없을 사람으로다가. 여기서 작업물 보고 괜찮은 사람 있음 날 잡아서 면접 보죠.”

    사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트폴리오를 살폈다. 표정엔 별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느낌이 괜찮은 작업물을 볼 때면 고개를 파묻을 듯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 세 명이 괜찮은데.”

    사월은 포트폴리오 세 부만 따로 빼내 최 비서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나머지 포트폴리오도 착착 모아 한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오케이. 날짜는 언제가 좋아요?”

    최 비서가 물었다. 그러자 사월은 고개를 돌려 원재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한쪽 팔을 괴고 사월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이가 당연하단 듯 대답한다.

    “수요일쯤?”

    최 비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 대신 낮게 중얼댄다.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었다.

    “여기에 물어봤는데 대답이 저쪽에서 나오네.”

    “여기가 저기 거고, 저기가 여기 거야. 대충 받아들여.”

    “……뭐라는 거야.”

    사월이 원재의 팔을 끌어 내린다. 최 비서에게 향했던 눈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연신 만지작댔던 목덜미가 분홍빛인 걸 보니, 아무래도 부끄러운가 보다 싶었다.

    “왜. 맞잖아. 사월이가 내 거고, 내가 사월이 거…….”

    “좀.”

    결국 사월의 손에 입이 틀어막힌다. 넓은 어깨가 들썩이며 웃음을 흘린다.

    “상황 가려 가면서 말해…….”

    이제는 양 뺨까지 붉어졌다. 아, 존나 사랑스럽다 진짜. 원재가 짓궂은 표정으로 혀를 내밀었다. 손바닥에 축축하고 뜨거운 것이 닿자, 사월이 깜짝 놀라며 손을 치웠다.

    “미쳤어, 진짜?”

    “내가 내 거에 침 바르는데 뭐가 잘못됐어?”

    원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손바닥을 움켜쥔 사월이 힐끔 최 비서의 눈치를 살폈다.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던 최 비서는 포트폴리오만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버릴 거 같아서 못 있겠네요.”

    “응. 잘 가, 형.”

    원재는 멀찍이 떨어진 사월을 끌어다 어깨를 감쌌다. 그러곤 가볍게 손을 흔든다. 침이라도 뱉을까, 고민하던 최 비서는 그냥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요일에 봐요, 사월 사장.”

    사월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민망해서 죽을 거 같았다. 둘이 있을 때처럼 구니까 민망하고 부끄럽고……. 얼굴이 다 후끈댔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 진짜 가요.”

    “뭐래, 저 형이.”

    원재가 눈썹을 구기며 벌떡 일어섰다. 최 비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뒤를 따른 원재가 가게 문밖까지 가서 무어라 말을 하는 게 보였다. 사월은 널찍한 테이블 위에 이마를 쿵 찧었다.

    “돌겠네…….”

    민망하고 부끄럽고, 못 견디게 어색했다. 하지만 또 그게 원재라서 싫지는 않은 게 문제였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건지. 사월은 차가운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고 한참이나 열을 식혔다.

    “코 자?”

    “씨발, 또…….”

    또 저런다, 또. 웃음기가 다분한 음성에 사월이 욕을 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마르긴 했어도 키도 크고, 싸가지 없게 생긴 얼굴에 타투까지 여기저기 있는 사람인데. 원재는 얼마 전부터 자꾸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좆같은 단어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못 들은 척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오늘은 또 다른 사람이 듣는 데서까지 그렇게 말을 해 버렸다. 열이 오른 뒷목이 쉽게 가라앉지를 않는다.

    “지금 벗으면 온몸이 다 빨갛겠다, 사월 사장.”

    여유롭게 걸어오는 꼴이 얄미울 법도 한데 전혀 밉지 않았다. 사월은 대답 대신 그냥 몸을 세웠다. 머리를 몇 번 저었다.

    최 비서와 원재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새 머신을 들여서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 만져 볼 요량으로 온 거였다. 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작업대를 향해 걸음을 돌린다.

    원재가 그 앞을 불쑥 막아섰다.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그걸 지금 하기 위해서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사월의 눈빛을 느끼며, 원재가 한 걸음 더 내딛는다. 그러곤 마주선 채로 사월의 양 손목을 잡았다.

    “왜.”

    대답 대신 행동이었다. 원재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입술을 내렸다. 사월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전면이 유리로 된 곳이었다. 누가 작정하고 들여다볼 리는 없지만, 건너편 건물에서 보고자 하면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 확인해 보자. 얼마나 빨간지.”

