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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69화 (69/185)

69화

너무 놀라서, 저절로 눈물이 그쳤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뺨 위의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아냈다. 완전히 다 감출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눈물이 마를 때까지 여기서 버틸 수도 없었다.

“여기서 또, 뭐 하고 있는 겁니까?”

‘또’라고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격양된 노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봉안당에서 마주쳤을 때보다 그는 훨씬 감정적인 상태인 것 같았다.

최홍서는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출입문과 소파 사이 어디쯤 서 있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않았다.

“죄송합니다. 화장실을 찾다가... 지금 바로 나가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그대로 얼굴을 들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의 등 뒤, 반쯤 열려 있는 출입문만 바라보면서 다리를 움직였다.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가 고개만 어깨 쪽으로 돌리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지난번에 분명히 경고... 부탁했었죠?”

“......”

“그 아이, 흉내 내지 말라고.”

VVIP께서 말씀하시니 최홍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세우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이래요?”

“......”

“아니면, 내 관심을 끌고 싶어서?”

언뜻 농담처럼 말하고 있어도, 그건 아주 얄팍한 위장에 불과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치 않는 범위까지 화가 넘쳐버릴 것 같아서, 그 나름대로 스스로를 제어하려는 장치일 뿐이었다.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홍서의 어깨를 지나쳐 몇 걸음 더 앞으로 걸어간 그는 몸을 돌려 최홍서를, 윤혜안을 마주 보았다.

“소월로에는 왜 갔던 겁니까.”

“......”

최홍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질문이 당황스러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 모임 후에 소월로에 왜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집이... 그 근처입니다. 야경도 보고, 산책 좀 하러 갔었습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겁을 집어먹고 소극적으로 답하면서도 약간의 반항을 표출했다. 그는 ‘윤혜안’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최홍서를 흉내 낸다 생각하며 적대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지금 이해성 앞에 서 있는 ‘윤혜안’은 그에게 어떤 목적도 감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억울했다.

아랫배 앞에서 맞잡은 두 손을 서로 쥐어짜면서, 그가 가도 된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의 거침없는 눈빛이 ‘윤혜안’의 얼굴 위에 아직 남아있을 눈물의 흔적들을 분명히 밝혀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윤혜안의 눈물은 그에게 어떤 의미도 될 수 없었고, 어떤 동요도 끌어낼 수 없었다.

봉안당에서 그랬던 것처럼, 취조하는 듯한 냉정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날, 청담동에서 분명 나보다 늦게 출발했었죠. 그런데 윤혜안 씨, 나보다 먼저 남산에 도착해 있더군요.”

“......”

“내가 그곳에 가리라는 걸 예상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그건 최홍서인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최홍서가 아는 이해성이라면, 지금 하는 말이 억지나 마찬가지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그는 화가 나 있다는 거겠지. 평소의 판단력이 흐려질 만큼. 그리고, 그만큼 최홍서가 귀중하다는 거겠지. 최홍서가 얽힌 일에는 평소의 판단력이 흐려질 만큼...

“부사장님이 어디로 가실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고 미리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담담하려 해봐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윤혜안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에게 가증스러운 연기로 보이는 것 같았다.

조소 같은 코웃음 뒤에 그의 비아냥거림이 이어졌다.

“모르는 일이죠.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베팅을 걸어본 건지 누가 압니까?”

“정보...요?”

다시 한번 조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차마 정면으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 훔쳐보듯이 보았다. 강 감독의 말대로, 지금의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 같았으니까.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고른 것, 긴장을 풀기 위해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셌던 것, 러브 스토리, 남산 소월로... 거기다 오늘 이 장소까지.”

“......”

“전부 우연이라고 믿어주기엔, 내가 그다지 로맨틱하지 못해서 말이죠.”

러브 스토리.

그 얘기를 어떻게 밖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조심성이 없었다고 하기엔, 솔직히 윤혜안에 대한 그의 경계심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었다.

팬츠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비스듬히 서 있었던 그가 몸을 바로 세웠다.

