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2. 첫 장거리 연애 (10/13)

외전 2. 첫 장거리 연애

함께 살기로 얘기를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집을 구하러 다녔다. 두 사람이 살기에 위치가 적절한 곳. 집세는 대부분 서이호 선에서 해결되었기에 어렵지 않게 좋은 위치에 둘이 살기에도 적절한 곳으로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이사가 미뤄져 아직까지는 다윤의 집에서 살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서이호와 떨어져서 지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이호는 다윤이 가는 곳에 졸졸 따라다녔으니, 본격적으로 함께 사는 게 아니더라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이호 때문에 함께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텅 빈 집에 홀로 있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런 이호에게 다윤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한 달간은 두 사람이 정식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기간이었다. 프로 야구 선수인 서이호도 구단과 함께 미국으로 훈련을 떠나는 스프링 캠프는 피할 수 없었으니까.

“나 안 갈래, 윤아.”

사실 다윤도, 이호를 보내 주고 싶지 않았다. 떠나는 이호의 옷자락을 붙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저렇게 낑낑거리는 강아지 같은 얼굴로 눈꼬리를 축 내리고 애절하게 말하는 서이호를 보고 있자면 더욱 그랬다.

스프링 캠프는 야구 선수에게 중요한 훈련이었다.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단체로 합숙 훈련을 하면서 팀 분위기에 적응해야만 한다. 야구는 혼자서 잘한다고 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다윤이기에 처음으로 떨어지는 한 달간의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많으면 많았지 없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오늘은 함께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는 서하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시간을 내어 출국하는 서이호를 배웅 온 것이었다. 옆에서 지랄하지 말고 꺼지라는 눈빛의 시호와 함께 말이다.

“얼른 가. 가서 연락 자주 하면 되지.”

“어떻게 한 달이나 못 보지? 나 최다윤 하루 안 보면 몸에 가시가 돋던데. 응? 그게 가능할까?”

“진짜 지랄도 가지가지다.”

시호의 욕지거리는 아예 무시해 버린 이호가 다윤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여기가 공항만 아니었더라도 나도 네가 가는 거 싫다고, 어떻게 한 달이나 참고 기다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꽉 끌어안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여긴 사람 많은 공항이다. 서이호는 얼른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데다가 보는 눈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제가 그러면 떠나는 이호의 마음도 좋지 못할 걸 알았다.

그래서 이호의 옷자락을 붙들고 가지 말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대신, 다윤은 이호의 어깨를 한 번 짧게 끌어안고 놓았다. 아주 담백하게, 마치 친구가 배웅을 하기 위해 잠깐 토닥여 주는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훈련 잘 받고. 도착하면 연락해.”

“……너도 집에 가자마자 문자 남겨.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볼게.”

“그래, 알겠어.”

더 투정 부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이호는 다윤의 손을 한 번 꾹 잡았다가 놓았다. 다윤의 옆에 있는 시호에게는 간다, 하고 짧게 인사했다. 방금 애인과 진하게 인사하던 것과는 다르게 무뚝뚝하게 끝나는 인사에 시호가 혀를 쯧 찼다.

“저놈 저거, 하여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닌데.”

“누나.”

오히려 다윤이 위로하듯 시호의 팔을 흔들며 웃었다. 시호는 그런 다윤을 보며 인상을 풀었다. 그래, 내가 저 새끼 보려고 중요한 미팅도 미루고 온 게 아니다. 다윤이 보려고 온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됐다.

다윤은 시호를 한 번, 그리고 출국장으로 향하는 이호의 뒷모습을 한 번 봤다. 열 걸음 갔다가 뒤돌아서 다윤과 눈을 마주치고, 다시 열 걸음 갔다가 뒤돌아서 눈을 마주치고, 저러다가 출국장 들어가는 데에만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아서 다윤이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라고 웃어 줬다.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억지로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는 그 뒷모습이 처량하면서도 무척이나 귀여웠다.

