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72화 (172/198)

“그러니 차곡차곡 쌓이는 귀족들의 불만과 제국민들의 불안을 황제는 다른 곳으로 돌릴 곳이 필요했어.”

“그게 대공 전하라는 것이군요.”

“쉽고 간편하잖아. 제국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신탁을 따르지 않는 대공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에드는 이마를 찡그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대공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

“나와 에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보여 주면 되지.”

에드는 멍하게 답했다.

“네?”

대공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에드는 그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신문에 적힌 신탁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리송하기만 했다. 대공과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서 이번 일이 잘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용의 피가 흐르는 북부의 검과 얼음 호수의 기운이 흐르는 빛이 만남으로…… 라는 부분이 전하와 운명의 동반자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신문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에드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니, 그 전에 중요한 건 과연 이 신탁의 내용이 진짜일까?’

시선을 든 그가 물었다.

“전하, 이 신탁이 사실일까요?”

“…….”

“황제가 전하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서 가짜 신탁을 내세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전하께서 어떤 선택을 하셔도 제국에 안정이 깃들기 어려우니까요.”

신탁의 내용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대공은 그 신탁으로 생긴 일 때문에 에드의 어머니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말할 수 없었다.

에드가 그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이를 수 있고, 자신에게 터놓지 못한 과거도 있었다. 대공이 알기론 아직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일을 아직 알리기 싫다는 것이겠지.’

대공은 에드의 마음을 이해했다.

눈을 떠 보니 낯선 세계,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또한, 에드 입장에서는 이유도 모르게 제국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언제 또다시 푸른 별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도 있을 거다.

그래서 대공은 에드가 그 사실을 먼저 털어놓을 때까지 그와 그의 부모님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신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그 부분만 빼고 진실을 터놓을 예정이었다.

‘에드가 제국에 완전히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리에서 일어난 대공이 에드의 곁에 앉아 그를 끌어안았다. 너른 품에 그를 가득 품고 에드의 머리에 턱을 기댔다.

“전하?”

“황제가 말하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에드는 머리 위에서 들리는 조곤조곤한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며칠 전에 내가 황태후 폐하를 만나고 왔다고 했잖아.”

에드는 따뜻한 품에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선황께서 내게 남겨 주신 물건을 받았어.”

에드는 대공의 말을 끊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작은 구슬이었는데, 그걸 들고 에드와 함께 탐험했던 가렌다 산의 동굴로 들어갔지.”

“…….”

“그리고 로넨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황금 용을 만났거든.”

“황금 용이라면…….”

“그래, 내 피에 흐르고 있는 용의 축복을 내려주신 분이야.”

대공에게서 몸을 살짝 뗀 에드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공이 황금 용을 만나고 왔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에드의 푸른색 눈동자에 담긴 의문을 내려다본 대공이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뗐다.

“황금 용께서 이제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진실들을 가르쳐 주셨어.”

“전하께서 알지 못했던 진실이요?”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에드가 나의 운명의 짝이란 걸 말이야.”

에드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네?”

“황금 용께서 말씀하시더군. 내게 신탁이 내려왔고, 내가 에드와 함께 하면 점차 제국에 평온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 하지만 전하의 운명의 상대는 얼음 호수의 기운이 흐르는 빛이라고 했는데요. 황제는 그를 젤다족이라고 밝혔고요…….”

대공은 온유한 눈빛으로 에드를 바라보며 그가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렇다면 혹시 제, 제가 그 신탁에 나온 젤다족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대공은 에드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황금 용께서 내게 해 주신 말은, 얼음 호수의 기운이 흐르는 빛은 나를 치유한 에드를 말하는 것이며 그의 손을 절대 놓지 말고 꼭 붙잡고 있으라고 하셨어.”

“…….”

에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공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뗐다.

“그, 그게 사실인 건가요? 제, 제가 전하와 운명으로 엮인…… 신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운명이 얽힌 그런 관계인가요?”

대공은 부드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그래, 그러니 에드는 아무 걱정할 것 없어.”

“…….”

“황제가 아무리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 내 대공비를 찾아낸다고 해도 결국 가짜에 불과하니까.”

“…….”

“내 운명의 상대는 에드, 바로 너야.”

* * *

대공과 긴 대화를 나누고 잠이 들었다 깬 에드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전하를 만난 이후 그가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랐던 나인데.’

그런 전하와 운명으로 엮여 있었다니.

좋으면서도 얼떨떨하고, 이상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다 베개에서 자고 있던 도마뱀이 에드의 배로 폴짝 날아오자 에드는 웃었다.

“너, 그냥 도마뱀이 아니라며?”

캬아.

대공이 말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줬던 용을 봐 봐.〉

〈용이요?〉

〈동굴에서 가져왔다고 한 도마뱀이 황금 용의 발톱에서 떨어져나온 녀석이거든.〉

〈…….〉

〈내 피에 흐르는 용의 기운에 호의적인 에드에겐 불을 내뿜더라도 뜨겁게 느껴지거나 머리카락이 타지 않을 거야.〉

에드는 배에 올라탄 작은 용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다가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내가 대공을 치유해 줄 수 있긴 한데…… 설마 황금 용께서 착각을 하신 건 아니겠지? 빙의를 하기 전의 에드와 지금의 나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탁에서 말한 얼음 호수의 기운이 흐르는 빛은 나를 치유한 에드를 말하는 것이며,〉

대공이 말한 것을 상기해보면 신탁이 가리키는 주인은 대공에게 영향을 끼친 자신이 틀림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에드는 용을 주머니에 넣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젤다족…… 젤다족.”

그리고 젤다족에 대해 쓰인 책들을 찾았다. 대공과 대화를 나눌 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는 소설에서 젤다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신탁을 받았다면 소설에 나왔을 법도 한데 내가 그 부분을 놓친 걸까?’

하긴, 전하께선 로넨의 과거 회상에 나온 등장인물이었으니 그 부분은 생략되었을지도…… 또 소설과 달리 미래도 바뀌었으니까.

그래도 에드는 젤다족에 대해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전하의 반려로 젤다족을 콕, 찍었으니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찾은 대공비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려고 하겠지.’

에드는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인어족의 후예라고 일컬어지는 젤다족은…….”

워낙 소수 종족이었고, 인간을 홀린다는 누명을 써 배척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일족을 이루고 살았다.

그래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에드는 젤다족 관련의 책을 펼쳐 봐도 한두 페이지의 정보를 얻는 게 고작이었다.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힘이 세지는 않은 것 같고…… 길잡이라고 불리는 존재, 사람을 해치지 않는 성정, 자신들끼리 작은 마을에 뭉쳐 살았던 것 같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 종족…… 이라는 건데.”

에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취를 감췄을까? 그리고 황제는 그런 젤다족을 어떻게 찾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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