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사랑이란 말로도 모자란
시끌벅적한 LA 중심 브런치 카페에서 민우는 아까와는 다르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이호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서이호의 기분이 저렇게까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위로 치솟는 모습을 보는 건 민우로서는 처음이었다. 서이호는 언제나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타석에 서는 놈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서이호가 스프링 캠프 내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오직 제 연인 앞에서만 저렇게 변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다윤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축 처져 있던 서이호가 제 앞에 다윤이 나타나자마자 어찌나 그렇게 활짝 웃던지. 오래 떨어져 있던 주인을 만난 개도 저만큼 꼬리를 흔들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 부럽기는 했다. 얼마 전 연인과 헤어진 저로서는, 그것도 둘 다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완전히 메마른 상태로 관계를 끝낸 저와는 달리 저렇게 불타오르는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말이다.
“너는 어디 안 가?”
“……너 섭섭하게 그럴 거냐.”
그런 저를 마치 방해꾼 취급하는(물론 어떻게 보면 방해꾼이 맞긴 했지만) 서이호가 얄미워서 민우가 툴툴거렸다. 다윤이 그러지 말라며 서이호의 팔을 가볍게 쳤다. 이호가 그런 다윤에게 바로 고개를 돌려 다윤의 머리카락에 제 코를 마구 부벼 댔다. 저게 개가 아니고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서이호와 박민우는 이제 사흘 후면 본격적으로 시즌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려면 한 달 정도가 남았지만 한국으로 들어가 몸을 풀고 다른 구단과 연습 게임을 하다 보면 금방 가곤 했다. 그러니까 한 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아주 짧은 휴식 기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서이호는 이 기간에도 훈련을 하겠다며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제 연인이 저를 직접 찾아온 이 귀중한 시간, 절대 야구를 할 수 없다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찢었다. 저것도 참 대단히 미친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민우는 혀를 쯧쯧 찼다.
저야 뭐, 늘 이 짧은 기간에 미국 여행을 즐겼으니. 어쩌다 보니 이렇게 세 사람이 같이 다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일은 아무래도 혼자 다녀야겠다고, 이 커플 사이에 낀 불청객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민우는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신기하다.”
그때 다윤이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호가 그런 다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그냥, 이렇게 외국인들 많이 지나다니는 거 보는 거. 신기해.”
다윤이 그렇게 얘기하며 씩 웃었다. 처음으로 온 해외여행이라고 했다. 그동안 가 볼 기회가 딱히 없었다면서. 조금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보는 다윤의 얼굴을 이호가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는데 제 스케줄 때문에 그건 안 되고……. 이번 년도 시즌이 끝나면 꼭 최다윤과 함께 장기 여행을 가리라고 이호는 굳게 다짐했다.
“아쉽진 않아? 더 있고 싶을 텐데.”
“됐어. 나도 다음 주면 다시 영화 촬영하는 곳 가 봐야 하고…… 짧게나마 올 수 있어서 좋아.”
다 시호 누나 덕분이라며, 다윤이 웃었다. 시호 누나가 갑자기 찾아와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줬을 땐 정말 놀랐다면서 다윤은 그때 얘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시호가 다윤과 만나고 나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뭐, 나중에 연락해도 괜찮겠지 싶었다. 꼭 연락해서 이번엔 고맙다고 인사를 할 예정이었다. 이번 일은, 정말로 고마웠으니까.
“서이호 저놈도 처음일걸. 스프링 캠프 끝나고 잠깐 휴식 가지는 거.”
민우의 말에 다윤은 민우를 한 번, 그리고 이호를 한 번 봤다. 이호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한번 씩 웃어 보였다.
물론 그건 다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윤은 이호의 소식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집하는 서이호 덕후였으니까. 늘 스프링 캠프가 끝나면 바로 귀국을 해 다시 구단 연습장으로 향하는 서이호를 보면서 다들 괴물이라고 하던 게 지금도 떠올랐다.
그때의 이호를 떠올리며 다윤은 지금의 이호를 봤다. 사진 속으로도 느껴졌던 그때 이호의 메마른 감정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그 표정들. 지금은 딱 봐도 느껴졌다. 그가 얼마나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있는지. 제 감정에 충실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윤아.”
