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컴백 (87)화 (87/185)

87화

 “부사장님, 기온이 많이 낮습니다. 겉옷을 걸치시는 게...”

 “잠깐 담배 한 대만 피울 거니까.”

 겉옷을 사양하고 그를 돌려보낸 이해성은 횡단보도를 건너 난간 앞에 멈춰 섰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주변에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한숨처럼 내쉬었다. 연기는 찬바람에 휩쓸려 곧바로 흔적도 없이 해체되었다.

 ‘그러면 개인 정보 침해잖아요.’

 윤혜안의 불퉁한 발언을 들은 순간, 이렇게 받아칠 뻔했었다.

 홍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가르쳐준 적도 없는 숙소 위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그런 건 개인 정보 침해라고.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다. 홍서가 하지 않았던 말은 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윤혜안을 다그칠 뻔했다.

 그 아이를 흉내 내지 말라고 겁박했던 상대에게서 이제는 오히려 그 아이와 같은 점만 찾으려 하고 있다니. 뭐든 닮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비슷한 점을 찾고 싶어 필사적인 사람에게는 모든 게 비슷해 보일 수밖에...

 야경을 마주하고 선 이해성은 어깨를 털며 피식 자조했다. 그리고 담배를 입술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단단히 미쳤군.”

 윤혜안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 그 아이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 그 아이가 드나들었던 내 집의 구조, 우리만 알고 있는 오더메이드의 향수까지... 윤혜안은 향수를 선물 받고 모르는 척했지만, 포장을 벗긴 순간 경직되던 얼굴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침대에서 일어난 우리 둘만의 가장 은밀한 교감에 대해서도 윤혜안은 알고 있을까?

 생각이 그쯤에 닿았을 때, 이해성은 혐오스러운 장면이라도 목격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를 입술로 가져가던 손이 뚝 멈추기까지 했다. 알고 있으면? 그럼 뭐 어쩔 건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필터를 깊이 빨아들였다.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이 아닌 이유를 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밤 기온이 제법 쌀쌀했다.

 그것은 이해성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날씨가 싸늘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 아이가 떠난 무렵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으니까.

 첫 번째 기일이었다.

 그사이 봉안당 내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영화도 다시 제작되고 있었다.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성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처럼 자신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고 싶었다. 대화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끌어당겨 안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마법이라도 부려놓은 것 같은 야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이해성에게 도시는 암전 중이었다.

 ARA 그룹과 한서 그룹, 계열 분리 최종 마무리 단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양측 모두 조심스러운 움직임

 한서 그룹과 ARA 그룹의 계열 분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故 이우열 회장 타계 후, 경영 3세대는 그간 잡음 없는 계열 분리를 위해 신중하게 기반을 다져왔다. 전자, 금융, 보험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ARA는 이미 상당히 덩치를 키운 상태였기에, 계열 분리는 현명한 결정으로 평가되어왔다.

 양측 간의 지분 보유율 등의 문제도 완전히 정리되어, 현재 서류상의 최종 마무리만 남아있는 셈이다.

 독립한 ARA 그룹의 첫 회장이 될 이해성 現 ARA 전자 부사장은 관련하여, 오늘 오후, 주요 참모진과 함께 역삼동 ARA 전자 사옥에서 회의를 가졌다.

 사진은 회의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이 부사장의 모습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이 부사장의 표정이 상당히 경직되어 있어, 사안의 중대성을 가늠할 수 있다.

 양측 대표는 모레 28일, 한서 그룹 지주사인 한서 홀딩스 사옥에서 만남을 가지고 그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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