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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101)화 (101/185)

101화

 침대가 높은 탓에 허벅지가 매트리스에 걸렸고, 그는 휘청거리는 최홍서의 허리를 감아 침대 위로 끌어 올렸다.

 다음 순간 최홍서는 팔꿈치로 시트 위를 짚고 반쯤 드러누워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다리를 넓게 벌린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내려다보았다.

 넘치는 감정이 일렁거리는 눈동자는 공격을 당해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깊은 외상을 입고 신음하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상대를 견제하는... 그런 커다랗고 가여운 짐승.

 그의 뺨을 만지면서 위로하고 싶었다. 그를 괴롭히는 구속들을 전부 걷어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침대 위에 오르는 것은 허락됐어도, 멋대로 그의 얼굴을 만지는 것은 아마도 받아들여지지 못할, ‘최홍서’만의 특권이었다.

 고작 두 번뿐이었던 그와의 잠자리는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했던 말, 지었던 표정, 어떤 곳을 어떤 순서로 애무해 주었는지.

 평범한 연인 사이의 섹스를 알지 못해서, 자기도 모르게 접대하던 대로 그에게 ‘봉사’하려 했던 기억까지도.

 연인 사이에도 물론 오럴 섹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연인 간의 첫 섹스에서 다른 모든 애무보다 앞서, 대뜸 오럴 섹스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는 아래에 누운 ‘윤혜안’에게 쉽게 손을 대지 못했다.

 최홍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주춤주춤 상체를 일으켜 여전히 잘게 떠는 손을 그의 중심으로 가져갔다.

 그날 최홍서가 했던 것처럼, 그의 다리 사이에 엎드려 그의 남성을 애무하기 위해서. 그가 바라는 게 최홍서처럼 행동하는 거니까.

 “......”

 잠자코 지켜보던 이해성은 최홍서의 손이 가운에 닿기 직전에 손목을 붙잡았다. 뼈가 욱신거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우리 애기가 많이 과감하네.

 그거 지지야. 홍서는 만지면 안 돼.

 그런 말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그는 최홍서의 어깨를 지그시 뒤로 밀어, 높게 돋워놓은 푹신하고 커다란 베개 위에 눕혔다.

 최홍서의 종아리 사이쯤 앉아있었던 그가 거리를 좁혀 가까이 들어섰다. 그의 무릎이 최홍서의 허벅지 아래를 밀고 들어왔다. 다리가 벌려지고, 속옷을 입지 않은 얇은 파자마 한 겹 너머, 가운에 가려진 그의 사타구니가 느껴졌다. 가장 은밀한 부위의 따뜻한 접촉에 최홍서는 몸의 떨림이 다 멎는 것만 같았다.

 대신, 이렇게 그를 다시 느끼고 있다는 실감에 감정이 크게 흔들렸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일부러 생각을 차단했다. 여기서 감정의 빗장을 열었다가는 제대로 그와 뭘 해보기도 전에 눈물을 쏟을 게 뻔했다. 그렇게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는 엎드려 상체를 겹치려 하지는 않았다. 하반신만을 바짝 붙이고 아래에 누운 대상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손가락 사이에서 머리카락을 가볍게 비볐다.

 “머리카락, 염색하는 게 어때요?”

 “......”

 “금발이나 핑크... 아니면 하늘색도 좋고.”

 전부 최홍서가 ‘레이어드’ 활동 중에 했던 적이 있는 색깔들이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근데... 곧 크랭크인 들어가야 하니까.”

 “흠...”

 그는 입매를 굳히며 한숨 쉬었다. 조금이라도 더 최홍서처럼 보일 수만 있다면, 그런 것 따위는 시시한 문제라는 듯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풀썩 떨어졌다. 아래로 내려온 손은 파자마 상의의 넓게 벌어진 깃 사이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목덜미를 헐겁게 감싼 손에 최홍서의 숨결이 불규칙해졌다.

 톡, 톡, 그는 한 손으로 파자마 단추를 천천히 풀어 내려갔다. 이번에는 순간, 호흡이 멈추었다.

 ‘최홍서’에게는 야하고 진한 키스를 하면서 단추를 풀어줬었지만, ‘윤혜안’에게는 아니었다. 끊임없이 ‘윤혜안’의 얼굴 곳곳을 탐색하는 그의 눈빛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도 남았다.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비교하고, 그런 다음 실망하는 기색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최홍서를 찾아 헤매는 그의 눈에서 아직 성적인 흥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 사이에 밀착한 그의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닮은 것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최홍서여야만 한다는 걸.

 눈앞에 누운 몸이 가짜에 불과함을 실감한 그가 금방이라도 침대를 내려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단추를 전부 풀어 내린 그는 셔츠 자락을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최홍서는 누운 채로 꼼지락거리면서 셔츠 한쪽을 슬쩍 끌어당겼다.

 꾸준한 운동과 자기 관리 덕분에 마른 편이어도 탄탄했던 최홍서의 몸과 달리, 윤혜안의 몸은 아직 빈약하기만 했다. 그런 몸을 그에게 보이는 것이 자신 없었다. 그의 성욕을 그다지 자극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음에도, 타고난 체질과 예쁜 체형만 믿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윤혜안의 육체에는 쉽게 근육이 붙지 않았다.

