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0/28)

뚱뚱한 여인이 노래 할 때까지 #9

태희는 어떻게 지낸대냐. 아침에 아버지가 갑자기 누나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연락이 없었다고 하자 아버지는 너한테도 연락이 없었냐며, 코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꼭 숨이 어깨에서 빠진 사람처럼 추욱 내려앉은 어깨로 문을 밀면서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몇 개월 전―벌써 반년을 훌쩍 넘어 서고 있었다―태정의 누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면서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하겠다는 일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없었고, 이해도 구하지 않았다. 그건 매우 누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오랜만에 태희 누나에게 물리적 힘의 권위를 행사했다 (아버지의 주먹은 남매에게 평등하게 작용했다. 다만, 횟수에서의 차별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나는 처음으로―언제나 누나는 능란한 대처법을 갖고 있었는데―서툴게 아버지를 대했다. 누나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새로운 거처로 조용히 짐을 옮겼고, 떠날 때 단지, 태정에게 전화번호 하나를 남겨 놓았을 뿐이다.

두어 번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연락은 되지 않았다. 누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태정은 연락 시도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누나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적절한 때라고 생각될 때 분명 누나가 전화할 것이다.

지긋지긋한 이 집을 버리고 누나는,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 것이다. 이 집은 이제 그녀에게 과거가 되겠지. 뭔가 하고 싶다는 말은 그것을 통해 미래에 근접해 가겠다는 말이다. 태정에게는 막연하기만 한, 미래라는 추상체에서 그녀는 구체적인 한 점을 또렷하게 보았던 것이리라. 태정은 그런 누나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있기로 했다. 한껏 부러워해주고 축하해주기로. 아마도 한창 꿈에 부푼 누나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누나, 누나, 날 조금은 생각하기라도 하고 있어? 태정은 허공에 대고 묻는다.

금방 연락할 거야

태정의 바람인지 누나의 응답인지 모를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 * *

연락은 희상에게서 왔었다. 어제 저녁, 국사관과의 대결투일이 잡혔다면서 태정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내일 모레야. 저녁 9시 세타가야 구립 소학교 운동장. 운동복 차림.」

희상은, 대결투―경무가 대단한 각오를 다지면서 명명했다고 한―날에 대한 간략한 사항들을 짤막짤막 하게 짚어 주었다. 그러면서 이름만 거창한 게 아니라 정말 일이 커졌다면서 태정에게 근심을 토로했다. 경무는 그저 국사관 녀석들 어떻게 보기 좋게 꺾어 줄 것인가에만 여념이 없다고, 그리고 삼펜 대원 녀석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희상은 우려를 걷어 내지 못했다.

상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경무 녀석이고 학교의 모습이었다. 태정이 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전화 속의 녀석에게, 태정은, 불참을 말했다. 더 이상 삼펜도 아니고, 정학중이라고 이유를 들었지만 그것은 상당히 표면적인 이유였다. 희상은, 물론 태정의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했다.

경무 녀석, 너한테 말해도 소용없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니 결정이 나니까 또 알려두라고 하더라, 고 경무의 말을 전해주면서 그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락가락 하는 게, 그 녀석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네가 보고 싶은 거야. 너 삼펜에서 그렇게 물러나고, 경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거라구….

그건, 그다지 설득력 있지는 않았지만, 희상에겐 태정이 그들과 함께 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그 국사관 회장이란 놈이랑 또 한 번 붙어볼 기회잖아. 아무튼, 그러니까 꼭 나와. 딴 녀석들한테 얼굴도 좀 보이고.

태정은, 희상이 자신을 생각해서 그렇게 열심히 이유를 짜내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그 말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태정은 침묵으로 희상에게 답을 했다. 그렇게 가지 않을 것임을 고집했던 것이다. 희상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곳에선 고토를 볼 것이었다.

자신을 지배하는 불가항력의 그 냄새는, 더 짙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그 냄새의 농도와 밀도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어제 녀석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박은 것도 코를, 머리를, 태정의 사지를 점령한 그것에 잠시 혼미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무감각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었고. 더 이상은 그 냄새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차단해버려야 했다.

