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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19)화 (119/185)

119화

 카메라의 부가적 기능 몇 가지를 더 가르쳐준 이해성은 시범 삼아 직접 카메라를 손에 들고 최홍서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데뷔한 지 몇 년이 됐는데도 그의 렌즈 앞에서는 신인처럼 긴장이 돼서, 최홍서의 포즈도 표정도 뻣뻣하기만 했다.

 “이것 봐.”

 자리에서 일어나 최홍서를 몇 컷 찍었던 그가 나란히 다시 털썩 주저앉으며 카메라 액정을 보여주었다. 액정 속의 최홍서는 경직된 표정으로 렌즈를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다가 앞좌석 시트를 붙잡은 팔 위에 얼굴을 묻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눈을 빼꼼히 들어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잡지 화보에 실린 홍서하고는 전혀 다르지?”

 그는 화면 속 최홍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태도는 수줍어하면서도, 눈빛은 다가오고 싶어 해. 마냥 말랑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둘 만큼 강렬하기도 하고. 한순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던져오는 도발적인 면이 있거든. 지금까지 이런 최홍서를 찍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야.”

 “......”

 “내 앞에서만 드러나는 모습이니까.”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라도 된 듯 그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같은 풍경도 누구의 눈을 거치느냐에 따라 사진 속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거든. 그게 내가 사진에 빠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홍서가 보는 세상, 나도 공유하고 싶으니까... 여기에 많이 담아 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감미롭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코끝이 먼저 맞닿은 순간, 최홍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보다 서로의 호흡이 먼저 얽혔다.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입술을 포개기 위해 고개를 꺾으면서, 최홍서는 생각했다.

 ‘혜성’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 달라고 하면 그는 얼마든지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찾아가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최홍서는 그 말을 아껴 두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괜히 그랬던가 싶었다. 보여 달라고 할 것을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전시회가 언제 다시 열릴지,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왠지 후회가 되었다.

 아쉬운 만큼, 그의 품으로, 입술로 파고들어 매달렸다. 벌어진 그의 재킷 자락 안으로 손을 넣어, 근육질의 가슴과 군살 없이 탄탄한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셔츠를 사이에 두고 고스란히 느껴지는 체온의 따스함과 육체의 굴곡을 촉각에 새겨두려는 것처럼.

 이번 키스는 크림을 할끔거리는 혀처럼 부드러웠다.

 소년들의 첫 키스처럼 안타깝고 조심스러웠다. 서로의 혀를 입 안에 머금는 행위마저도 따스하게 감싸는 듯했다.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았다. 혀끝을 세워 최홍서의 윗입술 안쪽을 슬쩍 훑어낸 이해성이 키스를 마무리하며 입술을 꾸욱 누르고 물러나려 했다. 멀어지며 미소 짓는 그를 바라보던 최홍서의 입술이 다급하게 뒤따라가 다시금 그의 입술을 덮쳤다.

 잠시 흠칫 놀랐던 이해성은 최홍서의 허리를 바짝 당겨 안고, 열정적으로 키스해왔다. 입술을 벌려 그 사이의 틈으로 상대의 입술을 물었다. 주둥이를 이용해 서로 집어삼키려 하는 짐승들처럼, 입술을 물었다 놓치기를 반복했다. 밀어붙이는 힘에 떠밀려 최홍서가 그의 목을 껴안았고, 이해성은 최홍서의 등 뒤로 차창에 한 손을 짚어 두 사람 몫의 무게를 지탱했다.

 입술이 뭉개지도록 문질렀고, 혀가 얼얼해지도록 강하게 머금었다. 서로의 입 안에서 혀를 뺀 후에도, 한참을 떨어지지 못하고 껴안은 채 잔 입맞춤을 이어 갔다.

 최홍서의 등 뒤에서 손목시계를 확인한 이해성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하... 이제 진짜 가야겠다.”

 상대의 몸에 두른 팔을 겨우 떼어내고 마주 보았을 때, 그의 얼굴을 본 최홍서는 슬쩍 웃어버렸다.

 “잠시만요.”

