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겨울 비
“다윤아.”
다윤은 제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온 다윤은 숨을 몰아쉬며 삼촌을 바라봤다. 평소보다 훨씬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삼촌이 다윤 쪽으로 다가왔다.
“사, 삼촌. 엄마는요. 엄마 괜찮으세요? 괜찮으신 거죠?”
다급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다윤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삼촌의 기색을 살폈다. 평소라면 괜찮다고 말하며 다독여 주었을 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야속하게 느껴졌다. 다윤은 그의 팔을 붙들고 애절하게 그를 쳐다봤다. 제발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제발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 주기를 바랐다.
“일단, 가자.”
괜찮냐는 제 물음에 대한 대답 없이 그는 다윤의 팔을 잡고 병원 복도를 걸었다. 다윤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윤과 삼촌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삼촌조차도 해 주지 않으니 아무라도 좋으니 그 얘기를 해 주었으면 했다.
엄마에게 가면,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을 아주 옅게 품으며 다윤은 삼촌이 가는 대로 따랐다. 그가 멈춘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병실 앞에 있던 의자에 앉아 있던 지혜가 다윤을 보자마자 달려왔다.
“오빠…….”
지혜가 울었다. 다윤은 제 품에 안겨 우는 사촌 동생의 머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때, 그런 지혜를 두고 삼촌이 다윤의 팔을 붙잡았다.
울고 있는 지혜를 뒤로하고 다윤은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심장 소리를 알리는 기계음도 함께였다. 다윤은 멍하니 서서 침대에 누워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산책을 하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구나. 의식이 돌아올 생각을 안 하는데…… 의사 말로는 아무래도 오늘내일 중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삼촌이 말을 차마 끝내지 못하고 탄식했다. 다윤은 삼촌의 말에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마음의 준비? 저는 그런 걸 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엄마가 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다윤은 엄마의 손을 붙들었다. 앙상한 그 손에 남아 있는 온기를 느끼려고 손을 꾹 붙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삼촌, 우리 엄마 괜찮아질 거예요.”
“…….”
“다시 일어나셔서 나한테 웃어 주실 거예요. 거짓말이었다고, 사실 장난이었다고 말하면서 웃을 거예요.”
삼촌, 나는 그렇게 믿어요. 믿다 보면 그렇게 될 거예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다윤의 말에 삼촌은 그런 다윤을 말없이 끌어안았다. 다윤은 뒷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삼촌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내 남은 행복이 사라지지 않도록 부디 그렇게 포기하는 얼굴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위독해져서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다행히도 영화감독이자 제작사 대표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다. 다음 주 내로 다시 약속을 잡아 보자는 얘기를 듣고 다윤은 전화를 끊었다.
서이호에게 전화를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에서 끝이 났다. 이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얘기를 하면 바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눈물을 참아 내느라 목 부근이 뻐근할 지경이었는데.
“……지혜야.”
“응, 오빠.”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지혜를 살짝 흔들었다. 자고 있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지혜를 보며 다윤은 옅게 웃었다. 신경 써 주는 지혜가 고마웠지만, 이렇게 내도록 앉아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힘든 건 저 하나로도 족했다.
“조금 있다가 삼촌 오시면 같이 집으로 가. 응? 피곤해 보이는데 자고 내일 와.”
“오빠, 그래도…….”
“괜찮아.”
다윤은 그렇게 말하고 지혜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혜는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달싹였다가 이내 꾹 다물었다. 지금 다윤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파스스 쓰러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괜찮아지실 거야.”
다윤은 또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다윤은 닫힌 중환자실 문만을 빤히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지혜야, 다윤아. 오늘은 이만 가자. 중환자실에서는 보호자가 묵을 수 없다네. 갔다가 내일 다시 오자꾸나.”
“전 안 가요.”
다가온 삼촌이 다윤과 지혜를 향해 말했지만, 다윤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안 가겠다는 말을 하는 다윤의 얼굴이 너무나도 단호해서 두 사람 모두 함부로 더 얘기하지 못했다.
삼촌과 지혜가 끝끝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고 나서도, 다윤은 오래도록 그 문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점심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는데 허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제가 이 자리를 비운 순간 금방이라도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일어나 저를 찾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바깥이 어둑어둑해짐과 동시에 병원 안도 점점 빛을 잃었다. 다윤이 앉아 있는 쪽에만 예의상 불이 켜져 있을 뿐, 다른 곳은 모두 천천히 소등이 되고 있었다. 문 쪽에서 떼지 않고 있던 시선을 복도 끝 벽에 있는 창가로 돌려 보았다. 낮 내내 흘러들어 오던 햇빛도, 노을빛도 이제는 들어오지 않고 캄캄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불빛이 오직 다윤이 있는 공간만 비추고 있던 터라, 그 사람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실루엣만으로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서이호였다. 어딘지 모르게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서이호. 훈련복을 그대로 입고, 머리도 제대로 안 다듬고 온 건지 이리저리 뻗쳐 있는, 서이호.
이호가 다윤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윤은 말없이 그런 이호의 얼굴을 봤다. 오늘 내도록 연락이 없는 저를 찾아다닌 것 같았다.
화가 났을까. 오늘 내내 연락이 없었다고.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본 이호의 얼굴에서는 어떤 화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초조함 같은 것들, 불안함 같은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 최다윤을 본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지금 이렇게 안도의 얼굴을 하고 제 앞에 앉아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윤아.”
이호는 다윤을 부르며 조심스레 그를 끌어안았다. 다윤은 그런 그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호에게서 바람 냄새가 느껴졌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차가운 겨울바람 냄새. 다윤은 그 냄새가 지금 제 온몸을 감싸며 위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오늘 내내 듣고 싶었던 그 말을 하는 서이호를 다윤은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피식 웃었다. 그 말을 들으면 눈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웃음이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가 제정신은 아니구나 싶었다.
“……응. 네 말이 맞아.”
다윤은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서이호의 말은 언제나 옳았으니까 이번에도 서이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최다윤은 괜찮고, 모두 다시 좋아질 것이다. 다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더욱 이호의 목덜미 쪽으로 가져다 댔다. 이렇게 오래도록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다윤은 이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이호는 입고 왔던 유니폼 겉옷을 벗어 조심스레 다윤이 깨지 않게 어깨에 둘러 준 후, 다윤이 조금 더 편히 누울 수 있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 위에 올렸다. 얼마나 피곤했던 건지 그 와중에도 다윤은 깨지 않았다.
이호는 손을 들어 다윤의 눈가를 매만졌다. 살며시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서 이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이번엔 그의 코끝을, 볼을, 입술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아무런 물기 없이, 계속 말라 가다가 부서져 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다윤은 금방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분명 짊어지고 있는 슬픔에 온몸이 짓눌리고 있는 게 분명했는데, 그는 옅게 웃기만 할 뿐, 고통에 대한 어떤 표현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윤아.”
이호는 다윤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다윤은 대답이 없었다. 이호는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윤아, 슬퍼하지 마.”
아파하지도 마. 네가 아픈 거, 다 내가 했으면 좋겠어. 네 슬픔, 아픔, 다 내가 가져갔으면 좋겠어.
이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 숙여 다윤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다윤의 슬픔을 모두 가져올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비추는 유일한 불빛이 불안하게 깜박거렸다. 이호는 고개를 숙여 다윤이 불안한 그 빛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없도록 그의 얼굴 위를 오래도록 가려 주었다.
* * *
하루가 지나도 엄마는 깨어날 기색 없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 말로는 지금 숨을 쉬고 계시는 것도 기적이라 했지만, 다윤은 더 큰 기적을 바랐다. 일어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의사가 말한 기적은 다윤에게는 슬픔에 불과했다. 곧 다가올 아픔에 대한 전조에 불과했다.
“윤아, 이거라도 먹어.”
