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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53화 (53/185)

53화

키스를 마친 후에도 그의 입술은 최홍서의 입술 주변을 맴돌았다. 얕은 입맞춤을 여러 번 나누다, 그가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저두요.”

제대로 된 첫 번째 키스였다. 지난번 그의 집에서는 입맞춤뿐이었으니까.

그것을 의식하자 왠지 얼굴을 보기가 쑥스러워서 최홍서는 시선을 피하며 눈을 굴렸다. 이해성은 소리 없이 웃으면서 뺨에다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해 주었을 뿐 그런 최홍서를 놀리지 않았다.

선물 상자를 정돈한 그는 이제 차를 출발시키려는 듯 핸들을 쥐면서 물었다.

“많이 피곤한가?”

“비행시간도 짧아서 그렇게 안 피곤해요.”

“야경이 괜찮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한번 가볼까 하는데.”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때, 따라붙는 차는 없었다. 사생팬들은 모두 ‘레이어드’의 새 차를 따라간 것 같았다.

40분쯤 달려 카페에 도착했다. 그가 미리 찾아두었다는 카페는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외부에는 실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커다란 테라스도 갖춰져 있어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밤 시간에 조심스럽게 데이트를 하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두 사람은 도시 야경이 펼쳐진 테라스의 중간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도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가장 앞자리면 전망이 더 좋을 텐데.”

아쉬운 듯 주변을 둘러보던 이해성이 버킷햇 위로 최홍서의 머리를 꾹꾹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여기 있어요. 혹시 저쪽 테라스에 더 좋은 좌석이 있는지 보고 올게요.”

서둘러 건물 코너로 사라지는 그의 훤칠한 뒷모습을 힐끔거리던 최홍서는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진짜 데이트를 하는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쑥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도 데이트 중인 연인들 같았다. 다들 둘만의 세계에 빠져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와 외부에서 하는 데이트는 처음이었다. 항상 집이나 차, 혹은 호텔 객실에서 만났으니까. 데이트, 데이트라니. 상대가 그가 아니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겠지. 명 사장이 내버려 뒀을 리가 없을 테니까.

비밀스러운 과거는 그대로였고, 이서경 전무가 나타났다는 끔찍한 소식까지 더해졌는데. 그런데도 그와 남들처럼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철없이 들뜨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그 사실에 얽매여 있었고, 어떻게 해도 떨칠 수 없었고, 거기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버텨왔던 내가... 순간이나마 그것들을 잊을 수가 있다니.

씁쓸히 웃는 사이, 테라스의 가장 앞줄에 앉아있던 연인이 주섬주섬 트레이에 다 마신 음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만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이쪽에 자리가 날 것 같다고 그에게 말해주기 위해 최홍서는 얼른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드르륵, 드르륵.

그런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에 맞춰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졌다.

그가 테이블 위에 놔두고 갔던 카디건 아래에서 그의 핸드폰이 환하게 빛을 뿜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 두고 가셨네... 최홍서는 별생각 없이 그의 핸드폰을 손에 들었고, 의도치 않게 액정에 떠오른 자신의 저장명을 보게 되었다.

“음... 그럼 나도 바꿀까? ‘당근 구매자님’으로.”

“지금은 저, 뭐라고 돼 있는데요?”

“안 알려줄래요.”

“......”

“그런 귀여운 표정 지어도 안 알려줄 건데.”

“귀여운 표정 안 했어요.”

“했거든요.”

“귀여운 표정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한다고 귀여운 게 안 귀엽게 되나?”

<당근판매자님>이라는 저장명을 들킨 후, 최홍서는 자신의 저장명도 알려달라고 요청했었지만, 그는 대답하기를 거절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결코 애정 표현을 망설이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 답을 이렇듯 우연히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최홍서는 그가 스스로 저장해 둔 자신의 이름을 잠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통화 종료를 누를 수가 없었다.

<애기>

그는 나를 그렇게 저장해 두었다. 우리가 아직 사귀기도 전부터.

누군가에게서 그런 호칭으로 불린 적도 없었고, 불리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연인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모습을 봐도, 낯간지럽다는 정도의 감상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미간이 시큰거렸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바라보고, 흠나기 쉬운 귀중품처럼 여기는 이해성의 마음이 그 단어 안에 전부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이 아프도록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울컥이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최홍서는 모자의 챙을 붙잡고 계속 아래로 끌어당기기만 했다.

그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지금 가슴속에 일어나는 복잡하고 무질서한 감정의 폭풍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래서 그저 그를 껴안고 싶었다. 그와 키스하고 싶었고, 그를 원했다.

