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47화 (147/198)

“응, 알겠어! 에드.”

“그리고 제가 선물한 것을 기쁘게 받아 주시면 좋겠어요. 로넨 도련님, 늦었지만 다시 한번 생신을 축하드려요.”

“정말 고마워.”

감사를 표한 로넨이 에드의 두 손을 맞잡았다.

“에드, 내가 약속할게. 에드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하고 선물을 할 거야. 파티도 열어서 북부 성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 해 줄 거야.”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도련님.”

그때 방문이 열렸다. 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 대공을 발견한 로넨이 형! 하고 외치려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형.”

“에드가 일어났다는 희소식을 듣고 왔는데.”

로넨은 빠르게 에드를 의자에 앉히고 테이블을 질질 끌어 왔다. 대공이 로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테이블에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수프와 딸기 수플레, 레몬 절임을 곁들인 크레이프 등이 올려진 식기가 에드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꽃잎으로 예쁘게 장식된 음식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혹시 이것도 전하께서 만드신 건가요?”

“응, 아까 주방에 내려가서 만들어 봤어. 부디 에드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는데.”

대공의 솜씨라면 틀림없이 입에 꼭 들어맞을 터다.

숟가락을 든 에드가 먼저 따뜻한 수프를 맛보았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에 감기는 수프를 여러 번 떠먹은 뒤 딸기 수플레도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전하, 정말 맛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우읍, 말과는 다르게 에드가 작게 구역질을 하자 그가 먹는 모습을 구경하던 대공과 로넨이 동시에 굳었다.

먼저 입이 풀린 것은 로넨이었다.

“헉, 형. 어떡해요. 에드가 진짜 큰 병에 걸렸나 봐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로넨을 가볍게 안아 올린 대공이 그의 등을 토닥이다 방 밖에서 대기하던 이르텔에게 넘겼다.

“잠깐만, 로넨. 에드에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 지금은 혼자 있게 해 주자.”

‘그런데 이상하다. 에드를 혼자 있게 해 주자면서 형은 왜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

의아해진 로넨이었지만, 닫히는 문 사이로 에드의 머리에 형이 입을 맞추는 게 보이자 어쩐지 자신이 모르는 치료 방법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을 꼭 다물었다.

* * *

“에드, 어때? 이건 입에 좀 맞아?”

에드의 배를 살살 문지르던 대공이 입을 벌려 음료를 마시는 에드를 살폈다.

에드가 입덧을 시작한 지 3일째, 대공은 입덧으로 고생하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배 속에 자리를 잡은 아이는 때때로 그를 힘들게 했지만, 에드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곁에서 보는 대공은 할 수만 있다면 입덧을 대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자신의 뱃속으로 끌어다 놓고 싶었다. 안색이 파리한 에드를 볼 때마다 애가 탔기 때문이다.

“네, 새콤달콤하니 정말 좋아요.”

주치의는 이 정도면 그의 상태가 양호한 것이라고 했지만, 대공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도 적게 먹던 에드의 식사량이 더욱 줄었고 창백해진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더 먹고 싶은 건 없고?”

대공의 질문에 고개를 슥슥 젓던 에드가 머리가 울리는지 옆에 앉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른한 숨결을 내뱉으며 현기증을 가라앉힌 에드가 잔웃음이 섞인 말투로 입을 뗐다.

“아이가 전하를 엄청 좋아하나 봐요.”

“그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조금 질투 나는데? 그걸 에드에게만 몰래 알려 줬다는 거지?”

“수줍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도 저번에는 제게 해 주지 않은 뒷말도 전하께는 했다면서요.”

“아, 그거 말고도 얼마 전에 나한테 한 말이 또 있었어.”

“어떤 말이었는데요?”

“에드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하하, 작게 웃는 웃음소리 뒤로 에드가 제 배를 쓰다듬는 대공의 손에 깍지를 끼며 답했다.

“전하께서 이렇게 배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아이가 전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요. 흠, 그런데 좀 심술궂은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기껏 먹고 싶다고 제 머릿속을 콩콩 울려 놓고 전하께서 힘들게 구해 오면 팽하니 돌아서 버리잖아요.”

오늘 새벽의 일이었다. 대공과 함께 자다가 눈을 뜬 에드는 다시 잠이 오지 않아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다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과일 생각에 아, 딸기…… 하고 작게 한마디 내뱉었을 뿐인데 곁에서 자던 대공이 그를 득달같이 알아듣고 일어났다.

그대로 방을 나선 그는 온실에서 직접 여러 가지 과일을 수북이 따 왔다.

