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음, 피곤하면 안 되지. 건강에도 안 좋고, 미용에도 안 좋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횡설수설 같은 혼잣말도 중얼거렸다. 그러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후― 심호흡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소파 위에 툭 리모컨을 던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며 말했다.
“그만 누울까요 그럼?”
최홍서가 누울 자리를 먼저 봐준 그는, 최홍서가 베개를 베고 누운 후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방안을 방황했다.
괜히 욕실을 한번 다녀오고, 소파 옆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최홍서에게도 마시고 싶은지를 물었다. 최홍서는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침대에 누워 얌전히 이불을 덮고 있는 최홍서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생수병을 냉장고에 넣고, 그제야 침대 위로 올라왔다.
한 이불 속으로 들어온 그는 침대 헤드의 마스터 버튼으로 모든 조명을 일시에 꺼버렸다.
이쪽을 보고 누운 최홍서를 향해 모로 누운 그가 얄밉다는 듯 최홍서의 볼을 살짝 흔들었다.
“이제 만족스러우세요? 최홍서 씨?”
암막 커튼의 끝자락을 3분의 1 정도 열어 두어서 방안에는 희미한 밤빛이 스며들었다. 덕분에 그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침대는 굉장히 넓었지만 두 사람은 각자 베개의 끄트머리에,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에 누워있었다.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다 보면, 무릎이 그의 허벅지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남아 있었지만 최홍서는 웃지 않았다.
수련회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 얘기를 나누는 소년들처럼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미리 말씀드릴 게 있어요.”
비장해 보이는 최홍서의 표정과 목소리에 그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뭐든지 편하게 얘기해도 돼요.”
들어줄 준비가 됐다고, 안심시켜주기 위해 그는 최홍서의 뺨을 손등으로 쓸어주었다.
“저, 할 때... 잘 못 느낄지도 몰라요.”
“......”
최홍서에게 첫 경험은 폭력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 섹스는 연기였다. 쾌감을 느끼는 척, 때로는 순진하게 부끄럼을 타는 척. 그 자리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얻어맞지 않기 위해, 혹은 그들이 명 사장에게 불평을 늘어놔서 그 화가 돌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취향과 분위기에 따라 비위를 맞춰 연기했었다.
단 한 번도 쾌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성기를 물리적으로 자극하면 사정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 순간에 당연히 동반되는 생물학적 쾌감조차도 없었다. 단지 살갗의 쓰라림과 허무함이 있을 뿐. 삽입 상태에서 발기를 유지한 적도 없었고, 그러니 소위 말하는 ‘뒤’만으로 사정에 이른 적도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자신은 감도가 낮은 편일 거라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를 원하는 마음에는 거짓이 없었다. 동시에 그와의 잠자리에서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적 쾌감은 다소 둔하더라도, 정신적 만족감만큼은 충만할 테니까. 그와의 입맞춤이나 키스도 분명 좋았으니까.
그를 실망시키거나 혹은 자책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먼저 솔직하게 말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저씨랑 하는 게 별로여서 그런 게 아니니까... 정말,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응, 알았어요. 오해 안 할게.”
그가 부드러운 미소로 안심시켰다.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거고, 괜찮아요. 우리가 서로를 원하고 교감을 나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뺨을 쓸던 손이 이번에는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확인하듯 물어왔다.
“혹시,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무리해서 하려고 하는 건...”
최홍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팔꿈치 부근을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도, 제가 불안해서 이러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
어쩌면 지금도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말 못 할 복잡한 과거도 그대로였고, 이서경까지 나타났으니 어쩌면 지난번보다 더 불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서경도 명 사장도 상관없었다. 그딴 것들은 이 침대 위로 감히 올라올 수 없었다.
그저 이 순간 온전히 그를 원했다.
성욕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을 지배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로서.
좋아하는 사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밑바닥에 질질 끌리며 여기까지 온 자신을 귀한 아기로 봐주는 사람. 그 사람과 전부를 열고, 전부를 나누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최홍서는 그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피부 위를 조물거리면서, 여전히 비밀 얘기를 하듯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속닥거렸다.
“근데... 제가 아기예요?”
잠시 미간을 좁히고 말뜻을 가늠하던 그가 풀썩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켜버렸다는 사실에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아... 카페에서 봤구나?”
그러나 시선을 피한 것도 찰나였다. 그의 얼굴이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누운 채로 최홍서에게 코끝을 비비며 말했다.
“애기지. 사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라다니면서 챙겨주고 싶거든.”
“......”
“왜? 별로야? 당근 구매자님으로 바꿀까? 마음에 안 들어?”
그가 조금 뒤로 얼굴을 물리면서 최홍서의 표정을 살폈다. 최홍서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꾸지 마세요. 엄청... 맘에 들어요.”
모로 누워 구부정한 채로도 끝없이 넓은 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어깨 끝에서 손의 방향을 바꾸어 두툼한 삼각근으로, 팔꿈치와 하완으로, 손목으로... 천천히 팔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쥐었다.
뭘 하려는 걸까.
