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다이나믹 블랙
좁은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사월은 어렵사리 입술을 떼었다.
“……어떻게?”
예쁨이고 애정이고 사랑이고. 그런 낯간지러운 건 살면서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게 도대체 어떤 건지, 사월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냥 나랑 한번 자 보고 싶어서 찾아오는 깡패가 말하는 ‘예뻐해 준다’는 행위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사월의 손바닥에 얼굴을 기댄 원재가 느릿하게 시선을 밀어 올렸다. 쌍꺼풀이 짙게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
뜨거운 시선이 사월의 얼굴 곳곳을 훑어 내린다. 마치 애무를 하듯 느릿하게 타고 내려온 눈길이 입술에 진득하게 정착했다. 원재가 팔을 뻗어 사월의 목덜미를 가볍게 거머쥐었다. 손바닥 안으로 타투의 꽃잎 부분이 온통 감싸졌다.
슬쩍 힘을 주자 사월의 상체가 무너졌다. 바닥을 짚어 겨우 그의 몸 위로 넘어지는 꼴을 면했다. 한 뼘에서부터 줄어든 간격은 서로의 숨소리가 입가에 퍼질 만큼 가까워졌다.
원재는 고개를 틀어 올렸다. 푸석해진 입술 위로 뜨거운 체온이 닿았다. 사월의 뒷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것 또한 애써 외면했다. 두 사람의 체온이 맞물려 주변 공기가 들끓듯 뜨거워졌다.
그때 사월이 꾹 눌린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었다. 혀끝에 원재의 뜨거운 살덩이가 닿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원재가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원재의 목구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한계임을 깨달았다.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다급하게 풀었다. 손바닥이 사월의 팔뚝 쪽에 닿았다. 그대로 잡혀 상체가 뒤로 밀린 사월은 눈을 감고 혀를 작게 내민 채였다. 그 광경을 올려다본 원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비틀었다.
“너는 진짜…….”
“…….”
한참이나 침묵이 맴돌았다. 사월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두려웠다.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몸이 달아 천박하게 감기는 싸구려라고 취급하는 건 아닐까. 아님 처음부터 이 사람의 목적이 잠자리였다면, 좀 더 쉽게 나를 범하려고 하지 않을까.
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나쁜 짓을 하고 체벌을 기다리는 것처럼 바닥 어딘가로 불안한 시선을 떨어트렸다.
이 남자에게 나 같은 심심풀이가 한둘이 아닐 텐데. 그냥 한번 자 볼 생각에 찔러 본 걸 수도 있는데, 난 왜 이렇게 동요하게 되는 거지. 예뻐한다는 그 한마디가 도대체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기에……. 사월의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사월이 사는 세상은 삭막하다.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되고, 진심을 주어서도 안 되고, 기대도 해선 안 되며, 버릴 때를 알고 가차 없이 잘라 내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사월은 다짐했다. 그의 다정함에 속지 않겠다고. 난생 처음 듣는 설탕 발린 말은 오직 나를 구워삶으려고 한 말이라고. 그가 말하는 예뻐한다는 뜻은, 아껴 주고 보듬어 준다는 게 아니라……. 저속한 포르노에서 할 법한 변태적인 말일 거라고.
“이게 아냐? 그럼 가르쳐 줘 봐. 네가 말하는 예쁨이 어떤 건지.”
그렇게 치부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월은 이편이 나았다. 앞으로 그를 마주할 동안에도, 또 그가 제게 관심을 뚝 끊어 버린 후에도 헛된 기대를 품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하면 돼?”
사월이 손을 뻗었다. 지퍼를 내리는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말릴 새도 없이 바지 버클을 풀고, 드로어즈 안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었다.
갑자기 아래에 침범한 손길에 원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흐름을 읽던 동공이 사월의 낯으로 향했다. 입을 일자로 딱 다문 사월은 제 일에 열중했다.
“…….”
뜨거운 손가락이 성기를 가볍게 감싸 쥐었다. 몸이 달아올랐던 터라, 아래도 뜨끈한 열기를 지니고 있었다. 사월은 손에 힘을 주어 성기를 꺼냈다.
원재가 아랫입술을 물고 눈만 아래로 내렸다. 사월의 하얀 손이 쥐고 있는 검붉은 제 성기를 보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뱀의 꼬리가 꿈틀대는 사월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눈이 마주쳤다.
“지금. 뭐 해.”
“……예뻐해 준다며. 나도 기분 좋게 만들어 줄게.”
성기를 쥔 손이 가볍게 기둥을 쓸어 올린다. 얇게 주름진 피부가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이리저리 밀렸다. 원재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사월의 팔목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술기운에 취한 것도 모자라, 흥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원재는 사월의 팔을 막고 있던 손으로 뜨끈한 이마를 짚었다. 느슨하게 굴러가던 사고가 잘게 쪼개져 정신없이 뒤섞이고 있다.
차가운 손이 닿자마자 혈액이 온몸으로 빠르게 퍼졌다. 정신없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놓으며 핏줄 안으로 빠르게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엄지와 검지 끝을 맞물려 동그랗게 만든 손이 속도를 올린다. 손날에 고환이 닿으며 탁탁, 마찰음을 냈다. 원재가 한쪽 무릎을 굽혀 세웠다. 씨발, 밀어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사월을 저지하는 행동이 무색해졌다.
“씹……. 아, 아…….”
발기한 성기 위로 도드라진 핏줄이 흉포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사월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든 구멍에 채 쥐어지지 않을 만큼 크기를 키운다. 살끼리 부대끼며 마찰면이 뜨거워진다.
원재가 가까스로 이성 하나를 붙잡았다. 붉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한숨과 함께 짧은 말토막이 터져 나왔다.
“그만해.”
관자놀이에 핏줄이 바짝 설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사월에게 손을 뻗지 않기 위함이었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사월 사장을 바닥에 엎어트리고, 상상만 하던 짓들을 해 버릴 거 같았다.
그렇게 했다간 정말 다시는 사월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 ‘섹스’에 단단히 얽힌 오해를 영영 풀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풀지 않으면 또 어떻지? 섹스만 하는 사이로 남을 수도 있는 건데.
아,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구멍에 좆을 박는 행위 자체로는, 사월을 향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몽롱한 술기운에도 그 사실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줄기 이성을 단단히 붙들고 늘어진 원재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월의 손짓은 더 야살스러워졌다. 엄지로 귀두를 누르고 빠르게 그 위를 스치다가 지그시 누르면서 압박을 한다. 아랫배에 닿을 만큼 단단하게 선 좆의 끄트머리에서 프리컴이 새어 나왔다. 엄지 아래 지문 사이사이로 좆물이 스며들어 갔다.
“존나 섰는데, 너 지금.”
잡은 좆 아래로 심장 박동과 같은 울림이 일정하게 전해졌다. 사월은 축축해진 엄지로 고환을 가볍게 훑었다. 얇은 피부 위를 간지럽게 스치는 감각에 원재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턱이 단단해졌다.
얼마 전, 사월을 떠올리며 자위했을 때와는 또 다른 쾌감이었다. 사월의 향기가 코끝에서 느껴지고, 뜨거운 체온이 제 좆을 잡고 흔든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짧은 호흡이 더없이 야해 빠졌다. 감히 상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운데로 피가 몰리며 사정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월은 시선을 올려 원재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를 악물고, 팔뚝으로 눈을 가린 모습. 말리는 듯하더니, 대딸을 치는 제 손길을 아주 잘―, 느끼고 있다.
흉흉하게 선 검붉은 성기를 보며 사이즈를 가늠했다. 펠라를 해서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들까 생각했지만……. 입가가 다 찢어질 듯해 포기했다. 대신 좆 기둥을 흔드는 일에 열을 쏟았다.
어느새 손등 위까지 희뿌연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렇게까지 빨리 사정감이 몰릴 줄은 몰랐다. 원재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붉은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정액이 고였다. 아랫배가 뻐근해지고 뜨거운 기운이 좆 끝까지 치고 올라갔다.
“으흣.”
뜨겁게 터진 정액이 사월의 이마와 볼에 흩뿌려졌다. 씨발. 그의 좆을 잡고 정액을 뒤집어쓰니, 정말 섹스라도 한 초라한 기분이었다. 느슨하게 풀어지는 몸을 곧바로 추스른 원재가 손바닥을 뻗었다. 사정의 탈력감을 느낄 새도 없이 움직였다.
“아……. 미안해. 사월 사장.”
“좋았어?”
“널 만지면, 그럼 내가 안 될 거 같아서.”
“좋았으면 됐어.”
대화가 어긋났다. 상대의 말을 똑똑히 듣고 올바르게 이해했으면서도. 끝내 서로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답 하지 않았다. 사월은 만족한 척을 하며 의식을 속였다. 한 발 싸게 만들었으니, 좆질로 예뻐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을 시켜 준 거라고. 하얀 손등으로 턱을 슥 닦으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원재는 조용히 사월의 얼굴 곳곳을 닦았다. 셔츠 소매를 끌어 비린 액체들을 지워 냈다. 한참이나 작은 얼굴을 쥔 채였다. 묘하게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제 흔적을 지우고 나니, 여상한 얼굴이 보였다.
사월 사장은 도대체 이 작은 머리로 뭘 생각하는 걸까. 어떤 게 들어 있기에 이렇게 꼬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걸까. 어떤 말을 해야 더 이상 오해가 쌓이지 않을지, 원재는 고민했다. 한참이나 이어진 침묵. 그걸 먼저 깬 쪽은 사월이었다.
“풀고 싶으면 또 와.”
“…….”
“네임 지우기 전까지는 서비스해 줄게.”
백번을 겪는다 해도 ‘다정’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냥……. 그냥 비참함이 나을 것 같다. 사월은 또 한 번 비참해지기를 선택했다.
정액이 잔뜩 묻은 손으로 옷을 정리하는 내내 원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을 꺼내 든 제 뜻이 전해지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원재는 비린내를 묻히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서 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사월은 달싹대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네가 원하는 건 이따위 짓이잖아. 붙어먹고 구르는 거. 예뻐해 준다, 마음에 든다, 어쩐다 같잖은 말로 포장하지 마. 그냥 너는 내 구멍에 박고, 내 안에 정액을 싸지르고 싶은 거잖아. 평소라면 거침없이 나왔을 가시 돋친 말이 새어 나올까, 입가를 다시 꾹 눌렀다.
그사이 원재가 문 앞에 우뚝 섰다. 좁은 방 안에 덩치 큰 원재가 있으니, 공간이 더 비좁아 보였다. 사월을 등진 원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낡고 허름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 처량히 앉아 있는 뒷모습.
눈을 질끈 감는다. 돌겠네. 원재에게 사월은 한 번도 쉽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마음이 저렸다. 처량한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원재가 방을 빠져나갔다.
탁, 문이 닫히면서 바깥 공기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정액 냄새와 뒤섞인 찬 공기가 사월의 뺨에 그대로 닿았다. 가만히 감긴 사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이내, 물기를 머금어 무겁게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비참함은 언제고 사월을 갉아먹었다.
