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가 황성을 나서는 동안 에드는 허벅지에 앉은 새끼 용과 장난을 쳤다.
그와 노는 게 기분이 좋은지 새끼 용이 한참을 캬아, 캬아 소리 내며 울며 날아다녔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간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지 금방 지쳐서 반대편 쿠션으로 가 몸을 말더니 고롱거리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에드는 용의 등을 가볍게 쓸며 입을 뗐다.
“그래도 제국의 황제 자리가 갑작스럽게 공석이 된 건데 생각보다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게 많아지면 피해 보는 건 시민들이라 걱정했는데.”
“명색이 마물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의 침공을 오랜 시간 버텨온 제국이니까,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도시끼리 해결할 수 있게 체계가 잡혀 있어. 더군다나 황태후 폐하께서 솔선수범으로 밤낮없이 일하니까 밑의 신하들 역시 쉬지 않고 일한 덕도 있고.”
에드는 제국이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는데는 대공의 공도 크다고 생각하며 마차 창문을 열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옅게 웃자 옆에 앉은 대공이 에드의 몸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황궁에서 로넨이 좋아하는 육포도 챙겨 줬으니 이대로 멈추지 않고 황도를 나서면 될 것 같아.”
“네. 로넨도, 제이논도, 집사장님도 모두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 뒤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빠르게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점차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에드는 스쳐 지나가는 이정표에 적힌 도시 이름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전하, 저희 이번에도 일라에서 머무는 건가요?”
“어차피 북부로 향하는 과정에서 한 번 쉬어야 한다면 에드와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머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마차 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밖의 풍경은 1년 전과 똑같았다. 낮고 아담한 집, 둥글둥글한 지붕, 밝고 환한 색감의 담장들.
그런 외관과 닮은 쾌활하고 생기발랄함이 느껴지는 사람들의 모습…… 에드는 점점 가까워지는 활기찬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며 작년에 느꼈던 생동감을 떠올렸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은 수도에서 일어난 사고로 피해 보지는 않았나 봐요."
그때였다. 북부의 표식이 박힌 마차를 발견한 사람들이 와, 하는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이 격한 환영에 에드는 이제야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색색의 천이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천에는 다양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제국의 수호자’, ‘북부의 은혜’ 등 북부를 칭송하는 말들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것과 사뭇 다른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에드는 대공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하, 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환영을 해 주는 거죠?”
그는 자신이 잠든 사이, 제국에 대공과 예비 대공비에 대한 소문과 신문 기사가 얼마나 퍼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불길한 재앙의 그림자? 그날 밤, 제국의 황도에서 있었던 일의 전말은 무엇이었나!
제국 신화의 재현?! 느닷없이 나타난 검은 용의 정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황도에서 보였던 황금 용 두 마리와 푸른 용! (부제 : 푸른 용이 실은 용이 아니었다?!)
밀착 취재! 제국을 위기에서 구한 린든 대공과 예비 대공비? 사실 황금 용은 아스넬 린든 대공이…….
아스넬 린든 대공, 그는 누구인가? 그의 반려 에드 린든 또한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다!
황궁의 모든 일이 일단락되자 제국의 신문사들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대공과 에드를 칭찬하기 바빴다.
어떤 기사에는 작년에 로넨과 에드가 들렀던 꼬치구이 가게 사장의 인터뷰가 실리는 일도 있었다.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일어났던 일은 황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마을과 도시에서도 기사가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도에서 시작된 검은 먹구름이 점점 퍼져나가며 본인들이 머무르는 곳 하늘까지 덮어 나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이 봤으니까.
그렇게 모두에게 두려웠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마자 대공과 지난밤에 관련된 내용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정확한 사실을 전부 밝힐 수는 없었지만, 황태후 폐하의 명에 따라 적어도 그 사태를 해결한 게 우리라는 것만 밝혀 둔 거지.”
“저는 그냥 전하께서 하신 일에 살짝 힘만 보탰을 뿐인데요.”
에드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발그레해진 뺨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이방인.
작년에 대공과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제국에서 생활한 지 1년 남짓이었고, 대공의 군식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히 대공의 곁에 선 동반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와 축복을 받았다.
마을 입구에 나온 일라의 영주가 직접 숙소를 안내하는 것도 작년과 다른 점이었다.
일라의 낮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조용한 저택에서 묵고 가게 된 대공과 에드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왔다.
