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95화 (195/198)

“원래는 제가 두 분이 사용하실 공간을 꾸며야 하지만, 전 이제부터 결혼식 준비를 해야 하니 곤란하네요. 아! 혹시 도련님께서 저 대신 대공 부부께서 사용할 방은 꾸며 주실 수 없겠습니까? 두 분 모두 로넨 도련님께서 자신들이 사용한 방을 꾸며 주시면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제이논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가 오늘부터 형이랑 에드가 오기 전까지 열심히 꾸며 놓을게!”

그 이후로 로넨 뿐만 아니라 북부 성 전체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오늘도 방을 나서자마자 로아와 함께 형과 에드가 함께 생활할 방을 꾸미기 위해 성을 돌아다니고 있던 로넨이 제이논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제이논, 형은 언제쯤 올까?”

“조금 전에 전갈이 왔는데 오늘 오후에는 북부에 도착하실 것 같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아직 방 준비가 다 안 끝났는데 어떡하지? 형이나 에드가 오기 전에 다 끝낸 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로넨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방을 꾸밀 작정을 하자 제이논이 급히 그를 멈춰 세웠다.

“전갈에는 로넨 도련님께서 절대 무리하지 말고 식사 꼭꼭 잘 챙겨 드시라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제이논의 제지를 받은 로넨이 결국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식당으로 가 식사를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한창 방의 마무리 대한 걸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만든 꽃다발은 시들지 않고 잘 있겠지?”

“물론입니다. 혹시나 몰라 보존 마법까지 걸어 두었더니 아주 싱싱하더라고요.”

“형과 에드도 그걸 보고 꼭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대공비님은 분명 활짝 웃으면서 도련님이 주시는 거라면 뭐든 누구보다 즐겁게 받아들 겁니다.”

“형도 분명 나를 꼭 안아 주면서 웃어 줄 거야.”

밝게 웃는 로넨을 보며 제이논이 연신 웃으면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당연하죠. 분명 대공 전하께서는 로넨 도련님을 보자마자 번쩍 들어 안아 주실 겁니다.”

식탁 밑으로 흔들리던 로넨의 발이 더 힘차게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제이논과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던 로넨은 주방장이 거대한 케이크를 옮기기 시작한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빵을 조그마한 볼에 햄스터처럼 욱여넣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식사를 마무리한 북부의 햄스터는 조그마한 발을 움직이며 식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커다란 여우 한 마리가 뒤따르고 있었다.

* * *

북부 성에 마차가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대공이 에드를 부축했다. 마차 문을 열자 꽃다발을 들고 의젓하게 기다리고 있던 로넨이 저 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형!”

대공은 마중을 나온 사용인들을 차분한 눈길로 살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대하라고 눈길로 말해도 에드를 향한 시선의 홍수가 쏟아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대공은 에드의 앞을 몸으로 가리며 로넨을 품에 안아 올렸다. 눈높이가 맞은 동생을 보며 대공이 웃었다.

“내가 없는 사이 북부 성이 더 화사하고 깔끔해졌는데?”

“형이 에드와…… 아니 아니, 대공비님과 결혼식을 한다고 하셔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단장했어요!”

대공이 가리긴 했지만 온몸으로 콕콕 꽂히듯이 사람들이 자아내는 호기심과 짓궂음, 놀라움을 모를 수가 없었던 에드는 로넨까지 덜걱거리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그냥 에드라고 부르시면 돼요.”

“아니야, 이제 그러면 안 되잖아?”

“아직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이고, 갑자기 호칭이 바뀌면 어색하니까 차차 바꿔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전하?”

에드는 북부로 오면서 대공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중에는 호칭에 대한 것도 있었다. 대공은 단번에 에드를 대공비 자리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고 격식을 차려 주고 싶어 했으나 에드의 생각은 달랐다.

〈집사였던 제 위치가 급변한 게 너무 두드러지게 보이면 사람들이 절 대할 때 어색해할 수도 있어요.〉

〈확실히 우리가 괜찮아도 상대방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팡질팡해 할 수도 있겠네.〉

〈그리고 전 북부의 사람들에게 대공비라고 불리며 구름 위의 존재로 있기보다는 성의 집사 정도로 대우받고 싶어요.〉

대공은 결국 에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에드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렇게 원한다면 편한대로 해.〉

“그래, 호칭 같은 건 언제든 바꿔도 괜찮으니까. 자, 일단 날이 서늘하니 얼른 들어갈까?”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 있던 사용인들 역시 에드의 성품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한층 편하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다 같이 북부 성으로 들어가자 성내는 입구부터 시작해서 천장까지 다양하게 꾸며져 있었다.

에드의 눈동자 색과 같은 푸른색으로 치장된 커튼과 따뜻한 색감으로 바뀌어 깔린 카펫, 북부 성은 한층 더 밝게 보이게 하는 조명을 확인한 대공과 에드가 감탄을 내뱉었다.

“제이논, 신경을 많이 썼군.”

“네, 전하. 대공비님께서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봤습니다. 예산을 넉넉하게 잡아도 좋다는 전하의 말씀에 아주 힘을 내봤습니다.”

“그냥 에드라고 부르라니까요.”

