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69화 (169/198)

〈덴, 곧 추적 마법을 써서 저희를 뒤쫓아 올 거예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여력이 남은 지금 별의 길을 읽어 의식을 치를게요. 그게 당신과 에드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에요.〉

인어는 옛 고대 시절부터 바다에서 노래를 통해 길을 잃은 자들에게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인도자 역할을 했다.

그런 인어족의 피를 물려받은 젤다족의 차기 수장인 베이가 마지막 힘을 다해 능력을 끌어냈다.

비록 마을을 구하진 못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가 살아날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하늘에 뜬 푸르른 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일러주는 대로 자신의 피로 바닥에 문양을 그리며 낮게 속삭였다.

〈에드,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마치 노래를 하듯이.

〈너무 높다랗게 서서 네 앞을 가로막은 어두운 장벽에 때로는 너는 외롭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별이 소곤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에게 전해 주듯이.

〈네가 황금별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야.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을지도 모를 여정이지. 너무 고단해서 지칠지도 몰라.〉

베이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그러나 에드, 너는 씩씩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란다.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황금별의 멋진 길잡이가 될 거란다.〉

덴에게서 아이를 건네받은 베이가 에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에드.〉

그 순간 베이의 눈앞으로 푸른 별에서 죽어가는 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별이 속삭이는 말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에드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저곳에서 죽어가는 아이의 몸과 영혼에 생긴 틈으로 들어가는 거야.’

에드를 덴에게 넘긴 베이는 읊조렸다. 젤다족에게 전해지는 금기곡인 ‘영혼을 부르는 노래’였다.

그녀는 피로 젖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덧그리며 푸른 별에서 죽어가는 아이와 에드의 영혼을 바꾸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또한, 깨달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자신은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란 걸.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의 눈앞으로 푸른 별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에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자 눈가에 눈물이 어리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꼭 살아야 해, 에드.〉

자신의 노래에 응답하여 에드의 몸에 옅은 빛이 스며드는 걸 보며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스르르, 옆으로 넘어갔다.

〈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덴이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에 받쳤다.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베이가 떨리는 손을 들어 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몸은 과도한 능력을 사용한 대가로 점차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에드의 영혼이 스스로의 몸을 찾아오는 건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발현했을 때야.〉

별이 알려 주는 마지막 이야기를 덴에게 건네는 베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눈앞이 이미 가물가물해졌으나 그녀는 온 힘을 다해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니 덴, 지켜야 해요. 우리의 아이가 먼 길을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베이.〉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덴. 적들이 마법사들을 통해 내 기운을 읽고 따라오고 있다면 금세 잡힐 거예요. 어서 일어나서 달려요. 이 길을 따라서.〉

간신히 손을 든 베이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덴은 눈물로 부옇게 흐려지는 눈을 손으로 훔치며 강보를 품에 꼭 안았다.

〈사랑해요, 덴.〉

〈나도, 정말 사랑해. 베이.〉

베이는 품속에 손을 넣으며 이제는 거의 말이 나오지 않는 입에 미소를 머금었다.

〈얼음 호수 근처에서 길을 잃은 당신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서 정말 행복했어요.〉

〈……아, 베이.〉

〈우리의 아이를, 에드를 꼭 지켜줘요.〉

고개를 숙인 덴이 베이의 입술에 입을 맞대자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온기에 그를 만나 좋았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베이가 작게 속삭였다.

〈어서 가요.〉

입술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눈가가 시큰해진 덴이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들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베이를 바라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이는 품에서 꺼낸 럼주를 자신이 그린 문양에 뿌렸다. 머뭇거리는 덴의 발길을 확인하며 눈을 감았다 뜬 그녀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성냥불을 켰다.

인어의 피에는 마력이 흘렀다. 대가를 치르기만 한다면 성냥불도 거대한 불로 바꿀 수 있었다. 곧 자신들을 찾아 쫓아온 적들은 거대한 화마를 보고 도망친 일가족이 이에 휘말려 모두 죽었다고 생각할 터였다.

