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77화 (177/198)

고개를 끄덕이며 텐스의 손을 잡으려던 에드는 순간 멈칫했다. 웅덩이를 만지느라 젖은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에드,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에드는 자신의 축축한 손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텐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능력으로 사람을 구하다니.’

그건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면서도 감동적이었다.

* * *

“에드, 괜찮아?”

마차에 들어온 대공이 에드 옆에 앉으며 빠르게 살폈다.

나른하게 늘어져 창턱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에드는 옅게 웃었다.

“텐스에게 들으셨어요?”

대공이 에드의 손을 잡아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몸에 무리가 오는 느낌은 없어?”

“조금 피곤하긴 한데 나쁘진 않아요. 아이도 괜찮고요.”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어쩐지 신이 난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능력을 써서 아이가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는데, 아까부터 배를 발로 통통 차는 게 오히려 기분이 좋은 게 아닐까 싶었다.

대공은 에드의 배에 손을 대고 살살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 것 같네.”

그리고 에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매만지며 물었다.

“힘을 쓸 때 이상한 점은 없었어?”

“이상한 점이요?”

“숨이 잘 안 쉬어진다거나,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다거나.”

에드는 대공이 폭주할 때의 느낌을 떠올린다는 걸 깨닫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뇨,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어요. 머리가 아프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다행이네, 에드의 능력은 확실히 나랑은 다른 것 같아.”

“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 그런데 텐스 외에도 기사들 몇 명이 제가 힘을 쓰는 걸 봤거든요.”

“…….”

“아직 제가 힘을 쓴다는 게 밝혀지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혹 황제 귀에 에드의 능력이 들어가더라도 내가 손 하나 못 대게 할 테니까.”

대공이 에드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괜찮아. 에드가 능력을 보이고 싶다면 언제든지 내보여도.”

“음, 그렇지만요.”

“뒷수습은 내가 할 테니까 에드는 에드의 몸만 최우선으로 생각해.”

수건으로 닦았어도 조금 덜 마른 느낌이 들었던 머리카락에 대공의 손이 닿자 금세 물기가 가시며 보송보송해졌다.

기분 좋은 온기에 에드가 웃자 그를 응시한 대공이 입을 뗐다.

“황궁에 가면 무기나 마도구는 반입이 금지될 거야.”

“네.”

“그리고 마력을 못 쓰게 하는 구속구를 차게 될지도 몰라.”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느껴지면 내게 바로 말해 줘.”

“네, 알겠습니다.”

에드의 씩씩한 대답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 대공이 굳은 안색을 풀며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에드, 아까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하필이면 그때 내가 자리를 비웠잖아.”

순간, 대공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 활약을 보지 못해 서운한 모양이었다.

에드는 그때의 광경과 힘을 쓰자 느껴진 감각을 대공과 공유했다.

“능력을 발동시킨 계기도 정말 에드답네.”

대공의 칭찬에 에드는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전하께서도 처음으로 힘을 써서 누군가를 도왔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편 그는 비로소 실감했다. 얼떨떨하면서도 기쁜 이 마음을 대공에게 빨리 전하고 싶었음을.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쓴 것도 정말 멋지고.”

대공이 환하게 웃으며 극찬하자 에드는 민망하면서도 입가가 느슨하게 풀렸다.

그래서 그는 따뜻한 대공의 입술에 제 입을 맞대었다.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자신의 방식대로 그와 함께 나누었다.

* * *

황궁으로 마차가 달리는 동안 대공은 수시로 마법을 썼다. 긴 여정으로 인해 에드의 몸에 부담이 가는 걸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관문에 도착했을 때, 에드는 마차 창을 열고 먹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는 빗방울이 마차에 떨어졌다.

“또 비가 오네요.”

“그러게, 황도에 가까워질수록 더 자주 내리는 것 같아.”

그동안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며 날이 좋지 않았다.

“황궁의 야외 홀에서 연회가 열린다고 했는데 비가 내리면 취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 황제라면 폭우가 내려도 일정을 감행할 거야.”

마차가 잠시 멈춘 틈에 밖을 살펴보던 에드가 창문을 닫으며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결정한 일은 틀림없이 추진하고 마니까. 한번 결단한 걸 조금이라도 수정하거나 일정을 변경하면 못마땅해하거든.”

“…….”

“그게 하늘에서 내려 준 뜻을 올바르게 받은 황제의 위엄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군요.”

황제의 얼굴을 떠올린 에드는 아까 봤던 황도의 풍경을 되짚었다.

‘작년에 왔을 때랑 분위기가 달라.’

밝은 햇살이 내리쬐던 그때와 달리 하늘은 우중충하고, 거리엔 활기가 줄어든 모습이었다.

“날도 이러니 빨리 일을 보고 북부로 돌아가야겠어.”

“로넨 도련님께 드릴 선물을 마차에 가득 싣고서요?”

에드의 대답에 북부 성에서 애쓰고 있을 동생이 생각났는지 대공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물론, 그래야겠지.”

“지난번 야시장에 갔을 때 꼬치구이와 육포를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황도에서 맛있는 육포를 파는 곳이 있나 알아봐야겠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에 에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관문이 열렸다.

“북부의 아스넬 린든 대공이 도착했습니다!”

통행 허가를 받은 마차가 본성을 향해 나아갔다. 조금씩 올라오는 긴장감에 에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자 대공이 그의 손을 감싸며 창문을 열었다.

“이르텔, 마차 속도를 늦추도록 해.”

“네, 전하.”

이르텔에게 지시한 대공이 시선을 멀리 두었다. 비가 오고 있음에도 지난번과는 달리 환영 인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확인한 대공이 창문을 닫자 에드는 의자 아래에 둔 짐 가방에서 우비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대공이 그의 몸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품에 꽉 끌어안으니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전하, 비가 내리니 우비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를 끌어안으시면 옷이 구겨지는데요.”

“괜찮아, 에드. 이 정도 빗줄기는 그냥 맞아도 되고, 복장으로 책잡힐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제이논이 시중을 들었을 때보다 나아졌다면 몰라도 나빠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고요.”

오늘 에드는 시종으로서 대공과 함께 황궁으로 들어왔다. 대공의 연인이 자신이라는 걸 이쪽에서 먼저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그를 알면서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대공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데.”

에드를 시종으로 소개해야 한다는 게 불만스러운 그가 속삭였다.

“……그러니 황제와 빠르게 담판을 짓고 북부로 돌아가자.”

“네, 전하.”

똑, 똑.

그때 마차가 완전히 멈추고 문을 작게 노크하는 소리가 울렸다.

“대공 전하.”

“잠시 기다려.”

이르텔에게 대답한 대공이 에드를 일으켜 세우며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장난스럽게 닿은 온기에 에드는 이마를 문지르며 우비를 찾아 대공에게 건넸다. 대공이 그를 입는 걸 도운 에드도 우비를 걸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