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스팅레이(2권) (6/16)
  • Chapter 5. 스팅레이

    “일어나 봐.”

    “…….”

    잠에 취해 늘어진 몸은 뜨끈뜨끈했다. 추울까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 놨더니 뺨이 여태 붉었다. 머리카락을 넘기자 동그란 이마가 드러났다. 원재가 작게 웃으면서 입술을 내렸다. 얇게 주름진 피부로 열기가 전해졌다.

    사월이 뒤척일 기색도 보이지 않자, 단숨에 이불을 걷어 냈다. 반팔 티 하나만 달랑 걸친 사월은 갑작스럽게 찬 공기에 노출됐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원재가 은근한 눈길로 마른 몸을 찬찬히 훑었다. 마지막으로 구겨진 미간을 엄지로 쓸어낸 원재가 사월의 위로 자리 잡았다.

    “무슨 꿈을 꿨길래 이렇게 세웠어?”

    속옷도 입지 않아 발기된 아래가 그대로 노출됐다. 사월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뒤늦게 원재의 커다란 몸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너른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원재의 허벅지 사이에 갇힌 사월이 몸을 틀어 발바닥으로 시트를 밀었다.

    “큰 거로 바꾸길 잘했지. 아무리 도망가 봐야 침대 위야.”

    품을 빠져나가려는 몸짓은 곧장 저지당했다. 발목을 잡아 죽 끌어 내리는 손길에 시트 위로 무너졌다. 침대에 엎드린 자세가 되자 발기된 아래가 짓눌렸다. 묘한 압박감에 사월이 허리를 뒤챘다.

    “미친, 하지 마. 존나…….”

    새벽 내내 몇 번이나 했는지 아냐고. 사월이 늘어지는 목소리를 냈다. 아직도 아래가 얼얼했다. 내장이 다 밀린 거 같기도 하고, 구멍이 찢어진 거 같기도 하고. 계속 사정을 해 댄 탓에 좆의 주름이 전부 펴진 거 같기도 하고. 내내 빨린 온몸이 온통 멍이 든 거 같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어쨌든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는 해 본 적 없잖아.”

    “닥쳐, 씨발. 못 한다고…….”

    계속 웃음기가 섞여 있던 원재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사월은 눈을 깜빡였다. 이 불길한 침묵은…….

    “욕은 하지 말랬잖아.”

    “야, 야.”

    다급한 부름에도 원재는 미동하지 않았다. 걸치고 있던 셔츠를 단숨에 벗어 던진다. 탄탄한 가슴팍이 사월의 등 위에 맞닿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아래. 벌써부터 뜨겁고 단단했다.

    비 오는 밤마다 보았던 흉흉한 좆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친, 어제 그렇게 해 놓고 또 서? 사월이 시트에 얼굴을 파묻었다.

    원재는 두 팔을 세워 사월의 머리맡을 짚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다리가 더 가깝게 엇갈렸다. 원재가 허리를 내려 사월의 엉덩이를 누르듯이 밀어 올렸다. 시트에 짓눌린 좆이 위아래로 밀리며 자극을 더했다. 사월은 새물내 나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읏.”

    “이렇게 잘 느끼면서 뭘 못 한대.”

    원재의 발기된 좆이 사월의 엉덩이 사이로 꾹 눌렸다. 뜨거운 음낭이 엉덩이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원재는 시트를 붙잡고 고개를 푹 파묻은 사월을 보고 씩 웃었다. 이렇게 금방 뒤를 내어 줄 거면서 왜 욕까지 해서 사람 꼴리게 만들어.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사월의 마른 다리를 슬쩍 올렸다.

    다리 하나가 위로 밀려 올라가자 자연스럽게 아래가 벌어졌다. 그 틈으로 원재가 중지를 밀어 넣었다. 입구가 조금 부은 듯했지만 상처가 남지는 않았다. 어제 밤새 자신의 좆이 드나들었던 길을 손가락으로 꼼꼼히 되짚는다.

    “아, 읏.”

    “손가락 한 개도 조이면 어떡하자는 거야.”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나머지 손가락으로 살결을 느릿하게 비볐다. 온통 자극이 되는 건지 사월이 허리를 들썩였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원재는 마음이 급해졌다. 엉덩이 사이를 비비던 손가락 두 개를 한꺼번에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내벽은 빠듯하게 손가락을 삼키면서도 착실히 안으로 빨아 당긴다.

    원재는 순간 현기증이 일 뻔했다. 피가 너무 빠르게 돌아 온몸의 세포가 팔딱팔딱 뛰어 대고 있는 것같이. 안을 누르고 넓히고 성기가 들어갈 길을 만든 손가락이 할 일을 끝내고 느릿하게 빠져나온다.

    이를 악문 채 흥분을 겨우 억누른 원재가 서랍장으로 팔을 뻗었다. 거칠게 안을 헤집어 손에 잡히는 콘돔 몇 개를 시트 위에 던졌다. 그러곤 하나를 집어 들어 사월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댔다.

    “물어.”

    “……으읏.”

    “안 그럼 없이 하고.”

    없이 하는 건 더 위험했다. 콘돔 없이 섹스할 때면 원재는 거의 명치까지 정액을 쏘아 댔다. 그걸 빼겠다고 안을 쑤시면서 은근히 좆까지 박아 넣는다.

    그럼 진짜 끝이 없었다.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새하얘진다. 새벽 내내 그렇게 시달렸는데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사월은 바들바들 떨리는 턱을 열어 포장지 끄트머리를 물었다. 원재가 넓은 면을 잡고 포장지를 비틀어 당겼다. 그렇게 콘돔을 꺼낸 뒤, 자신의 좆 기둥을 두어 번 쓸고 그 위에 씌웠다.

    “한 개…….”

    “사월 사장, 크게. 안 들려.”

    “……한 개만 쓰라고.”

    사월은 다시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맡에서 원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알겠어.”

    짧은 대답과 함께 허리를 쓸어 올리는 손길. 시트 위에 깔린 성기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매끈해진 좆을 잡아 뻐끔대는 구멍 위에 맞춘다. 제자리를 찾은 듯 꼭 들어맞는다. 원재는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쾌락을 뱉었다. 뜨거운 입 안을 통과한 쾌락은 신음으로 뒤바뀌어 공기 중에 흩어진다.

    ***

    아침부터 정신 나간 것 같은 섹스를 했다. 그간의 갈증을 채우듯 두 사람의 욕망은 무섭게 서로를 집어삼켰다.

    “전화 받아.”

    “…….”

    얼얼한 아래에 온 신경을 쏟던 사월이 원재를 힐끔 바라봤다. 아까부터 계속 울리던 전화였다. 액정만 힐끔 내려다보곤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중요한 전화는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진동은 아까부터 쉼 없이 울려 대고 있었다.

    익숙한 골목에 접어들자 사월은 달칵 벨트를 풀었다. 그제야 내내 미동도 없던 원재가 반응을 보였다.

    “뭐 해.”

    “그냥 이 앞에서 세워 줘.”

    “들어가는 거까지 볼 건데.”

    원재가 팔을 뻗어 사월의 손에 들린 벨트를 잡아 다시 원위치시켰다. 달칵. 또 한 번의 소리가 났다.

    “아니, 담배 좀 사게.”

    “잠깐 금연해. 아니면 내가 이따 사다 줄게.”

    겨우 끊겼던 진동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원재의 미간이 구겨졌다. 사월은 벨트를 꽉 쥐고 있는 원재의 손을 느릿하게 떼어 냈다.

    “……성원재. 여기서 세워 줘.”

    “아니, 하…….”

    원재가 고개를 기울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차가 느릿하게 속도를 줄였다. 가게에서 두 블록 떨어진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사월의 목소리로 이름이 불리면 이상하게도 모든 신경과 사고가 멈춘다. 그가 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이번에도 원재는 그 마법 같은 목소리에 홀려 차를 세웠다.

    “나 휘두르는데 존나 재미 붙였지.”

    “진작 세우라고 했잖아. 전화나 받아.”

    사월은 꽤 단호한 음성을 뱉고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대로 매정히 떠날 듯 냉랭한 뒷모습인데도, 원재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월은 문을 닫으려다 말고 고개를 기울여 차 안으로 시선을 던진다.

    “……조심히 가든가.”

    원재가 핸들에 얼굴을 기대고 킥킥 웃었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어. 조심히 가라고 했으니까, 말을 들어야지. 원재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사월을 보면서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그렇다고 지금 돌아갈 생각은 없다. 대충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사월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뒤를 밟을 생각이었다. 가게까지 안전하게 들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해야 하니까.

    “안 받으면 적당히 해야지.”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누군지는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비서. 그의 번호 뒷자리는 회사 창립일이었다. 이런 충성스러운 개가 또 어디 있으려나. 나도 최 비서 형한테 내 생일로 번호 바꾸라고 해 볼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원재는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정확히 스무 번째 울린 전화에, 신경질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양 비서님 이렇게 질척대는 스타일이셨어요?”

    ―……회장님께서 만나 뵙자십니다.

    아들을 만나고 싶으면 아들한테 연락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다른 아버지들도 다 이래? 원재가 헛웃음을 쳤다. 제 아비에게 정상을 바라는 스스로가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

    사월이 약간은 불편한 걸음으로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매캐한 것도 아니고, 시큼한 것도 아닌 불쾌한 냄새가 풍겼다. 이건 분명 휘발유 냄새인데.

    사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서 불이라도 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게 앞에 섰을 때. 사월은 혀로 볼 안을 훑었다.

    골목에 희미하게 퍼지던 휘발유 냄새의 근원지는 스토크였다. 가게 문 앞에는 무언가 증발된 뒤에 남는 얼룩이 있었다. 사월이 손을 뻗어 가게 문고리를 잡았다. 손끝에 미끌한 것이 묻었다. 손을 코끝에 가까이 대 맡자, 역시나 기름이 분명했다.

    “……미친.”

    왜. 그냥 불을 질러 버리지. 위협하듯 가게 주변에 휘발유만 끼얹은 게 더 좆같았다. 사월은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가 겨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지 가게 안까지 기름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분 나쁜 냄새가 가득했다. 온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그래도 냄새는 빠지지를 않는다.

    골을 찌를 듯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대기 시작했다. 담배가 절실했다. 사월은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가게 바로 앞 전봇대 쪽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붙였다. 연기를 길게 뱉자, 가게를 바라보던 시야가 뿌옇게 번졌다.

    지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사월은 느릿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당연히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잠깐의 갈등을 마치고 전화를 받았다.

    “…….”

    ―어이 사장님. 거기서 담배 피면 위험해요.

    말끝을 길게 늘이는 게 사월을 농락하는 말투였다. 쥐새끼처럼 어디서 보고 있는 거야. 사월은 담배를 물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소름 끼치게 킬킬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사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 냈다.

    ―얼른 꺼. 진짜 ‘앗 뜨거’ 한다니까?

    아직도 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사월은 전봇대 옆 바닥에 재를 털어 냈다. 그리고 반쯤 남아 불이 붙은 담배를 가게 앞으로 툭 던졌다. 순간 전화 너머에서 당황함이 섞인 짧은 외침이 들렸다.

    ―어!

    아. 나를 죽일 생각은 없구나, 아직. 사월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좆 까, 씨발아.”

    담배는 바닥에 남은 얼룩 바로 앞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사월이 전화를 툭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은 꾹 쥔 채였다. 아직 오지도 않은 원재의 문자에 답장이 하고 싶었다. 오늘은 ‘원재야’가 아닌 ‘자기야’라고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차는 이따 새로 뽑고.”

    최 비서는 조수석에 탄 상사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기분이 진짜 아주 좆같아 보였다. 처음에 원재에게 전화가 와서 차가 부서졌단 얘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사고라도 난 줄 알고 미친 듯이 밟아서 왔더니, 웬걸. 성탁 건설 정문 도로에 세워진 차를 골프채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제 상사를 볼 줄이야.

    미친 새끼가 때려 부수기 전에 연락한 거였어? 최 비서는 웅성대는 인파를 뚫고 겨우 제 상사를 말렸다.

    “……회장님이 도대체 뭐라셨는데, 그래.”

    원재는 말없이 창밖에 시선을 둘뿐이었다. 얼마나 난리를 쳐 댄 건지, 손바닥 위가 긁히고 붓고 피가 나고. 엉망이었다. 아프지도 않은지 원재는 그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올렸다.

    “형. 사람 감금해 본 적 많지.”

    “갑자기 그건 왜……. 뭐야, 미친. 너 회장님 감금하게?”

    “형, 돌았어?”

    원재가 미간을 찌푸린다. 최 비서가 헛기침을 하며 핸들을 다잡았다.

    “그럼 그딴 건 왜 물어보는데, 미친놈아.”

    대답은 느릿하게 돌아왔다. 궤변을 잔뜩 덧붙인 채로.

    “그냥. 안 아프고 안 다치고 불쾌하지도 않게, 겁도 안 주고 편하고 자유롭게……. 그렇게 가둘 방법도 있나 해서.”

    “……감금의 뜻을 모르는 거 아니냐, 너?”

    원재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레스트에 머리를 깊게 파묻었다. 느릿하게 삼키는 마른침에 목젖이 크게 한 번 울렁였다.

    몇 개의 신호등을 거치고 난 뒤에 원재가 입을 열었다.

    “……사월이 가두고 싶다.”

    “야, 아서라. 사월 사장 상처 많은 거 아는 새끼가.”

    최 비서가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사월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지녔는지. 자신에게 곁을 주기까지, 체온을 나눠 주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는지.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아름다운 것들만 주고 싶은 이다. 자신에게 사월은.

    “어쭈. 대답 안 해?”

    “…….”

    선뜻 감금 같은 헛생각 따윈 안 하겠노라 대답하지 못했다. 사월이 있기에 바깥은 너무도 위험했다. 또한 그 위험에서 사월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자신뿐이라는 걸 잘 알았다.

    차가 스토크 앞에 서자마자 원재는 달려 나갔다. 다급한 걸음으로 가게 문을 벌컥 얼어 젖히려다, 일순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

    코끝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냄새. 땅바닥엔 진한 얼룩이 크게 그려져 있다. 설마. 원재는 잇새로 욕을 내뱉었다. 턱을 비틀어 이를 까득 물었다. 원재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왜 다시 왔―.”

    잉크 정리를 하던 사월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원재는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월에게 팔을 뻗었다. 뒤통수를 감싸고 자신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긴다.

    입술이 아프게 부딪친다. 작게 신음을 뱉으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무작정 밀어 넣는다. 놀라 굳은 혀를 감싸고 입술을 잡아 삼킬 듯 크게 베어 문다. 갈급함을 해결하듯 정신없이 점막을 헤집고 다닌다.

    사월은 무자비한 힘에 뒷걸음질 쳤다. 뒤통수를 감싼 팔뚝을 떨치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소용없었다. 핏줄이 단단히 선 팔은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읍, 으읍.”

    억눌린 신음이 계속해서 입술 사이로 흘렀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사월이 불만스러운지, 원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 허리를 끌어당겼다. 가슴팍이 완전히 맞닿고, 다리가 얽혔다. 고개를 틀어 더 깊숙이 입을 맞춘다. 입술이 마구 짓눌려 금세 붉어졌다.

    넘어가지 못한 타액이 아랫입술 위로 흘렀다. 원재는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사월의 숨결을 모조리 마셨다.

    사월이 휘청댔다. 등 뒤에 딱딱한 벽이 닿았다. 마른 몸을 감싼 손엔 힘이 더 들어갔다. 코끝이 뭉그러질 만큼 깊고 짙은 키스였다.

    우악스럽게 벌어진 턱이 아팠다. 사월이 원재의 허리춤을 작게 밀었다. 입술을 게걸스럽게 물고 핥은 원재가 상체를 조금 떼어 냈다.

    “하아……. 갑자기 미쳤어?”

    신경질적인 물음이었다. 입술이 다 아렸다. 사월이 호흡을 고르며 원재의 가슴팍을 더 뒤로 밀쳤다. 하지만 원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더 끌어당겨 마른 어깨 위로 이마를 기댔다.

    “사월 사장 끌고 가고 싶지 않아. 다치게 하기 싫어.”

    “…….”

    “집에 가두면 날 무서워할 수도 있잖아. 그건 안 돼.”

