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그거, 69를 하자는 건가.”
최홍서의 성기를 숭상하기라도 하듯, 그것의 기둥에 볼과 콧대를 비비면서, 그가 입술을 당겨 옅게 웃었다. 그는 숨기려 하지만, 씁쓸함이 섞인 웃음은 어두웠다.
첫 잠자리. 제대로 된 키스나 애무를 나누기도 전에 펠라티오부터 하려고 했던 최홍서의 무의식. 그것이 무엇에서 기인한 행동인지, 이제는 두 사람 모두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봉사하고 착취당하는 섹스밖에는 몰랐던 상태에서 무엇이 잘못된 줄도 모른 채 벌였던 실수.
이해성은 샤워기의 가장자리에서 흩뿌려진 물방울을 얼굴에서 훑어냈다. 그리곤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엉덩이 아래에 엉거주춤 걸쳐져 있는 최홍서의 팬츠를 발목까지 끌어내렸다. 최홍서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한 발씩 발을 빼내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그에게 극진히 모셔지는 그의 주인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다리를 펴고 긴 몸을 일으켜 세운 이해성은 자신의 파자마도 벗어버렸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덤덤히 옷을 벗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홍서는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다. 찰박. 그의 맨발이 물 위를 디디며 다가왔다.
쿵, 등 뒤에 다시 유리 벽이 닿았고, 이해성이 최홍서의 어깨 위로 손을 짚었다. 그가 상체를 숙이자, 얼굴로 튀던 물줄기가 차단되었다.
“그렇게 대담한 제안을 하신 분이 얼굴은 왜 빨개져?”
“......”
“내가 하자고 한 게 아니라, 홍서가 하자고 한 거잖아.”
찰박. 그의 발이 더 가까워졌다. 엄지발가락 앞에 그의 발끝이 닿았다. 발기한 두 성기가 서로 스쳤고, 귀두가 그의 음모에 쓸릴 정도로 가까웠다.
“그건, 마, 맞지만... 으음... 음.”
턱 끝이 부드럽게 들린다고 느끼자마자 입술이 포개졌다. 따뜻하게 젖은 붉은 혀가 큰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입안을 채우고, 등허리를 감은 팔이 바짝 끌어당겨 안았다.
여전히 거품기가 미끌거리는 몸을 부둥켜안고 길고 긴 키스를 나누며 육체 구석구석을 서로의 손으로 정성스레 문지르고 닦아 씻어냈다.
그는 커다란 타월로 담요처럼 최홍서의 몸을 감아 물기를 닦아주고, 세면 타월로 머리카락의 물을 짜내 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빗 삼아 젖은 머리를 정돈해 준 후에는 이마에 입을 맞췄다.
가운조차 걸치지 않은 채 손을 잡고 침실로 돌아갔다. 최홍서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는 동안, 이해성은 아주 어슴푸레한 빛만 새어 들도록 커튼을 여몄다. 아직 어둠에 길들지 않은 눈으로는 서로의 실루엣과 형형한 눈빛만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릎을 짚으며 침대 위로 올라온 그가 침대 한가운데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베개 없이 시트 위에 누워 최홍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둠 속에서 긴 전라의 실루엣이 두드러졌다. 발기한 그의 음경은 아랫배에서 살짝 뜬 정도로 빳빳한 각도를 유지하며 기립해 있었다.
최홍서는 침대 위로 두 다리를 끌어 올려 그에게 기어갔다. 그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기로 결심은 했어도, 그의 몸 위에서 거꾸로 엎드린다는 것이 아직 쉽지 않았다.
망설이는 최홍서의 손을 그가 잡아 이끌었다.
주춤주춤, 그가 유도하는 대로 그의 배 위에 올라앉았다. 그에게 등과 엉덩이를 보인 채로. 그는 이번엔 최홍서의 발목을 잡아 뒤로 당겼다. 그런 작은 행동에도 예민해져서 최홍서는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엎드리려면 더 뒤로 와야지?”
그의 아랫배에 손을 짚고 무릎을 더 뒤쪽으로, 그의 겨드랑이 쪽으로 옮겼다. 그가 잡아끄는 힘에 반쯤 끌려갔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렸다. 발목이 그의 어깨를 넘어가자, 그는 이번엔 허벅지에 팔을 감아 뒤로 당겼다. 종아리가 그의 겨드랑이에 단단히 끼었을 때쯤, 더는 물러날 자리도 없었다. 엉덩이골 사이에 그의 턱이 닿았다.