지극하도록 사랑스러워서 오히려 슬픔과도 닮아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든 그에게 전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맨 앞줄의 연인이 트레이를 챙겨 일어나고 있었다. 최홍서는 감정을 덮어둔 채 일단 그의 카디건과 핸드폰을 챙겨 그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때맞춰 그가 건물 코너에서 나타나 돌아오고 있었다.

“이쪽에 좋은 자리가 났네요? 다행이다. 저쪽도 뒤쪽 자리밖에는 없더라고. 우리, 밖에서 하는 첫 데이트인데 운이 좋았네.”

첫 데이트라는 거, 아저씨도 생각하고 있었구나...

“자리가 나서 말씀드리려고 전화 걸었는데...”

“아, 그랬어요? 핸드폰 두고 갔었거든. 뭐 마실래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다면서, 그는 음료의 주문도 픽업도 최홍서는 하지 못하게 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간혹 있긴 한데, 그래도 멀리서 수군거리는 정도니까’라며 매번 자신이 건물 안을 들락거렸다.

아마도 항상 수행원들이 해줬을 일을 직접 하는 그에게 미안해서, 최홍서는 그때마다 어깨너머로 건물 내부를 힐끔거리며 그의 동선을 눈으로 좇았다.

음료와 케이크를 올린 트레이를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온 그는 최홍서를 내려다보며 웃음기 섞인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라니까? 홍서 씨가 연예인이 아니었어도 내가 했을 거고, 홍서 씨는 안 시켜줬을 거니까.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요.”

자리에 앉아서는 모자 위를 또 꾹꾹 누르면서 낮춘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만 쳐다보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엄청 귀엽긴 하지만.”

“아저씨가 혹시 실수하지 않는지 감시한 거예요. 별로 해본 적 없는 일일 테니까.”

“안타깝지만 동네 산책하다가 혼자 카페에도 자주 가거든요?”

“진짜요?”

놀라서 진지하게 되묻는 최홍서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으이구, 하며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케이크 한 조각쯤은 먹어도 살 안 찐다며 그가 주문해 준 치즈 케이크를 포크로 허물어뜨리면서, 최홍서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오늘, 서초동으로 가세요?”

“그러려구요. 요즘은 주말에도 거의 서초동에 있지.”

그는 분당에도 집이 있었다. 원래는 출근을 하지 않을 때는 보통 분당에서 지냈었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주말에도 서초동에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분당으로 가면 나와 멀어지니까. 언제든 나와 만날 수 있도록 대기하기 위해서.

촉촉하고 폭신한 케이크를 가득 퍼 올렸던 포크를 내려놓고, 옆에 앉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경치를 감상하는 자리라 동성끼리 와서 나란히 앉아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이었다.

“저 오늘, 재워주시면 안 돼요?”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했다. 최홍서의 표정과 목소리는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불안해요’라고 말하며 몸을 던지듯이 말했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재워달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던 이해성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장난으로 반응했다.

“홍서 씨야 언제든 환영이죠. 내가 없을 때도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돼요.”

하지만 오늘은 그가 피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손님방에서 말구요.”

“......”

“아저씨 침실에서... 자고 가도 돼요?”

욕실에서 나왔을 때, 그는 TV 앞 소파에 앉아있었다.

화면에서는 분위기를 깨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생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최홍서가 출연했던 예능이었다. 깊이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그의 시선은 딱히 TV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홍서의 인기척을 알아챈 그가 순간 무표정을 바꾸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를 끄고 얼른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도 잘 말렸어요? 음, 보송보송하게 잘 말렸네. 착하다.”

머리카락을 잘 말린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그에게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유년 시절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파자마를 헐렁하게 걸친 최홍서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미안한 듯이 말했다.

“홍서 씨 전용 파자마도 준비해 둘까? 앞으로 자주 올 텐데 매번 내 거 입히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아저씨 거 입고 싶어요. 그게 더 좋아요.”

최홍서의 분명한 표현에 그는 커다란 손으로 입 주변을 문지르면서 쑥스러움을 감추려 했다.

“뭐... 홍서 씨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침실에서, 샤워한 후의 최홍서가, 자신의 파자마를 입고 있으면... 평소와 달리 그가 쑥스러움이 많아진다는 것을 최홍서는 이제 알고 있었다.

“모처럼인데 영화 한 편 보고 잘까요? 홍서 씨, 다음엔 <이터널 선샤인> 보고 싶다고 했었죠?”

<이터널 선샤인>이 어느 플랫폼에 있었더라... 라고 덧붙여 중얼거리면서, 그는 다시 리모컨을 찾았다.

최홍서는 그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같은 침대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려는 게 분명했다.

“영화는 다음에 보면 안 돼요? 벌써 12시고 조금 피곤한데.”

“아... 그래요?”

리모컨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리모컨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그의 시선이 어지럽게 허공을 더듬었다. 그는 굉장히 심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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