    불안한 음성이었다. 사월의 미간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끌고 가고 싶지 않다니, 집에 가둔다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사월은 참을성 있게 원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집에 가. 가자. 나랑 같이 있어.”

    결론은 그거였다. 정신없는 사람처럼 가게에 쳐들어와 입을 맞추고 한다는 말이 고작. 인상 한번 찌푸리고 넘어가기엔 원재의 분위기는 그럴 만한 게 아니다. 사월은 머리를 굴렸다. 아까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뭘까. 혹시…….

    사월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사월이 어깨를 들썩이자 원재가 팔을 고쳐 다시 꽉 끌어안는다. 꽤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아직 기름 냄새가 남아 있다. 사월이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찡그렸다. 이 남자가 불안해하는 게 조금은 이해가 돼서 그런가.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알겠어. 대신, 나 작업 끝나고.”

    “다 끝나고?”

    사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반동을 캐치한 원재가 길게 숨을 토해 냈다. 가장 먼저 치민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이제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 사그라진다.

    “……8시 전에 끝나.”

    “8시. 8시에 올게. 아니, 더 일찍.”

    원재가 혼잣말처럼 웅얼댔다. 술에 취했을 때 모습 같았다. 정제되지 않은 말을 두서없이 내뱉는 꼴이 영락없었다. 하지만 희미한 기름 냄새와 묵직한 향수 향기만 날 뿐, 술 냄새는 전혀 풍기지 않았다.

    사월은 잠자코 기다렸다. 원재가 진정할 때까지. 몇 번이나 사월을 고쳐 안고 품에 가둔 원재가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에는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넘어왔네, 우리 사월 사장.”

    낮은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여 있다. 입꼬리를 올린 원재를 마주 보고 있는데도 사월은 어딘가 기분이 이상했다. 무작정 같이 살자고 매달리던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인데. 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걸까. 가게에 남은 희미한 기름 냄새도 맡았을 텐데. 왜…….

    “……좆대로 생각해.”

    원재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기에, 사월 또한 그랬다. 최대한 감정을 싣지 않고, 예전과 똑같이. 원재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목덜미를 움켜쥔 손이 조금 위로 향한다. 손바닥이 귓가를 감싸고, 엄지가 눈가 아래를 매만진다.

    사월은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원재의 시선이 얼굴 구석구석을 꼼꼼하게도 살핀다. 종착지는 붉은 입술이었다. 살짝 벌어져 뜨거운 숨을 뱉고 있는.

    원재가 입을 벌렸다. 무언가에 홀린 눈을 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입술 사이, 새빨간 살덩이가 비집고 나온다. 사월은 시선을 깔아 그것을 지켜보다 눈을 감았다.

    아까처럼 몰아치는 키스가 아니었다. 느릿하고 진득한, 안달 나는 입맞춤이었다. 사월은 원재의 셔츠를 작게 그러쥐었다. 손 아래에서 셔츠가 구겨진다.

    “……으음.”

    원재는 몸을 더 바짝 붙였다. 짓눌린 입술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고, 조금의 틈도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 사월의 전부를 들이마시듯 호흡을 삼켰다.

    ***

    티셔츠 아래로 은근슬쩍 손을 집어넣던 원재를 겨우 돌려보냈다. 내내 크게 벌어진 탓에 얼얼해진 턱을 쓸었다.

    7시. 한창 작업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이지만, 원재는 굳이 그 시간에 온다고 약속했다. 평소 같다면 방해되는 짓 하지 말라 핀잔이라도 주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원재가 6시에 오더라도, 5시에 오더라도 별말을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만큼 원재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뿐만 아니었다. 자신의 주변도 이상하고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게 안 고요한 공기마저도 불규칙하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월은 어수선한 머리를 정리하고 싶었다. 크로키 북과 연필을 꺼내 테이블에 앉았다. 도안을 끄적대는 것만큼이나 신경을 쏟기 좋은 일은 없었다. 오돌토돌한 종이 위로 연필을 가져다 댔다. 기다렸다는 듯 손길이 여기저기로 뻗쳤다. 사월은 금세 그림에 빠져들었다.

    한참이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사월이 정신을 차리고 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작업까지는 한 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다. 늦으면 늦었지, 벌써 올 리가 없는데. 사월이 의아한 낯으로 연필을 내려 두었다.

    똑똑―.

    “계십니까?”

    “…….”

    불투명한 유리문 밖으로 큰 그림자가 보였다. 문 너머로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아마도 다음 작업을 받을 손님은 아닌 듯했다. 여길 찾는 손님들 대부분은 저렇게까지 정중하지 않았고, 일단 노크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사월이 몸을 일으켰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문밖의 그림자는 화를 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똑똑, 두 번의 노크를 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옆 건물에 새로 개업한 바 사장입니다.”

    “…….”

    밴드 연습실로 쓰던 지하에 바가 생긴다는 소리는 전에 들었던 적이 있었다. 벌써 개업을 한다고? 공사가 한창이던 얼마 전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음에도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확신하듯 건네지는 목소리.

    “얼굴 뵙고 떡도 드리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바쁘신가요?”

    “필요 없어. 가.”

    사월은 테이블 한쪽에 던져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걸 동아줄이라도 되듯 꽉 움켜쥐었다.

    “……아,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잠깐의 텀을 두고 목소리가 작아졌다. 불투명한 유리문 앞을 서성이던 그림자도 사라졌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나. 지금 분위기가 이상하니까 괜한 사람마저도 의심하는 건가. 사월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문 앞에 버티고 섰던 기척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사월은 문을 열었다. 낡은 문에 달린 종이 작게 흔들렸다.

    “…….”

    바 사장이라는 사람이 사라졌을 옆 건물 쪽으로 몸을 틀었다. 잠시간 머물렀던 시선을 거두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을 때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시네.”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가 사월을 덮쳤다. 정중하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고, 틀어막힌 코와 입에서는 알싸한 향이 느껴졌다. 호흡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목구멍 깊숙이 숨이 넘어가 버렸다. 얼굴을 꽉 틀어쥔 손길에는 배려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눈에 감기는 까칠한 천의 감각마저 소름이 끼쳤다.

    발버둥 치던 사월의 몸은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우악스러운 손길 사이로 사월은 희미한 본드 냄새를 맡았다.

    ***

    스토크에서 맡았던 휘발유 냄새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뒤를 밟던 광 박사 애들 중 꽤 머리가 큰 놈을 잡아다 지하실에 가뒀다. 밑의 애들만 풀어놓고 광 박사는 통 보이지를 않아 꼭지가 돌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된 일이었다.

    “광 박사 어디 있어?”

    “모른다고! 이 씨발 새끼야, 이거 안 풀어?”

    날카로운 눈빛과 목소리가 원재에게 향했다. 의자에 기대 있던 원재가 상체를 앞으로 움직였다. 손발이 묶여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

    한참이나 남자를 바라보다 팔을 높이 쳐들었다. 짝―, 뺨을 때렸다기보다 얼굴 전체를 후려친 것 같았다. 남자가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멱살을 잡아 다시 그를 세웠다. 터진 입술 사이로 엄지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입이 벌어지고 피가 고인 치아가 드러났다.

    “몇 개 뽑으면 말하려나.”

    저급한 협박과는 다른 음성이었다. 혼잣말을 하듯 중얼대는 원재에게서 살기를 느낀 남자가 목구멍에 힘을 주어 침을 삼켰다.

    원재의 뒤에 서 있던 수하 하나가 연장 박스를 가져왔다. 그러자 남자는 동공을 크게 뜨며 몸을 바르작댔다. 하지만 턱을 세게 움켜쥔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재의 앞에 펜치가 불쑥 내밀어졌다. 겁에 질린 남자의 눈앞에 받아 든 펜치를 몇 번 흔들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대로 시선이 따라 흔들렸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피 묻히기는 좀 그렇고.”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쇳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몸이 결박된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펜치를 보고 안도의 숨을 슬며시 뱉었다.

    그때였다. 지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최 비서가 급하게 달려온다.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넥타이가 어깨 뒤로 넘어간 채였다. 호흡이 가쁘지도 않은 건지, 최 비서는 허리를 숙여 곧장 원재에게 귓속말을 한다.

    “…….”

    잠자코 그 말을 듣는 표정은 아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턱을 움켜쥔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얼굴뼈가 온통 부서질 것만 같았다.

    말을 다 전한 최 비서가 상체를 바로 세우자, 원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던져둔 펜치를 다시 잡아 들었다.

    “아가리 잘 벌리고 있어.”

    남자의 턱을 거세게 쥔 손등 위로 힘줄이 불거졌다. 동공이 커지고 벌어진 입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입술 위로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그러자 남자는 발작하듯 몸을 마구 뒤흔들며 반항했다. 원재는 꽤 침착한 손길로 안쪽에 있는 치아를 집었다.

    “이거 잘못 뽑으면 뒤지는 거 알지.”

    “으아, 아아! 아!”

    “마지막이야. 광 박사 어디 있어.”

    “아아아! 으아!”

    남자가 금방이라도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듯 옹알이를 해 댔다.

    일단 어디에 쥐새끼처럼 숨은 건지는 알 수 있겠네. 원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단숨에 치아를 잡아 뽑았다. 자비 없는 손길이었다.

    “악!!”

    지하실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남자의 턱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뚝뚝 떨어지는 피가 무릎 아래에 고였다. 원재는 피가 진득하게 흐르는 펜치를 던졌다. 그 사이에 집혀 있던 하얀 치아 하나가 바닥 위를 뒹굴었다.

    “으으……. 악!”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는 원재의 눈은 그저 싸늘했다. 몸부림을 치는 남자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팔을 뻗자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을 뒹굴었다.

    “미안. 질문을 바꿀게.”

    피로 엉망진창이 된 입을 벌리고 남자는 미약한 신음을 뱉어 댔다. 원재는 그런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세웠다. 목이 꺾이며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동공은 공포로 가득했다. 두 사람 주변은 이미 피로 흥건했다.

    “어디까지 나를 시험하고 싶은 거래, 광 박사는?”

    잇새로 새어나온 말은 낮고 차가웠다. 눈동자가 사납게 번뜩였다. 이렇게 화가 난 게 얼마 만이지. 광 박사 그 씹새끼는 곱게 못 죽이겠네. 원재가 입매를 비틀며 쓰게 웃었다.

    ***

    시도 때도 없이 무차별적인 폭력이 쏟아졌다. 온몸의 뼈가 다 부서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오른팔은 다치고 싶지 않아 몸 안쪽으로 바짝 끌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피 맛이 느껴졌다.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했고, 실제로 몇 번이나 기절을 했다.

    촤악.

    차가운 물이 얼굴을 타고 미끄러졌다. 사월은 서늘한 촉감에 부은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속눈썹에 맺힌 물이 한 박자 늦게 뺨 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늘어진 사월 앞에는 삭발을 한 남자가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사월의 머리칼을 잡아채곤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한다.

    “놔, 씨발…….”

    “씹새끼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까칠하고 냉한 바닥을 딛고 사월이 상체를 세웠다. 손바닥 아래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박혀 따끔댔다. 찬 바닥을 딛고 일어난 사월이 뜨끈해진 눈두덩을 눌렀다.

    “허.”

    삭발의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뺨이라도 올려붙일 듯이 두꺼운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창고 문이 열렸다.

    “어어. 잠깐, 잠깐.”

    “아, 오셨습니까.”

    어두운 창고에 쏟아지는 빛. 사월이 따가운 눈을 가늘게 떴다.

    “…….”

    분명 지난번에 스토크에 찾아왔던 남자였다. 본드 냄새를 풍기던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 그는 웃는 낯으로 사월을 향해 걸어왔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예쁜 얼굴을 아주 좆같이 만들어 놨네. 살살 좀 해라, 새끼들아.”

    “예. 알겠습니다.”

    삭발을 한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사월은 찬기가 올라오는 벽에 등을 기댔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나이트 사장이 가게로 찾아오기로 했었는데. 가게가 비어 있다는 걸 알고…… 그냥 돌아갔을까?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찾을 생각 같은 걸, 하기나 할까?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기나 할까?

    어느 하나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입이 바싹 말랐다. 사월은 피딱지가 내려앉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기분이 어때?”

    “……좆같지 뭘 물어봐.”

    “그래?”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 돌아온다. 수족이 끌어온 의자에 앉은 광 박사는 다리를 꼬고 사월을 내려다봤다.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데, 하고 다니는 행색은 꽤 세련됐다. 몸에 핏 된 슈트는 눈이 아플 만큼 새파랬다.

    “오히려 성 사장보다 네가 더 깡패 같다니까? 잘 어울려. 가진 거 없이 악만 받친 꼬라지가 딱 시궁창 같지.”

    성 사장. 갑작스러운 언급에 사월의 어깨가 작게 움찔댔다. 광 박사는 재킷 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 한 개비를 뽑았다.

    시중에 파는 담배 같지는 않았고, 도톰하게 말린 종이처럼 보였다. 그대로 입에 가져가려다 사월 쪽으로 슬쩍 내밀었다. 사월은 냉랭한 시선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 어깨를 으쓱인 광 박사는 누렇고 긴 것을 입에 가져가 물었다.

    “어때. 그동안 재미 좀 봤어? 성 사장 옆에서 콩고물 많이 받아먹었나?”

    광 박사가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하얀 연기가 사월의 얼굴 앞에 흩어진다. 콩고물이랄 게 있었나. 아, 그가 준 관심이나 보살핌도 거기에 해당되나. 사월이 피식 웃었다.

    “남이 뒤지게 처맞든 말든, 그냥 갈 길 가지. 성 사장은 왜 나서서 일을 이렇게 크게 벌렸대. 조용히 있으면 존나게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었는데?”

    “…….”

    “우리도 이딴 양아치 짓 하는 거 상당히 귀찮아. 근데 성 사장은 얼마나 골치 아프겠어. 어쩌다 너 같은 거한테 걸려서.”

    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저 말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광 박사는 혼잣말인 척 질 낮은 말을 뱉어 냈다. 말을 마친 뒤엔 재킷 안으로 다시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딸려 나온 건 투명한 액체가 담긴 주사기였다.

    사월의 미간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곁에 선 남자들이 다가와 사월의 팔을 결박했다. 우악스러운 힘에 마른 몸이 그대로 끌려갔다. 거친 손길은 사월을 광 박사 앞에 무릎 꿇렸다. 그가 눈앞에 대고 주사기를 살살 흔들었다.

    “사장님, 표정 풀어.”

    “놔, 씨발.”

    잇새로 억누른 목소리였다. 사월이 남자를 쏘아보며 발버둥을 쳤다.

    “이거 이상한 거 아냐. 나도 애 데리고 장난질하는 거 싫어해.”

    사월의 반항이 더욱 거세졌다. 양팔을 붙든 남자들이 인상을 쓰며 힘을 더 주었다.

    “놔!”

    광 박사가 주사기를 들고 있는 손목을 힐끔 내려다봤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잠시 허공에 시선을 뒀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제스처였다.

    “조용하네. 볼 장 다 본 장난감이라 별 관심 없는 건가.”

    느릿한 말에, 사월은 결국 반항을 멈추었다. 사월의 마음 깊은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공포. 그간 그리도 두려워했던 일. 원재가 모든 흥미를 잃고 떠나는 것. 그리하여 다시 혼자 차디찬 방에 남는 것.

    “사장님 실망스럽다. 성 사장한테 이것밖에 안 돼?”

    어깨를 으쓱이며 던지는 말은 한없이 가벼웠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나 흘렀기에 저 남자가 저렇게 지껄이는 걸까. 아니, 애초에…… 어떤 근거로 원재가 오리라 기대한 거지. 어두운 사념들이 사월을 좀먹기 시작했다.

    쯧. 혀를 찬 광 박사가 사월의 반팔 티를 쓱 걷어 올렸다. 사월은 얼굴을 구기고만 있었다. 하얗고 마른 팔뚝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따끔한 통증도 잠시, 피스톤을 누르는 엄지에 힘이 들어간다.

    “성 사장 하나 낚아 보겠다고 꽤 고생했는데.”

    “…….”

    “이러면 나한테도 짐이야, 사장님.”

    사월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몇 번의 호흡이 돌고, 심장 박동이 느릿해지고 있음을 의식했을 때. 온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사월의 몸이 늘어지자 결박하고 있던 남자들이 손을 놓았다. 다시 찬 바닥에 뺨을 기댄 사월이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자꾸만 흐릿해졌다. 느릿하게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남자들의 구둣발이 보인다.

