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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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사장님이 너한테 계속 전화해도 통화 중이라고 나한테 거셨어. 받아봐.”

“사장님이?”

얼떨결에 전화를 건네받은 최홍서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저예요.”

[부사장님하고 통화 중이었어?]

“…네.”

신경질적인 호통 소리가 먼저 덤벼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이보다 부드러울 수 없는 어조였다.

얼마 전부터 최홍서를 대하는 명 사장의 태도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기는 했다. 이해성과 만나던 초반만 해도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50억 운운했던 명 사장이 이렇듯 꼬리를 내린 이유야 묻지 않아도 뻔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VIP들처럼 돈을 내고 최홍서를 가지고 놀 생각일 거라 예상했던 이해성이 최홍서에게 끔찍이 공을 들이며 예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이해성의 사회적 지위가 VVIP라 해도 최홍서라는 상품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 이상, 명 사장에게는 그다지 득 될 게 없었다. 최홍서를 돈벌이 수단으로밖에는 보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까.

모처럼 이해성 같은 거물과 연이 닿았으니 인맥을 쌓아두려는 목적일까? 몸 팔아서 벌어들인 푼돈을 먹고 털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상대라서?

실제로 지금도 이래저래 UB가 이해성의 덕을 보고 있기는 했다.

〈크림 맨션〉 투자를 받아 최홍서가 무사히 주연을 맡을 수 있었고, 한강 전망 빌라의 렌트 비용으로 매달 천만 원 가까운 돈을 비용 처리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거의 관리비만 지불하는 수준으로 빌리고 있었으니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너 출장 중이라 부사장님이 많이 보고 싶어 하시지?]

이해성과의 관계에 대해 명 사장에게서 그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잠깐 생각에 빠져있었던 최홍서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흠칫 깨어나 말을 돌렸다.

“저는 왜 찾으셨어요?”

[아, 그래. 그게 말이다…]

명 사장은 답지 않게 입맛을 다시고 한숨을 쉬어가며 뜸을 들였다.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르듯이 말했다.

[그 개새끼, 등판하셨다.]

“네?”

그 개새끼라니.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되묻기는 했지만, 최홍서의 본능과 무의식은 이미 그 답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 씨발. 상해에 처박혀서 한동안 잠잠한가 했더니… 한서 그룹에서 이번에 방콕 무슨 호텔을 인수한다는데, 거기에 숟가락 좀 얹으려고 요새 자주 서울을 드나들더니만…]

“……”

[너를 찾더라.]

어딘가에 좀 앉아야 할 것 같은데, 뭘 좀 붙잡아야 할 것 같은데. 발이 묶이기라도 했는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뭔 먹던 밥 타령을 하면서, 잘 키워달라고 맡겨놓고 꼬박꼬박 거액의 교육비라도 보내온 후견인인 척 주절거리는데… 내 진짜 토가 쏠려서.]

명 사장이 이서경 전무의 작태에 분개하는 개소리 따위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 씹새끼는 연예인들 모니터링할 시간에 경영에나 더 신경 썼으면 지 누나가 벌써 옛날에 계열사 하나는 내줬지. 딱 봐라. 이제 얼마안 가서 지 동생한테 추월당할 테니까.]

“그, 그래서요… 그래서 사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결국 최홍서는 명 사장의 헛소리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쫄 거 없어. 우리가 뭐 예전의 우리냐? 부사장님이 계신데우리가 쫄릴 게 뭐가 있어?]

너와 내가 어떻게 ‘우리’로 묶일 수가 있냐고.

네가 어떻게 감히 이서경을 피하려고 그 사람 뒤에 숨을 생각을 할수가 있냐고.

명 사장의 멱살이라도 비틀어 쥐고 미친놈처럼 덤벼들고 싶었지만, 그런 것을 따지면서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정신조차도 없었다.

[네가 요즘 아주 잘나가서 거의 국내에 있질 않는다고, 일단 그렇게 둘러댔다. 아예 마주칠 일도 없도록 철저히 관리할 거긴 한데, 그 새끼가 널 찾는 거, 알고나 있으라고.]

“……”

[너도 알지만, 워낙 집요한 변태 새끼잖냐. 당분간 진짜 해외 스케줄 위주로 돌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부사장님하고는 문제없겠지?]

혹시라도 최홍서와 이해성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을까, 이해성 같은 거물을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비굴한 목소리.

최홍서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선 채로 고개만 돌려 창밖을 보았다.

