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118)화 (118/185)

118화

 “왜 그래요?”

 “뭐가?”

 “말은 안 하고... 계속 웃기만 하시잖아요.”

 그래도 이유를 얘기해 줄 생각이 없는지, 어깨너머로 최홍서를 돌아본 그는 딴청을 피웠다.

 “오랜만이네요. 아이돌 홍서 씨.”

 내리뜬 눈꺼풀 아래서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따뜻함과 뜨거움, 마음의 온기와 육체의 열정이 공존했다. 일부러 작정하고 존댓말을 쓰는 그의 진지함에 피식 웃으면서도, 최홍서 역시 덩달아 입이 말랐다.

 무대용으로 화려하게 메이크업한 얼굴을 괜히 만지작거리면서, 최홍서는 그의 어깨쯤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화장도 못 지워서...”

 “앞으로 이런 행사 있으면 또 얘기해 줘요. 음악 방송 현장 같은 곳은... 아무래도 내가 방문하기엔 좀 그러니까.”

 “왜요.”

 “젊은 사람들 즐기는 곳에 등장해서 주인공 자리 뺏고, 신경 쓰이게 하고... 눈치 없는 재벌 아저씨 같잖아요, 그런 거.”

 떨떠름한 말투에 최홍서는 웃어버렸다.

 본인이 나타나면 곧바로 주인공이 돼버린다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런 관심을 탐탁지 않아 하는 그의 성미를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뮤비 촬영장에는 오셨잖아요.”

 “그래서 스튜디오 밖에만 머물렀잖아요. 촬영하는 것도 못 보고. 차에서 잠깐 밀회... 했던 게 다지.”

 그는 밀회라는 단어에서 잠시 말을 끌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시의 밀회를 회상하는 게 분명했다.

 그의 세단 뒷좌석에서 아주 긴 키스를 나누었었다. 키스 후, 최홍서의 입술 화장이 번지고 지워져 엉망이 됐을 만큼 길고 격정적인 키스였다. 옆자리에 나란히 붙어 앉아 시작했던 키스는 점점 격렬해졌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최홍서는 자신의 허벅지를 그의 허벅지 위에 문질렀고, 이해성은 자신의 무릎 위로 그 허벅지를 당겼다. 마주 본 채 서로를 끌어안고 허겁지겁 입맞춤을 탐했다.

 맞닿은 하반신을 야릇하게 비벼대면서, 꿈틀거리는 혀를 얽어 문지르고 뒤집힌 입술을 겹쳐 점막을 맞대고 빨았다. 그 순간의 입술과 혀는 성감만을 느끼는 성기 같았다. 섹스의 축소판 같은 키스, 섹스보다 더한 키스였다.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허리가 노곤해졌다. 그의 슈트 소매를 붙잡고 멍하니 기억 속에 빠져있던 최홍서는 입술을 톡 건드리는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빨개졌지?”

 “아니요, 그냥, 좀, 더워서요.”

 손부채질하는 최홍서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는 속아준다는 느낌으로 씩 웃었다.

 “왜 자꾸 웃냐고 물었지?”

 그제야 진짜 이유를 말해줄 마음이 들었는지, 최홍서 쪽으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남자 친구가 되고 나서 홍서 무대 직접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잖아. 사실은 내가...”

 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깊이 기울였다. 따뜻한 입술이 귓가에 닿았고, 그의 입술이 미소와 함께 더 진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볼륨을 낮춘 목소리가 최홍서에게만 속삭였다.

 “무대 보는 동안 앞이 서 버렸거든.”

 “......”

 이유를 들었는데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피할 수도 없었다. 얼굴이 더 빨개졌을 뿐이었다.

 “처음엔 춤도 좀 야한 것 같고... 사람들이 홍서를 너무 좋아하니까 기분이 별로였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들이 아무리 홍서를 사랑하고 원한다 한들, 어차피 남친은 나잖아?”

 무대 위의 최홍서를 보면서 발기해버렸다는 어쩌면 변태적일 수 있는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그는 조금도 낯 뜨거워하지 않았다. 태연하고 예사로웠으며, 약간은 자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해성의 오른손이 최홍서의 왼손을 끌어 깍지를 꼈다. 맞잡은 손을 당겨 최홍서의 손등에 입술을 묻고, 그 상태로 더 이야기했다.

