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6/28)

Till the Fat Lady Sings #25

헉헉. 헉헉. 후우. 후욱. 두 사람의 숨소리.

찰박 찰박하는 살과 살이 맞부딪는 소리.

그리고 이어진 소리. …두 사람의 배설기와 생식기가 이어져 마찰 중이라는, 질퍽질퍽하게 젖은 소리. 소리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천히… 이 자식, 천천히 해. 찢어질 것 같단 말이야. 무식하긴.”

그런 소리들에 목소리를 섞는 건 대부분 고토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치를 올릴 때 태정이 가끔 억제를 못하고 ‘예뻐, 예뻐’라는 입버릇을 토할 때가 있다. 그 말에 성질을 곤두세웠던 녀석이었는데, 이후 태정이 무의식중에 녀석을 ‘예쁘다’ 고 했을 땐, 정작 그리 불끈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흥분을 보였다―녀석은 자신의 모순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속도 조절 못 해?”

고토의 말에 태정의 허리 움직임이 한결 둔중해진다.

“아 미안.”

움직임부터 늦추고, 사과의 말이 나간다. 꽈악 물린 압박감은 사실, 태정도 견디기 힘들다. 불만을 토하며 찡그렸던 녀석의 얼굴이 웬만큼 여유를 찾고 있다. 태정은 고토의 얼굴을 살피면서, 추삽질을 이어갔다. 들러붙어 있는 사내 둘의 사타구니 사이는 뭔가가 물에 젖은 듯, 물을 튀기는 듯한 음향들을 다시금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태정의 하반신의 움직임도 그와 리듬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유를 보였던 고토의 얼굴이 어쩐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태정의 눈에 눈을 맞추면서. …만족은 아니다. 녀석은 행위 중에 쾌감을 느낄 때는 저렇게 웃지 않았다. 오히려 통증을 느낄 때와 비슷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다. 태정이 하반신을 고토의 엉덩이와 함께 반복해 땡겨 올리면 녀석의 얼굴에는 피가 몰린 듯 벌게져 그 자신의 앞을 붙들고 격렬하게 마찰을 시키거나, 아니면 태정에게 요구를 하는 게 보통인 것이다.

저렇게 싱글싱글 웃는 것은, 아니었다.

왠지 태정은 고토의 그런 얼굴이 불편에 슬그머니 피했다. 고토의 얼굴 옆 다다미에 시선을 고정하며 고토의 엉덩이를, 그 속의 깊숙한 열점熱點을 탐한다.

“너, 사람 죽인 일 있다면서.”

정지. 모든 게 정지한다. 눈앞을 칠흑 같은 암흑이 덮친다.

암전暗轉된 세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 일 없어.”

팟, 하고 눈앞은 다시 밝아진다. 그 사이 바뀐 무엇은 없다. 태정은 계속 고토의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고, 누워서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녀석도 여전히 싱글거린다.

고토가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웃었던 건, 그것 때문이었다. 키타무라.

“흐음…, 혐의를 부인하시겠다? 그렇게 빠져나간 건가?”

고토가 사실을 알게 된 경위는 대충 추측이 가능했다.

아라시. 녀석을 그 앞에서 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중에 하마다 관장도 고토 마사키라는 녀석이 체육관에 찾아 왔었다며 태정에게 그가 누군지 물어 보았던 것이다.

“그런 일 없어.”

똑같은 어조와 똑같은 말로 반복해 말하는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도 기계적으로 들려온다. 철벅 철벅. 고토 녀석과의 행위도 기계적으로 진행되어 간다. 녀석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니야. 끝까지 갈 것이다.

태정은 녀석이 키타무라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하필, 행위 도중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의 안에 들어가 있는 태정을 고토는 단단히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조여 대며 탐색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본능적인 태정이므로―그것으로부터 반응을 가장 잘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두지 못한다. 태정에게 본래부터 선택권이란 건 없지 않은가.

“너, 옛날부터 그런 냄새가 흐읏…, 났어. 흐읏. 잔뜩 뭔가를…, 숨기고 있는. 그게 궁금했지. 그런데 역시나인걸…. 흐웃, 캐보니까 이거 엄청나게…, 헉.하으. 웃긴 녀석이잖아. 너. 정말 실망시키지 않는군 그래?”

