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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CHAPTER. 너에게만, 온전한 다정함을 (8/13)
  • FINAL CHAPTER. 너에게만, 온전한 다정함을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다윤은 삼촌과 함께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안방 문을 열었다. 근 1년간 닫혀 있던 안방 문이 열렸고, 다윤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물건들을 보자마자 와르르 울 거나 슬퍼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감정이 막 올라오진 않았다. 이호와 함께 모두 쏟아 내서 그런 것 같았다. 저조차도 자신의 현재 감정이 놀라울 정도였다.

    “엄마가 언젠가 돌아오실 거라고 내심 믿었었나 봐요.”

    다윤은 먼지가 쌓인 안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도 건들이지 않았기에, 이곳 안방은 일 년 전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엄마의 화장대 위에는 ‘다윤 5월 1일 제대’라고 적힌 쪽지가, 아버지의 정장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는 게 맞았다. 제게 주어졌던 행복이 한순간에 깨진 것에 대해서. 현실이 이토록 잔인한 것에 대해서 다윤은 믿고 싶지 않았기에 하나도 건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다.

    “다윤아.”

    “저 근데 이제 정말 괜찮아요.”

    “…….”

    “진짜예요, 삼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제 정말 괜찮아졌어요.”

    툭, 하고 제 어깨에 얹힌 삼촌의 커다란 손에 다윤이 웃으며 말했다. 늘 괜찮다, 괜찮다 말해 왔던 다윤이기에 강우는 믿지 않는 듯 눈가를 찌푸렸지만 다윤은 진심이라는 듯 활짝 웃었다. 웃고 있는 그 얼굴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여서 강우는 그제야 의심을 풀었다.

    “자, 정리 시작하자. 오늘은 필요한 건 정리하고, 버릴 건 따로 빼 놓자.”

    “네.”

    다행히 그다지 짐이 많지 않았기에 정리할 것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이불이나 옷 같은 것은 기부할 곳에 보내고, 다른 짐들이 없나 둘러보고 있었다. 다윤이 안쪽에 있는 커다란 앨범 같은 것을 발견하고 꺼내려고 할 무렵, 강우가 화장대 위에 놓인 무언가를 보고는 놀란 목소리를 냈다.

    “다윤아, 이거 아직도 정리 안 한 거니? 진작 쓰고 있었을 줄 알았는데…….”

    “네? 아, 그거…….”

    삼촌의 손에 들린 것은 통장이었다. 아빠의 사망 보험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통장.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도 다윤은 그 통장에 손을 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그 돈으로 등록금에도 보태고 생활비로 쓰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쓰고 싶지 않아서요.”

    “다윤아, 이거 네 돈이야. 연자 보험금으로 나오는 돈도 너한테 꼬박꼬박 전해 줬잖아.”

    “등록금은 최대한 국가 장학금이랑 학교 장학금 받아서 해결했어요. 생활비야 아르바이트 하면 벌 수 있으니까…….”

    다윤의 말에 강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연자가 살아 있었을 당시 걱정을 하긴 했었다. 다윤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하지 않아도 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는 말. 왜 그런 걱정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홀로 감당하려고 했으니 걱정할 수밖에.

    “다윤아, 네가 그렇게 모두 다 짊어지려고 하는 거, 연자는 원치 않을 거야.”

    “……음.”

    “네 돈이야. 그러니 네가 필요한 곳에 써도 된단다.”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쓰라며 삼촌이 다윤의 손에 통장을 다시 쥐여 주었다. 그에 다윤은 멋쩍은 듯 눈가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통장에 있던 돈, 기부를 할까 해요.”

    “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강우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하지만 다윤은 평소보다 다부진 얼굴로 단호하게 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물려주시는 건 이 집만 팔아도 저한테는 족해요. 나머지는 고아원이나 아동 보호 단체에 기부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다른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절 위해서요.”

    강우는 저도 모르게 다윤을 끌어안았다. 장성한 조카인데 왜 이렇게 애틋하고 작아 보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왜 연자가 그토록 애틋해했는지, 제 배 아파 낳은 아들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친아들처럼 키웠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윤아, 고맙다.”

    “네?”

    갑작스러운 삼촌의 스킨십과 고맙다는 말에 놀란 다윤이 눈을 크게 떴다.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강우가 마음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등을 다독이는 손길로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강우는 생각했다. 먼저 간 자신의 여동생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토록 따듯하고 착한 아들이 있었으니. 그런 여동생에게 와 준 다윤이라는 존재가 고마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마음이 따듯해져 이유 없이 풍요로울 정도로.

