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예전부터 나는
중학교 입학식 날, 이호는 운동장에 서서 멍하니 교장 선생님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럴 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라도 더 뛴다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길게 하품을 하며 눈을 깜박였다.
그런 와중에 시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외모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서이호에게 이런 시선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조금 다른 종류의 시선이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이호도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
“…….”
옆줄에 서 있는, 옆 반 남자아이였다. 키가 좀 작은 편에 까만 머리카락이 짧고 단정하게 올라와 있는, 밤톨 같은 아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남자아이를 쳐다보자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걸 인식한 건지 그 아이가 휙 고개를 돌렸다.
입학식이 모두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반으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이호는 입학식 내내 저를 쳐다본 그 남자애에게 다가갔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
이호의 물음에 그 아이는 빤히 이호를 바라봤다. 그사이에 이호는 그 애 가슴팍에 달려 있는 명찰을 봤다. 최다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고아원에 있던 그 애랑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지만 그 애는 여자애였고, 지금 이 애는 남자애였다. 이호는 아예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
다윤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먼저 앞서 걸었다. 이호는 살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입학식 내내 그렇게 쳐다봐 놓고, 이유가 그냥이라고?
다윤도 다른 애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야구부인 자신이 다른 애들 틈에 섞여 있는 게 신기하고 특이해서 쳐다봤던 거라고. 이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지는 밤톨 같은 머리를 한 번 노려봤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다윤과는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아니었다. 그냥 복도를 지나가다가 그의 친구들과 놀고 있는 걸 몇 번 봤을 뿐, 그 애와 이호는 접점이 없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 * *
다윤과 같은 반이 됐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꽤 많이 벌어져 있었으니까. 이호는 야구부 때문에 수업을 빠지기 일쑤라 반 아이들과 가까워지지 못했고, 거기다 서이호가 야구부 애들을 제외하면 모두 무시한다더라, 일반 수업 듣는 애들은 우습게 본다더라, 하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아 알게 모르게 겉돌고 있었다.
그런 소문 따위, 솔직히 말하면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1순위는 야구였다. 어떻게든 잘해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 누가 저에 대해서 어떻게 떠들어 대든 상관없었다.
최다윤도 아마 똑같았으리라. 반 아이들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애가 저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호는 그래서, 그 애에게 딱히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이름조차도 이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똑같은 날 중 하나였다. 아침 훈련 동안 무리를 한 건지 이호는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내내 고개를 책상 위에 박고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종종 야구부 애들이 그러는 건 선생님들이 봐주기도 했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서이호, 교과서 안 가져왔어?”
툭, 하고 이호의 부스스한 머리카락 위로 교과서 모서리가 꽂혔다. 이호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깐깐한 인상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이 자식, 야구부라고 내가 봐줄 줄 알아? 야구부는 시험 안 봐? 야구부는 학생 아니야?”
누가 야구부라고 봐 달라고 했나. 이호는 선생님을 불퉁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랍을 뒤적였다. 하지만 공부와 완전히 담쌓은 서이호의 서랍에서 국어책 같은 게 나올 리 만무했다.
계속 책상 서랍을 뒤적이기만 하고 있으니 선생님의 얼굴이 시뻘건 색으로 달아올랐다. 그리고 더 화를 내려던 무렵, 자신의 옆에 앉은 애가 불쑥 말을 걸어 왔다.
“같이 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이호가 앉아 있던 책상으로 교과서를 침범시켰다. 이호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앉은 친구를 봤다. 밤톨 머리에 까만 눈동자, 똘망똘망한 얼굴의 최다윤.
“최다윤 때문에 봐준다. 하여간 서이호……. 그럼 방금 전 시 네가 읽어 봐.”
이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선생님을 다시 바라보자, 다윤이 이호의 팔뚝을 툭툭 몇 번 쳤다. 그러고는 손가락 끝으로 교과서를 가리켰다.
‘이거, 읽으면 돼.’
입 모양으로만 하는 말에 이호는 그제야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시를 읽었다. 교실 가득히 서이호의 졸음이 묻어난 목소리가 울렸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국어 선생님은 다시 칠판 쪽으로 돌아가 수업을 시작했다.
이호는 물끄러미 방금 저를 도와준 아이를 바라봤다. 고맙다는 말을 기다릴 줄 알았는데, 방금 있었던 일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윤은 꼿꼿하게 앉아 필기를 시작했다. 그 반듯한 옆모습이 이상하게 신기하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호는 매점에 가서 초코 우유 하나를 사 와 다윤에게 건넸다. 책상에 탁, 하고 초코 우유를 내려놓자 자습을 하고 있던 다윤이 고개를 들어 이호를 쳐다봤다.
“뭐야?”
“고마워서, 아까.”
이래 봬도 고마운 건 짚고 넘어가야 속이 편한 사람이었다. 이호가 먹으라는 듯 턱을 들어 까딱, 하고 초코 우유를 가리키자 다윤이 입구를 살며시 찢어 조심스럽게 우유를 마셨다.
“고마워.”
다윤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교과서에 집중했다. 원래라면 우유 전해 주고 바로 훈련에 가려고 했는데, 이호는 옆에 있던 책상에 걸터앉아 그런 다윤을 빤히 보며 물었다.
“아까…….”
이호가 자신도 모르게 꺼낸 말에 다윤이 눈만 들어 이호를 쳐다봤다.
“왜 도와준 거야?”
“왜 도와줬냐니?”
“나 싫어하지 않아?”
