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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58)화 (158/185)

158화

 최홍서 역시 그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재킷 없이 셔츠 위에 베스트 차림인 그의 상체를 몇 번이나 고쳐 안고, 셔츠 칼라 위로 드러난 목과 어깨에 살을 비볐다.

 평소에는 향수를 잘 뿌리지 않는 이해성이지만, 이렇게 가까이 닿아 있으면 그에게서 풍기는 온갖 향기들을 호흡할 수 있었다. 샤워젤과 코롱, 애프터쉐이브와 바디 스프레이... 까다롭게 엄선한 제품들이 그의 체취와 혼합되어 만들어내는 이 특유의 향을 최홍서는 사랑했다.

 내 거야. 라고 욕심을 내면서 마른 입술을 그의 목에 비볐다.

 “좀 괜찮아졌어?”

 이해성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나 두통은 계속해서 발작적으로 관자놀이를 찔러대고 있었다. 최홍서는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애기, 마카롱 먹을까? 한남동 올라간 김에 홍서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에서 픽업해 왔는데.”

 최홍서가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받아들인 이해성이 몸을 떼어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최홍서는 그의 베스트를 손으로 꽉 그러쥐며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은 그때 나, 아저씨 두고 가기 싫었어요.”

 “......”

 완만한 곡선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그의 품은 단단하되 딱딱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포근한 품이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지인이 형도, 아저씨도... 방콕에 온다고 했고... 형한테 아저씨를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마음 다 먹은 뒤에도 한쪽에서는 그런 희망도 떠올려보고 그랬어요. 안 죽을 것처럼, 나에게도 매일, 새로운 하루가 계속 생길 것처럼.”

 “홍서야...”

 이해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이번엔 최홍서를 더 힘껏 안아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른 건 다 상관없었는데, 아저씨를... 놓기 싫었어요. 사실은 나, 행복해지고 싶었고, 욕심부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서도, 윤혜안이 아니라 최홍서라고 알아봐 주고서도, 온갖 예전 얘기를 다 하면서도... ‘그때’의 얘기는 둘 모두 차마 꺼내지 못했었다.

 최홍서가 방콕의 루프톱 바 32층에 서야만 했던 ‘그때’.

 “가기 싫어도... 내가 사라져야, 그게 책임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

 “근데 이런 몸에서 눈을 뜬 건... 그게 아니라는 거죠? 아저씨, 내가... 벌받고 있는 거죠?”

 “그렇지 않아. 벌받을 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굳어있던 이해성의 몸과 입술이 그제야 움직였다. 최홍서의 양어깨를 으스러뜨릴 것처럼 세게 움켜쥔 이해성은 강한 힘으로 그것을 밀어냈다. 얼굴을 보기 위해서. 역시나 최홍서의 얼굴과 눈빛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같이 고생한 멤버가 아버지 수술비가 급한데... 살려 달라고 무릎 꿇고 매달렸다는데... 나는 고민도 안 했대요. 루이비통이 어쩌고...”

 “홍서야, 최홍서.”

 초점을 잃은 눈으로 횡설수설하면서, 최홍서는 스스로 이전의 윤혜안을 ‘나’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이해성은 이번엔 연인의 두 뺨을 쥐었다. 불덩이 같았다. 순간, 이해성의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강원도. 그 굿당에서 벌벌 떠는 ‘윤혜안’을 껴안다시피 부축해 내려왔던 그때 같았다.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자기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 하며 가슴을 미어지게 했던. 윤혜안이 더 이상 윤혜안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던 그때.

 “동하가 나한테 왜 그럴까. 기억도 못 하는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오히려 어떻게 잠깐이나마 다시 또 나를 믿을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내가 동하였으면...”

 “최홍서!”

 “......”

 “나 봐. 나랑 눈 맞춰.”

 최홍서라고. 이해성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정신없이 늘어놓던 말을 멈춘 최홍서는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더듬으며 이해성과 어렵게 눈을 맞췄다. 보고 싶은 그의 얼굴이 부옇게 흐려서, 눈물이 가득 고여있음을 알았다.

 “그게 왜 네가 한 거야? 넌 윤혜안이 아니야.”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면서 그의 모습이 다시 선명했다.

 “그래도 좋으니까... 윤혜안 모습이어도 좋으니까... 아저씨, 나, 사라지기 싫어요.”

 “......”

 “사실은 나, 무서워요.”

 무섭다고 고백하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 안으로 스민 눈물이 뜨거웠다.

 볼이 밀릴 정도로 얼굴을 꽉 붙잡은 이해성의 두 손이, 그것만이 자신을 이 땅 위에 잡아두는 힘 같았다.

 “홍서, 기억하지?”

 핏발이 서고 광채가 번들거리는 이해성의 눈이 거의 노려보듯이 최홍서를 마주했다.

 “난 뭐든지, 세상을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같다고. 홍서가 그랬잖아. 기억해?”

 맞닿은 이해성의 손바닥과 최홍서의 뺨 사이로 데일 듯 끓는 눈물이 계속해서 스며들었다.

 “홍서가 맞아. 그렇게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이젠 아니야.”

 이해성의 두 엄지가 최홍서의 뺨 위를 문질렀다. 최면에 이끌려 빠져들 듯이 최홍서는 그의 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다 내 마음대로인데, 내 마음이 너 못 보내니까. 그러니까 넌 절대 안 사라져.”