 “저렇게 멋지고, 재능 있고, 반짝거리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슈퍼스타가 내 남친이라고 생각하니까... 못 참겠더라고.”

 “남친이요?”

 “왜? 우리 남친 맞잖아.”

 “그냥... 아저씨가 그런 줄임말을 쓰니까 신기해서요.”

 최홍서의 손등에 여전히 입술을 묻고 있던 그가, 손등을 덮은 얇은 피부를 살짝 깨물었다.

 “해성 씨 아니고, 자기 아니고. 다시 아저씨인가?” 

 아쉬워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최홍서는 오른손을 그의 허리 뒤로 감아 끌어안았다. 어색함을 물리치기 위해 어깨에 이마를 묻고 소리 내어 말했다.

 “해성 씨.”

 그가 원한다면 해주고 싶었다. 얼마든지. 이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해성이 형도 듣고 싶은데.”

 “해성이 형.”

 “해성아, 해봐.”

 “그건 좀...”

 “나중에 우리 싸우게 되면, 홍서가 화나서 ‘야, 이해성’ 하는 것도 들어보고 싶다.”

 싸우게 된다는 가정을 얘기하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왜 싸워요?”

 “음... 아마 내가 너무 집착해서 홍서가 화났겠지.”

 최홍서는 피식 웃었다.

 “지금 어디냐.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마지막 메시지 받고 나서 두 시간이나 지났다... 그렇게 귀찮게 하니까 홍서가 참다 참다 폭발한 거지.”

 구체적인 그의 상상력은 최홍서를 계속 웃게 만들었다.

 이해성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최홍서의 팔이 슈트 재킷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셔츠 위로 그의 허리를 안았다. 두 번이나 잠자리를 가지면서 훨씬 더 원초적인 모습을 서로 드러냈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먼저 하지 못했던 그런 과감한 스킨십도 가능했다.

 “그런 걸로 화 안 나요. 그리고, 아저씨 그런 말도 안 하면서.”

 재킷 안에서 꼬물거리는 최홍서의 어깨를 마주 끌어안으면서, 그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안듯이 꼭 끌어안아 주었다.

예쁘고 소중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잠시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안고만 있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최홍서는 눈을 감았다. 이해성의 어깨와 가슴, 자기를 둘러 안은 튼튼한 팔,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어떠한 근심 걱정도 쳐들어올 수 없는 은신처와도 같은 ‘이해성의 품’이라는 기적을 기억과 본능 속에 새기고 또 새겨 넣었다.

 편안한 침묵 속에서 이해성이 최홍서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묻고 가만히 속삭였다.

 “하고 싶은데 참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

 최홍서가 턱을 들어 올려다보았을 때, 그는 농담이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말하는 목소리에는 아무런 장난기가 없었는데. 그리고 최홍서의 몸을 더 강하게 껴안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아... 홍서 해외에 보내는 거, 조금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이번에 유난히 헤어지는 게 힘드네.”

 고개를 푹 숙여 최홍서의 어깨 위에 턱 끝을 꾹꾹 누르면서 그는 푸념했다. 이번에 유난히 헤어지는 게 힘들다는 그의 말이 최홍서의 가슴에 어두운 잉크처럼 번져나갔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셔츠를 더 꽉 붙잡았다.

 “아... 그냥 공항까지 배웅할까.”

 “그... 사촌 동생분, 그분하고 만나기로 하셨다면서요.”

 “좀 전에 잠깐 안에서 인사하긴 했는데. 음, 들어가서 다시 보기로 하긴 했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럼 가보셔야죠.”

 “응, 그래야지.”

 내키지 않는 한숨과 함께 스스로를 타이르듯 그렇게 얘기한 그는 최홍서의 어깨를 몇 번 쓰다듬고는 품에서 놔주었다. 그리고 좌석 저쪽에서 웬 꾸러미를 하나 끌어왔다.

 “내가 홍서 못 따라가는 대신, 이거.”

 얼핏 보아도 카메라가 든 전용 가방이었다.

 “이번에 좀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홍서가 뭘 보는지 이걸로 찍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수동 카메라에 비해 훨씬 다루기 쉬운 DSLR 카메라라면서, 그는 몇 가지 작동법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이걸로 찍는 건 메신저로 공유하지 말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직접 보여 주는 걸로 하자. 응?”