녀석은 행위에 거칠게 숨을 토해내면서도 끝까지 말을 쏟아냈다.

“그런 일 없다고 하잖아…. 훅, 후우….”

태정은 피치를 올렸다. 숨소리도 자연 거칠어진다.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 일이, 왜 이 녀석에 의해서 들춰져야 하는 건지.

고토가…, 키타무라와 ‘같은’ 인간이 고토가 그 일을 정죄定罪할 수는 없다. 그렇게 놔둘 수 없었다. 키타무라는 죽었는데 너는, 살아 있잖아. 살아 있잖아. 이렇게….

“크읏… 아… 아으… 이 자식, 아퍼… 퍽, 퍽. 살살… 흐윽….”

다시 속력이 붙은 태정을, 고토가 어깨를 쳐대며 밀어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찌푸린 녀석의 눈은 이제 싱글거리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정을 본다. 태정의 동작에 위아래로 흔들리고 밀리면서….

“흐음….”

눈과 눈썹을 찡그리는데도, 녀석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슬며시 떠돌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헉헉. 헉헉. 흐읏. 으흐

다시 고조된 숨소리와 신음이 대화를 꿰차고 들어왔다.

“씨팔… 흐으, …씨팔…….”

소리들 사이로 욕설이 간간이 섞인다. 억누른 듯한 그것은 태정의 악다문 잇새로 계속계속 흘러나왔다.

「호르몬 인간」을 들고 녀석이 아라시로 태정을 찾았던 이후에, 하마다 관장이 물었었다. 그 친구 누구냐고. 희상이나 경무를 관장이 본 적이 있나, 태정은 고개를 갸웃했었고, 누구를 말하느냐고 물었다.

「고토… 고토 마사키라고 하던데. 그 녀석, 자기 명함도 주더라고. 그래서 나도 줬지.」

명함이야기를 듣고 태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찾아 온 이유를 녀석이 무어라고 했는지 궁금해 태정이 묻자, 관장은 그건 자기가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와 봤다, 조가 없느냐. 그런 이야길 하던데? 급한 일이 뭔가?」 급한 일이라니, 그 말에 태정은 어이가 없어 웃었던 것 같다. 급한 일은 아니었다고 하자, 하마다 관장은 역시, 라고 중얼거리며, 급한 일이라면서 그런 기색은 별로 없더라고 했다.

…그날, 관장의 말을 좀 더 염두에 둬야 했었다.

고토는 아라시를 구경해도 되냐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고 했다. 또 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도, 그때 태정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이리라.

재밌고 사교적인 녀석이었다고 관장은 말했다. 아주 잘생긴 놈이었다는, 고토의 눈에 띄는 외견에 대한 평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보이는 녀석이었지, 라고 생각하며 관장의 평에 태정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역시, 다양한 인간들을 두루 거친 관장이었다. 「친구는 아니고, 무슨 관계인 거지?」라고 대번에 묻는 하마다 관장은 녀석을 미심쩍어 했다.

「그 녀석 자신감이 흘러넘치더군. 언동도 세련되고 외관은 고급스럽고… 뭐, 그럴 만한 거지. 좋은 환경에서,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자란 거야…. 하지만, 그런 인간이 친구가 아니면 골치가 아프지…. 안 그래?」 고토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관장은 씨익 웃었다. 그런 관장에게 태정은 그저 그 녀석한테 빚을 진 게 있다고만 말했다. 「어이쿠, 그런 녀석에게 빚을 졌단 말이지? 돈은 아닌 것 같고….」 짐짓 놀래는 시늉을 했지만 관장은, 진 빚은 빨리 갚으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그런 빚은 지는 게 아니야….」 빚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하마다 관장은 그렇게 말했다.

청산할 도리 없는 빚을 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토가 살아 있는 것에 깊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녀석은 모를 감사까지 녀석에게 했다. 그렇지만 바로 그 녀석이, 태정에게 사람을 죽였느냐고 비난을 한다. 조롱을 한다. 겨우 잊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겨우.

그렇게 힘겨웠던 ‘겨우’를 고토는 한갓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죽였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 응? 어떤 기분이었냐고. 테짱….”