사월은 결국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해 뻐근함 몸으로 작업실로 나섰다. 벽에 걸어 놓은 달력 위로 익숙하지 않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자신이 쓰던 것은 맞았지만, 오늘 날짜에 무언가를 붙여 둔 기억은 없었다. 얼이 빠져 지내는 동안 작업을 잡아 놓고 잊어버린 건가. 사월이 눈을 비비며 달력 앞으로 걸어갔다.
M호텔 1702호 7시
분명 자신의 필체가 아니다. 어른스럽게 뻗어 나간 펜의 획. 여기서 이런 걸 써서 붙일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유일한 밤손님. 사월은 비소를 흘렸다. 미친 새끼. 이제 섹스하고 싶다는 티를 대놓고 내네.
사월은 거친 손길로 포스트잇을 떼어 냈다. 단숨에 구긴 종이를 휴지통에 처박았다. 분명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다. 깊고 어둡고 음습한 구멍.
그래 놓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원재를 원망한다. 원재가 어떤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맞춰 오고, 뻗은 손이 얼마나 잘게 떨리고 있는지는 애써 보지 못한 척을 하면서.
***
오후부터 비가 왔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빗줄기가 굵었다. 사월은 작업 내내 바깥을 힐끔댔다. 원재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훨씬 전부터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도 않고 우산을 쓴 채로.
‘M호텔 1702호 7시’
사월은 일부러 7시에 딱 맞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따지고 보면 약속엔 한참 늦은 꼴이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가게를 나서는 사월을 발견한 원재는 검고 큰 우산을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사월의 손에 쥐어진 투명한 일회용 우산을 내려다봤다. 원재가 검은 우산을 사월의 머리맡으로 기울였다. 우산 아래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뭐 해.”
원재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쓰고 가자는 노골적인 요구에 사월은 일회용 우산을 가게 문손잡이에 걸었다. 두어 걸음 아예 밖으로 나서자, 빗줄기가 우산 위로 쉼 없이 추락한다. 원재는 사월의 걸음에 맞췄다.
근처에 세워 둔 차로 향했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 사월을 태웠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음에도, 차까지 오는 내내 사월은 빗방울 하나도 맞지 않았다.
탁, 조수석의 문을 닫고,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앉는다. 원재의 오른쪽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사월은 그 쪽으로는 눈도 주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상함은 내내 이어졌다. 호텔이면 섹스만 하러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꽤 높은 층, 창가에 배치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모텔이 아니라 호텔로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먹기 좋게 자른 스테이크를 사월의 것과 바꿔 주는 원재를 보며 생각했다.
원재는 이전과 같았다. 실없는 소리를 던지기도 했고, 중간 중간 침묵이 흐를 때도 있었다. 길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난 뒤로는 룸으로 올라왔다. 그럼 그렇지. 다 알고 따라왔으면서도 룸에 나란히 들어가는 상황 자체가 묘했다.
먼저 씻고 나온 원재를 뒤로하고 욕실에 들어간 사월은 손바닥으로 명치를 꾹 눌렀다. 내내 이상했다. 체한 것 같기도 하고, 상한 걸 먹었을 때처럼 울렁댔다. 배 속이 근지럽고, 목이 홧홧했다.
먼저 씻은 원재가 욕조에 물을 받아 하늘색 입욕제까지 풀어 놓은 꼴을 보니 더 그랬다. 욕조 안을 막고 있는 마개를 뽑아 모두 흘려보냈다. 여기서 씻고 향기를 풍기면 괜히 오해를 하게 될 듯싶었다. 원재가 아니라 자신이.
머리를 대충 말리고 나왔다. 가운을 입은 원재는 작은 티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사월은 마른침을 삼키고 침대로 향했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 이 짓을 하러 온 거니까.
무릎걸음으로 침대 중앙으로 가 앉을 때까지, 원재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기만 했다. 입 안에 와인을 머금고 있다 천천히 넘겼다. 목울대가 느릿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누워.”
원재의 낮은 목소리가 룸 안을 울렸다. 사월은 가운을 풀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드러누웠다. 푹신하고 부드럽고, 새물내 나는 시트의 촉감이 기분 좋았다.
한참을 누워 있자니, 원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침대 위가 아닌 머리맡 바닥에 털썩 앉았다. 사월이 고개를 돌렸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흩어졌다.
침대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원재가 사월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못 견디게 뜨거워졌을 즈음, 머뭇대던 사월이 입술을 열었다.
“……너, 뭐 해.”
“사월 사장이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아서.”
“뭘?”
원재가 팔을 뻗었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이트 사장이 자신을 때릴 사람은 아님을 알았다. 그래도 혹시……. 혹시 모르니까. 성적 취향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잖아.
사월은 어깨를 움츠리고 눈을 감았다. 그런 사월의 얼굴 위로 그의 손가락이 슥 지나갔다. 머리칼이 넘어간 동그란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약속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비 한 방울도 안 맞히고, 좋은 곳에 데려와 맛있는 걸 먹이고.”
“……야.”
“따뜻한 욕조에서 같이…… 씻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성급하니까 넘어가고.”
“무슨 소릴―.”
시트 위에 늘어진 사월의 손을 끌어다 제 코 아래에 가져다 댄다. 손등 위에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원재의 가슴팍이 크게 부풀었다.
“다른 걸로 씻었네.”
“…….”
“자기 전에 와인도 마실까?”
낮은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욕조에 있던 입욕제를 다 버렸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 버릴 거 같았으니까. 목구멍에 힘을 주어 목소리를 꺼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원재는 턱을 괸 채 여전히 사월을 관찰했다. 하얀 얼굴에 길게 뻗은 속눈썹. 헐겁게 엮은 가운을 벗기면 얼마나 많은 문신이 몸에 새겨져 있을까. 표정 없는 저 얼굴이 쾌락을 느낄 땐 어떻게 변할까. 입 안에 남은 와인 향에 머리가 어질했다.
“올라와. 이 짓거리 하려고 부른 거 아냐?”
공격적인 투였다. 짧게 생각을 마친 원재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운을 풀어 바닥에 던졌다. 자신의 몸을 훑던 사월의 동공이 짧게 흔들렸다. 시선이 훔쳐보듯 아래에 닿았다가 이내 다른 쪽으로 향한다.
“……맞지. 맞아.”
침대로 올라가 누워 있는 사월의 위로 자리를 잡았다. 양팔을 뻗어 부스스한 사월의 머리맡에 팔을 받치고, 하체는 제 다리 사이에 가두었다. 사월의 낯에 긴장감이 스쳤다. 원재가 작게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하나도 안 취했으니까, 잘 기억해.”
“…….”
“내가 사월 사장을 어떻게 예뻐하는지.”
잇새로 억누른 소리였다. 그 말에 사월은 취기를 느꼈다. 정신이 알딸딸해지고, 눈가가 뜨끈히 달아올랐다.
가운을 젖히는 손길은 일부러 더 느릿하게 움직였다. 툭, 가운이 풀리는 소리가 적막한 룸 안에 크게 울렸다. 느슨해진 가운을 옆으로 풀어헤치고 나니 사월은 금방 나신이 되었다.
군살이란 게 없이 마른 몸 위로, 검은 잉크가 여기저기 자리했다. 늘 봐 왔던 목덜미의 타투는 어깨와 쇄골 위까지 덮고 있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본 스토크 타투였다.
허벅지 위에도 단검이 그려져 있었다. 원재의 크고 거친 손이 허벅지 위를 슬며시 틀어쥐었다. 엄지손가락 아래로 살이 눌리면서 문신 모양이 이상하게 늘어졌다.
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벌거벗은 채로 겹쳐진 인영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원재가 천천히 손을 뻗어 사월의 뺨을 쥐었다.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갰다. 새빨간 입술이 느릿하게 열리자, 그 틈으로 뜨거운 혀가 파고들었다.
“으음…….”
사월은 고개를 틀어 원재의 얇은 입술을 단숨에 삼켰다. 달큰한 와인 향이 입 안에 들어오자 온몸이 달아올랐다.
얇은 허리를 쓸어 올리니 사월이 몸을 뒤척였다. 가슴팍 위를 천천히 문지르는 손길엔 희미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닿는 족족 반응하는 사월 때문에 원재의 숨이 삽시간에 거칠어졌다.
입술이 떨어진 자리에 뜨거운 숨이 남았다. 원재는 고개를 숙여 사월의 목덜미로 입술을 파묻었다. 검은 테두리에 음영이 들어간 꽃과 꽃잎 위로, 원재의 입술이 오래 닿았다 떨어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울혈이 생겼다. 꼭 꽃잎에 붉은색을 채워 넣은 것처럼. 원재는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살결을 음미했다. 엄지로 유두를 부드럽게 문지르고, 손으로 꾹 움켜쥐기까지 했다.
“아…….”
머리 위에서 사월의 약한 신음이 들렸다. 원재는 입 안에 머금은 연한 쇄골의 피부를 더 세게 빨아들였다. 사월이 뒤척였다.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흔들어 댔다. 자극을 이기지 못한 사월이 무릎을 끌어다 세웠다.
원재가 나머지 한쪽 다리도 끌어다 제 옆구리 근처로 두었다. 온전히 사월의 다리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상체를 더 낮췄다. 살을 물고 빠는 소리가 질척거렸다.
“으읏.”
원재가 맞닿은 하체를 슬며시 쳐올렸다. 이미 발기한 원재의 좆이 사월의 것과 거칠게 마찰됐다. 하체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사월은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아랫배가 간지러워 미칠 거 같았다.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피가 조금씩 아래로 몰리는 걸 느꼈다. 유두를 흔드는 손길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내 작게 꼬집고 나가떨어진다. 하얀 피부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원재가 입술을 축이고, 그대로 사월의 가슴을 물었다.
“읍.”
혀를 세워 유두를 이리저리 핥았다. 작은 돌기가 꼿꼿하게 서기 시작했다. 이로 살짝 물었다가 세게 빨며 연한 살갗을 괴롭혔다. 사월은 시트를 움켜쥐었다.
가슴을 애무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더니, 어느새 큰 손이 좆을 감싸 쥐는 게 느껴졌다. 사월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처음 닿는 거라, 이 모든 감각이 생경했다.
좆 기둥을 쓸어 올리는 손길이 느릿했다. 어젯밤 자신이 딸을 쳐 줬을 때, 그 역시 이런 기분이었을까. 사월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원재의 혀가 사월의 몸 곳곳에 닿았다. 부풀어 오른 가슴을 지나, 작게 떨리는 허리, 판판한 아랫배, 치골까지. 허벅지 위에 그려진 단검 문신 위까지 타고 내려왔을 때, 사월이 막혀 있던 숨을 토했다.
원재는 잡고 있던 기둥을 한 번 더 쓸었다. 프리컴이 맺히기 시작한 좆을 물었다.
“아, 야……. 씨발, 뭐 해.”
