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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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병원 건물 밖, 작은 산책로 끝에 마련된 흡연 공간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이 저물어가는 것을 아는지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했다.덕분에 도심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붕까지 달린 흡연 공간에는 대여섯 개의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한낮의 무더위 탓인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용재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다.

용재는 대각선 방향의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담배를 한 개비씩 손가락에 걸고 핸드폰을 함께 들여다보며 낄낄거리는 환자복 차림의 사내놈들이었다. 기껏해야 열예닐곱 살로밖에는보이지 않는 녀석들은 둘 다 머리카락이 노랗게 탈색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엄격한 단체 생활을 했기때문인지, 이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자꾸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피울 땐 피우더라도 당당하게 피울 일은 아니라고 훈계를 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다. 평소에는 미련할 만큼 순하다는 말을 듣는 성격인데, 유독이런 일에는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놔둬라. 요즘 애들 네 말 안 듣는다.”

“……”

누군가 어깨를 꾹 누르며 나타나서는 옆자리에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임 대표였다. 가서 한마디 하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용재는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으로 임 대표를 힐끔거렸다.

“저런 놈들은 네 덩치 보고도 겁 안 먹어. 뒤 없이 사는 놈들이거든.”

재킷을 벗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임 대표는 넥타이의 매듭을쭉 잡아당겼다. 더위가 성가신지,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인상의 얼굴이잔뜩 찌푸려졌다.

“의사는 뭐라고 그래요?”

“검사 결과에는 아무 문제가 없대.”

“그럼 왜…”

담배에 불을 붙인 임 대표는 허공으로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어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현상이래. 정신이라는 게 그렇다면서 뭐 어려운 말로 줄줄 늘어놓는데…”

그는 필터를 한 번 더 빨고는 이어 말했다.

“아무튼 이상이 없다니 그래도 다행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괜찮아질 확률이 높다니까.”

“……”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말란다. 자꾸 강요하지 말래.”

“강요하지 말라는 건…”

“자기가 최홍서라고 우기면 부정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용재의 바위 같은 옆모습을 쳐다보던 임 대표는필터를 잘근거리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근데 말이야…”

“네.”

“왜 하필 최홍서지?”

“……”

“혜안이 저놈, 최홍서하고 뭐 접점이라도 있었냐? 나 모르게 둘이친하기라도 했어?”

용재는 고개를 저었다. 본인도 그 점이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아니요. 형이 ‘티탄’에서 탈퇴하기 전에 음악 방송 같은 데서 오가다 인사나 나눈 게 전부예요. 그것도 몇 번 안 될걸요?”

“최홍서가 그때 잘나가고 있긴 했어도 아직 톱은 아니었잖아. 윤혜안 성격에 톱스타도 아닌 놈이 부러웠을 리는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하필, 굳이, 잘 알지도 못했던 최홍서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서로 닮았단 얘기가 좀 돌긴 했어요.”

“그랬어? 그 둘이 닮았냐? 잘 모르겠는데.”

임 대표는 더욱더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다 동안이기도 하고, 이목구비 생김새는 차가워 보이는데 웃으면 귀여워지는 게 닮았다고들 하나 봐요.”

임 대표는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혜안이 그놈이 가식적으로라도 카메라 앞에서 웃었던 게 언제 적얘기냐? 조 사장 만나고 나서부터는 어디 가서도 쎄하게 입 다물고 앉아서 도도한 척이나 했지. 어떻게든 그룹 띄워보려고 온갖 프로그램에서 시키는 건 다 하던 최홍서하고는 이미지부터가 다른데.”

코웃음을 친 임 대표가 필터를 입술로 가져갔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연기와 함께 뒷말을 뱉어놓았다.

“하긴, 최홍서도 그 산뜻한 얼굴로 X군이었지. 최홍서가 그 얼굴로 뒤에서 벌인 일들 생각하면, 둘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최홍서는 피해자인 걸로 결론 났잖아요.”

“넌 재판 결과라는 걸 믿냐? 재판이 피해자라면 피해자인 거야? 다싹이 있으니까 호스트바까지 간 거지, 진짜 순진한 애는 애초에 그런 바닥하고 연이 닿을 일이 아예 없거든?”