대공이 에드에게 외투를 둘러 주며 물었다.
“배가 부르니 산책도 할 겸해서 밖에 나가볼까?”
“밖에 어디요?”
“그건 미리 말하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황궁의 후원에서 자신이 답했던 말을 되돌려 주는 대공을 보며 에드는 작게 웃었다. 그러곤 자신에게 손을 내민 대공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대공은 너른 복도를 느긋하게 나아갔고 계단을 올라갈 땐 에드를 조심히 이끌며 움직였다.
“여긴?”
짧은 통로를 지나 문을 열고 나간 곳은 숙소의 지붕 위였다.
산자락에 있는 고요한 저택은 마을이 모두 내려다보였고, 시원한 밤바람이 에드의 몸을 감쌌다 흩어졌다.
난간에 등을 기댄 대공이 에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의 귀를 가볍게 막자 에드는 의아함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전하?”
그와 동시에 퍼엉 퍼어엉, 하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하늘 곳곳에 색색의 불꽃이 수놓아졌다.
대공의 붉은 눈동자에 머물렀던 푸른 눈동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공이 웃으며 에드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마음에 들어?”
입술 위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에드가 키득거리다 입맞춤으로 답을 돌려주었다.
“당연히요.”
대공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향해 눈짓하자 다시 불꽃들이 환하게 쏘아 올려졌다. 에드의 눈동자에 별빛 같은 이채가 머물며 해사한 웃음소리가 공중으로 퍼져나갔다.
“전하께서 준비하신 건가요?”
불꽃이 펑펑 터질 때마다 대공과 에드의 얼굴로 빛이 환하게 머물었다.
대공은 에드를 품에 끌어안았다.
“에드와 함께 보기 전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불꽃놀이란 로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자책감이었어.”
“…….”
“하지만 에드와 함께 한 이후로는 새로운 기억의 시작이자 즐거움의 발판이 되었지. 더 이상 나는 불꽃놀이를 보며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니까.”
에드는 대공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년, 짧은 시간이라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우리에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맞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거야.”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공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혜롭고 다정한 에드와 함께라면 그게 어떤 일이든 우리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공은 또렷한 눈빛으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에드.”
퍼엉, 펑퍼어엉.
다시 시작된 불꽃놀이 아래에서 에드는 뒤꿈치를 들어 대공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저도요, 아스넬 린든 전하.”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일찍 눈을 뜬 로넨이 이불을 홱 걷어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나갔다.
‘밤새 형과 에드가 탄 말이나 마차가 도착하진 않았겠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밖을 살핀 그는 빠르게 방을 나섰다.
형이 황도로 떠난 지 20여 일.
그동안 로넨은 북부 성을 지키며 형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환영 인사를 하면 좋을지에 골몰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일주일 전, 북부에서도 희미하게 보이던 이상한 마물을 물리친 게 형과 에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의 일을 하루 빨리 아주 자세하게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과 에드가 결혼을 한다는 것!
이것이었다.
제국에 갑작스레 드리워진 재앙을 물리친 후 형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로넨에게 편지가 당도한 건 며칠 전이었다.
형과 에드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과 함께 에드와의 결혼식을 위해서 북부 성을 정리해 두라고 제이논에게 전하라는 것이었다.
로넨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 합심해 제국을 구한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형과 에드의 결혼이라니?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건데…… 물론, 정략 결혼도 있지만 형과 에드는 그런 사이가 아닌데? 어, 그럼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편지를 손에 쥔 로넨은 제이논을 찾아 빠르게 달려갔었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보여 줬을 때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제이논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나만 형과 에드 사이에 대해서 몰랐던 거구나.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막을 수 없었더니 제이논이 제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저 역시 그냥 어렴풋이 예상했을 뿐 확실하게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대공 전하께 직접적으로 들은 건 아마 이 성에서 로넨 도련님이 유일할 겁니다.”
“……정말로?”
“네, 그럼요! 더군다나 로넨 도련님은 북부에서 대공 전하와 에드의…… 아니, 대공비님의 결혼 소식을 첫 번째로 알게 되셨으니 두 분과 가장 친한 사이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제이논의 대답에 로넨의 머릿속에 종소리가 데엥, 데엥 하며 크게 울려 퍼졌다.
아까의 감정과 상반된 감정으로 기쁨을 뿜어내는 로넨을 보며 속으로 흐믓한 미소를 지은 제이논이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