이호가 어디서 사 온 건지 샌드위치 박스를 내밀어 다윤의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다윤은 고개를 저었지만, 이번에 이호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호한 얼굴로 그가 다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샌드위치를 뜯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너 먼저 먹어, 그럼.”
“너 먹는 거 보고 먹을게.”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다윤은 제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음식 재료들이 씹히기만 할 뿐, 입 안이 퍼슬퍼슬했다.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고 다윤은 한입 먹고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이호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더 먹고 싶었는데 더 이상 들어가지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조금 있다가 배고프면 먹자. 알겠지?”
이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스를 정리하고 다윤의 손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다윤은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자, 이호도 덩달아 웃으며 다윤의 얼굴 옆 부분에 묻은 소스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때 이호의 옷 주머니 안에서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너 전화 온다.”
“……응.”
“너 찾는 전화일지도 모르잖아.”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어서 받아.”
다윤의 고집에 이호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휴대폰을 들고 복도 끝 쪽으로 걸었다. 불안한 듯 계속 돌아보며 가지 못하는 이호에게 다윤이 옅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다윤을 물끄러미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복도 끝에 와서야 이호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완전히 다 갈라졌다. 다윤의 앞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평소 이호의 목소리보다 더욱 낮은 목소리였다.
- 뭐야, 서이호 괜찮아? 오늘 훈련 안 왔길래 전화했다.
“일이 있어서. 오늘은 못 가.”
- 자유 훈련이니까 안 와도 되지만 네가 이렇게 갑자기 훈련 빠지는 일이 없어서 놀라서 연락한 거야. 무슨 일인데. 많이 심각한 거야?
“지금 당장은 말해 줄 수가 없고……. 일단 끊어. 갈 수 있을 때 연락할 테니까.”
민우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알겠다며,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걱정하고 있을 시호에게도 사정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고, 이호는 잠시 벽 옆에 기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는 문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글쎄. 이호는 사실 지금 당장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이럴 땐 제가 어떻게 위로하는 게 맞는 건지. 지금 이렇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건지. 저도 지나온 시간 속을 다윤은 어떻게 지나야 나아질지 그 어떤 것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단 어서 다윤에게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호가 다시 연자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 앞으로 갔다. 이상하게 아까보다 복도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수군거리는 소리도 불안하게 들렸다.
이호는 걸음을 빨리해 종내는 뛰다시피 해서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다. 그 앞에, 다윤이 있었다. 고개를 숙인 다윤이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다윤의 앞에 한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말을 해 보란 말이야. 왜 아무 말도 못 해?!”
“…….”
“우리 언니 저렇게 되길 네가 빌었지. 이 천애 고아, 너 같은 걸 왜 입양해서! 우리 언니도, 오빠도 다 너 때문에 지금 죽어 가잖아! 살려 내! 살려 내라고!”
“엄마, 제발 그만해! 이러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엄마!”
“이거 놔! 저게 이 앞에서 이렇게 사람 속 뒤집히게 하고 있을 줄 알았니? 아이고! 우리 언니 어떡해. 우리 언니! 오빠도 그렇게 보내고 이렇게 가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다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계속해서 다윤의 어깨를 아프게 내려치고 있는데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호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중년 여성의 무자비한 손길을 막았다. 여자도, 그 뒤에 딸처럼 보이는 여자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이호를 올려다봤다.
그 누구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이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차가운 눈으로 여자를 내려다봤다. 추운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그런 시선이었다.
“넌 뭐야?”
상황 파악을 한 듯, 여자가 이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날카로운 음성이 병원 복도를 가득 울렸지만 이호는 다윤의 앞에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꿋꿋이 서서 여자를 내려다봤다.
“그쪽은.”
“뭐?!”
“그쪽은 뭔데.”
그 말에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다윤 쪽을 한번 노려봤다. 이호의 뒤에 서 있는 다윤은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뭐, 쟤 친구라도 되니, 네가? 그래?”
“엄마, 이제 제발 그만해. 얼른 가자, 제발.”
“이거 놔. 가더라도 할 말은 하고 가야지. 너도 그래. 피해 보기 싫으면 얼른 얘랑 연 끊는 게 좋을 거다. 우리 서리가 어릴 때 크게 다쳤던 것도, 우리 오빠 그렇게 다친 것도, 언니가 저렇게 아파서 못 일어나는 것도 다 쟤가 기운이 더러워서 그래, 기운이.”
여자가 다윤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은 걸 이호는 꾹꾹 눌러 참았다. 뒤에 있던 다윤이 몸을 움찔 떠는 게 느껴졌다. 다윤의 작은 동작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이호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사람들이 옆에서 구경거리처럼 쳐다보는 것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머리 한쪽의 나사가 빠진 것처럼 화가 났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머리가 차가워질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저 천애 고아, 저딴 걸 자식이라고 데려와서 이 고생이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네가? 네가 우리 오빠 보험금 다 썼지! 우리 언니 보험금도 네가 타서 지금 떵떵거리면서 잘사는 거지?!”
제 뒤에 있는 다윤에게 손을 뻗쳐 가면서 여자가 악을 썼다. 이호는 다윤이 안전할 수 있도록 거리를 확보하며 다윤에게 자꾸만 손을 뻗는 여자의 팔을 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고는 차갑게 일갈했다. 이 여자가 다윤의 고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모든 것을 판단할 만큼의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딴 식으로 말합니까.”
이호의 기세에 여자가 움찔 몸을 떨었다. 뒤에서 여자를 말리던 딸도 덩달아 몸을 굳히며 이호를 바라봤다. 이호가 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당신이 아느냐고, 다윤의 아픔을 알기나 하냐고.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에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슬픔을.
그때, 뒤에서 다윤이 제 팔을 붙잡아 왔다. 힘없이 이호를 잡아당긴 다윤이 이호와 고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해.”
“…….”
“……죄송해요, 고모. 다 제 탓이에요.”
다 제 잘못이에요. 고모, 제가 잘못했어요. 다윤은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순식간에 복도가 조용해졌다. 다윤은 등 뒤에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엄마는 눈을 감고 의식을 되찾고 있지 못한 상태였지만 분명히 이 상황을 보고 있을 터였다. 엄마가 슬퍼하지 않도록 다윤은 이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고모는 제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테니까.
울고 싶지 않아서 또다시 울음을 삼키느라 목 부근이 이젠 아프다 못해 뻐근했다. 다윤은 고개를 수그린 채 들 수가 없었다. 고모도, 서리도, ……이호조차도 저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지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
결국 여자가 딸에게 못 이겨 병원을 나가고, 그제야 사람이 몰렸던 복도는 조용해졌다. 언제 그렇게 소란스러웠냐는 듯, 조용해진 복도에 다윤과 이호만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윤은 이호 쪽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렸다. 이호에게는, 그저 미안했다. 저를 지켜 주고자 앞으로 나선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 마음과 동시에 다윤은 이호가 자신 때문에 소란에 더 얽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모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저는 애초에 기운이라는 게 사나워서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서리와 놀다가 서리 혼자만 크게 다친 이후로 고모는 그 얘기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고모의 화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누워 계시는 게, 그제야 모두 제 탓 같았다. 다 제 잘못. 그냥 나라는 존재…… 그게 잘못인 것 같았다.
“윤아.”
텅 빈 복도에 이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윤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려 부러 고개를 돌렸다.
“윤아.”
이호가 한 번 더 다윤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네가 고개를 다시 제 쪽으로 돌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이. 다윤이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이호가 입을 열었다.
“너도 알지. 난 원래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
이호의 말은 뜬금없었다. 그래서 이호 쪽을 최대한 쳐다보지 않으려 다른 쪽으로 돌렸던 고개를 천천히 이호에게 다시 돌렸다. 시선 끝에 이호가 있었다. 이호가 제 눈빛을 보고 있었다. 따듯한 눈빛으로. 그 어떤 온도보다 따듯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눈빛으로.
