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54화 (154/198)

곧이어 후드 안에 입고 있던 외투도 에드의 몸을 타고 스르륵 벗겨졌다.

에드는 옷이 아래로 미끄러지며 주는 묘한 감각에 작게 몸을 들썩였다.

‘……두툼한 외투를 다 벗었는데도 춥지 않은 건 전부 전하께서 마법을 걸어 주신 덕분이겠지.’

에드가 카디건만 걸친 얇은 차림이 되자 대공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목을 감싼 셔츠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천천히 움직이자 두 사람 사이에 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목을 타고 올라온 손가락이 에드의 턱 끝을 짚고 위로 살짝 들었다.

“에드, 아직은 부족한 나이지만.”

“…….”

“그래도 나를 믿고 함께 미래를 일궈 나가 보지 않을래?”

에드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시다니요, 제게 대공 전하는 언제나 영웅이시고 저를 밝게 비춰 주는 태양이십니다.”

고개를 숙인 대공이 에드의 이마에 그의 이마를 맞댔다. 그대로 잠시 머물렀다가 얼굴을 들어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춘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목걸이를 하고 나면, 이제 이 추운 북부에서 평생을 나와 함께 해야 해. 그럴 준비는 됐어?”

에드도 대공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전하께서도 준비되셨나요?”

고개를 뗀 대공이 에드를 내려다보았다. 에드가 까치발을 들어 대공의 입술에 입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이 목걸이를 제게 걸어 주시면요.”

“…….”

“기품 있는 귀족도 아니고요, 훌륭한 성과를 세운 학자도 아닌…… 그저 남부에서 굴러다니던 말단 하인이 전하의 곁에 서게 돼요.”

“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

“아니면 말했는데 부족했을까?”

“어떤 말씀이요?”

“나는 그런 에드를 사랑한다고.”

“……아.”

“그러니 에드는?”

“저도…… 당연히.”

“응, 당연히.”

입가를 간질이는 대공의 따스한 입술에 에드는 간지러움을 느꼈다. 옅은 웃음기가 섞인 달콤한 진실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에드도 진심을 다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사랑해요, 대공 전하.”

대공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번졌다. 에드 역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그를 꽉 껴안았다. 온몸으로 부둥켜안은 단단한 감촉과 온기에 가슴이 격렬하게 뛰었다.

* * *

에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에 걸린 목걸이부터 만져 보았다.

꿈이 아니었다. 환상적인, 정말로 너무 행복에 겨워 질식할 것 같았던 어제 하루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본 에드는 목에서 밝게 빛나는 붉은 보석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제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내던 대공의 손길, 뒷목을 쓸고 지나가던 손에 온몸을 타고 오르던 야릇한 감각, 목걸이를 채우기 위해 집중하던 그의 표정이 떠오르자 에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에드는 가볍게 뺨을 두드리며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가라앉히려고 했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수첩을 찾았다. 어제 너무 벅찬 나머지 미처 쓰지 못했던 일기를 적을까 하다가 또다시 대공이 떠올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밖에서 작게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에드가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떡하지?”

“기척이 들리는 걸로 봐서는 이미 깬 것 같은데요?”

“하지만 에드가 자다가 그냥 뒤척이는 걸 수도 있잖아.”

어쩐지 발을 동동거리는 듯한 로넨의 모습이 상상된 에드는 카디건을 걸쳐 입고 목까지 단추를 잠그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앗! 하면서 문에 귀를 대고 있던 로넨과 텐스가 뒤로 살짝 물러나더니 환하게 웃었다.

“안녕! 에드.”

“네, 로넨 도련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어, 그런데 혹시 추워?”

“네? 저요? 아뇨, 괜찮은데요.”

“옷을 여기까지 꽁꽁 끌어 올렸길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로넨이 자신의 턱 근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에드가 코끝을 긁적였다.

“목에 한기가 든 건지 살짝 불편해서 따스한 옷으로 감쌌어요.”

“그럼 주치의를 불러올까?”

“아닙니다, 도련님. 따뜻한 물을 마시고 목을 풀었더니 괜찮아졌어요.”

“정말 괜찮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

“그렇다니 다행이다.”

에드를 살피며 휴우, 가슴을 길게 쓸어내린 로넨이 말을 이었다.

“3주 후에 북부 성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린대.”

“가면무도회요?”

“응, 북부에서 봄을 맞이하는 무도회래!”

‘원작에서 보면 북부에서 겨울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이 봄을 맞이하는 의미로 준비하는 행사였던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드는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로넨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형이랑 상의해 보고 오는 길이었거든! 어떤 가면을 만들면 좋을지.”

“생각해 두신 게 있으세요?”

“어!”

로넨이 힘차게 대답하자 곁에 있던 텐스가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그의 힘을 많이 빌려야 하는 듯한 상황이지 싶었다.

“동물 가면을 만들어서 쓰면 어떨 것 같아, 에드?”

“동물이라면…….”

“곰이랑 토끼, 사슴과 강아지 같은 동물들로 말이야!”

며칠 전에 만들었던 인형들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모티브로 삼은 듯한 모습에 에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네.”

“아, 그리고 형도 가면을 쓸 테니까 물어보는 건데…….”

로넨과 에드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에드는 형이 어떤 동물이 되었으면 좋겠어?”

순간 에드의 머릿속으로 늠름한 흑표범과 화려한 공작새가 동시에 지나갔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전방을 주시하는 들짐승과 환한 볕을 품고 하늘을 나는 날짐승 중에 어느 것을 대입해도 대공에게 잘 어울렸다.

“도련님은 생각해 두신 가면 모양이 있으세요?”

“음, 나는.”

로넨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마음 같아선 형이랑 똑같은 걸로 맞추고 싶은데.”

“네, 그런데요?”

“형은 이렇게 크고 엄청 멋지잖아? 그래서 내가 형과 똑같은 가면을 쓰면 좀 이상할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형이랑 달리 나는 크지도, 멋지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형과 다른 가면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

“형이라면 반짝반짝하고 늠름한 가면이 어울릴 텐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아마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아! 그래서 속상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로넨의 뒤에 선 텐스가 현명한 대답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자 볼을 긁적였다. 몸을 살짝 숙인 에드는 로넨과 시선을 마주했다.

“도련님이 안 보이긴 왜 안 보이세요. 이렇게 멋지고 듬직하신데요. 그리고 사람들은 키와 외모로만 누군가를 보고 판단하지 않아요.”

에드는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로넨에게 물었다.

“전하의 곁에 제가 있을 때 도련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세요?”

“아니?”

“그렇죠? 제가 전하보다 훨씬 작고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도련님께선 저를 금세 찾으실 수 있으시죠?”

고개를 갸웃한 로넨이 답했다.

“에드 잘 생겼는데.”

“……감사합니다, 도련님.”

입가에 절로 잔잔한 미소가 걸린 에드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도련님께서는 그런 저보다도 훨씬 근사하고 눈에 띄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해요. 그렇죠, 텐스?”

로넨의 뒤에서 소리 없이 감탄을 내뱉던 텐스가 몸을 바로 세우며 답했다.

“저도 에드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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