“응?”
한창 생각에 빠져 있다가 저를 부르는 이호의 목소리에 다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다윤의 눈가를 한번 가볍게 문지른 이호가 씩 웃으며 물었다.
“셰이크, 더 먹을래?”
“…어, 응. 내가 가서…….”
“아니야, 내가 가서 주문해 올게.”
이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고 다윤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야구 선수라 그런가, 외국인들 사이에 있어도 꿀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190센티의 장신인 데다가 얼굴은 또 어찌나 그렇게 잘생겼는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서이호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다윤아.”
“어?”
멍하니 서이호를 보고 있던 다윤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턱을 괴고 빨대로 휘휘 컵을 저으면서 다윤에게 물었다.
“비결이 뭐야?”
“……어?”
“서이호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나사 하나 빠지게 만든 거야? 나 저놈 근 몇 년간 보면서 저렇게 나긋나긋하고 다정해진 건 처음 보거든.”
다윤은 민우의 말에 그저 피식 웃었다. 글쎄, 비결이랄 게 있나 싶었다. 변화한 건 서이호의 의지지 제 노력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딱히 한 게 없기도 했고 말이다.
“난 솔직히 말하면…… 저놈 연애 못 할 줄 알았어. 머릿속에 온통 야구만 든 줄 알았지.”
“……많이 하지 않았어?”
다윤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서이호의 연애와 스캔들에 신경 쓰고 있던 건 다윤이었으니까. 다 알고 있다는 다윤의 눈짓에 민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통상적인 연애라면 뭐…… 여러 번, 아니 많이 있긴 했지. 저놈이 하도 잘생겨야 말이지.”
다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딜 가도 전혀 꿀리지 않는데, 주변에서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일단 저만 해도 제 인생 전체를 통틀어 서이호를 좋아해 왔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이호를 봤다. 카운터에 서서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는 서이호. 그 앞에 서 있는 직원의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주변 사람들만 해도 그랬다. 이호를 흘끔흘끔 보면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거. 외국에서도 그의 인기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한 듯했다. 표현이 적극적인 성향 특성상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다윤은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열심히 야구 연습을 하던 서이호와 주변에 늘 있었던 서이호 추종 무리들. 그중에는 저 같은 남자애들도 몇 명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래도 저렇게 본인이 푹 빠져서 정신 못 차리는 건 처음이야. 늘 상대 쪽에서 고백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 주고 그런 타입이었잖아, 서이호가? 그건 연애라고 볼 수 없지.”
“…….”
“그러니까, 네 힘이 대단하다는 거지. 그 서이호를 저렇게 정신 못 차리게 만들 줄이야. 솔직히 처음엔 남자라고 해서 좀 놀라긴 했는데, 그래도 이제 완전 납득이야. 네가 워낙 다정하고 사람이 좋으니까 서이호 저놈도 비슷하게 변한 거 같아.”
온 정신이 서이호의 옛 연인과 주변에 둘러싸인 여자들에 팔려 있던지라 다윤은 민우가 하는 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머릿속이 핑핑 돌 정도로 그 생각에 빠져 있던 다윤은 민우가 제 한쪽 어깨를 잡아 오는 순간 고개를 퍼뜩 들었다.
“다윤아, 내 말 듣고 있어?”
“어?”
“안 듣고 있었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다윤이 멍하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제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손이 순간 치워졌다. 어느새 다가온 이호가 씩 웃으며 민우의 손을 치운 거였다.
“치워. 윤이한테 손대지 마.”
“다윤이가 뭐, 네 소유물이냐?”
“그건 아닌데, 내가 윤이 소유물이지.”
“뭐냐 미친!! 닭살 돋아!! 서이호 입에서 저런 얘기가 나올 줄이야!!”
민우가 진심으로 닭살 돋는다는 듯 제 팔을 마구 쓰다듬었다. 호들갑 떤다는 듯 이호가 싸늘하게 민우를 한번 보더니 표정을 완전히 싹 바꿔서 다윤 옆에 앉았다.
“밀크셰이크. 이건 다른 맛이야. 새 메뉴라고 추천해 주길래 사 봤어.”