“여태껏 그렇게 살았어. 아버지도,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내가 야구를 하지 않길 바라셨다는 걸 알아. 그러면서도 계속했던 건 오직 나 때문이었어. 내가 좋았으니까.”
“…….”
“난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인간이야.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지 못한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던 인간이야, 나는.”
다윤은 입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너는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이라고. 그걸 하는 것에 있어서 누구도 너를 이기적이라고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그러나 그 말을 하려는 순간, 이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거에 너무 서툴러, 윤아.”
“…….”
“지금 난, 그 어떤 것보다 네가 중요해.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지도, 스스로를 갉아먹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
“어떻게 하면 돼? 내가…….”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할 수 있어?
이호의 말에 다윤은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분명 울고 있을 것이다. 눈 아래에 떨어지는 눈물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울고 싶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자 포근한 느낌이 다윤을 감싸 왔다. 제 앞으로 다가온 이호가 저를 감싸 안은 것이다.
“나, 입양된 거야. 엄마 아빠 친아들 아니야, 나.”
다윤은 울음을 천천히 삼키면서 느릿하게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었다. 이호는 별다른 대답 없이 다윤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듯이.
“아빠 돌아가신 거 나 때문이라는 것도 맞아. 어쩌면 고모 말이 다 맞아. 내가 기운이 더러워서 엄마도 저렇게 아프게 만든 것 같아. 그래…… 사실 그래서 병원에 오는 것도 자꾸 꺼려졌어. 엄마를 내가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근데 이호야.”
“…….”
“나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
다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이호의 얼굴을 봤다. 이호가 언제나처럼 웃으며 다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너 때문 아니야.”
“…….”
“내가 증명할게. 평생 네 옆에 꼭 붙어 있으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고, 야구도 하고, 그렇게 증명할게. 그러니까 윤아, 더 이상 자책하지 마.”
다윤은 그렇게 말하는 이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너도 도망치라는 고모의 얘기가 맴돌아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해 주는 이호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저를 오래도록 좋아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것도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고 다윤은 눈을 감았다.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라 누군가를 위로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서이호의 품에서 다윤은 가장 큰 위로를 받으며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 * *
다윤은 이호의 어깨에 기대어서, 이호도 다윤의 머리에 기대어서 잠들어 있었다. 언제 잠든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복도가 이상하게 아까보다 훨씬 환했다. 의아함에 다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제 앞에 서 있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
다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병실 문 바로 앞에 서서 저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따듯한 얼굴로. 다윤은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엄마가 팔을 벌렸고, 다윤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 엄마. 이제 괜찮아? 어? 아픈 거 다 괜찮아?”
“그럼, 우리 아들.”
“엄마. 엄마, 나 진짜 걱정 많이 했어. 무서웠어. 엄마…….”
다윤은 이상하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한 번도 부려 본 적이 없는 어리광을 피우며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는 다윤을 마주 안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어리광 부리듯 말하는 건 완전히 처음이었다. 응석도 제대로 부려 본 적 없는 다윤은 함부로 투정도 부려 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안아 볼걸. 좋은 데도 가자고 졸라 보고, 응석도 부려 볼걸. 이제 와서 이렇게 후회를 하는 건, 다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제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자 이렇게 제 앞에 서 있다는 걸.
“다윤아.”
엄마가 끝에서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시작해, 손끝, 머리카락 끝. 서서히 엄마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다윤은 엄마의 팔을 잡았다. 제발 사라지지 말라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야속하게 엄마는 점점 희미해졌다.
“네 잘못 아니야, 다윤아.”
누가 네 잘못이라고 하면 말해. 나는 우리 엄마의 인생 중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런 말 할 자격 없다고.
“넌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 내 아들.”
다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남아 있던 엄마의 오른팔이 다윤의 얼굴을 쓸었다.
“우리 아들, 왜 이 순간에도 울음을 참고 있어.”
하, 하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내내 울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다. 한 번도 속 시원히 울어 본 적 없는 다윤은, 이렇게 꿈속에서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엄마 아들 해 줘서 고마웠어, 윤아.”
나도, 나도, 고마웠어요. 엄마 아들로 살아갈 수 있어서. 부족한 제가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볼 수 있어서 저는 너무나 행운아였어요.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다윤은 사라져 버린 엄마를 느꼈다. 이제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 엄마를, 다윤은 손을 들어 잡을 것처럼 손가락을 구부렸다.
“다윤아! 일어나! 연자가……!”
순식간에 꿈에서 깨어 현실이었다. 제 앞에서 저를 흔들어 깨우는 삼촌과 지혜, 그리고 이호가 있었다. 다윤은 세 사람을 번갈아서 보고 중환자실 안을 물끄러미 봤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듯, 의사가 고개를 떨구고 침대 위에 있는 엄마의 얼굴에 무언가를 씌우고 있었다.
다윤은 울지도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남아 있지 않은, 차게 식어 버린 손바닥이 다윤의 손아래에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났다. 웃고 있는 얼굴. 행복해 보이는 얼굴.
엄마는, 이제 아프지 않고 행복할 것이다. 아빠를 만나서 다시 행복했던 예전으로 돌아가셨을지도. 그 생각을 하자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얼굴을 보고 하지 못한 말이었다. 꼭 해 드려야 했던 말이었는데. 꿈속에서조차 망설이느라 차마 하지 못한 말. 과연 나 같은 게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싶어 꾹꾹 참아 온 말.
“엄마, 나도 고마웠어요.”
“…….”
“나 만나 줘서…… 엄마로 살아 줘서…… 감사해요.”
다윤은 그 말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기를, 지금 제 행복 모두를 전해 주고 싶을 만큼 연자가 행복하기를. 다윤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 * *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그동안 이호의 누나와 지혜, 그리고 삼촌과 숙모가 다녀가면서 조문을 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상대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았다. 펑펑 눈물을 쏟는 지혜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남의 일을 대하듯이.
한산해진 장례식장 안에서 다윤은 상복을 입고, 팔에 상주를 의미하는 띠를 둘러맨 채 장례식장 한편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랫동안 자신의 엄마의 사진에 꽂혀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다윤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어떻게든 치밀어 올라오는 눈물을 꾹꾹 참아 내고 또 참아 내 목이 아팠다면, 이젠 눈물이 나올 감정이 남아 있지 않는 게 맞았다.
누군가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 아들은 왜 울지 않느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그랬다. 최대한 눈물을 참아 내고 있는 다윤을 보며 사람들은 독하다고 그랬다. 누군가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그랬다. 저런 아들을 키우느라 한 평생을 산 남자가, 그런 아들을 데리러 갔다가 사고로 죽은 남자가 불쌍하다고.
“서이호.”
다윤은 옆에 앉아 있는 이호의 손을 붙잡았다. 이호가 대답 없이 웃으며 다윤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제 옆에서 시간을 견뎌 준 이호를 물끄러미 보며 다윤은 웃었다.
이호의 이름을 불러 놓고 다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호가 무슨 일이냐고, 혹시 목이 마른 건 아니냐고, 몸을 일으키려는 걸 다윤이 붙들고 다시 한번 이호의 이름을 불렀다.
“……서이호.”
눈앞에 서이호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제 곁에 있는 것들을 다윤은 피부로 느끼고 싶어 계속 이호의 이름을 불렀다. 이호는 일어서려는 자세에서 다시 앉아 다윤의 눈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다윤의 마음을 모두 알고 확인하라는 듯이, 제 존재를 피부로 온전히 느끼라는 듯이.
“다윤아.”
그때 식장 안으로 누군가 들어서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아였다. 어떻게 온 건지 다윤은 몸을 일으켜 세아를 봤다. 세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떻게 왔어.”
“연락이…… 너, 연락이 너무 없길래……. 너네 집도 갔다가 어머님 병원까지 왔는데…….”