 가리고 싶어 하는 몸짓에 개의치 않고, 그의 손바닥이 셔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중지 끝이 유두를 스쳤지만, 애무의 의도를 가진 접촉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얼굴 근육이 움찔 떨렸다. 그의 예리한 시선이 그런 반응을 모조리 훑고 있었다.

 최홍서보다 훨씬 밋밋한 가슴을 손으로 만져 점검한 그는 이번에는 파자마 상의를 어깨 너머로 젖히려 했다. 한쪽 자락을 꽉 쥐고 버텨봤지만, 나머지 한쪽은 이미 소매가 팔꿈치까지 벗겨진 상태였다.

 “나랑 자보고 싶었다면서요. 안 벗고 잘 건가?”

 자보고 싶었다고, 대담하게 말하더니 왜 이렇게 재미없게 구는 거냐고. 그렇게 추궁하는 것 같았다. 최홍서와 다른 점을 확인하면 당신이 식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셔츠를 당기는 그의 힘에 나머지 한쪽을 마저 내주었다.

 상의가 팔꿈치까지 끌어 내려지고, 잘 벌어졌지만 야윈 어깨와 밋밋한 가슴, 납작한 배가 그의 앞에 전부 드러났다. 윤혜안의 몸을 그의 앞에 드러낸 것이 문득 너무나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최홍서’와의 과거 시나리오에 의하면, 이제 다음은 그의 얼굴이 가슴으로 다가와 젖꼭지를 입에 물 차례였다. 그 뒤에는, 점점 아래로 내려간 그가...

 그러나 그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상체를 길게 늘여 팔을 뻗은 그는 협탁 위에 놓아둔 섹스용 젤과 콘돔을 집어 들었다.

 최홍서의 당황한 얼굴을 힐끔 내려다본 그가 피식, 쓰게 조소했다. 내가 네 몸을 빨아줄 거라고, 그런 기대라도 했던 거냐고.

 귀와 얼굴에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이 확 끼쳤다. 접대밖에는 모르던 몸으로 그와의 첫 잠자리에서 오럴부터 하려고 했던 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부끄러웠다.

 지금 그에게는 자신이 최홍서가 아니라는 걸 자꾸만 잊어버리는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짜 최홍서와 달리,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다지 기회가 없었으니까.

 젤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박스에서 콘돔을 꺼내는 그에게 덤벼들었다. 두 손으로 그의 양 손목을 하나씩 쥐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윤혜안으로서, 제정신에 그의 몸에 먼저 손을 댄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감상조차 다 날려버릴 만큼 필사적이었다.

 “콘돔 없이 해요, 우리.”

 “......”

 그의 손이 멈췄다. 그러나 화가 난 것처럼, 상처 입은 것처럼, 동시에 크게 일렁거리는 감정을 드러내며 바라보았던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는 곧 시선을 거두고 콘돔의 포장을 찢었다. 최홍서를 흉내 내는 같은 수법에는 더 이상 당하지 않는다는 듯이.

 최홍서는 다급해졌다.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르는 기회였다. 전처럼, 최홍서였던 때처럼 그와 연결되고 싶었다.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마구 당기면서 반항했다.

 “최홍서처럼 해달라면서요. 그런데 왜 안 되는데요?”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고, 그는 표정으로 먼저 대답했다.

 “그쪽한테 최홍서처럼 안겨달라고 했어도, 내가 그쪽을 홍서 대하듯이... 그럴 순 없는 거잖아.”

 “......”

 네가 아무리 최홍서인 척을 해도 진짜 최홍서는 아닌 것처럼, 너를 최홍서 대신 안으려고 해도 진짜 최홍서로 생각할 수는 없는 거라고.

 너무나 정답이어서 더는 우길 수가 없었다.

 그가 이미 느슨해져 있었던 가운의 매듭을 완전히 끌러버렸다. 약간 발기된 그의 페니스가 벌어진 앞섶 사이에서 드러났다. 그의 성기란 곧 그의 은밀함, 그의 비밀과 마찬가지였다. 그 왕성한 남성성 앞에서 최홍서는 성욕보다도 그리움을 먼저 느꼈다.

 저것과 연결되어 사랑을 나누고, 몸속까지 녹아내릴 만큼 사랑받았던 기억이... 우습게도, 윤혜안의 몸으로도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는 추억에 젖어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무겁고 커다란 손이 최홍서의 왼쪽 어깨를 툭 짚었다.

 “역할에 몰입해 준 건 고마운데, 베어백8)은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주의라.”

 담백하게 말한 뒤, 어깨를 바깥쪽으로 천천히 밀어냈다. 뒤로 돌아 엎드리라는 의미였다.

 본인이 최홍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한 최홍서는 그가 밀어내는 대로 순순히 엎드렸다. 차라리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아니, 그가 ‘윤혜안’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반대편으로 얼굴까지 돌려버렸다.

 얼굴 뒤에서, 곁에 와서 눕는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엎드린 몸 옆에 모로 누운 그가 날개뼈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촉촉이 땀에 젖은 손바닥이 피부에 착 달라붙었다. 그의 손이 뒷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머뭇거리는 듯, 가만가만, 마치 단잠에 빠진 사랑하는 이를 깨우지 않으려는 손길처럼 조심스러웠다.

 얼굴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그는 더 다정했다. 최홍서는 끌어안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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