최홍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자꾸만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스름 속에서, 이해성이 가늘게 뜬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허벅지를 감고 있던 손으로 피부 위를 쓰다듬으며 올라와 등허리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
최홍서는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상체를 숙여 엎드렸다. 자연히 엉덩이가 들리고, 그의 양손이 엉덩이의 살집 위를 둥글게 쓰다듬었다.
그의 음경부터 손에 쥐고 대뜸 귀두에 혀를 댄 최홍서와 달리, 그는 자세히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리를 벌리고 올라앉은 자세 탓에 벌려진 엉덩이, 그의 쇄골을 긁어대며 거꾸로 매달린 음경, 가랑이 사이로 내다보일 고환. 숨고 싶었다.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제 몸의 아랫도리를 의식하느라, 정작 코앞에 대령된 그의 성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의 코와 입술에서 거칠게 흘러나오는 호흡이 여린 속살에 그대로 닿아왔다. 숨결에 섞인 훈기와 습기까지 느껴져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허벅지의 바깥쪽과 안쪽을 쓰다듬고, 손끝으로 회음을 꾹꾹 누르고, 고환을 슬쩍 당기기도 했다가, 음경을 만지작거리기도 하는 그의 손길은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자의 그것 같았다. 성적인 농도는 오히려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최홍서의 허리는 점점 노곤해지고, 훤히 드러낸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흐으, 흑... 흐...”
손가락을 이용해 그가 구멍을 양쪽으로 벌렸을 무렵에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 자세히 보지 않아도...”
“홍서의 새 몸이니까. 하나하나 눈에 새기고 익혀야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엉덩이 사이에서. 벌려진 애널 안을 상세히 들여다보면서.
윤혜안의 몸이 아니라, 최홍서의 새 몸.
몸이 불에 탈 듯한 부끄러움과 별개로, 그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면에서 무언가가 치유되었다. 이미 죽어버렸던 목숨이 다른 이의 몸에서 눈을 떴던, 칼로 뒤집어놓은 비늘처럼 곤두서 있었던 공포와 불안이 잔잔히 잦아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 이해성만 자기를 최홍서로 바라봐 준다면, 최홍서로 존재할 수 있었다. 무섭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뭐든 다 내보일 수 있었다. 그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더듬더듬 그의 음경을 다시 쥐고, 핏줄 선 기둥에 입을 맞춘 순간, 다리 사이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며.”
“......”
“나도 이제 그러려고.”
“흐... 윽! 흡!”
말끝에 그는 드디어 혀를 길게 내어 구멍 위를 진하게 핥았다. 최홍서는 그의 음경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를 꽉 쥐었다.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그 질긴 근육에 손끝을 박아 넣어 움켜쥐었다.
그는 혀를 떼지 않은 그대로 혓바닥을 애널 위에 넓게 비벼댔다. 혓바닥으로 구멍을 지져 녹이려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입구를 누르고 밀어댔다. 최홍서의 아래가 자꾸만 조여들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삽입을 조르듯 벌름거리는 구멍이 그에게 낱낱이 드러나고 있으리라는 수치심에 더는 그의 음경을 핥을 수도 없었다. 그저 그의 배 위에 엎드려 신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69를 하자더니, 이건 그냥 내가 홍서를 펠라티오 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흐으, 흐... 응.”
“응?”
채근하듯, 그는 허리를 퉁 튕겨 자신의 성기를 흔들었다. 묵직하고 빳빳한 그것은 둔하게 끄덕거리며 일어나 최홍서의 얼굴을 갈겼다.
“하아, 흐... 하윽... 흐.”
손으로 쥘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혀를 내밀고는 그것을 쫓아 이리저리 고개를 꺾었다. 사타구니 전체를 헤집는 그의 혀와 입술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은 머리가 마비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내가? 내가 뭘? 나는 홍서가 하자고 한 대로 하고 있을 뿐인데.”
“그래도, 서로 좀 엇비슷하게... 흐윽!”
고간 전체를 이로 긁고 혀로 문지르고 입술 사이에 물고 빨아대던 이해성이 한순간 살점 요만큼을 강하게 씹어댔다. 고환과 애널 사이, 도도록하게 솟은 회음이었다. 연하디연한 살이 짓씹히는 아픔에 최홍서는 눈을 크게 뜨고 허우적거렸다. 아릿함 사이로 달콤함이 퍼져나갔다.
