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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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당근판매자님:어중간한 시간이지만 뭐 좀 먹으러 왔는데

당근판매자님:센 강 바로 옆이라 전망이 너무 예뻐요

당근판매자님:〈사진 전송 완료〉

당근판매자님 : 오늘 일정도 끝나서 팀원들과 낮술도 겸할 생각이에요

당근판매자님:나랑 놀아주는 사람이 오늘 바쁘니까

당근판매자님 : 홍서 씨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대신 다른 사람들 귀찮게 하려구요

당근판매자님:잘했죠? (오후 11:08)

당근판매자님:〈사진 전송 완료〉

당근판매자님:음식이 나와서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당근판매자님:다들 젊은 애들 흉내 내는 거냐고 놀리네요ㅎㅎ

당근판매자님 : 비즈니스 런치 때도 내가 음식 사진을 찍으니까

당근판매자님 :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어요. 홍서 씨 덕분이죠ㅎㅎ (오후 11:42)

당근판매자님 :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난 이제 객실로 왔어요

당근판매자님 : 직원들이 2차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당근판매자님:눈치 없는 상사가 되고 싶진 않기 때문에 (오전 1:36)

당근판매자님:여긴 이제 7시쯤이라

당근판매자님 : 레이어드 홍서 방콕 공항 출국 영상 찾아보면서

당근판매자님 : 객실에서 혼자 한 잔 더 하는 중

당근판매자님:〈사진 전송 완료 1〉

당근판매자님:〈사진 전송 완료 2〉 (오전 1:52)

당근판매자님: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오늘 나한테 혹시 연애 중이냐고 물었어요ㅎㅎ

당근판매자님 : 팀원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내가 침묵해서 괜히 분위기 어색해졌었죠ㅎㅎ

당근판매자님 : 일부러 그랬어요

당근판매자님 : 연애 비슷한 거 하고 있다고 티 내고 싶어서 (오전 2:13)

당근판매자님:이제 우리, 세 번 남았네요

당근판매자님 : 다섯 번만 만나 달라고, 괜히 센 척했어 (오전 2:24)

저장명은 ‘당근판매자님’으로 돼 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메신저 확인을 자주 못 할 수도 있다고 그에게 미리 설명해뒀었는데, 그사이 그가 보낸 메시지들이 착실하게 쌓여 있었다.

화보 촬영 후에 그의 자택에서 만났던 날. 최홍서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는 처음으로 셀카를 보내줬었고, 이후로는 요청하지 않아도자주 사진을 보내게 되었다.

뭔가를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고했고, 거울 앞에서 찍은 출근복장도 꼬박꼬박 보내주었다. 하지만 셀카 실력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 셀카 찍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그는 요령이 없다기보다 배우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혼자 카메라를 쳐다보며 폼 잡는 쑥스러움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파리의 이국적인 경치, 회식에서 먹은 요리, 객실에서 맥주캔을 들고 찍은 셀카, 팬들이 촬영해서 업로드한 최홍서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태블릿.

몇 시간 동안 보낸 사진들 사이에서 그의 셀카는 단연 확 눈에 띄었다. 아래에서 위로 찍은 데다가 초점이 맞지 않아 흔들리기까지 한 사진이었다. 그런데도 깊숙이 자리한 이국적인 눈매와 곧고 높은 콧대,선명한 입술 선 덕분에 조금도 굴욕적이지 않았다. 셀카 실력은 형편없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생긴 얼굴이라 다행이었다.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와 꾸준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참모진 중에는 그와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이었고 유학 생활도함께한 오랜 친구, 그에게는 스승님 격인 ARA의 오랜 간부 등도 섞여있다는 점. 그래서 뭇사람들의 상상처럼 그의 말 한마디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해성 같은 사람도 평범한 대화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날씨 얘기,음식 얘기, 회의가 지루했다는 얘기 등등…

그런 평범하다 못해 시시한 얘기들인데도 그의 메시지를 읽다 보면자꾸만 웃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 시시한 얘기들 한 줄 한 줄이 너무재미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약속했던 다섯 번의 만남 중 이제 세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바라보다, 답장을 입력해 나갔다.

나:그런 영상은 찾아보지 마세요ㅠㅠ

나:노 메이크업에 근접 촬영이라 못생기게 나오는데.. (오전 1:36)

당근판매자님:홍서 씨 화장 안 한 얼굴도 이미 다 봤는데

당근판매자님:왜 거짓말해요?

