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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65화 (65/185)

65화

윤혜안과 얽히는 것조차 꺼리며 철저히 거리를 두려던 그였다. 아무리 적대감 때문이라도 일부러 눈을 마주치려 할 리가 없는데, 횟수가 너무 잦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때마다 우왕좌왕 시선을 피하며 술만 더 들이켰다.

덕분에 회식 자리가 파했을 때쯤에는 최홍서도 약간 취기를 느꼈다.

밖으로 몰려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식당의 정원으로 나서니, 그는 다른 흡연자들과 함께 한쪽 구석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몇몇은 2차에 갈 사람을 모으고, 몇몇은 매니저를 부르고, 몇몇은 아직도 한창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어두운 구석 자리에서 그를 훔쳐보았다.

그는 드물게 취한 것처럼 보였다. 드러나는 주사는 없었지만, 충혈된 눈빛의 번들거리는 안광이 취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이는데, 정작 주인공 대접을 받는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미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함께 남산을 걸었던 그날과 똑같은 니트를 입고, 취기를 견디며 담배를 호흡하는 그는 힘겨워 보였다. 말수도 거의 없었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입술로 가져가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문득 이해성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윤혜안’이 그곳에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해두었던 사람처럼 단번에 정확히 눈을 맞춰왔다.

젖은 안광 때문인지, 이번에는 다시 적대적으로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단단히 미움을 산 것 같았다. 최홍서가 맡았던 황지우 역할이 어쩌면 그에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을 테니까. 처음부터 그는 ‘윤혜안’을 캐스팅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다른 배우들과 떠들썩하게 섞여 있었던 박동하가 곁으로 다가오면서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혹시 형, 부사장님한테 뭐 실수한 거 있어?”

“실수?”

“지금 형 쳐다보시는 거 아닌가? 아니, 저 정도면 노려보는 거 아니야?”

“그래요? 대화한 적도 없는데 실수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냥... 이 근처를 보고 계신 거겠죠.”

수행원이 운전하는 그의 세단이 도착하자,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꺾어 버리고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지난번 회식 때부터 그의 팬을 자처했던 제작사 대표가 2차를 함께 가자고 끈질기게 매달렸지만, 차에 오르는 그를 붙잡지는 못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날의 기억이 하나하나 생생했다.

그날도 최홍서는 회식 자리에서 이해성과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것에 실망을 느끼면서 멀어지는 그의 차 뒤꽁무니를 바라봤었다.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이해성이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답지 않게 달려들어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었다.

호텔 객실 앞에 서서 그를 다 믿지 않겠다고, 속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돌아보면 그건 이미 자꾸만 믿고 싶어 하는 자신을 의식해 단속하려던 행동이었다.

‘꽁꽁 싸매고 왔네요.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아이돌 같네.’

모자챙을 살짝 만지고 멀어지던 그의 손이 일으켰던 떨림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것이 그날과 비슷한데, 그보다 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가 어딘가의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리도 없었고, 무섭지 않도록, 부드럽게 웃어줄 리도 없었다.

불평할 자격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반품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먼저 떠나는 선배들을 배웅하고 난 뒤, 박동하가 최홍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도 더 마시면서 얘기 좀 해야지. 밀린 얘기가 좀 많아? 형, 이사했다며? 이사한 집에 가보면 안 돼?”

“다음에 꼭 초대할게요. 오늘은 가볼 곳이 있어서요.”

“이 시간에? 벌써 자정이야.”

의아해하는 박동하에게 어설프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뒷좌석의 문이 닫힌 뒤, 이해성은 짙게 선팅 된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문 앞에 몰려든 사람들 틈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세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람들 뒤에 가려져 있었던 모습이 드러났다. 뒤쪽에 내내 숨어있었으면서, 차가 떠나고 나자 그제야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오히려 손을 흔들던 사람들이 다 흩어진 뒤에도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을 오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그 아이가, 홍서가 그랬던 것처럼.