그 뒤로는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깨물렸다. 허벅지 안쪽부터 엉덩이, 처음 씹었던 회음도 몇 번이나 더 물어뜯겼다.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애널 안쪽까지 물어버릴 기세였다. 살점을 빨아당기는 쪼옥, 쫍, 거리는 소음이 어둠 속에서 질척거렸다.
최홍서는 차라리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더 부끄럽게 만들기 위한 짓궂은 말이라도 좋으니까... 그 어떤 음란한 말을 듣더라도,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아... 아프, 아파...”
깨물리고 씹힐 때마다 아픔보다 달콤함이 더 진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부정했다.
“내 쇄골에 홍서가 흘린 쿠퍼액이 흥건한데도?”
“읏.”
눈앞이 하얘지는 쾌감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자꾸만 앞으로 기어 나갔다. 깊숙이 잡아끄는 늪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처럼 허우적거렸다.
“흑!”
그러나 그는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두 손으로 양 골반을 쥐고 힘껏 뒤로 당겼다. 주저앉듯이 무너진 최홍서의 엉덩이에 그의 얼굴이 완전히 파묻혔다. 그의 높은 콧대가 회음을 누르고, 입술 위에 고환이 짓눌렸다.
“아으으, 으... 응!”
고환을 물고 우물거리는 자극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사이, 이번에는 타액으로 충분히 물러진 자리에 손가락이 길게 파고들었다. 최홍서는 기겁을 하면서 그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욕실에서 한 번 약하게 놀림당했던 그 자리가 이번에는 가차 없이 날카롭게 문질러졌다.
“흐윽, 흐... 흣... 하으, 흐... 아, 안 돼... 안 돼, 안...!”
이해성의 가슴과 배에 왈칵왈칵 정액이 쏟아졌다. 사정에 도달한 최홍서는 약물 중독자처럼 전신을 간헐적으로 떨어댔다.
“하아, 하, 하으, 윽. 흐.”
쾌락으로부터 도망치려 침대 위를 벌벌 기었다.
“읏!”
그러나 그의 종아리 사이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발목이 붙잡혔다. 양 발목을 붙잡혀 주르륵, 뒤로 끌려갔다. 몸을 일으켜 무릎으로 버티고 선 그의 사타구니에 엉덩이가 딱 붙었다.
“어디 가.”
“흐으, 흐...”
“이번엔 안 보내.”
최홍서의 양 옆구리를 단단히 붙잡은 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정성껏 혀와 입술로 돌본 자리에 성기를 문질러댔다. 그 불룩한 부피감이 주는 성적인 자극에 최홍서는 허벅지가 떨렸다. 무서운 건지 기대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허리가 잠깐 뒤로 빠진다 싶더니, 푹신한 베개 하나가 최홍서의 뺨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매끈한 굵은 귀두가 애널 입구에 자리를 잡고 비비적거렸다.
“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 보낼 거야. 이번에는.”
믿기지 않게도, 삽입을 시도하려 하는 그의 손이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느껴졌다.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맺어지게 되면... 그럼 혹시 맺혀있던 네 한이 풀어져서, 그래서, 사라져버릴까 봐.
아직까지도 이해성 안에 그 공포가 남아있음을 알 것 같았다. 두 팔로 베개를 가득 끌어안은 채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던 최홍서는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
“흐윽! 흣, 후...”
사정 직후 이완된 입구로 꾸구국, 그가 파고들었다. 제법 눈에 익은 어둠 속에서 그의 전신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좁은 내벽에 맞지 않는 사이즈의 음경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고통으로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홍서가 좋아했던 착한 아저씨, 이제 안 하려고.”
“하아으, 흐... 하. 흐윽.”
“이기적으로, 나쁘게 사랑하려고.”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은 뺨 밑에 베개를 깔아주지 않아요. 굳이 귀찮게 혀와 손을 이용해 닳도록 구멍을 풀어주지도 않구요.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 하는 섹스가 어떤 건지, 나는 알거든요.
이해성의 턱 끝에 매달려 있던 땀방울이 최홍서의 등허리로 토옥 떨어졌다. 그의 찌푸린 눈가와 입매, 단단해진 턱 근육이 삽입의 고통 때문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