바깥 기온이 영하임에도 온실 옆에 흐르는 물에 이를 직접 씻어 온 대공의 손이 차가웠다. 빨갛고 싱싱한 딸기를 에드에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먹여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대공의 차가운 손을 잡은 에드가 이불 속으로 넣자 그는 웃었고, 에드에게 어서 과일을 맛보라며 채근했다.

에드는 딸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한 알을 먹고 나자 급격히 사라진 식욕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대공이 많이 먹으라며 한 바구니를 따왔는데 말이다.

“이제까지 자기 존재도 모르고 뭐 했냐고 투정하나 봐.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예쁨받으려면 열심히 노력해야지.”

들었니, 아가야?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고 점수 좀 잘 줘. 대공이 에드의 배에 똑, 똑 노크하듯이 가볍게 두드리자 옅은 웃음소리가 스민 배가 작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참, 전하. 아이의 태명을 생각해 봤는데요.”

“마음에 드는 태명이 떠올랐어?”

배에서 손을 뗀 대공이 에드의 손가락 끝부터 살살 주무르기 시작하자 시원함에 나른한 한숨을 쉰 그가 말했다.

“네, 튼튼이나 꼭꼭이요.”

“튼튼이는 알겠는데 꼭꼭이는 어떤 의미지?”

“어디 가지 말고 제 몸에 꼭꼭 붙어 있다가 만나자는 뜻인데요.”

대공이 작게 웃자 음, 하던 에드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쭉쭉이나 싱싱이는요?”

“쭉쭉이면 쭉쭉 자라라는 뜻이겠고, 싱싱이면.”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대공이 에드의 옆통수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싱그럽고 싱싱하게 자라라는 의미려나?”

‘다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태명인 건가.’

임신을 한 걸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에드의 머릿속은 아이에 대한 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입덧 때문에 고생하는 에드 때문에 내가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고…….’

대공은 에드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자마자 대신관에게 연락했다. 에드와 함께 성스러운 축복을 받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신관이 추천한 의사가 북부에 도착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공이 에드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에드는 그중에서 어떤 태명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다 마음에 들어서 전하께 여쭤보려고요.”

“그럼 부르기 쉬운 태명으로 하면 어떨까? 앞으로 많이 부를 텐데.”

“입에 잘 붙는 건 싱싱이나 쭉쭉이이긴 한데요.”

싱싱이, 쭉쭉이, 싱싱이, 쭉쭉이…… 몇 번이나 중얼거린 에드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에게 의미 있는 좋은 이름을 주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전하. 너는 참 소중하고 예쁜 존재라고, 그러니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꼭 만나자고 항상 말해 주고 싶은데 말이에요.”

대공은 그 말에 담긴 에드의 뜻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임신은 했지만 불안해하는 에드의 마음을. 아이를 무사히 만나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그 마음을 완벽하게 다 녹일 순 없겠지만 대공은 조금이라도 쓸어 내 주고 도닥여 주고 싶었다.

“이건 어떨까?”

“어떤 거요?”

“또바기.”

“또바기요?”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란 뜻이거든.”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

에드가 작게 중얼거리자 대공이 말을 이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튼튼하게 자라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언제나 한결같이 에드의 몸에 꼭꼭 붙어 있으라는 뜻을 붙여 줄 수도 있고.”

에드는 대공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하고 소중한 언어를 다 붙여도 우리 아이에게 꼭 들어맞는 말이 될 거야, 에드.”

대공은 에드의 손에 깍지를 끼며 말을 덧붙였다.

“태명으로는 아이에게 잘 들릴 수 있는 거센 음이 좋다고 하니까 그에도 잘 맞고. 그러니 또바기라고 부르면 우리가 언제 어디서 이름을 불러도 아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잘 알아들을 거야.”

도서관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을 모두 찾아 읽었다며 콧대를 높이는 대공을 보며 에드는 씨익 웃었다.

“전하, 마음에 쏙 들어요.”

“좋아, 또바기야. 에드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자.”

흐뭇하게 웃으며 태담을 하던 대공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태명 문제는 해결했으니 다른 문제로 넘어가 볼까? 그래서 나를 아스넬이라고 언제 불러 준다고?”

“……아, 그건요.”

스르르, 고개를 돌리려는 에드의 뺨을 손등으로 막은 대공이 시선으로 대답을 종용했다. 에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말이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면.”

‘……어, 그런데 여기서 왜 전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거지?’

가까이 다가오는 대공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에드는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0