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ll the Fat Lady Sings #14
태정은 또 언제 보느냐고 물었었다.
그때, 네가 목이 마를 때쯤이 아닐까, 라고 누나가 말했었다.
줄곧 태정은 그것을, 그 혼자만이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태정을 맨 처음으로 맞아준 것은 바로 누나였다.
―누난, 그것을, 그때의 농담 같았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누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누나는 약속을 지켰다.
「저 사람, 누굽니까」
태정은 누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믿기지 않아, 얼결에 지나가던 사람을 잡아 물어보았다―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태정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그녀를 흘낏 쳐다본 행인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에에? 이시자키 아야카잖아요, 몰라요? 이시자키 아야카.」
비록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태정을 아래위로 훑으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태정은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떠듬거리면서 붙들었던 행인의 팔을 겨우 놓아줄 수 있었다.
이시자키 아야카.
태정에겐 생경하고 이질적인데, 행인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태희 누나를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누나와 아주 비슷한 다른 사람인가 태정은 눈을 비비면서 보았다. 하지만 누나였다.
누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아닌 누나였다.
그런데 누나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모호한 미소 대신 눈부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누나는, 기억에서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마치 태정에게 했던 마지막 말을 지키려는 것처럼, 누나는 이온 음료를 손에 들고 그것을 태정에게 권하고 있었다.
아사쿠사 도리의 사거리에, 거대하게 세워져 있는 광고 패널 안에서, 동생인 태정을 보면서도 누나는 그저 미소만을 지으며 음료수를 내밀 뿐이었다. 태정은, 행인들이 복잡하게 오가는 사거리에서 발을 멈추고 횡단보도의 가운데에 우두커니 섰다. 누나를 보았지만 봐도 말을 걸지도, 인사를 하거나 만지거나, 달려가서 포옹을 하지도 못한다.
비현실의 세계에 뚝 떨어진 것 같았다. 현실과의 기묘한 괴리감. 충분히 비일상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태정이건만 횡단보도 위에선 그것조차 초월해 있는 느낌이었다. 냄새가 느껴지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감이 마비되고, 시야는 양옆, 위아래로 뿌옇게 되어 오로지 태정과 누나만이 존재했다.
신호등이 꺼지고 횡단보도 위의 사람들은 모두 인도로 오를 때까지도 태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거기서 뭐 하는 거냐고, 정신 나갔냐며, 차에서 목을 빼고 태정에게 소리치는 한 운전사의 욕설 덕에 태정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넓은 사거리를 메운 차들이 그들을 지체시키는 태정을 향해 빵빵거리며 원성을 보내고, 무슨 일인가 보도를 지나는 몇몇 호기심 많은 구경꾼이 목을 빼고 그를 보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정황 파악을 겨우 한 태정은 빠르게 횡단보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를 굽어보는 듯한 누나의 눈길에서도 몸을 피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일상의 오감을 되찾고 나서―태정은 숨을 돌린다.
태희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이렇게나 쉽게 두 눈으로 누나의 안위를 확인한 것이다. 그것에 태정은 안도했다.
……누나 이렇게나 잘 지내고 있구나.
태희의 소식을 알았다는 것이 안도까지 할 만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크고 깊게 태정은 가슴을 놓는다. 다행이야 다행, 이라 중얼거리며.
기실 태희만큼 어딜 가든지 무사, 무탈할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짐짓, 안도감을―그것도 커다랗게―표하는 것은 태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의 반증이었다. 그런 식으로 누나‘만을’ 생각하며 태정은 또 한 번 자신은 망각의 길에서 헤매도록 방치하는 것이었다.
* * *
태정이 그곳을 나올 때 수중에 있는 돈은 그가 들어갈 때 지니고 있었던 구깃구깃한 천 엔짜리 지폐 세 장과 동전 약간, 거기에 형무 작업의 대가로 지불되는 임금을 더한 금액이었다.
형무 작업을 돈으로 정산하자 2년여 간의 체불임금은 만 엔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였다. 과거 태정이 한 아르바이트의 이틀치 페이가 그보다도 많은 액수였건만.
원칙적 계산에 의해 일주일에 한 번 쉬고,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형무소와 계약을 맺은 사업자나 기업들의 독촉에 그런 근로 조건의 원칙은 버젓이 무시되었음에도 계산은 원칙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고 그들이 더 주는 것도 아니었고, 혹여 태정이 더 받아 낼 수 있다손 쳐도 일 이천 엔에 불과했을 터.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일이천 엔이 대단히 아쉬웠다.
마악 형기를 마치고 나온 3개월 전엔 잔돈푼과 삼천 엔에 더한 조금 모자란 만 엔, 즉, 만삼천 엔이란 돈은 어깨가 든든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충분해 보였건만….
