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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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사장에게 소속 연예인은 쉽게 말해 돈벌이 수단, 즉 상품이었다. 고객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상품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명 사장이 자신을 추켜세우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최홍서는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사실은 사실이죠, 뭐. 제가 홍서 1, 2년 봐왔나요? 여기 에디터님, 메이크업·헤어 실장님들, 스타일리스트 실장님… 전부 홍서 데뷔 때부터 예쁘게 보셨던 분들인데요. 저희 다 요즘 홍서가 잘돼서 너무 뿌듯하잖아요. 사장님도 오래 뒷바라지하신 만큼 살맛 나시겠어요.”

“다 여기 계신 실장님들 덕분입니다. 그나저나… 요즘 팬들이 홍서 섹시한 모습을 많이 기대하고 있어서, 실장님, 그런 분위기의 컷 좀 살짝 포함시켜 주시면…”

“아, 네. 팬들이 좋아하는 섹시홍서, 뭔지 알죠.”

포토그래퍼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명 사장은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 보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우리 실장님! 뭘 좀 아신다니까. 출출하시죠? 조촐하게 간식 챙겨왔으니까 맛있게 드시고, 남은 촬영도 잘 부탁드립니다, 실장님.”

“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포토그래퍼를 붙잡고 한바탕 영업을 펼친 명 사장은 뒤쪽 메이크업 대기실에 앉아있는 최홍서에게로 다가왔다.

“커피 말고 물 마셔, 물․ 수분 빠져나가서 못생겨져.”

“피곤해서 좀 버텨보려고 그래요.”

“어이구, 톱스타님, 피곤하세요? 일 년 전만 해도 스케줄에 치여 피곤한 놈들 부러워했던 걸 생각해 봐.”

실장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어투였다.

“바쁜 게 불만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피곤하다구요.”

“이번에 베트남 스케줄만 다녀오면 유엔빌리지로 이사 들어갈 놈이뭐가 피곤해? 나 같으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안 자도 쌩쌩하겠다. 너 이제 나보다도 좋은 집 사는 거야, 인마.”

“어머, 사장님, 홍서 유엔빌리지로 이사해요?”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스타일리스트 실장이 유엔빌리지라는 말에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자랑하고 싶었던 게 뻔한데도, 명 사장은 쑥스러운 척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얘기했다.

“아… 하하… 네, 이번에 ‘레이어드’ 애들이 숙소를 옮기게 됐네요.”

“축하해, 홍서야! 그런 좋은 일을 왜 말을 안 했어?”

“홍서야 워낙 떠벌리고 다니고 자랑하고 그런 애가 아니다 보니까… 하하…”

최홍서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명 사장이 최홍서의 어깨를 툭툭두드리며 대신 나섰다. 그리고 미안한 척하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덧붙였다.

“이런 작은 회사에 들어와서 몇 년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숙소를 옮겨주게 됐네요.”

“사장님도 그동안 뒷바라지하시느라 마음고생하신 건 똑같죠, 뭐.유엔빌리지 정도면 아이돌 숙소로는 최상급인데. 강남이나 성수동하고도 맞먹잖아요. 그래서, 한강 전망이에요?”

“네, 뭐… 무리는 조금 했지만, 유엔빌리지 하면 한강 전망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명 사장의 손에서 벗어나려, 최홍서는 선반 위의 커피를 잡는 척 일부러 더 깊숙이 몸을 숙였다. 숙소 비용은 어차피 정산 금액에서 차감되는 돈인데, ‘레이어드’를 위해 희생이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홍서야, 부럽다!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내 주변에도 네 팬이라는사람들 진짜 확 늘었어. 피부에 와닿더라.”

스타일리스트는 친동생의 일처럼 대견해하고 기뻐하며 최홍서의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실장님들께서 많이 챙겨주신 덕분이죠. 저 무명 때부터 자주 불러주셨잖아요.”

“네가 하는 짓이 이쁘니까 불렀지. 일도 잘하고. 너는 더 빨리 떴어야 돼.”

자리를 떠난 스타일리스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명 사장은 팔꿈치로 최홍서의 팔을 툭 쳤다.

“유엔빌리지로 옮긴다니까 사람들 반응 봐라. 어? 이래서 사람은 뜨고 볼 일인 거고, 돈은 벌고 볼 일인 거야. 네가 어디에 살고, 뭘 타고 다니고, 뭘 입고… 그리고, 누구랑 어울리는지가 네 가치인 거라고.”

애초에 유엔빌리지로 숙소를 옮기자는 것도 명 사장의 제안이었다. 좋은 숙소로 옮기면 그만큼 정산액이 줄어들 뿐이라 최홍서는 내키지 않았었다.

인기가 생기면 그에 걸맞게 보이는 모습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법이라며 명 사장은 멤버들부터 부추겼고, 지금 숙소와 비교도 되지 않는, 넓고 고급스러운 후보지들의 사진을 보자마자 멤버들이 이사에 동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부촌의 고급 빌라 월세를 새로운 빚이라고 여기는 건 최홍서뿐이었다.

“참, 부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거 잊지 말고.”

“……”

“말로만 때우지 말고, 이번에 베트남 다녀올 때 면세점에서라도 뭐하나 사 들고 와. 부사장님이야 없는 게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성의 표시를 해야 더 이뻐 보이는 거야.”

