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아저씨, 흐, 나... 나흐으, 나...”
“알아.”
뺨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목뒤를 넓게 감쌌다. 그의 이마가 최홍서의 이마에 닿았다.
다 안다고. 그러니 고통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닿은 이마에서부터 열기가 피어올랐다. 입술과 코에 닿아오는 서로의 호흡이 뜨거웠다. 바로 눈앞에서 그의 넓은 가슴과 어깨가 오르락내리락 빠르게 움직였다.
“분명 선택지가 5번까지 있는 문제야...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답으로 결론 내기엔 석연치가 않아서... 머리는 터질 것 같은데... 그럼 이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
“......”
“답은 6번이 아닐까.”
함께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그 스스로의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으레 그런 것처럼, 초점을 잃고 흐릿해졌던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최홍서를 응시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를,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뺨을, ‘최홍서’보다 붉지 않은 입술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라본 입술에서 그의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뒷목을 감싸고 있던 손이 뺨과 귀를 뒤덮고, 뜨거운 엄지가 아랫입술을 살짝 건드렸다.
조금 전, 그의 손이 애널 안으로 들어왔을 때보다 더 몸을 떨리게 하는 접촉이었다.
그가 턱을 들어 얼굴을 기울였다.
키스를 할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던 입술은 코끝이 스치는 거리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가 내쉬는 숨결이 최홍서의 코와 입술로 흘러들어왔다. 최홍서는 크게 심호흡하며 그것을 들이마셨다. 알싸하게 희미한 담배의 잔향과 달콤쌉싸름한 위스키의 잔향이 밴 그의 날숨을 폐 속에 붙들어두고 싶었다. 깊이 들이마시고 숨을 멈춰서, 폐 속에 그의 숨결만을 저장해두고 싶었다.
흐트러진 호흡을 최홍서의 입술 안으로 흘려 넣은 그는 멀어져 갔다. 아직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듯이. 혼돈의 입구에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서성거리다 쓸쓸히 뒤돌아서듯이.
대신 그는 최홍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민감한 목에 그의 호흡이 닿아오자, 최홍서는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따뜻한 피부 위에 입술을 비비면서, 이해성은 전신으로 최홍서를 뒤덮으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윤혜안’을 눕혀놓고 다리 사이를 밀착한 상태에서도 상체를 겹치지 않으려 했던 조금 전과는 달랐다. 사타구니와 아랫배, 가슴과 겨드랑이, 얼굴과 입술, 목덜미... 전신이 그와 맞닿아있었다.
이해성은 최홍서의 목이 시작되는 뿌리에 강하게 입술을 문질렀다. 입술의 말캉한 살덩이가 이쪽저쪽으로 볼썽사납게 짓눌릴 만큼. 그러다 문지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는지, 이를 세워 피부 위를 긁고 깨물었다.
“흐윽...”
다리를 벌려 그의 커다란 몸을 받아들이면서, 최홍서는 그의 상체를 두 팔에 가득 껴안았다. 목을 빠는 그의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고 입을 맞췄다.
펄떡거리며 허벅지를 찌르는 그의 음경이 이번에는 제대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맥박이 느껴졌다.
“으, 흐읏.”
한순간 피부 표면을 힘껏 압착하는 흡입에 최홍서는 몸을 움츠리며 그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살점을 짓씹으며 아프도록 빨아들였다.
“아... 아으, 흑.”
아릿한 아픔은 오히려 달콤했다. 살아서 다시 한번 그에게 닿고 있다는 실감이었으니까. 그는 자리를 바꿔가면서 목덜미 이곳저곳에 울혈을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최홍서는 그런 그를 조금도 저지하고 싶지 않았다.
목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로, 그는 이번엔 더 다급하고 거친 손길로 파자마 상의를 벗겨냈다.
“흣.”
가슴과 어깨가 전부 드러나도록 뒤로 젖히고 나서는 곧바로 젖꼭지에 덤벼들었다. 미처 준비되지 않았던 최홍서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볼록해진 꼭지만이 아니라 유륜까지 넓게 입에 문 그는 뺨이 날카롭게 파이도록 힘껏 빨아댔다. 입안에서는 뾰족하게 선 혀끝이 젖꼭지 위를 긁어대고 있었다. 최홍서는 사고가 아득해졌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입을 틀어막은 채 두 다리를 그의 옆구리에 문지르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들썩여 울룩불룩한 그의 아랫배에 성기를 문질렀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단단하게 뭉친 유두를 이 사이에 문 채 그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잘 못 느낀다고?”
첫 잠자리에서 최홍서에게 했던 말 그대로였다.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 민감하면서.”
“하으, 흡!”
최홍서는 이번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가 입으로는 다시 가슴을 빨기 시작한 동시에, 파자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마르지 않는 젤이 여전히 흥건하게 고여있는 다리 사이를 그의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주물렀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일부러 속살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그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이것 봐. 여기도... 이렇게 젖어 있잖아.”
그의 눈은 황홀경을 헤매는 사람 같았다. 술이나 약에 취해서 다른 세계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손목 안쪽으로 가랑이를 야릇하게 문지르면서, 그는 애널을 넓혀 나갔다.
이번에도 입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목덜미와 가슴, 배, 음모, 허벅지 안쪽... 전신에 키스를 쏟아내는 애무는 예전 그대로였다. 파자마 하의는 완전히 벗겨지고, 안쪽의 포인트를 자극당해 빳빳하게 발기한 최홍서의 음경이 그의 가슴과 배를 긁어댔다.
애널 안에서 그가 빠져나가는 감각은 파고드는 감각보다도 더 야릇했다. 개수를 더해 구멍을 늘려놓았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이번에는 손가락보다 훨씬 굵고 딱딱한 것이 애널 입구에서 비비적거렸다.
