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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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구용재는 비교적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이 많고 의심이 없었다. 윤혜안 생전에 무시와 괴롭힘을 많이 당했던 것 같은데도, 그때의 잘못에 원한을 갖지 않았다. 깨어난 윤혜안이 더는 그러지 않는 것만으로도 용재에게는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윤혜안이 과거를 상실해 버렸다는 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선하다, 악하다의 구분을 떠나 단순한 시선으로 현재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최홍서에게 ENA의 임상진 대표는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이었다.
돈이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단순한 흥미나 인정만으로도 위험을 감수할 사람 같기도 했다.
ENA를 설립하기 전 행적도 아리송했다. 걸음걸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조직폭력단 출신이 의심되기도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 생활을 오래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상하 관계가 분명한 단체 생활에 몸담았던 남성들 특유의 분위기가 풍기기는 했다. 특히 용재와의 관계에서 그런 기미가 뚜렷했다. 두 사람 사이에 ENA 설립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앞자리, 조수석에 놓인 풍성한 과일바구니를 바라보던 최홍서는 고개를 들었다. 자동차 앞 유리 너머로 ENA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 올려다보였다. 예전 명도훈의 UB 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 기획사였다.
하나, 둘... 셋...
아주 오랜만에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세던 최홍서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당근판매자님 : 오늘 퇴근이 좀 빨라질 거 같아 (오후 04:04)
당근판매자님 : 한남동 들러서 이것저것 챙겨오려는데, 홍서 뭐 필요한 거 있을까? (오후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