    “잠깐 눈 붙이고 있어 봐. 구멍이라도 쓸모 있을지 모르니까.”

    좆같은 소리하네, 씨발. 역겨운 말을 마지막으로 사월은 정신을 잃었다.

    ***

    뻣뻣한 뒷목을 주물렀다. 손바닥에선 피가 새어 나와 지나가는 길마다 붉은 길을 만들어 댄다. 천천히 고개를 틀어 목을 늘인 원재가 충혈된 눈을 깜빡인다.

    “후.”

    툭, 들고 있던 골프채를 바닥에 던졌다. 거친 숨을 길게 뱉으며 호흡을 정리한다. 헝클어진 앞머리를 대충 뒤로 쓸어 넘겼다.

    사월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원재는 내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었다. 잠도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밤낮 닥치는 대로 광 박사네 수하들을 잡아들여 지하에 가둬 이를 뽑고 손가락을 잘라 위치를 캐냈다.

    끝끝내 아무 말도 토해 내지 않으면 곧장 칼을 들었다. 누구의 손을 더럽히지도 않고 모든 걸 직접.

    그렇게 미친놈처럼 날뛰어도 화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름 선을 지킨다고 지켰는데……. 이제 그런 신념 따윈 하등 쓸모없어졌다. 원재에게 중요한 건 오직 사월의 위치와 안위였다.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던 최 비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허리춤에 손을 걸치고 있던 원재가 뒤를 돌아봤다. 눈 주변이 붉은 게, 꼭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위치는.”

    냉랭한 목소리에 최 비서는 한숨을 쉬었다. 덩달아 며칠 내내 눈을 붙이지 못해 어지러운 이마를 짚었다. 장 사장이 조져 놓은 집무실을 복구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엉망이 된 집무실 바닥을 가로지르며, 발치에 닿는 잔해물을 툭툭 차 냈다.

    “이번에도 확실하진 않아.”

    “상관없어.”

    “……광 박사가 몇 달 전에 폐건물 하나 사들였대. 지금 재혁이네 애들 보냈어.”

    “주소 불러. 내가 가.”

    이번에도 또 허탕이면 어쩌려고. 그럼 또 세상 다 잃은 표정 지을 거 아냐.

    최 비서는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억지로 삼켜 넘겼다. 그래, 지금 속이 말이 아니겠지.

    “……가. 나랑 같이.”

    최 비서가 먼저 몸을 돌려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따라붙는 원재의 발걸음은 다급했고 또 절박했다.

    치아 하나가 뽑힌 새끼가 말해 준 폐건물에 도착했다. 하지만 광 박사는 없었다. 그 말은 곧, 사월도 없다는 뜻이었다.

    광 박사는 아마 작정을 하고 이곳저곳에 그림자를 남기고 다니는 게 분명했다. 꽤 오래 전부터. 그렇지 않고서야 밖에 나돌아 다니는 조직원들 중 광 박사의 위치를 제대로 아는 새끼가 이렇게까지 없기는 힘들었다.

    폐건물 안에는 본드를 하고 있던 잔챙이 몇뿐이었다. 그들을 죽기 직전까지 패 대는 원재를 말린 사람은 물론 최 비서였다.

    “사장님, 이러다 얘네 뒤지면…… 꼬리도 못 잡습니다. 예?”

    최 비서의 말에 원재가 숨을 몰아쉰다. 딱 돌기 직전이었다. 이 새끼들의 시체를 갈가리 찢어 광 박사 코앞에 들이밀고 싶을 뿐이다. 원재는 바닥에 늘어진 덩치들을 내려다봤다. 그 눈빛은 소름 끼치도록 형형했다.

    “아가리 열어, 씹새끼들아.”

    바닥에 축 늘어진 머리통을 발로 짓이기자, 고통에 찬 신음이 터진다.

    “여, 여관……. 하수장, 밑에 여관…… 크읍…….”

    “여관?”

    원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신음처럼 말을 내뱉는 남자를 향해 손을 뻗어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하수장 밑이라면……. 재개발 지역이라 웬만한 건물은 철거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몇몇 건물이 남은 바람에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2층짜리 낡은 여관이었다.

    원재가 남자의 머리칼을 더 세게 끌어 올렸다. 남자는 피가 흐르고 부어올라 다물리지 않는 입술로 간신히 말을 이어 간다.

    “으윽! 야, 약을 배달시켰다고……. 여관에…….”

    “약.”

    원재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약? 씨팔,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겨우 곁을 내준 사월 사장을 데리고 튄 걸로도 모자라서. 약? 미친 새끼가 진짜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 원재가 아랫입술 안쪽 연한 살을 씹었다. 다 터져 부은 점막에서는 피 맛이 났다.

    “최 비서. 이 새끼가 말하는 건물 사는 데 얼마나 걸리지.”

    “……예?”

    원재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하도 애새끼들을 잡아다 족쳐 댔더니 지하 작업장도 이젠 비좁았다.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 뒤를 돈다. 서슬 퍼런 눈빛이 최 비서에게 향한다.

    “1분.”

    “…….”

    “아니, 지금 당장.”

    “……예.”

    웃돈을 얼마나 얹어야 하지. 최 비서는 머릿속으로 숫자들을 나열하며, 곧장 옆에 선 남자 둘에게 눈짓했다. 일전에 장 사장에게 봉변을 당했던 이들이었다. 두 사람은 빠릿하게 움직였다. 하나는 늘어진 덩치에게 향했고, 다른 하나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내 거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지.”

    “…….”

    싸늘한 말에는 주어가 담기지 않았다. 여관 건물이 자기 것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사월이 자기의 소유라는 뜻인지. 원재가 시멘트 바닥으로 침을 뱉는다. 타액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애들 다 불러.”

    원재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아버지보다도 더 쓰레기 같은 깡패 새끼의 피를 가졌을지 모른다고.

    ***

    뻑뻑한 눈을 떴을 때는 허름한 여관방 한구석이었다. 시야에 남자 몇몇의 뒷모습만 보였다. 게임을 하는 건지,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건지. 각자 핸드폰만 주시했다. 침대에 널브러진 자신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사월은 뻣뻣한 고개를 틀었다. 팔이 뒤로 묶인 탓에 무게를 고스란히 지탱한 어깨가 너무 아팠다. 축축했던 옷 대신 하늘색 셔츠가 걸쳐져 있었다. 온몸이 꽁꽁 둘러싸인 것처럼 답답해졌다. 사월은 몸부림을 쳤다.

    “윽.”

    결국엔 짧은 신음이 흘렀다. 그러자 남자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반항할 기미도 없이 가만히 늘어진 사월을 잠시 내려 보더니, 저들끼리 눈빛을 나눴다. 곧이어 가장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떴습니다.”

    방문 밖으로 나가는 수고도 하지 않고, 열린 문틈으로 얼굴만 쑥 내민 채 하는 말이다. 자기가 할 말만 전하고 문을 도로 닫는다.

    사월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훑었다. 창고에는 창문도 없었는데. 그나마 여기는 창문이라도 있어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은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들에게 잡혀 온 지 몇 번째 낮일까. 날짜를 유추할 만한 게 주변에 있을지 둘러봤지만, 성과는 없었다.

    쾅.

    정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사이로 들어온 건 그였다. 본드 냄새를 풍기던 남자.

    “굿모닝이야. 사장님.”

    “…….”

    별 지랄을 다 하네, 정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깔깔한 목구멍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월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깨워 줄 왕자님이 없어서 그렇게 오래 잤나?”

    “…….”

    “약 기운이 제대로 돌 틈이 없네.”

    비아냥대는 말은 분명 원재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저들끼리 피식 웃는 꼴에 사월은 토기가 일었다.

    “……이 정도면 깨달았을 텐데.”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게 정말인지, 사월의 음성이 탁하게 갈라졌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광 박사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사월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가늠하는 듯했다.

    “……걔 안 와.”

    “…….”

    “성원재, 나 구하러 안 온다고.”

    진작 뱉었어야 할 말이다. 쓸데없는 기대, 부질없는 미련으로 꾹꾹 눌러 둔 말. 사월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냄으로써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은 이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을.

    “헛고생하는 거야, 등신 새끼들아.”

    콜록, 밭은기침을 쏟았다. 그건 물론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말을 마친 입 안이 쓰디썼다. 사월은 볼 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광 박사는 팔짱을 끼고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

    사월을 말없이 바라보던 광 박사가 입술을 떼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다급하게 달려온 남자 하나가 광 박사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손으로 입 주변을 가리고 귓속말을 했다. 광 박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다 사나운 시선을 치켜올려 사월을 응시했다.

    “……꼬리 자르고 뜨자.”

    “예.”

    “쟤는…….”

    흐음. 광 박사가 가늠을 하듯 사월을 바라봤다. 시선을 맞받아치는 사월은 그가 자신을 데리고 가는 게 이득일지, 아니면 짐이 될지 나름 머리를 굴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재워. 도착하면 위치 쏴 줄게.”

    그 와중에도 시간차를 두어 이동하겠다며 머리를 굴린다. 광 박사는 사월을 한 번 내려다보고 곧장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방에는 남자 다섯과 사월이 남았다. 그들은 벗어 두었던 재킷을 껴입고 금방이라도 이곳을 떠날 것처럼 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남자 하나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제 와도 괜찮다는 시그널이었는지, 큰 손바닥으로 박수를 한 번 세게 친다.

    “가자.”

    그 말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일어섰다. 여전히 널브러진 사월을 양쪽에서 들고 억지로 침대 아래로 끌어 내렸다. 사월의 마른 발이 얼음장 같은 바닥에 닿은 순간이었다. 팔뚝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른 팔뚝에 꽂힌 주사기의 투명한 액체가 점점 줄어든다.

    결박하던 힘이 사라지고, 사월은 침대에 머리를 기댔다. 붕 뜨는 느낌이 들고 호흡이 느려지더니 점점 시야가 아득해졌다. 희미해지는 정신으로 굉음을 들었던 것도 같다.

    ***

    아…… 좆같다.

    방에 들어선 원재는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짜증, 분노, 절망, 자괴감……. 모든 검은 감정이 사정없이 뒤엉켰다. 애써 화를 억누르고 몇 번 호흡을 골랐다. 분노를 삼켜 내자 목젖이 크게 울렁인다. 원재가 다시 고개를 바로 들어 눈앞의 꼴을 내려다봤다.

    사월은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구닥다리 낡은 셔츠는 반 이상이 풀려 단추가 몇 개 잠겨 있지도 않았다. 머리칼과 셔츠에 가려진 피부는 가관이었다. 피딱지와 멍, 상처가 가득했다. 바닥에는 빈 주사기까지 굴러다녔다.

    원재가 성큼 걸음을 옮긴다. 바닥을 딛는 걸음마다 억누른 분노가 담겨 있었다. 무릎을 굽힌 뒤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광 박사의 다리를 잘라 걷지 못하게 하고, 혀를 잘라 세 치 혀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고, 눈을 뽑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허나 흉포한 생각과는 달리 사월의 머리칼을 넘기는 손가락은 잘게 떨렸다.

    “미친.”

    새하얀 얼굴 위에 자리 잡은 상처에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진다. 씨팔, 얼마나 아팠을까. 그간 진창에서 구르며 칼에 찔리고, 맨정신에 뼈가 부러지는 걸 참아 냈으면서도. 사월의 상처에 마음이 무너져 버린다.

    “무식한 새끼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부어오른 살갗을 조심스레 매만진 원재가 마른 팔뚝을 그러쥐었다. 좆같은 셔츠를 밀어 올려 하얀 팔뚝을 꼼꼼히 살폈다. 주사 자국은 두 개였다. 원재의 얼굴이 잔뜩 구겨진다.

    바닥에 떨어진 빈 주사기를 들어 피스톤을 뽑아 던졌다. 가볍게 날아간 것은 허름한 여관방 구석으로 힘없이 처박힌다. 원재는 아직 물기가 조금 남은 주사기 안의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냄새는 아니었다.

    “씨팔, 뭔 약을 처넣은 거야.”

    무슨 약인지 알아야 했다. 빈 주사기를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좆같은 짓을 안 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원재는 주사기가 담긴 재킷을 벗어 사월의 몸을 감쌌다. 마른 몸은 금세 재킷 사이로 푹 파묻혔다. 놀라지 않게, 아프지 않게. 원재는 조심히 사월을 감싸 안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은 정신없었다. 둔탁하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악을 쓰는 고성, 정신없이 오고 가는 욕. 원재는 그런 난리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듯 유유히 복도를 가로지른다. 허름한 복도에는 계속해서 비명이 퍼졌다.

    ***

    ―사월 사장은?

    “아직. 씨발, 광 박사가 만든 약은 좆같은 게 많아서 좀 불안한데.”

    원재가 머리를 헝클였다. 빈 방 안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광 박사 새끼가 약에 빠삭해 기분이 더 더러웠다. 사월 사장한테 어떤 짓을 했을지 광 박사가 아니면 모르니까.

    ―음흉한 새끼. 하여간 그 늙다리 손버릇 나쁜 건 알아줘야 해.

    “약물 검사 결과 최대한 빨리 달라고 했어. 거기는 어때.”

    광 박사 수하들 청소를 최 비서에게 일임했다. 납치, 감금, 협박. 이런 일에 도가 튼 사람이라 어쩔 땐 원재보다도 능숙했다.

    ―한 대여섯은 뻗었고, 남은 애들 머리채 잡고 공구리 친다고 겁 좀 줘야지. 그러다 수틀리면 묻는 거고.

    “핸드폰이나 태블릿 같은 거 있나 확인 잘해 봐. 사월이만 두고 꼬리 잘랐을 리가 없어. 안전한 데서 사리고 있다가 따라붙으라고 했을지도 모르니까.”

    ―오케이. 진전 생기면 연락합시다, 사장님.

    통화를 마친 원재가 다급한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막 가방을 정리하던 의사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안정제가 잘 안 들어서, 잠들었다 깼다 반복하는 중입니다.”

    대충 고개를 주억거린 원재가 초조한 걸음을 옮겼다. 얼굴에 온통 상처를 단 사월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그제야 꽉 막혀 있던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명치에 묶여 있던 호흡을 토해 냈다. 일그러져 있던 시야가 제대로 돌아왔다. 손끝에 피가 통하기 시작해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가 봐요.”

    “예. 내일 뵙겠습니다.”

    마저 챙긴 짐을 들고 의사가 방을 빠져나갔다. 1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 사월은 14번의 호흡을 했고, 9번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원재 쪽으로는 어떤 시선도 주지 않았다.

    원재가 까칠한 입술을 축였다. 아까까진 사월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딱 미쳐 버릴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겁이 났다. 천장만 바라보는 텅 빈 시선이 자신에게 영영 닿지 않을까 봐.

    “왜…….”

    의외로 무거운 침묵을 깬 사람은 사월이었다. 푸석한 목소리로 물음을 남긴다. 원재는 다급하게 침대 맡으로 향했다. 사월은 여전히 천장 어딘가쯤에 시선을 둔 채였다.

    “왜 여기로 데려왔어.”

    “여기가 제일 안전하니까.”

    “안전…….”

    희미한 목소리가 짧은 단어를 되풀이한다. 원재의 가슴이 빠르게 쿵쾅댔다. 씨발, 안 돼. 원재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저 예쁜 입술에서 나올 말들을…….

    “그런 거, 너랑은 상관없잖아…….”

    냉랭해진 공기 사이로 사월은 느릿하게 눈을 감는다. 원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열이 오른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밀어내고 날을 세우고, 선을 긋던 얼마 전처럼.

    사월은 원재의 대답 따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잘게 눈꺼풀이 떨어졌다 닫히더니 이내 굳게 닫혔다. 약 기운에 취해 잠이 든 듯했다. 원재는 언젠가 호텔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월의 머리맡 바닥에 털썩 앉았다.

    “왜 상관이 없어.”

    “…….”

    그럼 지금 눈이 돈 것처럼 구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원재는 링거를 꽂은 손을 차마 잡지 못했다. 근처에서 한참 주저하다 새끼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 쥔다. 손안에 들어온 마른 손가락을 애지중지 매만진다.

    “어떻게 하면, 그런 좆같은 생각을 안 하지.”

