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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97)화 (97/185)
  • 97화

     제작부 스태프가 메신저로 보내준 목적지는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반 남짓 떨어진 강원도 산골이었다.

     태백산맥에 속한 방태산과 개인산 사이의 깊숙한 골짜기.

     유명 관광지 주변도 아니고, 스키장을 낀 리조트들과도 멀찍이 떨어진 그곳은 사방 10km 이내에 민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양양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린 후에는 터덜거리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타야만 했다.

     널찍하다고 할 수 없는, 방치된 공터 같은 느낌의 주차장에 이해성의 SUV가 멈춰 섰다.

     서울과 강원도의 경계를 넘을 무렵부터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던 빗방울은 부슬비가 되어 있었다. 주변이 워낙 고요해, 아주 가는 부슬비임에도 차창에 떨어지는 소리가 또렷했다.

     “부사장님, 여기서부터 위쪽 본당까지는 걸어가셔야 한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도착 후에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차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이해성이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운전석의 수행원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뒷좌석 앞에 대기했다.

     옆좌석에 내려두었던 얇은 초겨울용 코트를 걸치고 차에서 내려섰다. 비가 흩뿌리는 11월의 깊은 산은 습기와 냉기로 가득했다. 숨을 깊이 내쉬자 여린 빗방울 사이로 연기 같은 입김이 흩어졌다.

     우산을 달라고, 이해성은 수행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럴 거 없어. 쉬고 있어요.”

     먼저 도착한 차량들 사이를 지나쳐 이해성은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살짝 질퍽해진 흙길이 걸음을 느리게 했지만,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의식이 시작하려면 2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무속 신앙의 세력이 위축된 만큼 최근에는 자신의 굿당을 따로 소유한 무속인이 많지 않았다. 굿판을 마음껏 벌여도 신고될 염려가 없는 산속에 지어진 굿당을 그때그때 대여해서 사용하는 무속인이 대부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나마도 이렇게까지 깊은 산까지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이런 곳에 건물을 하나 지으려면 그만큼 더 돈이 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오늘 고사를 주관할 무속인은 서울의 신당과는 별개로 개인 소유의 굿당까지 이렇게 따로 두고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위세가 대단하다는 거겠지.

     우거진 나뭇가지가 머리 위에서 얽히고설켜 하늘을 가린 오솔길 끝이 가까워지자, 굿을 지내는 본당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이 품은 새와 짐승이 모두 그곳을 향해 몸을 낮춰 엎드린 듯하고, 굿당을 호위하며 둘러싼 무성한 초목은 그곳을 드나드는 속세인들의 정함과 탁함을 감시하는 듯했다.

     을씨년스러움과는 사뭇 다른 영묘한 기운에 뒷덜미가 오싹하면서 뺨에 난 솜털까지 바짝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무속 신앙은 물론 어떤 종교에도 마음을 의탁해 본 적이 없는 이해성조차도 그 기운의 명백한 존재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속세와는 다른 힘과 법칙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에 순순히 복종할 것을 명하는 압도적이고 원시적인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해성은 우산 끝을 들어 굿당과 그 주변, 하늘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우산을 쥐지 않은 손으로 털이 선 뺨과 목덜미를 문질렀다. 깊은 산속에만 들어와도 오싹함을 느끼는 일이야 흔하지.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자, 굿당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

     처마 아래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윤혜안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정하고 정숙한 차림을 해달라는 제작부의 요청대로, 윤혜안은 흰 셔츠에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슈트 상하의는 기성복인 듯 마른 그의 몸에 품이 남았고, 넥타이를 하지 않은 셔츠의 목둘레가 헐렁했다.

     굿당 정문에서부터 처마를 따라 줄을 서듯 늘어선 사람들의 끝자락에서 그는 배우 김이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혹 추운지, 두 손을 비비기도 하고, 비비던 손을 입가로 가져가 따뜻하게 바람을 넣기도 했다.

     이해성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곁에 함께 선 김이정은 검은 슈트 위에 검은색 긴 패딩을 걸치고 있었다. 저 정도 대비도 해주지 않는 윤혜안의 회사는 뭐 하는 곳인가 싶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시선이 마주치자 윤혜안 쪽에서도 알아보고 먼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우산 아래에서 이해성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부사장님 오셨어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다들 선생님과 인사 중이세요.”

     총괄 PD의 안내로 이해성은 우선 굿당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에는 굿을 치르기 위한 거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각양각색의 과일과 곡식, 과자, 떡이 보기 좋게 늘어섰고, 보통의 영화 고사처럼 잘 삶은 돼지머리도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 돼지의 콧구멍에 지폐를 넣고 절을 올리는 그런 고사가 아닐 것은 분명했다.

