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145)화 (145/185)

145화

제 7 부

 이해성은 최홍서와 함께하는 귀국 편으로 전세기를 택했다.

 한인 이용이 많은 LAX에서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최홍서가 아닌, 그룹 ‘티탄’ 출신 배우 윤혜안과 ARA 이해성의 동반 입국으로 보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소소하게라도 몇몇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될 터였다.

 ‘같은 비행기를 탔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최홍서는 전세기 이용을 소극적으로 반대해 봤었다. 그런 최홍서에게 이해성은 깔끔하게 답했었다.

 ‘같은 비행기를 탔다는 것만으로 끝낼 자신이 없거든.’

 그러곤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한 얼굴로 덧붙였었다.

 ‘13시간 이상 네가 옆에 있는데, 우연히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을 뿐인 척 쳐다보고만 있으라고?’

 도저히 불가능하며, 그럴 의지도 없다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최홍서는 이후로 더는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매우 간소화된 출국 절차를 마친 두 사람과 일행은 다른 어떤 승객들과도 마주치지 않고 기내에 탑승할 수 있었다.

 긴 가죽 소파에 앉은 최홍서는 몸을 반쯤 틀어 창밖의 공항 풍경을 내다보았다. 전세기 전용 터미널은 일반적인 공항 터미널보다는 좀 더 여유가 있는 분위기였다. 활주로 너머로도 끝없이 공항이 펼쳐진 것 같은 넓은 부지는 감탄을 넘어 약간의 막막함마저 느끼게 했다. 그 위로 쏟아지는 11월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의 일들이 모두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잠시 자리를 비운 이해성을 기다리면서, 최홍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너무 먼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은 갤러리의 <컴백> 전시에서 최홍서로서 그와 재회하고 받아들여진 일련의 과정들이 그 자체로 너무나 꿈같은 일들이기 때문일까?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진 또 다른 전세기에 탑승하려 하는 한 무리의 요란한 탑승객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최홍서는 문득 실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처럼 꾸며진 메인 공간 뒤쪽, 따로 분리된 두 번째 공간에 이해성의 수행원들이 타고 있었고, 이해성은 잠시 그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열려 있는 문틈을 기웃거리면서 최홍서는 앞에 놓인 테이블 위의 잔을 들어 샴페인을 홀짝거렸다.

 다시금 창밖으로 몸을 돌렸을 때, 예의 그 요란한 그룹은 여전히 비행기 앞에서 열정적인 사진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녀로 구성된 그들은 아주 떠들썩하고 즐거워 보였다. 방금 전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박장대소하는 그들의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보니 최홍서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머리 위에 다정한 손길과 목소리가 동시에 닿았다. 최홍서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언제 돌아왔는지, 이해성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그냥?”

 “떠나려니까 왠지 아쉬워서요.”

 최홍서의 옆자리에 앉은 이해성은 다리를 겹쳐 꼬면서 자기 몫의 잔을 들었다.

 “그래? 좋은 면도 있잖아.”

 “좋은 면이요?”

 “올 때는 정말 지루한 비행이었는데.”

 그가 잔을 기울여 자신의 잔과 최홍서의 것을 살짝 마주치게 했다.

 “귀국 편은 아주 즐거울 것 같거든.”

 그 말에는 최홍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주 웃으면서 그의 건배에 응했다. 그가 등장한 직후부터 불안은 급격히 옅어지고 있었다. 따뜻한 아침 햇살에 도망치듯 흩어져버리는 새벽안개처럼.

 “음.”

 샴페인을 마시던 이해성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에도 시계를 차고 있으면서, 굳이 최홍서의 손목을 쥐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번 여행에서 편집숍에서 구입한 파란색 다이얼의 그 시계였다.

 “최홍서 씨, 이륙까지 30분 정도 남았는데요.”

 “......”

 이해성의 얼굴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원하는 반응을 채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홍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LA 떠나기 전에 대답해 주기로 하지 않았나?”

 “아...”

 “그래서 나 보채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그제야 말뜻을 깨달은 최홍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말리부에서의 지난 며칠은 섹스의 연속이었다.

 가끔은 수영장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아래층 식당에 내려가 식사를 하기도 하고, 해변을 산책하기도 했지만, 그 외 모든 시간은 섹스로 점철되었다. 수영장이나 식당이나 해변에 있었던 시간도 결국은 뜨겁게 서로 뒤엉키는 애무로 귀결되는 일종의 전희일 뿐이었다.

 ‘허니문 커플도 우리보다는 건전하겠어.’

 바다와 하늘 사이에 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인피니티 풀에서, 최홍서를 껴안은 채 부유하면서, 이해성은 그렇게 인정했었다. 최홍서의 두 팔은 이해성의 목을 감고, 두 다리는 이해성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그렇게 마주 보고 서로 밀착해 껴안은 채로 물속을 그저 떠다녔다. 머리 위 캘리포니아의 하늘도, 눈만 돌리면 펼쳐져 있는 태평양도 바라보지 않았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손을 떼지 않았고, 입술도 거의 떼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인데?’

 ‘왜요.’

 ‘내 입 안에 10분 이상 네 혀가 없으면 금단 증상이 일어나고 있거든.’

 낭만적인 고백인 건지 야한 농담인 건지 알 수 없는 그 말끝에, 최홍서는 못 말린다는 듯 웃었고, 그의 입안에 자신의 혀를 넣어 주었었다. 긴 키스가 이어졌고, 그리고 그에게서 함께 살자는 제안을 들은 건 그 직후였다.