호찌민에 눈이 올 리가 없는데, 금방이라도 함박눈을 쏟을 듯 하늘이 희부옇게 내려앉아 있었다.

@

고등학교 졸업 직후, 최홍서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었다. 술집이 몰려 있는 유흥가 골목의 편의점이라 야간 시급이 다른 곳보다 더 후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취미도 없으니 대학을 안 보내준 것에는 아무 불만도 없었다. 등록금만 내면 입학이 가능한 지방의 꼴통 대학에라도 들어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했어도, 집안 형편을 뻔히 알기에 입 밖에 내본 적도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뒷자리 구석에 앉아 시간을 죽이다보니 어느새 학교 밖으로, 세상 속으로 떠밀려 나와 있었다. 제 손에 아무 무기도 없음을 그제야 알았다.

어떠한 종류의 교육도 하지 않고, 기술 하나 가르치지 않고, 20년 내내 방치만 해두었던 부모는 졸업하기가 무섭게 돈을 벌어오라고 닦달이었다. 기다리지 않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당시의 최홍서에게는 편의점 알바 정도였다.

“홍!”

폼 나는 양복을 쫙 빼입은 새파랗게 어린 사내놈 하나가 편의점으로 들어오며 최홍서에게 아는 체를 했다. 3월 초, 아직은 겨울에 가깝게 낮은 기온이 카운터까지 훅 끼쳐 들었다.

“말보로 레드 한 갑.”

호스트바에서 일한다는 동창 놈이었다.

녀석이 명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카운터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늘 일 끝나고 뭐 하냐?”

그리 친하지도 그렇다고 서먹하지도 않은, 여러 명이 어울려 노는 무리 중 하나였다.

“뭐 하긴. 밤새 일하니까 집에 가서 자야지.”

“청춘을 그렇게 썩혀서야 되겠냐? 우리 가게에나 놀러 와라.” “너네 가게?”

“우리 마담 형이 진짜 사람 좋거든. 손님 별로 없는 날은 친구들 불러서 빈 테이블에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놀라고 그래. 다른 놈들도 벌써 몇 번 갔었어.”

“공짜로?”

최홍서의 질문에 녀석은 킬킬 웃었다.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어떡하냐고. 자기는 대단한 어른이라도 된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술은 우리가 슈퍼에서 사 가는 거지. 그래도 장소 제공해 주고 노래방 기계 꽁이잖아. 애들 오늘 온다는데 콜?”

집에 가봤자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동생은 공부를 제법 잘했는데, 최홍서가 귀가하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신경질을 부려댔다. 굳이 칼같이 귀가해야 할 이유가 없긴 했다.

“그래. 어디로 가면 되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실제로 가본 호스트바라는 곳은 상상처럼 너저분하지도, 음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고, 일하는 선수들도 전부 말끔하게 명품 옷을 입고 매너도 좋아서 연예인들 같았다.

게다가 동창의 말처럼 ‘마담 형’이라는 사람이 정말 좋은 형이었다.

최홍서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동네 형처럼 편하게 대해주었고, 밑에 데리고 있는 다른 선수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다. 생활 습관이나 돈 씀씀이를 가지고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잔소리를 하는 모습이 최홍서의 눈에는 진심으로 그들을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배운 것이 없고, 돈이 없고, 시간만 많은 어린놈들은 돈 잘 쓰고 잘 챙겨주는 형에게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니들은 절대 이 바닥에 기웃거리지 마라. 어? 민준이 너도 인마, 모은다는 돈만 딱 모으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고. 나야 이미 늦은 나이지만, 니들은 희망이 있잖냐.’

마담 형은 가게에서든 외부에서든 만나서 놀 때마다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그 사람 좋은 마담 형의 모든 말과 행동이, 자신을 화류계에 깊숙이 빠뜨리기 위한 철저한 계략이었다는 것을.

급속도로 친해진 어느 날, 마담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심상치 않은 목소리였다.

[홍서야, 너 지금 시간 안 되냐? 오늘 편의점 쉬는 날이지 않나?]“왜요?”

[아니 무슨 뜬금없이 수요일에 손님이 미어터지고 있다 지금. 우린 보도방에서 데려온 선수는 안 쓰잖냐. 잠깐 와서 머릿수만 채워주면 안되겠냐? 형 진짜 한 번 살려준다 셈 치고. 어? 이러다 선수도 안 차려놓고 영업한다고 가게 소문 잘못 나게 생겼다. 사례는 내가 진짜 잘 쳐줄게.]