“배웅하는 데에만 무슨 한 시간이 걸리네. 가자, 이제. 어디서 내려 주면 돼, 다윤아?”

다윤과 시호도 공항에서 나왔다. 시호가 차에 올라타고, 다윤도 그 옆에 타면서 가까운 역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한 회사의 대표인 시호의 시간을 더 뺏을 수는 없었다.

그런 다윤의 마음과는 다르게, 시호는 가볍게 운전석을 한 번 치며 말했다.

“서이호가 나보고 왜 와 달라고 한지 알아? 내가 보고 싶어서인 것 같지? 아니야. 둘 다 일 문제로 외국으로 출국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그럴 리가. 너 혼자 돌려보내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 걱정 말고 도착지 얘기해, 다윤아. 내가 이러려고 시간 뺀 거니까.”

서이호 그놈의 자식은 좀 괘씸하고 짜증 나긴 해도, 다윤이 너면 뭐, 괜찮으니까. 시호의 말에 다윤이 결국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다윤은 서하가 있는 사무실 주소를 불렀다.

차가 출발하고, 다윤은 푸르른 하늘 위에 떠서 어디론가 향하는 비행기 한 대를 봤다. 저 비행기에 서이호가 타고 있지는 않겠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정말, 한 달을 어떻게 견디지? 이제 와서야 그런 걱정이 들었다. 서이호 없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 * *

이제 막 3일이 지났을 뿐이다. 그사이 가장 바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다윤의 휴대폰이었다. 휴대폰 화면이 잠잠해질 무렵에 번쩍거리고, 또 잠잠해지려다가 반짝하고.

“애인이 외국 갔다더니, 엄청 보고 싶은가 봐.”

“네?”

“휴대폰.”

다윤의 옆에서 다윤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를 보고 있던 서하가 다윤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서하의 그 능글맞으면서도 재밌다는 웃음에 다윤은 어서 휴대폰을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죄송해요.”

“아니, 난 상관없어. 그냥 귀여워서. 너도, 네 애인도.”

서하는 진심으로 귀엽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었다. 저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서하는 가끔은 저를 마치 동생 보듯이 바라보곤 했다. 서하의 그 웃음에 다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막 시나리오 수정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촬영 장소 섭외와 배우 섭외만 남았는데 남은 문제는 서하가 해결하겠다고 했으니 다윤은 시나리오 수정에만 몰입하면 될 것이다. 생각보다 다윤이 할 일이 많지는 않았기에 다윤은 다음 학기 휴학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 이 부분은 형이 말한 대로 감정 선을 조금 더 올려 봤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응, 파일 보내 줘.”

“네. 형, 그리고 이건…….”

지잉- 하고 다윤의 말을 자르듯이 다윤의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 진동이 크게 울렸다. 아예 무음으로 해 뒀어야 하는데. 다윤이 애써 무시하며 서하에게 다시 하려던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던 차에 서하가 웃으며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동안 애인이랑 연락해.”

“…….”

머리에 손을 한 번 올리고 서하가 씩 웃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 서하는 자신보다 체구는 작지만 훨씬 더 큰 오라가 있었다. 서하가 밖으로 나가고, 다윤도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윤아, 왜 연락이 없었어?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지금 한국은 낮인데,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서이호.”

- 응?

“……내가 10분에 한 번씩 전화하지 말라 그랬지.”

그랬다. 약 3일의 시간 동안 이호는 거의 10분에 한 번꼴로 연락을 하곤 했다. 다행히도 정신머리는 있는 모양인지 훈련 시간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매 시간마다 연락이 오는 거였다.

물론 보고 싶은 마음이야 다윤도 굴뚝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상생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휴대폰 알림을 아예 꺼 버릴 수도 없고. 자신도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인데.

“너, 진짜……. 다음에 또 그러면 아예 연락 안 받아 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 안 돼!

“그러니까 말 좀 들어. 어? 훈련에 집중도 좀 하고.”

- ……알겠어.

“……오늘 훈련은, 잘했어?”