 ‘같이 살았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최홍서의 의견을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해성의 눈은 너무나 절박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제안을 거절하면 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그 정도의 절박함은 오히려 일종의 협박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협박이라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협박일 것이다.

 ‘숨기기도 힘들 거고, 무슨 얘기가 돌게 될지...’

 ‘그 정도는 내가 정리할 수 있어.’

 연예계의 모든 사건 사고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최홍서도 잘 알았다. 게다가 이해성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엮인 문제라면 확산되기가 더욱 어려웠다. 관계자들도 언론도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서경 같은 인간이 수년간 그런 끔찍한 만행들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옆에 없으면, 불안해서 안 될 것 같아.’

 그는 최홍서에게 즉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만 대답해 달라는 말과 함께, 진한 키스와 애무를 이어 나갔을 뿐이었다.

 풀 가장자리의 턱에 앉아 가슴을 깨무는 그의 머리를 껴안고 헤집으면서, 최홍서는 짐작했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물론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요인은 따로 있었다. 불안해서 안 될 것 같다는 그의 말을 들은 순간, 해변으로 달려 나오며 미친 사람처럼 자신을 부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 번 다시 그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저도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게 싫어서 대답을 미룬 건 아니에요.”

 “그래, 알아.”

 “하나만 약속해 줘요.”

 “말해봐. 뭘 약속하면 널 내 옆에 데려다 놓을 수 있어?”

 뭐든 하겠다는 태도로 더 가까이 다가와 앉는 그를 보면서 최홍서는 가볍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홍서라고 안 부르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살짝 치켜든,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잘생긴 얼굴.

 “왜 그래야 하지?”

 이 부분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사실 대답을 미룬 며칠간 최홍서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저씨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저를 최홍서의 대체품으로 생각할 거예요.”

 “실은 이 사람이 홍서다, 이 사람 속에 홍서 혼이 들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최홍서는 단호하게 서너 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요.”

 “......”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얘기 할 거 없어요.”

 잔을 내려놓은 이해성은 최홍서의 손에서도 잔을 거두어갔다. 그리고 허벅지 위에 놓인 그 손등 위를 뒤덮듯 꽉 붙잡았다.

 “속으로는 대체품이라 생각하든 뭐든,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

 “......”

 “사람들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입을 다물게 하는 거. 그나마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죄인처럼 시선을 떨구는 이해성의 손을 이번에는 최홍서가 강하게 맞잡았다.

 “아저씨 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든 신경 안 써요. 하지만...”

 최홍서는 말끝을 흐리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해성이 아래를 향하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

 스캔들이나 그런 건 무섭지 않다. 정리할 수 있다는 그의 말도 믿는다. 하지만 새롭게 만나는 상대를 최홍서라고 부르며 곁에 둔다면 그의 최측근들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하필 최홍서와 닮기까지 했다면, 죽은 이의 그림자에 짓눌려 이성에 흠집이 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흠...”

 이해성이 다문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한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짐을 털어내고 마음을 굳힌 사람의 한숨이었다.

 승무원이 와서 샴페인 잔을 가져갔고, 곧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긴 소파 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좌석 벨트를 착용했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해성이 고개를 기울이고 이쪽을 보았다. 입술 양 끝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윤혜안 씨, 분당으로 들어가서 같이 살죠.”

 “......”

 최홍서는 당혹스러웠다. 이미 그에게 수없이 여러 번 그 이름으로 불렸는데. 새삼스럽게 이런 고통과 서운함을 느낄 줄은 몰랐다. 복잡한 당혹감을 숨기기 위해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표정을 감추려 손으로 입가를 만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와 있을 때면 자신의 감정은 늘 새로운 반응을 보였다. 이전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덤덤하다 못해 버석거릴 정도로 메말랐던 감정은 어떤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었다. 그것이 분노든 억울함이든 증오든, 혹은 간혹 만나는 기쁨, 영광, 행복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 가슴을 만들어야만 자신을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메말라버린 자신을 아기라고 부르는 이해성과 함께 있으면, 최홍서 자신조차도 몰랐던 모습들이 드러났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각의 뿌리에서 싹이 돋았다. 아주 약한 바람이나 햇빛, 물줄기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는 그 연둣빛 연한 잎사귀는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활발한 생명이었다.

 그의 곁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어떤 감각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죽이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마음은 그의 곁에서 기쁨과 행복을, 서운함과 슬픔을 힘차게 느낀다. 그리고 최홍서는 그런 자신이 싫지 않았다. 살아서, 모든 것을 있는 힘껏 느낀다는 그 감각이 싫지 않았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끔씩 당혹스러울 뿐.

 머리 뒤에서 그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해성 특유의 달콤한 한숨. 그 후에는 머리 위에 내려앉는 커다랗고 따뜻한 손.

 “홍서야.”

 “......”

 “윤혜안이라고 부르라고 한 건 너잖아. 근데 왜 그런 표정이야?”

 머리 위의 손이 거두어지고, 그의 턱이 어깨 끝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최홍서는 망설이며 대답했다.

 “둘만 있을 때는... 싫어요.”

 최홍서에게 서러움이란, 넘칠 정도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적 감정이었다.

 그래서 윤혜안의 모습으로 나타난 자신에게 보여준 이해성의 차가움에 태어나 처음으로 서러움을 느꼈었다. 그는 최홍서에게 서러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장난을 치려고 일부러 하는 말임을 다 알면서도 서러워하는 이런 면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놀라워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약하게 만들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위해서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한 번 더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누구도 그것을 약함이라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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