손을 흔드는 베이를 보며 발을 멈춘 덴은 그녀에게 도로 다가가고 싶었으나 베이가 고개를 젓자 입술을 꽉 물었다.

〈에드를 지켜야 해.〉

우리의 아이를.

그것이 그의 사명이 되었다.

* * *

대공의 눈앞으로 도마뱀의 불길이 또다시 일렁였을 때 풍경이 바뀌었다.

좁은 방, 하얀 벽, 작은 책상, 비좁은 침대……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이불을 돌돌 감은 채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검은 머리에 낯선 얼굴, 그러나 대공은 그 안에 자리 잡은 영혼이 에드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곤히 잠든 건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잠이 든 남자의 발이 이불 밖으로 쏘옥 나와 있었다.

그 발이 시려 보인 대공은 이불을 내려 잘 덮어주고 싶었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공은 남자의 발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마치 온기가 전해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그 순간, 잘 자고 있던 것 같던 남자가 이불을 확 끌어 내렸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니, 그런데 거기서 대공이 왜 죽지?〉

팔짱을 낀 그가 미간을 작게 찡그렸다. 술이라도 마셨는지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끔씩 보이는 에드의 모습이 남자에게서도 보였다. 대공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이 죽지 않았으면 로넨이 흑화하지도 않고, 폭군이 되지도 않았을 텐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대공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이상하게 대공과 로넨이 자꾸 생각이 나고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끄응, 앓듯이 작게 중얼거리던 남자는 묘하게 따스하게 느껴지는 발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아무도 없는 곳인데 뭔가와 계속해서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술기운이라도 오르는 건지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이불을 끌어안았다. 도로 침대에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대공과 로넨이 행복할 수 있게.〉

그 순간, 부드러운 온기가 방안을 감싸는가 싶더니 대공은 따끔한 감각을 느꼈다.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어깨에 올라앉은 도마뱀이 목을 깨물었다 놓고 있었다. 입에서 날름거리는 붉은 혓바닥이 곧 작은 불길로 변해 그의 눈앞에서 작게 흔들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눈앞이 일그러지며 공간이 왜곡되었다.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가 환해졌다.

“…….”

고개를 들자 대공은 손에 든 구슬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동굴에 서 있었다.

자신이 본 장면들을 되새긴 그는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는 마음을 다스렸다.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구나.]

머리 위에서 들리는 용의 목소리에 대공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본 장면들이 전부 사실입니까?”

[그렇지.]

‘그게 다 진실이었다면.’

망막에 새겨진 것 같은 과거를 되돌아본 그는 에드가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대공이 죽지 않았으면 로넨이 흑화하지도 않고, 폭군도 안 되었을 텐데.〉

대공이 용과 시선을 맞췄다.

“그렇다면 에드가 막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제국의 미래였던 것입니까?”

황금 용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대공을 내려다보았다.

[미래란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서 이어져 나가는 것이지.]

“…….”

[그러니 너와 에드가 만난 이후로 많은 축이 변했어. 그런데도 보고 싶은가.]

대공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자신과 에드가 만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고, 그건 미래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그렇다 해도 알고 싶습니다. 에드가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요.”

[그걸 보고 나서 뭘 하고 싶지?]

“에드가 만약 무섭고 괴로운 모습을 보았다면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를 안아 줄 것입니다.”

용이 입김을 한 차례 내뿜었다. 작게 웃는 것 같기도 했고, 낮게 한탄하는 듯도 했다.

동시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가 싶더니 대공의 눈앞에 빛이 일렁거렸다. 작은 초가 내뿜는 것 같은 작은 불빛을 그가 응시하자 검을 든 한 남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

대공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피가 묻은 검을 쥔 무표정한 그는 지금보다 성장한 로넨이었다.

* * *

옅은 햇살이 눈가를 어루만지는 느낌에 에드는 눈을 떴다. 그러자 모로 누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대공과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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