희상은, 태정의 침묵을 모른 척하면서, 꼭 앞서 말한 것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봐서라도 나오라고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안해, 뭔가 일이 잘못되는 게 아닐까. 이상하게 불안하다고 거듭 ‘불안’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던 희상은 확실치 않은 위협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태정과 비슷하게 희상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둘이 지닌 불편의 성질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희상의 불안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하는, 다수를 돌보기 위한 것이었고, 태정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속 깊은 친구 녀석의 저으기 간곡한 권유 앞에서 태정은 자신의 이기를 돌아보며,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자신이 고토를 이유로 들어, 갈 수 없다고 했다면 희상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마도 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상이라도.

희상에게 생각해보겠다고 한 이후로 태정은 아직도 그것에 대한 생각을 끊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를 생각하고 고토를 생각하고 학교를 생각한다. 희상이 있으니, 그렇게 나쁜 방향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경무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될 것이고. 경무가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나타났다. 제길, 태정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가 아프다. 태정은 이마에 손목 관절을 대고 꾹꾹 눌러 주었다. 머리를 쓰는 건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텅 빈 소파에서 일어나, 텅 빈 집 안 구석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몸을 움직였다. 좁은 집에서 그것은 답답함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땀을 내 볼까. 우선 시작은 팔굽혀펴기부터이다.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팔목 관절을 절도 있고 규칙적으로 펴고 구부린다.

손바닥을 주먹으로 바꾸고, 한 세트를 더 실행하고, 세트 수를 늘려 나갈 때마다, 몸을 지탱하는 손가락을 줄여 나간다. 몸을 별로 쓰지 않았더니 근육이 삐걱거렸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웨이트나―집에는 바벨이 있었다―근육 운동을 모두 일정한 횟수를 반복하여 3세트씩 실시한다. 뭔가 남아 있는 다른 운동이 없을까 살펴보지만, 습관적으로 했던 건 모두 끝났다. 하지만, 근육 사이에 불순물이 침전해 있는 듯한, 영 시원치 않은 느낌이 여전하다.

이걸로는 안 돼.

태정은 벌떡 일어나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문을 잠그고 열쇠는 화분 밑에 둔다. 열쇠가 없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휴대하지 않는 쪽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화분을 들어 올리며 태정은, 화분의 꽃이 다 시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나. 누나가 물을 줬는데. 또 누나 생각이다. 황폐한 화분은, 그것을 갖다 버려야 하는 건지 태정에게 순간 단순한 고민에 잠기게 한다.

탁탁탁탁 네 칸의 계단을 내려와서 골목을 한 바퀴 돌고, 큰길로 나와 공원을 돈다. 부산할 출근 시간은 지났고, 점심 무렵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어중간한 오전의 한때였다. 공원은 너무나도 한가하고, 평온해서, 공기마저 어떤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부시게 하는 오전의 햇살을 보면서, 감아 도는 공기의 한적한 질서를 느낀다. 이곳을 계속 멈추지 않고 돌다보면, 이런 고요한 질서를 가진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지만, 그런 상상은 이내 깨진다.

탁―허공을 보고 질주하던 태정은 앞을 보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뭔가 부딪쳤다고 느낀 순간 바로 사과의 말이 나갔지만, 그 뭔가―물론 사람이었다―는 태정을 향해 소리를 친다. 똑바로 보고 다녀?! 그래도 태정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사과를 하는 순간에조차. 공원을 벗어나 역 쪽으로 나와 한적한 길에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오르고 반대쪽으로 난 내리막의 계단을 수 차례 왕복한다. 몇 번을 오르내리는지, 왔다 갔는지 모를 정도로.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그런 뻐근하고 아픈 느낌이 시원해서, 도리어 계속적인 에너지를 생성시킨다.

남자는 허벅지 힘이야 허리힘이 아니라고. 홀연히 다카기 상의 목소리가 머릿속 한가운데에서 속삭인다. 약간은 외설적인 그녀의 속삭임에, 허벅지의 욱씬함이 더해진다. 목구멍이 말라왔다. 거의 주기적이다시피 하던 행위를 건너뛰었지. 그녀와 항상 있었던 주말의 일을 생각하자 트레이닝 수트 안에 감싸인 태정이 열기를 띠었다. 그리고 잇따라 속삭이는 건 고토였다. 빨아봐. 그녀와의 영상은 녀석의 사타구니를 추웁대며 빨았던 자신으로 대체된다. 몸은 열이나 뜨겁지만 머릿속은 차가워진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고토와의 그 행위에는 정당성이 없었고 정당화할 수도 없었다. 비단 그 행위뿐이었을까. 녀석과의 모든 것에는 정당성이라곤 언제나 빠져 있지 않았던가.