     굿하는 동안 북을 치는 고수(鼓手)와 악사들도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무당이 입을 화려한 신복도 잘 손질되어 걸려있었다. 여섯 벌 정도가 걸린 것을 보니 오늘 열릴 굿판도 여섯 거리가 될 모양이었다. 보통 열두 거리가 굿의 기본이니 상당히 간소화된 굿인 셈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고사에 비하면 상당히 화려한 의식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단 위에 불을 밝힌 초들이었다. 족히 백여 개는 되어 보이는 긴 촛불들이 열린 정문에서 바람이 들이칠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며 빛을 내고 있었다.

     아직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한 배우와 제작부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굿당 내부와 ‘선생님’을 기웃거리느라 바빴다.

     확실히 여느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될 만한 풍경이었다.

     “감독님, 부사장님 오셨어요.”

     총괄 PD의 말에, 무속인과 손을 맞잡고 얘기 중이던 강우현 감독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어, 이 부사장. 이쪽으로 와서 인사드려요. 오늘 우리 영화 위해서 애써 주실 만신님.”

     “만신은 무슨. 아직 애동입니다.”

     신복을 갈아입기 전, 소복을 연상시키는 흰 한복 차림의 여성이 이해성에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해성이라고 합니다.”

     이해성 역시 예의를 갖춰 악수를 나누었다.

     “선생님이 만신이 아니면 누가 만신이에요. 고작 5년 된 것들도 자칭 만신이라 떠드는 세상인데.”

     강우현이 끼어들어 그녀를 추어올렸고, 그녀는 자애롭게 웃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해성이 보아왔던 몇 안 되는 무속인들은 대체로 살(煞)6)이 강한 인상에, 번쩍거리는 장신구를 즐기는 화려한 사람들이었다.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용하다는 무속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강우현에게 소개받은 무속인은 그 반대였다.

     반지 한 줄 끼지 않은 맨손에 깨끗하게 올린 머리, 분위기와 몸가짐은 화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수하고 정갈했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힘이 있었다. 결코 흐물흐물하거나 예사스럽지 않았다.

     60줄에 거뜬히 들어섰을 것 같은 그녀는 야윈 편에 키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조용조용한 몸가짐과 목소리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이해성이 만나본 어떤 무속인보다 흥미를 끄는 사람인 것은 사실이었다.

     “강 감독님, 그럼 식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인사를 드리고 장내를 좀 정리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무속인의 얘기에 강 감독은 두 손을 합장하고는 연신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럼요, 선생님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셔야죠.”

     총괄 PD가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고, 무속인이 모든 참석자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대열을 재배치했다. 정문 밖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굿당 내부로 들어오고, 윤혜안과 김이정 같은 막내 배우들도 중문 밖 가장 뒷줄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굿당 내부, 마루 아래에서 강우현 감독이나 제작사 대표와 나란히 선 이해성에게도 윤혜안의 하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먼 길 와주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의식을 집전할 이종익입니다.”

     사람들 중심에 나선 무속인은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서도 공손히 자기를 소개했다.

     “이종익? 무당들은 작두 장군, 구슬 동자... 뭐 그런 거 아니었나? 무슨 무당이 본명을 소개해?”

     어느 배우 하나가 자기 옆에 선 동료 배우에게 키득거렸다.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의사 역할을 맡은 서준영 배우였다.

     무속인의 시선이 서준영을 향하자, 동료 배우가 그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오늘 우리는 이번 영화의 무사한 진행을 빌기 위해 모였습니다. 규모가 그리 큰 굿은 아니나, 굿은 규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굿이란, 그저 상 차려두고 무당이 두들기고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분의 정성과 이 애동의 정성에 신령님들께서 감복하시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소리를 높여 말하지 않음에도, 무속인의 음성은 비가 내리는 공기 중을 곧게 뚫고 뻗어 나가며 온 산을 호령하는 듯했다.

     그러나 풉, 하는 경박스러운 웃음소리가 엄숙해진 분위기를 깨뜨렸다. 서준영이었다.

     무속인의 시선이 다시 한번 그를 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서준영에게 눈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오늘 이 신성한 의식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분, 신령님들을 희롱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은 죄송하지만, 굿이 시작되기 전에 산을 내려가 주셔야겠습니다. 정한 몸과 정한 마음. 하늘과 조상님들과 신령님들을 위하고 섬기는 정성이 없으면 의식의 효험을 해칠 뿐이니, 조용히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무속인은 합장을 하고는 정중히 인사를 마쳤다.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서준영이 총괄 PD를 붙잡고 불평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PD님, 이렇게 나오실 거면 미리 고지를 해주셨어야죠. 여기까지 사람 불러놓고 내려가라니. 똥개 훈련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저딴 소리나 들을 줄 알았으면 애초에 이런 미신 푸닥거리하는 자리엔 오지도 않았어요.”

     의식을 집전하기 위해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려던 무속인이 행동을 멈추고 몸을 돌려세웠다.

     “거기, 신도님.”

     “......”

     서준영을 부르는 소리에 어수선했던 장내가 일순 얼어붙었다. 이제라도 산을 내려가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서준영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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