세아가, 한 번도 제 앞에서 눈물을 쏟은 적 없는 세아가 울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강한 세아가. 다윤은 세아가 자신을 끌어안고 우는 걸 조심스럽게 토닥여 주었다. 다윤은 울고 있는 세아를 다독이면서도 내심 그녀가 부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쏟아 낼 수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다윤에게는 그랬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세아가 조문 예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더 멀리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꾸 머뭇거리는 다윤과 문 바깥에서 인사를 마치고, 세아가 건물 옆쪽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려던 참이었다.
언제 온 건지 제 옆에 서 있던 이호가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세아가 대수롭지 않게 이호의 손에 담배 한 개비를 건넸고, 불까지 건네주었다. 두 사람은 건물 옆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배 안 피운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안 피워.”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는 이호를 세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봤다. 이호는 안 피운다는 사람치고는 꽤나 능숙하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공기 중으로 뱉어 냈다.
“야구 때문에 절대 손도 안 대. 아주 예전에 한번 피워 보고 말았지.”
그런데 지금은 야구고 뭐고 일단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답답했으니까. 지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했고. 그런데 아무래도 괜히 피운 것 같았다. 답답한 속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결국 이호는 몇 번 입에 대지도 않고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뜨려 불씨를 껐다.
옆에서 보는 다윤은 곧 바스러질 듯했다. 며칠을 끼니를 거른 건지도 셀 수 없었고, 그걸 둘째 치고서라도 다윤은 지금 당장 공기 중으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었다. 감정을 참고 참다가 결국 터트리는 법을 잊어버린 다윤이, 사막처럼 말라 먼지처럼 공기 중에 흩어질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이호는 내내 불안했다.
“다윤이…… 걱정돼.”
세아도 같은 마음인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봤다. 겨울 밤하늘은 마치 먹구름을 가득 실은 것처럼 뿌연 빛을 띠고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정말 걱정됐어. 애가 곧 쓰러질 것 같은데 계속 괜찮다, 괜찮다……. 그걸 옆에서 듣는데 정말 갑자기 애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어서 매주 생존 확인을 했던 거야.”
“…….”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다윤이는 자기 슬픔을 얘기하는 법을 몰라. 남에겐 그렇게 잘 대해 주고 다정하면서 스스로한테는 각박해.”
이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입양된 가정에서 함부로 감정을 내비치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한 번 버림받은 아이는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니까. 그러니 슬픔 같은 것은 내비칠 방법을 배우지 못했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대체 어떻게 그 큰 마음을 안아 주고 위로할 수 있을까. 이호는 알 수 없었다. 다윤에게 말했던 대로 한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아온 서이호는,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사랑해 본 적 없는 서이호는 서툰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이런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상처를 내는 건 아닐까.
“나 솔직히 너 못 미더웠거든.”
세아가 그렇게 말하며 바닥으로 담배를 떨어뜨렸다. 지그시 담배를 밟는 그녀의 구둣발 사이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세아는 다시 한번 눈물을 닦아 내곤 이호를 보며 말했다.
“생긴 것도 반질반질하고, 거기다 잘나가는 야구 선수잖아. 또 스캔들은 어찌나 많은지. 다윤이한테 조금이라도 못하면 난 바로 헤어지라고 말하려고 했어.”
“하.”
이호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자 세아도 웃었다. 그녀가 다윤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조금 마음이 놓인다.”
“…….”
“다윤이 옆에 너 있는 거 보니까 마음이 놓여. 적어도 그때처럼…… 당장은 사라질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으니까, 다윤이.”
세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덧붙였다.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은 건 아니라고. 언제든 다윤에게 잘해 주지 못하면, 제가 앞장서서 둘 사이를 끊어 놓을 거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걱정 마.”
지금으로써는 다윤이 괜찮아질 수 있다면, 그를 다정히 위로할 수만 있다면 제 몸 하나 정도는 그냥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하다못해 정말로 제 몸속 어느 것 하나를 내주어서 그가 괜찮아진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호가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에 인적 없는 장례식장에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서리였다. 다윤은 서리가 조문 예의를 갖추는 것을 모두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인사를 모두 마친 서리가 다윤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없어.”
“……아.”
“오늘은 나 혼자 가겠다고 했어. 엄마가 또 소란 피울 것 같아서.”
다윤의 몸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을 알아챈 서리가 말했다. 다윤이 그제야 몸을 조금 풀고 서리를 봤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처럼, 그때 병원에서처럼 저를 원망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윤은 서리가 어서 이곳을 떠나 주었으면 했다. 당장이라도 고모가 나타나 다윤의 멱살을 붙들고 너도 어서 죽으라고 욕을 퍼부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서리는 나가지 않고 다윤의 앞에서 말했다.
“항상 했었어야 하는 말인데, 다윤아.”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서리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윤은 그런 서리의 뒤통수만 바라봤다. 미안하다는 말을 서리에게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서리가 그런 말을 제게 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저는 그들에게 적이었고, 악의 근원이었으니까.
“우리 엄마 그러고 있을 때 제대로 말리지 못한 것도, 이번에 또 그러실 거라는 거 알면서 병원 가르쳐 준 것도, 다 미안해……. 너한테는 내가…… 정말 죄진 것 같아.”
다윤은 순간 서리와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저를 싫어하는 고모와는 다르게 저를 좋아했던 사촌. 밝고 쾌활했던 사촌.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어른들이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계곡 깊은 곳에서 수영하다가 물에 빠진 서리. 그날 이후로 대놓고 저를 완전히 적대시하던 고모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괜찮아.”
다윤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혼이 날까 봐 다윤의 핑계를 댔던 어린 서리에게. 자신의 엄마가 다윤을 그렇게 싫어할지 모르고 그런 말을 했던 서리에게, 다윤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 일이 없었어도 고모는 저를 미워했을 것이다. 저는 그녀의 입장에선 가족이 아니었고, 그저 눈엣가시에 불과했으니까.
“정말 괜찮아…….”
다윤은 그렇게 말하고 서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래전부터 서리의 어깨에 있던 죄책감을 덜어 주듯이. 서리는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다윤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했다.
서리를 배웅하고 다시 들어오는 길, 이호가 벽에 기대어 그런 다윤을 보고 있었다. 다윤은 이호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이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다고? 어제 그런 식으로 저를 대했던 사람에게, 괜찮다고? 하다못해 다윤을 대신해 자신이 나가서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 싶었다. 사정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어제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었던 그 여자의 딸에게라도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다윤은 괜찮다고 말했다. 마치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배운 듯이.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누르는 방법을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들은 것처럼. 그리고 그걸 착실히 지켜 내는 성실한 아이처럼.
다윤을 보고 있는 이호의 마음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장례식은 끝이 났고 엄마의 몸은 흰 가루가 되어 아버지가 있는 곳에 같이 놓였다. 다윤은 납골당 안에 저와 엄마, 그리고 이호가 같이 찍힌 사진을 올려 두고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다윤아, 괜찮니?”
삼촌이 다윤의 어깨를 붙들고 물었다. 다윤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삼촌을 바라보곤 씩 웃었다.
“네, 괜찮아요.”
삼촌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삶에서 치르는 두 번의 장례였다. 그때도 느꼈지만, 장례는 늘 그 당시보다 후가 더 힘들었다. 떠나간 사람을 보내 주고 제 일상을 살아가는 일.
납골당 바깥으로 나가자 저를 기다리고 있던 이호가 차에 기대고 있던 자세를 바로 해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조만간 집으로 가마. 짐 정리는 같이해야 할 것 같아서.”
“……네, 고마워요. 삼촌.”
“오늘 지혜 못 온 건 너무 섭섭해 말고.”
“지혜도 많이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다윤은 그렇게 옅게 웃었다. 아까부터 웃기만 하는 다윤을 보며 삼촌 강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니?”
강우의 시선이 멈춘 곳에 이호가 있었다. 다윤은 강우를 따라 이호를 쳐다봤다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강우가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다윤은 그런 강우를 보고 한 번 웃기만 했다. 당장 얘기를 할 수야 있었지만, 지금은 힘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설명을 하겠다는 그 웃음에 삼촌 강우는 다윤의 머리를 한 번 가볍게 쓸어 주었다.
