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에드는 아, 하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황제에게 필요한 건 진짜 젤다족이 아니라 적당히 구미에 맞는 그의 인형이 필요하다는 거니까, 전하께 아무나 들이밀겠구나.”
황제의 말을 잘 듣고 전하를 감시할 꼭두각시.
그래야 황제가 지극한 정성을 들여 제국의 안위를 찾을 방도를 찾았건만, 대공이 이를 신실하게 이행하지 않는다고 화살을 돌릴 수 있을 테니.
조용히 고민하던 에드는 생각했다.
‘황제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전하께선 황제가 점찍은 대공비를 맞고, 나는 전하의 뒤를 지키는 방법이 있기도 한데.’
황제와 전면전을 피하고 한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긴 했다.
‘그리고 시간을 버는 동안 황제의 약점을 찾는다면…….’
에드는 대공의 곁에 선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그려 보았다가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아니었다.
‘설사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해도 절대 안 되고…… 전하께서 당분간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자고 했으니까 오늘은 그만 생각하자.’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신문에는 ‘젤다족은 누구인가.’ ‘그래서 젤다족은 어디 있을까?’ ‘젤다족을 찾기 위한 황제 폐하의 위대한 여정.’ 등의 기사가 신문에 박히기 시작했다.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젤다족에 대해서 제국의 코흘리개들도 다 알게 될 지경이었다.
그리고 북부와 경계가 맞닿은 서부에서 우물이 뜨겁게 끓어 넘치는 일이 발생했다.
며칠간 도서관을 드나들던 에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문을 읽다가 황제와 그가 찾았다고 과시할 대공비를 떠올리자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 당장 대공이 보고 싶었다.
도서관을 재빠르게 나와 대공의 집무실로 올라간 에드는 문을 노크하려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전하께서 우물이 끓어 넘쳤다는 서부 지역을 확인하러 가셨지.”
이런 기현상을 대공의 탓으로 돌리려는 세력도 있었다. 황제의 파수꾼이자 들러리로 특별판까지 신문을 찍어 돌리며 제국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려고 했다.
신탁의 내용이 신문에 실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그렇게 지면을 할애해 강조하는 것은 뻔했다. 신탁을 받은 대공비를 찾기 위한 ‘황제 폐하의 위대한 여정’을 말하고 있었다.
대공의 집무실 문에 이마를 살짝 기댔던 에드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황제가 아무리 얄팍한 수를 쓴다고 진짜 신탁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생각을 마친 에드는 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방문 앞에 당도했을 때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인영을 발견했다.
“도련님?”
트레이를 들고 오는 로넨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따뜻한 걸 먹으면 잠이 올 거라고 해서 부주방장이 수프를 준비해 줬거든…… 혹시 에드 시간 괜찮아?”
야심한 시각이었다. 로넨에게서 트레이를 건네받은 에드가 물었다.
“잠이 오지 않으세요?”
“응, 에드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네, 전 괜찮으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방으로 들어선 에드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 뒤를 빠르게 따른 로넨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내려놓은 그릇의 뚜껑을 열자 따스한 김과 고소한 향이 방안에 퍼졌다. 뽀얀 우유 수프와 구운 감자였다.
에드는 작은 그릇에 수프를 떠 로넨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 뜨거우니 조금만 이따가 드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응.”
에드는 로넨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었으나 꺼내기 어려운 건지 망설이는듯한 로넨을 차분히 기다렸다.
“……저, 에드.”
한 김 가신 수프를 한 입 떠먹은 로넨이 에드와 시선을 맞춰왔다.
“기분이 어때?”
“어떤 기분이요?”
“형이 결혼할지도 모르잖아?”
에드가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이자 로넨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그런데 나는 나쁜 아이인가 봐.”
“도련님이요?”
“으응.”
대답하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로넨이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신탁이란 게 굉장하다는 건 나도 알아. 그게 형한테 내려왔다니까 멋지고 좋은데…… 하지만 나는 신탁에 따라서 형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는 건 좀 싫은 것 같아. 형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
“신문을 볼 때마다 형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까 좋기도 하면서 불안해.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나쁜 이야기도 있고…… 그리고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달라서 눈앞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것 같고 그래.”