당근판매자님 : 홍서 씨 직업이 가수라서 이런 방식으로도 소식을 알 수 있고 나에겐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당근판매자님 : 아, 집들이는 끝난 거예요? (오전 1:40)

나:아뇨 잠깐 바람 쐬러 베란다에 나왔어요

나: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아보는 것도 처음인데

나:베란다에서 한강이 보여요. 신기해요 (오전 1:42)

당근판매자님:집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당근판매자님 : 홍서 씨한테 답장도 받았으니까 이제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해야겠어요

당근판매자님:나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시간 보내요 (오전 1:45)

나:피곤하시죠? (오전 1:45)

당근판매자님 : 피곤하냐고 물어봐 준 것만으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데

당근판매자님:이거 무슨 마법이에요? (오전 1:46)

나:진짜 제가 피곤하냐고 여쭤보면 피로가 풀리세요? (오전 1:46)

당근판매자님 : 그럼요^^ 내가 걱정돼서 물어봐 주는 거니까 (오전 1:47)

나 : 피곤하시죠? 피곤하시죠? 피곤하시죠? 피곤하시죠? 피곤하시죠? (오전 1:47)

당근판매자님 : 지금 이게 영상 통화였으면 좋았을 텐데

당근판매자님:어떤 표정으로 이런 깜찍한 장난을 쳤을까

당근판매자님:같이 있을 땐 안 해주면서^^ (오전 1:49)

귀여워하는, 흐뭇하게 지켜봐 주는,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 특유의 따뜻한 미소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연상에게도 어리광을 부리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고, 그런 것이 허락된 환경도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해성은 최홍서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모습들을 조금씩 끌어내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메시지에서만 과감하게 장난을 시도해 보곤 하는 정도였지만, 그와의 관계는 분명 발전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과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가벼운 장난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그의 메시지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잡아 뜯던 최홍서는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나:얼른 씻고 편하게 쉬세요

나:손님들 돌아가고 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오전 1:53)

난간에 몸을 기대고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렸다. 지난 며칠은, 그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는 충동과 그렇게 해봤자 결말은 뻔하다는 체념 사이의 갈등이었다. 고지운의 스폰서 얘기를 듣고 난 후에 느낀 서늘한 느낌에 그 갈등이 더 진해진 듯했다.

“여기서 뭐 해.”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최홍서는 흠칫 굳어 옆을 돌아보았다. 정지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표정에 경계를 풀었다.

“어? 잠깐 바람 쐬고 있지, 뭐… 형 쟤들 불편해서 결국 도망 나왔구나?”

최홍서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씩 웃어 보였다.

“도망은 무슨. 술 좀 깨려고 나왔다.”

강바람을 맞으며 최홍서의 〈크림 맨션> 캐스팅 얘기를 나누던 중, 정지인이 최홍서의 뒷머리를 가볍게 흩트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도… 그렇게 댓글 많이 봐?”

“어?”

“재우가 너 핸드폰 붙잡고 산다고 걱정하더라.”

“아… 재우 형 사서 걱정하는 건 진짜 알아줘야 해. 아냐, 요즘은 댓글 잘 안 봐. 댓글 보고 있을 시간도 없어. 바쁘니까 그거 하나는 좋아.”

“그럼 뭐야. 진짜 연애라도 해?”

“……”

연애라는 표현에 최홍서는 소리 없이 웃었다.

팀원 중 한 명이 혹시 연애 중이냐고 물었다던 이해성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형은… 일 때문에 만난 사람하고… 얽힌 적 있어?”

“얽히다니. 감정적으로?”

“뭐, 그런 비슷한…”

“아니, 없는데. 진짜 누구 만나는 거야? 배우? 아니면 가수?”

“아니, 연예인은 아니야.”

발코니의 난간에 등을 기대고 있던 최홍서는 몸을 돌려 강을 마주보았다.

“그냥… 좀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는데, 솔직히 연애… 그런 걸로 연결될 리가 없는 사람이라서.”

VIP와 아이돌 그룹의 멤버. 그것도 동성.

그 관계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제는 이해성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성의 아이돌인 것만이 아닌, 명 사장에게 약점을 잔뜩 잡혀 있는 노예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배운 게 없어도, 그런 큰 비밀을 가진 관계가 잘 풀릴리 없다는 정도는 알았다.

“연애를 할 수가 없는 사람은 또 뭐야. 하면 하는 거지.”

정지인의 명쾌한 대답에 최홍서는 실없이 피식거렸다.

“그런가. 내가 그동안 일만 했지… 이런 쪽은 진짜 잘 모르잖아. 하긴, 그건 형도 마찬가지인가?”

정지인의 말처럼 단순한 문제라면 좋았을 것이다. 혹은, 그에게 끌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섯 번의 만남이 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다가, 지갑 속에 잘 넣어둔 그 명함을 되돌려주기만 하면 됐을 테니까.

약속한 다섯 번의 만남 중에 세 번밖에 남지 않았다.

세 번이나가 아니라, 세 번밖에.

세 번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이미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그가 빨리 출장에서 돌아왔으면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걸원했다.

눈앞의 강이 유난히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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