“……직원이 그런 얘기도 했어?”
“응. 그러던데.”
“……진짜 미국도 외모 지상주의네. 아까 내가 갔을 땐 싸늘하게 주문만 딱딱 받더니.”
민우가 툴툴대는 것도 다윤은 들리지 않았다. 아까 그런 얘기를 했구나, 하면서 다윤은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밀크셰이크를 먹었다.
“맛없어, 윤아?”
“아니, 맛있어.”
다윤이 애써 이호에게 씩 웃어 보였다. 서이호가 다윤을 따라 웃었다. 입꼬리가 동시에 위로 올라가는 근사한 개죽이 웃음. 다윤은 다시 밀크셰이크를 먹었다. 이상하게 다디단 밀크셰이크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 * *
결국 이호의 압박에 못 이겨 민우는 가고, 두 사람은 드디어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즐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윤의 기분이 이틀 내내 저기압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아무 일 없다고 얘기만 하고.
다윤이 그토록 가고 싶다고 했던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서도 다윤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다윤이기에 분명 자신보다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린 모양이었다. 이토록 시무룩해하는 걸 보면.
한편 다윤은 다윤대로 제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짜증이 났다. 오랜만에 만난 서이호인데, 훈련을 힘들게 마친 애를 기분 좋게 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게 뭐냔 말인가.
오늘 낮에만 해도 그랬다. 같이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서이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서는 애인이 있냐고 물어봤던 일. 미국은 뭐, 동성애에 딱히 편견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대시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제가 옆에 있는데. 이호는 단호하게 다윤을 가리키며 제 연인이라고 했지만, 남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일이 뭐, 솔직히 한둘이었겠는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아마 그런 일은 많을 것이다. 서이호의 얼굴이 갑자기 못생겨지지 않는 한 말이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어리숙한 것 같았다.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를 모르지. 다윤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다윤의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해서 두 사람은 일찍 숙소로 들어왔다. 다윤은 빠르게 씻고 나왔고, 이호는 욕실에 있었다.
이호가 씻고 나오면 솔직하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온 해외여행인데, 그리고 서이호가 훈련을 끝내고 곧 들어갈 시즌 준비 전 유일하게 갖는 휴식 시간인데 저 때문에 망쳤으니까.
“윤아?”
다윤은 이호가 나오자마자 이호를 덥석 끌어안았다. 처음엔 놀란 듯한 이호가 제 품에 안긴 다윤을 내려다보며 씩 웃더니 그의 머리카락에 제 코를 부볐다. 다윤의 머리카락에서 호텔 샴푸도 지워 낼 수 없는, 다윤에게서만 나는 부드러운 향기가 스며들었다.
“이제 기분 괜찮아졌어?”
“……미안.”
“뭐가?”
“내내 저기압이었던 거. 미안해. 너랑 처음으로 온 여행인데.”
이호는 괜찮다는 듯, 다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냥 걱정이 됐을 뿐이다. 무슨 고민을 하는 건지 축 처진 다윤이. 혹시 제가 모르는 고민이 있나 싶어서 말이다.
이호가 다윤을 번쩍 안아 들어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제 위에 다윤을 올려놓고 그의 입술에 여러 번 입을 맞추며 물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저기압이었던 거야?”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뭔데? 응?”
재촉하듯 제 옷자락 안에 손을 넣고 간질이는 행동에 다윤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질투 나서.”
“어?”
“서이호, 너 말이야. 너무 잘생겨서 질투 났다고. 네 전 애인들이랑 너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한테 전부 다.”
“…….”
다윤이 그렇게 말하며 아프지 않게 이호의 코를 꼬집었다. 이호는 다윤의 말을 듣고 멍해졌고, 그다음은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최다윤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구나 싶어서. 늘 감정을 표현하는 쪽은 저였으니까.
“내가 어리숙해서 그런가 봐. 너랑은 달리 제대로 된 연애도 처음이고.”
“윤아.”