 그가 가르쳐준 대로 카메라를 켜고 렌즈의 줌을 당겨 보면서, 최홍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나중에 같이 공동 전시회를 해도 좋고.”

 “제가 찍는 사진은 어차피 엉망일 텐데요. 아저씨 말고 다른 사람한텐 못 보여 줘요.”

 “내 사진도 대단하지 않아. 자기만족으로 찍는 거지.”

 최홍서가 만지고 있던 카메라의 렌즈가 문득 이해성을 향했고, 그는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대로 편안하게 최홍서를 바라보았다.

 “다음 전시회에 꼭 와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의 얼굴이 ‘아웃포커싱’으로 찍힌 액정을 들여다보면서 최홍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열리는지 나 진짜 얘기 안 해준다?”

 재차 다짐을 받는 이해성을 직접 바라보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LA와 롱비치 사이. 어느 한적한 마을의 자그마한 갤러리에 이해성이 가명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주로 롱비치에 지어놓은 여름 별장을 꾸미고 싶어 하는 부유층을 상대로 유명작의 모작이나 신인 아티스트의 작품을 판매하는 변두리 화랑이었다.

 ‘갤러리라기보다는 상점에 가까울걸? 돈을 내고 공간을 대여하기만 하면, 동네 영감님이든 일곱 살짜리 꼬맹이든 누구나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곳이지. 한두 번 더 거기서 전시회를 하고 나면, 다른 도시로 갤러리를 옮길 계획이야. 그때 이름도 다시 바꿀 거고.’

 처음에 그는 가명으로 비밀리에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만 얘기했었다. 그 가명이 무엇인지, 최홍서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자기 전에 거의 매일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수많은 화제를 전전하던 어느 날, 그는 전시회를 여는 자신의 작가명을 가르쳐 주었었다.

 람파스(lampas).

 꼬리별, 즉 ‘혜성’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설명하던 그는, 의미가 너무 거창하다고 느꼈는지 드물게 약간 쑥스러워했다.

 그리고 최홍서는 그때 약속했었다. 갤러리도 알았고, 작가명도 알았으니까... 그러니 다음 전시회는 이해성이 말해주지 않아도 찾아가겠다고. 둘만의 비밀이니까. 서로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 하지 않아도 그곳에 가 있겠다고. 비밀처럼. 기적처럼.

 그 후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최홍서는 그 갤러리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상상해 봤었다.

 그의 전시회 일정이 공지되고, 그것에 맞춰 몰래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다. 비행기를 타는 당일에도 그와는 평소처럼 일상적인 얘기들을 주고받는 거다. 날씨 얘기, 그의 사무 일정 얘기, ARA에서 발표한 신제품의 반응 얘기, 최홍서가 작업 중인 곡의 가사 얘기...

 그리고 그날 오후 LA행 비행기에 올라 열한 시간의 비행 끝에 다음 날 오전 LAX 공항에 도착하겠지. 공항에서 갤러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면 충분했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라고는 전혀 없는 한적한 거리, 흙을 바른 아담한 2층 벽돌 건물이 ‘혜성’의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였다. 콧잔등에 안경을 걸친 멋쟁이 할머니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1층을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사진이 전시되고 있는 2층으로 향한다. 세로로 긴 홀의 저쪽 끝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충분한 양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혜성’의 사진들을 비춘다.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가능하다면 갤러리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그곳에 머물 것이다. ARA의 이해성이 아닌, 인간 이해성의 눈에 비친 세상이 하나하나 눈과 마음에 스미도록.

 우연히도 작가의 방문 일정과 일치해서 람파스, ‘혜성’을 직접 만나고 온다면 그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와서, ‘해성’에게, 자신의 연인에게, LA까지 전시회를 보러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느낀 서툰 감정을 솔직히 전하고, 갤러리 1층에서 구입한 코스터나 책갈피, 에코백 따위를 그에게 보여주며 자랑할 것이다. 작가 ‘혜성’의 팬이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이미 이해성은 최홍서에게 그 누구도 준 적 없는 종류의 행복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놀랍게도 그런 일이 가능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