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123)화 (123/185)
  • 123화

     방콕의 스카이라인은 자카르타에서 보던 그것보다 좀 더 화려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밝혀놓은 전구 불빛 같기도 했다.

     크리스마스트리란 최홍서에게 평범한 집, 돈 걱정이 없는 집, 화목한 가정의 상징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은 식탁에 둘러앉은 점잖은 가족들이 서로 따뜻한 말을 주고받고, 아이들은 부모의 존재를 통해 안전함을 느끼며 그들의 다정한 시선 속에서 선물을 풀어본다. 그리고 가족의 등 뒤에서는 트리가 반짝거린다.

     30층 호텔 객실에서 바라보는 방콕의 야경은 자카르타에서 보던 것처럼 물질적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포근하고, 겪어본 적도 없는 가상의 경험을 연상하게 했다.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최홍서 자신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객실 전면창 앞에서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 방콕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던 최홍서는 미련 없이 창 앞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객실에 비치된 전화로 국제 전화를 시도했다.

     『지금 터진 ‘X군 스캔들’이요. 익명으로 제보하고 싶은데요. 지금 조사받고 있는 고지운 배우나 스위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상관이 없어요. 엉뚱한 사람들이에요. UB 엔터테인먼트의 명도훈 사장. 명도훈이 진짜 포주예요. 그리고 명도훈 뒤에는 한서 그룹 이서경이 있구요. 어차피 익명의 제보자가 떠들었다고 해서 한서 그룹 이서경을 조사하는 일 같은 건 없겠죠. 그래도 최소한... 명도훈 뒤는 캐보세요.

     명도훈이 오늘 밤에 출국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UB 엔터테인먼트 아이돌 그룹인 ‘레이어드’를 보러 방콕에 간다고 하지만, 아마 도주하려는 걸 겁니다. 이번에 놓치면 끝이에요.』

     중간중간 최홍서의 목소리는 격양되기도 하고 약간씩 떨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덤덤하게 무사히 하려던 말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에는 어떠한 떨림도 없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객실을 한 번 돌아본 최홍서는 침대 위에 올려둔 카메라를 조심스레 손에 들었다.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최근에서부터 과거로, 하나하나 사진을 지워나갔다. 출장 기간이 꽤 오래됐는데, 찍어둔 사진은 채 50장이 되지 않았다. 한꺼번에 삭제하지 않은 탓에 시간이 꽤 소요되었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

     과거를 향해 한 장 한 장 사진이 소거되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것은 이해성이 찍어준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찍은 이해성의 모습이었다.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최홍서의 어깨가 한순간 무너져내렸다. 흐느낌으로 격렬하게 어깨가 떨렸다. 코끝과 미간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대로 카메라를 껴안고 서서 감정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울음 끝을 추스르고, 나머지 사진들을 지워 나갔다. 자신의 기억과 인생과 존재를 지우는 듯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는 더 오랫동안 망설여야만 했다.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손끝으로 그 얼굴을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 해도, 최초이자 유일하게 사랑을 주었던 대상, 인생의 유일했던 춘광사설을 잊을 리는 없었다. 확신했다. 사진을 지운다고 해서 그를 잊을 리는 없다. 괜찮다.

     마지막으로 화장대 앞에 서서 향수를 뿌렸다.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스프레이를 누르기가 어려웠다. 치이익, 한 번에 깨끗하게 누르지 못해 액체 몇 방울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향기가 후각을 감싸자, 한결 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뒤, 침실을 나섰다.

     스위트룸의 거실에는 매니저들과 멤버 중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최홍서는 그들이 둘러앉은 소파의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 답답하다. 우리 외출하자.”

     “무슨 외출. 호텔 앞에도 팬들 쫙 깔렸는데. 그냥 여기 있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나 혼자 나간다는 것도 아니고, 같이 나가자는데... 그것도 안 돼?”

     “......”

     그제야 매니저는 게임을 하고 있던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최홍서를 보았다. 뒤쪽 식탁에서 포커를 하고 있던 직급이 높은 매니저가 카드를 그러모으며 말했다.

     “그래, 웬일로 홍서가 나갈 마음이 생겼는데. 데리고 나갔다 와.”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최홍서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나섰다.

     “루프톱 바 가자.”

     “루프톱?”

     무료한 표정으로 OTT 채널을 연결한 TV에 시선을 주고 있던 멤버 하나가 화색을 띠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형! 방콕이 루프톱 바가 유명하대. 한두 개가 아니던데?”

     “요즘은 여기가 핫플이래. 여기 가자.”

     무료해하던 멤버들은 어느 바에 갈 것인지를 두고 활발히 의논했다. 루프톱 바이기만 하다면 최홍서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멤버들의 외출 준비가 여느 때보다 오래 걸렸다. 그동안 최홍서는 멍하니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재촉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매니저 몇 명과 ‘레이어드’ 멤버 몇 명이 함께 방문한 루프톱 바에는 스타일리시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둥둥, 트렌디한 음악이 커다란 볼륨으로 흐르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오랜만에 또래들이 많은 곳으로 외출해 들뜬 멤버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매니저들에게 부탁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최홍서에게도 몇 번 같이 찍기를 권해주었지만, 사진은 더 이상 찍고 싶지 않았다.

     구름도 별로 없는 하늘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32층 루프톱의 난간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불빛은 우주의 별빛 같았다. 최홍서는 눈을 감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 하... 씨발, 이게 무슨...”

     한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심각한 얼굴로 씨름하던 매니저 한 명이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왜... 뭔데.”

     매니저의 언행에 불안해진 멤버들이 마시고 있던 칵테일 잔을 더듬더듬 내려놓았다.