또다시 한숨을 포옥 내쉰 에드가 끼어들자 제이논이 키득키득 웃으며 맞받아쳤다.

“알겠습니다, 에드님.”

“방금 제이논이 님자를 붙이니까 소름이….”

“역시 그렇지? 사실 나도 조금 전에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

제이논이 뻔뻔하게 대꾸하며 자연스레 그들을 로넨이 꾸민 방으로 대공을 안내했다.

“이 방은…….”

익숙하게 방으로 들어서는 대공을 따른 에드는 단란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에 시선을 빼앗겼다.

“선대 대공 부부께서 쓰시던 방입니다.”

“내가 꾸몄는데 어때… 요?”

에드는 제 손을 잡아 오며 씨익 웃는 로넨을 내려다보며 눈가를 접어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도련님.”

“다리가 아프진 않아? 이 의자에 한 번 앉아봐!… 요. 등과 엉덩이가 아프지 않게 쿠션을 덧댔어.”

에드는 로넨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아도 보고 테이블도 쓸어 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발걸음을 옮겨도 보았고 벽에 걸린 액자도 살펴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을 때 자신과 로넨을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던 대공과 시선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자랑을 늘어놓듯이 재잘거리는 로넨, 그 뒤를 따르며 한 마디씩 덧붙이는 제이논을 보니 복작복작하고도 아기자기한 것이 북부로 돌아온 것이 실감 되었다.

또한, 결혼식이 점점 다가오는 것도 피부로 느껴졌다.

“에드 님, 몸 치수를 재 보겠습니다.”

아침마다 줄자를 들고 나타나는 재단사와.

“케이크는 어떻게 준비하는 게 좋을까요? 역시 2단보다는 3단이죠? 아니면 좋아하는 동물의 형태로 만들어 볼까요?”

하루가 멀다고 케이크 그림을 그려오는 주방장과.

“결혼식에서 이쪽 기둥에 꽃은 어떤 걸로 꾸미면 좋을까? 봄이니 화사하게 장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텐스는 백합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보는 눈도 없으면서.”

날마다 자신의 뒤를 번갈아 밟으며 의견을 대립하는 제이논과 텐스.

그렇게 부대끼다 보니 에드는 변화한 지위와 사람들의 태도에 어색해할 새도 없었다.

〈결혼식을 언제 하면 좋겠어?〉

북부로 올 때 대공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는 아직 길게 남아 있는 날짜에 현실감이 없었는데, 어느새 봄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이 열리는 전날 밤, 소파에 앉은 에드는 손으로 팔랑팔랑 부채질을 했다.

옆에 앉으며 찻잔을 내려놓던 대공이 그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는 표정이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많이 힘들었어?”

“아뇨, 재단사와 시종들이 도와줘서 옷을 바꿔입을 때 불편한 건 없었는데요.”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인 오늘에서야 어떤 예복을 입을지 드디어 정할 수 있어서 결혼식을 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느꼈어요.”

에드는 재단사의 요청에 따라 몇 가지 옷을 입어 보고 나서야 결혼식에 입을 혼례복을 정할 수 있었다.

의욕 넘치는 재단사가 준비한 예복이 몇 가지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완성된 옷의 질은 모두 좋았고, 색감도 뛰어났기에 결정 장애에 빠진 에드는 옷을 고르지 못했다.

결국 대공과 로넨의 의견을 듣고 나서야 그가 고른 옷은 흰색에 금빛이 섞인 예복이었다.

대공은 에드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본래 북부 성은 소소한 행사에도 활기가 도는데 내일은 그 특별함이 몇 배나 되니까.”

“아무래도 결혼식이 큰 의례이기는 하죠.”

대공은 그보다는 친절하고 귀여운 에드를 꾸미는데 재단사와 사용인들이 신이 나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는 대신 그의 입술에 입을 붙였다.

방금 마신 새콤달콤한 차 맛이 나는 입술이 부드러웠다. 이제는 이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게 익숙해진 에드의 손이 제 어깨를 가볍게 누르자 대공은 미소 지었다.

북부 성 도착한 이후로 대공은 에드를 살피는데 신경을 썼다.

황태후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에드는 언제든지 다시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 에드를 걱정하는 대공에게 황태후는 조언했었다.

〈……그리고 대공비가 그렇게 잠이 들지 않게 하려면 공이 노력을 많이 해야 해. 용의 힘이 도는 공의 기운이 에드에게도, 아이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테니까.〉

〈그렇습니까?〉

〈멜라는 부군에게 그런 힘을 받기 힘들었지만 공은 사정이 다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세.〉

대공이 입 안으로 도톰한 혀를 집어넣자 에드는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그렇게 한참 숨결을 나눈 후 혀를 뒤로 뺀 대공이 촉촉하게 부은 에드의 입술을 쪼옥 빨았다.

“아…… 흐으.”

열락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나른한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감은 에드에게서 입을 뗀 대공이 그를 안아 들었다.

제 몸이 불쑥 올려지는 것에 에드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대공은 동그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 * *

결혼식을 올리는 아침, 에드가 눈을 떴을 때 대공은 모로 누워 에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에는 환희가 스며들어 있었고,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 입술에는 다정함이 머물러 있었다.

“더 자도 되는데.”

에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결혼식 준비로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텐데 당사자가 늦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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