태정은 지금에 와서 정당 부정당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그런’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고정되었다. 녀석이 말한 ‘정당’에 대한 정의처럼 말이다. 고토의 페니스를 빨라는 식의 요구는 그런 구조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부조리한 구조를 고토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태정 자신은 그걸 그냥 받아들인다. 바꿀 생각도 없고 바뀔 생각도 없다. 아마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태정은 한계를 미리 앞질러 계산해 놓았고 그래서 매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어도 되었다.

구조를 전복시켜.

달리는 태정의 귓전에 희상이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에는 열정이 녹아 있다. 「정당성을 밝혀낼 수 없는 구조는 전복시켜야 해. ‘원래부터 그러한’ 구조는 없어. 하늘에서 이게 정당하다고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구조는 없다구. 그렇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 봐야 하는데 도무지 정당성을 찾아 낼 수 없는 구조가 있지. 그런 건 타파해야 해 전복시켜야 된다구」

「그래, 그래서 주먹이 필요한 거지 전복, 뒤엎어버리는 거잖아. 그런 거에 힘을 발휘해야지」 경무가 이때다 싶어 힘의 필요를 들이대며 한 마디를 했었다. 쿠쿡… 당시 상황을 상기하자 태정의 굳어진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나왔다―곁을 지나가는 중년의 부인이 뛰면서 실없는 웃는 청년에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낸다.

그때 희상이 경무에게 눈살을 찌푸렸었지. 그러면서 이 녀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포기의 미소가 어우러진 ‘기묘한 표정’이었다.

전복은 응집된 목소리로 하는 거야. 폭력이 아냐 경무야. 희상이 전복이라는 말의 오해를 걱정하면서 물리적 힘의 동원을 배제시켰다. 그리고 희상은, 전복은 사실은 저항이라 고, 전복은 끈질기고 지속적인 저항으로 이뤄내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커.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누가 치르지?」

태정은 대뜸 질문을 던졌다. 폭력이든, 지속적인 저항이든, 모든 건 대가를 요구했다. 태정은 그렇게 건조하게 반응했었고, 그에 희상과 경무 둘 모두의 얼굴에 동시에 떠오른 ‘기묘한 표정’을 기억한다.

「무정부주의자가 되긴 글렀어. 넌.」

둘은 똑같이 그렇게 말했다. 무정부주의자의 행동 노선에 대해 풋내 나는 정치적 발언들은 그렇게 태정이 끼얹은 찬물―대가를 따지는 계산적인 말―로 열이 식어버렸다.

누구보다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조고생들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국적과 그들의 정부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으니. 아나키스트에의 꿈은 그들의 로맨스였다. 하지만, 태정은 황제의 마차에 폭탄을 투척하고 피를 흘리며 자결하는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도, 한 평생을 끈질긴 저항으로 보내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숭고한 삶으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디얼리스트도 될 수 없었다.

태정은 어떤 ‘주의자’가 되기에 희상이와 같은 낭만이 결핍되어 있었다. 어떤 신념을 세울 수 있을 만한 열정도 없었다. 그저 무디게 현실을 견디면서 숨어 있을 뿐인 것이다. 현실에서 어딘가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에 파묻혀 도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달리면서 도피하고 있다. 꼬리를 무는 잡념을 없애기 위한 러닝이었는데 생각은 그저 빙글빙글 돈다.

예전의 로드워크 코스를 반복해서 돌아가고 돌아 나오고, 기계적으로 달렸다. 코스는 결코 짧지 않았지만, 조금 지겹다 싶을 정도가 풍경이 반복 되자, 태정은 비로소 조금 변화를 줄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로 한 번 가볼까. 방향을 튼다. 코스를 벗어난 길로 접어들어도 익숙한 길처럼 내달린다.

타악. 타악. 타악. 타탁. 낯선 주택가의 협소한 길에 무겁게 깔린 조용한 정적을 깨버리고 싶은 듯 발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발소리는 길가의 소음에 휩쓸리기도 하고, 길의 경사에 따라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하면서 태정을 묵묵히 따라 다녔다. 후욱 후욱 발소리에 이어 인식되는 건 호흡 소리. 어느새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침을 삼키지만 입이 말라 있었다. 목구멍은 넘어가는 숨에 더 갈라진다. 대단히 목이 말랐다. 대단히. 땀을 많이 흘렸구나. 땀에 트레이닝 복이 젖어 김이 날 지경이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발바닥이 땅을 치는 소리는 더 빨라졌다.