원재는 구부려 세운 사월의 허벅지 위를 가로질러 손깍지를 꼈다. 하체가 단단한 팔에 휘감겨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추읍, 원재의 고개가 좆을 가득 물고 내려갔다 천천히 길을 그리며 느리게 올라온다. 혀를 세워 귀두를 문질 대다 다시 입 안에 머금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뜨거운 점막이 사월의 좆을 완전히 감쌌다.
사월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시트가 엉망으로 구겨진다. 발버둥을 치지만 원재를 떨칠 수가 없었다.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은 원재의 머리통이 보였다. 기둥을 쓸고 이를 세우지 않고 물고 빨아 올리고. 정신없이 사월을 자극했다.
어느새 눈가가 뜨거워졌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 그냥 구멍에 박는 게 목적 아니었어? 급격히 몰리는 사정감에 사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야, 씹……. 이딴 짓, 하지 말고.”
“…….”
“그냥 박아, 씨발…….”
울음 섞인 목소리에 성기를 빨아 대던 원재가 고개를 들었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새빨간 입술이 씩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싫어. 사월 사장 몸은 이렇게 좋아하는데.”
“……미친.”
“내가 왜.”
드디어 좋아하는 걸 찾은 거 같은데. 원재가 한쪽 입꼬리를 작게 올렸다. 사월과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다시 좆을 입에 물었다. 그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사월이 눈을 질끈 감았다.
씨발, 머리가 터질 듯한 느낌이다. 좆을 빨고 핥아 대는 축축한 소리에 금방이라도 사정을 할 거 같다. 아까 나이트 사장이 물고 빨았던 가슴팍으로 자꾸만 손이 올라갈까 봐 어금니에 힘을 주고 꾹 참았다. 세운 무릎이 후들대고, 발가락이 안으로 굽어 들었다.
원재가 좆을 완전히 머금어 귀두가 목구멍까지 깊이 박혔을 때, 사월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몸이 짧게 경련하더니 이내 뜨거운 액이 터졌다.
“하아…….”
시트를 움켜쥐었던 손이 축 늘어진다. 한참 사월의 사정을 받아 내던 원재가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대는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려 제 어깨 위에 걸쳤다.
그러곤 입 안에 가득한 정액을 손바닥에 뱉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사이를 침범한 정액이 뚝뚝 흘러 침대 위로 떨어졌다. 어깨에 걸쳐진 사월의 다리를 틀어쥔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곧이어 고개를 돌려 사월의 종아리와 발목에 짧게 입을 맞춘다.
“으읏.”
정액이 엉덩이 사이로 치덕치덕 늘어진다. 탈력감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읍, 아…….”
정액으로 범벅이 된 두꺼운 중지가 입구를 쓱 훑더니 안을 파고들었다. 생경한 압박감에 사월이 엉덩이를 뒤척였다. 원재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 엉덩이를 때리려다,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월 사장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찰싹 내려치는 손길 대신 부드럽게 골반을 틀어잡았다. 정액이 골반 위로 아무렇게나 문질러졌다. 사월의 발버둥이 잦아들었다. 그 틈으로 불쑥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후우.”
낯선 감각이 버거운지 사월의 마른 허벅지가 잘게 경련을 일으켰다. 원재는 사월의 몸을 푸는 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사월 사장의 말처럼 아무렇게나 쑤셔 박고 끝낼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게 자신이 말한 예뻐한다는 뜻도 아니고.
애지중지 아껴 주고, 좋은 걸 해 주고, 좋아하는 곳을 만져 주며 흥분과 쾌감을 안기고 싶었다. 애틋함으로 점철된 행위를 받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해 주고 싶다.
내가 사월 사장과 하고 싶은 섹스는 그냥 좆을 박고 싸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는 느끼지 못할 충만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행위라고. 그래서 자꾸만 내가 당신에게 눈 돌아간 것처럼 달려든 거라고. 그렇게 설득을 하고 싶다.
침대 위에서 이렇게까지 자제하고 참아 본 적이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 원재의 좆은 터질 것처럼 발기한 채였다. 프리컴이 흘러내리는 검붉은 좆이 흉포하게 꺼떡였다. 마음이 급했지만 서두를 순 없었다.
“자꾸 움직이지 말고.”
“……으윽.”
“다정하게 굴고 싶은데. 협조 좀 해 줘, 사월 사장.”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갔다. 구멍을 빠듯하게 늘린 손가락이 안을 쑤셨다. 질펀한 정액 탓에 안을 찌르는 데 무리가 없었다. 속살을 푹푹 찌를 때마다 사월의 이성이 하나씩 끊겼다.
“아…… 빼, 빼라고…….”
턱에 단단한 근육이 설 만큼 원재는 이를 악물었다. 대답은 한참 뒤에나 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손가락을 구부리고 벌려 안을 넓힌 뒤에야.
찌걱대며 안을 파고든 손가락이 세차게 움직였다. 작은 구멍이 두터운 손가락 세 개를 삼켰다 뱉어 내길 반복했다. 빠듯한 구멍 주변이 붉었다.
“읏, 으읏, 아…….”
“너무 좁아서. 안 풀면 아프니까.”
말 사이사이마다 종아리와 발목에 입을 맞췄다. 사월은 다시 근질대기 시작한 가슴팍을 긁었다. 손톱을 세운 탓에 허연 가슴팍 위에 붉은 줄이 여럿 그어졌다.
원재는 종아리를 위에 입을 맞추다, 그 꼴을 내려다봤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벌겋게 그어진 생채기에 미간이 구겨졌다.
팔을 뻗어 베드 테이블 안의 서랍을 한 손으로 거칠게 뒤졌다. 원하는 것을 찾은 원재는 곧장 그것을 입가로 가져간다. 주욱. 콘돔을 이로 물어 포장을 뜯었다. 뜨겁게 팽창한 자신의 좆에 얇은 막을 씌웠다. 너무 흥분한 건지, 잘 끼워지지 않는 콘돔에 원재가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콘돔을 끼고 여전히 가슴을 긁고 있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제 목으로 팔을 끌었다.
달뜬 얼굴로 입술을 짓이기던 사월이 눈을 치켜떴다. 원재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송연하게 드러나 있다. 내내 다정한 음성이었지만, 말을 하지 않을 때 원재의 입술은 일자로 딱 다물렸다. 그 서늘함에 사월은 참았던 호흡을 다시 터트렸다.
“흐읍…….”
“감아.”
힘이 빠진 팔로 원재의 목을 감았다. 그의 상체가 무너지며 온전히 사월의 위를 덮쳤다. 다리가 어깨 위를 넘어갈 듯 접혔다. 거대한 덩치가 시야를 막았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반쯤 가려질 만큼. 원재의 그늘진 얼굴에서 밭은 호흡이 연신 터졌다.
축축한 손가락으로 안쪽 깊숙한 곳을 쑤셨다. 손끝에 살짝 부어오른 내벽이 느껴졌다. 그곳을 쿡 쑤시자 사월이 온몸을 들썩대며 원재의 목을 바투 끌어안는다.
“아, 으응…….”
원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온몸의 핏줄이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맥박이 너무 빨라 당장이라도 몸이 터질 듯했다. 아득해지는 이성을 끌어다 잡아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사월 사장, 이 정도면 풀린 거 같은데.”
“읍, 읏.”
손가락이 거칠게 안을 드나든다. 사월은 제가 원재를 꽉 그러안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온 신경이 아랫구멍으로 향했다. 질질 새어 나오는 액체가 골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선연했다. 가슴팍을 괴롭히던 간지러움이 이번엔 구멍으로 옮겨갔다. 두터운 마디가 점막을 짓누를 때면 전신이 덜덜 떨렸다. 원재의 말에 대답할 정신 따위는 없었다.
고개를 틀어 사월의 귓바퀴에 입을 맞춘 원재가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액이 늘어져 손끝에서부터 구멍까지 길게 늘어졌다. 순식간에 비어 버린 구멍이 줄어들며 뻐끔댔다.
원재는 흘러내릴 듯한 사월의 다리를 다시 어깨 위로 끌었다. 자세를 잡고, 잔뜩 발기한 제 좆을 잡았다. 손바닥에 닿는 체온은 불에 탄 듯 뜨거웠다. 콘돔을 끼운 좆 기둥을 몇 번 쓸었다. 젤도 필요 없을 만큼 흠뻑 젖은 구멍이 벌름대는 걸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사이에도 좆은 발기한다. 끄트머리에서 액이 주륵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핥은 원재가 좆으로 구멍 입구 위를 비빈다. 붉은 구멍 주변을 꾹 누르며 배회하던 좆이 제 자리를 찾은 듯 내벽 안으로 먹혀 들어간다.
“읍!”
입구에 선단이 닿기만 했는데도 사월의 몸이 경직됐다. 원재는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귀두를 물고 움찔대는 구멍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사월의 목덜미와 귓가에 연신 입을 맞췄다. 탁 막힌 사월의 숨이 한참 뒤에 터졌다. 얼어붙었던 몸이 느슨하게 풀렸다. 그 틈을 타서 원재는 좆을 조금 더 박아 넣었다.
“아아, 아…….”
사월이 허리를 뒤척였다. 입구에 삽입을 조금 했을 뿐인데도, 뜨거운 점막이 기다렸다는 듯 좆에 달라붙는다. 원재는 당장이라도 사정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했다.
“아파?”
다정한 물음에 사월이 고개를 내저었다. 색이 다른 머리카락이 난잡하게 뒤엉켜 부대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인내심을 발휘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사월의 처음을 거칠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로 욕망을 삼켰다.
“아…….”
꾸욱, 느릿한 속도로 좆을 계속 욱여넣었다. 반도 채 들어가지 않았는데 사월은 자꾸만 몸을 바르작댔다. 받아 내기 빠듯해 보였다.
원재가 사월의 엉덩이를 가볍게 감싸 쥐었다. 그러곤 엄지로 구멍 주변 살을 꾹 눌렀다. 구멍이 조금 더 벌어지고 그 사이로 좆이 조금 더 깊게 박힌다.
“으응.”
사월의 고개가 젖혀진다. 온몸이 근질대고 뜨겁고 이상했다. 그냥 빨리 박아 대고 끝났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삽입하기 전부터 느릿하고 여유롭게 군다. 작정하고 녹여 먹으려는 것처럼.
안에 꽉 들어찬 좆에 옴짝달싹도 못 하겠다. 다 들어오면 내장이 다 눌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치밀었다.
“안이 엄청 뜨거워.”
“하아…….”
사월은 볼 때마다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단순히 열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구멍 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오물오물 좆을 문 구멍이 조금씩 자릴 넓힌다.
“읏, 여기 힘 좀 빼 봐.”
원재의 엄지가 구멍 주변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사월의 정액을 넓게 펴 바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미끌대는 엄지를 접합된 부분 위로 가져갔다. 들어가지 못한 기둥을 잡아 쓸었다.
“하…….”