    속삭이는 말에 사월이 슬쩍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자 원재가 반대편 방향으로 고개를 틀고 다시 거리를 좁혔다. 사월이 다시 한번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원재도 마찬가지로 방향을 틀었다.

    “다 보여…….”

    우물쭈물하는 말에 원재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엽긴.”

    몇 번의 엇갈림 끝, 이윽고 입술이 닿았다. 피했던 것이 무색하게 입술은 쉽게 벌어졌다. 뜨거운 살덩이가 서로의 입 안을 넘나들며 뒤엉켰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질척한 소리만 흘러넘쳤다. 사월의 손목을 틀어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다시는 거리를 벌리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는다.

    키스는 길게 지속되지 못했다. 자꾸 목덜미 사이로 고개를 파묻는 원재 때문이었다. 여기서 뭐 일 치르자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원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달아오르는데, 목덜미를 베어 물고 빨아 올리고 핥아 대니,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픈하고 첫 작업은 나로 해 줘.”

    원재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머신을 정리하는 사월의 옆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지잉. 머신 소리 사이에 원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네임?”

    전에 하다 채 마치지 못한 네임 작업을 떠올렸다. 머신을 끄고, 사월은 거침없이 팔을 뻗어 원재의 셔츠를 끌어 올렸다. 네임 위로 스토크 타투 라인만 잡혀 있는 채였다.

    이걸 원래 계획대로 덮자는 건가……. 내 이름이 맞다면서. 사월이 눈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내 주시하고 있던 시선과 맞닥뜨렸다.

    “응. 네임은 지금처럼 보이게 두고, 주변만.”

    네임 위에 그어진 꽃잎 부분을 채우지 않으면, 우주라는 네임이 충분히 잘 보일 거 같긴 한데. 사월은 원재의 옆구리를 빤히 내려다봤다.

    “알겠어.”

    이러고 있자니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무작정 옷을 끌어 올려 네임을 확인하던 말간 얼굴. 흑백이 대비되듯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잉크에 시선을 빼앗겼었지.

    올려다보던 서늘한 눈에 눈물이 맺히면 얼마나 야할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눈물이 맺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꼴이 됐다.

    원재가 셔츠 자락을 쥐고 있는 사월의 손목을 조심스레 잡았다. 손가락으로 네임 위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지난 반년 내내 손목을 휘감고 있던 아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월이 정말 행복하게 해 줄 거야.”

    “…….”

    “내가 네임인 거 너무 좋아서 못 견디게 해 줄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밀려왔다. 애초부터 그랬다. 아껴 주겠다느니, 예뻐해 주겠다느니. 그런 소리를 건네 온 사람은, 원재가 생애 처음이었다. 허튼 말이 아니라는 듯 원재는 정말 자신을 유리알처럼 손바닥 안에서만 굴렸다.

    비가 와서 잠들지 못하면, 비가 오지 않는 자신의 품 안으로 기꺼이 끌어안았고. 버림받을까 겁에 질려 잠들지 못하면, 모든 두려움을 잊을 때까지 체온을 나누어 주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겁을 내는 자신을 끈기 있게 기다려 주고 또 이내는 다시 보듬어 주었다. 그것만으로 사월은 이미 견딜 수 없었다.

    “이미 그래.”

    너만큼 나 예뻐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 사월은 진심을 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열에 서너 번이었지만.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상상도 못 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야 내 진심을 알아주네?”

    사월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자면, 꼭 부모라도 된 것처럼 뿌듯해졌다. 사월 사장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아까워서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월 사장이 아들이면 이런 짓은 못 하니까.

    “으읍.”

    사월이 앉아 있던 의자를 돌리고, 마른 목덜미를 끌어 당겼다. 거리가 급격히 좁혀지며 입술이 맞닿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뜨거운 살덩이를 옭아맸다. 타액에 미끄러지듯 뒤엉키는 혀를 빨아 댔다.

    혀끝이 맞닿아 뭉그러진 채로 입술이 떨어진다. 고개를 틀어 더 깊게 입술을 삼킨다. 작게 앓는 사월의 신음은 몽땅 원재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번엔 몸을 뒤로 물러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원재는 정신없이 사월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어깨를 바르작대는 움직임에 손은 방향을 틀어 가슴께를 지분대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선 젖꼭지를 엄지로 누르고 비비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 흔들기까지 한다. 사월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곤 원재의 허벅지를 꾹 쥐었다.

