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28)

Till the Fat Lady Sings #24

누나와의 만남이 그때 태정에게 이런 저런 꺼림칙함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건 모두 고토와 그 후원회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모두 꺼림칙함에서 그쳤을 뿐 어떤 사건을 야기한 건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모두 조용히 물러간 듯했다.

정작, 문제를 만든 건 태정이었다.

「태정아 그거 네 녀석 맞지?」

경무와의 통화에서 녀석은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쌓여만 가는 죄책감에 태정은 직접 희상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몇 번인가는 희상에게 전화도 왔던 것 같지만 되걸지 않고 피했다. 그러다가 결국 태정이 전화를 한 것은, 경무에게였다. 희상에게 전화를 하고 사과를 하면 녀석은 괜찮다고 오히려 태정을 위로할 것이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경무 녀석의 걸한 욕지거리가 나았다.

그리고 고토와의 일도….

감이 뛰어나고 예리한 희상에게 태정은 자신이 없었다. 숨기지 못하리라. 이미 고토의 그것을 빤 사실을 아는 희상이다. 그때는 그래도 당당했건만. 지금은 그것만 빠는 것도 아니다. ―태정의 눈이 절로 질끈, 한다.

…그래서, 경무에게 연락을 했는데, 녀석은 욕설을 퍼붓는 대신 ‘그게 너냐’고 태정은 모르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뭘 말하는 거냐고 되물으면서도 태정은 상당히 안도하고 있었다. 고토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안도가 너무 일렀던 것이다. 「니 녀석, 모르고 있을 줄 알았다. 몇 번이나 전화해도 역시나 불통이지, 바쁜 건 알지만 전화는 좀 받고 살아라. 정작 급할 때 무슨 소용이겠냐」경무는 꺼낸 용건에 앞서 장황한 소리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또 누나를 언급했다.

「최근에 언제, 태희 누나를 만난 거지?」 질문이라기 보단 확신이었는데, 이어 녀석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까지 이미 알고 있음을 자랑했다. 「태희 누나가 옷도 사줬냐?」 어떻게 알았냐고, 적이 놀란 태정의 말에 경무 녀석 세상에 비밀이 있겠냐 하하하. 웃었다. 녀석, 분명 아껴놓고 밝히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대단히 수상쩍은 웃음소리에 태정은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이 녀석 왜 이러는 거지’ 미심쩍게 바라볼 정도였다.

「이번 주 연예 포커스 사봐봐라」 경무는 계속 뜬금없는 소리를 전화 너머로 툭, 툭 던져왔다. 연예 포커스라니…. 녀석, 삼류 연예 정보 잡지를 들먹이며 태정에게 ‘꼭’ 보라고 권유를 하는 것이다. 그걸 왜… 라고, 태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무는 느지막이 모든 사실을 밝혔다.

「네 누나 역시 유명인인걸. 사진 찍혔다고 너랑. 둘이 아주 다정하게 나오니까 뭐 보기는 좋더라. 하하 뭐 네 옷도 영 다르고, 눈에는 그래도 프라이버시 보호라고 모자이크 처릴 했지만 한눈에 알겠던데 조태정, 네 녀석인 거」

그게 무슨 말이지? 태정은 경무에게 다시 설명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이미 머릿속으로 정황 파악은 모두 끝나 있었다. 자신 때문에 누나가, 가십거리가 된 거다.

「태정아, 조태정. 어이 조태정」 태정이 한동안 아무 말 없자, 경무가 여러 번 이름을 불러댔다. 그래도 응답을 기다리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자 경무 녀석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같이 태정과 함께 걱정을 해주는 것이었다.

「태정이 네 생각은 알겠지만, 삼류 잡지니까 뭐 스캔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야. 심각한 거 아니니까 너무 크게 염려하진 마. 금세 수그러들 거야.」

걱정을 덜어주려는 경무 녀석의 마음에 태정은 알겠다면서 수화기 너머의 경무에게 고맙다고 답한다. 짐짓 목소리를 밝게 하자 녀석도 마음을 놓은 것 같지만, 이어 「그런데…, 태정아, 저기…, 그런데 말야.」라고, 말을 이었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경무 녀석. 뒤늦게 물어볼 생각이 든 것이리라. 잘못한 건, 뒤가 켕기는 건 경무 제가 아니고 태정인데도. 태정은 일순 전화를 끊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경무의 말을 끝까지―이미 예상하는 말을―기다린다.

「그날, 고토가 왜 네 방에 있었던 거지? 난 아직도 도무지….」

―고토가 찾아 왔던 거야. 날.