    “…….”

    “좀 알려 줬으면 좋겠네.”

    원재가 시트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속을 다 까뒤집어 보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제가 하고 있는 생각부터 느끼고 있는 감정까지.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사월 사장에게 보여 주고 싶다. 의심하지 않게, 불안해하지 않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좀 알려 주라, 사월 사장. 당연하게도 잠든 사월에게선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원재는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씁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처음 느꼈다.

    원재는 사월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월이 주치의와 둘만 남았을 때 정신을 차렸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가장 먼저 시선을 맞추고 싶었다. 어디가 가장 아프냐고. 컨디션은 어떤지, 며칠 동안 무섭지는 않았냐고. 나를, 기다리지는 않았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사월이 눈을 떴을 때. 상황은 원재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안 된다고.”

    “내가 가겠다는데, 왜.”

    사월이 자꾸 가게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처음 데려왔을 때보다는 몸 상태가 확실히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월을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커다란 몸이 침대에 걸터앉은 사월의 앞을 막아섰다. 쌍꺼풀 진 눈이 날카롭게 원재를 응시한다. 명치 쪽이 답답해지는 걸 느낀 원재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보내 달라고……. 성원재.”

    또였다. 사월은 멋대로 자신을 휘두른다. 성원재. 고작 세 음절밖에 되지 않는 이름에도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래도 이번엔 넘어갈 순 없었다. 이건 사월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기도 했다.

    원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광 박사의 행적이 잡히지도 않았는데, 사월을 그냥 보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도 이제 내 일에 더 상관하지 말고.”

    원재의 침대에서 잠이 들 때마다 보았던 연한 회색빛의 천장. 사월이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낯선 의사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금세 익숙해진 이 천장이었다.

    심플한 조명등과 방 안을 채운 묵직한 향기. 낯익은 것들이 느껴졌을 때 사월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였다.

    결국 나를 찾으러 왔구나. 나를 구해 줬구나. 나를, 나를 잊지 않고. 사월은 막혀 있던 한숨을 쉬었다. 어찌나 크게 쉬었는지, 링거를 정리하던 의사가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다음엔 당연하게도 원재를 찾았다. 시선을 천천히 굴려 방 안을 한 번 훑어도 원재는 보이지 않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마른침과 함께 불안을 삼켰다. 온갖 추측들이 머리에 가득 찼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그 사람을 찾는 거지. 그냥…… 말 그대로 ‘그냥’인 사이라고 내 입으로 말해 놓고, 왜?

    의문은 한동안이나 풀리지 않았다.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굳이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원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을 말이다.

    “상관. 없지 않아.”

    “…….”

    “앞으로 계속 상관하고 간섭할 생각이고.”

    서늘함이 담긴 낮은 목소리에 사월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 사월을 내려다보며 원재가 말을 이었다. 화를 억누르고 한 글자씩 힘주어 뱉었다. 이번엔 올곧이 자신의 마음을 좀 알아 달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사월 사장. 난 이번 일로 엄청 화가 났어.”

    “…….”

    “네 옆에 애들도 심어 두려고. 두 시간마다 보고받을 거야. 무슨 행동을 했는지. 누가 찾아왔는지…….”

    원재는 울컥 쏟아지는 감정으로 가빠진 숨을 들이켰다. 말 사이에 잠깐의 공백이 생겼다. 그 사이로 사월의 한숨이 끼어들었다.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했고, 누구랑 통화를 하는지까지, 다. 사소한 거 하나까지 전부 감시하고 통제할 거야.”

    무거운 감정이 자꾸만 어깨에 쌓였다. 사월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 어디쯤으로 시선을 떨어트릴 뿐이었다. 순식간에 쏟아붓는 감정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내가, 씨팔……. 이딴 미친 짓을 아무한테나 할 거 같아?”

    원재가 무릎을 굽혀 사월 앞에 몸을 낮추었다. 허벅지 위에서 잘게 떨리는 하얀 손을 감싼다. 서늘한 말을 뱉은 사람답지 않게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사월이 애써 땅으로 떨어트렸던 시선이 이내 맞닥트렸다.

    자꾸 기대고 싶게 만들지 마. 의지하게 하지 마. 너만 찾게 하지 마. 입 안에 맴도는 무수한 말들 중 하나라도 꺼내고 싶었지만, 정작 사월은 입술조차 뗄 수 없었다.

    “너니까 하는 거야, 사월이 너니까.”

    어딘가 알아 달라 애원하는 것 같기도, 부탁하는 것 같기도,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한 음성. 그의 목소리로 듣는 이름은 늘 생소했다. 사월. 그게 꼭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명치 아래가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이렇게 미친놈같이 구는 게 무서우면…….”

    “…….”

    “지금 말해. 알아는 둘 테니까.”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을 듯, 말끝이 단호하게 떨어졌다. 원재의 성난 호흡이 고요한 방을 채웠다. 침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월은 목이 메어 울음을 한 번 삼켜 넘겼다. 내가 무서운 건 고작 그딴 게 아니야. 집착이고 구속이고 그딴 게 아니란 말이야.

    어두운 그림자 속에 형체를 감추고 있던 사월의 진심이, 이제야 어둠에서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다음엔?”

    “……뭐?”

    음습한 물기를 머금은 시선이 다시금 느리게 마주한다. 원재는 숨이 턱 막혔다. 밀려드는 습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너 화 다 풀리고 나면.”

    “…….”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원재의 입술이 벌어진 채로 뜨거운 숨만 뱉어 냈다. 정적이 흐른다. 무거운 침묵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원재를 옭아맨다.

    이거였다. 그간 사월을 떨게 만들고 겁을 먹게 한 건. 그 후, 다음, 나중, 그 뒤. 미래를 가리키는 온갖 단어들 옆에 원재와 나란히 있지 못하는 것. 종국엔 혼자 그 ‘다음’에 남아 버리는 것.

    원재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축축한 시선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아까부터 내내 흐트러진 머리칼을 향해 손을 뻗고 싶었다. 내내 억눌렀던 충동을 이제 더는 참지 않는다.

    “……행복해져, 우리는.”

    머리칼을 쓰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음성 또한 더없이 다정했다. 사월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뺨과 눈가를 쓸어 올린 원재의 엄지가 축축해졌을 때. 그제야 울고 있음을 알았다.

    행복이란 단어는 사월의 삶에 몇 번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었다. 누군가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사월은 평생 입을 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먼 세계의 일이자, 제 것이 아닌 감정이었다. 그 행복이라는 단어에 원재와 함께 ‘우리’로 묶이게 됐다.

    사월은 원재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내가 행복할 수 있어?

    그럼 원재는 확신에 찬 대답을 해 줄 것 같았다.

    우린 행복할 수 있어.

    사월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토록 듣고 싶던 말을 해 준 입술 위로, 자신의 체온을 남겼다. 뜨거운 숨이 입술 사이에서 섞인다.

    기나긴 시간 동안 사월의 감정은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도 주인이 아니었으니, 길을 잃고 헤매기만 했다. 공허한 시간에 부유하던 감정이 드디어 원재의 입술 위에 닿았다.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 진득하게 내려앉았다.

    사월의 마른 손이 원재의 목덜미를 감쌌다. 느릿하게 고개를 틀자 입술 안으로 뜨거운 혀가 파고들었다.

    체온을 쫓아 혀가 따라간다. 질척한 소리가 나며 입술이 깊게 맞물린다. 색이 다른 머리칼이 어지럽게 엉켜 흐트러진다. 원재가 사월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혹시라도 아플까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호흡이 여러 번 얽히고 난 후 타액이 늘어지며 입술이 멀어졌다. 아득해지는 체온이 아쉬웠다.

    온몸으로 뜨거운 체온을 끌어안고 싶다. 몸 안 곳곳, 피가 흐르는 곳마다 그의 호흡을, 향을, 체온을 마구 밀어 넣고 싶다. 그리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그이고 싶다. 함께라는 것, 우리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타액으로 축축해진 입술이 슬며시 떨어졌다. 사월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하자.”

    사월의 붉은 입술만 진득이 바라보던 원재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간다. 높은 콧대를 타고, 쌍꺼풀이 진 눈에 다다라 멈춘다. 원재의 눈이 부드럽고 느긋하게 깜빡이며 사월을 회유한다.

    “자자.”

    사월이 평생 두 번은 다시 낼 수 없는 용기였다. 목구멍에 힘을 주어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원재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무르는 원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아래로 셔츠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절박하게 옷깃을 부여잡은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사월은 아직 이런 작은 거부에도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다. 언제쯤이면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있을까. 사월은 스스로가 답답했다.

    “내 앞에 있는 거. 계속 옆에 있을 거라는 사실. 전부 다…….”

    확인하고 싶어. 뒷말은 차마 소리 내지 못했다. 형편없이 떨고 있다는 게 들통이 날 거 같아서.

    원재는 사월의 사소한 감정 변화에도 온 신경을 쏟았다. 그래서 지금 사월이 불안해한다는 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원하는 만큼 체온을 나누어 주고, 애정을 쏟아붓고, 사랑을 속삭인다 한들. 지금 상태로 사월을 탐하기 시작하면 주체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

    “…….”

    말없이 시선이 얽힌다. 침묵이 이어질수록 사월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원재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찰나의 갈등을 매조지했다.

    “……다리 벌려 봐.”

    마른 다리를 벌려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품이 넉넉한 홈웨어 하의를 끌어 내렸다. 원재의 힘에 엉덩이가 들리자, 사월이 넓은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을 벗긴 원재가 하얀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내린다.

    촉, 촉. 허벅지에서부터 더 깊숙한 안쪽으로 입맞춤이 이어진다. 사월은 원재의 어깨를 꾹 쥐었다. 원재의 뺨 위로 사월의 성기가 닿았다. 열이 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움켜쥔 원재가 느릿하게 기둥을 훑었다.

    “……아아.”

    희미한 신음이 흐른다. 얇은 피부 너머로 맥박이 빠르게 뛰고 있음이 여실히 전해졌다. 둥그런 살 위에 입을 길게 맞춘 뒤에야 원재는 혀를 내려 기둥을 핥았다. 선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듯 혀가 길게 길을 그린다. 사월은 빠짐없이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온기를 나누어 주는 그의 모습을.

    추읍. 축축하고 끈적한 소리와 함께 성기가 뜨끈한 점막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혀를 굴려 귀두 주변을 천천히 자극시킨다. 좆이 원재의 입 안 깊숙이 들어갔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커다란 손바닥이 고환 위의 기둥을 살살 돌리며 문지른다.

    “아.”

    사월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자 원재의 팔이 골반을 틀어쥐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잡은 채로, 좆을 입 안에서 굴렸다. 강하게 빨았다가 살짝 이를 세워 긁었다. 그럴 때마다 사월이 잘게 움찔댔다.

    골반을 붙들던 손이 느릿하게 아래로 흘러내린다. 시트 위에 짓눌려진 엉덩이를 그러쥐었다. 보드라운 살이 손아귀에 잡히자 붉게 달아올랐다.

    어느덧 사월은 원재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은 채였다. 고개가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으읏, 아, 하아…….”

    뜨겁고 축축한 혀가 사월의 좆을 끝없이 유린했다. 주름을 하나하나 헤아릴 듯 느릿하게 표면을 핥고, 뾰족하게 세워 핏줄 위로 길을 그리고, 목구멍 안쪽까지 깊숙이 넣었다가 또 피부가 아릴 만큼 빨아 댄다. 사월은 꼭 원재의 입에 삽입하고 있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허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심장이 가슴에도 머릿속에도 좆에도 박혀 있는 거 같다. 여기저기서 뜨겁게 뛰는 맥박이 느껴진다. 빠르게 도는 혈관에 원재의 온기가 타고 흐른다.

    “성원재…….”

    엉덩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좆을 감싼 점막은 꼭 불구덩이같이 뜨거웠다. 온몸이 달아오르고 발이 자꾸만 안으로 굽어들었다.

    “하아…….”

    절로 축축한 신음이 터졌다. 눈시울이 발갛게 물들고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기분이 들었다. 성기를 빠는 원재의 고개가 더욱 깊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사정감이 몰려들었다. 사월이 다급하게 원재의 뺨을 쥐었다. 좆을 담고 있는 서늘한 얼굴을 보니 금방이라도 정액이 터질 것 같다.

    “잠깐, 잠깐만.”

    뺨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떨어트리려 했지만, 원재는 성기를 빠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골반을 팔로 끌어안아 더 깊이 머금을 뿐이다.

    “아, 아아!”

    뜨거운 것이 기둥을 타고 터져 나간다. 사월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목젖이 높이 올랐다 다시 제자리로 내려갔다. 목덜미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다리를 움찔대려 해도, 발목에 걸린 바지와 속옷 때문에 결박된 느낌이었다. 대신 달달 떨리는 허벅지를 오므렸다. 원재의 단단한 어깨가 닿았다. 사월이 다시 힘을 주어 원재의 고개를 뒤로 밀었다.

    “야, 그걸 왜…….”

    입 안 가득 사월의 정액을 머금고 있던 원재가 눈을 맞추곤 꿀꺽 삼켜 넘겼다. 사월의 눈이 커졌다. 엄지로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하지만 입술 주변에 묻은 것뿐이었다.

    “사월 사장 모든 게 아까워.”

    자신의 뺨을 쥐고 있는 사월의 손바닥을 끌어 입을 맞춘다. 원재가 말을 할 때면, 손바닥 위로 뜨거운 숨이 흩어졌다.

    “전부 다 내가 갖고, 나만 알고 싶어.”

    “…….”

    “너만 허락하면, 평생 그러고 싶어.”

    허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타이밍 좋게도 여관에서 잡아들인 놈의 핸드폰으로 광 박사의 위치가 날아왔다. 꽤 기력을 차린 사월은 의사에게 맡기고, 이번엔 원재가 직접 움직였다. 최 비서와 함께 나섰지만, 원재는 차 대신 오토바이에 올랐다.

    “9118?”

    ―그 차 맞아요. 제가 뒤에 바짝 붙겠습니다.

    차선을 수시로 오가며 과속을 저지르는 검은 차. 광 박사가 타고 있는 차였다. 쌩하니 옆을 지나가는 차 넘버를 읊는 사이, 익숙한 최 비서의 차가 그 뒤를 따랐다.

    원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면서 헬멧을 썼다. 멀찍이 앞선 차를 쫓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에서 네 번째 신호음이 울렸을 때였다.

    ―누구. 철영이?

    “차 좋은 거 뽑았네, 광 박사. 돈 많이 벌었나 봐?”

    ―……누구야.

    원재의 시야에 광 박사의 차 뒤꽁무니가 보였다. 2차선으로 옮기자 그 뒤엔 최 비서의 차가 바짝 붙어 있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은 원재가 좀 더 속력을 올렸다.

    “요즘도 찌질하게 월수 가방 끼고 다니면서 깡패 행세해?”

    ―아, 말이 짧아서 반가운 목소리도 못 알아들었네. 성 사장, 잘 지냈나?

    “덕분에 좋은 경험했지, 뭐. 고맙다는 인사를 좀 하고 싶은데.”

    ―마음만 받을게. 형님이 요즘 좀 바빠서.

    조금만 더 가면 큰 사거리였다. 곧 신호가 바뀔 것 같았다. 원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바쁘긴. 좆 까라 그래. 곧 만날 테니까.

    “아쉽네. 만나면 구미 당길 만한 얘기도 좀 해 주고 싶었는데.”

    ―우리가 만나서 수다 떨 사이는 아니지 않나?

    큰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었다. 신호에 맞춰 차들이 멈춘다.

    “네가 모시던 형님. 어떻게 뒤졌는지 안 궁금해?”

    ―……뭐?

    “찍소리도 못 하고 뒤지더라. 장 사장이라고 뭐 별거 없더라고.”

    전화 너머로 화를 억누른 웃음소리가 울렸다.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광 박사도 그제야 서서히 멈춰 섰다. 하지만 바로 뒤에 붙은 최 비서의 차는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광 박사는 뭐, 좆도 없어서 더 시시할 거 같은데.”

    쾅―!

    순간 맹렬한 기세로 달리던 최 비서의 차가 그대로 광 박사 차 뒤 범퍼에 처박힌다. 차 두 대가 나란히 찌그러져 덜컹댔다.

    ―악! 씹, 뭐야!

