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크림 맨션〉의 오디션은 한 달 가까이 진행됐다. 최홍서가 맡았던황지우 역에만 1,000여 명이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3차까지합격한 지원자는 9명으로 추려졌고, 세 명씩 그룹을 지어 최종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최홍서는 그중 마지막 날에 배정되었다.
최종 오디션 장소는 특이하게도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최홍서도 과거에 제법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이런 곳에서 오디션을 치르기는 처음이었다. 그 어떤 유명 감독의 작품이라도 오디션 장소에 거금의 제작비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지원자들은 거실에서 대기했고, 오디션은 안쪽 서재에서 치러졌다.공간이 워낙 넓다 보니 세 명의 지원자는 서로 멀찍이 떨어져 각자 오디션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 최홍서는 원형 식탁이 마련된 공간에배정되었다.
한강과 그 너머의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으로가을볕이 따뜻하게 내리쬐었다. 여름은 완전히 지나가 버린 후였다.
동행한 용재는 감탄을 쏟으며 창가에서 서성거렸고, 최홍서는 이미입에 붙을 정도로 외운 대사를 입안에서 반복해 되새겼다.
“이해성이 투자하는 영화라 스케일이 다르긴 다르네요. 저 이런 좋은 방 처음 와봐요.”
“……”
갑작스럽게 귀에 들린 이해성이라는 이름은 최홍서에게 불시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서 대본의 귀퉁이가 구겨졌다.
“대표님이 그러시던데 이 방이 하룻밤에 2,000만 원은 한대요. 진짜 오디션 때문에 2,000만 원 주고 빌렸을까요?”
“글쎄요…”
맞은편 의자에 와서 앉는 용재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앞에 놓인 커피잔만 괜히 들었다 놓았다 했다.
“아, 형 오디션 준비하셔야 되는데 제가 너무 떠들었죠? 조용히 할테니까 집중하세요.”
첫 번째 순서였던 지원자가 오디션 중이었고, 최홍서는 다음 차례였다. 3차까지 통과하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돼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무섭게 몰두하기만 했는데, 막상 최종 오디션까지 오고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대본을 내려놓은 최홍서는 조용히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용재의시선이 따라붙었다.
“어디 가세요?”
“화장실이요.”
“또요? 10분 전에 다녀오셨잖아요.”
“한 번만 더 갔다 올게요.”
“다음이 형 차례니까 빨리 다녀오세요.”
손님용 화장실은,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간이 주방 옆에 준비되어있었다.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는 서재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비누로 깨끗이 손을 씻고, 심호흡을 하고,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바라보며 대사를 한 번 더 연습해 보았다.
“웬 윤혜안?”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여기 와 있다는 건 3차까지 붙었다는 거잖아. 그 발연기로 가능해?”
“죽다 살아나서 요즘 좀 화제잖아요. 그래서 붙여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 감독이? 말이 되는 소릴 해. 화제성으로 배우 뽑을 사람이었으면, 자기 작품도 벌써 흥행시켰지.”
조롱 조로 키득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즐거워 보였다. 제작사측에서 간이 주방에 마련해둔 간식을 먹으러 온 건지, 그들의 말소리에음식을 씹는 우물거림이 섞였다.
“우리 박 배우야 원래 정통 연기파니까 그렇다지만, 그럼 심 이사는흥행도 안 될 감독 작품에 애를 왜 출연시키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어?”
“흥행은 못 해도 외국에서 상은 잘 받잖아. 칸이나 베를린 영화제이런 데서 상 한번 받아봐. 급도 올라가고, 애 몸값이 확 뛴다고.”
그들은 오늘 함께 오디션을 보는 두 배우의 회사 관계자들인 것 같았다.
한 명은 어린 나이에도 연기파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였고, 다른 한명은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인기 배우였다. 잘나가는 배우들의 매니저들이라 그런지 중요한 오디션인데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럼 도대체 윤혜안은 왜 붙인 거야? 연기 못 하지, 인성 쓰레기지, 촬영장 분위기 흐린다고 이 바닥에 소문 자자한데.”
“지가 배우로 좀 될 것 같으니까 바로 팀 버리고 나갔던 꼬라지만 봐도 답 딱 나오잖아. 의리 없는 놈치고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는 놈 봤어? 일은 혼자 해? 누가 불러줘야 일을 하지. 이제 팬도 다 떨어져 나간 놈이.”
“설마 진짜 윤혜안이 되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목소리 뒤에 자신만만한 코웃음이 들려왔다.
“영화 진짜 말아먹고 싶은 게 아니면 윤혜안을 뽑겠어?”
X군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게 된 대신, 팀까지 버리고 나가더니 잘되지도 못한 ‘퇴물 발연기 배신자’라는 새 수식어가 최홍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차라리 자업자득이란 생각에 가까웠다.
쓴웃음을 피식거린 최홍서는 화장실을 나섰다. 열려 있었던 주방문 앞을 지나가려는데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굳이 불러 세웠다.
