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70화 (170/198)

“……잘 잤어?”

“네, 전하께서는요?”

아직 잠이 덜 깨 느릿한 에드를 대공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답했다.

“나도 잘 잤어.”

대공이 에드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부드러운 손길에 도로 눈이 감긴 에드는 아, 하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참, 일은 잘 보고 오신 건가요?”

지난밤, 대공과 무도회를 즐기다가 방으로 올라온 에드는 방을 서성거렸다. 대공이 무사히 돌아오고, 무도회가 무탈하게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행히 무도회는 자정이 될 때까지 별 소란 없이 호평 일색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정에 제이논이 무도회가 아무 문제 없이 끝났다는 걸 알려와 에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다른 걱정거리가 고개를 들이밀어 다시 방을 서성거렸다.

대공이 아직 방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세 일을 마치고 올 줄 알았던 그는 새벽이 되어서야 에드의 방문을 열고 돌아왔다.

〈……풀숲에 숨어 있던 사람의 정체는 알아내셨나요?〉

외투를 벗어 정리한 대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의 손을 잡고 밤이 늦도록 걱정에 잠겼던 그를 침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대공은 그의 손끝부터 손으로 가볍게 주물러 올라갔다. 긴장으로 뭉쳤을 몸을 풀어 주며 답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연락책이었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숨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자 굳었던 에드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뭐가?〉

〈악의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곤 하지만 전하와 제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봤으니 말입니다.〉

〈에드와 내가 같이 있는 게 어때서?〉

〈그거야 그렇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문제였다.

‘전하와 내가 춤을 춘 것까지는 괜찮다고 쳐도 키스까지 했으니.’

분위기에 취해 그만 밖이라는 것도 잊었던 에드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으나 대공에게 손이 잡혀 그럴 수 없었다.

에드의 손가락이 움찔거리자 대공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는 잘 설명해서 문제 생길 것 없이 넘어갔어. 그리고 에드, 내가 잠시 성 밖에 나갔다 올 일이 생겼어.〉

〈그 친분 있는 사람과 관련된 것인가요?〉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인데, 다녀와 이야기해 줄게.〉

에드가 수긍하자 잠자리를 살핀 대공이 그를 침대에 눕혔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게다가 오늘 에드가 몸도 많이 움직이고 마음도 졸였으니 피곤할 터였다.

대공은 에드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에드를 살폈다. 그의 눈이 감기는 걸 보며 마법 등을 껐다.

〈…….〉

에드의 숨이 고르게 퍼지자 대공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에도 에드의 눈꺼풀이 올라가자 작게 혀를 찼다.

에드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 자고 있어.〉

〈네.〉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서는 대공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에드는 목걸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그는 대공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을 내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침대 곁에 선 대공이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척에 팔을 내밀어 손을 잡자 차가웠다.

그 손을 끌어다 이불 속으로 넣자 대공이 침대로 올라왔고 저를 꽉 끌어안았다. 에드도 그를 마주 안으며 금세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느지막이 일어났을 때 대공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에드는 대답을 기다렸다.

“……황태후 폐하를 만나 뵈었어.”

부스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에드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황태후 폐하요?”

대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는 소설 원작에서 그녀의 처지가 어땠나를 떠올려 보다가 손을 내린 대공이 제 발을 잡아 오자 발끝을 오므렸다.

“……간지럽습니다.”

“발이 차잖아.”

“그렇지 않은데요.”

에드의 항변에도 대공은 가벼운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로 에드의 발등을 살살 문지르며 열을 피우니 에드는 몸을 뒤로 살짝 빼며 물었다.

“그럼 어제 테라스에서 본 건 황태후 폐하와 관련 있는 사람인가요?”

에드를 바라보던 대공이 몸을 일으켰다. 에드의 왼쪽 발을 잡고 가볍게 주물렀다.

“선황께서 내게 전하라는 것이 있었다며 어렵게 걸음을 하셨더군.”

에드는 황태후와 이복동생인 황녀를 좋아하지 않는 황제를 떠올리며 대공의 손에 잡힌 발을 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황제는 이복동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죠?”

“황제에겐 자식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그녀가 신경 쓰이겠지. 용의 피도 흐르고.”

황제를 발음하는 대공의 목소리에 한기가 스쳤으나 생각에 빠진 에드는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해결되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 황태후께서 전하께 뭘 주기 위해서 오신 걸까?’

그 순간, 에드의 눈에 대공의 목에 남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전하. 여기에 상처가 났는데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에드가 손가락으로 대공의 목을 살살 쓰다듬었다.

대공은 손으로 상처를 가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도마뱀? 아니면…… 용?

자기 꼬리를 문 채 대공의 손바닥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는 동물을 보며 에드가 이마를 긁적였다.

“설마 황태후께서 이걸 전하께 건네기 위해서 오신 겁니까?”

에드의 벙찐 모습에 대공이 옅게 웃었다.

그때.

캬아.

잠에서 깬 도마뱀이 대공의 손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쩍 벌렸다.

캬아, 캬아.

몇 번이나 혀를 날름거리는 도마뱀을 내려다보던 에드는 그 속에 보인 날카로운 이빨을 보고 대공에게 물었다.

“혹시 이 녀석이 전하의 목에 상처를 낸 건가요?”

그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입을 꾹 다문 도마뱀이 도로 몸을 돌돌 말자 에드가 그 몸통을 손으로 쿡, 찔러보았다.

그러자 입에서 꼬리를 탁 내뱉은 도마뱀이 빠르게 에드의 손을 타올라 손목을 꼬리로 칭칭 감았다.

“넉살도 좋은 녀석이네.”

손을 털레털레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도마뱀에 에드는 혀를 차듯이 중얼거렸다.

대공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작은 도마뱀을 귀여워하는 에드를 응시했다.

〈그 녀석은 데리고 가도 괜찮다. 내 발톱에서 떨어져 나간 녀석이지만, 가끔 도움이 되긴 할 거다. 제멋대로라 귀찮긴 하겠지만.〉

용의 선물과도 같은 도마뱀이 이제는 에드의 손목에서 배로 퐁 다이빙을 하듯이 떨어졌다.

제 둥지를 찾았다는 듯이 에드의 배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자 그가 피식 웃었다.

“무슨 동물일까요?”

“동굴에서 살던 작은 도마뱀 같아. 에드가 마음에 든다면 키워도 괜찮아.”

에드는 도마뱀의 등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었다.

그런 에드를 바라보던 대공은 긴 세월 동안 그가 홀로 지내야 했던 일이 떠오르자 참을 수가 없었다. 에드를 꽉 끌어안은 채 이를 악물자 턱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다.

“전, 전하?”

의아한 에드의 목소리에 대공은 그의 등을 토닥이며 숨을 골랐다.

‘에드, 너는 나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부모 형제도 없이 그곳에서 홀로 외롭고 힘들게 지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곧은 마음씨를 갖고 있을 수 있는 걸까.’

한참 후 대공이 느리게 몸을 떼었을 때,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방안을 빠끔 들여다보던 로넨이 대공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형! 에드!”

반갑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서던 로넨이 에드의 배에 있는 낯선 것을 발견하자 빠르게 달려왔다. 매트리스를 손으로 짚으며 물었다.

“이건 뭐야?”

“아, 이거요.”

그런 둘을 보며 대공이 팔을 넓게 벌렸다. 머리를 맞댄 로넨과 에드를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아앗, 형.”

“하하, 전하…… 잠시만요.”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이었다.

그렇게 며칠간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간 후, 북부 성에 편지가 도착했다.

황제가 보낸 것이었다.

황제의 편지가 도착한 건 대공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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