자신이 폐쇄되어 있던 특수한 공간의 기준에 따라 사고가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태정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곳에 길들여진 방식으로 돈을 느끼고 보았던 것이다.
태정은 아주 낮아진 시각의 눈금을 끌어올리는데 힘이 겨웠다. 그 눈금에는 마치 몇 배나 되는 인력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온 태정의 사고 전환은 느렸고, 적응이 무뎠다. 시간에 의해 손상된 현실감각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역시나 시간을 통한 회복이 필요했다.
하지만 태정은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될지 예측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단 하루를 원했을 뿐이다. 희상에게 날짜를 부러 틀리게 알려주면서도 태정은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온전한 하루를 혼자, 자신의 계획대로 보내는 사치를 누리고 싶었을 뿐이다―기실, 계획 따윈 없었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계획이었다. 그간의 생활이 ‘제도’에 의한 계획에 의해 굴러가지 않았는가. 그리고 희상을 보려 했다.
그런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한 달이 되었다. 그것은 세배의 시간으로 몸집을 불렸고, 또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충 삼 개월이 지났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태정에겐 해가 뜨고 일출과 해가 저무는 일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에 사람들이 붙이는 이름이나 편의를 위한 구체적인 숫자는 잊어 버렸다.
시간을 도량형으로 환산하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규칙을 따르며 관계를 이루며 살아 갈 때 필요한 것들이다. 그 속에서 따로 나와 홀로 서 있는 태정에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무감각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 한 번 지나간 시간의 크기를 절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누나 때문이었다.
대낮의 대로변에서, 만난 누나를 태정은 마주 보았다. 태정은 태희를 볼 수는 있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믿기지 않은 태희의 변화된 모습과, 새로운 이름에 태정은 시간의 흐름을, 그 속도를 실감했다. 그 안에서는 너무나도 더디게 흘러 도대체 가고 있는지 가지 않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 시간이, 그곳을 나와 보니 2년이 한꺼번에 뭉텅 지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돌아갔어야 했던 건가?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는가.
하지만, 태정은 돌아가지 않았고 새로운 출발 같은 건 없었다.
전과자―대개 악인이라 인식되는 이들―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은 일반인의 낭만, 혹은 그들의 희망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개과천선이나 새 출발을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을 받아주는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인간사이의 신뢰와 연합. 일종의 환상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죄인」이 반성과 회개로서 신의용서와 구원을 얻는다. 「전과자」가 아니라.
처음 죄를 짓는 사람이 없을 리는 만무할 터인데도, 형무소의 전과범들은 대개 2범이나 3범 혹은 그 이상의 재범들이 그득했고, 마치 초범은 태정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초범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라고, 태정의 미래를 점쳤다. 그같이 일찍 들어온 녀석이 초범으로 남는 예는 ‘전혀’ 없다고 하면서, 태정이 떠날 즈음엔 그곳에서 또 만나자며, 다들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예언과 자신의 운명에 겁을 집어먹고 그것을 피하고자 방랑을 하는 건, 고대 신화의 저주받은 주인공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고작 타인의 농지거리 때문에 돌아가지 않고 지붕도 없는 공원의 별을 보면서 한데―벤치나 잔디밭에―몸을 뉘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태정이 어떤 뚜렷한 까닭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애초 ‘하루’의 시간을 원했던 것엔 구체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유는 ‘하루’에나 어울리는 것이었지 삼 개월이란 생활을 지속하기엔 매우 빈약한 근거였다―태정이 지녔던 돈과 마찬가지로.
형무소 밖의 땅을 2년여만에 처음으로 디뎠을 땐, 주머니 속의 돈을 손끝으로 만지작대면서, 어떻게 써야 할까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기도 했건만, …그런 행복한 고민은 아주 잠시 잠깐 뿐이었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태정이 깨달았을 때는 출소한 지 2주일이 지났을 즈음이었고, 그때부터의 지출은 동전이 닳을 만큼 주물럭거리는 고민이 있은 후에 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었다―20엔이라는 일당마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1개월도 못되어 돈이 바닥났을 즈음, 태정은 돈이 없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잔돈푼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언제, 어디에 써야 가장 효율적이고 후회하지 않을 소비인지를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결정해야 했지만, 오히려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돈에 관한 결정도, 생각도 더 이상은 아무 필요가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으리라,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예상했건만, 아직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하…, 태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혀를 찬다. 그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태정은 그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며, 또한 알 수 있는 것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리를 배회하거나, 공원에서 볕이나 쬐며 흘러가는 구름이나 보는 등의 하릴없는 소요는, 돈도 없고 이유도 없는데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