 최홍서의 뺨 위에서 느리게 눈물을 지워낸 이해성은 이번엔 눈앞의 몸을 품으로 다시 당겼다.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말의 증명처럼, 그의 팔과 품은 최홍서의 숨이 갑갑해질 만큼 속박했다.

 아마도 이해성 앞에서 최홍서가 가장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이 사람은 더 힘들까 봐, 내 마음을 다 알면, 나보다 이 사람이 더 아플까 봐. 그런 이유로 혼자 감당하려고 깊은 속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펼쳐 보였을 때. 그게 자기 마음의 속살을 그에게 보인 거란 걸 알았다.

 그의 앞에서 옷을 다 벗고 살을 섞으면서도, 몸 안, 마음의 벗은 살은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걸.

 그날 최홍서는 열이 끓고, 구역질을 하고, 바싹 마른 입술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해성은 이번엔 ‘윤혜안’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분당 자택의 침실로 데려가 밤새 곁을 지키며 바라보았다.

 병원에 가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증상임을 알았으니까.

 “으으, 윽! 으윽!”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케이블 머신의 로프를 쥔 이해성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그립을 힘껏 당겼다. 자신의 배꼽을 바라보며 몸을 둥글게 말아 반복해서 로프를 끌어 내렸다. 케이블 크런치의 자세는 마치 간절한 소망을 신에게 비는 기도 같았다. 상복부에 찢어질 듯한 고통이 가해졌지만, 그는 오히려 고통이 반가웠다.

 “사십칠, 사십팔... 사십... 구... 오십.”

 트레이너의 카운트가 끝나자 이해성은 그립을 놓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숨을 몰아쉬었다. 두 시간의 고강도 운동을 막 마친 육체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도중에 벗어 던진 민소매 티셔츠는 본래의 색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땀에 푹 젖어 있었다. 이해성이 숨을 쉴 때마다 완전히 곤두선 온몸의 근육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불끈거렸다. 화를 삭이는 거대한 짐승 같기도 했다.

 “수고했어. 땀 닦고, 수분 보충하고.”

 격려하며 등을 툭 치는 트레이너의 손길에 이해성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트레이너가 건넨 타월과 텀블러를 받아 들었다. 벗은 상체의 땀을 대강 닦아내면서, 전용 분말로 만든 이온 음료를 마셨다.

 늦은 새벽쯤에야 최홍서의 열이 겨우 떨어졌다. 밤새 짬짬이 눈을 붙인 시간을 다 더해도 한 시간쯤 될까.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먹으면, 적어도 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트레이너와의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지만, 내내 생각은 최홍서에게 가 있었다. 그사이 잠에서 깨는 게 아닐지 자꾸만 마음이 급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이 개인 체육관은 최홍서가 잠들어 있는 분당 저택 3층의 바로 아래층인데도.

 “요즘 일이 많은가?”

 “일? 왜?”

 “다크서클도 진하고, 피부도 거칠어졌고.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아서.”

 “하하... 역시 전문가네. 강도 높게 해달라고 요구해놓고, 잘 못 따라가는 느낌이었나, 오늘?”

 가슴과 복근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면서 이해성은 자조하듯 웃었다.

 30대 초반, 출장 중에 처음 만나 이해성이 직접 설득해 한국으로 데려온 미국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한 지 벌써 7~8년이었다. 그사이 친구처럼 지내게 된 그는 한국 생활이 길어졌어도 여전히 할 줄 아는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빨리빨리, 얼마예요?’ 정도뿐이었다. 사는 곳만 서울이지, 여전히 완벽한 미국인이었고, 이해성 외에 다른 고객도 전부 외국인이었다. 이해성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아니, 그렇진 않아. 여전히 현역 운동선수들 수준이지. 수면 부족을 운동으로 메워서 버티려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

 “조언 고마워. 근데 일 때문이 아니라, 신혼이어서 그런 거니까.”

 트레이너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자네한테서 그런 말을 다 듣게 될 줄이야. 누굴 만나도 여태 이런 적 없었잖아.”

 이해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대답을 회피했고, 트레이너는 삼각근이 곤두선 이해성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뭐, 어쨌든 행복한 수면 부족이라는 거네. 그럼 다행이고. 마무리 스트레칭 좀 해.”

 트레이너가 돌아간 후, 이해성은 경사진 트레드밀 위를 걸으면서 강 실장을 호출했다.

 “VIP는요?”

 “아직 주무십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지금 빨리 얘기하죠.”

 트레드밀 앞 창문으로 태봉산을 멀리 바라보면서 이해성은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메이오 클리닉에서 정밀 검진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해 줘요. 비용은 상관없고, 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동원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도록.”

 “VIP의 검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경사 15도의 트레드밀을 오르면서, 이해성은 고개를 돌려 강 실장을 보았다.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질책의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예약이 얼마나 밀려 있든, 예약자들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2주일 이상은 못 기다립니다.”

 트레드밀에 걸쳐놓은 타월을 집어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훔치면서, 이해성은 경사를 좀 더 높게 설정했다.

 “그리고, 춘천은 요즘 어떻습니까.”

 춘천이란, 춘천교도소를 의미했다. UB 엔터테인먼트의 前 사장, 명도훈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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