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이건, 사랑
새벽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호만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었다.
다윤은 이불을 펴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잠이 들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묘하게 이호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게 간지러우면서도, 또 기분이 좋아서 이호는 다윤의 숨소리를 영원히 듣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윤이 했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을 감아도 그 말을 하는 다윤의 얼굴과 목소리, 그 순간에 그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았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이호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호는 무조건 잘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완벽주의자 아버지는 이호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트집을 잡곤 했다. 네가 그렇게 해서 야구를 하겠느냐고. 세상에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그따위로 애매하게 할 거면 그냥 다 때려치우라는 말과 함께 제 야구 방망이를 부러뜨리고, 글러브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었기에, 자신의 글러브를 지키기 위해 아득바득 달렸다.
그렇게 아득바득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모두가 ‘잘한다’라고 말하는 지점에 돌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끔은 되지 않는 날이 있기 마련이었다. 컨디션이 엉망일 때는 헛스윙이 늘었다. 아무리 해도 공이 배트에 맞지 않았고, 그럴 때면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이호.”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이호는 바닥에 배트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최다윤은 저 멀리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최다윤, 밤톨 같은 머리에 앳된 얼굴. 이호는 자신을 부른 다윤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한심하게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왜 왔어?”
그래서 이호는 부러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왔어? 이렇게 못하는 거 보러 온 거야? 한심한 내 모습 보러 온 거야? 다윤은 제 말에 아무 말도 없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집에 같이 가려고.”
“…….”
“얼른 나와.”
다윤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서이호의 손에서 배트를 뺏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과 말투에 이호는 멍하니 다윤을 봤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방금 내가 몇 번이나 헛스윙 한 거 분명 봤을 텐데. 한심하지 않았을까.
이런 날이면 이호는 늘 아버지에게 혼이 났었다. 그렇게 못할 거면 차라리 때려치우라는 말을 듣곤 했다.
“윤아.”
“왜.”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 앞서 걷던 다윤이 고개를 돌려 저를 봤다. 이호가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물었다.
“나 한심하지 않아?”
“무슨 헛소리야.”
다윤이 피식 웃었다. 바람 빠지는 그 웃음이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던 우울과 슬럼프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했다.
“어디서 그랬는데, 잘하는 야구 선수들도 처음엔 당연히 못하는 과정을 거친대. 못하는 과정이 없으면 잘할 수도 없다더라.”
“…….”
“그리고 뭐, 가끔 못할 수도 있지 어떻게 매번 잘하냐. 신도 아니고.”
그때도 넌 그런 얼굴로 내게 위로해 줬지.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때 묻지 않은 선함으로. 나는 그때도 지금도 네게 위로만 받고 있었다.
“네가 야구 잘하는 거 보고 좋아한 게 아니라, 너만큼 무언가에 몰두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봐서 좋아했던 거야.”
좋아하는 일. 그래, 사실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투수와 심리 게임 하며 공을 쳐 내는 그 순간을, 제가 던진 공이 절묘한 곳에 떨어지는 그 순간을, 그라운드를 달리고 달리는 그 순간을. 그걸 다윤은 다 알고 있었다. 서이호가 홀로 자괴감에 땅을 파고 들어앉아 나오지 않으려 결심한 그 순간에도.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알 것 같았다. 며칠 내내 저를 괴롭혔던 실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실체를.
왜 최다윤만 보면 손가락 한구석이 간지럽고, 그가 다른 사람이랑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가라앉고, 다른 사람이 그가 해 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져 아무리 맛없어도 꾸역꾸역 다 먹게 만들었는지.
서이호는, 어쩌면 최다윤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다윤이 오래전 서이호를 좋아했던 방식으로. 그렇게.
솔직히 갑작스러웠다. 중학생 때는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다윤을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너를 그동안 내가 단순히 그냥 ‘친구’로 정의 내리려고 했는지, 제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음…….”
다윤이 몸을 뒤척이다가 잠꼬대를 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뭘 먹는 거지. 이호는 물끄러미 다윤을 봤다. 제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물우물, 꿈속에서 무언가를 먹는 듯 계속 볼을 씰룩이다가 이내 헤, 하고 웃는 게 보였다.
아, 사랑스럽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누군가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건. 솔직하게 말하면, 서이호는 정말 부끄럽게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연애는 많이 해 봤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냐 하면 아니었다. 그냥 거절하기 귀찮아서 받아 준 것뿐. 그도 그럴 것이 이호에겐 연애에 뺏길 정신이 전혀 없었다. 이호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 야구가 더 중요했고, 하루 온종일 야구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가곤 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이토록 벅차고 기분 좋은 건 줄 몰랐다. 그냥 보기만 해도 즐거운 마음인 줄. 중요한 순간에 안타나 장타를 칠 때보다, 끝내기 홈런을 칠 때보다 더 심장이 떨리고 두근거리는 것일 줄은.