“이런 감정을 느끼면 어떻게 누르면 좋을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나도 좀…… 연애를 해 봤으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다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윤의 허리를 감싸 안은 이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말도 안 된다. 최다윤이 저 말고 다른 사람과 연애라니. 분명 그 사람은 저처럼 푹 빠져서는 못 헤어 나와서 저랑 만날 기회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호는 최대한 감정을 꾹꾹 눌렀다.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다윤이 저를 상대로 질투를 해 준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런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너무 오랜 시간 친구로 있어서 연인이라는 느낌보다 친구에 더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고민했는데. 그러니까 괜히 삐진 티를 내서 다윤이 질투하는 기분을 누르고 싶진 않았다.
“하여튼, 미안해. 처음으로 온 여행인 데다가 너 이제 시즌 들어가면 쉴 틈도 없을 텐데. 벌써 내일 입국일인데 제대로 논 기억도 없는 것 같아.”
다윤이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이호의 어깨에 고개를 부볐다. 이호가 종종 하던 행동이었다. 다윤도 이렇게 간지러운 기분을 느꼈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윤의 얼굴을 감싸 코를 맞부딪치며 말했다.
“윤아, 아직 오늘 다 안 갔어.”
“……어?”
“네가 원하는 거 하게 해 줄게.”
내가 원하는 거? 다윤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이호의 입가에는 평소보다 두 배로 진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그에 다윤이 불안하다는 듯이 살짝 몸서리를 쳤다. 무슨 얘기를 할 건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불안했다.
호텔 아래 술집이었다. 몇몇의 나른한 여행객과 현지인이 머물고 있는. 다윤은 제 앞에 있는 술에 손을 댔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였다가 바로 두 칸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서이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 진짜 못 하겠어.”
다윤이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도대체 몰입이랄지, 그런 게 전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유치한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말이다.
서이호가 해 주겠다고 한 건 그런 거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술집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는 것.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아쉽다고 했으니,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겠다는 거였다.
“네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다 해 주고 싶은데, 그것만은 싫으니까. 대신 이렇게라도 해 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뻔뻔하게 웃는 얼굴이 생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재밌어서 하는 일 같았는데. 그러면서도 귀여워서 다윤은 이호를 보며 턱을 괴고 웃었다. 반면에 그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다윤 쪽으로 다가왔다.
“웃는 게 너무 매력적이신데요.”
“……너 진짜 계속할 거야?”
“처음 봤는데 반말까지……. 나도 좋아요. 더 막 대해도 좋아요. 어쩐지 그쪽은 막 대해도 기분이 안 나쁘니까.”
결국 백기를 든 건 다윤 쪽이었다. 다윤은 웃음 섞인 한숨을 쉬며 이호를 봤다. 이호는 그런 다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네가 졌지? 이제 내 장단에 맞춰 줘, 하듯이. 하여간, 뻔뻔한 것도 귀여워 보이니 말썽이었다.
“미국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애인 보러.”
“애인이 있어요?”
이호가 다윤의 술잔을 들고 가볍게 흔들며 물었다. 다윤은 그런 이호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정말로 능청맞게 사람을 꼬시듯 물어 오는 그 목소리와 눈빛을 보니 이미 백번을 넘어가고 또 넘어간 최다윤을 또 꼬실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러니까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지. 사람이 한 군데라도 좀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서이호는 모두 완벽했다. 또다시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다윤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잘생기고, 멋지고, 완벽한 애인.”
“음, 큰일이네.”
이호의 커다란 손가락이 다윤의 흘러내려 온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다윤은 이호를 올려다봤다. 나른한 눈동자가 오롯이 다윤을 향해 있었다.
“오늘 내가 꼬시려고 하는데 애인이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너 진짜 솔직히 얘기해. 이런 적 있었지?”
다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저건 연기라고 할 수 없다. 완전히 능숙한 게 경험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쪽은요?”
“…….”
“너무 완벽해서 이런 적 많았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다윤이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서이호의 입가에 조금 삐딱한 미소가 걸렸다. 저놈…… 나 몰래 연기 수업 듣나. 혹시 야구 선수 은퇴하고 나면 영화배우로 나가려고 연습 중인가 싶을 정도로 능청맞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다윤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서이호를 올려다봤다. 마치 이곳에서 처음 본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완전히 넘어간 것처럼.
