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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71)화 (171/185)

171화

“아저씨가 나에게 주는 어떤 사랑도, 나쁘거나 이기적일 수 없다는... 그런 말이에요.”

맞잡지 않은 그의 왼손이 다가와 볼을 넓게 감쌌다. 머리카락 위에 입술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기다리는 거 이제 안 하려고 했는데, 기다렸어. 근데 홍서야.”

“네.”

“나 좀 봐.”

그의 손이 가볍게 얼굴을 끌어 올렸다. 이끄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그 즉시 영상이 공유될 수도 있다는 계산도 있긴 했지.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곧장 조성현을 때려눕히지 않았다고 해서, 조성현이 그날 너에게 지껄인 말들을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의 말투는 온화하고 뺨에 닿은 접촉은 따뜻하기만 했다. 어린애에게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하듯 조곤조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눈빛 너머에서는 무언가가 날뛰고 있었다.

“홍서가 같은 선택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래. 정말 많이 후회했거든.”

그의 엄지가 볼을 쓸다가 최홍서의 입술 가장자리를 살짝 당겼다.

“뒷조사만 했더라면, 아니면 그때 사람을 붙이기만 했더라도, 네가 32층에 서는 것보다 이서경이 죽는 게 먼저였을 테니까.”

아... 최홍서의 입술이 벌어졌다. 벌린 입술로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를 마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떨렸다.

지금 그는 자신이 이서경을 죽였다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서경은 태국 방콕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물론 이해성이 직접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겠지만, 그 피살에 이해성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발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와 마주 잡은 손바닥 사이로 축축하게 땀이 배었다.

“하지만, 아저씨... 거절했었잖아요.”

“거절이라니.”

엄지로 더듬고 있는 최홍서의 입술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해성의 시선이 다시 눈을 맞춰왔다.

“지인이 형 그분. 아저씨 사촌 동생이요. 그분이 복수하자고 했을 때, 아저씨가 그랬어요. 개인적 복수는... 그냥 분풀이일 뿐이라고. 그거 분명히 내가 꿈꾼 거 아니잖아요.”

이해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좁혔다. 볼을 가득 담고 있던 손에 순간적으로 힘이 실렸다.

“그걸, 홍서가... 어떻게 알지?”

“......”

잠시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민하던 최홍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해성이라면 믿어줄 것 같았다.

“윤혜안으로 깨어나기 전에... 조금 기억이 있어요. 죽은 다음에요. 몸도 없고 목소리도 없었는데 여기저기 떠돌았어요. 그때 봤어요.”

그의 목에 소름이 돋고 얼굴의 털이 선 것이 눈에 보였다. 최홍서의 얼굴을 일그러뜨릴 것처럼, 그의 손에 자꾸만 힘이 실렸다.

“...정말이에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최홍서는 추가적으로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처음 보는 어떤 방이었는데... 아저씨 집의 응접실 같은 그런 곳이요. 거기에 남자 네 명이 앉아있었어요. 지인이 형을 먼저 봤고, 그리고 맞은편에 아저씨가... 거기 있었어요. 다른 두 명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한 명이 누군지는 윤혜안으로 깨어난 뒤에 알았구요. 지인이 형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아저씨 사촌 동생이었다는 거.”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서 아저씨가 이서경을 죽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홍서야...”

그의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는 이제 두 손으로 최홍서의 얼굴을 감쌌다.

“홍서야.”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최홍서임을 확인하듯 그는 두 손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커다란 손에 비해 작고 갸름한 얼굴은 크게 더듬을 자리조차 없는데도, 눈이 멀어 두 손으로밖에는 연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처럼 그는 필사적이었다.

“아저씨, 나 맞아요. 홍서예요.”

최홍서는 얼굴을 뒤덮은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초점을 잃고 헤매는 그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려 애썼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홍서야.”

지금 이 사람의 속이 윤혜안이 아니라 최홍서라는 것을, 여태 믿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오히려 한 번 마음을 정한 뒤에는 바늘만 한 의심도 파고들 틈 없이 믿어왔는데. 그런데도 그 사실이 더 분명해지는 증거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해성은 늘 새롭게 전율했다.

“우리 홍서가 너무 가여워서 어느 신이 연민했던 걸까?”

불길이 날뛰던 그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고, 최홍서의 두 볼을 가득 담은 손바닥에 열이 뜨거웠다.

“그 신이 누구일까 홍서야.”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최홍서의 코끝에 코를 비볐다.

“하느님인지 부처님인지 선녀님인지 몰라도... 그렇게 좋은 신이라면 나도 종교를 가져볼 텐데.”

한숨을 내쉬듯 마지막 말을 뱉은 직후, 입술이 포개졌다. 겉으로만 누르고 문지르는 입맞춤을 생략한 채 그는 처음부터 진하게 최홍서의 입술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을 감싼 엄지가 아랫입술을 살짝 당기고, 벌려진 틈으로 혀가 파고들었다. 혓바닥 위를 미끄러져 들어오는 젖은 살덩이는 그의 신장에 비례해 폭이 넓고 힘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저 거세기만 하지 않았다.

입술 위를 입술로 긁어내렸다 핥아 올리기도 하고, 숨을 틀어막을 듯 혓바닥으로 입안을 가득 채웠다가도 곧 혀끝을 세워 입천장과 볼 안쪽, 잇몸과 치아를 간지럽게 자극했다. 혀를 둥글게 말아 혓바닥을 밀면서 입안으로 들어올 때면 최홍서의 혀가 목구멍 쪽으로 움츠러들었고, 그럼 그가 입술을 양쪽으로 당기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음... 흐으음... 응.”