욕망이 자꾸만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굴었다. 원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월의 거친 호흡이 잦아지자 허리를 쳐올렸다. 좆을 안으로 더 깊게 파묻었다. 입술을 앙다문 사월의 입 안으로 신음이 먹혀 들어갔다. 좆을 감싼 내벽이 빠듯하게 늘어났다.
아, 당장이라도 허리를 흔들고 싶다. 좆을 안에 처박고 뜨거운 점막 안을 쑤시고, 콘돔 같은 건, 씨팔 당장 찢어발기고 정액을 쏟아 버리고 싶다. 원재의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욕망을 참아 낸 원재가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세웠다. 제 좆을 물고 아래에 깔려 있는 사월을 내려다봤다. 붉게 달뜬 얼굴 위로 땀이 맺혀 있다. 좀 전까진 꾹 다물려 있던 붉은 입술은 닫히지도 못하고 계속 앓는 듯 여린 소리를 뱉는다.
원재는 참을 수 없어 입술을 내리고 혀를 거칠게 쑤셔 박았다. 좆을 이렇게 쑤셨으면 좋겠는데……. 맞닿은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려 넣었다. 구멍을 범하고 싶은 만큼 사월의 혀를 휘감아 힘 있게 탐했다.
온몸이 먹힐 듯 거친 키스였다. 채 넘어가지 못한 타액이 사월의 입가에 맺혀 흐른다. 뺨을 쥔 원재의 손가락 위로도 그게 스며든다.
“움직이면, 사월 사장 아플까?”
“으…….”
사월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아래가 반으로 갈라져 쪼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움직이기까지 하면……. 흉흉하게 발기됐던 거대한 좆이 떠올랐다. 미친. 정말 구멍이 찢어질지도 모른다. 사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들러붙었다.
“후우…….”
원재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사월 사장, 존나 잔인하네. 픽 웃음을 흘리고 안을 쑤시는 대신 허리를 움직여 좆을 꾹 밀어 넣었다. 바르작대던 사월이 힘을 주어 목을 끌어안았다. 완전히 맞물린 아래가 붉었다.
움직이지는 말랬으니까……. 원재는 아래를 쳐올리는 대신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콘돔을 뒤집어쓴 좆이 점막 안을 이리저리 누른다. 비좁은 안은 작은 움직임에도 꿈틀대며 좆에 달라붙었다.
“으읍, 아, 씨발…….”
가라앉은 사월의 목소리에 원재가 예고 없이 허리를 밀어붙였다. 목덜미 위에 이를 박은 사월이 그대로 원재의 살갗을 잘근 깨물었다. 아. 방금은 정말 목소리만으로 사정할 뻔했다. 원재는 사월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중이었다.
“사월 사장, 침대에서 욕 금지야.”
“아…….”
“다치게 하기 싫어.”
알겠지. 알겠어? 대답해. 얼른.
원재는 사월이 고갯짓이든 작은 흐느낌이든 대답을 할 때까지, 안을 헤집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정신없이 박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좆이 느릿하게 안에 길을 내며 들어차는 것, 더 커질 수 없다 생각했음에도 안에서까지 부피를 키우는 것. 그 모든 게 적나라하게 느껴지니까. 사월은 몰려오는 사정감을 느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마 옆으로 원재의 입술이 오랫동안 닿았다. 숨을 쉴 때마다 사월의 체온이 느껴졌다. 원재는 그렇게 한참을 몸 안 가득히 사월을 담았다.
안 이곳저곳을 느릿하게 헤집던 좆이 내벽 안쪽 어딘가를 꾹 눌렀다. 사월이 몸을 들썩였다. 동시에 원재의 눈이 번뜩였다. 허리를 조금 더 안으로 밀었다. 음모가 닿을 만큼 꽉 맞물렸음에도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씻기지 않는 욕망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갈 거 같은, 아.”
원재의 아랫배에 발기한 사월의 좆이 닿았다. 구멍 안처럼 뜨거웠다. 원재는 팔을 뻗어 사월의 성기를 거머쥐었다. 이미 한 번 사정한 탓에 벌써 귀두가 축축했다. 당장이라도 이걸 입 안에 담고 핥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아래를 빼야 하니까. 잠깐 고민하던 원재는 기둥을 빠르게 쓰는 편을 선택했다.
“윽, 씹…….”
사월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마터면 또 욕을 할 뻔했다. 아까 씨발이라는 한마디에 반응하던 원재가 떠올랐다. 강하게 아래를 압박하던 감각.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아직 그의 것을 받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아아…….”
기둥을 쓰는 손길이 거세졌다. 삽입을 한 뒤로 원재의 모든 게 거칠어졌다. 입을 맞추고 입 안을 헤집는 것도. 좆을 만지는 것도. 밭은 호흡도. 전부.
“사월 사장, 나는 앞으로 이렇게 아낄 거야.”
“읏.”
원재의 손짓이 빨라졌다. 사정을 유도하듯 귀두를 비비고 빠르게 쓸어 올렸다. 원재의 넓은 어깨 위에 걸쳐진 무릎이 달달 떨렸다.
사월의 손가락이 땀에 젖은 원재의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었다. 머리를 끌어 자신과 가깝게 붙였다. 몸이 더 깊게 접히고, 안에 들어찬 것이 잔뜩 눌렸다.
“아프다는 짓은 안 하고, 좋아하는 거 찾아서 그것만 할 거야.”
“아아…….”
“그렇게 아낄 거야, 너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월이 사정을 했다. 맞닿은 몸 사이로 정액이 흩뿌려졌다. 사월은 왠지 울고 싶었다.
이게 내가 너를 예뻐하는 방법이야.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덜컥 설레 버린 자신이 낯설어서.
***
욕조에 앉은 사월은 생각했다. 원래 자신에게 주어진 몫은 아무것도 없다. 이름도, 생일도, 길거리에 버려졌다가 다시 얻은 삶도. 모두 김 사장이 억지로 쥐여 준 것들이다.
애초에 한 번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가져 본 적이 없으니 필요한 줄도 몰랐다. 대충 살다가 그냥 죽는 게 한 가지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다.
삭막한 삶에 자꾸만 발을 들이미는 사람이 있다. 요즘 그 사람 때문에 넋이 빠진 것처럼 사는 중이고. 휩쓸리듯 입을 맞추고, 섹스까지 했다. 성 사장은 결국 안에서 움직이지도, 사정을 하지도 못했으니 섹스라고 칭하기 좀 그런가.
사월은 유치한 핑크빛이 도는 물을 손바닥을 끌어왔다. 결국 성 사장이 채워 놓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복숭아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씻겨 주겠다고 달라붙는 걸 말리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거다. 왜 나이트 사장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잘해 주는 걸까. 원하던 걸 끝까지 다 못 해서, 그래서 그런가. 그럼 원하는 대로 좆을 박고 원하는 만큼 쑤시면……. 그럼 이제 그런 눈으로 보지 않을까? 자꾸 배 속을 근지럽게 만들던 눈빛이 떠올랐다.
“…….”
축축하면서도 뜨거웠던 눈을 떠올리니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흉포하게 큰 좆을 머금고 있던 구멍이, 압박감을 곱씹는 것처럼 움찔댔다. 노곤하게 풀어지는 몸에 힘을 주어 일으켰다.
사월이 일어나자 분홍빛 물이 요동쳤다. 닦지 않은 물기가 뚝뚝, 욕실 바닥을 물들였다. 사월이 걸을 때마다 얕은 웅덩이가 고였다. 욕실을 나와 침실로 곧장 향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자꾸 거슬리는 그 눈빛을 다시 마주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 성큼 성큼 옮기던 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하아…….”
“…….”
자신은 욕실로 보내 놓고, 자위를 하는 성 사장을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아까보다 더 크게 발기된 좆이 흉흉하게 꺼떡이고 있다. 미간을 찌푸린 성 사장이 달뜬 고개를 틀어 사월을 마주 봤다. 좆을 흔들어 대던 손길이 일순 멈추었다.
“으…….”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성 사장은 진득하게 사월에게 시선을 둔 채로, 다시 성기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상체를 완전히 헤드에 기대 늘어진 성 사장을 보고 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가시지 않은 욕망이 그대로 전해졌다. 발밑에 물이 고였다. 색깔을 지녔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희미한 분홍빛을 띤 액체였다.
“왜…….”
사월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들어찼다. 그 궁금증은 성 사장이 가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순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왜 나를 기다렸어? 왜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였어? 왜 내가 음식 씹는 과정 하나하나를 흐뭇하게 바라봤어? 왜, 룸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기지 않았어. 왜 아프다는 내 말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풀리지 않아서 혼자 자위를 하고 있어, 왜…….
사월의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작은 틈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 나온다. 아니…… 이미 이유를 알고 있나.
“가운이라도…… 입고 나오지, 그랬어.”
달뜬 음성이었다.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성 사장이 내뱉은 말은 겨우 그거였다. 와서 구멍을 대라는 말도, 욕구를 대신 풀어 달라는 말도 아닌.
원재의 눈 한쪽이 구겨진다. 질끈 감은 눈과 앙다물린 치아, 턱에 단단히 선 근육을 천천히 눈에 담는 사월이었다. 물기가 말라 온몸에 찬기가 돌았다. 사월이 어깨를 작게 떨자, 동시에 긴 신음이 터졌다.
“아…….”
근육이 잡힌 배와 가슴팍으로 정액이 튀었다. 시트 위도 마찬가지였다. 좆을 쥔 손도 축축하게 젖은 채였다. 사월은 그 꼴을 보다 결국 걸음을 옮겼다.
“……뭐 해, 지금.”
무작정 침대 위로 올랐다. 무릎을 세워 원재의 허벅다리에 올라타 앉았다. 차게 식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온 원재의 시선에 의아함이 스쳤다.
사월은 그를 내려다보며 한쪽 손을 천천히 내렸다. 손가락으로 원재의 가슴을 타고 아랫배까지 훑었다. 손끝에 끈적한 것이 잔뜩 묻었다. 손을 뒤로 돌려 엉덩이 사이로 가져다 댔다.
“뭘 하겠다고.”
“으읏…….”
아까 원재가 했던 대로 구멍 안으로 젖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구멍 안에 손가락을 하나 더 쑤셨을 땐, 그대로 원재의 허벅지 위로 주저앉을 뻔했다.
“하.”
기가 찬 듯 단발의 헛웃음이 들렸다. 사월은 안을 쑤시는 손가락을 더 깊게 밀어 넣었다. 마지막 마디까지 꾹 파묻고 안을 넓혔다. 어느새 원재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사월이 아래를 쳐다봤다. 방금 전 한 발 뺐음에도 그의 좆은 다시금 발기하기 시작했다. 꺼떡대는 성기가 자꾸만 아래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 아픈 거 신경 쓰지 마.”
“……뭐?”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해.”
원재의 미간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지금 무슨 말을…….”
“그러려고 데려온 거잖아.”
도대체 사월 사장은 지금까지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지.
원재가 고개를 비틀고 어금니를 악물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참은 건지, 다 풀지 못해 혼자 자위하는 걸 봤으면서도 그런 말을 해, 어떻게.