 그리고 앞좌석 주머니를 뒤져 티슈를 꺼내 그의 입술 주변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틴트가 다 번져서...”

 얌전히 최홍서에게 입술을 맡긴 채 그는 나른하게 내리뜬 눈꺼풀 아래에서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립스틱 바른 홍서 씨와 키스하는 건, 일탈의 쾌감이 있어요.”

 장난스러운 존댓말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티슈를 한 장 뽑아, 이번엔 최홍서의 입가에 번진 자국을 지워주었다.

 “키스하는 움직임 대로 자국이 남는다는 게 아주 섹시하거든요.”

 키스의 흔적이 지워진 자리에 향기를 되살리듯, 한 번 더 입술을 진하게 누른 그는, 마지막으로 최홍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일어났다.

 최홍서는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차창을 통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동차 두세 대를 지나칠 정도의 거리까지 걸어가던 그가 문득 우뚝 멈춰 섰다. 잠시 그대로 서서 뭔가를 잊은 사람처럼 몸 위를 이곳저곳 더듬더니, 이내 휙 돌아서서 잰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되돌아왔다.

 똑똑.

 그는 최홍서가 앉아있는 가장 뒷좌석의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열자, 가볍게 말아 쥔 주먹이 불쑥 실내로 넘어왔다.

 “이거 주는 걸 깜빡했거든.”

 최홍서는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무언가 자그마한 것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손바닥 위에 내려온 건 이해성의 검지손가락이었다.

 얼마 전, 아팠던 날. 돌아누운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귀찮게 했던 그 장난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해성이 최홍서의 손바닥 위에 검지로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최홍서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옷, 그리고 모음 아.

 거기까지만 보고도 뒤에 이어질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 전율이 일었다.

 사랑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바닥이, 손바닥부터 시작해 전신이 뜨거웠다. 슬픔에 가까울 정도의 진한 황홀감이 핏속을 내달리고, 눈가가 더워졌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그의 고백 뒤에 울고 싶지 않았다. 최홍서는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였고, 이해성은 그런 최홍서를 따라 미소 지으면서 붙잡은 손바닥 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그리고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뒷걸음질 쳤다.

 서너 걸음 천천히 물러나던 그는 그제야 멋쩍은 듯 씩 웃으며 팬츠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몸을 돌렸다.

 그가 사랑한다는 말을 새겨 넣어준 손을 소중하게 꽉 말아 쥐었다. 새어 나가지 않도록, 누구도 훔쳐보지 못하도록. 말로 해주는 것보다, 몸에 새겨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좋았다.

 저도 사랑해요.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아저씨를, 이해성이란 사람을 사랑해요. 사랑이 뭔지는 잘 몰라도 이 마음이 사랑이라는 건 이제 알아요. 나 같은 바보도 알 수 있게 사랑해 줘서, 나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어요.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희미한 별빛 한 줄기 새어 들지 않았던 나의 암흑세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영원할 것만 같던 어둠을 불꽃놀이처럼 밝혀주었던, 해성. 나의 춘광사설(春光乍洩)10).

 조금 전 최홍서가 빠져나왔던 관계자 전용 복도 앞에서 이해성은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것이 최홍서가 직접 바라본 이해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룹 ‘SATANG’ 멤버 고지운, 자택서 극단적 선택 시도

 오늘 오후 5시, 배우 고지운이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 계약 종료와 연장 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자택을 방문한 매니저 A 씨가 침실에 쓰러져 있는 고 씨를 발견해 서둘러 병원으로 이송했다.

 평소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던 고 씨는 한꺼번에 서른 알 이상의 수면제를 복용하는 방법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현재는 맥박과 호흡을 회복해 생명에 지장은 없으나, 서울 강남 차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해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고 씨는 아이돌 그룹 ‘SATANG’으로 데뷔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다 최근 배우로 전향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팬들과 업계는 더욱 충격에 휩싸였다.

 발견 당시, 고 씨의 침대 옆 협탁에 유서 같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가족과 소속사에서는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연예인의 자살 시도 소식에 업계는 긴장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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