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150)화 (150/185)

150화

 “홍서가 열렬히 내 편을 들어주길래. 그걸 듣고 있는 게 좋았거든.”

 “......”

 “걸레라는 그딴 단어에는 더 봐줄 수가 없게 됐지만.”

 최홍서의 손목 안쪽 살을 엄지로 비비면서, 이해성은 입매를 딱딱하게 굳혔다. 최홍서 앞에서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그의 안에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번에는 최홍서가 이해성의 손을 잡았다. 아래를 향한 상태에서 네 개의 손이 서로 짝을 맞춰 얽혀 들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면 더 조리 있게 말했겠지만... 아까 들어서 아시잖아요. 전 고상하게 말할 줄도 모르고, 독기도 있어요. 아저씨가 말하는 그런 순수한 아기가 아니라.”

 깍지 낀 손을 이해성이 한순간 힘을 주어 툭 당겼다. 맥없이 그의 가슴 앞으로 끌려간 최홍서는 드러난 그의 쇄골쯤에 입술을 묻었다. 이해성의 건조한 입술이 관자놀이를 눌러왔다.

 “독기를 만들어야만 했던 거지. 독기 없이 그 지옥을 어떻게 견뎠겠어.”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한 번 털어낸 과거였다. 그 과거와 연관된 모든 상황들이 종료될 거라 기대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되살아난 지금, 관련자들이 죽음을 맞거나 처벌을 받고 있어도 그와 별개로, 최홍서 내면에 그 시간들이 남긴 상처는 여전했다.

 이해성이 해주는 이런 말들이 갈라지고 부르튼 상처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그 틈을 따뜻하게 메우고 회복시킬 때, 최홍서는 제 안에 상처가 아직 남아있음을 실감했다.

 회복된다는 것은, 상처가 있기 때문일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그 일들이 스스로 끝을 맺어버린, 말 그대로 전생(前生)일 뿐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지금 이 생에서 최홍서가 관심을 두는 건 오직 이해성이었다.

 “저급한 단어로 너를 모욕하는데도, 나를 모욕한 걸 더 먼저 생각해 줬지.”

 깍지를 풀고, 겹쳐졌던 손가락 사이를 훑으며 올라온 그의 두 손이 최홍서의 뺨을 넓게 감쌌다.

 “네가 주는 그런 애정이... 나를 살리는 거야.”

 “......”

 “부사장님은 좋은 분이라고, 맹목적이었던 그 애정이 내게 귀했던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이해성의 눈이 최홍서의 두 눈을 하나씩 번갈아 깊이 들여다보았다. 믿을 수 없는 보물을 발견한 비밀의 목격자처럼, 그 눈은 경이에 차 있었다. 같은 방식의 애정을 통해, 그가 지금 자신의 연인이 살아 돌아왔다는 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좀 더 복잡하게 엉키며 흔들린다고 느낀 순간,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면서 입술이 겹쳐졌다. 서로를 번갈아 머금으며 빨아당기는 키스는 시작부터 격렬했다. 코끝이 뭉개지고, 아랫입술이 뒤집혀 연한 점막을 드러냈다. 그는 그 점막을 긁으며 빨아들여 살짝 상처가 남을 만큼 이를 세웠다.

 “읏.”

 그 아릿함마저도 사랑했다.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최홍서는 그에게 더 바짝 다가서 배를 맞추고, 벗은 상체의 강하고 아름다운 굴곡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자신과 상대의 체격 차를 가늠하지 못하고, 애정을 준 사육사에게 덤벼드는 맹수처럼, 이해성은 최홍서를 자꾸만 밀어붙였다. 쿵, 그의 무게에 밀려 뒷걸음질 치던 최홍서의 뒤꿈치와 뒤통수가 옷장에 닿자, 그제야 이해성은 아랫입술의 점막 뒤를 한 번 더 진하게 비빈 뒤 입술을 놓아주었다.

 “하아, 흐... 하...”

 순식간에 예민해지고 발그스름해진 입술로 최홍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툭, 이해성의 이마가 최홍서의 이마에 마주 닿았다.

 “앞으로 계속.”

 키스로 불이 붙은 성욕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짙게 잠겨 있었다.

 “이 신혼 생활이 지나가도, 매일 밤 나랑 같이 샤워한다고 약속해.”

 최홍서는 아랫입술을 이로 긁으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왜 웃어?”

 “신혼이요?”

 “왜? 아니야? 비밀리에 성대하게 식부터 올릴까? 홍서가 그러자면 할 수 있어.”

 웃으면서 시선을 떨어뜨린 최홍서와 눈을 맞추기 위해, 그는 어깨를 기울여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러는 중에도 양 옆구리를 잡은 손과 딱 맞붙은 하반신은 절대 떨어뜨리지 않았다.

 “아니면, 나랑은 지금뿐이고, 나중엔 딴 남자랑 살려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발끈해서 고개를 쳐들자, 원하는 대로 눈을 맞춰 만족해하는 이해성의 표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세.”

 거부하듯 자신의 가슴팍을 밀어내는 모양을 취하고 있는 최홍서의 손을 힐끗 내려다보며, 이해성이 말했다. 두툼히 넓게 벌어진 가슴에서 머뭇머뭇 손을 뗀 최홍서는 구부정하게 팔을 들어 올렸다.