“어디에서 무슨 정보를 얻어낸 겁니까.”

“정보라니... 그런 거 없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적극적으로 부정했다. 아무리 그가 미워하는 것이 윤혜안이라고 해도, 이 이상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부사장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최홍서 씨와 저는 아무 접점도 없었고... 정보를 얻어낼 만한 경로도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윤혜안’의 간절한 호소에도 그의 표정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눈앞의 이 남자가 누구인가 싶었다.

최홍서를 대할 때의 너그러움, 부드러움, 마음을 미리 읽고 한발 앞서 두 팔을 벌리고 있던 넓은 품... 눈앞의 이 남자야말로 이해성과 얼굴만 똑 닮은 다른 사람 같았다.

원하는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조금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이, 너의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휘저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식은 눈빛. 그 섬뜩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가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혜안 씨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더군요.”

“......”

“세간의 평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을 쉽게 믿는 편도 아니라서요.”

흠... 코로 깊은숨을 내쉰 그는 바닥을 한번 내려다보았다가 삐딱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윤혜안을 찌르듯 바라보았다.

“어디서 어떻게, 무슨 얘기들을 듣고 와서 이러는지 몰라도, 만약 그 아이 흉내로 내 관심을 끌어보려는 계산이라면, 굉장히 실수하는 겁니다.”

이제 그는 평소처럼 작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의 속삭이듯 읊조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대를 더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대체품이라도 찾아서 그리움을 달래려고 하는, 난 그런 부류가 아니거든.”

“......”

“잘못 짚었어.”

지금도 그에게 사로잡혀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을 맞춘 채, 진땀을 흘리면서, 음절과 음절 사이의 긁힌 호흡까지 그러모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자신에게 경고하는 목소리라 하더라도.

“아닙니다... 그런 의도는 정말 조금도 없었습니다.”

“앞에 열거했던 전부가 우연의 일치라는 걸 증명한다면 그 말 믿도록 하죠.”

억울하다고, 서럽다고, 제발 믿어달라고. 식은땀에 앞머리와 귀밑머리가 다 젖은 얼굴로 간절히 그를 쳐다봐도 윤혜안을 내려다보는 두 눈은 여전히 서늘한 비늘 같았다.

조금 더 낮아지는 온도로, 그가 냉소했다.

“왜요? 내 앞에서 쓰러지기라도 할 겁니까? 또?”

최홍서는 팔을 들어 티셔츠의 어깨 부근으로 땀을 닦아냈다.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마른침을 삼키고 정신을 꽉 붙들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를 지나쳐 서둘러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푹푹 꺾이는 무릎을 지탱하기 위해 난간에 의존해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가면서, 떨리는 손으로 용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재 씨, 미안해요. 강 감독님 댁으로 지금 좀 와줄 수 있어요? 갑자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땀에 흠뻑 젖은 꼴로 식당으로 돌아가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져서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모두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수긍할 만큼, 겉으로 보기에도 최홍서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사람을 시켜 데려다주겠다고 강 감독이 친절하게 말했지만, 매니저가 곧 도착할 거라고 둘러대고는 아무렇게나 짐을 챙겨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식당을 벗어났다.

“형!”

별로 반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채 복도를 다 벗어나기도 전에 박동하에게 따라잡혔다.

“어쩐지 아까도 안 좋아 보이더라니. 매니저면 용재 형이 오는 거지? 가방 줘. 들어줄게.”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가방을 가져간 박동하는 최홍서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우며 부축을 시도했다.

“근데, 이해성 부사장님 혹시 못 봤어?”

“......”

“좀 전에 도착하셨는데, 형이 화장실 갔다는 얘기 들으시더니 잠깐 자리 비우셨거든. 혹시 두 사람 만났나... 해서...”

“......”

그 자리에 꼼짝도 없이 멈춰 선 최홍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없이 박동하를 노려보기만 했다. 속을 들킨 것이 저도 겸연쩍기는 했는지 박동하는 한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최홍서는 박동하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았다.

“이럴 거 없어요. 용재 씨 금방 도착해요. 먼저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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