이곳은 그냥 서이호와 출국 전 머무르는 호텔 아래 가게일 뿐이다. 그곳에서 잠깐 술을 마시러 내려온 것뿐이다. 그런데 왜, 마치 제가 서이호를 보러 와서 모르는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느냔 말이다.
“이상하네. 나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이호가 테이블 아래에 있는 다윤의 손을 붙잡았다. 다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소란스럽다고 느꼈던 술집 안이 조용하게 느껴졌다. 마치 서이호의 숨소리와 저를 쳐다보는 눈길만이 느껴지는 것처럼.
“나 혼자만 독차지할 수 있으니까.”
이호가 그 말을 하고 한 손을 들어 다윤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엄지손가락에 부드럽게 닿는 다윤의 귓불, 부드러운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섰다. 밖에서. 그것도 이런 공간에서.
다윤이 눈가를 찡그리며 서이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 올라가자.”
“그렇게 말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급한 제 목소리와 달리 여전히 능청맞은 서이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윤이 걸었다. 지금 당장 순간 이동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서이호를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었다.
“흐읏…….”
호텔 방 안에 다시 들어서자마자 서로 숨을 제대로 쉴 틈도 주지 않고 달라붙었다. 너무 급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바람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마치 처음 입 맞추는 사람처럼 말이다.
한참을 붙었다 떨어진 두 사람의 입가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다. 그것조차도 섹시해서 다윤이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 이호가 그런 다윤을 번쩍 안아 들었다.
“보기보다 저돌적이어서 좋은데요.”
아직도 그 상황극 놀이를 하는 건가. 저를 호텔 욕조 위에 가볍게 내려놓은 서이호가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느긋한 서이호와는 달리 다윤만 급한 듯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타액과 타액이 섞였다. 서이호의 혀끝이 입천장을, 그리고 혀 위를 가볍게 훑고 안쪽 깊숙이까지 찔렀다. 마치 아래에 삽입하는 것 같은 행위였다.
“……그쪽은 엄청 능숙하네요.”
서이호의 상황극 놀이에 완전히 넘어간 다윤이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게 나온 존댓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부끄러워서 그냥 평소 이호에게 하는 말투 그대로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하듯이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이호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가 이내 씩 웃었다. 개죽이 웃음보다는…… 조금 더 어른스럽고 근사한 웃음. 누군가에게 이렇게 웃었다가 처음 보는 사람이 완전히 반해서 못 넘어오고는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웃음.
“그러고 보니까 이름을 몰라요.”
다윤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면서 이호가 물었다. 이름, 알려 줘요. 다윤은 그런 이호에게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윤이요.”
“…….”
“그냥, 윤이라고 불러요.”
순간 그렇게 말하고 웃는 다윤을 보며 이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작 불안한 게 누군데. 정작 어딘가에 가둬 놓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매 순간 하는 사람이 누군데 대체…….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맞부딪혔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밤이 무척 길 것 같다는 생각.
“아…….”
눈앞이 쾌감으로 흐린 건지, 아니면 따듯한 물줄기에서 나오는 김 때문에 흐린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욕조에 나른하게 누워 있는 다윤은 신음을 내뱉으며 제 아래에서 제 것을 입에 담고 있는 서이호를 봤다.
거의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몽땅 다. 그냥 비유하는 말이 아니었다. 서이호는 정말로 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을 기세였다. 구석구석 제 입술이 안 닿은 곳이 없게 하려는 듯했다. 아까는 갑자기 제 발을 입에 넣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호, 이호야, 좀, 그만…… 응…….”
“좋아요?”
“존댓말도 좀, 그만해……. 으읏…….”
“내가 존댓말 하면 꼴려요?”
진짜 미친놈이……. 이 와중에 반박할 수 없다는 게 포인트였다. 어, 꼴려 미치겠어. 서이호가 제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씩 웃으며 제 것을 더 깊숙이 입 안에 담았다. 따듯하게 제 성기를 감싸는 서이호의 입 속이 미치게 좋아서, 다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입에 사정했다.
“다 맛있네요. 여기까지 맛있으면 어떡해요.”
“아으…….”