태정은, 힘들어도 뛸 수밖에 없었다. 멈춰지지가 않았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기 등 힘든 운동을 할 때 극한의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 느끼지는 황홀경의 상태라는 게 이런 것인가. 지금은 더 뛰고 싶기만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멀리. 기분이 아주 좋고 몸은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태정아―.

희미하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태정아, 조태정―.

목소리는 좀 더 크게 들려왔다. 아니 이건 누나 목소리 같은데…. 멈칫, 모든 동작을 멈추고 태정은 뒤를 돌아보았다. 눈을 크게 뜨지만 땀으로 눈이 따갑고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태정의 부연 시야 앞으로 누군가 점점 더 다가온다

“누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눈이 가려낸 사람의 실루엣과 윤곽은 분명 태희 누나의 그것이었다. 태희 누나가, 눈앞에 있다. 누나. 정말 누나인가? 어지럼에 더해 태정의 눈이 캄캄해졌다. 오래 힘껏 달리다가 급작스레 멈춰버렸단 걸 조금 늦게 알아챈다. 돌연 태정은, 물에 불린 해초처럼 늘어져 무거운 몸을 깨달았다.

누나.

누나의 실체―손―이 태정의 뺨에 느껴졌다.

“태정아? 어디 안 좋니? 왜 그래.”

부드럽고 나긋한 손길과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 누나다. 태정은 덥석 누나를 껴안았다.

“진짜 누나구나.”

태정아 왜 그래 응? 아휴 이 땀 좀 봐…. 얘…, 태정의 어지러운 머릿속을 듣고 있으면 포근하고, 듣고 있어도 그리운, 누나의 목소리가 가라 앉혀 주었다.

누나를 안고, 누나의 어깨 위에서 후우, 후욱, 숨을 몰아쉬면서 태정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고백했다.

“목이 말라, 누나.”

* * *

“뭘 그렇게 뛰었니? 몸이 완전히 젖었잖아.”

“음 누나. 팬티까지 몽땅 젖었어.”

“그래? 어디 보자 정말인지.”

“어어, 누나.”

탈수에 갈증 그리고 경미한 구토 증세까지―빈속에 오래 뛰어서 나타난 것 같았다―보이는 태정을 끌고 누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생수를 서너 잔 쭈욱 들이켜도 갈증이 시원하게 가시질 않았지만 누나와 농담 몇 마디 주고받을 정도로는 정신이 회복된다.

“도대체 얼마나 뛴 거야?”

“모르겠어. 세 시간? 네 시간?”

정말 태정은 그가 어느 정도를 얼마나 어떻게 뛰었는지 몰랐다. 복싱으로 로드워크를 할 때는 최장 두 시간을 뛰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뛰었다. 전혀 쉬지 않고 내달렸다.

“누나랑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이거 맛있는데? 어, 이것도 괜찮네. 먹어봐, 누나.”

태정은 웃으면서 나온 테이블에 차려진 일본풍의 햄버그와 치킨 샐러드 볼 사이에서 바쁘게 포크를 놀린다. 한가득 든 입을 우물거리자, 태희가 자신의 스파게티를 태정에게로 민다. 난 괜찮다고 한 번 사양을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그것은 태정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근데 누나 어떻게 거기 있었어?”

“어떻게 있기는, 네가 길에서 쓰러지지 않게 하려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이유야 뻔하다는 듯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누나는 태정에게 대답을 했다. 달라진 게 없었다. 몇 개월 간 연락이 없었던 것도 다 거짓말 같았다.

“어? 그런 거구나. 어쩐지, 누나가 웬 여신처럼 보이나 했더니 그게 연출이구나, 연출.”

진실에 농담을 섞어서 태정은 누나를 즐겁게 한다. 누나가 소리 내어 웃는 것이다.

“어어라, 나 없는 새 없던 능청이 생겼구나?”

“누나는 있던 능청이 더 늘었고 말이지.”