섹스 중에 벌거벗고 싱글거렸던 고토가, 이제는 옷을 모두 갖춰 입고 실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태정을 ‘달콤하게’ 부른다. 하지만, 의뭉스런 웃음을 그 얼굴에서 뗄 수 없는 것처럼, 녀석의 입에선 여전히 ‘죽음’이 들러붙어 있었다.

“후우….”

담배를 손가락에 낀 고토는, 구석에 앉아 있는 태정에게 담배 연기를 날렸다. 연기가 폐부를 막는다. 숨 쉬는 게 곤란하게 느껴졌다.

“죽인 게 아니야.”

“아하, 그런 일 없다고 하다가 이젠 죽인 게 아니다? 진술이 번복되고 있는 건 알고 있나?”

태정은 무겁게 떨군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지금까지 키타무라의 죽음에 태정 스스로가 ‘아니라’고 하면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고토의 앞에서 그 부정은 비웃음을 당할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자의 비웃음이다.

“뭐, 그래도 이제 좀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네 녀석, 사람 죽여 놓고 대단히 뻔뻔하잖아? 제 동료 죽었다고 나한테 그렇게 달려들어서 또 죽이려고 한 거냐? 응?”

태정의 동료를 ‘죽여’놓고 지극히 뻔뻔했던 건 고토였다. 사람을 죽인 것이, 사람이 죽은 것이 녀석에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정은 고토를 비난 할 수 없다. 녀석의 말대로 자신은, 사람을 죽여 놓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뻔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정말 죽이려고 했군? 날 죽이려고 했단 말이지…?”

죽이려고 달려든 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가눌 길이 없었다. 그게 가장 적당한 대상을 찾았던 것이다. 그것을, 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넌 뭘 알고 있는 거지?”

잘못된 추측에 태정이 그에 대고 묻는다. 녀석은 담배를 입으로 한 모금 빨았다.

“후우…. 물론, 모든 걸 알고 있지. 너의 살인 그리고 살인 미수 말야.”

내뿜는 담배 연기만큼, 한없이 가벼운 녀석의 대답이었다. 죽음의 무게는 그렇게 큰 것을. 가슴이 크게 들썩거리지만, 어깨가 그것을 간신히 내리 누른다. 벌떡 일어나지 않는 것도, 녀석의 멱살을 휘어잡지 않는 것도 모두 어깨로만 감당하고 있었다.

“네 녀석이 도대체 뭘 안다고…. 감히 뭘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어?”

태정은 서 있는 녀석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낮은 목소리는, 태정이 이미 녀석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앉아 있는 것은 이미 일어서서 녀석을 벽에다 밀어붙인 것이다. 주먹을 쥐고 다다미에 손을 박고 있는 건 이미 녀석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다.

“감히? 하…. 좋아. 그냥 그건 넘어가 주지.”

코웃음을 치는 고토…. 태정에겐 단어의 선택조차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토는 태정의 ‘실수’를 짐짓 관대하게 처분한다.

“그렇다면, 내가 뭘 모르고 있는 건데? 음? 가르쳐줘, 텟짱…. 알고 싶잖아.”

태정의 별칭은 고토의 비아냥거림에 요긴하게 쓰인다. 고토 녀석이 ‘실수’에 관대했던 건 모두 그 이유가 있었다. 뻔한 녀석의 수작에 태정이 입을 열지는 않는다. 그리고 녀석도 모르는 편이 좋았다. ―녀석을 위해서 말이다.

태정은 고토에게 그만 하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태정에게 그것은 이미 한계 수준을 뛰어 넘었다는 의미이다―훌쩍.

“하하. 그렇게 말하는 건 더 알고 싶어해라, 뭐 그런 소리인데…. 말해봐, 나한테는 괜찮잖아? 나도 네 손에 죽을 뻔한 인간이라고. 죽었으면. 그래, 날 죽여놓고 사람들한텐 뭘 아느냐고 그렇게 말했겠군? 그런 거냐? 응? 그런 거냐고. 뭐어 원래, 죽은 사람만 바보 되는 것이지만….”

아니야. 그만해. 그만 하라고. 지금껏 계속 그렇게 되뇌었던 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꼴사납게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그런 발버둥은 금세 사람을 탈진시켜 버린다.

…탈진한 심리는 급속히 냉담해진다.