“먼저 가 볼게요. 감사했습니다, 삼촌.”
강우는 멀어지는 다윤의 뒷모습을 봤다. 다윤을 기다리던 남자가 강우 쪽으로 인사하듯 허리를 수그리는 모습까지. 강우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 친구가 자신의 여동생 연자가 떠나기 전 얘기했던 그 친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오빠, 다윤이 말이야. 요즘 좋아 보여.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래? 누군데?”
“오빠한테 바로 말할 순 없고…… 내가 보기엔 좋은 아이야. 그러니까 오빠도 혹시 나중에 알더라도 나쁜 반응 보이거나 그러지 마. 윤이가 좋다면 나도 좋으니까.”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일지 몰랐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저 뜻이겠구나 싶어서 강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하늘을 한 번, 다윤의 뒷모습을 한 번 봤다. 꾸물꾸물한 하늘에서는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연자야, 거기는 행복해? 거기서 내려다본 다윤이는 행복해 보이니? 네가 끝끝내 그랬지. 다윤의 든든한 사람으로 오래도록 남아 달라고. 그렇게 할 거야. 다윤이는 네 아들이면서 내겐 하나뿐인 조카니까.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강우는 눈을 감았다. 떠난 여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려 온 탓이었다.
툭, 툭. 강우의 얼굴 위로 비가 내렸다. 마치 여동생이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그런 가벼운 토닥임 같은 빗줄기였다.
날씨가 흐리다 싶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툭툭, 하고 차 바깥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빗물이 창문을 타고 미끄러졌다. 다윤은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가는 날에 비가 오다니. 조금 더 날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포근한 눈이라도. 그래야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으실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렇게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이호를 바라봤다. 이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장례식 내내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어떤 불평도 없이 다윤의 옆을 지켰다. 문득문득 다윤이 멍하니 쳐다볼 때면 마주쳐 오는 눈빛들이 떠올랐다. 그 시선만으로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던 그 순간을.
하지만, 나는 너에게도 그렇게 늘 오래도록 위로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 모든 것도 다 나를 떠나 버리지 않을까. 다윤은 문득 무서워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혼자 집으로 갈게.”
“…….”
“그냥, 그러고 싶어서.”
다윤은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이호가 그런 다윤을 한 번 쳐다보고,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
“정말로 내가 널 두고 갔으면 좋겠어?”
이호의 말에 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는 다윤의 대답을 듣고 말없이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차는 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사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저 때문에 써 버렸고, 그런 그에게 어리광 부리듯 더 같이 있어 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호라는 존재와 온도가 지금의 다윤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 죄책감 같은 것도 있었다. 제 슬픔을 그에게 묻히는 것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그런 것들.
오랜 침묵이 계속됐고, 차는 달리고 달려 다윤의 집 앞에 도착했다. 다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갈게.”
“…….”
“고마웠어, 내내.”
애써 이호의 얼굴은 보지 않고 내렸다. 탁, 하고 차 문이 닫히고 순식간에 다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주변이 공허했다. 오로지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다윤을 반기는 듯했다.
몸을 돌려 걸었다. 사실, 집엔 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엄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버지의 물건도, 어머니의 물건도 무엇 하나 버리지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돌아오실 거라는 생각에 그 어떤 것 하나 버리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조용했다. 이 모든 고요함이 다윤을 집어삼킬 것 같아서 다윤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무서워. 더 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 그런 생각들이 마구 피어오르던 그때였다.
“……최다윤.”
탁, 하고 손목이 붙잡히고 다윤이 뒤로 돌았다. 이호였다. 저와 똑같이 비를 맞고 있는 서이호가 제 앞에 서 있었다. 다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호가, 울고 있었다. 온 얼굴 가득, 눈물이 빗물과 섞여 흐르고 있었다.
덥석, 이호가 다윤의 어깨를 끌어안은 건 그때였다. 다윤은 얼떨떨하게 이호에게 안겼다. 다윤의 어깨가 빗물 때문인지, 아니면 이호의 눈물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고 있었지만 다윤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윤아.”
“…….”
“미안해, 가라고 말했는데 안 가서……. 근데 도저히 못 그러겠어. 아프고 외로워하는 거 보기 싫어. 차라리 내가 다 아팠으면 좋겠어. 네가 슬픈 거…… 다 내가 했으면 좋겠어.”
이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나 때문에 우는 걸까. 울지 말라고, 나 때문에 울지 말라고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혼자 가지 마. 나랑 같이 있자, 제발. 윤아…… 나한테 가라고 하지 마.”
이호의 말을 듣는 다윤은 순간 울컥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내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었다. 그 눈물들이 마치 둑이 터진 댐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숨소리 한 번 낼 생각도 못 하고 다윤이 울었다. 그제야 이호가 몸을 떨어뜨려 다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윤의 눈물이 묻고 흩어져 내렸다.
나도, 나도 혼자 있기 싫어. 그 말은 눈물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 눈물을 참았던 것을 벌을 받듯 목이 뻐근하게 아팠고, 눈물은 자제를 하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이호는 다윤의 손을 다시 잡고 걸었다. 다윤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그를 따랐다. 든든한 이호의 등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따듯하고 포근해 보였다.
* * *
어디를 가는 거냐고, 다윤은 묻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차에 올라타서 한동안 눈물을 계속 흘렸다. 이호는 오랜 운전을 마치고서야 그런 다윤의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지쳐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다윤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장례식 내내 이호는 생각했다. 다윤이 그냥 울어 주기를. 그렇게 참고 참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것처럼 굴지 말고 제발, 그냥 울어 달라고. 괜찮다는 말은 그만해 달라고.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혼자 가겠다며 뒤돌아서 걷는 다윤을 보고 있자니 덜컥 겁도 났다. 다윤은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저 슬픔이 다윤을 잠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다는 그의 말도 무시하고 이호는 일단 다윤에게 뛰었다. 다윤의 뒷모습을 보며 뛰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랑스러운 내 애인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차에 올라타서도 한참을 울던 다윤은 결국 지쳐 잠이 들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비는 눈이 되어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호는 다윤을 두고 차 밖으로 나왔다. 열심히 운전을 해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어느새 어두워진 사위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철썩하고 파도가 들어왔다가 빠지는 소리가 온몸을 감싸 위로를 해 주고 있었다.
왜 이곳에 다윤을 데리고 오고 싶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어떤 번뇌도, 슬픔도 없는 곳. 일상 속의 슬픔을 감히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곳.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였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호는 바다를 좋아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와 누나의 손을 잡고 갔던 곳도 바다였다. 그곳에 다녀와서 누군가에게 함께 가자고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
왜 갑자기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옆에서 다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없이 이게 뭐냐.”
퉁퉁 부운 눈으로 다윤이 웃었다. 그조차도 귀여워서 이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다윤의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평소 단정하면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목소리가 아까의 울음 때문에 잔뜩 갈라져 있었다. 지금 이 목소리도 사랑스러웠다. 실컷 울고 나서, 슬픔을 뱉어 내고 나서의 목소리.
이호는 다윤을 끌어안았다. 다윤도 말없이 고개를 이호의 어깨 위에 올리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진 숨이었다.
“오고 싶었어, 너랑.”
제 말에 다윤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넌…… 진짜, 웃겨.”
“응?”
“기억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다윤의 말에 이호가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다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더 힘을 주어 이호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같이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안 해도 돼.”
당연한 일이었다. 이호가 다윤의 옆에 있는 건. 그가 힘들 때 다윤을 위로하는 건, 인사 받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호가 고맙다고 해야 했다. 네 슬픔에 나도 함께하게 해 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나를 그렇게 너의 일부로 온전히 인정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 사실 정말 많이 무서워.”