축 처진 목소리에 결국 먼저 누그러진 건 최다윤이었다. 그래, 늘 더 좋아하는 쪽이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다윤의 수그러진 목소리에 이호가 그제야 신이 나서 얘기했다. 오늘 했던 야구 얘기, 구단 내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소동 얘기. 다윤은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그 모든 얘기를 들었다.

평소라면 같이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고 나눌 얘기일 텐데, 지금은 서이호의 향기도, 온기도 모두 느낄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니 저도 너무나 아쉽고 슬퍼졌다. 왜 서이호가 10분에 한 번씩 연락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미국은 아마 새벽이라 누워 있을 터였다. 잠이 안 와서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기 위해 계속 전화를 했던 거겠지. 연락을 못 하면 잠을 푹 잘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윤은 이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서이호의 옆에 누워서 서이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처지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 * *

그렇게 한 번 화를 내고 난 후, 다행히 서이호의 연락 빈도수는 조금 줄어들었다. 훈련 시간에는 아예 연락을 하지 말 것. 연락은 한 시간 간격으로. 만약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바쁜 거니까 텀을 두고 연락할 것. 다윤이 곤란한 건 이호도 원치 않았기에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맞췄고, 다행히 한 일주일쯤 지나서야 연락 패턴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든 암묵적인 룰 중 하나는 하루 중 한 시간은 꼭 영상 통화를 하는 거였다. 다윤에게 있어서는 밤, 서이호에게 있어서는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난 후 쉬는 시간에 두 사람은 꼭 영상 통화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 한 시간만은 비우기. 다윤의 입장에서야 뭐, 자기 전 잠시 시간을 비우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지만, 이호는 쉽지 않을 텐데 그 시간만큼은 꼭 비워 두고 다윤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왔다.

- 그래서, 셋이 영화를 본다고?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병규 걔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막 씻고 나온 다윤이 머리를 털며 말했다. 휴대폰 화면에 뚱한 서이호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다윤은 피식 웃으며 화면으로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마치 삐진 그 얼굴을 위로하듯 쓰다듬어 주듯이. 서이호의 얼굴이 닿을 듯 말 듯하면서 결국 닿지 않는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이제 몇 주 후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 내가 보기엔 그 여자애, 다윤이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다윤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럴 만한 낌새도 전혀 없었고. 다윤은 이호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더욱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먼 타국에서까지 서이호가 불편해하는 건 싫었으니까.

그 주인공은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 연주였다. 병규는 늘 여자애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하긴 했지만 이번엔 조금 더 다른 느낌이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은 병규의 행동들이 그랬다. 물론 중요한 건 연주의 마음이겠지만.

병규에 대한 연주의 마음이 어떨지는 몰라도, 자신에 대한 연주의 마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아이와 그럴 만한 낌새가 없기도 했고, 자신은 서이호가 생각하는 만큼 인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모든 건 다윤의 생각이었을 뿐이었지만.

- 다윤이 넌, 좀 더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필요가 있어.

“너 맨날 연구하지? 어떻게 말하면 더 닭살이 돋을지.”

- 어떻게 알았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갔어?

능글맞게 웃는 서이호를 보며 다윤도 씩 웃었다. 어쩐지, 하루 종일 최다윤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했더니,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갔구나? 그 말에 다윤이 결국 큰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하여간, 미치게 귀여웠다.

“네가 싫다 그러면 안 갈게.”

- 아니야, 다녀와. 영화 보는 거 좋아하잖아.

“너랑 보는 걸 좋아하는 거지.”

다윤이 턱을 괴고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전화기 너머에 있던 이호는 그런 다윤을 보며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살짝 덜 마른 머리카락에, 그렇게 나른하게 웃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서이호는 최다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매일매일 사람을 더욱 홀리게 만드는 스킬들 말이다.

이호는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당장 비행기 표를 끊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또 눌렀다.

그런 이호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다윤은 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축축했는데 서이호와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물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런 다윤을 보며 이호가 물었다.