「그렇지? 그 자식이 뭐라고 해? 그렇다고 그런 새낄 방에 들여놓으면 어떻게….」

전화로도 경무의 흥분은 생생하게 전달된다. 전화를 잡은 녀석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슬며시 태정은 웃음이 나온다. 얼굴에 걸린 웃음은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덕에 조금은 쉬워질 것 같았다.

…경무에게 태정은 사실을 고했다.

―그날 방에서 녀석이랑 섹스했던 거다.

희상을 피해 경무에게 전화했던 것인데…. 그런 걸 지금, 태정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

녀석들이 알까 두려워했던 이야기를, 태정은 고백하듯 경무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해 버리면 되는 것을.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던 것을.

“그래서 고토가 거기 있었던 거고. 그것도 그 녀석이랑 처음이 아니었어.

「……태정아 지금… 무슨… 섹… 스? 누구…?」

갑자기 전화의 수신 상태가 불량이라도 돼버린 것처럼, 경무의 목소리는 뜨문뜨문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밝히는 것은 태정이 생각한 최소한의 예의. 희상과 경무, 녀석들에 대한 예의이다. 믿어준 녀석들에게 사실을 말하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전화로 하는 것은 겁쟁이라서였다. ―그래서 최소한이라고 하는 거다.

“섹스하는 그런 관계라고. 우리.”

「으?」

경무의 놀람은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고, 태정은 설명조차 될 수 없는 한심한 말로 짧게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였다.

우리였다. 고토 녀석과 태정 자신은. 그 녀석을 ‘우리’라는 울타리에 포함시킨 적도,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우리, 하면 누나와 태정, 혹은 희상과 태정, 경무와 희상 그리고 태정, 그게 맞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고토가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고토와 태정이다. 우리라고 말해놓고 나니, 이젠 그 녀석과 자신은 끈끈하게 붙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후우… 태정은 무겁게 숨을 쉬지만, 저편에선 이제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경무야… 경무….”

태정은, 전화기 속 어딘가 숨어버린 듯한 녀석을 찾는다.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태정은 녀석이 뭐라도 말해주길 바랐다.

어쩌면 이것은 함정이었다. ‘어쨌거나 그를 믿는다’고 말해주었던 녀석들을 시험하는. 비겁한 인간의 속성이지 않은가. 배신을 하기 때문에 배신을 두려워하는 것 말이다.

자신도 비겁하기 때문에 자꾸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줄 건가. 이래도 믿는다고 내게 소리쳐줄 건가.

―하지만 소리 없이 외쳐봤자, 돌아오는 건 태정을 외면하는 기다란 침묵이다.

그래, 이건 그저 녀석이 깜짝 놀라, 놀라서 화가 난 것뿐이다―그럴 땐 대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갑작스러웠다. 왜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 누군가 와락! 뒤에서 튀어나와 심장이 벌떡 뛸 만큼 놀랄 때 있지 않은가. 그럴 땐 단단히 화가 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태정은 경무 녀석을 그렇게 놀래킨 것이리라. 태정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면서, 또 다른 한 녀석을 떠올린다.

“희상이…….”

딸칵. ―뚜―뚜―뚜―뚜―뚜.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별로, 서운하지는 않다. 녀석은 깜짝 놀라 잠시 골이 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못한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희상이한테 내가… 조태정 개자식이, 미안해한다고 전해줘.”

―뚜―뚜―뚜―뚜

통화 종료음이 울리는 전화에 대고 태정은 말을 마쳤다.

짧은 그 사과를, 경무가 전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 * *

“여기 저기 요새 아주 인기 좋더군?”

평소와 같은 섹스가 끝나고, 자신의 사타구니를 닦던 고토가 태정에게 말을 건다. 태정은 물을 먹다가 멈추고 고토를 내려다보지만, 녀석은 닦던 아래를 계속 닦으며 자신을 바라본다. 태정의 낡은 티셔츠로 정액이 산만하게 묻은 배를 보지도 않고 쓱쓱 문지른다.

“그 이시자키가, 조센징이었단 말이지? 응?”