 후드 티셔츠와 그 안에 받쳐 입은 흰색 티셔츠까지, 이해성은 단번에 벗겨내 버렸다. 드러난 최홍서의 배는 납작했지만, 윤혜안이 주인이었을 때와는 달리 양옆으로 선명한 복근이 새겨지고 있었다. 최홍서라는 증명과도 같은 그 굴곡을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이해성은 최홍서의 입술 위에서 속삭였다.

 “영원히 내 옆에 있는다고 약속해.”

 “약속해요.”

 최홍서는 즉답했다. 그가 불안하지 않도록.

 그의 이 질문이 보통의 연인 사이에 오가는 막연한 ‘영원’에 대한 약속, 한낱 달콤하고 낭만적인 다짐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최홍서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다시 게걸스러운 식사 같은 키스를 퍼부으면서, 이해성은 연인의 청바지 버튼을 풀고, 지퍼를 내리고, 등허리에서부터 엉덩이로 두 손을 푹 박아 넣었다.

 “흐으, 흣.”

 엉덩이 역시 이전보다 더 근육이 들어차 탄력이 붙어 있었다. 매끈한 입천장 위에 기하학적인 선을 그으며 애무한 그의 혀가 윗니의 치열 뒤쪽을 긁으며 입술 밖으로 빠져나갔다.

 만족하지 못한, 여전히 허기진 표정으로 그가 숨을 몰아쉬면서 최홍서를 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서, 섹시한 두께와 커브를 가진 입술이 혼란스럽게 달싹거렸다. 한쪽 뺨을 완전히 일그러뜨린 후에야, 그는 헐떡이는 호흡 사이사이로 한마디 한마디 무겁게 말을 내려놓았다.

 “이것도 약속해. 앞으로 두 번 다시,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거친 숨결 속에서 장난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왜 그런 약속을 요구하는지, 숨겨진 의미를 아는 최홍서는 마주 웃기가 힘들었다.

 <러브 스토리>, <시티 오브 엔젤>, <이터널 선샤인>.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들만 함께 봤기 때문에 우리의 이전 결말이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떤 종교도 미신도 믿지 않는 ARA의 이해성이 그런 것까지 두려워하고 있었다.

 회복된다는 사실이 상처가 존재함을 보여준다면, 약속받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불안함을 뜻했다.

 이해성 같은 남자가 두려워한다. 확인받고 싶어 하고, 부질없는 말로 약속받고 싶어 한다. 인간은 때론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말의 힘을 필요로 하고, 이해성 같은 남자도 결국 공포 앞에서는 그것을 원했다.

 최홍서는 그를 흉내 냈다. 두 뺨을 손안에 가두고 똑바로 눈을 맞췄다. 하루의 끝에 파르스름하게 돋아난 수염의 까슬함도 개의치 않고 스스로 먼저 입을 맞췄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안 볼게요. 절대로.”

 쿵, 이번에는 이해성이 최홍서를 안아 들어 그 등을 옷장에 들이박는 소리였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그의 혀에 혀를 감으면서, 최홍서는 그에 의해 두 발이 공중에 뜬 채 욕실 안으로 이동했다.

 샤워 부스 안에서 완전한 나체가 된 두 사람은 섹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천진한 아이들처럼 서로의 머리를 감겨주고, 거품으로 몸을 씻어냈다. 그러나 물론 진짜 아이들이 아니기에, 성기는 내내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등 뒤에서 최홍서의 목덜미를 따라 입을 맞추면서, 이해성은 샤워기의 물줄기로 최홍서 몸의 거품을 씻어 내렸다. 바늘을 꽂는 것처럼 수압이 강한데도, 가슴 위를 두드리는 물줄기가 간지럽게 느껴지기만 했다. 최홍서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영원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잖아. 그럼 이미 신혼인 거지.”

 “흐읏, 흑... 으음, 흠.”

 가슴에서 내려간 물줄기는 아랫배와 배꼽을 지나 성기와 음모를 집중적으로 흠뻑 적셨다. 최홍서는 아예 그의 어깨에 뒤통수를 얹고 도리질 쳤다.

 “허니문 비슷한 것도 이미 다녀왔고.”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든 물줄기는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고개를 거꾸로 하고는 아래에서 위로, 회음을 때려댔다.

 “하으으, 흐... 흐윽, 흐...”

 이해성의 팔을 붙잡은 최홍서는 미끄러운 피부에 손끝을 박아 버티려 애썼다. 습기 찬 공기를 달콤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 때문에 무릎에 힘을 주는 게 더 힘들었다.

 “허니문처럼, 밤낮도 없고 콘돔도 없이 섹스를 해댔고.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항복을 외치듯, 최홍서는 샤워기가 아닌 그의 손을 자신의 음부로 이끌었다. 쿠당탕, 내동댕이쳐진 샤워기가 타일 위에서 똬리를 틀었고, 사방으로 흩뿌려졌던 물줄기가 한쪽으로 찌그러져 얌전해진 뒤, 부스 안에 들리는 것은 젖은 살끼리 달라붙은 질척거림과 찐득한 신음뿐이었다.

 이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지 며칠. 서로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잠든 날은 없었다. 매번 애널 섹스로 이어지지는 않아도, 곁에 누운 서로를 얌전히 잠들게 할 만큼 정숙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욕의 해소라기보다는 불안의 소강을 위한 것이었다. 말리부에서의 섹스가 그랬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공포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해하고, 그것에 더 깊숙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 이해성의 이론이었다.

 대화, 그리고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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