입가에 하얗게 제 정액을 묻히고는 씩 웃고 있는 꼴이 미치게 야했다. 다윤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이내 다시 떴다가를 반복했다. 너무 섹시해서 보고 싶지 않다가도, 또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교차했다.
“너도 누워.”
억울하다는 눈으로 다윤이 이호를 욕조 위에 앉혔다. 이호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윤이 하라는 대로 자세를 바꾸었다. 방금과는 완전히 뒤바뀐 자세였다. 서이호가 아래에, 최다윤이 위에.
그런데 아무래도 덩치 차 때문에 그런가, 제가 위에 올라가도 서이호가 늘 하는 것처럼 압박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 듯했다. 자신도 몸을 키울 거라고 다짐했다. 물론 그래 봤자 아예 체격 자체가 남다른 서이호와는 상대도 안 되겠지만.
다윤이 아래로 내려가 방금 서이호가 한 것처럼 입 안에 서이호의 것을 담았다. 입 안에 빠듯하게 들어차는 성기가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는 능숙해진 펠라였다. 다윤은 혀를 몇 번 움직이며 서이호가 기분 좋을 수 있도록 했다. 목 부근까지 빠듯하게 들어찼다가, 다시 빠져나갔다가. 혀로는 계속해서 기둥을 쓸고.
이 모든 건 서이호에게 배운 거였다. 그가 제게 해 주는 걸 기억해 뒀다가 어설프게 따라 했는데 그러면서 은근히 느는 게 있었다. 처음에는 목 부근에 조금만 닿아도 금방 뒤로 가곤 했는데 이제는 안쪽까지 넣었다가 빼는 기술까지 할 수 있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옛 사람들이 한 말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 윤아, 후…….”
그가 한쪽 손을 제 목 뒤로, 한쪽 손은 욕조 끄트머리를 잡고 기분 좋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저도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건 기분 탓만은 아닌지 방금 사정했던 성기가 어느새 또다시 딱딱해져 있었다.
느릿하게 훑었다가 다시 깊숙이 삽입하고, 다시 느릿하게 빼냈다. 마치 아래쪽에 삽입하는 것처럼. 근데 아래에 넣는 것보다 조금 더 야한 느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윤이 한쪽 손을 내려 제 것을 똑같이 훑었다.
“시발.”
순간 그 목소리와 함께 입을 통한 삽입 행위가 조금 빨라지는 듯했다. 훅, 하고 쳐올리는 그의 성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친 다윤이 놀라 눈만 들어 올려 이호를 보는 사이, 이호가 턱, 턱, 제 것을 다윤의 입에 쳐올렸다.
커다란 것을 입에 무느라 입가가 아팠고, 타액이 입술과 성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정말로 삽입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은지. 입 속 왕복 운동이 빨라짐과 동시에 제 것을 훑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탁, 탁, 하는 야한 소리. 욕조 아래에 얕게 들어찬 물에서 나오는 찰박거리는 소리조차도 야하게 들리는 이 순간, 서이호의 것이 딱딱해지고 정액이 뿜어졌다. 차마 제대로 빼내지 못해 제 얼굴에 쏟아 낸 격이었다.
“윤아, 미안, 내가 정신이 나가서…….”
“잘하죠?”
이호가 오히려 미안하다며 다윤을 일으켜 얼굴에 묻은 하얀 정액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다윤이 그런 그의 손을 저지하며 씩 웃었다. 입가에 묻은 서이호의 정액을 할짝 핥아 냈다.
왜 맛있다고 하는지 몰랐는데, 알 것 같았다. 서이호에게서 나온 건 다 맛있었다. 그게 하다못해 정액이든.
“애인한테는 이렇게 해 주면 좋아하더라고요.”
“……윤아, 너 지금 진짜 꼴려.”
“하하.”
“이제 그만해. 응? 나 이상하게 질투 나려고 해.”
이호가 다윤을 꼭 끌어안으며 애교 부리듯 말했다. 지가 먼저 시작해 놓고. 하긴, 내가 먼저 시작한 건가. 며칠 내내 서이호에게 심통 아닌 심통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만났어야 했나 하면서 먼저 도발을 하기도 했으니까.