최홍서는 할딱거리는 숨을 몰아쉬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아랫배를 밀어냈다. 그러나 물론 하잘것없는 힘이었다.
어둠 속에서 쿠퍼액과 젤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의 콘돔 낀 음경을 내려다보았다.
“콘돔... 안 뺄 거예요?”
이 순간에도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가 땀에 젖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굵고 탄탄한 허리에 부드러운 굴곡을 일으키며 귀두 끝으로 입구를 문질러댔다.
“크랭크인 얼마 안 남았잖아.”
“흐으으, 흣... 흐...”
“임신이라도 하면, 영화는 어떡해.”
“으윽, 흑, 하으, 흡.”
“하고 싶어 했던 작품이잖아. 너, 영화는 무사히 끝내야지.”
“흐으, 흑... 흐...”
콘돔 없이 섹스했다가 임신하면, 결혼해 줄 거냐고. 예전의 그 농담을 각색한 이해성 때문에, 최홍서는 이마와 관자놀이에 땀을 흘리면서도 흐릿하게나마 웃었다.
조금씩 숨을 앗아가는 것 같은 삽입은 기억과 일치했다. 그는 아래에 누운 이의 호흡과 표정을 예리하게 살피면서, 계속해서 손바닥에 젤을 덜어 아직 덜 삽입된 음경의 나머지 부분에 연신 덧발라댔다.
“흐윽, 흐... 흑... 흐흐, 흣.”
그를 받아내는 최홍서의 호흡은 울음 끝을 추스르는 서러운 아이 같았다. 아랫배를 밀어냈다가, 시트를 쥐어뜯기를 반복하던 최홍서는 꾸구국, 그가 마지막 뿌리를 끝까지 밀어 넣으며 가득 들어찬 순간에는 눈앞을 꽉 채운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몸속이 그로 가득 차 있었고, 온몸이 그에게 뒤덮여 있었다. 그의 맥박과 무게, 체온, 미끄러운 땀이 흐르는 피부, 성기의 강한 탄력과 뜨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세계로 되돌아온 건 형벌이 아닐지 모른다.
한 번 스스로 끝내버렸던 목숨이다.
가족도, 명 사장도, 이서경도...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아서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최홍서에게 그것들은 전부 이전 생에 묻어 두고 온 불필요한 잔재들이었다. 물론 정지인이나 송현수처럼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곁을 맴돌기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생을 버틸 수가 없는 그런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었다.
오직 이해성에 대한 감정만이 유일했다. 이전 생과 지금 이 생을 연결해 주는 건 이것밖에는 없는 것처럼.
어쩌면 이승으로 되돌아온 건 형벌이 아닐지 모른다. 어떤 형태로든 그의 곁에서, 다시 이렇게 온몸으로 그를 느끼고 있는데. 이것이 형벌일 수가 있을까.
“흐으, 음... 흐윽, 흠...”
그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나갔다. 가장 연약하고 은밀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마찰이 순식간에 최홍서의 몸 안에 열을 일으켰다.
팔꿈치까지 끌어 내려져 있던 상의의 소매를 스스로 벗어버리고,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커다란 손이 다가와 이마 위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얼굴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처럼, 무언가를 찾고, 비교하고, 그리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던 그 눈이 아니었다.
“이제 알아. 그때 네가... 왜 잘 못 느낀다고 했었는지.”
“으음... 흐으으, 흣.”
“그때까지의 네가 왜... 잘 못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
“흑... 흐으윽...”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울음인지 신음인지도 알 수 없었다. 최홍서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 역시 무참히 일렁거리고 있었다.
“으읏! 흑!”
그의 허릿짓이 빨라졌다. 자기로 인해 흥분하고 발기한 그의 성기가 자기의 몸 안을 문질러 열을 지핀다. 다시 한번 그에 의해 흔들리고, 비벼지고, 가장 깊은 곳까지 사랑받고 있었다. 최홍서는 이것이 형벌이 아님을 확신했다. 이것은 보상이고, 은혜고, 가장 너그러운 용서였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렸다는 것 따위는 하찮은 문제였다.
그의 가슴이 최홍서의 가슴을 꽉 내리누르면서 겹쳐졌다. 위에 완전히 엎드린 그의 관자놀이가 최홍서의 귓가에 느껴졌다. 아래에서는 더 바짝 밀착된 하반신으로 쉴 새 없이 그가 들락거렸다.
“으으으, 흑... 흐... 흐, 흡...”
“......홍서야.”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그러나 머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슬아슬했던 감정이 울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흐으으, 흣, 아... 아저씨, 흑... 흐윽... 아저씨...”
“응, 이제 괜찮아. 괜찮아.”
“흐윽, 흐... 하으, 흐... 흐윽...”
“내가 전부 죽일 거니까. 그러면 너... 거기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이제 괜찮아.”
그의 목소리에서 물기와 떨림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얼굴을 더듬어 뒤덮어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대로 지그시 내리눌렀다.
누구를 전부 죽인다는 것일까.
이해성을 가리켜 사람 하나쯤은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반신(半神)이라고 했던, 강 감독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죽인다’는 그 말의 어감이 이상할 만큼 생생했다. 그냥 하는 말이나 관용적 표현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할까...
어떤 답을 찾은 거냐고, 보기 6번에는 대체 어떤 답이 적혀 있는 거냐고.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최홍서’를 다시 품에 안은 그의 감정을 그대로 지켜줘야만 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의 등허리를 손가락으로 꽉 움켰다. 그것을 놓으면 절벽에서... 32층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곡소리를 닮은 흐느낌이 창밖에서 몸을 던져왔다. 비바람이었다. 멈췄던 비가 어느새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6번... 그의 답은 6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