“부사장님 청담에서 출발하십니다.”

전화를 통해 한남동 자택에 간략히 보고한 수행원이 룸미러를 통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이해성을 흘깃거렸다.

“부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숙취 해소 음료를 미리 사뒀는데 드시겠어요?”

“내가 그렇게 취해 보이나?”

“흐트러지신 점은 없는데 눈이 충혈되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취해 보이셔서요.”

“괜찮아요. 물이면 충분합니다.”

수행원이 미리 컵 홀더에 준비해둔 생수를 들어 보이며 이해성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

한적한 골목을 완전히 벗어난 자동차는 화려한 강남의 밤거리로 섞여 들어갔다. 월요일 자정임에도 도산대로에는 통행량이 적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이해성은 담뱃갑을 찾았다.

‘저는 러브 스토리,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그것을 들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함께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낸 뒤, 개별실의 문 옆에 기대서서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해성은 담뱃갑에서 꺼낸 한 개비를 입술에 물고 불을 붙였다. <크림 맨션> 제작이 다시 시작되면서 담배가 부쩍 더 늘었다. 혀끝을 마비시키는 쌉싸름한 감각을 느끼며 필터를 빨아들였다.

러브 스토리.

이것까지도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윤혜안이라는 그 배우가, 우연히 오디션에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선택했고, 긴장하면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세는 버릇을 우연히 가지고 있었고, 우연히 인사말에 ‘성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우연히 <러브 스토리>라는 작품을 언급했다...?

그래, 그 하나하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안톤 체호프는 유명 작가였고, 손가락을 접으며 숫자를 세는 버릇도 아주 유별나게 특이하지는 않았다. 성실을 강조하는 건 상황상 흔해 빠지기까지 한 일이었다. <러브 스토리>? 그 연령대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유명한 작품이었고,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우연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강 실장의 조사에 따르면, 윤혜안은 최홍서와의 접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강 실장의 조사에는 항상 빈틈이 없지만, 이번만큼은 어딘가에 놓친 정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기본적인 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자세히 들어가 봐야겠어...

이해성은 연기를 가늘게 뿜어내면서 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에 더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대로 귀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영화의 제작을 이어 나가는 건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심했다. 홍서가 이곳에 있었다면... 매 순간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소월로에 들르죠.”

“소월로 말씀이십니까?”

“밤공기 좀 쐬고 싶네.”

“네, 알겠습니다.”

둘이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걸어봤자 즐거울 리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를 하고 싶었다. 고통이라도 좋으니까 그 아이로 인한 감정을 느끼길 원했다.

“부사장님, 남산으로 이동하십니다. 이후 동선은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뒷좌석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용히 한남동에 보고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해성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한남대교를 건너 소월로에 진입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단은 남산을 오른쪽에 끼고 천천히 달려 나갔다. 이해성은 적당한 곳에서 내려 조금 걸을 생각이었다.

“잠깐. 더 가지 말고 이 근처에 잠깐 정차해요.”

이해성이 갑자기 차를 세우도록 지시했다. 수행원은 비상등을 켜고 도로 오른쪽으로 차를 바짝 붙였다.

“저쪽. 난간에 기대 있는 저 사람, 얼굴이 확실하게 보입니까?”

미간을 찌푸린 이해성이 왼쪽을 가리키며 수행원에게 물었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고, 시야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난간에 몸을 의지한 채 멍하니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한 명뿐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아마 배우 윤혜안 씨 같은데요.”

“더 앞쪽까지 내려가서 유턴해요.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바로 뒤로 천천히 지나가야겠어.”

차를 돌려 다시 되돌아왔을 때, 난간에 기댄 인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혀 있었다.

세단은 천천히 그 뒤를 지나갔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인영은 자기만의 생각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확인한 옆모습은 윤혜안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부사장님.”

“그대로 내려가요. 산책은 됐으니까...”

이해성의 손이 담배를 찾았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한 뒤에야 담배 끝에 빨간 불씨가 옮겨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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