    전화 너머로 파열음과 함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그대로 넘어왔다.

    지잉, 창문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신호에 맞춰 원재는 메고 있던 파이프를 끌어 손에 쥐었다. 속력을 더 높였다. 양옆으로 차들이 빠르게 밀려 지나갔다.

    이윽고 반쯤 찌그러진 최 비서의 차를 지나쳤을 때, 열린 창문 사이로 광 박사의 얼굴이 빼꼼 드러났다. 오토바이의 속력을 줄이지 않은 원재가 그대로 팔을 뻗었다.

    “운전을 이렇게 좆같이 하면, 윽!”

    그대로 파이프를 내려친다. 팔에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퍽,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원재가 탄 오토바이는 그대로 늘어선 차 사이를 지나 골목으로 사라졌다. 원재가 꽉 쥐고 있는 파이프에서는 피가 뚝뚝 맺혀 떨어졌다.

    ***

    퀴퀴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인 지하실 문이 열린다. 원재가 페이퍼 타월로 손을 닦으며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뒤졌어? 안 되는데.”

    “다행히 숨은 붙어 있어.”

    최 비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양손 끝에 핏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원재가 곁에 와 서자, 최 비서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는 피투성이가 된 광 박사가 늘어져 있었다. 원재는 몸을 낮추고 광 박사의 머리칼을 사납게 당겼다.

    “피차 피곤하게 왜 도망 다녔어.”

    악에 받친 말 대신 피식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재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려야. 크윽, 본성이 나와.”

    말 사이사이에 잔기침이 섞여 있었다. 광 박사가 입을 열 때마다 시뻘건 치아가 기괴하게 웃음 짓는다.

    “더럽고 제멋대로에, 컥, 폭력적인 구질구질한 본성. 그 새끼한테 네 본모습…… 보여 주고 싶었지.”

    “…….”

    “그 새끼가 겁먹고 두려워하고, 외면해서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면, 으윽, 그때…… 네 손에 죽은 형님처럼, 똑같이 죽이려고 했는데.”

    죽인다, 겁을 먹는다, 외면을 한다. 광 박사의 말들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큰 생채기를 남기며 피를 냈다. 볼 안을 훑으며 원재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가정 하나하나가 참 좆같네.

    “똑같은 고통, 똑같은 절망……. 그걸 너무 빨리 맛보면 시시하잖아?”

    사월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원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필요가 없어진 사월을 죽이고, 한 발 늦은 원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꼴을 보며 죽이는 것. 그게 광 박사가 품은 시커먼 꿈이었다. 절대 이루어지지 못하고 어둠으로 사라져 버린 꿈.

    원재가 끓어오르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고개를 좌우로 느릿하게 움직인다. 언뜻 화를 참는 모양새 같았다. 하지만 최 비서는 자신의 상사가 광 박사의 말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딴 새끼한테 휘둘리게 둘 수는 없었다. 최 비서가 제 상사의 어깨를 슬쩍 잡았다.

    “장 사장, 그 씹새끼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감히 우리 사월 사장까지 이용해서.

    말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화를 억눌러 잇새로 짓이겨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윽, 크읍.”

    광 박사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원재가 힘을 가했다. 손등과 팔뚝에 힘줄이 불거지고, 제 힘에 못 이겨 잘게 떨릴 때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는 광 박사의 손톱이 원재의 손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손등 위로 붉은 상처가 새겨지고 있음에도 원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악!”

    으득. 이내 뼈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다. 단숨에 힘을 푼 원재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광 박사는 바닥에 늘어져 발작을 해 댔다. 뭍에 강제로 끌려 나온 물고기처럼 한참 발버둥질했다.

    원재는 뒤에 선 최 비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최 비서가 단정하게 잠근 재킷 안주머니를 뒤졌다.

    “광 박사. 머리는 잘 굴렸는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으으…….”

    “더럽고 좆같은 꼴을, 내가 사월 사장 앞에서 보여 주겠어?”

    안 되지, 안 돼.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원재가 고개를 젓는다. 손바닥 위로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익숙하게 잭나이프를 움켜 쥐곤 허공에 몇 번 돌린다. 바짝 벼려진 날이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였다.

    “우리 사월 사장은 좋은 거만 봐야 하거든.”

    질퍽한 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이 터졌다. 원재는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광 박사의 절박한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급소를 피해 한 번 더 힘을 줄 뿐이었다.

    윽. 광 박사의 입에서 울컥 피가 토해진다. 힘이 빠져 축 쳐진 광 박사의 어깨를 밀어 바닥으로 넘어트린다.

    “목숨 좀 잘 붙여 놔. 장 사장님보다 신경 써서 보내 드리고 싶네.”

    “예예.”

    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어 가는 광 박사를 측은하게 내려다봤다.

    상대를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지. 하필 사월 사장을 건드려서는. 앞으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텐데…….

    광 박사의 입에서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언제쯤 나올까, 가늠하는 최 비서였다.

    ***

    “하아, 으읏.”

    사월은 시도 때도 없이 원재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했고, 애정을 갈구했다. 살끼리 닿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원재는 그게 못내 좋았다. 더 미친 듯이 불안했으면 좋겠고, 더 애가 탔으면 싶었지만. 사월이 힘든 건 또 싫어 지금에 만족하기로 했다.

    가운을 입고 침대 위에 길게 누운 원재가 사월을 가만히 응시했다. 스스로 구멍을 넓히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원재는 하루하루 낯선 사월의 모습에 자제력만 키우는 중이었다. 손을 댔다간 진짜 정신없이 안을 헤집을까 봐, 사월의 마른 허리만 움켜쥘 뿐이었다.

    “아…….”

    사월은 손을 등 뒤로 돌려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 두 개를 넣은 채였다. 넣는 것까지는 어떻게 잘했는데 안을 넓히는 게 쉽지 않았다. 자꾸 몸이 경직되고 힘이 들어가 구멍이 조였다.

    사월이 몇 번 움찔대다 결국 손가락을 천천히 뺐다. 그러곤 제 허리에 감겨 있는 원재의 손가락을 잡아끌었다. 원재는 가만히 사월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무릎으로 몸을 세운 사월이 원재의 손가락을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뼈대 굵은 손가락이 익숙한 듯 사이를 가르고 구멍 주변을 지분댄다.

    “읏.”

    “넓혀 줘?”

    딱 한 번. 사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재가 천천히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었다. 안에 들어차는 이물감부터가 달랐다. 사월이 눈을 찡그리며 원재의 가슴팍 위로 손바닥을 짚었다.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이 내벽 안을 휘저었다. 점막을 꾹꾹 누르고 손을 벌려 안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허벅지 힘이 빠진 사월이 살짝 주저앉았다.

    “으, 으읏.”

    손가락이 점막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 순간 사월은 온몸이 벌벌 떨릴 만큼의 쾌감을 느꼈다. 감았던 눈을 뜨자, 단단하게 발기한 원재의 좆이 보였다. 끄트머리가 축축해진 성기가 형형하게 꺼떡였다.

    아랫배 위에 단단히 선 좆을 어서 제 안에 넣고 싶었다. 사월은 기둥을 잡아 느릿하게 쓸었다. 뜨겁고 딱딱한 좆은 핏줄이 도드라진 상태였다. 원재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신음을 참았다.

    허벅지에 다시 힘을 주어 엉덩이를 들었다. 원재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안의 점막이 딸려 나왔다. 구멍을 움찔댈 때마다 다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팔과 고개를 뒤로 돌린 채, 축축한 귀두를 구멍 주변에 비볐다. 보이지 않아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입구를 찾듯 주변을 배회하던 좆이 구멍에 딱 맞물리는 순간, 사월의 입에서는 새된 신음이 터졌다.

    “으흥.”

    구멍 안을 헤집느라 축축해진 손이 사월의 허벅지를 단단히 잡아 받쳤다. 사월은 원재의 아랫배에 손을 올려 몸을 지탱하고 천천히 아래를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내벽이 좆을 감싼다. 마찰되는 부위가 타들어 갈 것만 같다. 좆을 반도 삼키지 못하고 사월이 구멍을 힘껏 조였다.

    “왜 벌써. 반도 못 먹었는데.”

    “아…….”

    사월의 허벅지에 근육이 잡힌다. 요령이 없으니 삽입 자체가 서툴렀다. 좆이 끊어질 듯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원재는 참을성 있게 사월을 기다렸다. 찔끔 귀두를 조금 더 물던 구멍이 다시 조여들었다.

    “힘들, 힘들어.”

    결국 성기를 안에 다 품지도 못한 몸이 무너진다. 위로 들린 구멍 사이로 반쯤 삽입되었던 좆이 빠진다. 구멍 입구로 끈적한 액이 멀거니 늘어진다.

    단단히 발기된 것은 사월의 엉덩이 사이에서 부피만 더 키워 갔다. 아랫도리가 터질 것 같은 흥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원재는 자신의 가슴팍 위로 늘어진 사월의 등만 은근한 손길로 쓸었다. 헐벗은 가슴 위로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울렸다.

    “하다 멈추는 거, 진짜 좆같은데.”

    “…….”

    “사월이가 그러니까 안달 나고 괜찮네.”

    원재가 웃을 때마다 가슴팍이 들썩댔다. 그 위에 축 늘어진 사월도 덩달아 작게 흔들렸다. 그 와중에 떨어지기는 싫어 자신의 허리를 잡는 마른 손. 원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월 사장은 참 여러모로 사람을 돌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욕실 안. 사월의 희미한 신음과 질척거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아흣, 아…….”

    사월이 욕실 벽에 이마를 기댔다. 겨우 벽을 짚고 선 마른 손등 위로 원재의 커다란 손이 덮였다. 어슷하게 맞물린 손가락이 깍지를 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사월의 발기된 아래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원재는 고개를 틀어 목덜미의 연한 살을 베어 물었다.

    “아아…….”

    원재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떠, 신음을 흘리는 사월의 입술을 바라봤다. 새빨간 입술이 호흡을 뱉을 때마다 잘게 떨렸다. 형형하게 번뜩이는 뜨거운 눈길로 변화 하나하나를 샅샅이 살폈다.

    연한 살에 울혈이 생길 만큼 강하게 빨아 올리면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귀두를 엄지로 문지르면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을 눈에 담았다.

    “다리 좀 조여 봐.”

    다리를 붙이고 선 사월의 허벅지 사이로, 검붉게 발기된 성기가 앞뒤로 움직인다. 가지런히 선 사월의 허벅다리가 잘게 떨리며 힘이 잔뜩 들어갔다.

    원재는 사월의 손등을 꽉 움켜쥐었다. 마디 굵은 손가락이 사월의 손바닥 위로 진득하게 짓눌렸다. 붉은 물이 든 목덜미 위를 이로 잘근 씹는다.

    “정신 빠진 놈처럼 군다는 소리가 들려.”

    걸걸한 제 아버지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 음흉한 노인네는 벌써 냄새를 맡았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주제에 떵떵거리면서 여가 시간이나 보낼 것이지. 아들 뒷조사에 혈안이 된 미친 노인네였다.

    원재는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여 사월의 턱 위로 입술을 내렸다.

    “방황이 길면 못써. 네 형 꼴 나고 싶은 거 아니면, 애비 말 새겨듣는 게 좋을 거다.”

    사월이 고개를 틀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입술이 맞부딪쳤다. 벌어진 입술로 새빨간 혀가 밀려 나온다. 축축한 혀가 급하게 뒤엉켰다.

    “같잖은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아 우위에 서는 게 네 피를 들끓게 할 거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사월을 알기 전에는 그랬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쯤은 일상에 가까웠고, 사람 하나 죽이는 거 가지고는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그게 삶의 이유인 것처럼 거칠게 살았다. 당연히 누군가를 애지중지 다뤄 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자신이 사월을 알게 된 후에는 변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맞는 것도 아니었다.

    “너는 나를 닮았으니까.”

    그딴 좆같은 소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원재는 자꾸 귀에 맴도는 목소리를 잊기 위해 정신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했던 말과는 달리 품에 안긴 체온과 향기가 피를 들끓게 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철퍽. 살이 세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를 쳐올렸다. 사월의 보드라운 엉덩이가 짓눌리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

    “미안해.”

    좆 까라 그래, 씨팔. 원재는 자신이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걸,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머리를 아프게만 하는 아버지의 생각은 차치하고 품 안에 갇힌 사월에게 집중했다. 발기된 사월의 좆 기둥을 빠르게 훑었다. 사월이 허리를 몇 번 비틀더니 욕실 벽에 이마를 기댔다. 무너지는 마른 몸을 따라 원재가 허리를 굽혔다.

    “아, 아…….”

    투둑. 정액이 벽을 따라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원재가 축축해진 손으로 사월의 성기를 몇 번 더 흔들었다. 뚝뚝. 귀두에 맺힌 정액이 그대로 원재의 발등에 떨어졌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체온이 타고 올라온다.

    “후우…….”

    사월의 허벅지 사이로 단단히 발기했던 원재의 성기도 정액을 토해 낸다. 엉켜 있는 두 사람의 발밑으로 정액이 질척하게 고인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의 말은 완전히 틀렸다. 자신의 피를 들끓게 하는 건 같잖은 감정이나 깡패 새끼 같은 짓이 아니었다.

    그냥, 사월이었다.

    ***

    원재의 집에서 지내는 며칠은 충분히 잠을 자고,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재가 사월의 컨디션에 기민하게 굴었다.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 보이면 온갖 좋은 것들을 가져다 바쳤다.

    원재의 주치의는 두 사람이 지내는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기력을 회복하는 데까지는, 당연히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지중지. 말 그대로 사월을 그렇게 대했으니 말이다.

    “며칠 더 쉬어도 되는데.”

    “……그게 어떻게 쉬는 거야. 존나 피곤했는데…….”

    사월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원재와 있으면 온정신이 그에게 쏠렸다. 체온이 닿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의 것을 품고 싶어 에너지를 쏟았다. 아무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던 예전에 비해 피곤한 것은 당연했다.

    “섹스도 안 했는데, 뭐가 그렇게 피곤했어.”

    원재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있는 힘껏 끼고 살았는데 뭐가 피곤했지. 두 사람은 함께 지내는 일주일 동안 몇 번이고 몸을 겹쳤다.

    사월이 직접 원재의 것을 구멍에 맞춰 삽입하는 게 아니면, 원재는 먼저 손을 뻗지 않았다. 제멋대로 구는 거친 섹스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사월의 것을 빨고 허벅지 사이에 좆을 비벼 대는 게 전부였다. 나름 일주일을 애먹고 살았는데, 뭐가 그렇게 피곤했다는 거지.

    “……말을 말자.”

    사월은 키 작은 냉장고를 열어 주스 하나를 꺼냈다. 유통기한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무심한 손길로 뚜껑을 열어 원재에게 내민다. 가게에 올 때마다 갈증이 난다고 했던 말이 얼핏 떠올라서였다.

    “이거나 처먹어.”

    원재의 입술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갈색 유리병을 쥔 단정한 손가락이며, 살짝 붉어진 귓불, 바닥 어딘가로 어색하게 떨어트린 시선까지. 모조리 자신을 들끓게 했다. 여기만 오면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치민다. 퍼석 마른 목구멍으로 차디찬 음료수를 넘겼다.

    사월은 구석에 세워 둔 청소기 전원을 켰다. 위잉, 먼지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원재는 병 바닥에 얕게 남은 음료수를 살살 돌려 가며 가게 안을 살핀다. 날카로운 시선이 스토크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러다 벽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몇 번이고 그 위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입꼬리에 피어 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씨발…….”

    이제 사월의 필체만으로 아래가 서 버린다. 단전이 뜨겁게 끓어오르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좋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는 말이 딱 지금 들어맞았다. 눈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사월이 힐끔 뒤를 돌아봤다. 뭘 보고 또 저러는 거야. 청소기가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온 신경이 또 원재에게 전부 쏠렸다.

    “네임 지우는 거, 지금 하자.”

    원재가 포스트잇을 떼 오늘 날짜 위로 가져갔다. 두 손가락으로 접착 부분을 눌러 꾹 붙인다. 사월은 청소기 전원을 끄고 몸을 돌렸다.

    “할 수는 있는데…….”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오던 원재가 떠올랐다.

    “운동 자제해야 돼. 술도. 작업 한 번에 못 할 테니까 한 3주는 그래야 돼.”