제 전부를 부정당한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원재는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목울대가 느릿하게 오르내리면서 짐승의 울음 같은 것이 새어 나온다.
“찢어져도 상관없어. 안이 다 망가져도 되니까 마음대로 박아도 돼.”
“…….”
잇새로 말을 뱉으려던 원재가 입술을 딱 다물었다. 사월의 음성이 축축하게 젖어 가는 것을 눈치챘다. 불안정한 시선이 정신없이 시트 위를 헤매더니, 자신을 마주하지도 못한다.
원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도대체 무엇이 사월 사장을 이렇게 겁먹게 만드는 걸까.
“그러니까. 씨발, 나 그렇게 쳐다보지 마.”
안을 넓히던 것을 포기하고 원재의 성기를 잡았다. 잘게 떨리는 손가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단히 발기한 것은 한 손으로 잡기도 벅찼다. 이미 정액으로 범벅이 된 좆을 아랫구멍에 맞췄다. 딱 들어맞는 느낌만으로도 압박감이 몰려왔다.
사월은 이를 악물었다. 다정? 예뻐해 준다고? 그런 거 나한테 다 필요 없어. 대충 박고 흥미 떨어지면 꺼지면 되는 거야. 속으로 연신 되뇌며 몸을 낮췄다. 좆이 안을 빠듯하게 채운다.
“하아…….”
“…….”
“으읏, 아…….”
반쯤 몸을 내린 것뿐인데도 안이 가득 찼다. 아랫배가 벌써 볼록해진 거 같다. 사월이 가슴팍을 부풀리면서 숨을 내쉬었다. 원재는 가만히 그 꼴을 살폈다. 무어라 하고 싶은지 입술은 달싹이면서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다.
“하, 씹…….”
입구 쪽에 힘을 풀고 싶어도 그게 잘되지 않았다.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가 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 왔다. 사월이 입술을 짓씹으며 몸을 확 낮췄다. 억지로 쑤셔 넣은 좆으로 뜨거운 점막이 달라붙는다. 안이 모조리 짓눌린다.
“하아, 하아…….”
완전히 원재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커다란 좆도 전부 안으로 삼켰다. 몸이 쪼개질 것 같은 감각에 사월은 원재의 어깨 위로 고개를 묻었다.
이쯤 되면 등허리를 토닥여 주거나 괜찮냐고 물을 법한데. 그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사월은 눈두덩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으며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애써 초점을 맞춘 시야엔 맞물린 아래만 보였다.
이것 봐. 그동안 좀 다정하게 굴었다고 지금 별걸 다 기대하잖아. 씨발. 이러면 안 돼, 정말 안 돼.
사월은 늘 생각했다. 영원한 건 없다고. 있었으면 애초에 자신이 버려지지도 않았을 거고. 보호자 노릇해 주던 김 사장이 죽어 사라지지도 않았겠지.
영원한 건 없어. 이 사람도 나랑 자고 나면, 왜 그렇게 목을 맸던 걸까 후회하고 떠날 거야. 그게 맞아. 그게 나아. 그편이…….
“으흣!”
원재가 사월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허리를 쳐올렸다. 빠듯하게 찼던 아래로 좆이 짓눌렸다. 탁탁, 거칠게 들쑤시는 대로 길을 내며 안을 쑤셨다. 단단한 살덩이가 점막을 마구 비벼대며 자극했다.
“사월 사장은, 참 사람 서운하게 하는, 데 재주가 있어.”
“…….”
“이러려고 데려온 거 아니냐고?”
커다란 손이 사월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아래를 몇 번 쳐올리자 사월의 상체가 완전히 무너졌다. 힘을 빼고 제 품에 기댄 어깨를 바라보며 원재는 입술을 깨물었다.
웃기지도 않네. 사람 죽이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 깡패 새끼 주제에. 고작 사월 사장의 몇 마디로 상처받은 것처럼 굴면, 뭐가 달라지나. 고개를 틀어 사월의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으며 자조했다.
“읏! 아, 아…….”
“아픈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안이 망가져도 상관없다고.”
웅얼대는 목소리가 쇄골 위에 진동을 남기며 흩어진다. 움직이지 못하게 허리를 꾹 틀어쥔 원재가 아래를 좀 더 박아 올렸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여 겨우 가라앉았던 아래가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사월은 몸을 가득 채운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맞지. 맞아. 나 너랑 섹스하려고 왔어.”
“으읏, 하…….”
“씨발,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어.”
질퍽거리며 맞닿는 살의 소리. 제 목을 허겁지겁 끌어안는 사월을 느끼며 원재는 눈을 감았다. 아 씨발, 기분이 왜 이렇게…….
“사월 사장.”
“…….”
“내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좆같아? 그렇게, 그렇게 싫었어?”
따지듯 묻는다. 대답대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어깨 위를 간지럽힌다. 원재는 고개를 틀어 깊게 숨을 들이켰다. 사월의 체향이 폐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자신에게 온몸을 기대고 파들대는 사월을 잡아 떼어 낸다. 한 번도 사월에게 스치지 않았던 냉정한 손길이었다.
기댈 곳이 사라지자, 사월은 붉어진 눈을 밀어 올렸다. 차갑게 내려앉은 원재의 표정을 목도했다.
시선이 마주한 그때 원재가 또다시 퍽 소리가 나게 허리를 움직였다. 무너지려는 사월의 팔뚝을 잡아 세웠다. 그러곤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달뜬 뺨을 문질렀다. 탁한 액체가 볼에 번진다. 뺨 한쪽이 원재의 정액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래, 그럼.”
“하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사월은 그 짧은 순간, 엉망이 된 원재의 얼굴을 봤다.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찰나였다.
사월은 등에 닿는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에도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원재가 서늘한 표정을 하고 허벅지를 밀어 올렸다. 엉덩이가 완전히 들린 자세가 되었다. 아까부터 안을 찔러 대던 좆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곧 뻐끔대는 입구를 내려다보곤 안을 거칠게 쑤시기 시작한다.
“읍, 읏!”
“하아.”
원재의 어깨를 움켜쥔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갈 곳 잃은 사월의 손이 애꿎은 시트만 그러쥔다. 무릎을 세우고 좆을 쾅쾅 내리찍는 동작에는 다정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읍, 으읍.”
“소리 참지 마.”
“읍…….”
원재의 손가락이 사월의 입 안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혀를 누르고 안을 헤집었다. 목구멍까지 닿는 손가락에 사월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혀 머리를 흔들었다. 입가를 스치며 빠져나온 손가락 끝엔 타액이 늘어졌다.
사월의 호흡이 거칠었다. 이를 악문 원재는 더 깊게 안을 쑤셨다. 좆 끄트머리로 부어 있는 내벽을 거세게 누르고, 허리를 흔들었다.
“으읍.”
사월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달뜬 뺨이 붉었다. 원재는 퍼석한 아랫입술을 축이고 안으로 말아 물었다. 제 아래에 깔려 몸을 달싹이는 힘없는 움직임이 가엽게 느껴졌다.
“읏!”
“마음대로 박으라며.”
원재가 손바닥으로 사월의 아랫배를 꾹 눌렀다. 볼록해진 안이 압력을 받자 더 거칠게 짓눌렸다. 사월이 뚝뚝 끊어지는 신음을 뱉었다.
“아, 읏, 읍!”
“여기까지밖에 안 들어갔잖아.”
“으읏…….”
“힘 풀어.”
원재가 배를 감싸 쥔 손을 자신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사월이 몸부림을 친다. 그럴수록 내벽이 더 끈적하게 좆에 비벼질 뿐이었다.
사월은 머리끝까지 찬 소름 끼치는 감각에 몸을 바르작 떨었다. 아래에 힘을 풀었다 조이길 반복하자, 커다란 성기가 안으로 조금 더 밀려 들어왔다. 내장이 다 뭉개지는 거 같아. 사월의 눈두덩이 금세 시큰댔다.
“하아…….”
“…….”
붉어진 얼굴을 보니 또 미치겠는 거다. 그렇게 미운 말만 골라 해 놓고선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원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붉게 부은 구멍을 늘이고 들어차 있는 제 좆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핏줄이 형형하게 선 꼴을 보고 헛웃음이 흘렀다.
검붉게 발기한 성기는 사월이 움직일 때마다 구멍 안으로 더 깊이 박혔다. 사월의 신음이 점점 짙어졌다. 미치겠네.
“……움직이지 마.”
몸을 뒤채는 사월에게 내려앉는 차가운 목소리. 사월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원재는 뒷목이 빳빳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울어? 왜?”
“흐읏…….”
“울고 싶은 게. 씨팔, 누군데.”
허벅지를 더 밀어 올려 팔에 건 원재가 그대로 시트를 짚었다. 사월의 몸이 완전히 접히고 골반이 한참이나 들렸다.
원재는 상체를 기울였다. 사월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찍어 내렸다. 접합부에서 찌걱대는 소리가 연신 들렸다. 바르작대는 새빨간 입술이 보였지만,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울음 그쳐.”
혼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음성이었다. 그럼에도 사월은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젠 온몸이 불구덩이에 빠진 기분을 느꼈다. 원재에게서 느껴지는 열기도 그랬고, 몸에 닿는 체온도 지나치게 뜨거웠고, 들끓는 자신의 속도 마찬가지였다. 갈증이 났다. 버석하게 마른 목구멍 사이로는 건조한 숨만 터졌다. 아껴 주듯 굴었던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원재는 안을 계속 거칠게 헤집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사월의 시야로 미간을 찌푸린 원재가 보였다. 좆을 받는 수단이 된 듯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한 번만 참으면 돼. 이 사람은 금방 나가떨어질 거야. 다신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 초라함에 몸을 던진 사월은 퍼석 웃음을 흘렸다.
“아, 씹…….”
사월이 고개를 바로 하자, 욕을 뱉던 원재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벌건 손자국이 남은 허벅지를 한쪽으로 모아 쥐었다. 사월은 힘없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원재는 상체를 숙여 모로 누운 사월의 어깨 위를 덮쳤다. 사월의 무릎 한쪽을 굽혀 위로 올리자, 늘어진 구멍으로 좆이 더 깊이 박혔다.
“읏.”
아까와 다른 체위에 사월은 몸을 옹송그렸다. 옆으로 뉘어진 안으로 미세한 움직임이 더 세세하게 느껴졌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시야로 핏줄이 선 원재의 팔뚝이 보였다. 시트를 구겨 쥔 손등이 잘게 떨리고 있음이 보였다.
“이래도 아무렇지 않아? 상관없어?”
“하아, 하아…….”
끝까지 아프다는 말, 그만하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원재의 머리가 터질 듯이 뜨거워졌다.
“대답해.”
“으읏!”
억눌린 목소리였다. 하고 싶은 대로 사월을 굴리려면, 한참은 멀었다.
