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81화 (181/198)

“그렇습니다. 과거에 저는 그들을 찾는 마법 술을 펼쳐 본 적이 있습니다.”

황제와 마법사의 대화에 집중하던 에드는 그 순간 손을 꽉 잡아 오는 대공의 손길에 시선을 들었다.

대공은 턱을 꽉 깨문 채 황제와 마법사를 노려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가 걱정하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대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예전 일이 생각나서.”

“예전 일이요?”

대공이 말없이 에드를 바라보는데 다시 황제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오호, 그런가?”

“네, 상처를 입은 젤다족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금세 죽고 말았습니다.”

좌중에서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 역시 몹시 슬펐던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젤다족을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젤다족을 구별할 수 있는지 말해 보아라.”

마법사는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젤다족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피입니다.”

“피를 이용한 방법이라? 그건 대공비의 몸에서 피를 봐야 한다는 말인가?”

“귀한 분의 몸에 상처를 내야 하니 안타깝지만, 그 방법뿐입니다.”

흐음, 하며 잠시 좌중을 둘러보던 황제의 시선이 대공의 얼굴에서 멈췄다.

“대공, 자네도 들었겠지? 대공비에게 고통이 있을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대공은 냉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사자가 괜찮다면야 제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자신과 선을 긋는 태도에 일순 주변이 술렁거렸다.

황제가 코웃음을 치듯이 답했다.

“대공 뜻이 그렇다 하니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황제가 마법사에게 눈썹을 까딱였다.

“그럼 계속하게.”

자신이 데려왔다는 대공비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마법사가 그녀의 손을 확 잡아당겼다. 아무리 증명을 위한 행동이라고는 하나 거침없는 태도에 몇몇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가 단검으로 그녀의 손에 상처를 낸 건 삽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놀라 숨을 들이켜는 동안 마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읊조렸다. 이내 그의 손에서 푸른 빛이 떠올랐다.

“피가……!”

누군가 외쳤다.

에드 역시 눈을 부릅떴다.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피가 공중에 동글동글 뭉쳐 떠올라 있었다.

마법사가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 맺혀 있던 핏방울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아올랐다.

“젤다족의 피는 마력과 닿으면 쉽게 끌 수 없는 불꽃이 피어납니다.”

마법사의 말대로 모든 피를 태우고 나서야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그녀와 대공, 그리고 황제를 번갈아 보았다.

황제가 자신만만하게 입을 뗐다.

“어떤가, 대공.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대공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선언했다.

“이로써 검증은 완벽하게 끝났다! 북부의 대공, 아스넬 린든은 단상으로 올라와 대공비를 맞으라.”

황제의 명에 연회장 안이 어수선해졌다.

“이걸로 검증이 끝난 게 맞나요?”

“아까 보셨잖아요. 젤다족의 특징을 보인 대공비를요!”

“아니, 그래도 뭔가 좀…….”

차마 황제가 한 일에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어 몸을 사리는 사람들의 심정에 에드도 공감했다.

대공은 서늘해진 에드의 손을 꽈악 쥐었다 뗀 후 걸음을 옮겼다. 얼룩진 붉은 카펫에 올라 천천히 걸어 나가며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단상에 오른 대공이 무릎을 굽혀 예를 취하자 황좌에 앉은 황제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대공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 항상 걱정이었는데, 오늘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 정말 기쁘군. 선대 대공 부부도 그렇지 않겠는가?”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게 넘긴 대공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신 북부의 대공 아스넬 린든은 저 대공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일순 사위가 고요해졌다.

황제가 손끝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팔걸이를 꽈악 쥐었다.

“내 귀가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감히 내 명을 거절하겠다는 말이 대공의 입에서 나올 리가 있나. 그는 곧 반역과 같은 것을.”

그러자 대공이 차가운 음성으로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저 대공비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요한 연회 홀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눈썹이 힐끗, 올라간 황제가 입을 열었다. 음산한 목소리였다.

“그대는 짐의 규명을 부정한다는 것인가?”

그러더니 대공이 입을 뗄 새도 없이 황좌를 손으로 쾅, 내리쳤다.

“그리고 그 말은 제국을 위해 위대한 여정에 오른 짐의 위엄에 명백히 도전하는 것임을, 대공은 알고도 입을 놀리는 것인가!”

대공은 팔걸이를 짚은 황제의 손등에 솟아오른 핏줄을 보며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신탁을 받은 제 운명의 반려가 이미 제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황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황좌에서 벌떡 일어나 대공을 노려보다가 단상 아래를 응시했다.

대공이 서 있었던 자리를 주시한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에드를 흘긴 후 고개를 돌렸다.

‘신탁을 받은 반려가 이미 곁에 있다고? 그렇다면 저놈은 분명 그자를 어딘가에 숨겨 두고 황궁에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속으로 비소를 날리며 이를 꽉, 물었던 황제가 입매를 비틀었다.

‘아니지, 진실을 아는 건 오로지 나 뿐이다. 전 대신관은 바로 피습해 죽였고, 선황은 독을 먹고 오랫동안 사경을 헤맸으니 저놈이 신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지.’

황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했다.

‘젤다족도 멸족한 마당에 저놈이 운명의 상대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 지금도 수집한 정보를 통해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적당히 꿰어 맞추고 있는 것이겠지.’

작게 콧방귀를 낀 황제가 왕홀로 바닥을 짚으며 대공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아스넬 린든? 짐이 찾은 대공비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폐하, 이것을 봐 주시길 바랍니다.”

대공이 품에서 황금색 줄로 감긴 양피지를 꺼내 시종장에게 넘기자 미간을 좁힌 황제가 물었다.

“그게 무엇이지?”

대공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대답했다.

“선황께서 남기신 유조와 전 대신관이 기록한 신탁입니다.”

꼿꼿하게 걷던 시종장의 걸음이 살짝 흐트러졌다. 다시 정신을 집중한 그가 양피지를 내밀자 황제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돌돌 말린 종이를 내려다보던 황제가 느릿하게 황금 줄을 풀었다. 촤라락 펼쳐지는 양피지를 확인한 그의 눈길이 인장이 찍힌 부분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 선황께서 남기신 유언을 통해서도 판명되었다. 전 대신관이 남긴 신탁이 진실이라는 것을!”

황제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런데 대공은 도대체 무얼 보고 저 대공비를 가짜라고 하는 것인가?”

황제가 왕홀을 움직여 대공비를 가리키자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갔다.

대공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답했다.

“저는 신탁이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증 방법이 틀렸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선황께서 남기신 유조에는 전 대신관이 진실을 밝히는 검증 방법을 남겼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공이 말을 멈추고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부대신관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신탁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부대신관이 무언가 설명하려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건……!”

대공은 변명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또한, 신탁에서 말하는 것은 ‘젤다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와 운명으로 엮인 반려를 찾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검증 방법은 젤다족을 찾는 것에만 국한된 것입니다.”

“…….”

“그리고 이는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이들이 폐하의 눈과 귀를 막아 생긴 일이 아닐까, 하고 신은 생각합니다.”

대공이 사실을 꼬집자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지 황제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반응을 무시하며 대공은 신중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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