    원재가 고개를 기울인다.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몸에 열 오르면 번지거나 수포 오를 수도 있어.”

    “아…….”

    원재가 말끝을 길게 늘인다. 데스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발끝을 까딱였다. 몸에 열이 오르면 안 된다……. 그럼 제 머릿속에 있는 건 한 가지도 실행할 수가 없었다.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운동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 이름을 써서 벽에 붙인 사월을 품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3주 가까이.

    “네임 지우지 말까.”

    “……지우고 싶은 거 아니었어?”

    되묻는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네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건, 네임을 지닌 채 평생 살아가겠다는 뜻인가? 언제고, 네임의 상대를 만나면…… 가겠다는 뜻인가? 청소기 손잡이를 엄지손톱으로 긁어댄다. 그 초조한 움직임 위로 원재의 시선이 닿았다.

    “…….”

    사월의 아랫입술이 안으로 말린다. 초조함에 마른 입술 위로 뜨거운 혀가 스친다.

    “3주나 참기는 좀 힘든데.”

    “……아.”

    사월이 허탈한 숨소리를 뱉었다. 잠깐이었지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발치 아래로 떨어졌던 심장이 다시 일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 때마다 보이니까 좀 그렇지?”

    셔츠 위로 손바닥을 가져다 댄 원재가 입꼬리를 올린다. 사월은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벗은 원재의 몸 위에 앉을 때면 옆구리에 새겨진 글자에 자꾸만 시선이 간 건 사실이었다.

    “별 미친 소리를…….”

    붉어진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목을 주무르는 척하며 몸을 돌렸다. 청소기를 제자리에 두기 위해 멀찍이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른 사월의 뒤태로 원재의 뜨거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데스크에 기대 앉아 있던 몸을 세워 바닥을 딛고 섰다. 구두굽이 바닥에 닿으며 작게 마찰음을 냈다.

    “오늘 작업 있어?”

    힐끔 눈길을 돌린 사월이 고개를 한 번 저었다. 혀로 입 안을 훑은 원재도 몸을 움직였다. 사월이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벌써 가려는 건가. 원재는 거침없이 문으로 향했다.

    달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불투명한 문 앞에 선 원재가 휙 돌아섰다. 바깥에서 쏟아지는 빛을 등진 원재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그럼 미리 할까?”

    “……뭐?”

    “네임 지우는 동안 못 하니까.”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다가오는 걸음은 거침없었다. 사월은 형형한 기세에 몸을 작게 뒤로 물렸다. 성큼성큼 원재가 간격을 좁혔다. 사월의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그런 걸…… 못 한다는 소리 한 적 없는데.”

    “아, 할 수 있어?”

    사월의 코앞으로 다가온 원재가 팔을 뻗었다. 두 손으로 뺨을 쥐고 이마 위에 입을 맞춘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온몸이 들끓는다. 흥분한 피가 제멋대로 날뛰며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그런데도 할 수가 있어? 원재는 상체를 기울여 사월의 입술 위를 꾸욱 눌렀다. 사월의 뜨거운 아랫입술을 가볍게 문 채로 말한다.

    “그래도 하자, 지금은.”

    사월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원재는 늘 말했다. 자신이 원재를 휘두르고 있다고.

    하지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원재가 이렇게 자신을 원할 때면, 거부할 수가 없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덜컹대며 흔들리는 테이블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연필꽂이가 쓰러졌다. 펜이 테이블 위를 구르며 흩어졌다. 사월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쓰던 연필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진다. 뭉툭한 연필심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툭 부러져 버렸다.

    사월은 바닥으로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만 본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달뜬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테이블에 걸터앉은 원재의 목을 더 끌어안았다. 맨 무릎이 테이블 위를 스치며 여기저기 널린 크로키 북을 툭툭 밀어 댔다.

    “후우…….”

    원재는 허리를 쳐올리면서 사월의 골반을 끌어 내렸다. 엇박자로 맞물리는 아래에서 찌걱대는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마주 보고 앉은 자세라 너무 깊이 들어왔다. 사월은 장기가 다 밀려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으흣, 아, 천천히…….”

    발기된 사월의 것에서 액이 맺혀 떨어진다. 가슴팍과 배가 온통 정액투성이였다. 접합부에도 거품이 일어 흘러내렸다. 원재가 걸터앉은 자리를 흥건히 적시고,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 위까지 뿌연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몇 번째 사정인지 몰랐다. 펠라를 시작으로 아래는 쉴 틈 없이 액을 뱉어 내고 발기하기를 반복했다. 사월은 다시 꼿꼿하게 선 좆이 원재의 아랫배에 비벼질 때마다 몸을 떨어 댔다.

    “아. 우리 사월 사장 네임 생기면, 어쩌지.”

    원재가 허리를 세게 박아 올렸다. 끈적한 소리가 구멍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사월이 아랫배에 힘을 주자, 구멍이 힘껏 조여진다. 원재가 작게 신음을 뱉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미끌어졌다.

    “내 이름…… 하, 내 이름 새기면 안 돼?”

    “……아, 으윽. 닥쳐.”

    단단한 손바닥이 엉덩이 부근을 받치고 있지만, 자꾸 힘이 빠지는 몸은 뒤로 넘어갔다. 아까 전 네임이 새겨진 옆구리를 한 번 쓸었더니 그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계속 네임에 대한 소릴 해 대는 걸 보면. 사월은 원재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왜. 생기면, 읏, 나 차 버리게? 응?”

    한동안 제대로 된 삽입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안에 달라붙는 점막이 유난히 집요했고 뜨거웠다. 원재는 머리끝까지 끓어오르는 흥분을 애써 조절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을 잃고 사월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 박아 댈 것만 같았다.

    “……그딴 거, 생겨도 상관없어…….”

    마른 사월의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댔다. 뜨거운 숨을 토하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그렇게 좋아? 장난스럽게 물으려던 말을 꺼내려던 순간, 사월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운명 같은 건……, 행복 같은 건 없어. 나한테…….”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사월은 항상 그랬다. 자신이 애정을 쏟아붓고 애지중지 물고 빨아도, 꼭 이런 쓸데없는 것에만 확신을 가진다. 내가 주는 확신은 다 어디에 가져다 버리는 거야.

    원재가 허리에 힘을 주어 안에 꾹 밀어 넣었다. 사월의 몸이 바르작 떨린다. 깊게 안을 파고든 좆이 물컹한 내벽을 짓누른다.

    새된 신음이 사월의 입에서 터졌다. 동시에 원재의 단단한 가슴팍 위로 정액이 쏘아졌다. 축 늘어지는 마른 몸을 움켜쥔 원재가 아래를 거세게 짓쳐 올린다.

    “왜 없어.”

    “으읏, 읏.”

    “내가 있는데.”

    사월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원재의 목을 감싼 팔이 달달 떨린다. 고스란히 드러난 목덜미 위로 땀이 흐른다. 뜨거운 원재의 시선이 목선을 타고 가슴팍까지 훑어 내린다.

    “네임 빨리, 지워야겠다. 하아……. 우리 사장님 너무, 불안해하시네.”

    “아아, 아…….”

    원재의 움직임에 맞춰 사월의 몸이 들썩인다. 원재가 고개를 내렸다. 희뿌연 정액으로 범벅이 된 아래. 그리고 사월의 구멍 안을 들쑤시는 자신의 좆. 허리가 뒤로 빠질 때면 작은 거품이 딸려 나온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사월의 가슴팍을 베어 물었다. 유두를 입 안에서 굴리고 이로 잘근 씹고 세게 빨기 시작했다. 사월의 몸은 하나하나 반응을 한다.

    “아, 아파……. 으흣.”

    틈만 나면 빨아 댄 탓에 가슴 쪽이 얼얼했다.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올 만큼 아래를 쑤시면서 가슴까지 괴롭히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프다는 말에 원재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 냈다. 유두 위에 맺힌 타액이 늘어진다.

    “네임 생겼어, 봐.”

    원재는 유두를 손가락으로 잡아 비볐다. 또 그 소리다. 지난번 손등에 울혈을 새겨 놓고 하던 소리. 그의 말처럼 유두 주변이 온통 붉었다.

    사월은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힘이 들어간 손가락이 유두를 쥐어짜듯 비빌 때마다 허벅지에 힘만 들어갔다.

    “아, 이제…… 그만. 그만, 하…….”

    사월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원재도 그것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었는데. 방음도 되지 않는 싸구려 문 하나만 잠가 두고 하는 섹스가 이렇게 흥분될 줄은 몰랐다.

    구멍이 자꾸만 아래를 조였다. 원재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힘없이 늘어진 사월의 다리를 당겨 몸에 더 가깝게 붙였다. 뒤로 젖혀진 사월의 상체를 끌어다 품에 가두었다. 그러곤 꽉 끌어안아 결박했다. 사월의 머리칼이 흩어지며 어깨 위를 간지럽혔다.

    “읏, 흐응……. 아.”

    스퍼트를 올리듯 허리를 정신없이 올려붙였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고 원재의 품을 파고들었다. 쿵쾅대는 심장 박동이 서로의 귓가를 울렸다. 두 사람을 버티고 선 테이블이 삐걱대며 옆으로 조금씩 밀려났다. 사월의 귓바퀴에 위에 입을 맞추며 원재가 파정했다.

    “하아, 하아…….”

    사월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울컥 안을 데우는 뜨거운 온기. 꽉 틀어막힌 아래로 빠져나가지 못한 정액이 내벽을 채운다. 한참을 정액을 토해 낸 좆이 안에서 꿈틀댔다. 밑을 가득 채우는 압박감에 사월이 허리를 뒤척였다.

    “움직이지 마.”

    흥분으로 점철된 낮은 목소리. 그 한마디에 사월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커다란 손바닥이 엉덩이를 받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야……. 빼. 내려 줘.”

    “…….”

    “미친, 야. 안 들려? 읏.”

    주먹으로 등을 내려쳐도 원재는 꿈쩍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발을 디딜 때마다 생기는 반동에 아래가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정액이 밀려나며 구멍 주변으로 찔끔 새어 나왔다. 축축해진 아래가 무겁고 얼얼했다.

    결국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 때까지, 원재는 사월을 내려놓지도, 성기를 빼지도 않았다. 욕실에 다다른 사월이 두 발을 땅에 붙이자 그제야 두꺼운 좆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정액이 흘러내렸다. 사타구니가 온통 젖었다.

    “아깝다. 그치.”

    “좆같은 소리 좀…….”

    원재는 쏘아붙이는 사월의 입술 사이로 혀를 불쑥 집어넣었다. 바둥대던 사월이 원재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며 뜨거운 혀가 뒤엉켰다.

    ***

    사월을 먼저 씻겨 내보낸 뒤, 혼자 자위를 하며 한 발 더 뺐다. 내벽에 고여 있던 정액이 마른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씻기는 내내 아랫배에 바짝 붙은 좆을 달래느라 애먹은 걸 사월 사장이 알까 모르겠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내고 씻은 원재는 뒤늦게 욕실에서 나왔다. 쪽방에 딸린 좁은 욕실에서 나오니 사월은 보이지 않았다. 허리에 대충 타월을 묶고 방을 나섰다.

    “사월 사장.”

    바깥은 어느새 캄캄해졌다. 작업실은 작은 전등만 켜져 있을 뿐, 바깥과 다름없이 어두웠다. 원재가 작업실을 한 번 훑었다. 사월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쓰지 않는 작업대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은 채였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촌스러운 간판 빛이 뒤엉켜 쏟아졌다.

    “…….”

    원재는 붉고 푸른빛이 사월의 얼굴을 물들이는 것을 잠자코 지켜봤다. 명치 쪽부터 울렁이기 시작한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아슬아슬하게 물고 있는 붉은 입술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바닥에 내팽개치듯 벗어 두었던 옷이 의자 등받이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아까 섹스를 하며 정신없이 어질러졌던 테이블도 깨끗했다. 바닥을 나뒹굴던 연필도 어느새 제자리에 꽂혀 있다. 원재는 그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재킷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어두운 작업실에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곤 사월의 앞에 가서 선다.

    온통 촌스러운 색으로 물들어 있던 사월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원재는 상체를 기울였다. 담배 끝이 맞닿고 빨간 불꽃에서 연기가 난다. 하나였던 불꽃이 두 개로 늘어났다. 사월은 자연스럽게 검지와 중지로 담배를 잡고 빨았다. 곧이어 입술 사이에서 연기가 퍼진다.

    “여기 금연이야.”

    “그럼 이거 말고 다른 거 빨아도 돼?”

    원재가 연기를 뱉어 내며 아래로 눈짓을 한다. 무엇을 뜻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챈 사월이 미간을 구겼다. 구멍도 구멍이지만, 아까 펠라를 핑계로 존나게 빨린 좆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또 빨면 아프잖아. 빨갛던데.”

    “……미친. 돌았어?”

    그렇게 미친놈처럼 빨아 대 놓고, 또 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월은 씻는 동안 힐끔 내려다본 자신의 성기가 떠올랐다.

    원재는 찡그려진 사월의 미간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사월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반팔을 입어 드러난 팔뚝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이 스친다.

    “확실히 머리가 돌 만큼 좋긴 해.”

    “너는 그냥 입을 닥쳐…….”

    “닥치면 못 빠는데.”

    사월이 필터를 잘근 씹었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자 가슴이 부풀었다. 연기와 함께 욕을 내뱉었다.

    “씨발…….”

    “담배 말이야, 담배.”

    원재가 웃는 소리에 그냥 고개를 돌려 버리는 사월이다.

    둘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태웠다. 열린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어수선한 뒷골목의 소음. 클랙슨 소리와 욕지기를 섞은 대화. 희미하게 울리는 음악 소리, 그리고 서로의 숨소리. 둘은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반쯤 태운 담배를 먼저 끈 원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월은 멀어지는 맨 등을 잠깐 바라보다 다시 담배를 빨았다. 한참 어둑한 바깥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깨 위로 따뜻한 것이 걸쳐진다. 어느새 말끔히 옷을 차려입은 원재가 사월의 어깨 위로 재킷을 둘러 주고 있었다.

    “여기는 너무 춥네.”

    “…….”

    “우리 집에 가자.”

    말없이 원재를 올려다보던 사월이 창틀 위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껐다. 작업대에서 내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원재가 끌어안는다. 체온이 맞닿자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사월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서 깨닫지 못했었다.

    여기가 얼마나 삭막하고 추운 곳인지를 말이다.

    ***

    오후 느지막이 스토크에 사월을 데려다주고 나왔을 때였다. 방금까지 사월을 향하던 부드러운 낯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사월을 마주 보고 있던 내내 미세하게 들리던 공회전. 지켜보고 있다는 듯 가게 앞을 떠나지 않던 그 소리. 원재가 신경질적인 손길로 넥타이를 끌어 내렸다.

    “사장님.”

    “하…….”

    짜증 섞인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조수석 부근에 선 채 원재를 응시하는 시선은 집요하고 또 올곧다.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노인네가 참 아들 사생활에 관심도 많으셔. 원재는 넥타이를 풀어 든 채로 양 비서를 지나쳐 간다. 목을 죄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호흡이 갑갑해진다.

    “도로 한복판에서 정신 나간 짓을 잘도 했더구나.”

    골프채를 들고 스윙 자세를 취하던 남자가 무심히 말을 던진다. 원재는 소파에 등을 깊이 묻었다. 편하게 꼰 다리를 까딱이며 대답을 미뤘다.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사월에게 해코지를 할까 따라온 것뿐이라 협조적으로 굴 생각은 전혀 없다.

    “어릴 땐 하지도 않던 짓을 하기에 사춘기라도 온 줄 알았지. 헌데 사내새끼 하나한테 홀렸다지?”

    골프채를 들고 회전하는 상체에는 흔들림이 없다. 원재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걸친 채, 검지로 이마를 긁었다. 진한 디퓨저 향에 머리가 다 아팠다.

    “그렇게 밑바닥에 있는 애들은 적당히 놀다 치워라. 괜히 골치 아파지니까.”

    “…….”

    “혹시 아니. 네 네임 생겼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을지도 모를 일이지.”