정말 뜻대로 섹스를 하고 싶었다면 사월의 온몸 곳곳을 물어뜯고, 빨고, 이를 박아 잘근 씹어야 한다. 좆을 머금은 아래를 더 벌려 손가락을 쑤셔 넣어야 한다. 알아서 허리를 흔들 때까지, 좆을 쥐고 흔들어야 한다. 시퍼렇게 멍이 들 때까지 엉덩이를 내려쳐야 한다.
하지만 원재는 그 어느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구멍에 처박아 놓은 좆으로 길을 내는 것밖에는.
“그래, 씨발…….”
버석한 사월의 음성. 웃기게도 사월의 욕지기 단번에 좆물을 쏟았다. 동시에 느슨하게 깜빡이던 사월의 눈이 감겼다. 배 속이 뜨겁게 차오를 텐데도 한 번 뒤척이지 않는다. 원재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월 사장…….”
늘어진 사월은 대답이 없다. 맞물린 아래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빠른 박동이 느껴진다. 땀으로 젖은 앞머리가 반듯한 이마에 달라붙어 있다. 원재는 손을 뻗어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러곤 사월의 어깨 위로 이마를 기댔다. 이미 정신을 잃어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걸 알지만 입술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나 좀.”
“…….”
“밀어내지 좀 마.”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데. 원재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허리를 뒤로 살짝 무르자, 그 틈으로 정액이 비죽 새어 나온다.
미친놈, 미친 새끼. 자신을 향한 욕지기를 속으로 지껄이며 원재가 좆을 잡아 느릿하게 빼냈다. 안에 듬뿍 들어찬 정액이 흘러나온다.
땀으로 번들대는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다. 식어 빠진 욕조의 물을 모조리 빼고 김이 나는 따뜻한 물을 받았다. 그사이 침실로 가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사월을 끌어안았다.
목덜미 사이에 고개를 파묻자 쌕쌕대는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걸을 때마다 받쳐 든 사월의 엉덩이 사이로 액체가 줄줄 흘렀다. 원재의 발길이 지나간 곳마다 정액이 뚝뚝 떨어진다.
정신을 잃은 사월을 안은 채로 욕조에 앉았다. 두 사람이 함께 앉자 물이 넘쳐 밖으로 크게 쏟아졌다. 맞닿은 가슴 사이로도 간지럽게 물살이 지나갔다.
눈물과 정액으로 지저분해진 얼굴을 닦아 줬다. 그제야 뽀얀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고 나선 구멍 안을 긁어냈다. 정액이 후두둑 쓸려 내려왔다. 한참 안을 긁어내고 나서야 사월의 등을 쓸었다.
“……아팠겠네.”
찰박대는 물소리와 함께 사월의 고른 호흡이 욕실을 채웠다. 원재는 사월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일정하게 뛰는 맥박이 묘하게 안정감을 줬다.
물이 다 식어 빠질 때까지 원재는 한참을 그렇게 사월을 그러안고 있었다.
늘어진 사월을 다리 사이에 앉혀 머리를 말리고, 가운을 입혀 눕히기까지 했다. 이불을 덮으려다 가운 사이를 들췄다. 단검이 그려진 허벅지를 옆으로 벌렸다. 엄지로 구멍을 슬쩍 문지르자, 사월이 잠결에도 바르작댄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입구는 많이 부어 있었다. 약을 사러 가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숨을 쉰 원재는 벌리고 있던 다리를 제 자리로 놓고 이불을 덮었다.
“…….”
사월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잠든 사월은 고분고분했다. 꺼지라며 밀어내지도 않았고, 상처를 주는 미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품에 안겨 있을 뿐이다.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사월의 체온이 욕심났다. 이마를 배회하던 입술이 콧대를 타고 입술까지 내려갔다. 색색 숨을 뱉는 입술 위를 꾹 누르고, 혀를 내어 생채기가 난 사월의 아랫입술을 핥는다. 내내 물고 있었던 터라 발갛게 긁힌 자국이었다.
원재는 깊게 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제 마음에 난 상처보다 사월의 입술에 생긴 상처가 더 아팠다.
***
그날 호텔에서 혼자 눈을 뜬 사월은 홀가분하게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는 홀가분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며칠을 빼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새벽 내내 뒤척였음은 당연했다. 원재를 알게 된 후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는데, 근래에는 더 심했다. 하루에 몇 번씩은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잡아 두었던 예약 날에 그는 나타나지도, 어떤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사월이 먼저 전화를 거는 일도 없었다. 성원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사월이 세워둔 벽을 두드리고 발을 들인 건 그 혼자였단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사월은 금세 침울한 생각에 잠식됐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사탕발림 가득한 말을 지껄여 대도. 결국 그가 원했던 건 섹스였을까. 원하는 만큼 안을 헤집고, 물고 빨아 댔으니 이제 끝이라 이건가.
“…….”
그럼 왜 그랬을까. 섹스 하나만 생각한 저급한 의도였다면, 아픈 것 따위 상관 말라던 말에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작업실을 정리하고, 찬바람으로 환기를 시켰다. 몽롱하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고, 이제야 온전히 신경이 쓰였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잠잠하던 전화벨이 울렸다. 사월이 급하게 팔을 뻗어 핸드폰을 열었다. 애초에 저장된 번호가 없었으니 모든 번호가 낯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아, 안녕하십니까. 성원재 사장님 비서 최원중입니다.
‘성원재’라는 이름에 사월의 미간이 구겨지고 입가가 비틀렸다. 사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 비서는 제 할 일을 성실히 수행했다. 눈 뜨자마자 [스토크 예약 미뤄.] 간결한 명령이 내려졌었기 때문이다. 언제로 미루라는 건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대충 눈치껏 한 달 뒤라고 짐작했다.
―저희 사장님이 예약했던 건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실례인 건 알지만, 예약을 미루는 게 가능할지요. 한 달 정도요.
이미 금액은 치룬 상태라 예약을 미루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작업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대부분의 손님이 깡패들이라, 예약을 걸어 놓고 감방에 가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까. 물론 애초에 사월이 그런 것 하나하나에 목을 매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런데 이번엔 예외였다.
“……왜?”
―예?
“왜 미루는 거냐고.”
그날 밤 자신의 위에서 내내 입술을 짓씹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거칠게 안을 쑤시는 좆을 받아 내는 자신보다 더 버겁고 아파 보였던 눈빛이.
―어…….
그 이유를 최 비서가 알 리가 없었다. 대충 머리를 굴려 그럴싸한 핑계를 끄집어냈다.
―아프셔가지고요.
“아.”
사월은 최 비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나를 피하고 싶은 거겠지. 그날 밤을 부정하고 싶은 거겠지.
사월이 퍼석 마른 입술을 손으로 뜯었다. 따끔하며 피가 맺히는 게 느껴졌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긴 침묵이 흘렀다.
“다음 달 같은 날짜, 같은 시간으로 옮겨.”
―……예에.
사월의 싸늘한 일갈에 최 비서는 눈을 꿈뻑였다. 혹시 성 사장한테도 이렇게 처음부터 말을 찍찍 놨나? 에이. 그럼 벌써 쥐어 터졌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내려 두었다.
사월은 갑작스러운 캔슬에 생긴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 뭘 해야겠단 마음도 들지 않아 그냥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고 앉아 있다.
시선이 닿는 곳곳에 자꾸만 원재가 보였다. 문 밖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모습, 소파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던 모습, 작업대에 걸터앉고 자신을 끌어안던 모습……. 짧은 사이에 참 거슬릴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었다.
사월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상관하지 말자. 충분히 신경 썼으니 이만하면 됐어.
“…….”
그래도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를테면 작업실이 오늘따라 더 넓어 보인다든지, 자꾸만 불투명한 가게 문으로 시선이 간다든지 하는 것들.
초조하게 테이블 위를 탁탁 두드리던 사월은 나갈 채비를 했다. 다음 출장 예약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그냥 일찍 가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
작업 내내 시끄럽게 울리는 노랫소리가 귀를 아프게 울렸다. 방음이 존나 구리네 여긴. 성 사장 나이트에서 했던 작업을 떠올렸다. 거긴 그래도 조용했는데. 나직하던 성 사장의 목소리도 잘 들렸고……. 자꾸만 모든 생각이 그로 향한다. 사월은 자꾸만 딴 데로 새는 정신을 다잡았다.
잠깐 쉬어 가기로 한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에 담배를 세 대나 폈다. 마지막으로 재를 떨어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트 뒷골목 바닥엔 어지럽게 반짝이는 간판 빛들이 번져 있었다. 그 색감이 천박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땅바닥을 보며 걸음을 옮기던 사월의 어깨로 덩치 하나가 채였다.
“아!”
“……아.”
동시에 터진 신음이었지만, 남자의 인상이 훨씬 더 구겨졌다. 키는 사월이 훨씬 컸지만, 덩치는 남자가 압도적이었다. 딱 달라붙는 티를 입은 탓에 그대로 드러난 남자의 복부는 울퉁불퉁 튀어나온 상태였다.
사월은 남자를 힐긋 내려다봤다. 그러곤 그대로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어이. 부딪혀 놓고 그냥 가? 씨발, 버르장머리가 없네?”
“…….”
“눈깔을 왜 그렇게 치켜떠? 좆만 한 게, 눈 안 깔어? 확 씨.”
네 좆이 이렇게 크다고. 사월은 코웃음을 쳤다. 키는 커도 마른 체형의 사월을 무시한 게 분명했다. 자주 있는 일이다. 이렇게 시비 털리는 일쯤은. 그대로 지나치려던 사월의 팔뚝을 잡은 남자가 엄포를 놓는다.
“어허. 사과도 안 하고 어딜 토껴.”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고 여러 갈래의 빛으로 번져 있던 바닥이 물결을 일으켰다.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자 속이 다 울렁댔다. 욕지기를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좆 까. 사과는 무슨…….”
사월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남자의 어깨 너머, 누군가를 발견한 탓이었다. 골목 초입에 서 있는 커다란 인영.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건 원재였다.
원재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사월과 덩치 큰 남자를 번갈아 봤다. 원재의 뒤에는 크고 검은 우산을 든 남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오늘 전화했던 비서라는 사람인가. 사월은 여상히 생각했다.
“이, 씨발놈이. 어디서 말대꾸를 따박따박, 뒤지고 싶어?”
키 작은 남자가 거칠게 사월의 어깨를 쳤다. 사월은 밀면 밀리는 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입을 벙긋댈 수도, 자신을 밀치는 손을 쳐 낼 수도 없었다. 원재에게 휘어잡힌 시선 또한 피할 수가 없었다.
“…….”
“니미. 사내새끼가 쫄아서 한마디를 못 하네? 엉?”
원재는 사월을 조용히 응시했다. 담배를 깊게 빨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내뱉을 때면 입술 앞에 하얀 연기가 흩어졌다. 사월 또한 원재가 담배를 태우는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자신을 무시하듯 아무 말도, 아무 시선도 주지 않자 남자의 심기가 뒤틀린 듯했다. 남자는 거칠게 사월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높이가 맞지 않아 사월이 다시 앞으로 휘청댔다.