    버리지 않는 짐들은 모두 강우의 차에 싣고 강우가 차 앞에 섰다. 담배를 물고 다윤에게도 하나 권하는 것에 다윤도 덩달아 강우가 내민 것을 받아 들고 입에 물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딱 한 번 입에 대고 그 뒤로는 제대로 피워 본 적은 없었지만 강우와 있을 땐 가끔씩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종종 피우곤 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니?”

    담배 연기를 조심스럽게 머금었다 뱉어 내고 있을 때 강우가 다윤에게 물었다.

    “일단 이사하려고요. 저 혼자 살기엔 너무 넓기도 하고……. 계속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자꾸 나서 힘들 것 같아요.”

    다윤의 말에 삼촌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대답이 없었다. 다윤은 삼촌의 말을 기다리며 타들어 가는 담배 심지를 보고만 있었다. 말을 조금 머뭇거리시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 제게 상처 주지 않도록 말을 고르시는 것 같았다.

    “그럼…… 다윤이 너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건 어떠니. 지혜도 그렇고 숙모도 좋아할 거다, 다윤이 너라면.”

    워낙 너도 내 아들 같은 놈이기도 하고, 혼자 살게 두는 건 역시 영 마음에 안 차서 말이야.

    삼촌의 말에 다윤은 웃었다. 혹시나 제가 동정이라고 생각할까 봐 열심히 말을 고르고 제 눈치를 살피시는 것이 좋았다. 삼촌은 제게 고맙다고 했지만 오히려 고마운 건 다윤 쪽이었다. 이렇게 따듯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돼서, 다윤은 누구에게 그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마웠으니까.

    “걱정해 주시는 거 정말 감사한데, 저 사실 같이 살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요.”

    “친구?”

    “음…… 오래 좋아해 온 친구예요.”

    다윤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씩 웃었다. 웃고 있는 두 볼에 보기 드문 홍조가 서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다윤이 근래 들어 웃는 모습이 늘었다. 예전엔 늘 억지로 웃는 얼굴이었는데 요즘엔 기본적으로 밝게 웃는 모습이었으니까. 어떤 점이 달라졌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작은 부분이 달라졌을 줄이야.

    “대충 짐작은 간다. 혹시 그때 그 친구니?”

    강우의 말에 다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 내내 다윤의 옆에 있어 주고, 그 후에도 자리를 지켜 주었을 그 친구.

    다윤만 좋다면 강우도 좋았다. 강우는 뿌듯하게 웃으며 다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말했다.

    “다음에 소개 한번 시켜 주렴.”

    “네.”

    “그나저나, 그 친구랑 살기로 확실하게 정한 거야?”

    “음, 그건 아닌데 이제 말하려고요.”

    제가 같이 살자고 하면 무조건 그러겠다고 할걸요.

    다윤의 말에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아닌 밝은 모습의 다윤이 강우가 보기에도 무척 좋아 보였으니까.

    아마 연자도 하늘에서 다윤의 지금 모습을 보며 무척 뿌듯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오래 아팠던 동생을 보낸 강우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 * *

    대학 주변은 방학을 맞아 한산했다. 하지만 여전히 계절 학기, 혹은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르면서 아예 고요해지진 않았다. 밤이 되면 저마다 친구를 찾아 학생들이 주점으로, 술집 안으로 들어가 취업 고민, 연애 고민을 늘어놓기도 했다.

    다윤은 그 사이에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부류였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결국 술을 마시면 잠깐은 잊힐 뿐 다음 날 현실이라는 건 똑같았는데.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털어놓음으로써 조금은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방식들이 서로간의 벽을 허무는 방법이라는 것도.

    “최다윤! 여기야.”

    술집 한가운데서 손을 이러저리 흔들고 있는 준구를 보며 다윤이 다가갔다. 제가 오기 전에 혼자 한잔한 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먼저 마신 거야?”

    “좀 늦길래. 야, 앉아 앉아.”

    조금 늦어지긴 했다. 훈련 때문에 당장 달려오지 못하는 이호가 어디서 누구랑 술을 먹냐며 전화기를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 탓이었다. 요즘 이호는 꽤 바쁜 모양이었다. 하긴, 저 때문에 훈련할 시간을 빼앗겼으니. 이제 곧 스토브리그다 뭐다 해서 다들 훈련에 정신없는 모양인데 이호도 덩달아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라면 훈련 시간이 끝나자마자 당장 달려왔을 서이호도 오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였다. 휴대전화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서이호가 다윤도 좋아서 붙들고 있은 잘못도 있었지만.

    서이호

    보고 싶어 ㅠ_ㅠ 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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