다윤이 이호의 품에서 중얼거렸다. 이호는 그런 다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그의 머리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주말마다 찾아갔던 엄마를 이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무서워. 근데 네가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 그냥 입에 발린 말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괜찮을 것 같아.”
다윤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괜찮아질 때까지, 언젠가는 이 슬픔을 추억으로 생각할 때까지 이호는 다윤의 옆에 있을 것이다. 다윤을 위로할 것이다. 언젠가 다윤이 제게 했던 것처럼. 제게 주었던 사랑처럼.
“너만이 나한테 유일한 위로였어.”
“…….”
“그러니까…… 이번엔 내 차례야, 윤아.”
위로해 줄게. 다 괜찮아. 걱정 마.
다윤은 제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도 보였다. 아, 눈물이 이토록 반갑다니. 늘 울음을 참았던 그가 이제는 참지 않고 제 앞에서 운다. 제 감정을 모조리 보여 준다. 그 사실이 좋아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이호는 혀를 내밀어 훑어 내렸다. 그의 슬픔이 옅어질 수 있도록.
“그럼…… 안아 줘.”
“…….”
“아무 생각 하지 않게, 그냥 안아 줘, 이호야.”
언제나처럼. 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다윤은 웃었다. 웃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났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서이호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 바다 근처 호텔에 들어와 방을 잡고 있는 그 순간에도 다윤은 서이호와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그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봐 불안하다는 듯이.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물론 서이호도 그런 다윤의 손을 내내 붙잡아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방으로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도 다윤은 이호와 붙잡고 있는 손을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가 어떻게든 놓고 싶지 않아 힘을 주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호가 제 손을 놓지 않으려 힘을 준 상태였다. 그 압박감이 주는 안도가 무척이나 커서 다윤은 오래도록 그 손을 바라봤다. 언제나 배트를 그렇게 쥐고 있던 손으로 제 손을 잡고 있는 서이호가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윤은 이호가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고 목을 끌어안아 입을 맞추었다. 조금은 다급하게 느껴지는 그 동작에 이호는 한쪽 팔을 다윤의 허리 쪽에, 한쪽 손은 다윤의 목덜미 쪽으로 가져가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하고 또 다독였다.
두 혀가 얽히고, 처음에는 다급하던 다윤의 행동도 점점 느릿해졌다. 따듯하게 얽혀 있는 두 입술이 부드럽고 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윤은 또다시 습관처럼 눈물을 참아 내려 목에 힘을 주던 순간이었다.
두 입술이 떨어지고, 이호의 입술이 다윤의 눈가에 닿았다. 다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울어.”
“…….”
“울어도 돼.”
허락을 하듯 그렇게 말하는 이호의 목소리에, 부드럽게 제 눈가를 핥는 따듯하고 축축한 혀에 울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이 비어져 나와 다윤의 얼굴을 적셨고, 이호는 그런 다윤의 얼굴을 부드럽게 훑었다.
“……바보 같아.”
다윤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울고 있는 다윤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슬프면서도 동시에 행복했다. 그 사실이 어쩐지 우습게 느껴졌다. 슬픔과 행복은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단어가 복잡하게 얽혀 다윤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뭐가 바보 같아.”
“……나.”
이호가 다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윤의 귀를 아프지 않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간질거리도록 잘근거리는 그 입술이 기분 좋아서 다윤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그럼 난 뭐야? 너한테 푹 빠졌는데, 너보다 더한 건가?”
“참나…….”
결국 다윤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서이호. 매번 이렇게 웃게 하니, 그런 그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란 없었다.
“윤아, 내 앞에선 뭐든 해도 돼.”
“…….”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그러다가 화내도 되고, 욕을 해도 돼. 네 마음만 풀린다면, 난 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이호의 얼굴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저를 온전히 안아 줄 것 같은 미소였다. 포근하고 아늑한 미소.
진짜 바보는 너네. 다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호의 얼굴을 제 얼굴 가까이 가져왔다. 사랑스러운 사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사람, 이토록 불안정하고 흔들릴 때 내 옆에 서서 온전히 지탱해 주는 소중한 사람.
저는 이제 이호 없이 살 수 없다. 이제 어디로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
“이호야.”
“…….”
“사랑해, 이호야.”
그러니까, 넌 사라지지 마. 오래도록 내 옆에 있어야 해.
이호의 갈색 눈빛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더 진해졌다. 이호가 다윤의 입에 급하게 입을 맞추었다. 다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 이 입맞춤이 제 말에 대한 대답인 것 같았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다는 대답.
눈앞에 서이호, 그리고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다가 보였다. 한쪽 면이 유리창으로 된 호텔은 마치 커다란 바다가 온전히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처럼 보이게 했다.
“이이이만큼 큰 바다! 내가 그 바다를 다 너한테 줄게.”
“네가 어떻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진짜야! 진짜, 줄 수 있어!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저를 보고 방방 뛰면서 그렇게 얘기하던 어린 서이호. 뭐든 해 줄 수 있다는 말이 좋았는지 서늘한 다윤의 표정도 서서히 녹았고, 지금보다 더 해맑게 웃을 줄 알았던 서이호도 맑게 웃으며 다윤을 봤다.
오래된 기억인데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니. 그때 이호가 제게 주었던 사랑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억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윤은 제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이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옷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어서, 온몸으로 서이호가 느껴졌다.
“윤아, 넌 안 예쁜 곳이 어디야?”
“흐으…….”
이호가 다윤의 가슴 위를 부드럽게 물고는 말했다. 혀끝으로 돌기를 훑고, 이빨 끝으로는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물어 오는 게 간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찔할 만큼 기분이 좋아서 발끝이 곱았다. 다윤은 이호의 말에 닭살이라고 타박도 못 하고 입 밖으로는 속절없이 부끄러운 신음만 흘려보냈다.
“예쁘긴, 하…… 뭐가 예뻐.”
이호가 제 가슴에서 몸을 떨어뜨렸을 때야 그제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었다. 다윤은 숨을 작게 몰아쉬며 타박하듯 말했다. 정말 그랬다. 제가 서이호처럼 덩치가 크고 운동선수 특유의 탄탄한 몸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아름답다거나 예쁜 몸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마른, 성인 남성의 몸일 뿐인데. 늘 그렇게 생각해 왔던 다윤이기에 가끔 서이호와 이렇게 밝은 곳에서 눈을 마주치고 섹스를 할 때면,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서이호의 몸은 탄탄하고 멋진데, 그에 비하면 제 몸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윤은 조금 몸을 뒤로 물리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작게 숨을 내쉬는데, 이호가 다윤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왔다.
“아니야, 세상에서 제일 예뻐.”
장난치지 말라고 타박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와 눈을 마주치고 그런 얘기를 하는 서이호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이호가 다윤의 입에 제 통통한 입술을 부드럽게 가져다 댔다가 천천히 뗐다.
“이렇게 키스할 때면 끝이 살짝 올라가는 것도 예쁘고,”
그리고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으며 이로 깨물었다. 잠시 그러고는 몸을 뗀 이호가 다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을 손으로 훑으며 웃었다.
“내 흔적이 이렇게 예쁘게 새겨지는 것도 사랑스럽고,”
그리고 그의 손이 다윤의 가슴과 배를 부드럽게 훑었다. 이호의 손 아래로 다윤의 온도가,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는 근육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 손에 느껴지는 네 피부랑 온도, 그리고 작은 근육들도 멋지고.”
그의 손이 어느새 발기된 다윤의 성기 쪽으로 다가갔다. 이호의 커다랗고 굳은살이 박여 있는 손바닥 아래에 제 성기가 놓였다. 부드럽게 기둥을 쓸고, 그의 손가락 끝이 장난치듯 귀두 쪽을 찌르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만 건드려도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도 귀여워.”
“…아으…… 장난, 치지 마…….”
다윤은 이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목덜미와 귓가가 모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참기가 힘든 것처럼 신음을 참아 내면서 이호의 허리 부근을 손으로 꾹 쥐어 올리는 것도 모두 다 사랑스러웠다.