     “사장님이 체포되셨다는데... 이거, 뭐, 뭐 어떻게 해야 되는... 너네 여기 가만히 있어. 나 이것저것 좀 알아볼 테니까.”

     그는 꽤나 당황했는지, 다른 매니저에게 멤버들을 맡겨두고 어딘가로 황급히 전화를 걸면서 자리를 떴다.

     됐다. 명도훈이 체포되었다. 자기의 제보 전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유는 상관없다. 어쨌든 체포되었다.

     최홍서는 옆자리의 멤버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태주야, 나 잠깐 핸드폰 좀.”

     “왜? 기사 보게? 보지 마.”

     “아니, 누구한테 전화 좀 하게.”

     의심스러운 눈길로 최홍서를 보던 멤버는 자리에 같이 남은 다른 매니저의 눈치를 슥 살폈다. 그 역시 명도훈의 체포에 대해 알아보느라 정신이 온통 핸드폰에 팔려 있었다.

     “어디 가?”

     그러다가도 최홍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매니저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화장실.”

     “같이 가줘?”

     “됐어. 여기 우리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거 같은데, 뭐.”

     멤버가 빌려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테이블을 떠났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 자리로 가서 멤버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러 핸드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명도훈이 공항에서 긴급 체포되었고, X군에게 데뷔 전부터 이후까지 성매매와 접대를 강요했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이미 한국에서는 30분 전쯤부터 보도되기 시작한 뉴스였다.

     기사를 체크한 최홍서는 전화 앱을 열었다.

     천천히, 영원히 잊지 못할 열한 자리의 숫자를 눌러 나갔다. 아니, 아홉 자리까지밖에는 누르지 못했다. 차마 끝까지 누를 수가 없었다. 그 아홉 자리의 미완성된 숫자를 그대로 바라만 보았다. 바라보기만, 지금은 보기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고 테이블로 다시 돌아갔다.

     “또 어디 가?”

     핸드폰을 돌려주자마자 다시 자리를 뜨려 하는 최홍서를 멤버가 붙잡았다.

     “전화만 하고 화장실 못 갔어. 갔다 올게.”

     웃어 보이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진 바에 가서 이해성이 자주 마시는 독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한 잔 주문했다. 테이블이 들어선 플로어보다 더 높은 곳에 만들어진 바에서는 도시 전체가 360도로 내려다보였다.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세상이 다 자기 발아래 있는 것 같이 해방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계속 희망을 향해 버티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처음부터 희망은 없었다. 버텨내기 위해 내가 나를 속여왔을 뿐.

     이해성과의 만남이 악착같이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상, 앞으로는 나아질 거라는 신호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신이 베푼 친절, 다디단 백일몽이었다. 아무리 악랄했던 사형수라도, 마지막에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해주거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그에게 돌려주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가 나에게 했던 것이 사랑이고, 나는 받기만 했다.

     위스키를 바닥까지 비운 최홍서는 잔을 내려놓았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난간 너머 펼쳐진 지구 위의 우주와 머리 위 하늘을 바라보았다.

     되도록 이해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를 위해 희생한다는, 감히 그따위 위안을 갖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 선택은 그저 지치고 지치고 더 지쳐서, 거의 존재하지 않을 만큼 작아져 버린 나에게서 너덜너덜한 나의 과거를 끝내버리기 위해서였다.

     끊임없이 온갖 생각을 짜내던 씨실과 날실이 움직임을 멈췄다. 미치광이처럼 날뛰던 동맥이 잠잠했다.

     아니면, X군과 부사장님을 세트로 묶어서 제공할 수도 있고. 사랑하면 늘 함께여야지.

     홍서가 이번에도 버틸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이것이 이서경의 마지막 아량에 대해 최홍서가 준비한 대답이었다.

     하나, 둘... 셋... 습관대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던 최홍서는 문득 그것이 불필요한 순간임을 느꼈다.

     이것이 부디 사랑이기를. 가장 하찮고 가장 어리석은 방식이라 해도,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것도 하나의 사랑이기를. 사랑이 될 수 있기를.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루머의 A 사장으로부터 데뷔 전부터 이후까지 성매매와 접대를 강요받아 왔다는 호스트바 남성 접대부 출신의 X군.

     UB 엔터테인먼트의 명도훈 사장이 사건의 유력 피의자로 체포되면서, 스캔들의 핵심인 X군 역시 고지운 배우가 아닌 아이돌 그룹 ‘레이어드’의 리더인 최홍서 군이라는 주장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음...

     명 씨가 체포되고 인터넷상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네... 안타깝습니다... 최홍서 군이 공연차 방문해 있었던 방콕에서... 투신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 소문의 진실 여부를 떠나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인데요...

     같은 그룹의 멤버 두 명, 그리고 두 명의 매니저와 함께 기분 전환 삼아 방콕 시내의 한 루프톱 바를 찾았던 최홍서 군은 방문한 바에서 명도훈 사장의 체포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약 30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32층 높이에서 투신했기 때문에 최 군은 사건 현장에서 즉시 숨을 거두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지 구급대원들에 의해 방콕 범룽랏 국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자, 이쪽이... 최홍서 군이 32층 루프톱 바에서 투신한 방콕의 호텔 사진입니다. 방콕에서 성행 중인 이런 루프톱 바들은 보시다시피 벽이나 천장이 전혀 없는 개방형 구조로, 난간도 이렇게... 성인의 가슴 아래까지 오는 정도의 유리 난간이 전부입니다...... 이런 루프톱 바들의 안전 문제가 여러 번 제기되었음에도, 관광객 유치와 확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일각에서는 연예계의 ‘11월의 저주’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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