연기 사이로 가늘게 뜬 눈을 번뜩이던 원재가 그대로 등을 돌렸다. 주름 없이 반듯하게 펴진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사월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쟤랑 나랑 뭐라도 돼? 섹스하고 싶어 해서 했고. 한 번 잤더니 호기심이 떨어졌나 보지, 뭐. 뭘 기대했어? 와서 도와주기라도 바란 거야? 사월의 입꼬리가 자조적으로 치솟았다.
“건방진 새끼가, 웃어?”
짝. 거친 소리가 나고 뺨이 얼얼해졌다. 사월은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제자리로 움직였다. 인상을 구긴 남자가 다시 두꺼운 손으로 뺨을 쳤다. 이번엔 입술이 터진 거 같았다. 비린 피 맛이 느껴졌다.
“형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비웃어?”
말마디마다 뺨을 갈기는 손길이 이어졌다. 사월은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았다. 눈앞의 남자쯤이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두꺼운 손에 점점 힘이 실렸다. 뺨을 내려치는 손길에 머리가 빙글 돌았다.
아,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그냥 이 새끼한테 맞아 죽는 거야. 그럼 김 사장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깡패 새끼한테 잘못 걸려서 개죽음을 당했다고 하면, 김 사장은 ‘어이고, 불쌍한 새끼’ 하면서 등을 툭툭 쳐 줄지도 몰랐다.
그래. 그 방법이 좋겠다. 사월은 입 안에 고인 피를 탁 뱉었다. 상대의 신경을 긁고 화를 돋우는 건 사월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형님? 좆 까. 너같이 좆만 한 형님 둔 적 없는데.”
“뭐? 지미 씨발!”
이번엔 주먹이었다. 잡고 있던 멱살도 놓아 버린 바람에 사월은 축축한 바닥으로 넘어졌다. 손을 뒤로 뻗어 땅을 짚었다. 손등 위로 빗물이 떨어졌다. 원재가 새겨 둔 울혈은 처음보다 희미해졌다.
남자는 작정한 듯 사월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반항도 딱히 하지 않는 사월은 힘을 과시하기 딱 좋은 상대일 테니까.
반팔 티셔츠가 비에 맞아 축축하게 젖어들어 갔다. 사월은 실실 웃었다. 배에 꽂힌 주먹이 얼얼했지만, 고통보다 쾌락이 더 먼저 느껴졌다. 아, 나 이제 죽을 수 있어? 드디어?
“이 씨발놈이 계속 실실대네? 더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안의 점막이 터진 건지 입에선 계속 피가 흘렀다. 내리치는 빗물에 얼굴이 따가워 고개를 돌리자 코 아래로 끈적한 것이 흐른다. 사월이 느긋하게 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번져 일렁이는 간판 빛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썅, 이 새끼가!”
두꺼운 손이 목을 콱 움켜쥐었다. 사월의 미간이 그제야 구겨진다.
“윽.”
희미한 신음이 흘렀다. 남자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음울한 눈빛이 쾌락으로 희번덕댔다.
“그렇지. 이렇게 반응해야 괴롭힐 맛이 나지?”
변태같이 중얼대는 건 덤이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목을 짓누르는 손바닥에 목젖이 다 눌렸다. 사월은 남자의 손을 떼어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얼굴 위를 세게 때리는 빗물만 맞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열심히 버틴 거 아닌가. 버려진 뒤, 덤으로 시작한 삶을 이어 가는 내내 아무 욕심도 안 내고 적당히 살았다. 최근 들어는 좀 이상했지만……. 딱 버림받은 주제에 맞게 살았다. 다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뭐. 사월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지 않고 몸의 힘을 풀었다.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때 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던 손과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급격하게 열린 목구멍으로 공기가 밀려들어 온다.
“크읍.”
사월은 밭은기침을 뱉었다. 눈을 뜨지 않아도 누가 덩치를 치운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씹새끼가.”
“윽!”
둔탁한 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로는 신음이 자리했다. 사월은 따가운 목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아까 보았던 그 셔츠였다. 비를 맞아 몸에 다 달라붙은 셔츠. 팽팽하게 당겨진 팔이 허공을 갈랐다. 이미 바닥에 엎어진 남자의 얼굴에 내리꽂히는 주먹. 남자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내 모습도 지금 저럴까.
사월이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원재의 등이 크게 오르내렸다. 호흡을 토해 낼 틈도 주지 않고 남자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윽…….”
바닥을 기는 남자의 머리를 또다시 걷어찬다. 구둣발에 채인 건데도 무언가 터지는 듯 섬뜩한 소리였다.
“사장님!”
골목 입구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왔다. 아까 보았던 검은 우산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온 비서가 가까워지기도 전에 원재가 먼저 움직였다. 늘어진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켰다.
“으윽, 씹.”
덩치의 머리채를 잡아 벽에 쾅, 소리가 나게 처박는다. 비에 물들어 진한 회색이었던 담벼락에 짙은 무언가가 타고 흘렀다. 원재는 한 번 더 남자의 머리를 끌어 벽에 박았다.
나이트 사장 이렇게 보니 좀 무섭네. 사월은 피가 흐르는 입가를 훔치며 생각했다.
원재는 쾅쾅, 연신 남자의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던 것이 바닥까지 다다랐을 때. 그제야 남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던져 놓았다.
“아, 사장님…….”
비서가 뒤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우산을 씌워 주긴 했으나 이미 원재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등은 여전히 거칠게 오르내리고 있다. 원재는 구둣발로 늘어진 덩치의 목을 꾹 눌렀다.
“읍.”
덩치가 원재의 다리를 잡아채고 때리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런 것쯤은 아무 타격도 없다는 듯이, 원재는 상체를 숙였다.
검지와 중지 사이엔 아까 피우던 것인지, 반쯤 타서 불이 꺼진 담배가 들려 있었다. 축축한 담배를 끼고 있는 손으로 남자의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옆으로 치웠다. 남자의 얼굴을 살피는 눈길이 날카롭게 빛났다.
“장 사장 따까리네?”
“크흡.”
“누가 여기서 지랄해도 된댔어.”
“읍, 큽.”
원재가 다리에 힘을 준다. 목이 더 강하게 짓눌리는 게 보였다. 남자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게졌다. 원재는 내내 등을 돌린 채였고, 최 비서가 드문드문 고개를 돌려 사월을 살폈다. 사월은 반쯤 바닥에 널브러져 비를 맞고만 있었다.
“대답 안 해?”
원재가 큰 손바닥으로 남자의 뺨을 세게 내려친다. 물에 젖어 찰박대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뺨을 세 번쯤 후려치자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푹 꺾였다.
“누가 허락했냐고, 쟤 손대는 거.”
원재는 남자의 뺨을 한 손으로 거칠게 잡아 세웠다. 곧장 다시 뺨을 내려쳤다. 잇새로 억눌린 목소리는 내내 들끓어 있었다.
“사장님.”
비서가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원재는 이미 불이 꺼진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 깊게 빨았다. 그러곤 바닥에 가차 없이 내팽개쳤다. 순식간에 비어 버린 손가락을 짧게 두어 번 까딱였다. 최 비서가 주저했다.
“가져와.”
“…….”
“씨팔, 빨리.”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최 비서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사월에게 다가갔다.
비서는 사월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커다란 우산을 씌워 주는 탓에 원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 비서의 등 뒤로 무언가 소름 끼치게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끄으, 윽!”
“아가리 다물어.”
고통에 찬 비명에도 원재의 음성엔 고저가 없었다. 사월은 찬 기운에 몸을 떨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원재는 겁 없이 말을 놓아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옷을 들춰도 가만히 내려 볼 뿐이었고. 욕을 지껄여도 마음에 든다며 웃어 보였다. 한 번도 저런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관계 내내 화가 난 듯 보였던 호텔에서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악! 으읍!”
“이 새끼 데려가.”
최 비서가 멈칫했다. 우산을 쥔 손이 잘게 떨렸다.
“뭐, 씨팔. 여기서 해?”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고…….”
최 비서가 우산을 사월 쪽으로 기울인 채 몸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였을까. 원재의 인상은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많이 다치셨는데, 안으로 모시는 게…….”
조심스러운 말에 원재의 시선이 사월에게로 떨어졌다. 눈이 마주쳤고, 원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틀었다.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참 거친 숨을 쉰다.
사월은 아까부터 머리가 멍했다. 목이 졸려 내내 막혀 있던 산소가 아직 몸에 덜 퍼진 거 듯했다. 파랗게 질린 입술 위로 빨간 핏방울이 흘렀다.
“아……. 좆같네, 진짜.”
성큼 원재가 다가온다. 최 비서가 기울였던 우산을 거칠게 쳐 낸다. 우산이 바닥에 떨어져 빙글빙글 돌며 비를 맞았다. 원재가 사월의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우악스러운 몸짓이었다.
최 비서는 그사이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에게 향했다. 원재에게 끌려가던 사월이 언뜻 고개를 돌렸다. 남자 주변은 온통 핏물로 가득했고 입 안에는 넥타이가 처박힌 채였다. 죽었으면 하는 건 자신이었는데, 왜 저 남자가 죽은 꼴을 하고 있는 건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원재에게 끌려 차에 탔다. 시트가 축축해지는 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굴었다. 차에 타자마자 사월의 무릎 위로 티슈가 툭 떨어졌다. 원재는 서늘한 낯으로 핸들을 쥐었다.
큰길로 나갈 것도 없이, 골목 몇 개를 돌고 나서 한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 선에 하나도 맞지 않게 대충 차를 댄 원재가 먼저 내렸다. 사월은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었다. 벌컥,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훅 끼쳐, 사월은 어깨를 움츠렸다.
“내려.”
“…….”
“사장님, 좋게 말할 때 내려.”
원재가 팔을 뻗어 안전벨트를 풀어냈다. 그의 손등에는 아까 보지 못했던 핏물이 튀어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을 거칠게 조수석에 꺼내는 행동에 사월은 순순히 이끌렸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집에 도착해 들어설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에 젖어 온몸이 서늘했다. 아래턱이 덜덜 떨리려는 걸 겨우 힘을 주어 버텼다.
“씻고 나와.”
갑자기 실내에 들어와서인지, 사월은 몸이 뜨끈해지는 걸 느꼈다. 특히 눈가에 열이 몰린 감각. 사월은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 껄끄러웠지만 이내 삼켜 냈다.
성큼 거실을 가로지르던 원재가 걸음을 멈춘다. 자신을 뒤따르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였다. 침묵이 흘렀다.
“아…….”
그가 고개를 젖혀 신음 같은 소리를 길게 내뱉었다. 고개를 좌우로 비틀던 그가 급하게 몸을 돌렸다. 축축한 셔츠가 온몸에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움찔대는 근육이 고스란히 보였다.
뺨이 부어 눈 한쪽을 찡그린 사월이 얼굴을 들었다. 원재의 큰 손바닥이 사월의 뜨거운 볼을 꾹 누른다. 체온이 닿자 얼굴이 따가웠다. 엄지가 느릿하게 눈가 아래를 슥 훑었다.