“넌 뭘 알고 싶은 거지?”

이제 태정은 담담해져, 녀석에게 차분하게 묻는다.

묻는 것을 알려주지. 고토 너에게, 기꺼이.

안달을 내던 녀석의 얼굴은 이제 눈에 띄게 여유가 돌았다. 뭘 그렇게 알고 싶은 거지? 고토? 뭐가 그렇게 기쁜 건가…. 녀석은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빤다. 그리고 마치 이제부터의 질답에만 집중하겠다는 듯이 담배를 개수대에 던져버렸다.

“누굴 죽인 거냐? 왜 죽였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고토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녀석은 ‘알고 싶은’ 것을 물었으리라. 키타무라라는 인간과, 연습 시합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싶은 건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태정은, 녀석이 ‘알아야 할’ 것을 말해준다.

“너 같은, 일본인을 죽였어.”

“이 자식, 그걸 누가 몰라? 지금 말장난 하냐?”

녀석은 태정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토를 위해 다시 한 번 태정은 풀어 말해준다.

“키타무라는 정말…. 너와 똑같은 인간이었어. 그래서 죽였어.”

태정은 희미하게 웃는다. 정말 닮은꼴이었던 거다. 둘은. 이제 태정은 고토에게 싱긋 웃는 여유를 보일 수도 있었다. 태정은 슬그머니 일어나 고토의 앞에 선다.

“그래서, 너도 찾아간 거다. 넌, 키타무라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 죽는 건 아니지.”

고토의 얼굴이 점차 굳어진다. 꼼짝 않고 서서, 눈만 굴리고 있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대단히 불안정하다. 그것은 미동 하나 없이 서 있는 녀석이 움직일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같다. 푸하…. 왜 그렇게 경직된 거지 고토? 마치…, 마치 너, 내가 굉장히 두려운 것 같은 표정이지 않나.

“넌 이렇게 살아 있잖아…?”

태정은 새삼 고토를 위아래로 쳐다본다. 믿어지지 않게 멀쩡하지 않은가. 그 사실이 아주 새로운 것이라도 되는 냥, 태정은 손을 뻗었다. 만져보고 싶어서, 느끼고 싶어서다. 고토의 얼굴을. 흠칫, 갑자기 내민 손에 녀석이 주춤한다.

“뭐야?!”

파악,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태정의 손을 쳐낸다. 큭큭…. 고토의 반응에 태정은 끅끅대며 웃었다. 제 풀에 놀란 것이 화가 난 거다 녀석은. 왜 웃어. 왜 웃냐고. 고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온다. 태정은 다시 녀석의 얼굴에 손을 댔다. 한 손으로 턱을 잡고, 그리고 강하게 자신에게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뭐가 더 궁금한 거지?”

“이거 놔.”

“뭐가 더 궁금한 거냐고.”

고토는 태정의 손을 뿌리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태정이 놔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얼굴이, 목이, 어깨가, 전신이… 긴장으로 굳어 있다. 그렇겠지. 한 번 쪼개진 턱을 손으로 으스러지게 붙잡고 있는 것이니…. 태정은 천천히 손을 뗀다. 붙들려 있었던 턱을 손으로 쓸어 보면서 고토는 성난 눈빛으로 태정을 노려본다. 언제 긴장했느냐는 듯 이미 녀석은 여느 때의 고토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뭐가 궁금하냐고? 네가 뭘 믿고 이렇게 건방져진 건지 궁금한데…? 방금 뭐라고 했어. 누가 똑같다고? 죽인 녀석이 나랑 똑같아? 똑같아서 죽였단 말이지…그럼 넌 계속 죽여야 하겠군. 안 그래? 또 나타나면 또 죽여야 할 거 아냐. 하, 계속 죽일 거냐? 말해봐. 궁금하니까.”

잔뜩 움츠렸던 녀석이 금세 의기양양해져 소리치는 것을 태정은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놔주는 게 아니었다. 저 녀석….

억지 같은 고토의 그 논리는, 그것이 단지 성립 가능하다는 빈약한 근거만을 가지고서도 태정을 충분히 들쑤시고 있었다. 말해주었지 않은가. 네 녀석이 알고 싶어하는 걸 알려주었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고토는 그의 질문에 답해보라고, 태정을 강요하고 있다. 태정은 고토에게 바싹 다가서며 대답한다.

