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60화 (160/198)

“에드를 찾고 있었는데…… 혹시 어디 아픈 거예요?”

날씨가 쌀쌀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풀렸는데 저렇게 두꺼운 모포로 그를 꽁꽁 감싼 걸 보면 그의 어디가 안 좋은 게 틀림없었다.

‘또 아프면 안 되는데.’

시무룩하게 생각하며 로넨이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걱정을 알아차린 대공이 동생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에드는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연구실에서 책을 보다가 잠이 든 것뿐이야.”

그 말에 기운을 차린 로넨이 마법 등을 작게 흔들었다. 바닥에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여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로넨이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에드를 찾았다고 했지?”

“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자상한 목소리에 짧게 대답한 로넨이 대공의 곁으로 다가와 바짝 붙었다.

대공이 옅게 웃으며 걸음을 떼자 흙이 묻은 주머니를 탁, 탁 털며 로넨도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로 찾았는지 물어봐도 될까?”

대공이 앞을 잘 볼 수 있게 로넨이 마법 등으로 앞을 비추며 답했다.

“무도회에서 쓸 가면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어요.”

“가면?”

“네, 어떤 동물로 할까 고민하는데 딱 떠오르질 않아요.

작게 한숨을 내쉬는 로넨을 내려다보며 대공은 소리 없이 웃었다.

‘로넨이 맡은 일을 잘 해내려고 의욕을 불태우느라 압박감이 심한 모양이네.’

“그럼 형이 도움을 좀 줄까?”

그 말에 로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똑똑한 형이라면 이렇다 할 답을 내 줄 것이 분명했다.

“가면무도회는 왜 열리는 걸까?”

“재미난 변장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요.”

바로 돌아오는 대답에 대공은 로넨의 보석 같은 눈동자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로넨이 잘 알고 있구나.”

“네! 제이논에게 들어서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러니 가면이 예쁘고 거창해도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요, 형. 멋있어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음, 물론 로넨의 생각도 맞아. 가면이 근사하면 참석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

로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 볼 점이 있어. 가면무도회는 추운 겨울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봄을 맞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해 만나는 행사이지, 멋지고 화려한 가면을 자랑하는 자리는 아니거든.”

“…….”

“그러니 눈에 띄는 가면이 필요하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면 어떨까?”

대공의 부드러운 조언이 마음에 드는 건지 로아가 깡,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면이 너무 화려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어려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로넨 생각엔 어때?”

대공의 말에 집중하던 로넨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형 말을 들으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활기찬 로넨의 대답에 대공은 웃으며 몸을 숙였다. 자신과 똑같은 붉은 눈동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번엔 장난기가 묻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 무도회에 에드도 참석할 수 있게 형이 초대장을 보내려고 하거든.”

“정말요?”

“그래, 그가 연회 준비를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도회를 즐길 수 있게 말이야. 그러니 로넨, 이번 일을 끝내고 나면 에드에게 전할 초대장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까?”

대공의 요청에 로넨이 환하게 웃었다.

“네! 형.”

신이 난 듯 몸을 들썩이는 로넨이 든 마법 등에 주위가 은은하게 빛났다. 그에 비친 옅은 금발이 바람에 작게 흔들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전,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에드가 문을 열자 그 앞에는 로넨이 서 있었다.

“에드! 잘 잤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밝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하는 로넨을 보며 에드는 빙긋 웃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즐거워 보이시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텐스가 가면 틀을 만들어서 보여 줬는데 마음에 쏙 들어.”

대답하는 목소리에 설렘이 스며 있었다

‘무도회는 로넨도 처음일 테니 아무래도 기대가 크겠지.’

방으로 들어선 로넨을 따뜻한 불가에 앉힌 에드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면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해결되어서 다행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로넨이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펼치고는 선을 그어 칸을 만들었다. 에드도 수첩을 꺼내 빈 페이지를 열었다.

얼마 전에 빙고 게임 방법을 가르쳐 줬는데 꽤 재미있었는지 매일 에드의 방으로 놀러 오는 로넨이었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할까요?”

“숫자는 많이 했으니까 색깔은 어떨까?”

“네, 좋아요. 규칙은 똑같이 세 줄을 먼저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응, 알겠어. 그런데 에드는 무슨 색을 좋아해?”

제 빙고 판이 다 보이는 것도 모른 채 흰색, 검은색을 노트에 적어 가던 로넨이 물었다.

“저요?”

수첩에 칸을 만들던 에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로넨과 눈이 마주쳤다. 대공과 같은 색의 홍채에 눈길이 쏠린 그가 답했다.

“음, 빨간색이요.”

그러자 햇살이 스며든 붉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가에 잠겨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났다.

“빨간색? 아하, 알겠어.”

‘형이 에드에게 무도회 초대장을 보낸다고 했으니까 알려 줘야지! 빨간색 카드나 봉투를 쓰면 좋을 것 같아.’

로넨이 손에 쥔 만년필에 힘을 줘 칸 정중앙에 빨간색을 써 넣고 별까지 그리자 에드가 웃었다.

“제가 보지 못하게 가리고 적으셔야죠.”

“앗, 보였어? 그럼 에드도 무슨 색을 어디에 적었는지 보여 줘.”

“저는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는걸요?”

에드가 장난스레 말끝을 올리며 수첩을 가리자 로넨이 노트 페이지를 넘겨 다시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다시 정중앙에 빨간색을 써넣자 에드는 속으로 웃었다.

첫 번째 게임은 로넨의 승리였다.

“한 번 더 하자.”

로넨의 제안에 아쉽게 진 에드가 수락하며 결의를 다졌다.

“네, 좋습니다. 이번엔 제가 꼭 이기겠습니다.”

대답 없이 씨익 웃은 로넨이 만년필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힘차게 선을 그어 나가다 고개를 들었다.

“참, 나 춤 배워야 하는데.”

“춤이요?”

“응, 이번 무도회에서 선보이지 않더라도 배워 두면 좋을 것 같다고 제이논이 말했거든.”

북부 생활에는 완벽하게 적응했으니 이제 슬슬 외부 활동 반경을 넓혀야 했다. 그중 춤은 사교계에 녹아들기 위해선 꼭 필요한 교양이었다.

에드는 북부의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고 성장할 그를 상상해 보다가 답했다.

“재미있게 즐기며 배우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에드의 대답에 로넨이 테이블을 탁, 짚고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에드! 나랑 춤을 같이 배우자.”

“제가 춤을요?”

“응! 내 연습 파트너로 말이야.”

“하지만 도련님 저는 춤을 출 줄 모르는걸요?”

“괜찮아! 형한테 먼저 말했더니 춤을 잘 아는 선생님을 소개해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에드는 나랑 같이 춤 수업만 받으면 돼.”

“음, 그렇다면 같이 배워 볼까요?”

에드를 응시하던 로넨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응, 함께 해 보자. 에드.”

* * *

다음 날 오후, 에드는 로넨과 함께 소연회장에 들어섰다. 적당히 넓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나 봐.”

“네, 도련님께서는 소파에 앉아 계세요. 저는 커튼을 정리할게요.”

에드는 창가에 쳐진 커튼을 걷어 내부를 환하게 한 뒤 벽난로의 불을 살폈다.

“형!”

그때, 등 너머로 로넨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가 숙였던 몸을 펴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대공과 중년의 신사였다. 로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인사한 대공이 말했다.

“로넨이 춤을 배운다고 해서 시간을 냈는데.”

그가 시선을 에드에게로 향하며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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