녀석도 그 사진을 본 건가. 경무의 말과는 다르게 사진은 3류 잡지 한 곳이 아니라, 꽤 여러 곳에 실린 것 같았다. 그때는 누나도, 태정도 어떠랴 싶게 마음을 놓았던 것이, 결국 이런 형태로 덜미를 잡히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된 듯했지만, 사진은 상당히 절묘한 순간을 앵글로 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태희가 아이스크림이 묻었던 태정의 손을 닦아주던 모습일 뿐인 것을…. 사진은 그것이 뭔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단 한 컷의 그 장면에 ‘이시자키, 사랑 고백?!’ ‘가지 말아주세요’ 등과 같은 부제가 달렸다. 남자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시자키는 마치 그에게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혹은 매달리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시선 집중용의 제목들이었지만, 효과는 좋았다―이시자키의 ‘고백상대’가 누구냐는 문의가 잡지사로 사무실로 쇄도했다 한다. 곤욕을 치렀으리라. 누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생활을 생각해달라며 노코멘트로 일관한 것만으로, 상당히 빠른 시일 안에 호기심이 수그러든 것이다. 남자에 대해서도 잡히는 단서가 전혀 없었으니 더 이상 부풀릴 기사거리도 없었으리라―또한, 편의점의 가십 잡지가 바뀌는 주기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 호기심도 따라서 이동하는 법이다.

하지만, 고토는 아직 아닌 모양이다. 태정의 묵묵부답에도 아랑곳 않고 할 말을 이어간다.

“네 옷을 보고 알았지.”

고토가 태정을 식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그 옷 말이다. 녀석이 자신의 분비물을 뿌려댔던 그건, 세탁을 했어도 도무지 다시 입을 수 없었다. 섹스를 할 때보다도 녀석의 그 냄새를 더 짙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냄새야 물론 착각이겠지만, 덕분에 고토 녀석이 서서 스스로를 붙들고 쥐어 짜내는 모습이 떠올라, 태정은 한 번 옷을 걸쳐보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 옷 덕택에 퍼즐이 딱 맞아떨어지더라고 즐거운 듯 웃는다.

“퍼즐…?”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를 태정은 뇌까린다.

“그래, 퍼즐. 호텔에서 널 만난 거며. 네 그 옷. 그리고 누나 이야기. 누나가 사줬다는 걸 도대체 누구더러 믿으라고 그런 바보 같은 소릴 하나 했더니, 그게 설마 정말일 줄이야.”

“그래서 누나라고, 말, 했잖아.”

그의 누나를 누나라고 밝히는 사실이 이렇게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지는 몰랐다. 그것을 태정은 지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자키가 누나라는 말은 안 했지. 그저 만난 여자가 누나라는 말을 했을 뿐이잖아. 안 그래?”

“그래서… 퍼즐이 완성된 건가?”

뭐어, 라고 모호한 소리를 내며 고토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이 완성되었다는 긍정은 아니었다. 고토는, 후원회에서 그 여자를 봤다고 태희를 ‘그 여자’라고 말한다. 결국,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태정의 ‘원한다’는 말에 녀석이 서서, 응했었다. 대단히 성급하게 도달한 후에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방을 나갔는데 태희를, 끝내는 만났던 건가.

“그 여자, 나한테 관심이 많았지. 날 끊임없이 보던데…?”

누나가…? 태정은 그럴 리 없다고 속으로 부정한다. 이 자식이 또 누나를 지저분한 농담거리로 삼아 보려는 것인가…. 또 녀석이 무슨 말을 할까 하여 태정의 일그러진 한쪽 눈썹엔 자연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말하는 고토의 표정이, 녀석이 농지거리 할 때의 엷은 웃음 띤 그게 아니었다. 무언가 대단히 못마땅한, 분이 오른 듯 태정보다도 오히려 얼굴이 구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서 한 번 어떻게 해볼까 했더니 이건, 완전히 개무시를 하더라고…. 하! 그 여자가.”

그런 것이었나….

누나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토와 얽혔던 태정의 일을. 사건 당시 누나와 전혀 연락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에 태정은 내심 다행으로 여겼는데…. 그랬기에 다시 만났을 땐, 누나가 그저 자신이 사고 친 사실을 알고 있어도, 대충 알고 있으리라 넘겨짚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희는, 태정의 형사 소송 사건의 전말을 아마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원회에 갔었던 것이다. ‘고토’가의 후원회였으니까.

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거야, 누나? …고토를?

“그땐 뭐냐 이 여자, 튕기는 건가 했지. 하지만, 그 눈 그런 게 아니었어. 알아? 그 여자 무슨 버러지 보듯 날 봤다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엉? 이봐, 그 여자한테 어떻게 말했길래 날 그렇게 보느냐고….”

“뭐라고 말한 적 없어. 그저, 초대를 했으니까 갔던 것 뿐일 거야.”

넌지시 태정은, 누나를 옹호해준다. 초대이야기가 나오자, 고토는 초대를 한 게 실수였다며 멍청했다고 혀를 찼다. 설마하니 그 이시자키가 조센징인 줄 누가 알았겠냐고, 씩씩거리면서 그때, 사실을 알았더라면…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중얼거리던 녀석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돈다.