사실 누군가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는 것에는 사정이라는 게 없다. 각각의 사정이 끼어들어 우연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그저, 만날 사람은 만나는 것이고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집을 나가 독립한 누나와 마주친 게 그리 뭐 대단하고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일절 누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던 아버지가 누나에 대해 물었고, 태정도 누나를 평소보다 그리워했고, 아무튼 태정은 누나와는 오늘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빈손으로 나와 기진하기 일보 직전의 태정을 만나려고 누나가 거기 있었던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 싶고 말이다―누나의 말처럼.

“정신없이도 먹네…. 근데 그렇게 지치도록 왜 뛰었는데?”

“음……, 잠깐.”

태정은 꿀꺽 꿀꺽 물을 삼키고 막힌 목을 뚫었다. 뛰게 된 이유는 많은 것 같았는데, 뭐하나 중요한 이유를 짚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냥 답답해서였나.

“구조에서 탈출하려고.”

“탈출…? 그래서……, 탈출은 성공한 거니?”

태정의 엉뚱한 소리에도 누나는, 매끄럽게 받아넘긴다. 그저 말장난이 아니라, 그 표정은 꽤 진지하게 들어 주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누나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 하면서 태정의 답을 기다린다. 누나의 그런 태도는 태정이 그저 가볍게만 답할 수 없게 만들었다. 태정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처음 농담으로 던졌던 화제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골똘히 검토해 본다.

“아니, 성공은 불가능해. 원래 구조는 탈출하는 게 아니거든. 탈출구가 없어.”

“그래? 탈출구가 없다…….”

태희는 태정의 말을 잠깐 되짚어 보더니, 괴고 있는 턱을 똑바로 하고 손에 깍지를 끼었다.

“그러면, 너는 도망치고 싶었던 거 아니니? 탈출이란 건…, 정말 근사한 말이야. 하지만, 도망치는 게 되어선 안 돼.”

“도망치는 게 탈출이잖아.”

탈출과 도망치는 것을 동일시하여 말하면서도, 그저 어렴풋이, 느낌으로 그 둘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다. 그래서 태정은 누나에게 탈출을 말했던 것이다―도망치는 게 아닌. 지금은 무기력하지만, 현실 속에 도피해 있지만, 언젠가의 탈출을 믿는다.

“아니야.”

귀밑까지 오는 단정한 머리를 찰랑이며 누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넌 도망치는 거야.”

태정이 그 차이에 대해 물으리라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희는 도망치는 것과 탈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조에서 탈출하는 거라고 했었지?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지만. 그래, 너의 그 구조에 탈출구가 없는데 탈출하고 싶다는 건,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있다는 거야. 문이 없는 밀폐된 상황은 어쩔 수 없어. 네가 그 안에서 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하는 거지. 그런데,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거길 탈출하겠다니 그건 도망치고 싶은 거지,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뭐야. 설사 탈출구가 있다고 치자. 태정아, 넌 구조 바깥에 뭐가 있는지 알고 탈출하는 거니? 탈출은 원하는 걸 알고, 그걸 위해 계획을 세우고, 과감히 실행하는 게 탈출이야.”

아아, 태정이 원하는 탈출은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도망치다와 탈출의 의미를 동일하게 볼 수도 있고 틀리게 볼 수도 있다. 태정은 모호하고 희박하게 느낌으로 둘에 차별을 두었고 말이다. 누나의 설명에 따르면, 명확한 구분이란 대단히 필요한 것이었다. 비록, 두 가지 단어에 태희의 주관적 견해를 각기 다르게 주입해 놓은 것이라곤 하지만, 의미의 구분에 따라 행동 양식은 크게 틀려졌다.

태정을 찌르는 태희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로서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누나는, 동생이 아직 못미더운 것이리라. 오랜만에 보는 누나인데 자신은 그녀에게 걱정만 사게 한다. 누나의 질타를 새기면서 태정은 태희에게 묻는다.

“그럼 누나는 집에서 탈출한 거구나? 원하는 걸 알고 과감히 실행한 탈출.”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흘러가냐면서, 누나는, 눈을 흘겼다.

“말을 아무데나 잘도 갖다 붙이네, 차암……, 집에서 탈출하고 도망치고 할 게 뭐가 있니.”

말을 흐리다가 태희는 아버지 잘 계시냐고, 궁금한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끼니는 잘 챙겨 드시느냐, 일은 잘 돌아가느냐고 묻고, 술을 덜 잡숫게 하고, 태정더러 잘 좀 챙겨 드리라고 속에 쌓인 듯한 걱정을 일거에 풀어놓았다. 집이나 아버지나, 그리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었다.