    “으읏!”

    정신없이 서로를 탐하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원재가 약하게 신음을 흘렸다. 허벅지를 움켜쥔 손을 힐끔 내려다봤다. 다리 사이는 이미 묵직해졌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원재가 번들대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생각을 끝마쳤는지 숨을 헐떡이는 사월을 끌어다가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그대로 사월의 다리가 벌어졌다. 원재의 단단한 허벅다리 위에 앉게 된 사월이 어깨를 양손으로 짚어 상체를 뒤로 물렸다.

    “아, 안 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뭐가 안 돼.”

    원재는 다시금 사월의 목덜미를 당겼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엉덩이 아래로 불룩 솟은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원재가 엉덩이를 틀어쥐고, 허리를 작게 쳐올리기까지 하니, 아래가 점점 동하기 시작했다.

    “읍.”

    엉덩이를 쥐었던 원재의 손이 천천히 올라오더니 바지 속을 파고든다. 이내 거침없이 골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월이 눈을 크게 뜨며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목덜미를 쥐고 있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으응.”

    혀는 난잡하게 뒤엉키고, 아래엔 원재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푹푹 안을 들쑤시는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 가자, 이내 질척이는 축축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의 매일 관계를 하는 탓에 구멍은 몇 번의 손길로도 쉽게 풀어졌다. 추읍, 끈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을 강하게 빨고 나서야 잡힌 목덜미를 놓아준다.

    사월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미 아래엔 손가락 세 개가 드나들고 있었다. 이젠 밀어낼 기력조차 없어졌다. 사월은 원재의 어깨를 그러쥐고 이마를 기댔다.

    “으읏, 흐응…….”

    원재의 흥분을 돋우기밖에 하지 않는 신음을 내뱉으면서. 비스듬히 고개를 튼 원재는 사월의 귓불에 입술을 묻었다. 뜨겁게 숨을 뱉자, 구멍에 힘이 들어가며 잔뜩 조인다. 안을 들쑤시던 손가락이 내벽을 꾹 누르고 느릿하게 그 위를 지분댔다.

    “아, 읏!”

    허벅지 위에서 움찔대는 바람에 원재의 성기가 점점 더 크기를 키워 갔다. 원재가 손가락을 빼자, 끈적한 액이 길게 따라왔다. 사월을 안아 들고 비닐도 뜯지 않은 작업대 위에 눕혔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하아…….”

    “웃는 것도 예쁜데, 느끼는 얼굴은 씨팔, 더 예뻐.”

    아마 최 비서 형은 평생 모르겠지? 묘한 성취감에 작게 웃음을 흘리며 사월의 옷을 벗겼다. 손길은 다급했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평생 나만 볼 거야.”

    대답 없이 달뜬 얼굴로 올려다보며, 팔을 뻗는다. 아마 평소대로였다면 그리하라고 대답했겠지. 사월의 팔을 끌어당기며 원재는 생각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해가 바뀌었다. 연말 분위기로 떠들썩하던 거리는 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딘가 희망차고 새로웠다. 햇볕마저도 적당히 따사로웠다.

    그럼에도 바람은 매서웠다. 사람들은 몇은 마스크를 끼고 다녔고, 두터운 패딩을 꽁꽁 껴입고 다녔다. 그 사이에 얇은 후드 티 하나 덜렁 입은 사월은 짧아진 필터를 깊게 빨았다.

    손이 차갑게 얼었다. 연기를 뱉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감흥 없이 지켜보던 사월은 이내 담배를 지져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버튼을 눌렀다. 3층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금 작업을 끝냈는지, 지현은 한창 뒷정리 중이었다.

    사월은 곧장 타투 숍 한쪽에 놓인 건식 세면대로 향했다. 물을 틀고, 청포도 향이 나는 폼을 손에 묻혀 꼼꼼하게 닦았다.

    “사월 사장님.”

    사월이 시선을 들자, 거울을 통해 지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까 큰 사장님 왔었어요.”

    “벌써 갔어?”

    물을 끄고 핸드 페이퍼를 뽑아 물기를 닦아 낸다.

    “아뇨. 사장님 밥 아직 안 드셨다니까 먹을 거 사 온다고 나가셨어요.”

    “아.”

    그럼 금방 오겠네. 오늘 일정이 많다고 하더니, 어떻게 또 짬을 냈네. 시계를 보니 2시를 막 넘은 시간이었다. 사월의 눈썹이 작게 구겨졌다.