“그래, 그때 알았더라면 말해주는 건데 말야. 그 여자가 네 누난 줄 알았으면, 이렇게 한마디 했을 건데…. 당신 동생이 내 똥구멍을 핥는다고, 그 사실을 아느냐고. 말이야. 큭큭, 크하하하.”

녀석은 이제 얼굴에 희색이 만면해 커다랗게 웃는다. 그런 지저분한 농담으로 기분이 좋아진 건가. …아니, 농담은 아니다. 태정이 잔털이 나 있는 녀석의 항문을 핥는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그 여자한테 그렇게 말했으면, 나한테 뭐라고 했을까? 크큭. 응? 말해봐. 그 여자는, 네가 잘 알 거 아니야.”

기분이 상당히 고조된 고토는 여전히 킬킬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태정에게 물었다. 태정은 도리 없는 녀석에게서 눈을 딴 데로 돌렸다가 한숨을 쉰다. 후우. 누나를 ‘그 여자’라는 하는 것이 귀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숨 쉬는 것으로 한 박자 여유를 찾은 태정은 그대로 녀석의 말을 받아 답했다.

“그 여자는 말야…, ‘똥구멍을 핥는 것을, 당신이 좋아하니까 하겠지요.’라고, 그렇게 말해줄 것 같은데.”

말을 해놓고 나니, 왠지 정말 누나가 고토에게 할 법한 말 같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태정의 이유였다. 녀석이 말하는 것을 녀석이 원하는 대로, 태정은 그리하겠노라고 고토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고토가 원하기 때문에 녀석의 똥구멍에 태정이 입을 대고 혀를 대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어떤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대답은 물론 녀석의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웃느라 떨릴 정도였던 고토의 안면 근육이 대번에 경화硬化된다. 녀석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깨문 입술을 또 비튼다.

“답을 잘못한 것 같은데? ‘당신이’라는 말을 빼야지….”

…그렇게 되면, 태정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된다. 고토는 다시 말해보라고 태정에게 일렀다. ‘네가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사실을 말해야지 않겠냐?’라며. 고쳐 말하라고 윽박지른다. 어처구니없는 태정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자, 고토는 터무니없는 억지를 쓰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 여자한테, 직.접. 다시 물어봐야겠는데…?”

녀석이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것은 대개 자존심이 상했을 때. 고토 녀석의 그 대단한 자존심을 태정이 또 건드렸던 것이다. 설사 녀석이 익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도 태정이 지적해선 안 되었다. 또한, 녀석이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사실은 더더욱 그리해선 안 되었고 말이다. 태정은 녀석의 자존심을 그냥 세워주기로 한다―녀석이 누나를 들먹였기 때문은 아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고토와의 그 행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네 똥구멍 핥는 것을…, 내가, 좋아하니까 하는 거다.”

태정은 건조하게 말하지만, 그것으로 대번에 고토의 얼굴 위엔 득의만만한 웃음이 내리 앉는다.

“하! 누나한테 말한다고 하니까 그제야 말하는군? 크큭, 무섭냐? 누나가 알까봐? …이제 보니 이 자식, 시스터 콤플렉스 아냐?”

태정은 녀석이 자신을 한껏 조롱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다만, 녀석이 누나를 들먹이는 것을 이제 그만 들었으면, 했다.

“아아……, 그래서, 그때 그렇게 좀 이상했었군? 호텔에서. 이시자키 어쩌고 물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그렇게 걱정이 됐었냐? 그 여자가?”

“그 여자라고 하지 말아줘.”

왠지 거북하고 거슬리는 말에 대해 태정은 결국 한 마디 던진다. 그래도 시정해달라는 건 부탁의 형태. 고토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태정의 말을 듣는 듯했지만, 녀석의 관심은 따로 있었다.

“어라…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역시….”

잠깐, 이라며 녀석은 태정의 얼굴을 유심히 주시하다가, ‘그런 건가’라고 중얼거린다. 그러곤 녀석은 브리프만 입은 채로 방을 빙글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서성인다―빙글거릴 공간도 없이 좁은 방이니. 마치 어떤 생각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그렇군…. 그때도 누나 걱정을 한 거였나?”

서성이던 녀석은 문득, 동작을 멈추고 개수대에 기댄 태정을 바라본다. 그때라면 분명 호텔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계속 그 이야기를 한 것이니. 녀석이 누나를 자빠트린다는 둥 귀를 닫고 싶은 말을 했었는데,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한데, 갑자기 왜 그것에 녀석이 신경을 쓰는 거지.