얼굴을 붙잡고 있던 손이 멀어져 최홍서의 등 뒤를 짚었다. 밀어붙이는 힘에 밀려 몸이 점점 기울어졌다. 소파의 쿠션에 비스듬히 눕다시피 했을 때, 그의 손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며들어와 깍지를 꼈다. 축축하게 젖은 두 사람의 손바닥은 서로 끈적하게 맞물렸다.

“흐... 으, 음. 음.”

깍지 낀 손을 소파 위에 지그시 내리누르면서 그는 쉼 없이 최홍서를 탐했다. 최홍서의 혀를 구석에 몰아놓고는 그 위에 자신의 혀를 문지르고 비벼댔다.

몸과 정신이 따뜻하고 몽롱하게 녹아내리며 그의 키스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됐을 때,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강 실장이었다.

단숨에 몸을 굳히면서 펄쩍 뛰는 최홍서와 달리, 그 위에 엎드리다시피 한 이해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 실장을 곁눈질하면서 자꾸만 입술을 오므리려 하는 최홍서의 아래턱을 쥐고 보란 듯이 더 진하게 혀를 놀렸다.

“아ㅈ... 음... 읍...”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어깨를 밀어내 제어해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차는 나중에 가져와 주시면 좋겠는데. 강 실장은 그대로 서재에 들어와 소파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 집에서 통용되는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테고, 실제로 이해성도 강 실장도 서로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최홍서는 고용인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익숙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녹아내렸던 혀가 굳어지고, 그의 몸통을 안은 다리 사이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죽기 전에는 물론이고, 윤혜안의 모습으로 이 집에 들어온 후에도. 누가 보는 앞에서 이 정도로 진한 스킨십을 한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이해성이 무서웠다. 그가 자기에게 해를 끼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고, 혹시 그런다고 하더라도 그게 이해성이라면 상관없었다. 그런 두려움이 아니라, 그가 평정을 잃어버린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에 겁이 났다.

강 실장이 서재를 나간 후에야 최홍서의 입안에서 이해성의 혀가 길게 빠져나갔다. 그런 뒤에도 한동안 입술 이곳저곳을 핥고 삼키고 가볍게 잘근거리며 떨어질 줄 몰랐다.

“그랬었지.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어. 개인적 보복은 그저 내 분풀이일 뿐이라고.”

입술과 입술의 표면이 맞닿은 거리에서, 그가 눈꺼풀을 내리깐 채 속삭였다. 달뜬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눅진했다.

“이서경이 너에게 보낸 이메일들. 그걸 보기 전이었으니까.”

아직 깍지를 낀 채 마주 잡고 있던 오른손 손바닥이 은근하게 비벼졌다. 단지 손바닥을 문지르는 것뿐인데, 마치 성교를 암시하는 듯 야하게 느껴지는 손놀림이었다. 발기할 것처럼 아랫배가 뻐근해지는 감각에 꿈틀거리자, 낮고 짧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제야 그가 스르륵 몸을 일으켜 비켜 주었다.

“......”

아래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홍서를 내려다보던 이해성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붙잡자, 그는 허리를 굽혀 최홍서의 등 아래로 팔을 넣으며 안아 일으켜 세웠다.

입안에 아직 가득한 그의 타액을 삼켜내면서, 최홍서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흐트러진 파자마를 정돈하면서 자세를 바로잡는 사이, 그가 티팟에 담긴 차를 잔에 따라주었다. 생강의 알싸한 단내가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생강차야.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하니까.”

그가 건네는 찻잔을 받아 쥐면서 최홍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고삐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의 선에서 확 벗어나 있었던 사람이 맞나 싶게 그는 차분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그의 다리 사이가 묵직했다. 이미 발기했으면서도 억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최홍서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두 손으로 찻잔을 쥐고 투명한 금색 차를 식히기 위해 입바람을 불었다.

탁, 탁.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아보니, 책상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선 이해성이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의 휠을 돌려 불을 붙이고 있었다.

최홍서는 차를 마시는 것도 잊고, 그 모습에 눈을 고정했다. 내 앞에서는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구나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첫 모금을 아주 깊숙이 들이마셨다 길게 내뱉었다. 얇은 니트 아래로 넓은 어깨와 가슴이 부풀었다 꺼지는 부피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무 흉터도 굴곡도 없이 나는 그저 매끈하기만 했어.”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에게 흉터를 새길 수 있는 건 없다고도 생각했었고. 의무와 책임의 길만 걸어야 하는 삶에 대한 보상 같은 걸로 받아들였지.”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그는 무너지듯 고개를 떨구며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움켜쥐었다.

“다들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만 했어. 돈, 지위, 인맥, 심지어 동정심까지... 그들에게 나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지. 만났던 사람들이나 전처에게서도 무조건적인 애정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고.”

고개를 들어 책상의 재떨이 위에서 담배를 톡톡 털어내면서 그가 쓰게 웃었다.

“뭐, 내 쪽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

“누가 나를 지켜주려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건방지고, 불쌍한 인생이었던 거지.”

비스듬히 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최홍서를 향했다.

“그런데 열두 살이나 어린 어느 애기가 나를 지켜준 거야.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

“받아본 적 없는 그런 사랑을 준 사람을 어떻게 잊겠어.”

그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던 힘겨워 보이는 미소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불길이 날뛰는 눈동자가 다시금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앗아간 개새끼들 하나하나를, 내가 어떻게 용서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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