“진짜야, 다 예뻐서 가끔 그런 생각도 해.”
“…무슨, 으읏, 무슨 생각…….”
“널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 안에 넣고 싶어.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는 거야. 입에서 굴려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그럼 너는 하나하나 반응하겠지? 그 작은 몸이 온전히 나한테만 반응하고, 나만 보고, 내게만 보이는 거.”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오싹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이호는 한쪽 손으로는 제 성기를, 그리고 다른 한쪽 손은 뒤를 살살 문지르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래에 오는 자극에 더해 귓가에 들리는 서늘한 그 목소리도 좋아서 다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아 버렸다. 너무 쾌감에 절어서 이러다가 머리가 펑 터져서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앞뒤 모두 괴롭힘을 당하던 다윤이 저와 이호의 복근 위로 사정을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다윤의 얼굴 위에 이호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사정을 한차례 하고 난 다윤이 나른하게 이호를 쳐다봤다. 그가 안쪽에 있는 손가락을 조금 더 움직여 빠듯하게 늘려 나가며 씩 웃었다. 다윤은 그런 이호의 웃음에 그저 마주 웃었다. 다윤은 살며시 눈을 떠서 이호를 봤다. 지금 당장 이호와 연결되고 싶었다. 아프더라도, 당장 제 안으로 들어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와.”
“…….”
“제발, 이호야. 응?”
애원하듯 다윤이 말하자 순간 웃고 있던 이호의 표정이 굳었다. 빠듯하게 안쪽을 늘리던 행위를 멈추고, 이호가 다급하게 다윤의 구멍 위에 제 성기를 맞댔다. 시발, 하고 이호가 속으로 욕을 삼켰다.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성이 날아간 상태에도 이호는 혹시라도 다윤이 아플까 봐 제 이성을 최대한 되찾으며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안쪽으로 삽입하기 시작했다.
“아읏…… 이호야, 다 들어…… 왔어?”
“아니.”
그동안 그래도 몇 번의 행위를 반복했는데도 늘 첫 삽입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좋아서 다윤은 그의 목을 끌어당겼다.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는 그 커다란 것을 느끼면서 다윤은 그의 눈 안에 비친 제 얼굴을 봤다. 고통에 눈을 살며시 찌푸리고 있지만, 언뜻 봐도 그의 눈에 담긴 저는 행복해 보였다. 그 누구보다.
“하아…… 읏, 윤아, 조금만 힘 빼.”
“……으읏.”
이호가 혀를 내밀어 제 얼굴 곳곳을 부드럽게 훑고, 그에 조금 힘이 풀린 사이 안쪽에 성기가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허벅지가 느껴졌다. 다 들어온 것이다. 다윤은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배 위를 만지면 그의 것이 느껴질 정도로 빠듯한 이물감이 엄청났다. 그럼에도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다윤은 이호의 어깨와 목 부근에 얼굴을 묻었다.
“잠깐…… 잠깐만 이러고 있자…….”
그 말을 하는 다윤의 목소리에 물기가 있었다. 제 목덜미에 묻은 얼굴에서 눈물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다윤의 목에 입을 맞춰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있어, 하고 다독이듯이.
“이호야.”
“응.”
“……나 지금 너무 행복해.”
너랑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게, 하나도 빠짐없이 온몸이 붙어 있는 게, 너라는 존재가 지금 이 순간 나랑 함께 있는 게, 너무 좋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윤은 그렇게 말하며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이호는 그런 다윤을 보며 인상을 살며시 찌푸렸다. 다윤의 눈물이 제 마음을 찌르는 듯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울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호는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훑을 뿐이었다. 더 울어. 울어도 돼. 하듯이.
“행복해도 돼. 너 그래도 돼.”
끅끅, 울고 있는 다윤의 얼굴 위로 이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꿈에 나왔을 때 했던 말이 순간 떠올랐다.
“넌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 내 아들.”
다윤은 그 얘기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그랬고, 서이호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 두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 줬으니까, 당연히 저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다. 다윤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호야……. 사라지지 마. 내 옆에서 떠날 생각도 하지 마.”
다른 사람한테도 가지 마, 그 누구에게도 안 돼. 평소 소유욕을 보이는 건 자신이기에 다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들으니 이호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더 저를 옭아매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더, 저에게 욕심을 내 주었으면 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
“너도 내 앞에서 평생 사라지지 마.”
제 얼굴 가까이 다가온 이호의 얼굴을 보며 다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자 온몸이 떨어진 구석 없이 온전히 들어맞은 기분이 들 만큼 온전하게 맞붙게 되었다.
서이호에게서 그런 얘기를 듣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서 다윤은 웃고 또 울었다. 처음으로 온몸에 있던 감정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마치 서이호가 선물한 듯한 이 바다 앞에서, 그와 온몸이 연결되어 있는 이 순간, 다윤은 온 마음으로 행복함을 느꼈다.
이호의 머리카락이 다윤의 목덜미에 천천히 부벼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턱을 올려놓고 아프지 않게 비비더니 이제는 아예 머리 전체를 목덜미에 대고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간지러워.”
“그래서 싫어?”
“……아니, 좋아.”
다윤의 대답에 이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윤도 그런 이호를 따라 웃었다. 이호가 다윤을 뒤에서 끌어안고 다윤은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 상태로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맞붙어 있었다.
이호와 이전에도 몇 번 관계를 했지만 오늘만큼 애틋한 적은 없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붙어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안쪽에 들어찬 상태로 그렇게 가만히. 마치 애초에 한 몸이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제 옆에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니 행운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시 한번 완전히 외톨이가 된 자신에게 이런 행복이 따라온다는 것은.
“……나 때문에 매번 훈련 빠져서 어떡해.”
다윤이 휙 몸을 돌려 이호를 보며 말했다. 일주일 내내 제 옆을 지키느라 어디를 가지도 못하는 이호가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다. 서이호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 아니까. 또 요즘 들어 다시 텐션이 올라오는 것 같았는데, 저 때문에 다시 가라앉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그런 걱정이 쓸데가 없다는 듯이 이호가 다윤의 입에 여러 번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만큼 중요한 게 나한테 어디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해.”
“……너 내가 야구보다 좋냐?”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갑작스럽게 옛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서이호에게 야구는 애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는 걸 다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다며 섭섭해하는 이호의 전 애인들이 야구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유치한 질문을 하면 ‘당연히 야구지.’ 하고 대답했던 서이호의 얼굴이 떠올랐으니까.
야구가 좋다고 대답해도 섭섭해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꿀꺽 침을 삼킨 채 얌전히 이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호는 다윤의 말에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
“……하긴, 좀 유치하긴 했지. 그래, 미안.”
뒤늦게 부끄러워진 다윤이 고개를 이호의 어깨에 묻었다. 부드러운 이호의 살결에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는 순간, 이호가 고개를 살며시 돌려 다윤의 귀를 아프지 않게 물고는 말했다.
“당연히 너지. 어떻게 비교해. 야구 따위랑.”
……야구 따위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묘하게 이상했다. 야구 선수 서이호랑 그냥 인간 서이호 모두 좋아하는 다윤에겐 애매한 문제였다.
“……그래도 야구도 좀 더 좋아해 봐.”
다윤의 말에 이호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파동을 치는 듯 이호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져서 다윤은 피식 웃었다.
“네, 최다윤 님이 그러라면 그럴게요.”
열심히 하면 최다윤이 더 좋아해 주겠지.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이호의 말을 들으며 다윤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딸 점수가 더 있던가. 최다윤에게 서이호는 언제나 만점이었는데. 하지만 굳이 이런 얘기를 해서 야구를 잘하겠다는 마음을 꺾고 싶진 않았기에 다윤은 그저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하듯이.
그렇게 한참 서로 다시 부둥켜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을 무렵, 아까보다는 조금 진지하고 낮은 서이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아.”
