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90화 (190/198)

주먹을 몇 번 움켜쥐었다 편 에드가 대공을 살짝 밀었다.

“그러니까 어서 가서 기사단을 지휘하세요. 저긴 전하께 맡길게요. 여긴 저한테 맡기세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난 주저 없이 에드를 선택할 거야. 더 이상 가족을 잃을 수는 없으니.”

“그럼 전하의 평판을 위해서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능청을 떠는 에드를 향해 피식 웃음을 흘린 대공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조심해, 에드.”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없이 등을 돌렸다.

한편, 새카맣게 몰려오는 사람들을 간신히 막아내던 기사는 머리카락이 잡힌 거로도 모자라 망토까지 끌어당겨지자 호흡이 버거웠다.

“아악! 머리카락 놓으… 컥,”

그때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들리더니 이내 숨쉬기가 편해졌다.

동료 기사겠거니 싶어 인사를 하려던 그는 대공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바로 세웠다.

“전하!”

대공의 옆에는 잘려 나간 망토의 반을 들고 벌러덩 누워 있는 사람이 보였다.

기사가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대공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자리를 잡고 소리쳤다.

“모두 위치로!”

혼란스러운 군중 사이에서 기사단은 본능적으로 대공의 목소리를 따랐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치를 정렬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대공이 검집을 수직으로 치켜들며 기사단의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기사단은 다시 한번 전의가 들끓었다.

대공을 보호하기 위해 곁으로 다가온 이르텔이 조용히 물었다.

“전하. 언제까지 버티면 되겠습니까?”

대공은 어두운 밤 찬란하게 빛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결연한 눈빛으로 답했다.

“에드에게 필요한 시간만큼.”

그게 만약 평생이라면, 자신은 기꺼이 온 생애를 바칠 수 있으리라.

같은 시각.

신뢰와 투지가 담긴 대공의 시선을 느낀 에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대공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의 이야기와 계획이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공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제가 하려는 일을 끝까지 지탱해 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의 믿음에 힘입어 에드가 손을 내밀자 또다시 손 위로 푸른빛 광휘가 일렁거리며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광휘를 향해 빗줄기가 이끌리듯이 모여들며 허공에서 둥글게 뭉쳐 들었다.

에드는 빗발이 더 크고 강하게 덩어리지는 상상을 하며 검은 용의 발에 걸어 둔 푸른 밧줄을 시선으로 따라 올라갔다.

고개를 들자 새끼 용은 검은 용의 주둥이를 꼬리로 둘둘 감았고, 루안은 불을 내뿜고 있었다.

빗줄기를 뚫고 아래로 내리꽂힌 불꽃이 검은 용이 늘어뜨린 실들에 달라붙어 태우다가 점차 사그라졌다.

“…….”

하지만 불길에 타오르던 검은 실의 끝자락이 치리릭, 소리를 내며 다시 재생되었다.

에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손상된 부분이 느리게 회복되긴 하지만, 검은 용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하면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뿐이야.’

사람들을 정화하면서도 대공은 무슨 일이 생기면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드 역시 그걸 유심히 바라보다가 생각을 마쳤다.

‘완벽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해도 전하께서 함께하니까.’

두려움은 없었다.

다시 불길을 쏘는 루안을 올려다보며 에드는 손을 활짝 펼쳤다. 아까 머릿속으로 떠올랐던 장면들을 상기하며 눈을 감았다.

과연 내가 그리는 모습대로 힘이 잘 나타날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에드의 머리카락이 확 솟구치며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변화에 눈을 뜨자 제 손끝을 따라 뭉친 물방울들이 이내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에드의 눈높이에 떠오른 물줄기가 둥근 형태의 푸른 진을 이루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생성되었다. 마치 분수대에서 솟구치는 듯한 여섯 개의 물줄기였다.

“됐다.”

작게 속삭인 에드가 손을 위로 뻗었다. 촤아악, 그 손 방향에 따라 푸른 빛이 일렁이는 물기둥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

모두가 숨을 죽였다.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푸른 물줄기는 코앞에 닥친 일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답고 웅장했다.

검집을 든 채 고개를 젖힌 이르텔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또 다른 용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군.”

“이거 제국 신화의 한 장면 같지 않나요? 사악한 마물을 막기 위해 용들이 힘을 합쳐서 무찌르는…….”

물기둥들이 서로 얽히며 하늘을 올라가는 모습은 신비롭다 못해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늘로 솟구친 물기둥이 검은 용을 사로잡았다. 머리와 몸통, 날개와 발, 목과 꼬리를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자 검은 용이 몸부림을 쳤다.