- 머리 다 말랐어?

“응, 이제 다 마른 것 같아.”

- 이제 누울 거지?

“응.”

- 얼른 눕는 거까지 보여 줘.

참나, 다윤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휴대폰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늘 서이호와 함께 눕는 자신의 작은 1인용 침대. 그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휴대폰 화면을 봤다.

“됐지?”

이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게 보였다. 꼭 이렇게 눕는 것까지 보고 통화를 하다가 잠들고 나서야 이호는 전화를 끊었다. 멀리 있는 제 애인을 이렇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면, 뭔들 못 할까 싶었다.

“너 이제 곧 훈련 아니야?”

- 아직 괜찮아. 30분 남았어.

그렇구나, 다윤은 화면 너머에 있을 서이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금 서이호는 아마 오후 훈련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야구 배트를 들고 서 있을 서이호. 얼마나 멋있을까. 지금 이렇게 화면 너머로 보는 것도 멋있는데.

“보고 싶다, 서이호.”

- 나 보고 싶어?

“당연하지.”

- 한 번만 더 얘기해 주면 안 돼? 너무 기분 좋은데.

들뜬 이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진짜 커다란 댕댕이 같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윤이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내가 미국으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로.”

- ……아, 어떡하지, 윤아?

“왜.”

- 나 섰어.

졸음 때문에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던 다윤이 잠이 확 깬 눈으로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다윤과는 달리 이호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이상한 소리를 한 건 최다윤이 아니라 서이호인데 어째서 제가 더 당황스러운지 모르겠다.

“미, 미쳤냐. 애국가 불러 애국가. 거기서 뭘 어쩌려고.”

- 윤아.

“뭐, 왜.”

- 박민우는 밖에 있고, 문은 잠겨 있어.

박민우라면 이호와 가장 친한 동기이자 친구였다. 그가 밖에 나갔고 지금 서이호 방엔 아무도 없으며 문이 잠긴 사실을 제게 왜 갑자기 말하냐고, 그런 걸 굳이 물을 정도로 최다윤은 순진하지 않았다.

나른하고 느릿하게 들리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 때문에, 그 너머로 쳐다보고 있는 서이호의 강렬한 시선 때문에 다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 팬티 벗어 봐.

“……변태냐, 너?”

- 최다윤 한정.

진짜 능글맞다 못해 얄미웠다. 저는 이렇게 긴장이 되는데 저렇게 여유롭게 싱글벙글 웃고 있다니. 옆에 있었다면 얄미워서 한 대 가볍게 때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윤은 제 손을 아래로 내렸다. 작게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서이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 발기했어?

“…….”

- 보여 주면 안 돼?

“……싫어, 그건.”

- 보고 싶은데.

이 미친 변태 새끼……. 그러면서도 잔뜩 발기한 저는 미친 변태 또라이 새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 봐, 난 너 때문에 진작 이렇게 됐는데.

서이호는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 화면을 내려 제 아래쪽을 보여 줬다. 잔뜩 발기된 성기 끝에 질척하게 쿠퍼액이 묻은 것까지 한눈에 보였다.

- 네가 한 번만 훑어 주면, 바로 갈 텐데. 그렇지?

제가 생각했던 것이 이호의 입에서 나오자 다윤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내 생각이 읽힌 건가 싶어서. 이호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다윤의 사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서이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저 때문에 발기한 그의 커다란 성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축한 쿠퍼액을 뿜어내고 있는 제 것이 부끄러웠다.

“이제 그만하자, 나…….”

- 윤아, 눈 감아.

그만하자고 말을 하려는 순간 서이호가 명령조로 말했다. 다윤은 저도 모르게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휴대폰은 옆에 내려놓고, 이호의 목소리만 들리는 상태였다.

- 내 소리 들려?

“……응.”