대공이 경솔하게 입을 놀리지 말라고 사용인들에게 지시를 내렸어도 북부 성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로넨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가늠해 본 에드가 그를 응시했다. 그러자 로넨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신탁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야! 그리고 형의 신부가 오면 괴롭히거나 그럴 생각도 없고!”
에드는 옅게 미소 지었다.
“도련님께서 그러지 않으실 거란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응!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야, 형에게 신부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발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거 있지?”
에드의 시선이 로넨의 발에 닿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로넨이 입술을 잘근거리다가 입을 뗐다.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형을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에드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
“에드는 어때? 에드도 형과 친하니까 혹시 나랑 비슷한 기분이야?”
에드는 시무룩한 붉은 눈동자를 보며 제 마음을 깨달았다.
‘……황제와 전면전을 피하면서 평화롭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무슨.’
에드는 로넨의 말에 대공에게 다른 사람이 팔짱을 끼는 상상을 해 보자 마음이 가라앉으며 불쾌해졌다.
“도련님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일이니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고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인 에드가 로넨에게 작게 말했다.
“그리고 저도 사실 갑작스럽게 대공 전하의 신탁이니, 신부이니 하고 적혀 있는 기사들을 읽고 마음에 좋지 않았어요.”
은밀하게 속삭이는 듯한 말에 로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에드에게 소곤거렸다.
“맞아, 나도 그랬어. 사실 그 신문 기사 중에서 틀린 것도 있었잖아. 형이…….”
한결 표정이 풀려서 입을 떼는 로넨과 대화를 나누던 에드는 문득 생각했다. 전하께서 더 늦기 전에 돌아오시면 좋겠다고.
* * *
생각보다 귀성이 늦어진 대공은 본성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주위를 확인하며 곁을 따르는 이르텔에게 지시를 내렸다.
“암염 광산의 출하량을 지시한 대로 조절하고,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도록 해. 이때다 싶어서 도적 떼가 그쪽을 노릴 수도 있으니.”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채취한 물과 흙을 분석하는 대로 보고해. 우리가 혹시나 하고 짚었던 것과는 거리가 있어. 화산이 터지려는 징후였다면 물이 그렇게 단숨에 식지 않았을 테니까.”
“네, 대공 전하.”
대공은 장갑을 벗으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우물이 뜨겁게 끓어 넘쳤다는 지역이 북부는 아니었지만, 서부와 경계가 닿아 있는 곳이었기에 그는 기민하게 움직여 조사했다.
토양이 타들어 가듯이 잿빛으로 변했고, 마력이 느껴지기도 했으니 일반적인 자연 현상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의 손을 탄 건 확실한데.’
외진 숲 마을이었다.
그를 지키는 경비의 눈을 피해 은밀히 현장을 살피고 온 대공은 이르텔에게 몇 가지 당부를 더 한 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샤워를 한 후 로넨을 살펴보고 에드의 방으로 가면 되겠군.’
그리고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 했을 때 손을 멈칫, 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자신의 방에서 작은 소리가 나고 있었다.
“이건 너무 뜨거운데……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필요한 게 아니라니까.”
조용히 문을 연 대공은 안의 기척을 살폈다. 어두운 방바닥으로 옅은 불빛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었다.
욕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욕실 문가에 몸을 기댔다.
“…….”
에드가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올라선 작은 용이 물을 향해 캬아, 입을 벌리며 불을 뿜자 수면에서 보글보글 김이 올라왔다.
그걸 본 에드가 용을 다그쳤다.
“설마 전하를 이렇게 익히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와서는 왜 심술을 부릴까? 이럴 거면 방으로 돌아가래도.”
‘심술이라기보다는 장난인데.’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에드의 반응에 욕조로 내려와 다시 불을 뿜는 용에 대공은 피식 웃었다.
그 기척을 느낀 에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