“무슨… 인사요?”

“새 숙소, 인마. 부사장님이 아주 좋은 가격에 렌트 주신 거야.”

금시초문이었다. 최홍서의 손안에서 커피컵이 우지끈 구겨졌다.

“안 그랬으면 지금 니들 수입에 그런 집이 가당키나 하냐? 이제야 겨우 투자금 회수한 주제에? 그렇게 계산기가 안 돌아가?”

“사장님이 부탁했어요? 부사장님한테?”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숙소 옮기는 얘기하다가 내가 적당한 집이 없어서 속 태우는 것 같으니까 부사장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신 거지. 뭘 부탁을 해? 이 새끼가 말을 이상하게 하네?”

“숙소 옮기는 얘기를 부사장님하고 왜 하는데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홍서는 어금니를 꽉 물어야 했다. 머리카락을 흩트리거나 얼굴을 훑어내고 싶어도, 촬영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애꿎은 아랫입술만 긁어댈 뿐이었다.

뱀 같은 눈으로 주변을 스윽 훑어본 명 사장이 최홍서의 어깨를 힘주어 내리눌렀다. 그리고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억눌러가며 말했다.

“아주 감사하게도, 부사장님이 너에게 관심이 많으셔. 네가 어디서지내고 있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는지…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황송하게도, 이 새끼야. 너한테 직접 물어보면 안 받으려고 할까 봐 나한테 물어보시는데,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해야 되냐?”

“……”

“막말로 그 집에 네가 들어가서 살지 내가 들어가서 살아?”

한강 전망의 새 숙소는 월세가 적게는 몇백, 많게는 천만 원도 훌쩍넘을 만한 집이었다. 그런 고급 빌라를 아는 사람을 통해 좋은 가격에렌트했다고, 명 사장은 제 능력인 양 거드름을 피웠었다. 그 아는 사람이라는 게 이해성이었을 줄이야.

새 숙소가 이해성의 소유라면, 뒷일은 뻔했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렌트를 해주면서도 그는 UB가 제값을 치른 것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해줬을 것이다.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건 ‘레이어드’여도, 결국 명사장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부사장님이 그 정도로 너를 이쁘게 보셨다는 거잖아. 혹시 아냐?네가 여기서 더 분발하면, 그 집이 네 명의가 될지?”

“분위기 보니까 너랑 한 번으로 끝내고 싶으신 게 아닌 것 같아. 잠깐 접대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이해성 애인이 될 수도 있는 기회라고. 네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 것 같아?”

명 사장이 말하는 애인은, 이해성이 말했던 ‘남자 친구 후보’의 남자 친구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VIP가 자신의 전속으로, 고정적으로뒤를 봐주는 관계를 뜻했다.

명 사장이 이해성을 그런 놈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건 싫었다.

하지만 이해성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명 사장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건 더 싫었다.

명 사장이 최홍서의 등 뒤로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며 친근하게 말했다.

“홍서야, 많이도 안 바란다. 지난 7년 동안 네 뒷바라지하면서 고생한 공로를 생각해서, 딱… 50억만 해줘라.”

최홍서는 그 손을 떨쳐내기 위해 어깨를 힘껏 털어봤지만, 거울을통해 보이는 명 사장은 가소롭다는 듯 픽 웃을 뿐이었다. 오물 구덩이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덫 같은 손아귀가 다시금 어깨끝을 움켜쥐었다.

“네가 ‘레이어드’로 벌든, ‘접대’를 뛰어서 벌든… 뭐, 부사장님이 대신 내주시든… 너는 50억만 해주고 나가면 되는 거야.”

“……”

“네가 부사장님 무릎에만 앉아봐라. 나 같은 놈이 감히 너하고 눈이나 마주칠 수 있겠냐?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냥 과거의 추억은 50억속에 잘 묻어놓고, 각자 갈 길 가면 되는 거라고. 응?”

거울 속 명 사장이 히죽거리며 최홍서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너는 아직 예쁘고 몸뚱이 싱싱해서, 부사장님 같은 대어를 낚을 기회라도 있잖냐. 난 그런 신분 상승은 꿈도 못 꾼다?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판을 다 내가 깔아준 거잖냐. 나 아니었으면 넌 아직도 그냥 호스트바 선수였어.”

그 호스트바로 끌고 들어간 게 본인이라는 것은 명도훈의 기억 속에서 아예 지워진 것 같았다.

대들어봤자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대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난 네 팔자가 부럽기만 한데, 넌 맨날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

한심하다는 투로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은 명 사장은 사람들이 간식을 먹고 있는 테이블 쪽으로 사라졌다.

최홍서는 커피컵을 선반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쥐어뜯었다.

명 사장이 말하는 50억은 회사에 벌어다 주는 수익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최홍서가 명도훈에게 개인적으로 상납해야 하는 돈, 말하자면 ‘과거 청산 비용’이었다.

호스트바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명 사장은 돈이 급할 때마다 목돈도 아주 쉽게 빌려줬었다. 그건 사채나 다름없었다. 아니, 사채보다 더 고약했다. 몸까지 버려가면서 돈을 갚고 있는데도 계속 불어나는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이 돼서 큰돈을 만지게 되면 빚도 금방 갚을 수 있다는 꼬임에 새로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었지만, 연예인이 되고 나니 다시 또 새로운 빚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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