    밥 안 챙겨 먹은 걸로 또 한소리 하겠네, 따위의 생각을 하며 뒷목을 주무른다. 이제 원재의 하루 일과며 속에 든 생각이며, 보일 반응까지 예측하는 것은 사월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거 작업물 찍은 거요.”

    지현이 핸드폰을 내민다. 방금 전까지 지현이 작업했던 레터링 타투였다. 사월은 소파에 앉아 사진을 확대했다. 첫 바늘이 들어간 부분과 글자 폭이 좁은 부분을 보며 잉크가 뭉쳐 들어가지 않았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지현은 옆에 앉아 같이 화면을 들여다보며 조잘댄다.

    “손님이 가게 이름 예쁘대요. 인테리어도 오지는데 왜 SNS 안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런 거 잘할 줄 몰라서…….”

    사월이 민망한 듯 말끝을 흐렸다. 요즘은 SNS로도 예약을 받고 홍보도 한다던데. 사월의 숍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간판에 가게 번호가 전부였다. 여기까지 용케 손님이 찾아오는 게 사월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제가 계정 팔까요? 가게 거로. 저 찐으로 잘하는데, 막 어그로 끄는 거.”

    찐? 어그로……. 사실 사월은 지현이 하는 말의 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알아들었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이거 작업 깔끔하게 잘했다.”

    “오예, 감사합니다.”

    사월이 건넨 핸드폰을 받아 든 지현은 곧장 데스크로 향했다. 그러곤 그 위에 꽂혀 있는 명함 한 장을 꺼내 창가로 다가갔다.

    “감성 사진 존나 찍어야지.”

    사월은 가만히 지현을 바라봤다. 이제 가게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내내 같은 텐션이다. 말을 할 때면 모든 단어에 음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서, 사월은 지현을 신기하게 관찰했다.

    창가 쪽 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지현은 숍 이름이 써진 벽으로 향한다.

     사월의 봄 

    타투 숍 이름치고 너무 낯간지러운 거 아니냐는 말에도, 원재는 꿋꿋이 밀고 나갔다. 나중엔 사월과 최 비서가 두 손 두 발 다 들 지경이었다.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 효과음이 연이어 몇 번이나 들렸다. 명함을 들었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가. 나름 심오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턱을 괴고 구경했다.

    딸랑.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선다.

    “밥을 왜 자꾸 걸러?”

    눈이 마주치자마자 본론이 훅 들어왔다. 사월이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는 동안, 지현이 벌떡 일어나 대답한다.

    “왜긴요. 손님이 많으니까 그렇죠.”

    가슴팍 부근까지 겨우 오는 아담한 체격의 지현은 원재가 무섭지도 않은지 눈을 똑바로 보며 할 말을 척척 해 댔다. 처음엔 한소리 꺼내는 거 아닐까 조마조마했는데. 원재도 지현을 꽤 귀엽게 보고 있는 것 같아 안심했다. 원재가 픽 웃음을 흘렸다.

    “오지 말라고 내쫓을까? 우리 사월이 밥 먹을 시간 없다고.”

    “으.”

    지현이 오만상을 찡그리자, 원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이 차 나는 막냇동생을 보는 눈빛이었다.

    원재가 고개를 까딱여 지현을 테이블로 불렀다. 원재와 사월은 장난으로라도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두드리는 행동 따위를 하지 않았다. 해서 대부분의 지시는 고갯짓으로 대신했고, 지현은 이제 그것을 꽤 잘 알아들었다.

    셋은 테이블 하나를 두고 나란히 둘러앉았다. 다음 작업까지는 텀이 꽤 있었다. 안 그래도 이쯤 밥을 챙겨 먹고 작업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원재가 홀랑 와 버릴 줄은 몰랐다. 밥을 제때 못 먹은 이유를 구구절절 변명할까 하다, 사월은 그만두었다.

    “큰 사장님, 이거 잘 찍었죠. 제가 사봄 계정 만들어서 홍보하려고요. 이름부터 감성 충만이라 존나 잘 먹힐 거 같아요.”

    방금 전 찍은 사진을 원재에게 보여 준다. 원재는 상체만 기울여 액정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백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는 손길은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잘 찍었네.”

    “그쵸. 근데 사장님 이름 본명이에요? 진짜 예뻐서.”

    그냥 사월에게 4월은 버림받은 달. 그게 전부였다. 이름이 예쁘다느니 하는 소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사월은 짧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월이 이름이야.”