사월은 울컥 목구멍에 치미는 뜨거움을 견뎌 냈다. 이까짓 게 뭐 그렇게 아프다고……. 사월이 고개를 틀자, 허공에 뜬 원재의 손이 잘게 떨렸다. 공기만 틀어쥔 주먹이 아쉬움을 남기고 물러선다.
“감기…….”
“…….”
“됐다.”
원재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들어간 뒤에야 막힌 숨을 내쉬었다. 사월은 정신을 차리고 싶어 차가운 물을 온몸에 뿌렸다. 입술을 깨물 때마다 쓰라렸다. 고통이 느껴지니 이제야 조금 정신이 드는 건가. 사월은 차가운 물을 떨어트리는 샤워기 아래에 몸을 맡겼다.
서늘하게 식은 몸의 물기를 닦았다. 욕실 문을 열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놓여 있었다. 부드러운 잠옷을 꿰어 입고 거실로 나섰다. 옷에서는 묵직한 나무 향이 났다.
“앉아.”
다른 욕실에서 씻은 건지, 이미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 원재가 보였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구급상자가 놓여 있었다. 치료라도 해 주려는 건가. 행간을 읽은 사월은 주저했다.
그간은 상처가 나면 나는 대로 살아왔다. 흉이 지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그랬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뺨과 입술이 아픈 건지. 약을 바르지 않으면 썩어 곪아 버릴 것 같다는 착각이 마구 일었다.
“왜 가만히 처맞고 있어. 나는 그렇게 잘 밀어내면서.”
찢어진 아랫입술에 연고가 닿았다. 차가움에 움찔대자 연고를 바르던 손가락이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원재의 약지손가락은 아까부터 잘게 떨렸다. 처음 손을 댈 때, 상처에서 벗어난 곳에 손가락을 찍은 탓에 살살 문지르며 연고를 펴 발라야 했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에 잘하는 욕지기나 말대꾸 따위도 없다. 사월은 그냥 입을 딱 다물고 원재의 가슴팍 어디쯤에 시선을 둔 채였다.
원재는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사월 사장은 정말 어느 하나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다. 애초에 곱게 대답해 주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상처를 누르지 않게 약지에 힘을 주고 반투명한 연고를 문지르는 것에 집중했다.
“뒤지고 싶어서.”
“…….”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 하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도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좀 비참하지 않나. 원재는 허망한 기분을 애써 숨겼다. 사월을 빤히 바라보아도, 그는 좀처럼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저 눈빛 안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읽어 보기라도 좀 하고 싶다.
“죽었으면 했는데. 왜 말렸어.”
종국엔 원재의 미간이 구겨졌다. 누가 보면 사월을 이 꼴로 만든 게 원재가 아닐까, 생각할 만큼 흉포하고 살벌한 표정이었다.
“……왜냐고.”
원재의 말끝이 높낮이 없는 일직선을 그렸다.
글쎄.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내가 왜 빗속에 뒹굴고 있는 사월 사장을 구했는지. 어째서 피범벅이 된 채로 흠뻑 젖은 당신을 보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그저 상처에 스치지 않겠다고 온몸을 긴장시키고 연고를 바르고 있는 건지. 나도 궁금해서 돌겠는데, 지금.
원재의 빨간 아랫입술이 속으로 씹혀 들어갔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
“너는 어떻게 그런 좆같은 말을 잘도…….”
연고가 묻은 손가락이 안으로 말렸다. 손등이 잘게 떨릴 만큼 강하게 주먹을 쥔다. 원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안에서 뜨거운 게 울컥 넘어왔다. 숨을 크게 쉬면서 진정하기 위해 애를 썼다. 화내지 말자. 겁먹게 하지 말자.
“다음엔 신경 끄고 갈 길 가. 알았어?”
하지만 마지막 말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오늘 이 정도로 멈춘 것도 놀라운데. 신경을 꺼? 갈 길을 가? 이젠 사월이 세우는 경계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온다면 말이 달라지지, 사월 사장. 원재의 어깨가 거칠게 오르내렸다. 한참 뒤 번뜩 들리는 고개. 낮게 가라앉은 시선이 차갑게 사월을 향했다.
“그렇겐 못 하겠는데.”
잇새로 억누른 음성이 뒤이어 들렸다.
***
살을 낱낱이 발라먹을 듯 뜨겁고 날카로운 시선에도 사월은 주눅 들지 않았다. 다만 원재의 가슴팍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일에 관심 좀 꺼, 미친 새끼야.”
그건 진심이었다. 사월은 여상히 말했다. 이젠 비에 젖어 잘 그어지지도 않는 희미한 선을 몇 번이고 계속 긋는다. 힘주어 눌린 바닥에 흠집만 날 뿐, 경계는 또렷해지지 않는다. 사월은 당혹감에 몇 번이고 바닥을 긁어 댄다.
“내가 뒤지든 말든.”
“뒤질 수 있었는데 내가 살려서 어떡해.”
원재의 입꼬리 한쪽이 비죽 올라갔다. 그제야 사월이 시선을 들었다. 한참 주시하던 가슴팍에서 목덜미, 턱 끝, 뺨……. 천천히 위를 향하던 시선이 마주치기 직전. 정제되지 않은 거친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렸다.
“그럼. 이거 내가 살린 목숨이니까 맘대로 해도 되지?”
원재가 손을 뻗어 이미 벌겋게 손자국이 난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사월을 제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아랫입술에 묻은 연고가 턱 언저리까지 번졌다.
한 손으로 뺨을 세게 쥐어 입술을 벌렸다. 그 안에 혀를 쑤셔 넣었다. 얼어붙은 혀를 감고 빨고, 목구멍까지 혀를 쑤셨다. 씁쓸한 연고 맛과 함께 비릿함이 느껴진다.
원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강하게 빨고, 치아로 사월의 혀를 살살 긁어내고, 터진 볼 안의 점막까지 핥았다.
사월은 그 사이로 속수무책 넘어오는 타액을 삼켰다. 채 넘기지 못한 타액이 입가에 줄줄 흘렀다. 폭력 같은 키스였다.
“읏.”
찰나였다. 희미한 신음이 원재의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포악스럽게 움직이던 혀가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축축한 것이 질척대는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타액이 길게 늘어져 사월의 아랫입술 아래로 툭 떨어진다. 그제야 사월은 작게 가슴을 들썩이며 호흡을 골랐다. 원재가 쥐고 있던 뺨은 내내 뜨끈했다.
“하…….”
고개를 숙인 원재가 긴 숨을 뱉어 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건전한 전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관심이 가는 상대를 집에 데려와, 그것도 젖은 채로 입을 맞추는데. 여기서 물러나는 건 일단 원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짓이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 사월은 달랐다. 그동안 불손하고 교만하게 살던 삶을 꾸짖기 위해 나타난 존재 같았다. 그는 원재가 마음대로 굴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부분은 부러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그 점 또한 놀라웠다. 세세하게 남의 변화와 기분을 파악하고 맞추는 짓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게. 여러 가지로 사월은 원재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으읏…….”
부어오른 사월의 목덜미 위로 온기가 퍼진다. 작은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움찔대자, 원재가 천천히 고개를 비틀었다. 축축하고 뜨거운 입술이 음습하게 목덜미를 핥았다. 어깨와 이어지는 곳부터 귓불까지. 원재의 뜨거운 혀가 흔적을 남긴다.
밀어내려던 사월은 멈칫했다. 어쩐지 일련의 그 과정이 의식을 치루는 행위와 동일하게 느껴졌다. 붉게 손가락 자국이 난 피부 위에 연고를 바르듯.
상체가 뒤로 밀릴 만큼 몸을 바투 붙인 원재가 천천히 멀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들끓던 시선은 그새 잠잠해진 뒤였다. 눈동자가 사월의 목덜미를 샅샅이 관찰했다.
“함부로 굴리지도 못 하겠네.”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사월은 대답할 겨를을 찾지 못했다. 팔뚝을 잡아 몸을 일으킨 원재 때문이었다. 그는 팔뚝이 아플까 힘을 최대한 억누르고 사월을 끌어당겼다. 목적지는 침대 위였다. 불도 켜지 않은 방으로 뒤따르던 사월이 주춤 걸음을 멈추며 주저했다.
“뭐 하자는 거야.”
“뭘 하자고 하면, 따라와 주긴 할 거고?”
원재는 방 안에 들어 서 있었고, 사월은 여전히 거실이었다. 둘 사이에는 아주 얕은 경계가 그어져 있었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 원재는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사월을 그저 가만히 내려다본다.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진 눈빛이었다. 사월은 내내 무표정했지만, 원재는 그 찰나에 두려움을 읽었다.
“안 해. 아무것도.”
헛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까 빗속의 골목에서 마주했을 때와는 다른 표정과 음성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 있던 그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졌다. 왜일까. 사월은 거기서 희미한 안도를 느꼈다.
“무드 없는 건 한결같네.”
어쩔 수 없다는 듯 원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월이 빤히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팔을 끌어당기자 마른 몸이 이번에는 순순히 따라온다. 원재는 또 거기서 쾌감을 느꼈다. 올라가는 입매를 억지로 내리면서, 버티고 선 사월을 끌어 침대 위로 올렸다. 이불을 걷어 그 안에 사월을 밀어 넣고 옆에 바싹 붙었다.
급격히 끼쳐 오는 체향에 사월이 숨을 멈췄다. 그 틈으로 원재는 사월의 머리 아래로 팔을 끼워 넣었다. 단단한 팔은 머리의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는지, 구부려서 어깨까지 감싼다. 모로 누운 원재는 이불을 끌어 올렸다. 한 몸처럼 붙어 침대에 눕는 데까지는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자.”
“……하아.”
“비 많이 맞았잖아.”
억지로 재우듯 어깨를 토닥였다. 규칙적으로 닿았다 떨어지는 손길. 사월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이건 정말이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종류의 스킨십이었다.
김 사장이 보호자 역할을 한답시고 꽤 나서기는 했지만, 이런 세세한 보살핌까지는 건네주지 못했으니까.
어린 시절의 사월은 천둥소리가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밤을 새웠다. 가게를 드나드는 깡패들이 혼쭐을 내 주겠다고 꿈에 나와 소스라치며 놀라 깨도, 혼자 눈물을 삼켰을 뿐. 토닥여 주거나 달래 주는 다정한 손길 따윈 받아 보지 못했다.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자신을 달래 주는 온기가 있다. 명치 쪽이 저리고 박동이 묵직하게 커졌다. 사월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시커먼 천장만 응시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원재의 숨소리가 일정해졌다. 한참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던 손길 또한 잦아들었다. 사월은 멀뚱히 눈을 뜬 채였다. 밖에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내리쳤다.
하지만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어린 사월은 더 이상 없다. 사월은 그제야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사월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수마에 빠졌다.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늘 꾸던 악몽도 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