    “뭔 말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더는 역겨워서 들어 줄 수가 없었다. 노인네들 방식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구리지. 장 사장이나 아버지나 다를 바 하나 없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원재가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신을 새기는 놈이라지? 그럼 네 이름 새기는 거야 일도 아닐 테고. 길바닥에서 태어났으니, 네 옆구리에 새겨진 걸 제 이름이라고 우기면 그만일 테니.”

    저 노인네는 몰라도 한참 몰랐다. 지금 매달리는 쪽이 사월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회장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표정엔 큰 변화가 없지만 불쾌한 기색이었다.

    “뒷조사를 하다 마셨나.”

    “…….”

    “매달리는 것도, 그 사람한테 이름 새기고 싶은 것도 접니다.”

    “성 사장.”

    “발목 잡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구는 거. 당신 아들이에요.”

    성 회장이 완전 몸을 돌려 섰다. 골프채를 바닥에 딛고 삐딱하게 원재를 응시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자신만큼 단단하고 큰 체격이었다. 좋은 걸 처먹어 대니 얼굴도 반질반질했다.

    원재는 얼이 빠진 얼굴을 힐끔 보곤 몸을 틀었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경고하지 않았니. 같잖은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그렇게 코 꿰이면 네 형 꼴 난다.”

    “씨팔, 회장님.”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 회장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남처럼 대하는 것도 모자라 버릇없이 구는 아들을 보니 화가 나기라도 했나. 나를 이따위로 키운 게 누군데. 원재는 어금니를 꽉 물고 한 글자씩 짓이겨 뱉었다.

    “형은 아버지가 죽인 겁니다.”

    “…….”

    그깟 감정에 휘둘린 게 아니고,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가볍게 맞받아친다.

    “여유롭게 골프채나 휘두르실 때가 아닐 텐데.”

    “뭐야?”

    “짐이나 챙기세요. 방 뺄 준비하셔야지.”

    원재의 서늘한 눈길이 성 회장의 집무실 내부를 슥 훑는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원재는 여유로운 웃음을 걸친 채 사무실을 나섰다. 늘상 기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양 비서를 지나친다. 닫힌 문 뒤로 무언가 깨지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때가 된 것 같다. 아버지가 사월 주변을 맴돌며 좆같이 나온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간 발톱을 숨기고 준비해 오던 일들을 시작할 때가 된 듯싶었다. 원재는 아직 지하실에서 피비린내를 맡고 있을 최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얼마 가지 않아 끊겼다.

    ―예, 사장님. 또 뭔 일이신데요.

    “형. 이제 슬슬 움직일까.”

    ―……알겠습니다.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힐 때까지 회장실에서 들리는 파열음은 끊이지 않았다.

    ***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와 같지 않고, 또한 사월을 향한 게 같잖은 한철 감정이 아님을.

    아직 잠에 취해 이불에 푹 파묻힌 마른 인영을 끌어안았다. 답답한지 사월이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뒤척였다. 뜨끈한 온기가 품에 안기자 아랫배 부근이 끓어올랐다. 구겨진 미간 위로 입을 진득이 맞췄다.

    “이제 일어나. 너무 오래 잤어.”

    “……피곤해.”

    평소엔 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 자꾸만 늘어졌다. 계속 이불을 파고들게 됐다. 사월에게도 나름 입장이 있었다.

    작업실에서 내내 시달렸던 게 끝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섹스는 계속 이어졌다. 현관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주방 식탁 위에서까지 했다. 무슨 정신으로 거기까지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식탁 한쪽에 있던 커피 캡슐들이 모조리 흐트러져 있었다. 그간 몸을 섞지 못한 것을 보상받듯, 앞으로 작업하는 동안 하지 않을 것들을 미리 하듯. 정신 나간 새벽을 보냈으니 기력이 딸리는 것도 당연했다.

    피곤이 계속해서 수마로 사월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원재의 한마디에 불쑥 현실로 끌려왔다.

    “우리 데이트하자.”

    데이트. 그 한마디에 사월은 잠이 달아난 눈을 멀뚱히 깜빡였다. 멍한 사월의 얼굴을 내려 본 원재가 팔을 뻗었다. 손바닥 안으로 뜨끈한 뺨이 잡힌다. 엄지로 볼 위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백번 양보를 한다고 쳐도, 사월에겐 한철 감정일 수가 없다. 이렇게 예쁜 걸 눈앞에 두고 어떻게? 그간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아까운 지경인데.

    “발목 잡고 싶은 게 누군데…….”

    사월을 눈에 담으며 저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머릿속에서 아버지가 건넨 말이 계속 맴돌아서였다.

    “뭐?”

    되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월 사장에겐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알려 주고 싶으니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차에 타 안전벨트를 할 때까지. 사월은 제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았다.

    원재가 큰 손으로 꼼꼼하게 사월을 씻기고, 어설픈 손길로 식사를 차려 먹여 주기까지 했다. 받아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식탁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해, 겨우 그릇을 비웠다.

    옷을 입을 때도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다 나른 옷을 옷걸이째로 이것저것 대보더니, 거침없이 옷을 갈아입혔다.

    지금 나를 데리고 뭘 하냐는 질문에도 원재는 답을 하지 않았다. 어디 가냐는 물음엔 당연히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월은 그냥 빠르게 지나쳐 가는 바깥 풍경에만 시선을 뒀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멈춘 차 앞으로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사월은 내내 시트에 깊게 묻고 있던 허리를 곧추세웠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희미한 탄성이 터졌다. 늘상 무심하던 표정이 조금 상기된 채였다.

    부서지는 파도를 흥미로운 영화를 감상하듯 신기하게 훑는다. 벨트를 풀고 내려서 봐도 될 텐데. 그럴 생각까지는 하지 않은 건지, 상체가 조금씩 앞으로 기울기만 했다. 그런 사월의 변화를 알아챈 원재는 조용히 시동을 꺼 주었다.

    한참이나 사월은 파도를 바라보고, 원재는 그런 사월을 구경했다. 잡은 핸들 위로 얼굴을 기댄 채 노골적으로 관찰하고 있음에도, 사월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저 밀려오는 파도에 시선을 빼앗긴 채였다.

    “나 잊은 건 아니지?”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사월이 놀라며 고개를 틀었다. 핸들에 기대 자신을 보고 있는 원재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태 벌어져 있던 입을 딱 다물었다. 얼마나 파도에 정신이 팔렸던 거지. 무언가를 몰래 훔쳐보던 걸 들킨 사람처럼 낯빛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내릴까.”

    그러자 사월이 몸을 틀어 손잡이를 당겼다. 원재가 작게 웃으며 벨트를 풀어 주었다. 안 그런 거 같으면서도 사월은 은근히 손이 많이 갔다. 섹스를 하고 지쳐 잠든 채 품을 파고들거나, 목이 마르다고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그럼 그게 몇 시더라도 원재는 미지근한 물을 떠 왔다. 아마 사월은 피곤에 취해 하나도 기억을 못 할 테지만 말이다.

    달칵, 벨트가 풀리자 사월은 그제야 자유롭게 문밖으로 나섰다. 비린 바닷바람이 머리칼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사월은 또다시 바다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렇게 넓고 푸르고 시원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몰라,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람만 맞고 있었다.

    “이리 와 봐.”

    원재가 먼저 모래사장으로 발을 디뎠다. 베이지색 모래 사이로 검은 구두가 푹 빠졌다.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는 길쭉한 뒷모습을 보다, 사월은 뒤늦게 걸음을 옮겼다.

    “아…….”

    느낌이 이상했다. 진흙을 밟는 것 같으면서도 거친 느낌이었다. 밟을 때마다 모래 알갱이가 서로 부딪혀 사각댔다. 늦은 밤, 담배를 태우러 갔던 놀이터에서 밟았던 모래 따위와는 달랐다. 더 부드럽고 건조하고, 또 축축했다.

    몇 걸음 먼저 옮긴 원재가 모래 위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러곤 뒤를 돌아 어정쩡한 자세로 걷고 있는 사월에게 손짓했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사월은 한참이나 걸렸다. 발밑에 사각대는 모래를 한 번, 철썩 부서져 거품을 내는 파도를 한 번. 바람을 맞아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자신을 기다리는 원재를 한 번. 온통 사월의 시선을 빼앗을 것 천지였기 때문이다.

    옆에 나란히 앉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음성에도 묘한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신기해.”

    “응?”

    사월이 모래를 한 움큼 쥐어 올리자, 손가락 사이사이로 고운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손바닥을 펼치자 움켜쥐고 있던 것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양만 남아 있었다. 사월이 손바닥을 맞대 살살 털었다. 까칠한 모래 알갱이의 감촉이 여실히 전해졌다.

    “처음 와 봐서.”

    원재가 사월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아버지와 맞서게 되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어 결정한 외출이었다. 둘이 한적하고 오붓하게 있고 싶어 선택한 목적지였다.

    한 번도 바다에 와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어떤 경우의 수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엄청 시끄럽다, 파도 소리.”

    얼핏 불평인 듯하지만, 음성에는 설렘이 담겨 있다. 원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 사월에 대해 뒷조사를 했을 때, 세 장을 겨우 채웠던 삶의 흔적이 떠올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 흔한 친구도 없고, 취미 같은 것도 없었던 삭막한 삶. 그건 바다에 놀러조차 오지 못할, 여유 없던 삶이었던 거다.

    “또.”

    “……뭐가?”

    “또, 못 해 본 거.”

    사월의 결핍된 삶을 마주할 때면 원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비가 오는 밤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 시절의 환영을 보는 이 사람을. 사는 곳에서 단 몇 시간이면 올 수 있는 바다에 처음 와 본 이 남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채워 주어야 하는 걸까.

    “같이해 보자. 나도 못 해 본 거 많거든.”

    “……너도?”

    대답대신 작게 끄덕이는 고개. 원재는 긴 팔을 뒤로 뻗어 모래 위에 깊숙이 파묻는다. 고개를 젖혀 뜨거운 빛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사월의 시선이 원재의 감긴 눈 위에 잠깐 머무르다 모래로 엉망이 된 구두 위에 닿았다. 의아함이 사월의 얼굴에 스친다. 자신이 본 원재는 부족한 것, 경험해 보지 못한 것 없이 자랐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 자전거도 타 본 적 없어. 어릴 땐 아버지한테 앙심 품은 새끼들이 어떻게 할까 봐, 깡패 새끼들이 나 태우러 오고 가고 했거든.”

    사월은 가만히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끄럽게 귓가에 울리던 파도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덤덤한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뒤에서 중심 잡아 줄 위인도 아니었고.”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던 원재의 결핍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오토바이도 타고 차도 끌면서, 그건 끝내 못 타 봤네.”

    바다의 축축한 습기를 담은 것 같은 목소리. 말끝에 작은 웃음소리가 딸려 왔다. 사월의 시선이 다시 원재의 얼굴로 향한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서 짧은 한숨이 터졌다. 사월은 따가운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굴곡진 옆얼굴을 눈에 담았다.

    “사월 사장은 또 없어?”

    “……나는…….”

    내가 해 보지 못한 것……. 해 본 적 없는 것보다, 경험해 본 걸 헤아리는 편이 빠를지 몰랐다.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꼭 하고 싶은 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위태롭게 발을 떼며 자전거 핸들을 잡은 원재의 뒤에 서서 중심을 잡아 주는 것.

    “너무 많아서 말 못 해.”

    그렇게 둘러댄 사월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원재의 느릿한 시선이 그 위에 닿았다. 그러곤 입꼬리를 올려 작게 웃는다. 단순히 해 본 게 없어 부끄러워한다고 여긴 듯했다.

    “괜찮아. 이제 하나씩 해 보면 돼.”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음성이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걸까. 사월은 원재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모래사장을 짚은 손바닥 아래로 알갱이가 콕콕 박혀 왔다. 그럼에도 시선은 올곧게 원재의 붉은 입술 위에 고정된 채였다.

    “나랑 같이.”

    말을 마치자마자, 입술이 맞닿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혀끝이 닿는 것이 여실이 느껴졌다.

    우리의 결핍을 한데 모으면, 그걸로 충만해지지 않을까. 사월은 생각했다.

    사월의 상체가 온전히 원재 쪽으로 기울었다. 고개가 틀어지고 입이 벌어지자, 이윽고 혀가 뒤엉킨다. 비스듬한 몸을 지탱하던 팔을 거둔 원재가 사월의 뺨을 쥐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손바닥에 잔뜩 묻어 있을 모래를 깨닫고 허공에 멈추어 선다. 짧고 깊게 입을 맞추고 나서, 사월이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짠 내를 머금은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휙 스쳐갔다.

    “뒤질 때까지, 다 못 해 볼지도 모르는데.”

    못 해 본 게 너무 많아서. 사월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원재가 몸을 바로 세우고 두 손을 탈탈 털었다. 손바닥에 박혔던 모래가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신경 쓰이게 콕콕 쑤시던 것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오래 봐야겠네. 우리 둘 다 못 해 본 게 많아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뒤로, 어딘가 걸려 있던 숨이 그제야 확 틔었다. 느리고 깊게 숨을 들이켠다. 바다 내음에 섞인 사월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사월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덜컥 대답을 해 버리면, 정말 나중에라도, 혹시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 이 약속이 떠오를 것 같아서. 그건 너무 비참할 테니까.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성원재라는 사람을 믿어도 괜찮다는 걸. 길지는 않아도 그간 체온을 나누고 눈빛을 나누면서 충분히 느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습관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사월은 그래서 오늘도 뒷걸음질 칠 자리를 마련하고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따갑게 닿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팔목을 잡아 오는 손길이 있다. 고개를 떨어트리자 올곧게 부딪쳐 오는 시선.

    “이렇게 손을 많이 타서 어떡해. 나 없으면 안 되겠네.”

    사월이 그은 선을 알고 있다는 듯, 원재는 가뿐히 그것을 뭉개 버린다.

    바지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털어 내는 내내, 사월은 울렁이는 속을 견뎌 내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처음엔 두렵고 무섭기만 하던 감정.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는, 한평생 배우지 못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늘 방파제를 세워 막았던 그 파도를 이번엔 온전히 맞고 서 있었다. 사월은 파도에 잠식되어 흠뻑 젖었다.

    원재는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을 보듯 사월을 감상했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이 모래사장 위를 거니는 마른 몸 위로 비쳤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무심하게만 느껴지던 눈이 바다 이곳저곳에 닿는다. 큰 탄성이나 웃음은 없어도 충분히 모든 것에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원재에겐 더없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예쁘다…….”

    모래사장 위를 천천히 걷던 사월의 무릎 아래까지 파도가 밀려왔다. 무방비하게 젖은 사월은 멈칫하더니 뒤로 천천히 물러난다.

    원재는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관찰했다. 진흙 같은 모래 위로 발자국을 찍으며 멀어지던 사월이 조심스럽게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그러고는 발목까지 덮은 바지를 걷어 올린다. 손가락 끝에 신발을 걸쳐 들고 느릿하게 다가온다. 쏟아지는 빛에 원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젖었어.”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뒤섞인 낮은 음성. 따가운 눈을 감았다 뜨자 머리를 쓸어 넘기는 사월이 시야에 담겼다. 원재는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말을 해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건조한 입 안에서 혀가 농밀하게 움직인다.

    사월이 몇 걸음 더 가까워졌다. 원재는 팔을 뻗어 축축해진 바짓단을 더 접어 올린다. 물을 머금어 무릎 바로 아래까지 짙은 색을 띤 청바지가 빳빳하게 접힌다. 하얀 종아리 위로는 물기가 흥건했다.

    “벌써 이렇게 젖으면…….”

    원재가 엄지로 발목 부근을 살살 매만진다. 그 은근한 접촉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사월이 어깨를 움츠렸다. 몸을 살짝 뒤로 무르려고 했지만, 찰나에 발목에 감긴 손. 원재의 뜨끈한 체온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걸음을 옭아맨다.

    “벗어야겠네. 그치.”

    시선이 가운데에서 맞부딪쳤다. 철썩, 철썩. 파도가 부서져 거품이 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

    분명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들어온 호텔이었다. 씻고 젖은 머리를 채 말리지 못한 두 사람이 침실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순간. 시선이 뒤섞이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아…….”

    풀어헤쳐진 가운 자락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은 원재의 다리 사이로 검은 뒤통수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원재는 근육이 바짝 선 턱으로 신음을 짓씹었다.

    “후, 으읏…….”