“응.”
“예전 얘기 들려주면 안 돼?”
다윤이 무슨 얘기냐는 듯이 몸을 떼고 이호를 쳐다봤다. 이호가 아까보단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다윤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어머님 만났을 때 얘기, 아주 어릴 적의 네 얘기 다 듣고 싶어.”
“…….”
“아직 힘들면 나중에 얘기해도 괜찮아.”
이호가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다윤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것까진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누구에게든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다윤에게는 소중한 기억들이었으니까. 비록 이전에는 힘들었어도, 엄마를 만나 살았던 그 순간만큼은 다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음…… 고아원에 있었을 때 얘기 먼저 들려줄까.”
이호가 착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윤은 그런 이호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의 유년 시절의 좋은 추억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를 하려니 조금 떨려서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누구한테 버림받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 수녀님 말씀으로는 나는 그 고아원 대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대. 그 어린애가 울지도 않고 그렇게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했다더라.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자신에게 말을 전해 주던 수녀님의 얼굴이 떠올라서 다윤은 설핏 웃었다. 어린 다윤의 안쓰러운 모습을 유일하게 기억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늘 마음이 아프다며 따듯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던 수녀님의 얼굴이. 이호는 그런 다윤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림받았던 거지. 거기 있던 애들 중에 그런 애들도 꽤 많았거든. 그게 슬펐다기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했어. 그땐 비교 대상이 주변 애들뿐이었는데, 주변 애들 모두 다 그렇게 버림받은 애들이었으니까.”
“…….”
“한 다섯 살 때인가, 고아원에 어떤 남자애 하나가 자기 엄마 손을 잡고 종종 봉사를 한다고 왔었는데 걔 때문에 내 결핍이 뭔지 알게 됐어. 걔는 다 가졌던 것들이 나한테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제야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더라.”
다윤은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서이호를 처음 봤던 그때. 마치 어제처럼 떠오르는 생생한 기억이었다. 남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젠 희미하다고들 하는데 왜 저는 이렇게 잊히지도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 제게는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래서 처음엔 미워했는데 점점 좋아졌어. 그 앤 내가 싫다 그래도 늘 다가오는 애였거든. 처음으로 느껴 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지. 그게 어찌나 마음을 울렸는지.”
“……첫사랑이야?”
“응.”
다윤의 대답에 이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첫사랑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이 와중에도 다윤은 침착하게 몸을 일으켜서 그런 이호를 보고 있었다.
“왜? 질투 나?”
이호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다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귀여운 놈. 예전 일은 기억도 못 하면서 자신한테 질투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다윤은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 옛날 일이잖아.”
그리고, 네 일이기도 하고. 뒷얘기는 그냥 삼켰다. 사실 그냥 얘기해 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조금 더 놀려 먹고 싶었다. 잔뜩 질투가 나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게 귀엽기도 하고.
“그래도 질투 나. 이제 잊어, 그때 기억. 없는 거야, 알았지? 네 머릿속엔 나밖에 없는 거야.”
딱, 하고 이호가 제 이마 바로 앞에서 마치 마술을 부리듯 손가락을 튕겨 냈다. 다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제 머릿속엔 애초에 서이호뿐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고.
“걱정 마. 걔 완전 못된 애였거든, 사실. 그렇게 나한테 실컷 정 줘 놓고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안 오더라.”
“나쁜 새끼네.”
이호의 말에 다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 얘기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서이호가 우스우면서도 귀여웠다.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침대 끄트머리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어 바깥을 보면서. 이호도 덩달아 다윤 위로 몸을 내리면서 가운 아래로 삐져나온 다윤의 하얀 살을 혀를 내밀어 핥았다. 마치 그때 일을 잊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행동이 간지러워서 웃다가 다윤은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애 덕분에 사랑을 주는 게 어떤 건지는 알게 됐는데, 정작 오래가진 못했어. 그때 만난 게 우리 엄마야.”
“…….”
“엄마는 불임이셔서 아이를 낳지 못하셨대. 그래서 고민 끝에 온전히 마음으로 키울 수 있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아버지랑 상의하셨던 거야. 그 행운아가 바로 나였고.”
두 분을 처음 만났던 날도 생생하게 기억나. 저렇게 다정하신 두 사람 아래에서 자란다면 나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는데, 두 분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셨어. 같이 가자고 말씀해 주셨어.
그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볼 수 없는 부모님의 따듯한 얼굴과 온기. 그런 다윤의 얼굴 위를 이호가 부드럽게 쓸었다. 마치 울어도 된다는 듯이. 다윤은 그런 이호를 보고 웃어 버렸다.
“행복하다고 느꼈어. 늘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은 있었지만, 두 분 아래에 있을 때면 난 늘 행복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보일 수 있겠다 싶었어. 그게 좋아서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랐는데 하늘은 내가 행복한 꼴을 도저히 보기 싫은 것 같더라.”
“…….”
“외로움이 다시 익숙해졌을 즈음에 너를 다시 만난 거야. 그런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너랑 연인이 되길 망설였던 거고. 그런데 넌 무슨 불도저처럼…….”
“싫었어?”
“아니, 좋았어.”
다윤의 말에 두 사람이 마주 웃었다. 그사이에 이호가 다윤의 눈가에 묻은 눈물을 부드럽게 핥아 냈다.
“이제 나한테 너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
다윤의 말에 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마치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떨어지는 걸 상상할 수도 없다고.
“떠나면 안 돼.”
“어딜 간다 그래. 네가 나중 돼서 이젠 귀찮다고 꺼지라 그래도 안 가. 네 옆에 붙어 있을 거야, 평생.”
“정말?”
“응. 욕하고 때려도 절대 아무 데도 안 가.”
“내가 그럴 리가 있냐.”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다윤을 이호가 다시 몸을 뒤로 돌려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다시 한번 온몸이 부드럽게 맞물린 두 사람이 내내 그 얘기를 중얼거렸다.
어디 가지 마, 절대 안 가, 내가 싫어져도 싫다고 말하지 마, 그럴 일은 없어, 그럴 수도 있잖아, 윤아 정말이야 네가 싫어질 일은 평생 없을 거야.
누군가 듣는다면 닭살 돋아 할 얘기들이 두 사람의 침대 위에, 바다 위에 오롯이 쏟아졌다. 그게 포근한 자장가가 되어 다윤을 덮쳤다. 어느 순간 잠이 들어 버렸으니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눈부신 햇살이 넓은 창을 뚫고 다윤과 이호를 비추고 있었다.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든 건지 서이호에게 뒤에서 끌어안긴 채였다. 대수롭지 않게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윤은 이호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제 손을 봤다.
다윤의 손 위에 무언가 올라가 있었다. 다윤은 눈을 찌푸려 그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하얀 나비 두 마리. 나비 하나가 다윤의 손가락 끝에 올라가 있었고, 한 마리는 이호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호텔 방에 왜 갑자기 나비가 있는 건지를 판단할 틈이 없었다. 다윤은 그것을 그저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날아 다윤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다윤은 눈을 감았다.
다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엄마의 마지막 인사라는 걸. 눈을 뜬 순간 이호의 손안에 있던 나비도 다윤의 얼굴 위에 머물렀던 나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윤은 몸을 일으켰다. 나비도 없이 그저 이호만이 잠들어 있었다. 손을 뻗어 다윤은 이호의 얼굴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부드러운 살결이 제 손 위에 머물렀다.
엄마도 아빠를 다시 만났구나. 그곳에서 더 이상 아프시지도 않고 평온하시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저 다윤은 바랐다. 그곳에서 저와 이호를 지켜 주시기를. 더 이상 불운이 저를 덮쳐 와 무너뜨리지 않게 오래도록 지켜 주시기를.
나비가 날아와 제 코끝 위에 머무르던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이 제 부탁을 들어주실 걸 말이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나뿐인 두 분이 그곳에서 저를 지켜 주시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