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126)화 (126/185)

126화

 “그러니까 구해줘요.”

 “......”

 “공주는 눈 감고 기다릴 테니까.”

 귀를 덮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공기가 흐르는 소리 위로 그의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물속에 잠겨 그의 구조 요청을 듣는 것 같았다. 멀게 들리는 대신, 더 진한 울림이 남았다.

 그가 현관을 떠난 후에도, 그의 발소리가 멀어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최홍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냐아... 왜 아직도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냐고 타박하는 듯한 티파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톡, 톡, 도도도도. 캣타워에서 뛰어 내려온 녀석이 현관 앞으로 걸어왔다. 최홍서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일단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날, ‘당근판매자님’의 이름으로 처음 전화가 울렸던 날 이후로, 녀석은 이 정도는 허락해 주게 되었다.

 “어제 외박해서 화났구나? 나 기다린 거야?”

 자동 급식기가 있으니 먹이와 물이 부족했을 리는 없었다. 티파니가 자신의 귀가를 애타게 기다렸을 리도 없다. 알면서도 최홍서는 녀석에게 각별히 사랑받는 집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해보았다.

 긴 털을 등부터 꼬리 끝까지 여러 번 반복해 쓰다듬으면서, 어제부터 일어난 일들을 차근히 더듬어 보았다. 집을 나간 지 고작 하루 만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주 긴 모험 끝에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겨우 고향에 돌아온 탐험가라도 된 것 같았다.

 최홍서처럼 안겨줄 수 있습니까?

 그 끝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엉망으로 상처만 남기게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해성은 제안했을 테고, 최홍서 역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불완전한 채로도 상대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상대를 안음으로 인해 남은 상처라면, 결코 비싼 대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도중에 잠자리를 그만두려 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엉망이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그에게 다가가 그의 맨 등에 글씨를 적어나간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지쳐 쓰러지듯 잠에 빠진 탓에 잠이 든 줄도 몰랐지만, 잠든 동안에 그가 객실에 함께 있어 줄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 후에도 그는 내내 친절했다.

 전에 이 집에 왔을 때, ‘윤혜안’을 일부러 최홍서처럼 대하던, 그때와는 달랐다. 다른 종류의 친절이었다.

 최홍서는 순간적으로 티파니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잠에서 깨어난 후부터, 이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까지. 오늘 그가 단 한 번도 자신을 ‘윤혜안’이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윤혜안’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그것이 공주와 왕자 이야기의 큰 힌트라도 되는 것 같아서, 다시 가슴이 크게 뛰었다. 냐아? 왜 계속 쓰다듬지 않냐는 티파니의 재촉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는 아침까지 같이 있어 줬고, 식사를 준비해 줬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면서 매니저의 전화를 받아 ARA의 이해성이 윤혜안과 함께 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뺨과 귓가를 감쌌던 손길이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최홍서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그가 자신의 앞에서 모습을 감춰버리리라고는.

 하남의 봉안당으로 가는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얼마 전 그렇게 퍼부었던 비가 거짓말인 것처럼 하늘은 깨끗하게 개어있었다.

 “이젠 날씨가 거의 겨울이에요. 내일 새벽에 0도까지 내려간다고 하더니, 지금도 날이 이렇게 맑은데 5도밖에 안 되네요.”

 운전석의 용재가 거치대의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최홍서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던 시선을 용재에게로 돌렸다. 며칠 전 그 비가 그치고 난 뒤부터 용재의 말대로 기온이 부쩍 낮아졌다. 미리 날씨를 체크하고 최홍서도 얇은 패딩을 하나 챙겨 나온 터였다.

 “스케줄 없는 날인데, 같이 가달라고 해서 미안해.”

 “형 스케줄이 없어도 전 어차피 출근해서 일하는 날이에요. 뭐 그런 걸 미안해하세요.”

 용재는 싱거운 소리를 다 한다는 듯 웃으며 ‘광주’ 방면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나갔다.

 “근데 그게 벌써 1년이나 됐다니. 시간 정말 빨라요.”

 “......”

 “우리야 그 일 터진 후에 형 사고... 때문에 완전히 정신이 없어서 최홍서 사건은 묻혀버렸었지만요.”

 용재가 말하는 ‘그 일’이란 최홍서가 태국에서 사망한 사건이었다. 윤혜안은 그 후 몇 개월 뒤, X군 스캔들의 재판이 이루어지던 무렵에 투신했었다. 그러니 윤혜안의 소속사인 ENA는 남의 일인 X군 스캔들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게 세상사였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강한 위력을 가진 사건이 터지건, 각각의 개인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이었다. 특별히 매정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겨울이라 그런가, 나무에 잎도 다 져서 스산하네요.”

 봉안당은 IC에서 멀지 않았다. 장례식장과 나란히 마련된 봉안당 주차장으로 들어서면서 재우는 듬직한 덩치의 상체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최홍서는 겉옷을 입고, 옆좌석에 두었던 작은 국화 꽃다발을 챙겨 들었다. 지난번 이곳을 찾았을 때는 자신의 유골에 스스로 헌화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어 빈손으로 왔었지만, 이번에는 꽃을 준비했다.

