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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40)화 (140/185)

140화

 거실과 연결된 커다란 유리문을 거칠게 밀고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은 거의 달리고 있었다. 어제 이해성이 ‘되도록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지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움직여 달라’ 말했음에도 그의 수행원들이 어딘가에서 달려 나왔다. 아마도 그가 최홍서의 행방을 물으며 소란을 피웠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해성은 그들을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이킹은 취소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호출하죠.”

 간단한 설명이 있었을 뿐, 여전히 최홍서의 손을 이끌고 서둘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이쪽에서 부를 테니 그전까지는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최홍서의 신발과 이해성의 맨발이 동선을 따라 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물론 그는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키지 않는 평소의 단정한 행동거지와 달리 그는 쿵, 쿵, 맨발로 2층 복도를 함부로 내디뎠다.

 이해성은 어젯밤 두 사람이 이용했던 트윈 베드룸이 아닌 마스터룸으로 향했다. 슈퍼 킹사이즈의 커다란 침대가 놓인 메인 침실이었다. 물론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그 방을 택했다는 것은 동침을 의미했다.

 문을 닫은 그는 거침없이 안쪽의 욕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때껏 잠자코 뒤를 따랐던 최홍서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갑작스런 저지에 이해성은 미간을 좁히고 뒤를 보았다.

 “왜 그래.”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

 “천천히 적응해 가도 되잖아요. 무리해서... 꼭 지금 안으려 할 필요는...”

 그는 분명 계속해서 키스를 망설였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침에 눈앞에서 사라졌던 일로 충격을 받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서두르는 거라면, 그걸 원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내려보던 이해성은 그저 다시 손을 잡아끌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혹은 더 정확한 대답을 준비해 놨다는 듯이.

 욕실 입구 앞에서 멈춘 그는 최홍서의 카디건에 거침없이 손을 댔다. 어제 편집숍에서 사들인 수많은 옷들 중 하나였다. 값비싼 카디건이 불필요한 허물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티셔츠 안에서 가슴을 향해 거꾸로 올라오느라 꿈틀거리는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굉장히 자극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최홍서는 다시 한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차마 그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고, 흥분으로 딴딴하게 뭉친 아랫배쯤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하아... 그거 아니야.”

 다정한 목소리 사이에 달콤한 한숨이 섞였다.

 “얼굴이 달라서, 그래서 키스와 섹스에 아직 거부감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곡이었다.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줘도, 갤러리에서 우는 내내 안고 있어 줬어도, 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고 파트너라고 말해줬어도, 결코 키스는 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성형을 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당하거나, 하다못해 나이를 먹으면서 얼굴도 달라질 텐데. 그럼 지금 이 모습이 아니니까, 홍서는 그땐 나 안 사랑할래?”

 고개를 숙인 채로 강하게 도리질 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최홍서에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가 턱 끝을 들어 올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꾸짖는 듯한 표정 속에서도 눈길만큼은 따뜻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럴 거라고 생각해?”

 “아...”

 “강원도에서 벌벌 떠는 너를 껴안고 산에서 내려왔던 그때부터, 나에게 넌 홍서일 뿐이야.”

 “......”

 “홍서로밖에 안 보인다고.”

 “그럼 왜...”

 그럼 왜 키스하지 않았던 거냐고 끝까지 묻지는 못했다. 하지만 티셔츠를 끌어 올려 벗겨내는 그의 손길을 다시 저지하지도 않았다.

 상의를 벗은 모습으로 서로 마주 섰다. 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로 얽혀 들어와, 티셔츠를 벗느라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돈해 주었다. 키가 큰 만큼 손도 손가락도 굉장히 큰데, 그 큰 손으로 어떻게든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움직여주려 하는... 최홍서가 아는 이해성의 손길이었다.

 머리카락을 훑으며 내려와 귓가를 감싼 그가 눈꺼풀과 미간, 콧대와 인중 위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 모습이 달라져 키스를 피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입 맞추는 내내 그의 눈은 최홍서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여서 초점이 잘 맞지 않음에도 두 사람 모두 눈을 감아버리지 않았다. 얼마나 아까운 순간인지를 알았으니까.

 인중에서 입술로, 그의 키스가 이어졌다. 정원의 절벽 끝에서 했던 것보다 더 농밀한 키스였다. 턱을 더 강하게 틀어 입술을 진하게 겹쳤고, 서로 맞비벼지는 입술 사이로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으음, 음...”

 그의 혀를 머금은 그리운 감각에 최홍서의 눈시울이 떨렸다. 최홍서처럼 안겨 줄 수 있냐고 했던 그날도, 키스는 생략되었으니까. 입안을 가득 채운 그의 혀에 자신의 혀를 얽었다. 끈적한 타액이 늘어 붙었다 떨어지고, 젖은 살덩이들이 몸을 비비며 서로의 입 구멍을 드나드는 음란한 소리가 간지럽게 청각에 들러붙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흣. 흐...”