“그거야 그런데… 순진하지 않은 게 범죄는 아니잖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불만스러운 임 대표의 얼굴이 용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된 것도 명 사장이란 사람이 애초부터 작정을 하고 끌어들인 거잖아요. 그 후에도 아주 단계적으로 사람을 궁지로 몰아갔던데요, 뭐. 이미 약점 다 잡혀 있으니까 빠져나올 수도 없게 돼 있는 거구요. 그 수법에 당한 사람도 최홍서 한 명이 아니에요.”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막 단계적이라는 말을 다 쓰고 유식해졌냐?”

“그래도 제가 일하는 업계에서 터진 일이니까 유심히 지켜본 겁니다. 화류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런 식으로 이용당해도 싼 건 아니잖아요.”

용재의 소심한 항변에 임 대표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는 다 좋은데 너무 물러터져서 문제야. 이 바닥에서 일하는 놈이 그렇게 사람만 좋아서 어디다 써?”

그러고는 남의 일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였다.

“아무튼 뜬금없이 왜 하필 최홍서냐 이거지.”

“혜안이 형이야 본인 외모에 워낙 자부심이 있잖아요.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조금 신경을 쓰긴 했어도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달리 접점이라 할 만한 건 없었구요.”

“이왕 딴 사람이라고 우기려면 그놈의 성질머리나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윤혜안의 의식이 돌아왔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뿐이었다.

지난 며칠간 환자는 자신은 윤혜안이 아니라 최홍서라고 우겨댔다. 울기도 했고,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기도 했고, 제발 자기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환자는 뇌와 관련된 온갖 정밀검사와 심리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며칠째 저러고 있으니, 이젠 차라리 눈 감고 누워있기만 할 때가 더 나았단 생각까지 든다니까?”

짧은 욕설을 뱉으며 임 대표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런 무서운 말을 하지? 용재도 임 대표의 넓은 등짝을 힐끔거리며 뒤따라 일어났다.

벤치에 걸쳐두었던 재킷을 집어 들어 툭툭 털면서, 임 대표가 문득 맞은편 벤치를 향해 말했다.

“학생들.”

핸드폰 액정에 코를 박고 있던 두 사내놈이 반사적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임 대표는 싱글싱글 웃으며 턱짓으로 바닥에 버린 꽁초를 가리켰다.

“꽁초는 재떨이에 버려야지.”

“……”

“어서?”

녀석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라는 훈계라니.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락부락한 체형의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본 녀석들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느릿느릿 꽁초를 주워 재떨이에 던져 넣었다.

임 대표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병원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용재는 고개를 저으며 뒤를 따랐다.

병실로 올라가 보니, 환자는 창가의 수납장 앞에 서서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임 대표는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혜아… 아니, 그래, 홍서야. 오늘은 컨디션 좀 어떠냐?”

최홍서는 손을 멈추고 임 대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자신은 윤혜안이 아닌 최홍서라고 우겨도, 지난 며칠간 그 누구 하나자기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도 분명 윤혜안의 얼굴이었다.

이제는 스스로도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나는 정말 윤혜안인데, 사고를 겪으면서 뭔가 이상이 일어나 자기를 최홍서라고 철석같이 믿게 된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최홍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너무나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생년월일, 가족 관계, 데뷔 날짜나 활동 이력…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와 자신의 기억은 전부 일치했다.

반면, 윤혜안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던 간단한 정보나 소문이 다였다. 혹시나 해서 윤혜안의 위키 백과를 꼼꼼히 훑어보았지만 뭔가가 기억날 것 같은 느낌조차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는 동안, 최홍서는 이것 하나만큼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그들에게 나는 윤혜안이 아니라고 주장한들, 최홍서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기억들을 하나하나 털어놓는다 한들, 그 누구도 자신을 윤혜안이 아닌 최홍서로 봐줄 리 없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몸속에 타인의 영혼이 깃들 수 있다니.

자신 역시도 누군가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할 테니까. 별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못 나갈 얘기였다. 정신 병원에 가둬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병실에 앉아 최홍서의 인생 여정을 전부 적어 보여준다 하더라도, 저들의 생각이 바뀔 리는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최홍서라는 증거가 아니라, 최홍서의 스토커였다는 증거가 될 판이었다.

“저, 퇴원할게요.”

“퇴원을? 왜?”

“사지 멀쩡하고 머리에도 이상이 없다는데, 더 있을 이유가 없어서요. 병원비도 아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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