그때쯤에는 이미 호스트바에 드나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저 친한 형이 운영하는 가게였고, 선수들하고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으니까.

“초이스 볼 때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하… 내가 거짓말은 못 하겠다. 혹시 손님이 너를 초이스 할 수도 있으니까. 근데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손님한테 잘 얘기해 줄게. 초짜니까 살살해 달라고. 진상 손님이면 바로 빼준다. 진짜 제발 좀 부탁한다 홍서야.]

“알았어요. 지금 준비하고 나갈게요.”

[진짜지? 진짜지? 야… 진짜 살았다. 아무리 임시라도 너 같은 사이즈가 와서 서 있어 주면 내 면이 서지. 내가 진짜 섭섭하지 않게 용돈 챙겨줄게!]

“형한테 그동안 술이며 밥이며 얻어먹은 게 얼만데요. 사례는 됐어요.”

[이 새끼 의리 봐라.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진짜 정확하다니까!]

실제로 그날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호스트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졌을 정도였다. 마담 형이 의도적으로 세팅해놓은 자리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 뒤로 그런 부탁이 조금씩 잦아졌고, 최홍서는 금세 단골이 붙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이 호스트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저 곤란에 처한 친한 형을 가끔씩 도와주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마담 형은 정산을 할 때도 항상 최홍서는 정식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른 선수들과 구분을 지었기 때문에, 최홍서의 판단력은 더욱 흐릿해졌다.

주말에 이틀 일하고도 편의점에서 한 달 내내 일한 만큼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최홍서는 성실하기까지 했다. 편의점 출근을 일주일에 두번으로 줄이고, 서너 번은 호스트바에 나가서 일하게 됐을 무렵. 최홍서는 제법 큰돈을 집에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 이 많은 돈이 다 어디서 났어?”

부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상적인 일을 해서 벌었다고 하기엔 너무 큰돈이었다. 둘러대봤자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호스트바에서 웨이터하고 있어. 거기 손님들이 팁을 엄청 주더라고.”

“호스트바?”

밥상 맞은편에서 국을 뜨던 아버지가 눈썹을 치뜨며 물었다.

“내가 호스트는 아니고 그냥 웨이터야! 재떨이 갈아주고, 술 나르고, 가끔 손님들이 진상 부리는 것만 받아주면 되는 거라 일도 그렇게 안 힘들어! 지저분한 일 절대 아니야!”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엄마에게서 돈 봉투를 빼앗아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들어 댔다.

“세상천지에 남한테 해 끼치는 일 말고 지저분한 일이 어디 있냐? 직업에 귀천이 어딨어? 너처럼 젊고 사지 멀쩡한데 빈둥빈둥 노는 것들보다야 훨씬 훌륭하지!”

“……”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웨이터라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자식이 화류계에서 일한다는데, 걱정조차 하지 않는 부모…

입맛이 뚝 떨어져 숟가락을 내려놓는데, 엄마가 이쪽으로 썩 가까이 붙어 앉으면서 최홍서의 눈치를 살폈다.

“웨이터가 이 정도면, 그… 호스트로 일하면 얼마나 번다니? 이것보다 훨씬 많이 벌겠지?”

“……”

“너야 배운 것도 없고, 부모도 이 꼴이니… 잠깐 크게 모아서 장사밑천이라도 마련하면… 그게 살길이지 않아?”

최홍서가 묵묵부답으로 있으니 답답했는지 이번에는 아버지가 거들고 나섰다.

“그래, 대전 아저씨네 부부가 하던 돼지갈비 식당 있지 않냐? 큰길가에 있는. 그 장사 잘되는 가게를 남한테 넘기고 시골로 내려간다더라. 그것만 네 엄마하고 내가 어떻게 인수할 수 있으면 우리 집도 한숨 돌리는 건데 말이다…”

결국 최홍서의 살길을 찾아주려는 이유도 아니었다.

“호스트를 해도 그런 큰돈은 갑자기는 못 만들어요.”

“아버지가 그 집 아저씨하고 친하시잖니. 우리 집에서 인수한다고 하면 할부로라도 해주실 거 같은데. 그 집이 돈이 넉넉하니 인품이 좋으시잖아.”

“알았어요. 가게에 한번 얘기해 볼게요.”

그래도 부모라고, 돈을 가져다줄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리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최홍서가 돈을 나르는 동안에는 집안에 큰소리도 나지 않았고, 가끔은 남들 마냥 화목해 보이는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 깊은 진창, 악취를 풍기는 거대한 올가미가 멀지 않은 곳에서 최홍서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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