 “20분이죠, 형? 20분이 지나도 형이 연락 없거나 나오지 않으시면 들어가 보면 되죠?”

 “어, 부탁할게.”

 “정말 같이 안 들어가도 되겠어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용재에게 웃어 보이고 차에서 내려섰다. 서울에서보다 괜히 공기가 더 맵게 느껴졌다. 먼 거리도 아닌데.

 하아...

 봉안당 건물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자 입김이 피어올랐다.

 최홍서의, 본인의 기일이 바로 며칠 뒤였다. 최홍서라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이 이렇게 누군가의 육체 속에 그대로 살아있는데도, 며칠 뒤는 최홍서의 기일이라니. 여전히 그 사실은 최홍서의 내면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기일 당일에는 팬들이 행사를 연다고 알고 있어, 일부러 며칠 전인 오늘 이곳을 찾았다.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다. 육체의 죽음을 다시 한번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여기서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고, 한 발자국 앞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도, 막막함 속에서 그런 막연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한 번 방문했던 곳인데도, 계절이 바뀐 탓인지 내부의 분위기는 기억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윤혜안의 몸으로 눈을 떴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무렵이라, 당시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VIP 안치실의 위치조차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중앙홀의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천천히 이동했다.

 한 가지 더. 이곳에 와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윤혜안의 몸으로 깨어나 처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곳이 이곳이었다. 그다음은 서초동 이해성의 자택이었고, 강우현 감독의 2층 응접실에서는 증상이 있었지만 정신을 잃는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었다.

 증상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이후, 강우현 감독의 자택에서 몇 번 더 대본 스터디를 가졌어도 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았었다. 2층 응접실에서 이해성과 이야기했을 때가 유일했다.

 최홍서와 강하게 관련이 있는 장소에서, 과거 최홍서의 기억이나 감정을 강하게 떠올리면 일어나는 증상이 아닐까. 현재로서는 그렇게 추측해 볼 뿐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습할 새도 없이 증상이 발생할까 싶어서, 오늘은 용재에게 함께 가주기를 부탁했다. 2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거나 돌아오지 않으면, 봉안당 안으로 찾아와 달라고 미리 말해둔 것이다.

 “......”

 VIP 안치실로 들어서자마자 컨디션이 저조해졌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보다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러나 아직은 심한 뱃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리는 정도였다. 참을 만했다.

 VIP실의 홀 중앙에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헌화대가 추가되어 있었다. 최홍서 사망 1주기를 맞아, 방문객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준비된 헌화대였다. 미리 다녀간 팬들의 꽃과 선물, 메시지가 놓여 있었고, 헌화대 자체도 무척 정성껏 장식되어 있었다. 누가 이렇게 최홍서의 봉안당에 정성을 쏟고 있는지,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순간적으로 눈앞에 물막이 어리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이 자리에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몸 상태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최홍서는 서둘러 헌화대의 흔적 하나하나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가스가 누출되고 있는 밀실에 홀로 갇힌 것처럼 공포가 밀려왔다.

 처음 방문했던 당시에는 뭣도 몰랐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도 몰랐고, 증상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증상 끝에 정신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고, 이 증상이 초능력이나 심령 현상처럼 의학, 과학으로는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이라는 것도 알았다.

 무서웠다.

 증상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이러한 기현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아니, 지금의 자기 존재 자체가 기현상이었다.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괴물이고, 세상에게 자기 존재는 거짓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존재를 믿어주겠는가?

 땀보다 눈물이 더 솟구쳤다. 증상이 심각해지기 전에 VIP실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천천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반응조차도 무서웠다. 흐르는 눈물이 슬픔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귀신이야, 아니면 송장이야?”

 한순간, 강원도 굿당에서의 무속인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머리를 후려쳤다.

 “산 사람 흉내를 내며 걷고 말하고 음식을 씹어도 송장이고,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워도 결국은 귀신인데. 귀신이 어찌 몸을 얻었고, 송장이 어찌 혼을 얻었어?”

 당시에는 그녀의 기운에 겁을 먹고 바짝 얼어 벌벌 떨기만 했지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귀신은 몸 없이 혼으로만 존재하고, 송장은 반대로 혼이 빠져나간 빈 몸이다.

 무속인이 정말 이 상황을 알고서 한 말이라면, 귀신은 최홍서였고, 송장은 윤혜안이었다. 몸을 얻은 귀신. 지금의 자신은 그렇게 기형적인 존재였다. 언제 다시 혼만 남게 되어, 손도 없고 목소리도 없이 우주를 떠도는 무형의 신세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다음번에는 언제 또 정신을 잃게 될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때도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가차없는 칼바람이 눈물에 젖은 뺨을 아프게 할퀴고 지나갔다. 최홍서는 손등으로 아무렇게나 눈물을 닦아냈다.

 생생한 공포와 맞닥뜨리고 나니, 그 뒤에 있던 현실이 보였다. 눈물이 흐르던 눈동자에 이번에는 결의의 빛이 번쩍였다.

 그에게 말하겠다.

 믿어주지 않더라도, 미친놈 취급하더라도, 제발 내 얘기만이라도 끝까지 들어달라고 그의 다리에 매달려 애걸복걸이라도 할 것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