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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57)화 (157/185)

157화

 최홍서의 시선이 또 한 번 테이블 위로 미끄러졌다. 평정을 잃은 숨소리가 거칠었다.

 “팀 해체되고는 단역도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일했지. 절망해 있을 틈도 없었으니까.”

 임 대표도 나서서 윤혜안이 팀에 남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윤혜안은 ‘나에게 유리한 길’을 두고 굳이 ‘함께 잘되는 길’을 택해야 할 필요성 자체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박동하에게도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계약서 조항에 따라, 남아있는 ‘티탄’의 투자금을 윤혜안이 감당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일하는 대로 적어도 정산은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윤혜안의 스폰서가 ‘티탄’ 앞으로 남은 투자금을 일시에 지불했고, 이후 윤혜안은 잠시나마 ENA에 꽤 짭짤한 수익을 벌어다 주었다. 임 대표에게도 결과적으로는 나쁠 게 없는 얘기였다. 결국 임상진 역시 이윤을 내는 사업을 하려는 것이지, 자선을 하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마른침을 삼켜도 입안과 목이 바싹 말랐다. 그 갈증을 읽기라도 한 듯, 임 대표가 구석의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 병 꺼내왔다. 무심히 건넨 물을 받아 든 최홍서는 많이도 아닌 한두 모금을 겨우 마셨다.

 맞은편 자리로 가 털썩 주저앉은 임 대표는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하 말고 다른 놈들도 널 좋게 생각 안 한다. 초반에야 네 스폰서 덕에 이름 알리게 됐다고 비위 맞춰줬지만, 결국은 너한테 팽당한 거니까.”

 최홍서 역시 아이돌 그룹 출신이었다. 인기 그룹에게도, 그렇지 못한 그룹에게도, 멤버 탈퇴나 교체가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인지 잘 알았다.

 임 대표는 연기를 뿜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오히려 돈이 제일 급했던 박동하가 다른 놈들보다 너를 덜 원망하는 축이지.”

 그건 또 의외의 내용이었다. 생수통을 쥐어짜듯 비틀고 있던 최홍서가 눈을 들어 임 대표를 보았다.

 “너한테 무릎 꿇었을 때도, 스폰서 끊고 같이 열심히 해서 올라가 보자고. 그렇게 매달렸었으니까.”

 임 대표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웠다. 여러 번 눈을 깜빡이면서, 최홍서는 조용히, 두려운 기분으로 물었다.

 “그럼 저는, 동하한테 뭐라고 했었는데요?”

 “바지.”

 “네?”

 “루이비통 신상인데, 바지 구겨진다고.”

 비스듬히 앉아 연기를 길게 뿜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임 대표의 목소리가 씁쓸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임상진이 연기를 빨아들이고 뿜어내는 소리뿐이었다. 그 소리가 웅크리고 잠든 커다란 짐승의 숨소리 같다고, 최홍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카악.

 임 대표가 재떨이를 들어 가래침 뱉을 준비를 했다. 퉤.

 “제가, 연습은 열심히 했었나요?”

 “......했겠냐.”

 재떨이를 내려놓으며 삐딱하게 올려다보는 눈빛.

 열심히 안 했을 것 같았다. 최홍서 역시 그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임 대표의 듬직한 어깨너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강남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화려한 풍경 대신, 골목을 사이에 둔 맞은편 낡은 건물에 들어선 상점들의 허름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중고 명품 고가 매입, 일자리 알선, 외국인 취업 전문...

 이전 생에서, 이해성이 초대했던 호텔 객실에서 바라보았던 서울의 화려한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불과 20여 분 거리의 같은 강남인데도.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임 대표에게로 초점을 맞추면서 최홍서는 다소 힘겹게 물어보았다.

 “나는 그렇게... 별로였나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말을 고르던 최홍서는 결국 ‘별로’라는 단어를 택했다.

 “뭐, 솔직히 좋은 인간이었다곤 못 해주겠다.”

 어느덧 짧아진 꽁초는 임 대표의 큼지막한 손가락 사이에서 더욱 작아 보였다.

 “너는, 욕망만을 연료로 달리는 기계 같았으니까.”

 “......”

 “그걸 좇고 충족시킬 때만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임상진은 어쩌면 윤혜안의 삶의 방관자인 동시에 가장 큰 이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는 하지만 끼어들어 간섭하지는 않는 방관자. 하지만 타인의 삶에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지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래도 대표님은, 윤혜... 제가 의식 불명인 동안 보호자로 이것저것 처리해 주셨잖아요.”