태정은 적당히 누나가 안심하게끔 대꾸를 하고, 그녀의 당부에 미소와 함께 응응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누나를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냐면서 태희 누나는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는 일을 잘 되고 있는 거야?”

태희의 그런 표정에 태정은 절로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묻는다. 혹시 잘 안 되고 있는 건가? 언제나 화사했던 미소가 좀 달라져 있고, 그러고 보니 좀 더 마른 듯도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불화, 자잘한 걱정들, 쓸쓸한 미소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녀가 선택한 것이었다.

뭘 하느냐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왜 아무 말도 안하고 그렇게 나간 거냐고,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태정은 직감적으로, 질문을 필터링했다.

잘 되고 안 되는 걸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면서 태희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에게조차 비밀에 부치는 누나에게 태정은 조금 섭섭하지만, 스스로 감당하고 짊어져야만 하는 비밀은 꼭 있는 법이다. 어쨌거나 누나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미래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 비밀조차도 태정에겐 부러운 대상이었다.

미래에 근접해 간다는 건, 원하는 모습을, 이상형을 그리고 점차 그 모습으로 화해 가면서, 현재를 미래에 연장시켜 그 둘을 일치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성공적으로 둘의 도킹이 이뤄지면, 설렘과 조바심은 감격과 자부심으로 바뀌리라. 누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 태정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꼭 보게 되리라고 믿었다.

“누난 뭘 하든 잘 하잖아? 잘 될 거야. 난 누나를 믿으니까.”

태정은, 누나를 완전히―조금은 맹목적이다시피―신뢰하는 동생이었다.

어유 그래. 누나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나도 널 믿는다고 신뢰를 되돌려주었지만, 그런데…, 라고 말을 이었다. 누나는 아직 동생을 일백 퍼센트 신뢰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졸업하면 뭘 할 거냐고 동생의 생각을, 그리고 미래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동생은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주저했다.

태정은, 누나의 방식으로 미래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태정아, 너 뭘 할 생각이 있기는 있는 거니?”

답하기를 주저하는 태정을 다그치면서 태희는 조금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가끔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할 때가 있다면서, 널 잘 알면서도 잘 모르겠다 정말,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누나의 태도에 약간, 불편함과 부당함을 느끼면서 태정은 누나에게 조금은 불만을 드러냈다.

“불공평해. 누나, 누난 이야기도 안 하면서 왜 나더러는 말하라고 하는 거야.”

“난, 누나니까.”

“어어, 순 억지잖아.”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태정은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고 당당한 누나의 한 마디에, 저런 게 천부적인 권리이고, 처음부터 그런 구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식,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돈을 벌 거야.”

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문제의식의 형성은 돈으로부터. 누나도 알고 있으리라.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누나는, 태정이 건성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아선다. 그러면 태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알았어 알았어.”

태정은 테이블에 올려 있는 두 손을 손목만 꺾어 살짝 들면서 그녀의 권리 주장에 항복했다.

누나의 방식으로 미래를 말할 수는 없으니, 태정은 그녀의 의문에 그만의 형식으로 답을 했다.

“어쨌든 파친코는 안 해.”

태정은 거꾸로 된 방식으로 미래를 말했다. 누나의 말대로 자신이 원하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원하는 게 없는지도 모른다―그런 식으로밖에는, 달리 다르게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야쿠자만 안 되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태정은 미래를 떠올릴 때 단지 막연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떠올릴 뿐이다. 비록 파친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업을 삼아 할 만한 일은 당연히 못되었다. 그리고 그걸 운영하는 아버지를 보아 왔기 때문에, 드는 거부감은 당연했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고 할 일이 그것밖에 없더라도 태정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변의 재일 동포들이 어찌어찌―자포자기거나, 힘으로 거들먹거리기 위해―흘러 들어가서, 하는 일들을 간간히, 소문으로 듣게 되는, 야쿠자 쪽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 또… 뭐가 있더라…….”

되지 않겠다고 굳이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것들을 입에 올리면서 태정은, 또 다른 되지 말아야 할 것을 손에 꼽아 보려고 하지만, 겨우 두 개에서 멈춰 버리고 만다.