“아니 죽이지 않아. 네가, 아직 죽지 않았잖아.”

그리고 태정은 다시 한발 다가선다.

“아니 아니…. 그렇다고 네 녀석에게 다시 덤비지는 않아.”

그새 마치 고토의 질문이 있었던 것처럼 태정은 그에게 말한다. 꽈악, 고토의 어깻죽지를 잡고―잡힌 어깨를 녀석은 좁혔다.

“후…. 네가 날 무서워하지 않게 되면, 그때 끝내지.”

“뭐?! 누가 널 무서워해? 끝내…? 이 새끼가….”

고토는 잡힌 어깨를 흔들지만, 태정은 놓지 않았다.

“네가 날 무서워하는 거잖아. 네가 날 두려워해야 하는 거라고. 그게 맞는 거야. 알아?”

고토가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치지만, 태정은 잡은 어깨를 손가락이 박힐 정도로 세게 틀어잡아, 그것만으로 고토를 안정시킨다―억지로.

두려움. 공포. 그래, 고토 넌 조센징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거겠지. 그래서 모르는 척했다. 태정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녀석은 궁금한 걸 이제 모두 알았을 것이다. 태정은 고토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알려주기로 한다. 아마도 누군가는 알려줘야 하는 것이리라.

“물론, 잘 알고 있어. 넌 날 무서워하지 않아서 다리를 벌린 거지. 겁나지 않는다고 확인하라고 엉덩이를 댄 거야. ……푸후… 다 집어 치워. 그런 엿 같은 소리를 정말 믿으라고 한 건가? 그게 뭐냐, 그게 무서워하는 거 아니면 뭐냐고? 개새끼만 봐도 알아. 상대가 두려우면 벌러덩 누워서 뱃가죽 드러내고 다리 벌린다고. 너, 그거잖아.”

“뭐….”

그을린 듯 갈색조인 고토의 얼굴색이 지금은 흙빛으로 보인다. 딱딱하게 굳은 납덩이라고 하나 저런 얼굴을…?

“그게 아니야? 그럼 그냥 좋다고 해. 조센징 좆이 좋아서 한다고 말해. 솔직하게. 나도 인정했잖아. 네 똥구멍이 좋아서 빤다고. 잠깐, 그렇게 되면 너, 상대가 무서운 개새끼가 아니라, 발정해서 엉덩이를 대는 개새끼인 게 되나?”

이런 식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이…, 녀석이 자신을 시궁창에 쑤셔 박았다. 시궁창의 오물을 입 속에 쳐넣고 태정은 그것을 씹는 것이다.

“무서워한다고…? 맞아 나도 네가 무서워. 제일 무서운 건 그 짓 중에 네가 흥분할 때야. 흥분할수록 무섭다고. 그 짓 끝내고 나면, 네 녀석, 난폭해지잖아. 그게 좋을수록 더 난폭하게 군다고. 아아. 이해는 가. 넌, 혐오스러운 거지. 딴 물건을 똥구멍에 끼고 사정하면 그럴 만도 해…. 하지만, 좀 헷갈리는 게 있다. 끝나면 항상 너, 조센징 어쩌고 하잖아. 그런데, 뒹굴 때는 몰랐다가 끝나고 나면 생각나는 거냐? 내가, 조센징이라는 게? 그게, 혐오스러운 거냐?”

모두, 지껄인 것 모두, 태정이 고토에게 해선 안 될 소리였다. 애초에 태정의 무모함이, 그 모든 것을 불러 온 것이다. 그렇지만 태정은 그러한 죄책감을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다. 그것이, 언제인지 모르게 부패하고 썩어버려 괴상하게 비틀린 역겨운 모습을, 고토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는지 모르겠다. 네 녀석, 엉덩이에 그거 박아넣을 때면, 귀가 펄럭거려. 그렇게 좋은 건가? 머리끝까지 아찔하게 좋은 거냐고. 이젠, 똥구멍에 남자 물건을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크하하…… 하….”