 “너한테 남아있던 돈으로 다달이 병원비 지불한 게 다야.”

 “그래도요. 무연고자가 됐으면, 깨어나기도 전에 병원에서 저를 안락사 처리했을지도 모르는데.”

 “독버섯.”

 수북한 재떨이에 꽁초 하나를 더 보태어 눌러 끄면서, 임 대표는 그렇게 말했다.

 “너 처음 딱 봤을 때 그런 생각은 들었었지. 겉모양은 화려하고 매끈해서 참 보기 좋은데, 성실하지도 않을 거 같고, 지랄맞은 성질머리도 뻔히 보이고... 이거 먹었다간 오히려 탈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런데도 센터 시키겠다고 널 끌어들인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매캐하게 고인 연기 사이로 다시 침묵이 흘렀다.

 용재와 함께 박동하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던 날. 최홍서는 박동하의 가족사진을 오래 바라봤었다. 박동하가 절반을 대출받아 구입했다는, 아마도 그 가족에게는 꿈에 그리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을, 경기도의 어느 전원주택.

 “형은 기억 못 하겠구나. 우리 아빠 많이 아팠어, 사고 때문에.”

 그때 박동하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겠다.

 ‘기억 안 나? 그때 내가 살려달라고 매달렸는데도 형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팀 나가버린 탓에 한동안 내가 지옥을 살아야 했잖아.’

 듣고 싶은 얘기는 전부 들은 것 같았다. 윤혜안에게 반전은 없었다. ‘욕망에 충실하다’는 말에 참 어울리는 삶이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적어도, 자기가 원해서 스폰서를 찾아 나섰던 것만은 사실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홍서로서는 쓴웃음조차도 짓기가 어려웠다.

 “오늘 이렇게 얘기해 보니, 진짜 예전 기억이 다 날아간 게 맞는 것 같네.”

 일어날까 하는 찰나 임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표정이며 말투는 말할 것도 없고... 순간순간 변하는 눈빛 하나까지도... 윤혜안이라고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임 대표는 감탄에 가까운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뀔 수가 있나?”

 그렇더라도, 절대, 누구도, 윤혜안의 몸속에 다른 사람의 혼이 들어와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의식 불명에서 깨어난 윤혜안이 기억을 전부 잃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됐다. 그게 훨씬 설득력 있는 ‘상식’이었으니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말씀해 주셔서, 그것도 감사하구요. 그럼.”

 생수통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먹다 남은 사과를 한 번 흘깃 쳐다본 최홍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막 열고 나가려 할 때, 등 뒤에서 임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멤버로 너 데려왔을 때, 텃세 부리지 않고 유일하게 반겨준 멤버가 동하였다.”

 “......”

 “센터 할 만한 비주얼 담당이 와서 팀이 잘될 것 같다고.”

 돌아봤을 때, 임 대표는 반쯤 몸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를 원망이야 하겠지만, 누굴 끝도 없이 미워하기만 할 수 있는 그런 놈도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최홍서도 임 대표의 말이 맞기를 바랐다. 하지만 ‘윤혜안’을 향해 이글거리던 적의 가득한 박동하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형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했었어. 좀 느리고 오래 걸리더라도 떳떳한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런 더러운 수를 쓸 필요 없다고. 근데 아니더라. 아무리 노력하면서 기다려도 기회 자체를 못 가질 수도 있는 데였어, 여기는.”

 박동하는 아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윤혜안의 말을 거의 믿는 단계까지 갔던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와 똑같이 이해성을 ‘꼬시는’ 윤혜안을 보고는,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거겠지. 만나왔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윤혜안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복도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이 다가왔다.

 “부사장님 도착해 계십니다. 내려가시죠.”

 “여기에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최홍서는 얼른 핸드폰부터 꺼내 보았다.

 당근판매자님 : 아... 어쩌지? 한남동에서 볼일 다 끝냈는데도 시간이 남네? (오후 04:41)

 당근판매자님 : 그쪽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까? (오후 04:42)

 당근판매자님 : 얘기 중인가 보네. 메시지 확인하면 오지 말라고 할 것 같으니까 그냥 출발할게요 (오후 05:03)

 당근판매자님 : 건물 앞 도착 (오후 05:28)

 당근판매자님 : 내 차로 와^^ (오후 05:29)

 당근판매자님 : 홍서 혼자 가겠다고 했는데 (오후 05:35)

 당근판매자님 : 허락도 안 했는데 찾아왔다고 혼나는 거 아닌가 (오후 05:37)

 당근판매자님 : 아저씨 벌벌 떨면서 기다리는 중 (오후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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