    벌어진 원재의 허벅지를 하얀 손이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사월의 작은 머리통을 붙들고 허릿짓을 하고 싶었다. 작은 입 안에 좆을 가득 쑤셔 넣고, 정액을 쏟아 입술 아래로 희뿌연 액체가 줄줄 흐르는 꼴이 보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욕심껏 움직였다간 사월이 겁을 먹을 게 분명했다. 지금도 자꾸만 이를 세우는 서툰 사람에게 그런 짓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접은 원재는 고개를 젖히고 긴 신음만 토해 낼 뿐이었다.

    “으음.”

    츄읍. 허벅지 사이로 고개를 푹 처박았던 사월이 얼굴을 뒤로 무른다. 붉고 축축한 입술 사이로 단단한 좆을 뱉었다.

    사월의 타액에 범벅이 된 제 성기를 내려다보자 금방이라도 사정을 할 듯했다. 좆에서 아랫배까지 이어진 검붉은 핏줄이 도드라진다. 원재가 간헐적으로 탄성을 씹어뱉으며 사월의 얼굴의 쥔다.

    “우웁.”

    사월이 눈을 치켜떠 원재를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새빨간 점막 안으로 좆을 삼켰다. 뿌리 끝까지 감싸는 뜨겁고 축축한 촉감.

    사월 사장, 오늘 작정을 한 건가. 아깐 탁 트인 바다에서 입을 맞추지를 않나, 분위기가 야릇해지니 자진해서 무릎을 꿇지 않나. 뭐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어 다 받아 주긴 했지만, 이제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듯했다. 원재의 눈은 이미 실핏줄이 다 터져 충혈된 채였다.

    “오늘 왜 이렇게, 읏, 예쁜 짓을 많이 해.”

    “으웁…….”

    “후우―, 안 그래도, 예쁜 게.”

    귀두가 목구멍에 툭 걸쳐진다. 자극을 느낀 원재가 힘을 바짝 주자 엉덩이에 근육이 잡혔다. 꼭 아랫구멍에 박아 대는 기분이었다.

    삼키지 못한 타액 사이로 프리컴이 섞여 들었다. 사월은 무릎을 고쳐 꿇고 원재의 허벅지를 세게 움켜쥐었다. 탄탄한 피부가 짓눌리며 희미하게 붉어진다. 아마, 사월도 흥분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원재는 생각했다.

    “나 봐, 계속.”

    목구멍에 걸리는 이물감에 사월이 눈을 찌푸리며 질끈 감자, 그 위를 엄지가 은근하게 훑고 지나간다. 명령에 가까운 목소리. 사월은 눈물을 머금은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정말 요령 없는 펠라였다. 그럼에도 원재는 그 어떤 행위보다 흥분한 상태였다.

    “읏.”

    자꾸 이를 세우는 것도 씨팔, 꼴리고 난리야. 원재가 혀를 내어 입가를 훑었다. 흥분에 찌든 한숨이 자꾸만 터졌다.

    버티고 있던 허벅지가 자꾸만 잘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사정해 버릴 것 같았다. 아랫배부터 찌릿한 감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충돌처럼 핏줄이 선 손을 뻗어 사월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읍.”

    더는 간격이라고 부를 만한 틈이 없었다. 음낭까지 입술이 닿아 짓눌렸다. 사월이 미간을 찌푸리고 숨을 헐떡였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입술, 울음기가 스민 눈, 채 말리지 못해 축축하고 헝클어진 머리, 살짝 헐겁게 묶인 가운, 허벅지를 움켜쥐어 끝이 붉은 손가락. 사월의 모든 게 원재의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아…… 씹.”

    본능적으로 허리를 쳐올릴 뻔했다. 겨우 참은 원재가 뒷목을 감싸 쥐고 슬쩍 밀어낸다. 반쯤 토해진 좆은 타액으로 번들댔다.

    사월은 입술에 힘을 주어 더욱 성기를 조였다. 공기가 함께 들어찬 뺨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원재는 볼을 살살 눌렀다.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월이 눈을 감자 눈꼬리에 맺혔던 눈물이 툭 떨어진다. 광대를 타고 미끄러진 눈물은 원재의 손가락에 닿았다.

    “읏.”

    다급하게 사월의 어깨를 잡아 뒤로 물리고, 좆 기둥을 움켜쥐었다. 내내 속을 들끓게 하던 정액이 터져 나왔다. 원재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좆을 아랫배에 바짝 붙여 흔들어 댔다.

    투둑. 정액이 사방에 튀었다. 애써 씻고 나온 원재의 가슴팍에도, 사월의 가운에도, 무릎에도 희뿌연 액체가 흥건해졌다. 성기를 잡아 몇 번 더 흔들어 사정감을 털어 낸 원재가 시선을 올렸을 때.

    “하…….”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말간 얼굴 이곳저곳을 더럽힌 정액이 주륵 흘러내린다. 뺨에서부터 턱 끝까지 맺힌 끈적한 액이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야할 수가 있지. 어떻게 방금 사정을 했는데도 또 아래를 뻐근하도록 만들 수가 있어. 내가 진짜 사월 사장한테 미친 건가.

    손등으로 정액을 쓱 닦아 낸 사월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왜 웃어.”

    “글쎄…….”

    어설프게 좆을 빠는 사월 사장 얼굴이 너무 예뻐서? 얼굴에 튄 정액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이제 먼저 스킨십을 할 줄도 아는 게 기특해서? 이유는 너무 많았다. 딱 하나 짚어 내기 어려울 만큼.

    “사월 사장이 너무 못 빨아서 그렇잖아.”

    웃음기가 묻은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곤 정액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끌어왔다. 허벅지 사이로 당겨 온 하얀 얼굴. 허리를 숙여 그 위로 입을 맞췄다. 눈썹, 눈두덩, 콧대, 볼, 입술…….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씨발.”

    욕지기를 뱉으면서 붉어진 귓가에 입을 맞추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사월에게도 원재에게도 잊기 힘든 밤이었다.

    ***

    원재의 혀가 훑고 지나간 곳마다 울혈이 가득했다. 온몸이 얼얼했다. 그럼에도 사월은 손 아래 느껴지는 체온에 온 신경을 쏟았다.

    원재의 몸 위에 올라타 단단한 가슴을 짚은 자세였다. 땀으로 손이 미끌거리자, 원재가 손등을 강하게 휘어잡았다. 정액으로 엉망이 된 좆을 반쯤 문 구멍이 뻐끔댄다.

    “이상, 아……, 이상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사월은 천천히 골반을 낮추어 온전히 성기를 삼켰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내벽을 쿡쿡 찌르는 귀두에 몸이 움찔댄다. 주름을 밀고 들어오는 단단한 좆이 그대로 느껴진다. 구멍 입구를 짓누르며 빨려 들어가는 뜨거운 살덩이.

    “흐응, 읏.”

    성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사월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 그딴 감정은 불필요하고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남자를 만나고, 아니 정확히는 원재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했을 때부터. 사월은 자꾸만 발정 난 짐승같이 굴었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섹스도 싫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구멍을 혀로 훑거나 좆을 빠는 행위 따위는 부끄럽지 않게 됐다. 정말 이상했다.

    “아, 가득 찼어…….”

    무지에서 자라난 욕망은 무섭도록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이런 욕구는 처음이라 사월은 스스로가 낯설었다. 처음엔 손가락을 받는 것만으로도 끙끙 앓았다. 하지만 지금은 구멍을 조여 좆이 안에 가득 들어차는 쾌감을 느끼며 더 갈구했다.

    “흐으…….”

    허리를 눌러 뒤로 밀듯 흔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좆을 삼킨 구멍 주변엔 작게 거품이 일었다. 사월은 조금 더 빠르게 허리를 흔든다.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이성이 날아간 자리에 남은 건 본능뿐이다.

    “어디가 좋은지……, 말해 줘.”

    “으응, 하아…….”

    신음 또한 참을 생각이 없었다. 모든 감정의 스위치를 끈 두 사람은 본능만을 따르고 있었다. 오돌토돌한 내벽 깊숙한 곳에 귀두가 닿자, 사월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무너트렸다. 원재의 품에 기대 숨을 색색대면서도 엉덩이를 부비적거렸다.

    “으읏, 으응…….”

    “여기?”

    원재가 허리를 세게 쳐올렸다. 대답하듯 구멍이 바짝 조였다. 몇 번 사정액을 토해 낸 사월의 것에서 또다시 액이 질질 흘렀다.

    “하, 응…….”

    사월이 이럴수록 미쳐 버릴 것 같은 사람은 원재였다. 좆 길을 내는 걸로도 빠듯하던 구멍이 이제는 바짝 조이며 박아 달라 보채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길게 세워 훑었다. 입구 근처로 액이 줄줄 흘러 댔다.

    원재가 사월의 마른 허리를 꽉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몸을 뒤집어, 사월의 몸 위에 올라탄다. 아래는 여전히 연결된 채였다.

    상기된 얼굴의 사월은 발버둥을 치며 흥분을 쫓는다. 원재는 이제 절제하기가 조금 곤란해졌다. 거친 동작으로 잘게 떨리는 마른 다리를 어깨 위에 걸치고 허릿짓을 해 댔다.

    “읏! 으응, 아…….”

    “아, 씹……. 더, 세게 박아 줄까, 응?”

    사월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흥분해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축축하게 젖은 입구와 내벽이 온통 간지러웠다. 구멍을 바싹 조여도 간지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꾸만 애가 닳았다. 더 세게, 더 깊이……. 내벽 깊숙한 곳에서 갈증이 밀려왔다.

    “하읏, 읏! 안이, 안에, 간지러워…….”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잔뜩 달라붙는다. 거품이 일며 쿨쩍대자 축축하고 야릇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원재가 사월의 두 다리를 그대로 밀어 올려붙인다. 오금 뒤를 틀어쥐어 피부가 빨갛게 물들었다. 평소라면 내내 신경 쓰였을 붉은 자욱도 원재의 안중에 없었다. 허리를 내리꽂듯 깊은 삽입이 이어진다. 침대가 작게 흔들리는 소리가 뒤섞인다.

    “미치겠네…….”

    “……으읏.”

    “눈 떠, 사월 사장. 나 봐.”

    온몸이 뜨겁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질끈 감은 눈두덩 위로 원재가 입을 맞춘다. 사월은 눈을 뜨기는커녕 입술을 세게 말아 물었다. 철퍽. 엉덩이 위로 선이 굵은 골반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하얗던 피부가 분홍빛을 띠었다.

    “하아, 하…….”

    “나 좀 봐, 봐 줘.”

    입술이 얼굴 곳곳에 내려앉았다. 사월이 고개를 틀면 목덜미 위에 앉아 진득하게 살갗을 훑었다. 그러곤 다시 턱을 타고 올라와 사월의 눈꺼풀을 두드린다.

    눈 보고 싶어. 같이 가고 싶어. 원재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애가 닳은 목소리로 하는 재촉. 발가락이 안으로 굽을 만큼 쾌락을 온몸으로 맞던 사월이 힘겹게 눈을 뜬다. 흥분 어린 눈물이 눈꼬리에 맺혔다. 원재가 혀로 눈가를 진득하게 핥았다.

    “사월아…….”

    시선이 마주치고, 낮은 목소리로 사월의 이름을 뱉은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사정했다. 뜨거운 것이 배 위에, 허벅지에, 엉덩이 사이에 후두둑 떨어진다.

    사월은 아랫배가 볼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벌써 몇 번째 사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안을 제대로 긁어내지 않아 정액이 가득했다. 몸 안에 뜨거운 것이 차오르고 결핍으로 점철되어 있던 속이 충만해진다.

    힘이 잔뜩 빠진 사월의 다리가 시트로 아무렇게나 늘어졌다. 원재는 사월의 위로 푹 몸을 파묻었다. 맞물린 아래에선 차마 빠져나오지 못한 정액들이 좁은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둘은 땀에 젖은 몸을 끌어안은 채, 서로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왜 이렇게 오물거려.”

    “하아, 하아…….”

    그야 안이 가득 찼으니까 그렇지. 사월이 대답하려던 찰나 신음이 대신 터져 버렸다. 그러자 내벽 깊숙한 곳에 박힌 성기가 움찔댄다. 사월은 축 늘어진 채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왜 또, 또 서는데.”

    “몰라.”

    원재가 허리를 뭉근하게 돌린다. 정액으로 가득한 내벽 안에서 좆이 움직일 때마다 물기 가득한 소리가 들린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정액이 안으로 꾹꾹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사월이 아랫배를 더듬거렸다. 손바닥 아래로 크고 단단한 원재의 윤곽이 그대로 전해지는 착각이 일었다.

    “야, 이제 빼……. 안에 다 찼어. 못 한다고.”

    “왜. 비 그칠 때까지 하자.”

    사월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반쯤 커튼이 처진 창밖으로 빗줄기가 사납게 떨어지고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며 창밖을 본다.

    시선을 다시 잡아끌기 위해 원재는 목덜미를 느릿하게 핥았다. 뜨거운 타액이 길을 내며 지나갔다. 어깨가 움츠러들며 다시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제야 원재의 입꼬리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린다.

    “안에 빼 줄 테니까.”

    빼 준다면서……. 말과는 다르게 이미 안에 들어찬 좆을 더 꾹 밀어 넣는다. 사월의 허벅지가 밀려 무릎이 구부러진다.

    원재는 팽팽하게 펴진 구멍 주변을 느릿하게 쓸었다. 손가락에 정액이 묻어 축축해지자, 구멍을 비집고 검지를 눌러 넣는다. 그러자 정액이 울컥 새어 나왔다. 엉덩이골과 침대 시트가 흠뻑 젖었다.

    “씨발……. 비가 언제 그칠 줄 알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원재가 작게 웃는다. 좋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원재와 달리 사월은 내심 심각했다. 사정을 했음에도 여전히 큰 좆에, 손가락까지 받고 있는 구멍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걱정은 무색했다. 검지가 한 마디나 안을 파고들어 정액을 긁어냈다. 구멍은 뻐끔대며 조금씩 입구를 늘려 착실히 손가락을 받아 냈다.

    “하, 미친…….”

    원재는 연신 욕을 짓씹었다. 욕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월은 섹스 내내 자신을 밀쳐 내지도 않고, 싫다고 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힐 만큼 온전히 흥분을 느꼈다. 이건 원재가 그토록 바라 왔던 것이었다.

    거기다 이제는 스스로 포인트를 찾아 허리를 흔들기도 했다. 사월은 전혀 둘러보지 않던 자신의 감정에 조금씩 솔직해지고 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 가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랄까. 원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끝에는 역시 절절한 고백이 뒤따랐다.

    “나, 사월 사장 너무 좋아.”

    “……미친.”

    안을 짓궂게 긁어내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내벽을 짓누른 성기가 다시 발기하기 시작한다. 딱딱해지면서 안을 꽉 채우는 압박감.

    사월은 원재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엉덩이가 완전히 들리고 정액이 등허리까지 흘러내린다. 그건 사월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답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에 대한.

    바깥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질 무렵 사월은 겨우 욕실에서 나왔다. 갑자기 또 불이 붙어 몸을 더듬는 손길을 겨우 떨쳐 냈다. 먼저 샤워를 마친 사월은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온통 축축하게 젖은 시트에 누울 수가 없었다. 헐거운 가운 끈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터벅대는 걸음으로 소파까지 다다라 몸을 엎드렸다. 푹신한 가죽 위로 볼이 눌린다.

    “아, 피곤해 뒤지겠네…….”

    목소리 끝이 다 갈라졌다. 엎드린 채로 눈 주변을 꾹꾹 눌렀다. 정사의 여파가 상당했다. 오늘따라 뭔가에 홀린 듯 본능에 따랐고, 원재 또한 그에 맞춰 이성을 잃은 듯 거칠게 움직였다. 온몸이 욱신대고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힘없는 팔을 눈앞에 늘어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욕실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느긋하게 뱉었다.

    “뭐지…….”

    손목뼈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붉은 선이 눈에 들어왔다. 길이도 다르고 모양도 달랐다. 얼핏 보면 어딘가에 긁혀서 생긴 상처 같았다. 손톱에 긁힌 건가, 아프지는 않은데.

    의아함을 품은 것도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관계 내내 원재의 입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울혈을 남기려다 생긴 자국일지 몰랐다. 생각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자꾸만 흐트러지는 정신을 놓은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투둑, 투둑.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