“넌, 그때 네 누나가 거기 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

질문이 아니다. 고토가 계속 무어라 태정에게 말을 던지지만, 그건 모두 태정의 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뭔가에 골몰해 턱을 긁으면서 다시 제자리를 돌았다.

“그래서 잡았던 건가.”

우뚝. 녀석의 긴 두 다리가 퍼뜩 정지하며 스윽, 태정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성큼 다가와―한 걸음이면 충분했다―태정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성난 눈빛. 들썩이는 어깨. 돌연 잔뜩 화가 난 녀석의 이유가, 태정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날 잡았던 거군? 그러냐?”

“……?!”

녀석은 뭔가 아직도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 맞춰야 할 퍼즐이 아직 남아 있었던 건가?

“널 잡다니…. 그날 가지 말라고 한 거 말인가?”

영문을 모르지만, 태정은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 날 가지 말라면서 잡았지. 그게 다 그 여자 때문이었군. 네 누나 때문이었다고.”

질문이 아닌데도, 이것은 태정에게 답을 강요하는 질문이다.

“…….”

누나 때문이었나? …애매했다. 녀석과 누나가 만나지 않길 바란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녀석을 잡았지…. 그건, 충동적인 이유에서였다. 이유도 잘 생각나지 않는….

“아아, 널 원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너밖에 원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낯간지러운 말이었지만 그 말은 결국 더 하고 싶다는 거였고, 그때 고토 녀석이 녀석답지 않게 굴어서 나온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퍽!!”

갑작스레 태정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 왔다. 아으…. 태정은 얼얼한 뺨을 손으로 감싸면서 고토를 의문에 찬 눈으로 본다. 도대체 이 자식 갑자기.

“날 놀렸냐…. 놀려서 재밌었겠군?”

놀리다니. 태정은 녀석이 주먹을 휘두르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나 때문에 잡은 것이 문제인 건가. 아니면 원한다는 말 때문이었나. 무얼 놀렸다고 생각하는…, 푸억! 고토의 주먹이 아랫배에 꽂히면서 생각이 끊긴다.

“허억!! …그만해. 내가, 어떻게 널 놀리겠어. 왜 화를 내는 건데.”

태정은 배를 쥐고, 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고토의 팔을 잡았다.

“원한다고 해서, 다시 응한 내가 웃겼겠다. 그렇지? 그 여자 걱정에, 시간 좀 어떻게 끌어볼까, 해봤던 말일 텐데 말야….”

그저 10분 남짓 연장한 섹스였다. 짧고 급한 섹스 후에 태정은, ‘원한다’는 요청이, 녀석이 다시 꼴려하는 것과 우연히 일치한 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널 잡은 건 누나 때문이 아니야. 놀린 것도 아니고. 분명히 난 원했어. 원한다고 했던 게 그게 잘못이었던 거냐?”

태정을 계속 노려보고 있지만, 녀석의 팔에서는 힘이 빠지고 있었다. 문제는 결국, 이 녀석의 하찮은 자존심이 또 한 번 미미하게 긁혔던 때문이었다. 원해서 응했는데, 알고 보니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서… 이런 이유였던 건가?

태정의 퍼즐은 아직까지 맞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바야흐로 완성된다.

“나는 너를 원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가?”

“…….”

녀석이 침묵을 지킨다. 침묵은 긍정. 그건 해도 된다는 것이리라.

녀석이야말로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토, 듣고 싶은 거냐. 그 말이?

“널 원해.”

태정은 그때와 비슷한 이유로 원한다는 말을 녀석에게 들려준다. 그때 호텔에서처럼 말이다. 충동적이면서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말을 했었다. 이건 녀석의 똥구멍을 핥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녀석이 원하니까 해준다. 하지만, 태정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원활한 ‘관계’를 위한.

여기까지가 퍼즐의 완성.

잡고 있던 녀석의 맨 팔을 태정은 이제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탄탄한 녀석의 상완 근육이 거칠게 튼 자신의 손바닥 거죽 아래 한결 더 매끄럽게 느껴진다. 위아래로 쓰다듬으면서, 다른 손은 고토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다음을 태정은 녀석에게 맡긴다.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던 고토는 고개를 비틀더니, 태정의 목에 입을 갖다 대었다. 사악―녀석은 곧장 혀를 내밀어 축축한 그것으로 태정의 옆 목을 닦아 낸다.

…예상했던 키스는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원활하게 ‘관계’는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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