“어? 혜안 씨 거기 있었어요?”
이야기를 다 들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전부 들렸기를 바라는, 재미있어하는 얼굴이었다. 함께 있던 다른 한 사람도 뻔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디션 다음 순서죠? 같이 힘냅시다.”
“네, 힘내겠습니다. 다른 배우분들과 달리 저는 진짜 절박해서 꼭제가 됐으면 좋겠거든요. 그럼.”
까딱 고개를 숙이고는 복도를 빠져나갔다.
“저거 싸가지 여전하네.”
뒤에서 빈정거림이 들려왔지만 무시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코웃음도 아까운 개소리였다. 온갖 소리 다 지껄여가면서 신나게 뒷담화 해댄본인 싸가지도 좀 생각할 것이지.
윤혜안의 업계 평가가 좋지 않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친분도 뭣도 없는 타인이다 보니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 뿐. 그런데아마 생각보다 더 평판이 나빴던 모양이었다.
윤혜안은 최홍서보다 한 살이 어렸고, 데뷔로는 1년 선배였다. 둘다 성인이 된 후 데뷔한 케이스로, 팀에서 가장 맏형이었다.
아이돌 그룹 ‘티탄’으로 데뷔한 윤혜안은 최홍서가 속해 있었던 ‘레이어드’처럼 몇 년을 무명으로 보내야 했다. ‘티탄’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윤혜안이 배우 일을 겸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그건 분명했다.
연기력 논란은 그때부터 꾸준했다. 그러나 당시 참여했던 작품이상대적으로 깊이 있는 연기력을 그다지 요구하지 않는 시트콤이었기에어색하고 경직된 연기를 오히려 귀엽게 봐준 팬들이 생겨났던 것이다.작품 자체의 엄청난 인기도 한몫했다.
유명 작가와 PD의 시트콤에 인지도도 없고 연기 경험도 없었던 윤혜안이 어떻게 캐스팅되었는가? 거기에 대해서도 당시 웹상에서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이유야 뭐가 됐든 윤혜안의 인기에 힘입어 ‘티탄’도빛을 보기 시작한 건 분명 그 시트콤이 계기였다.
하지만 그 후 윤혜안은 아이돌 활동에 급격히 의욕을 잃었다. 한동안 ‘티탄’은 윤혜안을 임시로 제외한 채 5인 체제로 활동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윤혜안의 탈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윤혜안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최홍서는 솔직히 거기까지는 관심없었다. 그의 삶을 꼼꼼히 공부해가며 윤혜안인 척 살아갈 생각도 없었다.
다만, 윤혜안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상태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도 알 수없었다.
오디션에만 맹렬히 매달려왔던 지난 한 달간, 밤마다 눈을 감으며생각했다.
과연 내일 아침 나는 최홍서로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윤혜안으로 완전히 돌아가서 지금의 최홍서는 사라지거나, 아니면윤혜안의 육체와 최홍서의 영혼 모두 소멸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일이 한 번 일어났으니, 두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없었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최홍서가 사라졌는데도, 이해성은 이 영화에 대한 투자를 취소하지않았다. 중단되었던 영화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고 끊어져 버렸던 호흡이 다시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 것처럼.
언제 다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망설이거나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 따위도 하찮은 잔가지에 불과했다.
최홍서로 살았던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세상의 전부 같았는데…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댓글 한 줄에도 목이 졸리는 것 같았었는데…
“형, 왜 이제 오세요? 금방 우리 차례라고 대기하시래요.”
초조함에 최홍서를 부르러 가던 용재와 중간에서 마주쳤다. 조금전 그들의 조롱 덕분에 오히려 긴장감이 사라지고 독기만 남게 된 것같아, 고마울 지경이었다.
“미안해요. 거울 보면서 연습 좀 하다가…”
“솔직히 형 연기 진짜 무서울 정도로 늘었잖아요. 제가 잘은 몰라도한 달 만에 그렇게 느는 건 불가능하다니까요. 지금까지 몰랐을 뿐이지형은 분명히 천재예요. 합격하실 겁니다.”
“고마워요. 꼭 캐스팅되도록 할게요.”
최홍서의 말에 용재가 씨익 웃어 보였다.
“요즘 형은 진짜 딴 사람 같다니까요? 아, 좋은 쪽으로요!”
겉모습은 윤혜안이어도, 그 외 모든 것은 최홍서였다. 기억도, 습관도, 취향도, 쌓아왔던 실력도 그대로였다.
황지우 역할로 이미 한번 강우현에게 선택받은 경험이 있었기에,처음부터 오디션에는 이상하게 자신이 있었다. 강우현은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한결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고, 어떤 투자자도 강우현의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모습을 바꾸어 오디션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고 해도, 강우현 감독이라면 분명 그때마다 귀신같이 황지우 역으로 ‘최홍서’를 선택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윤혜안 씨, 들어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