“다윤아.”
이호가 속삭이듯 다윤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 마음이 덜컹 흔들렸다. 그저 다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다윤은 제 목소리에도 미동 없이 잠만 잘 뿐이었다.
그 언젠가 다윤이 이곳에서 제게 고백했었다. 좋아한다고. 그때 별생각 없이 다윤을 쳐다봤었는데. 서이호는 완전히 뒤바뀐 포지션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호는 차마 다윤에게 손도 뻗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봤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스킨십이 지금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제는 애인이 생겨 버린, 나를 사랑했던 사람. 뒤늦게 좋아하는 마음을 깨달은 바보 같은 서이호.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은, 서이호의 잘못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최대한 숨기고 최다윤의 친구로 속이고 살아가는 일은, 모두 서이호의 몫이었다.
* * *
좋아한다는 마음을 자각하고 난 후 다윤을 바로 마주할 수가 없어서 이호는 다윤이 일어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한참의 망설임 끝에 그가 온 곳은 그의 구단 연습장이었다.
“서이호?”
멍하니 서 있던 이호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옆을 돌아봤다. 이호의 얼굴을 본 코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계셨네요.”
“그럼. 나야 선수들 안 와도 혹시 올 사람들 체크하려고 오지.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휴가 받았다더니.”
이호가 피식 웃으며 제 머리를 한번 쓸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앞을 봤다. 텅 빈 2군 경기장이 광활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냥, 네가 야구 하는 게 좋으니까.”
최다윤이 좋다고 그랬다. 그러고 보면 중학생 때도 다윤은 항상 그렇게 저를 응원했다.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며 벤치에 앉아 손을 흔들던 밤톨 머리 최다윤의 얼굴이 선연했다.
눈이 마주치면 웃기도 했지. 제가 무슨 공을 치든, 삼진을 당하든 혹은 뜬공을 치든, 땅볼을 치든 최다윤은 괜찮다고 했다. 오늘 네가 한 일들이 다 경험으로 쌓일 거라고. 그런 얘기를 들으며 했던 야구는 확실히 즐거웠었다.
여전히 배트를 드는 건 무서웠지만, 타석에 서서 공을 쳐야 할 타이밍을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건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윤이 좋다고 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순전히 최다윤 때문에.
“휴가 끝난 거야? 너 온다는 얘기 들으면 감독님이 좋아하시겠다.”
“네, 끝났어요.”
“어, 진짜?”
옆에 서서 대수롭지 않게 물어보던 코치가 이호의 대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호는 그런 코치를 보며 제 신발 끈을 질끈 묶었다.
“진짜야? 아, 안 그래도 소문이 많았거든. 너 야구 그만둔다, 아니다……. 내가 선수들한테 그런 이상한 괴소문 내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워낙 네가 오질 않아서 불안했었거든. 잘됐네, 서이호.”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가던 코치가 이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신발 끈 정리를 마친 이호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코치님, 오늘 운동하고 가려고 하는데, 봐주실 수 있어요?”
“아, 그럼. 그럼 봐줘야지. 당연히. 야, 빨리 1군에도 소식 전해야겠다.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네 소식.”
이호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푸는 훈련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볍게 허리를 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 이호의 옆에서 눈치를 보듯 어슬렁거리던 코치가 머뭇거리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그나저나, 너 진짜 야구 그만두려고 그랬어?”
“네.”
이호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던 건 맞으니까. 놀란 눈으로 코치가 물었다.
“아니, 왜? 부상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못 하겠더라구요, 전처럼.”
이호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이제 전처럼 야구를 하진 못할 것이다. 어떻게든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을 가진 채 더 이상 할 순 없었다. 다만 다시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는 거였다. 아주 오래전, 진심으로 웃으며 야구 했던 그때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려고.
오랫동안 쉬기는 했어도 오래도록 운동을 했던 몸은 감각을 빠르게 찾아가고 있었다. 피부 아래 근육이 떨리는 듯했다. 이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스트레칭을 이어 갔다. 이호의 등을 꾹꾹 눌러 주던 코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뭐, 다시 오게 된 계기라도 있어?”
이호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씩 웃었다. 코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서이호가 저렇게 웃다니. 아무래도 쉬는 동안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먼 곳에 시선을 둔 이호가 그렇게 웃으며 답했다. 최다윤이 개죽이라고 했던 그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야구 하는 게 좋다 그래서요.”
그래서 계속하려고요, 야구.
얼떨떨한 코치를 버려두고 이호는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제 저를 향해 웃어 주던 최다윤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 * *
한숨 푹 자고 일어났을 때, 이호는 없었다. 어디 간 거지. 물론 서이호가 저에게 어디를 가는지 모두 얘기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누워서 멍하니 이호가 누워 있던 이부자리를 멍하니 보던 다윤이 휴대폰을 꺼내 이호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서이호,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