이대로 끌려 내려가면 끝이라는 걸 안 검은 용의 저항은 몹시 거셌다. 새끼 용이 칭칭 감은 주둥이를 끝내 벌려 검을 불꽃을 쏘아내기까지 했다.

그 마지막 발악에 새끼 용이 뒤로 떠밀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끼이잉.”

검은 용을 감고 있던 꼬리가 풀리며 밀쳐진 새끼 용을 루안이 몸으로 받아 냈다.

그 순간이었다.

스르릉, 소리가 울리며 빗줄기가 떨어지는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고 튀어 오른 것이 있었다. 눈부시도록 환한 은빛 체인이었다.

끝이 날렵한 체인이 몸을 타고 올라가 주둥이를 돌돌 말자 검은 용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끙끙거렸다.

‘……저건.’

이 기술을 이미 본 적이 있는 에드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대공이 팔목에 생성된 체인을 실타래 감듯이 감아 당기고 있었다.

검은 용을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대공의 힘에 체인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푸른 밧줄도 타이트하게 조여들었다. 대공의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에드의 눈에 들어왔다.

에드의 걱정을 알아챈 대공이 옅게 웃으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황금 용을 불렀다.

“루안.”

루안이 즉각 반응했다. 검은 용의 몸통을 꼬리로 말아 앞으로 이동했다.

에드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려고 했는지 이미 파악한 대공은 체인과 루안을 이용해 허공에 떠 있는 진으로 검은 용을 움직이려고 했다.

검은 용이 몸부림치며 반항하자 대공의 미간에 세로로 금이 생겨났다.

에드는 대공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함께 처음 균열의 틈으로 떨어졌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전하께서 나를 지켜 주며 혼자 싸웠지만, 이제는 아니야.’

자신은 대공에게 지켜내야 할 짐이 아니었다. 또한, 대공은 자신이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한 인도자이자 동반자였다.

에드는 배를 살짝 쓰다듬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응원까지 함께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새끼 용도 자신이 만든 물의 진으로 검은 용을 들이미는데 힘을 보탰다. 검은 용의 몸을 머리로 통통 치며 진 쪽으로 밀고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에드가 만들어 놓은 진을 향해 움직였다.

진을 바라보는 에드의 눈에 힘이 들어가자 그의 주위로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검은 용은 대공에게 맡겨 두고 진에 더 집중하자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검은 용이 진 위로 끌려들어 왔을 때 에드는 손에 피를 냈다. 바닥에 뒹구는 검을 들어 손바닥에 쥐었다 펴자 붉은 피가 손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물이 둥글둥글 뭉치며 만들어진 진이 에드의 피를 계속해서 빨아들이며 차츰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지금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편해지길 바란다면 이보다 더 많은 제물을 바쳐라. 그러면 원하는 바를 이뤄주마. 자, 어서!

빗방울이, 진이, 피가 에드를 향해 작게 속삭여 왔다. 피가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에드는 조금 멍해진 머리로 그저 그 말에 따라 피를 더 흘리기 위해 칼을 들어 올렸다.

“…….”

그때였다. 자신의 손목을 잡아채는 온기가 있었다. 에드가 고개를 들자 빠르게 달려온 건지 대공이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전하?”

대공은 에드가 손에 쥔 검을 부드럽게 잡아 아래로 떨어뜨렸다. 쨍그랑, 검이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인어의 피를 이어받은 젤다족.

그들은 나약하지도, 여리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지키려 할 때 그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대공은 에드가 이 이상 힘을 쓰기 전에 끌어안았다. 그대로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췄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 이제 내가 보여?”

부드럽고도 선명하게 닿은 감촉에 에드는 대공을 마주 끌어안았다. 처음 균열의 틈에 빠졌을 때 대공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자 입가가 절로 올라갔다.

〈이제 내가 보입니까? 에드?〉

“음, 아직 안 보이는 모양이네.”

그때와 똑같은 목소리였으나 조금 더 장난기가 섞인 톤이었다.

〈아직 안 보이는 모양이네.〉

그땐 보인다고 대답했어도 그렇게 말했었는데…… 에드의 대답이 늦어지는 사이 또다시 대공이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촉촉하고 감미로운 감각에 눈을 살짝 내리감았다 뜬 에드가 대공을 직시했다. 푸른 눈동자에 그를 가득 담은 채 말했다.

“제겐 전하가 언제나 보였는걸요.”

“나도 그랬어, 처음부터.”

마치 감춰둔 속마음을 서로에게 고백하듯이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에드가 그때보다 훨씬 강해지고 근사해지는 것을 매일, 매번, 매 순간 느끼고 있어.”

대공은 에드가 설치한 진 위로 검은 용이 거의 다 끌려 온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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