다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바로 옆에 있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으니까 그 상상이 극대화가 되는 기분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윤이 제 것에 손을 가져다 댔다. 기둥을 훑고, 조심스레 흔들고, 귀두 끝을 긁기도 하면서. 늘 서이호가 해 주던 그 방식대로.

- 윤아, 네 성기에 내 걸 비비고 있어. 느껴져?

“……응.”

수화기 너머로 서이호도 제 것을 훑고 있는 듯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질척한 소리가. 아니, 그건 어쩌면 바로 이 공간에서 나고 있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제 소리와 겹쳐져서 하나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으니까. 마치 정말로 두 사람이 서로의 것을 훑는 것처럼.

- 읏…….

“하아…….”

평소보다 사정이 조금 더 빠른 듯했다. 서이호도 사정이 다르지 않은지 수화기 너머로 나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윤은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손아래에 끈적하게 묻은 정액이 마치 서이호의 것처럼 느껴졌다.

- 아래에 가져가 봐, 손가락.

이번에도 다윤은 이호의 명령을 어기지 못했다. 이미 사정을 한차례 하고 나른해진 상태에서 다윤은 제 손가락을 뒤에 가져다 댔다. 늘 서이호의 것을 가득 담는 그 안으로.

- 내가 하는 것처럼, 넣어 볼래?

“…….”

다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고개를 끄덕여도 서이호가 보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다윤이 대답이 없어도 이미 제 말을 착실하게 듣고 있다는 걸 아는지, 타박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 어때?

“……좋아.”

- 그리고?

“좋은데, 네가 아니라서 아쉬워.”

그냥 제 것만 넣고 있는 상태는 확실히 부족했다. 그간 몇 번의 섹스 경험으로 서이호는 제 몸을 확실히 잘 알고 있었는데, 다윤은 그저 넣는 것까지밖에 하지 못하지 않는가. 이거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제 목소리에 서이호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걱정 마, 지금 네 안에 있는 건 나야.

“…….”

이호의 말에 다윤은 저도 모르게 제 것이 또다시 발기하는 걸 느꼈다. 미치겠다, 진짜……. 그저 제 안에 서이호가 들어왔다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무슨 혈기 왕성한 10대 청소년도 아니고 말이다.

- 안쪽 깊숙이 찔러 넣고 있어. 느껴져?

“아…… 응.”

- 나도 느껴져. 네 안이 내 손가락을 꽉꽉 물어뜯는 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탁, 탁, 하고 또다시 전화 너머로 서이호가 자신의 것을 훑는 소리가 들렸다. 만지고 싶다. 손을 뻗어 쓰다듬어 주고 싶다. 혀를 내밀어 핥아 주고 싶다.

- 깊이, 들어갈 거야, 윤아. 조금만 참아.

“아읏…….”

이호의 말을 따라서 다윤은 열심히 제 안을 찔러 넣었다. 마치 정말 서이호가 해 주는 것처럼. 몇 만 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그가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니.

제 정액 때문에 안쪽에서 질척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제 신음 소리도 함께 울렸다. 다윤은 한쪽 손으로는 제 성기를, 한쪽 손으로는 서이호의 명령에 따라 제 안쪽을 착실하게 넓히고 있었다.

시발……. 하고 낮게 욕을 중얼거리는 서이호의 말을 듣자마자 두 번째 사정이 이루어졌다. 다윤은 질척해진 제 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솔직히 두 번째엔…… 서이호가 욕하는 목소리가 너무 섹시해서 간 거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냐…… 진짜. 미치겠네.”

- 섹시하다 윤아. 한 번 더 할까?

“얼른 훈련이나 가, 변태 새끼야…….”

개새끼가 아니라 변태 새끼였어……. 다윤의 말에 이호가 웃었다. 하하하, 하고 울리는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 얼른 보고 싶다. 지금 당장.

나도, 그렇다고. 다윤이 중얼거렸다. 두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과 시간 차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솔직히 가끔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장거리 연애도 가끔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 * *

서뭉청

(사진)

서뭉청

나 보고 싶어도 이 사진 보면서 참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