이호의 손가락이 아랫부분에 닿았다. 부드럽게 쓸고, 안쪽을 빠듯하게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긴장되는 그 행위에 다윤은 낮게 신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하아…….”
이호가 안쪽을 착실하게 넓혔다. 제가 익숙하게 느끼는 곳을 찌르면서 긴장을 풀어 주기도 했다. 늘 하는 행위 중 다윤은 이 행위가 가장 좋았다. 이 순간이 그의 다정이 가장 온몸으로 크게 느껴졌으니까.
미리 욕조 옆에 두었던 콘돔을 들어 이호가 제 것에 씌우고 다윤의 안에 천천히 삽입하기 시작했다. 다윤의 안쪽이 급하고 사랑스럽게 이호의 성기를 가득 물었다. 내벽이 마치 나가지 말라는 듯이 움직이는 걸 느끼면서 이호는 천천히 안쪽 깊숙이 제 것을 넣었다.
온전히 들어찬 두 사람이 잠시 서로를 끌어안았다. 평생 이렇게 존재했으면 좋겠다. 오로지 둘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되려면 서로를 향한 소유욕을 조금은 숨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 제가 그토록 불안하고 우울했던 건 그간 서이호를 못 본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일 거라고 다윤은 생각했다. 한 달간 못 봤던 연인인지라 제 마음이 더 급했던 탓이다.
다윤은 이호와 완전히 연결된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에 찡그려진 이호의 눈가에 다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심술 부려서 미안해.”
“그게 심술이야?”
“응. 너한테 괜히 툴툴거리고, 내내 그래서 미안해. 그냥,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까 불안했나 봐.”
사실 다 거짓말이야. 나는 네가 내 처음이라서 좋아. 첫 친구, 첫 연인, 그 모든 게 너여서 좋아. 다른 사람, 아무것도 필요 없어.
다윤의 말이 욕실 안을 가득 울렸다. 달콤한 목소리였다. 이호는 그 목소리를 어딘가에 담아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녹음해서 듣고 싶은 달콤한 얘기들.
다윤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면서 그의 허리를 부드럽게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쾌감에 전 다윤의 신음 소리도 들렸다.
“하으, 으, 응…….”
“윤아, 이 자세 좋아.”
“하, 앗! 으응……! 나, 나도……!”
서이호의 것이 최다윤의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찬 이 자세. 찰박찰박하는 소리가 귀를 야하게 울리고, 서이호의 것이 조금 더 빠르고 세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안쪽이 아니라 뇌가 희롱당하는 느낌이었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내내 속삭이는 목소리 때문에 더 그랬다.
한참의 왕복 운동 끝에 다윤이 먼저 이호와 제 배 사이에 하얀 탁액을 뿜어내고, 이호의 것도 사정을 하는 듯 느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사정이 끝난 상태에서도 서로를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희뿌연 안개가 가득한 욕실에서는 서로의 숨소리도, 심장 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윤아, 나는 너를 만나면서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늘 깨달아.”
“……무슨 헛소리야, 너처럼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다고.”
다윤의 툴툴거리면서도 콩깍지 가득 낀 말이 기분 좋아서 이호는 낮게 웃었다. 그렇게 웃는 웃음소리조차도 근사하면서, 무슨.
“정말이야. 너에 비하면 나란 사람은 늘 모자라고, 부족한 느낌이야.”
“…….”
“그러니까 가끔 이렇게 질투하고, 그런 거 난 좋아. 너도 나만큼 내가 필요하고 안달 난다는 거잖아.”
알겠지? 하면서 이호의 통통한 입술이 다윤의 귓가에 닿았다. 쪽, 쪽, 하고 사랑스러운 소리가 귀를 가득 울려서 다윤은 결국 웃고 말았다.
연애라는 건, 늘 안달 나면서도 이렇게 매번 성장하는 기분이 드는 거구나. 서이호와의 연애는 늘 이렇게 매번 색달랐다. 그건 서로가 서로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서로를 그렇게 위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이호의 손바닥에 다윤은 눈을 감았다. 근 한 달간 이 품과 이 냄새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아무래도 장거리 연애는 무리였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피부가 닿고 온기가 느껴져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윤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을 정의하는 말이 ‘사랑’이라는 말로도 이제는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