태정은 녀석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을 뿜어낸다. 흥분해 씩씩댈 줄 알았던 녀석은, 오히려 숨소리가 아주 미미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고 있지 않는 것이다. 녀석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 태정의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고토의 어깨를 거세게 눌러 조일 필요가 이제는 없다는 걸 태정은 뒤늦게 깨닫는다.

태정은 손아귀에서는 힘이 빠지고, 이윽고, 손을 녀석의 어깨에서 내려놓는다―손의 동작은 매우 의기소침해 보인다.

얼어붙은 침묵.

꽤나 긴 그것을 냉랭한 목소리가 깬다.

“끝난 건가?”

고토가 묻는다.

끝났다. 태정의 할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은.

너무 늦게 끝난 것이다. 태정은 고토의 할 말을 기다린다.

“시합이 있을 거야.”

입을 뗀 녀석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시합? 갑자기 무슨…? 침묵 속에서 녀석은 시합을 생각했던 것인가.

“널 위해 상대를, 특별한 녀석으로 골랐지.”

고토는, 지금까지 쏟아낸 태정의 말을 완벽한 무시로 일관한다.

“준비해. 내가 마련한 무대니까. 시시하면 안 돼.”

태정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재킷을 걸치고, 문 앞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서두르지도 않고, 화난 기색도 없다. 하지만 그런 태평함이 거꾸로 녀석의 이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토….”

문을 열고 나가려는 고토가 태정을 돌아본다. 가면을 씌운 듯한 읽을 수 없는 얼굴.

“시합을 거절하면?”

시합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의 무표정에 얼결에 시합에의 거절을 꺼내든 것이다.

“오모테산도의 클럽이다. 너도 알 거야. 시간은 나중에 알려주지.”

거절의 경우에 대해 고토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태정을 아예 상대하고 있지 않다.

끼이.

문이 열리고 달칵. 조용하게 문이 닫혔다.

* * *

오모테산도의 클럽.

태정은 과거, 고토와 그곳에서 뒤엉켜 치고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싸웠다. 그런 식으로 계속 벌거벗고 고토와 엉겨 붙어서 지금의 이런 형태가 되어버렸다. 그때 지금을 몰랐듯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태정은 물론 알 수 없었다. 고토는, 그 곳에서 시합이 있다고 했다. 녀석과 싸웠던 그곳에서 시합이라…. 고토가 또, 뭔가를 꾸미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에 안심이 되었다. 여전한 녀석인 것이다.

시합을 계획하고 있었다니. 태정의 폭언에도, 꿈쩍 않고 고토는 자신의 계획을 그에게 일렀다. 시합이 먼저라는 것인가. 아마도 그 후에 녀석은, 태정의 폭언을 생각할 것이다. 최소한 고토는 자신의 ‘두려움’을 돌아보긴 하리라. 녀석이 그렇게 인정하기 싫어했던 것 말이다. 녀석의 인정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모른다―끝끝내 부정할 수도 있다.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지 않는가. 대가를 치르는 데에는 익숙한 것을.

시합의 거절 가능성을 고토는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줄곧 태정은 녀석의 말을 따랐다. 그래서 시합에 응하리라고 당연하게 생각한 건가. 태정이 녀석의 ‘무대’에 선다면 언제나의 이유를 따를 것이다―그런 이유로 이미 태정은 거절의 선택권을 접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건, 거절 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 두 가지의 이유는 어느 쪽 하나로도 기울지 않았다. 저울질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으리라…. 어차피 녀석의 유흥거리인 것이다. 매번 녀석이 클럽을 그런 용도로 이용해 왔던 것으로 태정은 이전의 일을 기억한다.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던 녀석이, 이제 그 뒤로 물러나 무대를 관람하겠다는 것인가. 아니, 관람뿐이 아니다. 기획, 연출과 제작 녀석은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특별한 상대를 골랐다니…. 아마도 고토 녀석의 특별하다는 의미는 보통이상의 ‘강함’을 의미할 것이었다.

태정은 내기 시합, 요코하마 부두 선착장에서의 상대를 생각한다. 대단히 ‘강한’, 힘겨운 상대였다. 그보다 ‘특별’할까….

특별하다고 해 봤자. 소규모 클럽의 흥을 돋우기 위한 이벤트이다. 태정은 그에 걸맞게 ‘쇼’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리라.

태정은 그저 녀석이 알려주겠다는 시간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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