 이해성은 그대로 최홍서를 욕실 안으로 밀어붙였다. 허리를 껴안고 반쯤은 들어 올리다시피 한 탓에 최홍서의 발끝이 타일 위에 끌렸다.

 “음, 으음, 음.”

 점차 농후해지다 거칠게 파고들면서 입안을 들쑤시는 혓바닥의 움직임에 숨이 모자라 헐떡이게 됐을 때쯤, 그는 샤워 부스 안에 최홍서를 내려놓았다. 유리 벽에 등을 기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홍서의 입술이 두 사람의 타액으로 반들하게 젖어 있었다.

 이해성은 최홍서의 양어깨 위쪽으로 유리 벽에 손을 짚었다. 상체를 굽히며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랫입술을 윗니 끝으로 잘근거리다 쪼옥, 입술 사이에 물고 빨아들였다 놓아주었다.

 “홍서, 여한이라는 게 뭔지 알아?”

 그사이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꽉 잠겨 있었다.

 “만약 여한 때문에, 한이 남아서 네가 돌아왔다면.”

 “......”

 “여한이 해소되면,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건지...”

 입술과 입술이 스칠 정도의 거리였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입술이 서로 닿았고, 중간중간 그는 입술로 입술을 꾸욱 누르기도 했다. 이야기와 키스가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었다.

 이야기도 키스도 잠시 중단되었다. 이마와 이마를 맞댄 채 이해성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려다보이는 그의 넓은 가슴팍이 크게 부풀었다 꺼졌다.

 “이 재회에 유효기간이 있을까 봐. 키스도 섹스도, 그래서 피했어.”

 내가 너를 최홍서로 온전히 인정하고,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맺어지게 되면... 그럼 혹시 맺혀있던 네 한이 풀어져서, 그래서, 사라져버릴까 봐.

 이해성은 그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최홍서는 저도 모르게 그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자신의 공포를 인정하는 그의 눈빛은 강해 보이지도,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안타깝고 애틋한, 가장 연약한 마음을 서로 나누는 누군가의 연인일 뿐이었다.

 이해성은 한순간 눈꺼풀을 내리깔면서 씁쓸하게 피식거렸다. 여한이니... 최홍서가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느니... 그런 초자연적 현상에 두려움을 품는 스스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왕자님은 공주를 구해줬는데. 막상 공주는 이야기의 엔딩이 무서워진 거야.”

 “......”

 “멋없지?”

 최홍서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가슴이 조여들 정도였다.

 그의 사랑은 너무 깊고 까마득해서, 자신이 측정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사랑을 배우게 된 대상이 이해성이라서 감사했다.

 그의 뺨을 감싼 손에 힘을 주면서, 최홍서는 다가가 먼저 입을 맞췄다.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든 몸이든, 그에게 내어주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입술을 떼고, 용기를 내서 속삭였다.

 “해요, 우리. 이 섹스 후에 내가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서로를 놓지 말고... 이어져요, 우리.”

 그는 최홍서를 삼켜버릴 것처럼 입술을 겹쳤다. 아랫입술이 젖혀질 정도로 강하게 밀착시켰고, 드러난 점막을 최홍서의 입술과 혀에 문질렀다. 최홍서 역시 오물거리며 열심히 그의 입술을 빨았다. 뺨을 감싸고 있던 손으로 그의 뒷목을 안았고, 곤두선 근육이 물결치듯 서로 이어진 어깨 위를 쓰다듬었다. 서로의 벌린 입술 사이에서 두 개의 혀가 음란하게 꿈틀거리다 다시금 맞물리는 입술 사이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흐음... 음. 응.”

 가랑이 사이로 그의 허벅지가 파고들었다. 좌우로 움직이며 회음부를 뭉근하게 비비는 열기에 허리가 순식간에 나른히 녹아내렸다.

 “흐으으, 흑... 으, 흐읏. 응.”

 그가 허벅지를 흔드는 박자에 맞춰 몸속까지 진동했다. 그의 허벅지 굵기만큼 벌어진 가랑이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이 덜덜 떨렸다. 신음마저 떨고 있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엉덩이 사이에 숨겨진 작은 구멍이 문득 참을 수 없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곳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달콤한 저릿거림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제정신으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들까지 순순히 쏟게 될 만큼.

 “할래요. 아저씨랑 잘래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아저씨랑 여기 틀어박혀서 섹스만 할래.”

 최홍서가 말하는 동안에도 그 윗입술을 빨고 있던 그의 손이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를 쓸어내렸다. 허벅지 위에 거의 올라타다시피 한 최홍서의 엉덩이를 두어 번 꽉 움키고는 밴드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속옷 안의 흰 살집에 손끝을 박아 넣으며, 그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귓바퀴 위를 혀로 적시고, 그 위에 달콤한 칭찬을 끈적하게 부어주었다.

 “착하다, 우리 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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