    “그럼 성이 뭐예요? 사월이면, 성이 사 씨?”

    “아니. 그냥 사월.”

    지현이 오오, 짧은 감탄사를 뱉는다. 빨대 포장지를 뜯어 테이크아웃 잔에 꽂으며 질문을 연신 늘어놓는다.

    “이름이랑 사장님이랑 찰떡이야. 근데 이름 무슨 뜻이에요?”

    “4월에 나를 주웠대. 그래서 사월.”

    사월은 커피를 쪽 빨아올리며 대답했다. 늘 이렇게 대답하던 게 익숙하기도 했고, 뭐 틀린 말도 아니니까. 지현의 낯에 당황스러움이 얼핏 스쳐 갔지만 이내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

    “아, 그렇구나. 사연이 있었구나……. 어쩐지. 사장님은 딱 분위기부터 되게 그런 느낌이 있어요. 뭔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눈빛도 그렇고, 뭐. 암튼 전 사장님 진짜 좋아요.”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생각나는 대로 말을 늘어놓는다. 사월이 작게 웃었다. 포장지를 깐 샌드위치를 지현에게 내밀었다.

    “먹기나 해.”

    “큰 사장님 싸움 잘해요?”

    “싸움?”

    원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뭐……. 나쁘지는 않지. 구질구질한 개싸움 말고 그냥 단번에 끝내는 쪽이 더 취향이긴 한데. 피 묻히더라도 깔끔하니까. 왜, 처리할 일 있어?”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지만, 사월은 단번에 알았다. 원재가 지현을 놀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니까. 그렇게 생기셨어.”

    싸움 못하면 ‘사월 사장님 두고 한 판 붙을까요?’ 무거워진 분위기를 뒤엎으려 농담을 꺼낸 게 무색해졌다. 지현은 더 어색해진 상황에 그냥 입을 다물고 샌드위치나 먹기로 했다.

    채소가 씹히는 소리와 커피를 들이켜는 소리만 들린다. 사월은 힐끔 원재를 바라봤다.

    원재는 소파 팔걸이 위에 팔을 걸치고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새 원재의 표정이 어딘가 달라졌다. 이번에도 지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사월은 그 미묘한 차이를 읽었다. 이마를 짚은 검지가 톡톡,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잉.

    때마침 지현의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번호를 확인하고선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손을 탈탈 턴다.

    “헉. 저 잠깐 통화하고 올게요.”

    저번부터 썸을 탄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더니. 그 사람인가? 사월은 빠르게 가게 문밖으로 사라지는 지현의 뒷모습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렇게 대답하지 마.”

    “……뭘?”

    원재가 팔을 뻗어 사월의 입술에 살짝 맺힌 커피를 닦아 냈다. 익숙하게 엄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살짝 빤다.

    “4월에 버려졌다고 대답하지 말라는 소리야.”

    “아 그거.”

    “…….”

    “없는 말도 아니고. 진짜 그 뜻인데, 뭘.”

    사월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그런 걸로 별로 상처받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별 상관없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마주한 원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누가 이름이 왜 사월이냐고 물어보면. 나를 만나서 그렇다고 해, 4월에.”

    사월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원재를 바라봤다.

    나이트 쪽방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 얽혔던 게 4월의 끝자락이었다. 생일도, 가족도, 연인도, 운명도 없이 평생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사월의 앞에 원재가 나타났던 4월의 봄. 그의 말이 맞았다. 4월은 사월이 구원받은 달이었다. 김 사장에게, 또 원재에게.

    그새를 못 참고 마주 닿는 숨결을 느끼며 사월은 입술을 열었다.

    터치업은 기존에 있던 타투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타투이스트의 스타일대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기존 그림 위를 뒤덮어 새로운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커버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월은 언젠가 구질구질한 삶의 모든 흔적을 뒤덮어 새롭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만족한다. 원재를 만나 터치업 과정을 거치듯 되살아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그랬다. 사월은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일 싫었던 질문인데……. 이젠 누가 물어봐 줬으면 좋겠네.”

    대답은 원재의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사월이 익숙하게 팔을 뻗는다. 허공을 배회하는 마른 손목을 잡아챈 원재가, 손을 끌어 옆구리 위에 가져다 댄다.

    손목엔 ‘元材, 원재’. 옆구리엔 스토크 사이에 파묻힌 ‘宇宙, 우주’.

    두 네임이 나란히 겹쳐진다. 마땅히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터치업>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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