이호의 물음에 다윤이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호는 당연히 다윤이 저를 싫어하고 있을 줄 알았다. 반 아이들이 모두 그랬으니까 다윤이라고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널 왜 싫어해?”
“……다 별로 안 좋아하니까.”
“네가 야구부 아니면 잘 안 노는 거 때문에 이상한 소문 도는 거?”
다윤의 물음에 이호가 시선을 다른 데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소문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게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은 탓이었다. 어쨌든 그런 게 영향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자 다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 얘기 주워듣고 사람 이유 없이 싫어하는 데 취미 없어, 난. 그리고 그 잠깐 도와준 거 가지고 이렇게 보답할 정도면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다윤의 물음에 이호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윤이 한번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보이고는 다시 우유를 마시며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에 집중했다.
“……너.”
“응?”
아직도 볼일이 남았냐는 얼굴로 다윤이 이호를 올려다봤다. 이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수업 끝나고 뭐 해? 나 야구 연습하는 거 보러 올래?”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다윤에게도, 심지어 제안을 한 이호에게도. 다윤은 언젠가처럼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는 듯이. 그 긍정의 뜻에 이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서이호! 훈련 가자!”
앞문 쪽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 야구부 친구가 이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제야 이호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나갔다. 교실에서 나서기 전, 이호는 다시 한번 다윤을 돌아봤다.
다윤은 금세 다른 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휘젓는 다윤의 옆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걸 보면서 이호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날 이후로 다윤과 이호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호보고 너는 성격이 참 강아지 같아, 라고 종종 말하는 다윤을 보며 이호는 생각했다. 제가 보기엔 친화력도 좋고,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많은 너야말로 강아지 같다고.
다윤은 제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였다. 야구부 아닌 친구를 사귀어 본 건 다윤이 유일할 뿐더러, 다윤과 친해지고 난 후 다른 아이들과도 오해를 풀고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이호는 다윤에게서 따듯하게 사람을 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람을 소문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시선대로 판단하는 방법을.
이호는 다윤이 좋았다. 그와 아주 오래도록 친구였으면 했다. 다윤을 멍하니 보고 있자면 그런 최다윤의 친구가 자신이라서 스스로가 더 특별한 기분이 들곤 했다.
* * *
그날은 아버지에게 잔뜩 혼이 난 다음 날이었다. 자신에게는 정말 재능이 없는 건지, 자신이 정말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면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에 휩싸인 어느 날이었다.
“오늘도 훈련 있어?”
“어?”
“게임 하러 갈래? 우리 집에.”
다윤의 물음에 이호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오후에 훈련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다윤이 하자는 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이호는 다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다윤의 집으로 가서 게임을 했다.
다윤은 정말 게임을 못했다. 매번 자신에게 지면서도 계속 같이 하자고 했다. 하다 보면 좀 늘 만도 했는데, 늘 자신에게 지는 신세였다.
그런데도 다윤은 게임만 하면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번은 지는데도 기분이 좋으냐고, 물으니 그냥 재밌으니까 좋다고 했다. 자신은 이기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데. 역시 다윤은 신기하고 특이한 아이였다.
그런 다윤과 내리 몇 판을 하다 보니 어제의 우울했던 기분이 모두 날아간 것 같았다. 가끔 이렇게 쉬는 날도 있어야지 내일 또다시 배트를 잡을 수 있을 테니, 이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아, 이제 진짜 못 하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피곤한 눈을 감았을 뿐이다. 눈이 뻐근해서.
내일 다시 야구를 열심히 해 보자,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어머니 말대로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뜨려는 찰나였다.
“서이호.”
“…….”
“나 너 좋아해.”
“…….”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다윤의 목소리에 이호는 고개를 돌렸다. 다윤이 눈을 뜨고 손을 위로 뻗고 있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호가 다윤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제 물음에 다윤은 잠시 대답이 없다가 몸을 돌려 이호를 쳐다봤다. 살며시 웃음이 걸려 있는 그 얼굴에 이호는 다윤이 장난을 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잘 웃지 않는 다윤이 저렇게 웃을 정도면 장난이 확실했다.
“별 뜻 없어.”
다윤의 말이 쐐기를 박았다. 이호는 그제야 싱겁다는 듯이 웃을 수 있었다.
“게임 하자.”
“또 질 거잖아.”
“얼른 일어나.”
다윤이 급하게 이호를 일으켰다. 이호는 속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지고 싶어서 그러네, 최다윤.”
이호의 말에 다윤은 단호한 얼굴로 게임기를 잡았다. 두 사람은 다시 게임을 했다. 그 이후에도 다윤이 이호를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하는 두 사람 사이의 말장난 같은 거. 하지만 아니라는 걸 이호도 후에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달라진 다윤의 태도를 보면 그랬다.
다시 한번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다윤에게 그날 얘기를 꺼낼라 치면 다윤은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런 다윤에게 함부로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호는 묻어 두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편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호는 절대 다윤이 그렇게 떠나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 * *
서이호는 졸업 직전 다윤에게 약간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어느 학교에 붙었냐고 물어봐도 알려 주지 않았고, 다른 애들에게 물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최다윤이 알려 주지 말라고 손을 써 놓은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최다윤은 자신에게서 천천히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도 다윤은 이호에게 연락 한번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꾸준히 보내는 연락을 확인하긴 하는데, 한 번을 답장을 보내지 않는 건 그가 제게 화가 났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윤아, 이거 봐. 예쁘지, 유니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