그는 그저 흥미로운 눈으로 최홍서의 얼굴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은 최홍서는 그의 손을 자신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가 절대 먼저 손대지 못할 것 같은 곳.
불룩한 부피감과 연약한 속살의 따뜻한 체온에 그의 손바닥이 닿았다.
“......”
그의 눈가가 짧게 경련했다.
최홍서는 스스로 그의 손에 자신의 성기를 천천히 문질러나갔다. 꼼지락거릴 때마다 어깨를 덮은 얇은 이불이 바스락거렸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다시 위로. 그러다 다리 사이의 아주 깊숙한 곳까지. 그의 손을 이끌었다. 커다란 키만큼이나 폭이 넓은 커다란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자 허벅지의 틈이 벌어졌다.
“으응... 음.”
최홍서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꼬리를 가늘게 떨었다.
가만히 손을 내맡기고만 있었던 그가, 손끝에 힘을 주면서 고환과 애널 사이의 속살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목하게 구부린 손바닥이 성기 전체를 자극하면서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렸다. 단순히 비비기만 하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손바닥 아래쪽의 두꺼운 부분으로 고환을 짓누르듯 올라오다가 마지막에는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음경을 훑어냈다.
“흑, 흐읏.”
연기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홍서의 입술에서 멋대로 숨이 터지고 있었다.
최홍서의 작은 반응 하나하나에 집요하게 따라붙는 그의 시선은 흡사 화가 난 것처럼 날카로웠다.
“흐으으, 흑... 흐...”
다시금 다리 사이로 스르륵 파고 들어가는 그의 손길에, 최홍서는 그저 그의 손목을 붙잡고 숨을 고르기 바빴다.
눈꺼풀 위에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다.
“괜찮아?”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이해성의 목소리도 무언가에 꽉 억눌려 있었다. 그런 중에도 그의 손은 점점 더 농밀하게 최홍서의 성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최홍서는 끄덕이는 것도 아니고, 가로젓는 것도 아닌 이상한 고갯짓으로 답했다.
그의 손안에서 성기가 벌써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뺨과 코끝, 인중과 입술에 수없이 연결되는 입맞춤에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의 키스가 호흡에서 산소를 모조리 앗아가는 것 같았다. 가슴이 뛰다 못해 조여들었다.
그곳은 전혀 다른 세계, 최홍서가 알지 못하는 세계였다. 타인의 손이 자신의 성기에 닿았는데, 역겨움이나 무덤덤함이 아닌 저릿함을 느낀다는 것. 아, 이게 진짜 성적 흥분이구나.
허리를 뒤로 빼면서 겨우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이제... 이제, 제가 해드릴게요.”
그러고는 마른침을 삼킨 뒤 곧바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이불을 들추고 최홍서가 어디로 가는지를 지켜보던 그가 풀썩 웃었다.
“음... 우리 애기가 많이 과감하네.”
최홍서는 그의 다리 사이에 엎드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의 바지춤을 끌어 내릴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최홍서의 성기를 만졌던 행위 때문인지, 그의 사타구니는 부풀어 있었다. 형태감으로 봐서는 분명 완전히 발기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도 전체적인 부피가 조금... 많이 과하다 싶었다.
파자마의 밴드 부분을 끌어 내리려 했지만, 손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피부 위에 헛돌면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손끝이 닿아 간지러운지 그가 큭큭 웃으며 팔을 뻗어 최홍서의 머리를 흩트렸다.
“홍서가 해주려고?”
“혹시, 안 좋아하세요?”
안 좋아할 수도 있다. 모든 남자가 펠라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생각이 그제야 들어서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한 손으로는 여전히 이불을 들춘 채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홍서가 해주는데 어떻게 싫겠어. 그게 아니라...”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영 안 되겠다 싶었는지 최홍서의 손목을 잡아 위로 끌어당겼다.
“이리 와. 그거 지지야. 홍서는 만지면 안 돼.”
소담하고 청초하게 생기진 않았을 것 같긴 해도, 방금 샤워하고 나온 그의 페니스가 지저분할 리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미는 알지만 어쨌든 그렇게 표현하는 건 조금 속상했다. 아무리 이해성 그 본인이라고 해도.
“지지 아닌데... 좀 전에 샤워하셨잖아요.”
“응. 오늘 말고, 다음에. 다음에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주춤주춤, 최홍서는 그가 이끄는 대로 끌려 올라가 그의 가슴 위에 어정쩡하게 엎드렸다. 이해성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이마와 콧등, 인중, 입술에 여러 번 입을 맞췄다.
“서로 많이 만져주고 많이 키스하자, 오늘은. 응?”
서로가 서로를 많이 만져주고, 많이 키스하는 섹스.
최홍서는 벼락을 맞은 듯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가 키스해 준 얼굴의 모든 곳이 붉어졌다. 부끄러웠다. 자기도 모르게 접대하듯이, 봉사하는 섹스를 하려 했던 것이다.
이해성은 모르더라도, 최홍서 자신이 알고 있었다. 첫 섹스에서 왜 대뜸 펠라를 하려고 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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