그렇게 부정적인 어법을 지닌 채로, 태정은 기껍게 미래에 근접해 가 보려는 시도를 일체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누나는 동생의 그런 태도를 방치할 수 없었고 말이다.

“복싱을 다시 해보는 건 어때? 쉬긴 했지만, 하던 게 있으니까 금세….”

“그땐, 그것밖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어. 아아, 복서도 안 될 거야, 될 수도 없어.”

태정은, 되지 않을 것을 하나 더 찾아낸다.

“그렇게 말해도, 네가 하고 싶어했던 거잖아. 그때 일 때문에 그러니? 주먹으로 치고받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아직도…….”

“그 얘긴 그만 두자, 누나.”

태정이 차갑게 말을 자르자―그러면서 부탁하는 눈빛으로 응시하자―누나는 뒷말을 흐리는 것으로 태정의 의견을 존중했다.

“미안해.”

태정은 금세 사과를 한다. 고개를 숙이고 이제는 많이 식은 음식을 입에 넣어, 입을 꾸욱 닫은 채, 우적우적 씹었다. 누나에게는 많이 미안했다. 그나마 복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누나 덕분이었는데. 복싱을 다시 시작하고, 한동안 관비는 누나의 주머니에서 나왔었다. 그리고 복싱을 하는 태정을 응원했던 것도 유일하게 누나뿐이었고 말이다.

누나는 괜찮다면서 태정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고개 숙인 태정의―앞머리를 뻗어 내민 손으로 살짝 만졌다. 그러고는, 머리는 어떻게 자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화제를 전환한다.

“아, 어… 이거 머리? 그냥, 너무 길면 가끔 잘라.”

“네가?”

“어……, 내가.”

태정은 엉겁결에 대답해 놓고는 내심 당황했다. 머리는, 다카기 상이 가끔―한 번은 직접, 한 번은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다듬어 주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내버려두었다가, 너무 길다 싶어 한 번 직접 자른 적이 있었다. 영 보기가 좋지 않았지만, 별 도리가 없다 싶어 또 그냥 방치하던 중에 다카기 상과 관계가 깊어졌던 것이다. 당연, 태정은 누나에게 누나보다 훨씬 연상의 여성인 다카기 상과의 관계를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꽤 잘 자르는데?”

태정의 당황을 모르는 듯, 누나는 그냥 태정의 재주를 감탄하면서 싱긋이 웃었다. 손이 무딘 태정이 정말 스스로 머리를―뒷머리까지―자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튼, 그녀는 그것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길이가 좀 길다면서 다음에는 짧게 자르라고 말할 뿐이었다. 태정은 응,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가 조고생의 표본 머리형처럼 짧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카기 상은 목을 덮는, 태정의 긴 듯한 머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목 뒤랑 귀 뒤를 깨끗하게 씻어. 넌 자주 까먹잖아.”

머리가 더 길어 목을, 그리고 귀를 씻는 것은 확실히 불편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이야기는 그것 때문에 나온 것이리라. 태정이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던졌던 언제나와 같은 잔소리를, 누나는 지금에 와서까지 태정에게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누나는 그런 걱정을 그만해도 될 것이다.

“이제 집엔 귀 뒤를 깨끗이 씻으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 누나가 없으니까. 그리고 누나가 없으니까 더 열심히 씻게 되더라. 이상하지?”

태정은 턱을 들어 누나를 쳐다보면서, 그러니까 걱정 마, 라고 말했다. 아직 누나에게 걱정이 남아 있다면 그 말이 그것을 걷어가버리길 바라면서.

샐러드의 토마토를 포크로 쿡 찍어 입으로 가져가서 먹다가, 동시에 바구니에 담겨 나온 빵에 다른 손을 뻗었다. 태정이 먹는 소리만이 테이블을 메우면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래, 이젠 걱정 안 할게.”

침묵이 계속 되는가 싶을 때, 누나는 태정이 원하는 말을 조용하게 들려주었다.

* * *

식사를 끝내고, 누나가 계산을 하고 남매는 나란히 레스토랑의 문을 나섰다.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아버지를 잘 봐드려라, 누나는 태정을 올려다보면서 한마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태정은 누나에게 언제 다시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

「글쎄……, 네가 목이 마르면 또 보게 되지 않을까?」

누나는 입가의 미소만큼이나 모호하게 답했다.

「도망치지 마, 태정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누나의 한마디였다.

-다음 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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